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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31 군대에서 참호파기? 그거 일도 아니에요 by 파비 정부권 (7)
심심하게 깊어가는 이 밤, 군대 이야기 하나 더 해드리겠습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군대이야기 하면 싫어한다지요?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첫 번째는 군대이야기, 두 번째는 축구이야기, 그런데 이보다 더 싫은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면서요? 네, 오늘 이야기는 군대이야기긴 하지만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미지용 사진. 내가 본 장동건 중에 가장 멋있었던 "태극기 휘날리며" 그러나 군대는 그렇게 멋진 곳만은 아니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무언지 아십니까? 축구가 아니라 작업입니다. 군대는 작업하기 위해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흐흐. 제가 이등병 때 우리 부대의 대대장이 바뀌었습니다. 취임식을 마친 신임 대대장은 당근 제일 먼저 부대 시찰을 했습니다. 부대를 한 바퀴 빙 둘러본 신임 대대장, 그 뒤를 졸졸 따라가던 우리 중대장과 인사계에게 일갈했습니다. 

"아니 우리 부대는 참호가 필요 없는 부대인데 웬 참호가 이리도 많이 파져 있는 거지요? 이런 불필요한 시설을 만들어놓고 관리한다는 것은 낭비이자 병력을 소모하는 것 아니겠소? 빨리 덮도록 하시오."

생각지도 못한 지적에 우리의 젊은 중대장 쩔쩔 매고 있는데 능구렁이 인사계 백 상사는 능글맞은 웃음을 날리며 중대장에게 별 일 아니라는 싸인을 보냅니다. 우리 부대는 이 앞에 쓴 군대이야기를 읽어본 분이시라면 아시겠지만, 논산훈련소 내에 있는 직할대로서 외곽담장은 경비대대가 초소 경비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 따로 참호가 필요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백 상사는 마치 이런 지적이 나올 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음날 백 상사가 부대원들을 집합시켰습니다. 우리 부대는 중대병력이 고작 25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소대병력의 절반도 안 되죠. 그러나 우리 부대에 속한 땅은 어마어마하게 넓답니다. 그에 걸맞는 작업지시가 곧 떨어질 판입니다. 

"자 지금부터 대대장님의 명에 따라 부대 내의 모든 참호를 메운다. 참호를 메우는 방법은 일단 쓰레기장에 있는 쓰레기들을 모두 리어카로 실어다 참호 안에 붓고 그 위를 흙으로 덮는다. 그리고 참호 메우기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쓰레기장을 치울 청소차량은 지원 받지 않기로 한다. 이상."  

하하. 우리는 엄청 걱정하고 있었는데 무슨 떨어진 작업지시가 이 모양입니까? 그럼 그거 너무 쉬운 거잖아요. 어쨌든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인사계 백 상사를 고마워하며 리어카를 끌고 룰루랄라 쓰레기를 실어다 참호를 모두 메웠습니다. 사실 참호 메우는 작업 그거 보통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생각해보세요. 흙은 어디서 파올 것이며, 그걸 또 참호마다 일일이 끌고 다니며 메울 생각을…. 그러나 우리는 이웃 훈련병연대의 쓰레기장까지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작업은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그리고 2년이 흘러 그 신임 대대장도 떠나고 새로운 신임 대대장이 부임했습니다. 역시 예의 부대 시찰을 제일 먼저 한 것은 당근입니다.

"아니 이 부대는 어떻게 참호가 하나도 없단 말이요? 부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경계근무라는 것을 모르시오? 당장 전 부대원을 동원하여 참호를 파도록 하시오."

하하하. 이때 우리는 알았습니다. 우리의 백 상사는 신이 내린 인사계였던 것입니다. 집합한 부대원들에게 백 상사는 의기양양하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자, 지금부터 대대장님의 명에 따라 참호를 판다. 참호를 파는 방법은 일단 2년 전 메웠던 참호 위에 덮혀있는 흙을 긁어낸 다음 안에 들어있는 쓰레기를 쓰레기장으로 운반한다. 쓰레기를 들어낸 참호 내부는 야삽으로 깨끗하게 정비한다. 그리고 즉시 운송부대에 청소차 지원을 요청한다. 이상."

제가 제대한 이후 이 참호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르긴 몰라도 쓰레기를 안고 땅 속에 묻혔다가 다시 토해내고 제 모습을 찾기를 반복하며 영원한 삶을 누리고 있지 않겠는지요?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내린 예지능력을 지닌 백 상사가 떠났을지라도 말입니다. 

백 상사의 이 은밀한 비결은 다음 인사계에서 또 다음 인사계로 계속 이어지고 있겠지요. 틀림없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황실서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처럼 전설 속으로 사라질 날이 오겠지요. 그럼 모두들 안녕히 주무세요. 저도 잡니다. 이 글은 내일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빛을 보도록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총총. 
  

아, 자기 전에 마지막 한 말씀 살짝 알려드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겠네요. 여러분도 다 아는 이야깁니다.
"군대는 요령이야."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