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3.03 인터넷을 너무 믿지는 마세요!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1.06 목욕탕 함께 가기 싫다는 아들, 갑자기 인생무상 by 파비 정부권 (8)
  3. 2008.09.22 걸어다니는 것도 귀찮은 남자가 자전거 대회에 나가 황천을 달리게 된 사연 by 파비 정부권 (6)

지난주에 아이들 봄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계획은 문경새재를 거쳐 수안보온천에 들른 다음 월악산 송계계곡에 갔다가 중원미륵사지를 답사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문경새재는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아내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마침 날씨도 최상이었고요.

새재 1관문 주변에는 태조왕건 세트장과 일지매 촬영장, 자연생태공원 등이 있어 볼거리도 되고 아이들 교육에도 좋습니다. 새재 길을 걷는 내내 온갖 전설과 조상들의 숨결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일제시대의 상처도 느낄 수 있습니다. 3관문을 지나 충주 고사리로 내려서면 월악산 국립공원 중에서도 그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신선봉이 열두 폭 병풍바위를 벌려 반겨줍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우리가 묵었던 펜션


고사리에서 하루에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트럭 짐칸에 실려 수안보까지 내려가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즐거웠습니다.(고장 난 시내버스의 기사님께서 다음 차인 막차도 올지 안 올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실 때는 해프닝 정도가 아니었지만…) 수안보 온천의 따뜻한 온기가 모든 피로와 함께 불평마저 씻어주었습니다.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송계계곡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미리 예약해놓은 펜션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예약을 했는데 이용요금도 온라인 계좌로 절반을 지불했습니다. 그곳을 정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전거 때문이었습니다. 그 펜션의 홈페이지에선 자전거를 10여대 이상 비치해놓고 무료로 빌려준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들 꿈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커서도 그 꿈을 간직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자전거를 무척 좋아하며 매일 자전거를 타고 놉니다. 자전거를 타고 뒷산 만날재에도 자주 올라갑니다. 얼마전, 「달리는거야 로시난테」란 책을 사서 내가 다 읽고 난 다음 녀석에게 주었는데, 그 책을 하루밤새 다 읽어버렸습니다. 

                

              펜션 홈페이지 설명에 의하면, 미륵사지(사진 윗줄 첫번째)까지 3km, 문경새재 관문(윗줄 두 번째)까지
              2km, 덕주사 마애불(윗줄 세번째)까지 2km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글쎄다. 미륵사지를 지나야 관문이
              나오는데…, 이제 이 정보도 미덥잖다.
   

그리고 말하더군요. “아빠, 나도 의대 갈래.” (이거 뜻하지 않은 수확입니다. 실현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듣기 좋은 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부모란 다들 속물이죠.) 녀석이 그리 말한 데는 그 책의 저자가 의대생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저자(양성관)는 지금 산청의 생비량 보건소장으로 군복무 중입니다. 녀석에겐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일주한 이야기를 책으로 쓴 저자도 마음에 들었지만, 군대 가는 대신에 보건소 소장으로 근무하는 저자가 더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우리 아이는 군대를 무척 두려워하거든요. 총 쏘고 훈련받고 하는 게 무섭답니다.(내가 느끼기론 녀석은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무서운 걸 알다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나도 아들이 군대 가는 걸 그리 반기는 편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안 갔으면 하지요.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두 아들도 군대 안 갔지 않습니까?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지요. 

홈페이지의 이 사진은 연출이었나?


하여간 자전거를 원 없이 타게 해준다는 그 펜션으로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한 번 더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습니다.

“자전거는 틀림없이 무료로 빌려주시는 거지요? 우린 두 대가 필요한데요.”
“그러믄요. 얼마든지 마음대로 타실 수 있어요.”

버스가 지릅재(계립령이라고도 하는데, 미륵리에서 관음리로 넘어가는 하늘재가 계립령이란 설이 더 유력해 보인다.)를 넘어서자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실로 장관이었습니다. 설악산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암괴석으로 그 이름이 높다한다면, 월악산의 암봉들은 부드럽고 매끈한 암릉의 곡선들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산입니다. 올록볼록한 암봉들이 마치 중국의 계림(실제 보지는 못했지만)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아름다운 경치보다는 자전거를 탈 생각에 더 마음이 바쁩니다. 하긴 초등학교 5학년짜리에게 아름다운 산천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드디어 시내버스가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묵을 펜션은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조금 걷다보니 월악산 영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팻말도 보입니다. 펜션은 지척에 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자전거부터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참담한 실망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마구 뒤엉켜 버려진 자전거. 브레이크는 모두 끊어지고 핸들은 안 돌아가고 휠과 타이어도 따로 놀았다.


자전거는 분명 여러 대가 있었지만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탈만한 자전거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고물상에 쳐 박힌 자전거보다 못합니다. 아, 이럴 수가…,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젊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그저 실망하지 않고 자전거를 하나 하나 꺼내어 확인해보더니 기어이 한 대를 골라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빠, 이거는 조금만 손보면 탈 수 있겠다.”

그래도 한 대는 건졌으니 불행 중 다행입니다. 대충 손을 보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브레이크는 불안합니다. 아들에게 조심해서 타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녀석은 “그건 걱정마라. 내가 자전거를 얼마나 잘 타는데….” 하면서 신나게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본래 계획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저녁을 먹기 전에 덕주사 마애불까지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하긴 저런 자전거로는 두 대가 있다 한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걸 끌고 나섰다간 거의 사망이지.’ 

그래도 아이들이 자전거 타고 놀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문경새재의 상쾌한 아침공기와 아름다운 새재 길과 고사리 신선봉의 빼어난 자태, 월악산의 수려한 암봉들의 감동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갑자기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펜션지기 할머니가 소개해주는 식당을 찾아 털레털레 밤길을 내려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예약할 때 전화를 받던 젊은 펜션지기는 할머니의 아들로서 이곳에는 없는 거 같았습니다. 문명의 편리함이란…. 그러나 그 편리함이 못내 불쾌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자전거가 탐이 나 예까지 온 게 너무나 아까워 밤새 한 대의 자전거를 돌아가면서 타고 또 타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또 탔습니다. 그저 본전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꾸만 자전거를 타다보니 이곳이 자전거 타기에는 참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로에도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데다가 펜션 주변에는 잘 닦여진 단지 내 도로가 있어서 자전거 타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자전거만 고물이 아니었다면, 약속대로 얼마든지 마음대로 자전거를 탈 수만 있었다면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이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인터넷으로 여행지를 검색할 땐 여러 군데를 비교해가며 주의를 기울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이 유용하긴 하지만 너무 맹신하지는 말자는 것이 이번에 얻은 교훈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인터넷, 너무 믿지는 마세요!                                                
          2009. 3. 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애 엄마한테 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애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알 수가 없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아이 엄마한테 신경질을 부린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 엄마도  자세히는 모르고  그저 전화를 받았는데 지금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병원로비 의자에 멀쩡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승용차의 아저씨도 함께 있더군요. 아마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차에 태워 병원으로 달려왔나 봅니다.
    

  아이는 생각 밖으로 다친 데는 고사하고 긁힌 자국 하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사고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경위는 이랬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오던 우리 아이를 학교 앞을 지나가던 승용차가 미처 발견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문 옆에 큰 트럭이 한 대 주차해있었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서로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을 테고 자전거는 당연히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용차도 자전거도 속도를 별로 내지 않았던 터라 큰 사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무척 착한 심성의 사고 상대방 차주

  그러나 그 아저씨는 부랴부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X-레이까지 찍고 부산을 떨었나 봅니다. 그 아저씨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시더군요.

  멀쩡한 아들 녀석을 보니 도리어 제가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래도 놀랐을 텐데 그러면 안 되지 싶어 “정말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녀석도 미안했던지, “괜찮다. 봐라. 하나도 안 다쳤다. 긁힌 데도 없다.” 하면서 일어서서 앞뒤로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전거는 괜찮나?” 하고 물었더니 자전거도 멀쩡하다면서 단지 핸들이 조금 돌아갔는데 그건 금방 돌릴 수 있다고 강변하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승용차 아저씨에게도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 아저씨는 계속 미안해하며 아이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사야 되는 게 아니냐며 따라왔지만, 제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해 돌려보냈습니다.

  참 착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아이에게 괜찮나 물어보고 다음부턴 조심해라 하고 훈계한 다음 사라지는 것이 보통의 인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학교 앞에 가보니 자전거는 문방구 아주머니가 한쪽 옆에 잘 세워놓았더군요. 역시 아이 말대로 핸들이 조금 돌아가 있었고 쉽게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도 자전거도 멀쩡하니 천만 다행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어디 혹시 혹이 났을지도 모르고 멍이 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빠하고 목욕탕이나 갈까? 그러면 금방 풀릴 텐데…” 

  갑자기 인생이 무상해지다

  그러나 아이는 완강하게(!)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놀다가 학원 갈 거니까 먼저 가라는 것입니다. 아니, 녀석도 싫으면 싫은 것이지 왜 이렇게 거세게 거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가만 그러고 보니 녀석이 저하고 목욕탕 안간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전에는 목욕탕을 마치 수영장 가듯 생각하며 사흘이 멀다고 목욕탕 가자 조르던 녀석인데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같이 가자고 해도 싫다며 자기는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아, 이거 괜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녀석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니면 혹시? 그러나 어느 쪽이든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그저 버림받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질풍노도’의 시대는 결국 오고야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요….

  2009. 1. 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저는 황천을 달리다 왔습니다. 정말이지 누런 하늘을 보았습니다. 사실은 뜻하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마산 해안도로변을 따라 무려 16km를 달리게 되었는데,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본의 아니게 경남도민일보와 경륜공단이 주최하는 <경남도민자전거대행진>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냥 엉겁결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럼 왜 엉겁결에 팔자에도 없는 자전거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느냐구요? 그 전말은 이렇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걸어다니는 것 조차도 귀찮은 전형적인 도시의 40대 남자입니다.(40대에 진입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을 꼭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건 공개하는 게 아닌데...)
그래서 저는 성인이 된 이후에 자전거를 타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도 소년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자전거를 무던히도 즐겨 탔습니다. 벽촌 산골에서 살았던 탓에 자전거가 없이는 중학교에 등하교도 할 수가 없었으므로(학교까지 무려 40리 쯤 됐습니다) 늠름한 삼광호는 제게 가장 중요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고 재산 제1호였지요. 

그러나 산골소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부산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산골소년은 지금껏 사방이 아파트와 빌딩들에 갇힌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삼광호 자전거를 재산 제1호로 아끼던 산골소년은 무미건조한 도시남자로 살아왔고, 도시의 발달한 문명은 더 이상 자전거를 탈 필요도 기회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게도 사랑스런 아들이 하나 있는데 이 녀석이 얼마 전부터 계속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조르는 겁니다. 그래서 아들놈과 협상하여 추석 때 어른들한테 받은 용돈에다 제가 돈을 얼마 더 보태어 자전거를 한대 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 가면 좋은 자전거를 싸게 살 수 있나 자전거 대리점, 할인마트 전시장 들을 둘러보러 다녔습니다. 그때 마침 경남도민일보 신문에 한 자전거 대리점의 미담 기사가 났더군요. 자전거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자 무료대여를 한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곳에 가서 자전거를 한 대 샀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아들 녀석이 <경남도민자전거대행진>에 나가자는 겁니다. 자전거 판매점 사장님도 제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겠다고 거들었습니다. 입이 함지박 만해져서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초등하교 5학년짜리 아들놈을 어떻게 혼자  내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걸어 다니는 것도 귀찮아하던 도시의 40대 남자인 제가 엉겁결에 생각지도 않던 자전거 대회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자전거입니다. 수업 시간에는 자기네 학교 운동장 옆 농구 골대에 이렇게 곱게 묶어 놓습니다.

            제게만 자전거를 공짜로 빌려주신 게 아니더군요. 다른 아저씨와 학생들도 빌려가고 있습니다. 
            자전거 타고 싶으신 분은 여기 가서 빌려 타시면 됩니다. 아무 확인도 안 하시더군요. 혹시 반납 안
            하고 그냥 들고 가더라도 운명으로 생각하신다네요. 인상도 참 좋은 아저씨였습니다. 
            신포삼익아파트 상가 1층에 있습니다.

            자전거 대회에 갔더니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장병현 씨와 딸 두루입니다. 
            이애는 우리 아들보다 두 해나 어린데도 하는 짓이 꼭 누나 같습니다. 우리 애가 어릴 때 지 엄마
            젖을 좀 많이 못 먹었나 봅니다.  

            이 친구가 우리 아들입니다. 요즘 자가용도 생기고 살판났습니다.

            미래의 사이클맨입니다. 이 친구는 폼도 폼이지만 실제 경주에서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는 모습을 꼭 찍고 싶었는데 결국 못 찍었습니다. 누군지는 저도 모릅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자전거 대회도 주최하시면서 무료 찻집도 운영하시네요. 
            기자님들이 수고 많으십니다. 한 쪽에선 참가자들에게 티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공연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언제 저런 걸 다 배웠는지, 참 잘 하더군요.
            애들 엄마로 보이는 분들이 앞에서 사진 찍는다고 난리였는데, 저도 그 틈에 끼여 간신히 찰칵!
  
            에어로빅 댄스에 맞추어 참가자들 전원이 준비운동도 했습니다. 

             자! 이제 출발입니다. 마산공설운동장 후문을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왕복 16km 대행진입니다.
             맨 뒤 우측 두 번째, 우리 아들도 출발하고 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는 참가자들.

             한 예쁘장한 아가씨가 등에 <아웃, 조중동>이라고 써 붙이고 출전했군요. 
            조중동 씨를 엄청 미워하시는 분인가 봅니다. 물론 저도 조짜 중짜 동짜, 별로 안 좋아 합니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아들과 함께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니 참 좋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곳에서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노니는 것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기쁨이었습니다. 정말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저는 노란 하늘을 원망하며 헉헉거려야만 했습니다. 아! 이 맥 빠진 넓적다리는 왜 이다지도 무거운 것입니까? 탱탱하던 종아리는 어찌하여 물컹거리며 자그마한 페달 하나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까?
정말 눈앞은 아찔하며 숨은 턱에 차고 하늘은 한 치 앞에서 누렇게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음 놓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바로 제 뒤에는 백차와 경찰 싸이카가 에~앵, 에~앵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저를 호위하며 따라 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제가 꼴찌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미안해서 단 한시라도 페달 밟는 일을 어찌 소흘히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저는 16km를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반환점을 돌 때 잠시 바닥에 발을 댄 것을 제외하고는) 페달을 밟으며 마산 공설운동장에 헉헉거리며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곧 죽을 것만 같던 제 눈에 누렇게 보이던 황천은 어느새 맑게 개이고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범벅이 된 제 몸은 온천에서 방금 빠져나온 것처럼 시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아! 황천도 한 번씩 달려볼 만하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느낌은 도시의 남자가 된 이후 처음입니다. 

아들 녀석은 언제 들어왔는지 행사장 무대에서 터져 나오는 경품 당첨번호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습니다.    
<끝>


             제가 산골소년이던 중학생 시절, 3년 동안 자전거를 타고 돌던 협곡입니다. 왼편에도 오른편과
             비슷한 모양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곳은 동네 앞산도 보통 1000m급을 오르내립니다. 
             제가 다닐 땐 포장이 안 된 신작로였는데, 지금은 포장이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들이 다니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왼쪽 편의 산을 뚫고 벼랑을 헐어 고가도로가 났으며 이제 차들은 이 새로
             운 도로로만 다닙니다. 사진에 보이는 버스는 관광버스입니다. 
            
             가운데가 잘려나간 이 벼랑 밑 어디에는 1920년대에 세워진 비가 하나 있는데, <경북팔경지일>이라고 
             한자로 쓰여 있습니다. 경북팔경 중 으뜸이란 뜻이지요. 제가 다닐 땐 없던 다리가 네 개나 이 경북
             팔경지일에 어깨를 붙인 채 들어서 있습니다. 혹자는 그걸 두고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의 교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저는 속으로 그랬습니다. 미쳤군~^^

             아마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다시 이 협곡을 가로질러 대운하를 건설하실 계획이셨죠. 높은 다릿발을 
             세우고 그 위에 수로를 얹는 방식이라고 하던데요. 그렇게 해서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다는 거죠. 
             이곳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그리고 이 곳 지리를 너무나 잘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발상이지만, 대통령께서 워낙 경제도 많이 아시고 특히 건설 쪽에선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고들 하시니...   

             사진에 보이는 내는 새재에서 흘러내려오는 조령천으로 영강이 되었다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말이 샜군요. 이 사진을 소개하는 건 저도 왕년엔 자전거를 꽤 잘 탔었다는, 앞으로 가끔 타겠다는.... 그
             런 말씀입니다.  
                 

2008. 9. 21일 <경남도민 자전거 대행진> 참여하고 난 오후,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