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1.19 역전의 여왕, 김남주 남편 정말 짜증난다 by 파비 정부권 (8)
  2. 2010.12.01 역전의 여왕, 꼭 이혼시켜야 되나 by 파비 정부권 (6)
  3. 2009.05.20 내조의 여왕, 생활속의 사랑법 by 파비 정부권 (1)

제목에다 김남주 남편 정말 짜증난다, 라고 써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김승우가 기분 나쁘겠다. 그러나 그래도 어쩌랴. 잘난 마누라하고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게 예의다. 황태희 남편 정말 짜증난다, 이렇게 쓰려고 하다가 그냥 김남주로 갔다. 김남주가 좋으니까.

황태희 남편 봉준수, 정말 짜증나

그러나 지금부터는 황태희로 가기로 하자. 처음에 나는 황태희와 봉준수가 이혼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혼이 무슨 애들 장난인가. 그러나 둘을 이혼시키고 황태희와 구용식, 봉준수와 백여진의 4각관계를 만들어 재미를 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둘은 한 달인지 석 달인지는 모르겠지만 숙려기간이 끝나고 나면 이혼서류는 휴지조각이 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저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게 아니다. 돌아가는 꼴이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 봉준수

황태희와 구용식이 진짜 연애감정에 빠졌다. 구용식의 짝사랑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불장난에 제대로 불이 붙어버렸다. 황태희의 감정도 갈팡질팡한다. 지금 그녀의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연민? 동정? 아니다. 내가 보기엔 황태희도 확실히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런 황태희를 지지한다. 또한 구용식의 사랑도 지지한다. 이제 구용식은 짝사랑을 할 필요가 없다. 둘은 본격적으로 떳떳하게 사랑을 나누면 될 일이고 그래야 한다. 이혼녀? 그게 무슨 주홍글씨라도 되나.

이혼녀가 무슨 주홍글씨냐

그렇다. 이혼은 주홍글씨가 아니다. 황태희가 봉준수와 다시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완전 전근대적인,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고리타분한 발상일 뿐이다. 물론 봉준수의 부모는 그렇게 바랄 수도 있다. 황태희의 엄마도 마찬가지.

아이도 있는 마당에 둘이 다시 사이좋게 합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한 달(혹은 석 달) 숙려기간이 지난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한 장의 추억으로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미 그런 시추에이션은 어렵게 된 듯이 보인다.

▲ 구용식

이미 황태희의 마음에 구용식이 들어섰다면 최소한 구용식과 결혼하진 못한다고 하더라도 봉준수와 다시 합치는 따위의 일도 벌이진 못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담고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랑을 나눈다는 게 내 상식엔 없다.

그래서 나는 황태희와 구용식의 사랑을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봉준수와는 깨끗하게 정리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나는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봉준수의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우유부단함과 이기적인 욕심, 무능함 등등의 탓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봉준수는 실로 짜증나는 인물이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보다 훨씬 잘나가는 황태희더러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그러던 황태희가 회사에서 거의 잘리다시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5년이 그에겐 황금기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 그도 5년 뒤 퀸즈에서 잘리고, 다시 황태희가 계약직(말이 좋아 계약직이지 비정규직이란 표현이 적절하다)으로 퀸즈로 돌아오고, 황태희를 쫓아내려는 한송이 상무의 계략에 따라 봉준수가 다시 복직되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봉준수는 황태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냥 간단하게 “응, 원래 백여진과는 잘 아는 사이였어. 오래전에 사귄 적이 있었지” 이랬으면 좋았을 걸 뻔히 사람을 눈앞에 두고 속이고, 그리고 몰래(물론 백여진의 의도였지만) 만나기도 했다.

▲ 황태희

게다가 황태희가 쫓겨난 후 팀장이 된 백여진의 지시에 따라 황태희가 작성한 기획안을 훔쳐 백여진과 한송이 상무에게 넘기기도 했다. 얼마나 한심한가. 결과적으로 황태희에게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붙어먹은 꼴이 됐다.

봉준수, 멍청한 건지 뻔뻔한 건지 희한한 남자

그런데도 봉준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집안이 잘되려면 남자가 성공해야 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위해 희생해도 된다는 세계관이 그의 생각 저 깊은 곳에 깔려있다. 그래서 아내의 기획안을 훔치면서도 그게 다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봉준수는 참으로 부끄러운 남자였다.

이혼한 뒤의 모습은 어떤가. 구질구질하다. 옛 아내의 뒤를 밟고, 뭐 특별한 일이 없나 감시하고 캐기에 바쁘다. 이미 서로 남남이 된 처지에 일일이 신경 쓰고 간섭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 이혼녀의 집 옆으로 집을 구해 이사를 한 것도 구질구질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기로 하자.

아무튼, 나는 봉준수의 그 구질구질한 얼굴만 봐도 역겨움에 괴롭다. 제발 봉준수는 화면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4각관계의 한 축인 백여진의 얼굴이 요즘 통 안보인다. 초반에 엄청난 활약을 할 것처럼 보이던 백여진, 그단새 작가님께 찍혔나?

▲ 백여진

백여진, 제발 봉준수 좀 데리고 가라. 그리고 둘이서 오붓하게 살아라. 얼마든지 행복해도 상관없다. 그건 두 사람의 일이다. 제발 황태희 곁에서 봉준수를 떼놓았으면 좋겠다. 백여진, 그대의 원래 목표가 그것 아니었던가. 그렇게 해라.

그리하여 시대착오적이고 전근대적인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로부터 황태희를 해방시켜라!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작가님, 막판에 황태희와 봉준수를 재결합이니 어쩌니 하면서 엮어놓는다면 내 그대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요. 흐흐, 말로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
봉준수가 결혼 전에 백여진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이 들통났습니다. 결국 이혼 당하게 생겼군요. 아니 이혼 당했습니다. 법원에 가서 이혼서류 제출하고 나왔는데요. 사랑과 전쟁인가요? 거기서 많이들 보셨듯이 판사님이 "3개월 후에 다시 오세요.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시면 그대로 이혼이 성립합니다" 하셨지요.

아, 그런데 그게 3개월이었던가요? 4주 후에 오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이 드라마에선 3개월이라고 하더군요. 봉준수가 그러네요. "3개월 숙려기간이란 게 있다네? 그런 거 몰랐는데." 하긴 알 수가 없겠죠. 이혼 처음 하는 거니까. 저도 사랑과 전쟁인지 평환지 하는 프로 없었으면 숙려기간 그런 거 알 턱이 없었겠죠.

그런데 그건 그렇고 말입니다. 봉준수가 결혼 전에 백여진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사실이 이혼사유가 되나요? 물론 둘이 합의해서 이혼하는 거니깐 판사가 개입할 여지는 없고 그저 서류처리만 해주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그렇잖아요. 뭐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결혼 전에 백여진과 동거를 했던 것도 아니고 말이죠.
 

아, 황태희 입장에선 아주 기분 나빴을 거라고요? 물론 기분 나빴겠지요. 세상에 결혼 전에 사귀던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 좋을 여자가 또 남자가 어디 있겠어요? 아,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 그 상대가 백여진이어서 더 기분 나빴다고요? 그리고 그걸 숨겼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라고요?

예혀~ 이렇게 나가면 세상에 이혼 당할 남자, 여자 어디 한둘이겠어요? 당장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혹시 이혼사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사실은 없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 생각해보세요. 틀림없이 있을 거에요. 그리고 그 사실을 남편이나 아내에게 숨겼을 거에요. 가중처벌의 사유가 되고 이혼사유가 되겠죠?  

황태희와 봉준수는 이혼 안 할 수도 있겠죠. 3개월의 숙려기간이 있으니 아마 그 동안에 이 드라마의 모든 스토리가 전개될 것이고 황태희와 봉준수는 해피한 엔딩을 맞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아마 판사 앞에 나가 그러겠지요. "아, 전에 이혼하겠다고 낸 서류 그거 돌려주세요. 우린 절대 이혼 안 할 거에요."

어쨌든 그런 결론을 이미 예상하고 있는 저로서는 당장 두 사람의 이혼이 그렇게 슬프게 보이지는 않았어요. 인생이란 결국 그런 거다, 이렇게 질곡도 겪고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우리도 모두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하면서 그들 부부를 향해 위안을 던져주었을 뿐이죠.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니 "아니, 저게 무슨 이혼사유야? 저 정도로 이혼할 거 같으면 세상에 남아나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 좀 심한 거 아냐?" 하는 불평이 아니 들 수가 없더군요. 작가가 너무 안이하게 스토리를 짠 거 아닌가 불만이 슬며시 들더군요. 최소한 그래야 하잖아요. 백여진과 봉준수가 뽀뽀를 하다가 들켰다든지 뭐 그런 정도라도.

뭔가 좀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놓고 이혼을 시켜도 시켜야지…. 황태희가 원래 그런 대쪽같은 성미라서 그렇다고요? 아, 그 이야긴 한송이 상무에게서 들었는데요. 황태희가 자존심이 엄청 세서 그걸 건드리면 못 참는다나요? 황태희의 자존심? 무슨 용비늘도 아니고, 내참.

그리고 꼭 이혼 같은 걸 시켜야 드라마가 됩니까? 물론 이해는 가죠. 구용식과 황태희를 엮어서 재미를 좀 만들어봐야겠는데 봉준수와 한집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참 힘든 일이겠죠. 그래서 일단 이혼 시키고 거기다 봉준수를 황태희 집 옆에 세 들어 살게 하면서 복잡한 삼각관계를 만들어보겠다,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그리고 진짜로 재미있을 거 같네요. 연속극이란 게 그렇거든요. 뻔히 벌어질 스토리를 다 알고 봐도 재미가 있는 거, 그게 연속극이거든요. 그래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건 말이죠. 이혼사유를 제대로 만들었어야 한다는 거지요. 이혼사유가 너무 허접하지 않나요? 왕년에 사귀던 사이다, 그걸 숨겨 내 용비늘을 건드렸다, 그래서 이혼?

이건 너무 하지 않나요? 안 그래도 요즘처럼 이혼이 무슨 애들 초등학교 입학시키는 것처럼 다반사가 된 시대에 말이죠. 그런데 이 드라마 있죠. 역전의 여왕. 여기 나오는 남자들 너무 바보 같지 않나요? 완전 여인천하란 생각은 들지 않던가요? 쓸만한 남자가 구용식이 있긴 한데, 그것도 허접이긴 마찬가지에요.
 
결국 애비 잘 만나서 폼 잡는 거지 그 친구도 별 거 아니거든요. 하긴 SK가에 최 뭐시긴가 하는 친구보단 훨씬 낫죠. 인간적이고, 부하직원들 진심으로 대할 줄도 알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는 친구더군요. 아무튼 그 최 뭐시긴가 하는 인간말종들이 대체로 재벌2세의 전형일 텐데, 이 구용식이란 인물은 별나라에서 온 재벌2센가 봐요. 

그런데 최 뭐시긴가 하는 친구가 한방에 1백만에서 3백만원까지 주며 날렸다는 그 매가 야구방망이였다죠? 그러고 보니 일전에 한화그룹의 어떤 분께서도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는 소식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는데. 하여간 이 야구방망이가 늘 문제네요. 야구를 아예 금지시킬 수도 없고. 

이야기가 옆길로 샜네요. 우얐든지간에, 이혼 그거 함부로 남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주장이었습니다. 꼭 시켜야겠거든 합당한 이유라도 만들어주시든지요.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내조의 여왕」이 끝났네요. 섭섭합니다. 사실은 오늘 끝난 게 아니라 어제 끝났지요. 그런데 어제 제가 술을 한잔 하는 바람에 마지막회를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500원을 내고 컴으로 보았습니다. “아유~ 아까운 내 500원”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쨌든 그래서 제게는 「내조의 여왕」이 오늘 새벽에 끝난 셈이 되었답니다. 

역시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듯 결말은 그렇고 그렇습니다. 요란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들을 욕조에 물 빼고 청소하듯 그렇게 정리해야 하는 거니까요. 물 빠진 욕조는 황량하지요. 오늘도 그렇군요. 물 빠진 욕조를 보는 기분… 그러나 뿌듯합니다.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는 기쁨, 천지애 같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보람, 뭐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사실 작년 말에 종영했던 「너는 내 운명」을 보고 난 이후 드라마를 끊었었답니다. 막장드라마로 유명했던 드라마였지요. 막장드라마였다지만 시청률이 엄청났었지요.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리드하고, 다시 방송사들은 그 시청률을 따라 막장드라마를 만들고, 그래서 막장드라마가 대세가 되는 악순환이 사실은 문제로 많이 지적되었었지요.

「아내의 유혹」을 비롯해 많은 드라마들이 막장드라마라는 악평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저는, 글쎄요. 「너는 내 운명」을 따라올 만한 막장드라마는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전무후무하다고 하지요. 하여튼, 「너는 내 운명」이야말로 전무후무한 불후의 막장드라마였다는 게 제 평가예요.


「너는 내 운명」은 자극적인 소재, 비상식적인 설정뿐만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연기수준도 거의 막장이었지요. 심지어는 정애리 같은 쟁쟁한 연기자들의 연기마저도 역겨울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거의 매회 등장하는 반사회적 반인간적 요소들은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저는 그 막장드라마의 신기원을 열었던 「너는 내 운명」이후 드라마를 딱 끊었답니다.

그런데 「내조의 여왕」이 꽤 괜찮은 드라마란 소문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걸 한번 봐?’ 하는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드라마 광이었거든요. 거의 모든 드라마를 다 보았지요. 아마 제가 안 본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뒤지도록 재미없는 것임에 틀림없을 거예요.


결국 다시 유혹을 못 이기고 TV 앞에 앉았는데, 아~ 정말 재미있더군요.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드라마였어요. “Good!” ‘내조’란 다소 봉건적인 소재를 사용하긴 했지만, 전혀 봉건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고요. 여성비하적인 그런 느낌도 별로 없었어요.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저는 그게 진짜 사랑 같더라고요.

「사랑과 영혼」이나 「남과 여」, 「라스트 콘서트」에 나오는 로맨틱한 사랑만 사랑이 아니라 이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생활 속에 진하게 배어 잔잔하게 타들어가는 그런 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저만 감동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동적인 사랑을 느꼈었지요.

그러니까 어제 그저께군요. 딸과 함께 「내조의 여왕」을 보고 있었는데요. 우리 딸애가 또 저를 닮아 그런지 드라마 꽤나 좋아한답니다. 앞부분 조금 보면 거의 뒤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감 잡아버린다는 점에서도 절 쏙 닮았지요. 저로 말하자면, 우리 마누라가 “그냥 드라마 작가로 한번 나가보지” 하고 말할 정도랍니다. 그야 물론 비웃는 말인 줄 잘 알지만…

드라마를 한참 보다가 딸애가 갑자기 그러는 겁니다. “아빠, 우리 편지 쓰기 하자.” 그러더니 꽃무늬 편지지를 제게 한 장 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뭐 대충 “앞으로 말 잘 들어라, 까불지 마라, 오빠하고 싸우지 마라.” 이런 식으로 무성의 하게 적어서 주었는데요. 딸애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이혼하자!” … 헉~ (애가 테레비를 너무 많이 봤나…)

뭐 장난이니까. 그렇지만 좀 심하군요.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 우리 이혼하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남남이다.” 그러자 딸애도 막 웃으면서 그랬습니다. “그래, 이제 우린 남남이다.” 글쎄, 이혼이란 인생최대의 비극이라 할 상황이 우리 부녀에겐 장난거리가 된 것입니다.

마침 TV에서도 천지애와 온달수가 이혼하네 마네하며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딸애의 정색을 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며 진지하면서도 매우 조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나하고는 이혼하더라도 엄마하고는 절대 이혼하지 마라.” “왜?” “그러면 내가 너무 쓸쓸해지잖아.”

우리 딸애는 아홉 살입니다. 아홉 살이지만 드라마의 앞을 조금만 보면 뒤를 읽어낼 정도로 영민한 아이랍니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치른 받아쓰기 시험에서 받은 1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와서 칭찬해달라고 조를 정도로 배포도 큰 아이죠. ‘애늙은이’같은 딸아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한숨이 나오더군요. ‘얘가 이혼이 뭔지 알기는 아는가 보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그때 보고 있던 드라마가「내조의 여왕」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아마 다른, 그러니까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면 저는 참으로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했을 것입니다. 딸애는 TV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빠, 쟤들 절대 이혼 안 한다.” “니가 어떻게 아는데?” “에이~ 다 알지. 쟤들은 진짜로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이혼 못해.”

어젯밤, 딸아이가 술이 취해 일찍 자고 있는 저를 막 흔들며 「내조의 여왕」마지막회 한다며 깨웠지만 저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잠든 새벽에 일어나 홀로 이렇게 그 마지막회를 감상했답니다. 우리 딸애의 예언처럼 걔들은―애들이 어른 보고 쟤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걸 따라하는 저도 참 한심하군요―이혼하지 않았군요. 천지애와 온달수 말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은 제 큰아들이―그래봤자 아들 하나 딸 하나, 둘입니다―수학여행 가는 날입니다. 서울로 간다는군요.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우리 때는 초등학교는 경주로, 중고등학교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어제 저보고 5시 반에 깨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깨울 시간이 다 돼가는군요.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보고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천지애의 본명이 김남주였던가요? 저는 원래 김남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좋아해줄 생각입니다. 훌륭한 드라마, 훌륭한 연기자는 많이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막장드라마를 퇴출시키고 좋은 드라마를 안방에 앉히는 첩경이 아닐까 해서요…  

음~ 이제 아들놈 깨워 수학여행 보내야겠군요. 자기네 학교 운동장에서 6시 30분에 버스가 출발한다니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