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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1 청바지, 노동자의 작업복에서 권력이 되기까지 by 파비 정부권 (6)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청바지변천사,
자유와 저항에서 구속과 권력으로

청바지는 원래 작업복으로 태어났다. 노동계급의 작업복. 청바지가 탄생할 즈음, 1848년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해였다. 혁명의 소용돌이가 유럽을 휩쓸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2월 혁명은 독일의 3월 혁명으로 이어지며 전 유럽을 혁명의 열병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이 짤막한 한 권의 책은 유령처럼 나타나 성경을 능가하는 독자를 확보하며 세계를 양분했다.


1848년은 미국에게도 매우 중요한 한 해였으며 전환기였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콜로라도, 네바다, 아리조나,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얻었다. 1848년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윌슨 마셜은 제재소의 방수로를 점검하다 번쩍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골드러쉬의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유태인 리바이 스트라우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는 금을 캐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막촌으로 변한 캘리포니아에 천을 팔기 위해서였다. 

최초의 청바지는 천막용 천으로부터
그러나 리바이의 천은 품질문제, 재고누적 등으로 곧 커다란 곤경에 처한다. 모든 성공담이 그러하듯 위기는 늘 기회와 함께 찾아온다. 리바이 스트라우스에게도 기회는 위기 속에 숨어 찾아 들었다. 납품 클레임에다 엄청난 재고, 산더미 같은 빚과 밀린 임금에 허덕이던 리바이의 눈에 광부들의 낡은 작업복이 들어왔다. 천막 재고는 당장 캘리포니아 노동자들을 위한 바지로 변신한다.

질기고 튼튼한 작업복은 노동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1853년 리바이는 <Levi Strauss Firm>을 설립했고 후일 Livi's사의 시초가 되었다. 리바이스의 청바지는 진화했다. 뻣뻣하고 무겁고 거친 천막용 회색 범포는 프랑스 님 지방에서 생산되는 서지 드 님(데님)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제노바의 이름을 따 진(jean)이라고도 불리는 보다 부드러운 천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뱀을 피해 일 해야 하는 광부들을 위해 푸른 물감을 들였다. 


청바지가 푸른색으로 태어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광산노동자들의 작업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유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청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서민들의 색이었다. 바스코다가마(Vasco Da Gama)가 항로를 개척하여 햇빛에 잘 바래지도 않으며 거친 노동에 긁히거나 때도 잘 타지 않는 청색염료 인디고를 얼마든지 값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해 준 이후로 청색은 서민에게 친숙한 그리하여 너무나 평범한 색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블루칼라의 옷이 된 것이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10점
TBWA KOREA 지음/알마
 “인간은 상징을 조작하는 동물이다.” 
                        상징은 기호의 한 형태다. 
                인간은 옷으로 그 ‘시대’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청바지는 노동자의 끈기와 강인함에서 새로운 상징으로 진화해왔다.
 

    
청바지 사회문화사로 세상을 읽다
     프래그머티즘에서 팍스아메리카나로,
          제임스 딘에서 양희은으로,
          노동에서 여가로,
     미국에서 세계로,
     실용에서 사치로,
          마초에서 페미닌으로, 
     반항에서 제도권으로,
     해방에서 구속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대량생산에서 수제로…

청바지 150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캘리포니아 광부의 작업복으로 태어난 청바지가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했으며 세상을 점령했는가에 대한 지난 150여 년의 역사를 감각적인 디자인과 문장으로 엮어놓은 책이다. 이 책을 보는 순간,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마치 한편의 다큐멘타리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니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이 책은 다큐멘타리 영화다. 한 편의 기록영화를 감상하듯 나는 이 책을 단숨에 읽어 치웠다.

표지부터가 스타일뤼시한 이 책의 저자는「TBWA KOREA」다. 티비와 코리아? 이름부터가 생소하면서 남다르다. TBWA KOREA는 광고회사다. 매출기준으로는 업계 2위, 평판에서는 업계 1위의 매우 괜찮은 광고회사다. 무엇보다 이들은 세상에 화젯거리를 던질 줄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밝은 광고회사다. 우리 눈에 익숙한 광고를 수없이 만들어 낸 이 회사는 그러나 단순한 광고회사이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거부의 증표 중 하나로 이 책을 냈다. 

우선 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것이라는 필자의 느낌을 확인하듯 저자 소개부터 독특하게 시작한다. 

함께한 사람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7명의 TBWA KOREA의 차애리, 허진웅, 윤혜진, 김현우, 이상민, 조주연, 양희선이 글을 쓰고, 1명의 사람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TBWA KOREA 박승욱 부장)가 진행했고, 1명의 익스큐티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TBWA KOREA 박웅현 ECD)가 총감독을 맡았다.


마치 영화의 오프닝이나 엔딩에 등장하는 출연진과 제작진의 자막 같지 않은가? 이 오프닝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블랙홀 같은 눈빛”과 “스펀지 같은 감수성”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눈부신 아이디어의 서식지”를 탈출한 이 책은 읽는 내내 “롤로코스터를 타는” 듯한 현기증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실로 이 책은 실존하는 찬란함으로 빛날 뿐 아니라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까지 한다.

젊음과 자유와 저항의 상징 청바지
우리의 젊은 시절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생맥주, 통기타와 음악다방의 MC,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청바지. 청바지가 없이 어떻게 젊음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캘리포니아 광부의 작업복으로 세상에 태어난 청바지는 그러나 우리의 젊음에서 프롤레타리아의 규제와 구속 대신에 자유와 반항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다.

절제된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으로 대공황과 양차대전을 견디어낸 프롤레타리아의 청바지도 드디어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팍스아메리카의 영광과 함께 청바지를 입은 제임스 딘이 등장했다. 그는 자유와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1960년대를 달구었던 변혁의 회오리 바람 속에도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청재킷과 청바지에 전쟁과 핵무기, 침략을 반대하는 구호를 페인팅 했다. 

평화와 평등을 외치는 그들로 인해 “가장 미국적이던 청바지는 미국을 거부하는 상징으로 변했다.” 노동의 복장이 투쟁의 복장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하여 청바지는 “가장 혁신적인 의복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80년대에 청바지는 “움직이고 달리는” 투쟁현장의 복장으로 등장했다. 청바지는 자유와 저항의 목소리를 뿜어내는 젊음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러 청바지는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새로운 종족 보보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KTF의 광고 카피처럼 청바지를 입은 CEO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명 보보스라고 불리는 신종 엘리트들로서 칼라 없는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캐주얼을 신었다. 이들은 부르주아의 삶을 살지만 보헤미안의 정신세계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헤미안적 저항정신을 보다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물질주의에 반대하는 부자들” “엘리트주의에 반대하며 자란 엘리트”, 이것이 이들에 대한 수사다.

보보스는 WASP(White Anglo Saxson Protestant)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기득권 집단이 아니면서 교육 받은 엘리트로서 부르주아의 영토에 진입한 새로운 종족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블루진에도 상당히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고가의 프리미엄진이 등장했다. “보보스는 하위 계층과 같은 품목을 공유하지만 보다 고가의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지점에 존재하던 보보스와 청바지의 만남은 청바지 역사에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누구라도 잘어울리는 "청바지와 컨버스"의 문화코드에 비해 개성 강한 프리미엄진과 짝꿍 하이힐은 또 하나의 코드다.


19세기 프롤레타리의 작업복으로 탄생한 청바지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시작과 함께 검은 음료 코카콜라와 헐리우드와 더불어 세계를 점령했다. 1929년 이전, 청바지는 패셔너블한 옷이 아니었다. 특별한 격식이 필요하거나 멋지거나 스타일뤼시한 것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저 거친 노동환경에 적합한 질긴 작업복이었다. 그러나 청바지는 대공황을 거치면서 자신만의 상징을 획득했다. 바로 ‘끈기’와 ‘강인함’그리고 ‘힘’이었다. 

대공황으로 무너져가던 미국을 살린 노동계급의 상징성에 카우보이의 멋과 실용주의와 보보스의 철학이 덧칠해졌다. 청바지는 진화했다. 노동현장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태어난 블루진이 이제 세계를 주름잡는 팍스아메리카나와 더불어 점령군이 되었다. 블루진은 마지막 식민지라는 여자의 세계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성성을 대표하던 청바지는 여자들도 점령했다. 프리미엄화되고 개성이 강해지지기 시작하면서 블루진도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청바지는 여성을 두 개의 계급으로 분열시켰다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는 마지막 장에서 여자들이 어떻게 청바지에 구속당하는지에 대해 선명한 LCD화면처럼 자세히 보여준다. 블루진이 하나의 권력이 되기 위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에 대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임무다. 블루진은 최후의 식민지 여성을 새로운 식민지로 삼았다. 청바지는 여성들의 몸을 중세의 코르셋에서 풀어주는 대신 그녀들의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청바지는 여성들을 새로운 계급으로 분열시켰다. 이 책은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광산노동자. 1981년 브룩쉴즈는 "나와 캘빈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란 캘빈 클라인 블루진광고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전지현이나 정려원처럼 축복받은 몸매를 자신 있게 드러내고
어떤 스타일의 청바지든 멋스럽게 소화해내며
우월감을 느끼는 계급과,

그런 그녀들의 몸과 자시의 몸을 번갈아보며 열등감을 느끼고
몸을 움츠리며, 노출 패션을 조장하는 더운 여름이 한없이
원망스러운 계급”


계급간의 괴리가 생기자, 청바지는 (이전에 노동자 계급의 편에 섰던 것처럼) 열등감을 느끼는 계급의 편에 섰다.


다양한 스타일과 색으로
몸매를 보정해주고
청바지가 가진 스타일뤼시함을
그녀들에게도 선물했다.
청바지의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여성의 코르셋과 재단사를 풍자한 그림


그러나 이런 친절한 디테일을 꼼꼼히 들여다볼 열등한 계급의 여성들이 과연 몇이나 될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뚱뚱하고 짧은 다리를  소유한 여자라도 꼭 전지현과 같은
블루진을 고집하려고 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이면서도 늘 부르주아의 영토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른지….
블루진 다큐《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데님 바지를 갖추고 있는 곳.
현대백화점 무역센터 5층. 청바지 편집 매장 ‘데님바’
그곳에는 9개 나라, 50여 개 브랜드, 450여 가지 스타일의
바지가 가지런히 걸려 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청바지는
과연 얼마나 될까
청바지를 보고 있는 여성들이
청바지를 고르는 것일까
청바지가 이 여성들을 고르는 것일까?
 
 

우리는 과거를 읽었다, 미래를 읽는 건 독자들의 몫?
이 책은 별도로 어떤 결론을 내려고 애쓰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책을 만들어낸 이들이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이들은 이 책의 결말이나 결론도 소비자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것일까? 청바지의 미래까지 포함해서….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와 신선한 디자인과 편집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경쾌함과 발랄함 뒤에는 메시지의 모호함이 꽤나 아픈 단점으로 투영된다. 어쩌면 그조차도 광고 전문가들인 저자들의 의도일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또 다른 문제점을 하나 발견했다. 끈질기고 강인한 프롤레타리아의 상징성과 자유와 저항, 재해석과 창조 의지를 담은 청바지를 스타일뤼시하면서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편집한 이 책이 매우 아이러니한 결함을 하나 갖고 있었다. 스타일에 치중한 탓인지 제본이 조금 허약하다. 두세 차례 책을 뒤적이고 난 지금 청바지 무늬로 포장된 이 책의 일부가 틑어지기 시작했다.

스타일뤼시하면서도 100년이 가도 틑어지지 않을 튼튼한 책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청바지처럼…. 청바지처럼 너무나 친숙하고 그리하여 너무나 평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책이라면.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획기적인 시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파비   (주) “ ” 안은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본문 인용/이미지도 모두 《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속 사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