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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6 백지수표로 꽃들에게 주는 희망 by 파비 정부권 (5)

“꽃들에게 희망을?” 김훤주 기자가 이곳에서 여는 행사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나는 그것이 어떤 단체의 이름일 거라곤 퍼뜩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단체의 이름인 걸 알고 나서는 “아, 어린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곳인 모양이군!” 하거나 “소년소녀 가장 돕기 자선행사를 같은 걸 하는 모양이야!” 하고 생각 했답니다. 

사진 속의 사진에 들어가 계신 분들이 아마 '꽃들에게 희망을' 희망지기들인가 보다.


비슷하긴 했습니다만, 꼭 맞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어떤 단체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가 자선단체 비슷하다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 단체는 쌀이든, 돈이든, 현물이든, 반찬이든, 심지어 배추 한 포기까지도 근갈(!) 치듯이 지원받아서 이것을 다시 꼭 필요한 가정이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갈 치듯이’라고 불경스런 말을 써서 미안하긴 하지만, 다음 말을 들어보면 “별로 틀린 말도 아니네!” 하실 겁니다. 김 기자와 수정만 트라피스트수녀원에 취재차 따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역시 이처럼 근갈 비슷한 부탁을 받고 “그래, 가자” 했지만, 쥐어주는 초대장을 제대로 읽어볼 틈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 기자를 따라간 행사는 자선행사는 아니었습니다.  

비슷하긴 하지만 꼭 맞는 것도 아니라고 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이날 행사는 자선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꽃들에게 희망을> 탄생 10주년을 축하하는 생일잔치였던 것입니다. 행사는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눈물겹게 재미있었는데, 시민단체의 행사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날 알았답니다. 뭐, 이 말에 공감하실 분은 하실 겁니다.  

특히 감동 깊게 좋았던 것은 행사가 군더더기 없이 간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튼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기획을 참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대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맨 아래에 동영상을 달아두었습니다. 행사 중 일부랍니다. 꼭 눌러 보시기 바랍니다. 대체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작이란 평이 많더군요.  

자, 그러면 다시 왜 ‘근갈 치듯이’라고 했을까?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날 생일잔치에서 나는 구경도 잘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습니다. 술 이름이 ‘시월애’였던가요? 제조회사는 모르겠는데 술 맛이 참 기가 막혔습니다. 단감으로 만든 와인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회사가 만든 ‘쌀막걸리’도 있었는데, 역시 근갈 쳐서 들고 왔다고 하더군요. 사실은 매우 자발적인 협찬이었겠습니다만. 

어쨌든 <꽃들에게 희망을> 대표(확실히는 모르지만, 대충 내 짐작임)인 설미정 씨는 여기 차려놓은 술과 음식들 중에 자기들이 준비한 건 하나도 없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모두 다른 개인이나 단체, 가게, 기업에서 협조 받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기들이 준비한 것은 오로지 마음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10년을 지켜왔다고 말입니다.  

마이크 든 분이 설미정 씨

정말 그 말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마음을 지녔기에 이토록 여러 사람들이 기쁘게 흔쾌히 근갈 당하기로 마음먹었을까? 나도 그건 잘 모르므로 그걸 알고 싶다면 시험삼아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 스스로 당해보심이 어떨까요? 그러면 혹시 모르지요. 여러분도 그들 희망지기(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에요)처럼 천상의 기쁨을 누리게 될는지.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주제를 <근갈>이란 불경스런 단어를 정하기로 한 데는 달리 이유가 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미처 펼쳐보지 못한 초대장을 꺼내 읽어보았을 때, 다시 한 번 통쾌하게 웃었답니다. ‘통쾌하다’란 표현은 그렇게 과장도 아니랍니다. ‘재미있다’라기보다는 ‘통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일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초대장은 매우 친절하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초대합니다.

♥ 언제 : 2009년 12월 11일 저녁 7시 상남동 삼원회관 5층

찾아오는 구체적 방법 ▶ 차는 ‘시민생활체육관’ 뒤 주차장에 세운다.

▶ 상남동에서 아주 유명한 ‘야구연습장’을 찾는다.

▶ 야구장 입구에 등을 지고 본 맞은편 건물이다.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 오래된 느낌.

▶ 1층 ‘빠리바게트’를 찾아주셔요. 이 건물 5층.

▶ 그래도 찾기가 어렵다면 016-808-8216을 꾹~


얼마나 친절합니까? 나는 이렇게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초대장을 아직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네? 많이 받아보셨다고요? 그렇다면 그건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서 그런 모양이군요. 아무튼 참 친절한 초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문구를 읽는 순간, 아, 이 친절의 배후에 숨어 있는 <근갈>을 발견하고 통쾌하게 웃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 뭐 갖고 : 여유 있는 시간, 여유 있는 마음, 여유 있는 지갑 (일명, 삼여) 

 
그리고 <근갈>은 초대장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말로 화룡점정이 무엇인지 그 진정한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 백지수표 한 장을 끼워서 보냅니다.

(사용방법 : 볼펜을 들고 잠시 고민하시다가 쌀, 돈, 봉사기간, 현물, 모든 나눔 가능한 것 을 적으시면 됩니다. 자녀들도 함께 하시면 됩니다.)

부페식으로 마련된 음식을 행사 전에 미리 나누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뒷장에다 백지수표의 용도에 대해 상세히 기재해 놓았습니다. 대충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겨울나기 사랑의 쌀독을 채우기 위해서, 둘째, 앞치마 제작을 위해, 셋째, 집이나 차에 붙일 스티커 제작을 위해(이건 아마도 내 짐작에 보다 대규모적인 <근갈공세>를 위한 것으로 보임), 넷째, 미리 챙기는 자원활동을 약정해주세요, 가만 이것도 <근갈>이네요. 

가만, 그런데 말입니다. 초대장을 다 읽고 난 다음 봉투 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백지수표가 안 보이는 겁니다. 어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이놈의 백지수표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하, 그러고 보니 생각납니다. 김 기자가 초대장 봉투를 줄 때 무언가 한 장을 빼고 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 우리의 김 기자가 백지수표를 빼돌렸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김 기자, 아직 여린 마음이 굳어지려면 더 많은 세월을 살아야하나 봅니다. ‘근갈 치는’ 게 부담스러워 백지수표를 빼돌렸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본인은 자기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늘 강변(혹은 변명)하지만, 안 착할는지는 몰라도 심성이 너무 여린 건 사실입니다. 실비단안개님과 함께 달그리메님을 태우러 가면서 그런 얘기들을 나누었었지요. 

이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으므로 대충 정리하고자 합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은 매우 고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는 일도 당연히 아름답고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회원 중 어느 분(가만, 이분이 회장님이라고 하셨던 거 같기도 한데, 헛갈리네)이 말씀하시길, “우리가 하는 일이 빨리 망해서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더군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더 많은 분들이 ‘꽃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근갈>에 넘어가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근갈>은 별로 좋은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이 하는 일은 <근갈>도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숭고한 일이며 사회를 희망으로 살찌우는 보람찬 일입니다. 

나는 비록 능력이 없지만, 김 기자가 빼돌린 백지수표는 알아서 챙겨 내 주변에 능력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 나누어주고 <근갈>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근갈>은 치면 칠수록 마음이 풍요로워지리라고 확신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풍요로운 마음을 갖기를 소원하는 분이 계시다면, 아래 연락처로 백지수표를 날리시면 소원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저번 블로거 모임 때 실비단님께서 텃밭에 배추 수백포기가 그냥 있는데 뽑아가고 싶은 만큼 뽑아가라고 하셨는데, 벌써 한파가 닥쳤으니 늦었겠지요? 내년엔 꼭 실비단님 밭에 가서 백지수표를 채울 거리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는 <근갈> 아닙니다. 실비단님은 그런 거 안 쳐도 워낙 마음이 고우셔서…, ㅋㅋ

저소득층 가정을 지원하는 작은 모임

꽃들에게 희망을

경남 창원시 사파동 72-2 사파복지회관 2층

TEL. 055-263-7014, 016-808-8216

http://hope4u.or.kr

(우편번호) 641-826


자, 그럼 지금부터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작을 감상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아래 동영상을 틀어보시면 제목도 나오겠지요? 엄청 재미있습니다. 보증합니다. 재미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물론 당연히 그건 절대 책임 못 집니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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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