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28 김정일군대가 십자기 들고 남침하면 주님의 군대일까? by 파비 정부권 (11)
  2. 2009.05.12 신영철 대법관이 마속? 그럼 이완용은 이순신이다 by 파비 정부권 (19)
  3. 2009.04.23 곽재우가 신선처럼 살다간 망우정에서 by 파비 정부권 (5)
인터넷에서 참으로 민망한 이야기기 떠돌고 있다. 이순신이 괴수란다. 이순신이 사탄이란다. 실로 경악스럽다 아니할 수 없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 맞을까? 혹시 일본인이 한국인을 가장해 퍼뜨린 괴담은 아닐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출처가 ○○○ 순복음대교회라고 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이교도의 종교인 성리학이 판을 치는 사탄의 나라 였다.
이에 노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일본군으로 하여금 징벌하게 하셨다.
이에 가장 앞장 선 장군이 고니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다. 
이순신이 이에 맞서 싸움을 벌였으나 그는 의인이 아니다. 하나님의 군대에 맞선 사탄일 뿐이다.
이순신은 우리 주님의 군대(일본군)의 입장에서 보면 불신자요 적일 뿐이다.
결국 주님의 군대는 괴수 이순신의 목을 치는 영광을 안고 돌아갔다." 


그리고 아래는 직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더 기가 막힌다.

고니시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여기 있는 여러분들은 아마 고니시가 기독교 신자였다는 것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당시 조선은 성리학의 이교도 만행이 극에 달하여 그야말로 '사탄의 국가'였지요.
노하신 하나님께서는 고니시에게 천명을 내리시고 이교도를 정벌하라며
십자군 원정(사탄국 조선)의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고니시는 명을 받들고 조선반도에 상륙하여 이교도를 도륙하고
피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전장을 뚫고 나갔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군대답게 20일만에 이교도 왕국의 수도를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신앙 그 자체였던 고니시와는 달리 대일본군은 믿음을 잃게 되었습니다.
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중국의 마귀들을 불러 십자군을 벌하게 하셨습니다.
결국 고니시의 십자군은 패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았던 고니시 덕에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이교도 괴수 이순신을 도륙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십자군 전쟁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 있는 일이라도
중간에 신앙심을 잃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할렐루야!

사실을 말하자면,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는 기독교인이지만 정확하게 천주교도다. 기독교란 천주교, 개신교, 그리스정교, 러시아정교 등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종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세계사 시간에 우리가 배우는 중세 기독교의 역사는 사실은 천주교와 그리스정교의 역사다. 이때는 개신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종교개혁으로 태동했다. 프로테스탄트라 불리우는 그들의 정체성은 로마가톨릭에 대한 저항이었다. 98개항의 질문지를 대자보로 써 내건 루터의 개혁 요구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적으로 부풀려졌다. 절대군주제를 노리는 국왕과 봉건제를 유지하려는 귀족의 다툼이 가세했다. 부패한 중세 교회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분리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개신교는, 루터교는 로마가톨릭의 전통을 많은 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 성공회도 마찬가지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문제인데, 이들은 확실한 단절을 원했다. 보다 급진적으로 단절하지 못하는 유럽의 개신교에 반대해 이들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들만의 왕국을 세우길 원했을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홍글씨의 배경도 청교도의 근본주의가 아니었을까? 이후 미국에는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등 여러 개신 종파가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그 미국의 선교사들이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개신교를 전파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기독교(개신교)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을 것이고, 이승만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리에 익숙한 개신교의 특성이 교회가 급성장하는데 일조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들의 말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서 그랬을 수도 있겠고. 그런 그들이 가장 경멸하는 존재가 천주교다. 

천주교는 그들에겐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존재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천주교는 이단이다. 심지어 천주교를 사탄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이런 그들이 어째서 갑자기 천주교도였던 고니시 유키나가를 사탄을 응징하러 온 하나님의 군대로 둔갑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천주교인 중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십자기를 앞세우고 우리나라에 쳐들어왔다고 해서 주님의 군대라고 부르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물론 장담할 수는 없다. 천주교라고 해서 개신교처럼 얼 빠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미친 사람은 어디나 한 둘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천주교인 중에 그런 사람을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자칫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이 천주교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도 있지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이순신을 사탄에 괴수로 둔갑 시킨 여호와 하나님의 민족이라는 분들께 진심으로 묻고 싶다. 진실로 주님을 믿는 의인이라고 자처하는 당신들은 만약, 만약에 말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의 군대 하나님의 십자가 군기를 앞세우고 쳐내려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도 주님의 군대인가? 그대들은 인공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환영할 의사가 있는가? 진심으로 묻고 싶다." 

하긴 이렇게 묻는 내가 바보다. 왜놈들이 십자가 군기만 들고 쳐들어와도 주님의 군대라고 환영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같은 민족이 십자가 군기를 쳐들고 남침하는데 환영할 건가 말 건가를 묻는다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이처럼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되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며 계속 그렇게 열심히 믿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다.  

여러분은 아마도 여러분만이 갈 수 있는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아멘.
              파비   

ps; 아래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것을 퍼온 것입니다. 퍼오는 것을 즐기지 않고 해서도 안 되지만, 하도 기가 차서 옮겨 봅니다. 세상 말세라더니… 정말이군요. 참고로, 주님의 군대를 이끄는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편에 선 가토오 키요마사에게 참수 당했답니다. 가토오 키요마사(가등청정)는 고니시와 함께 우리나라를 침략한 선봉장이었죠. 그리고 그는 불교신자였다고 하는군요. 하나님의 군대가 부처님의 군대에게 멸망했다는 그런 이야기죠.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순신이 의인은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56] 예수

번호 133313 | 2007.11.01 조회 271 

 

우리는 너무나 이상합니다.
이순신을 우상화시키는 저희나라 대한민국은 잘못된 우상숭배에 빠져있습니다.
이순신드롬으로 대변되는 허황된 애국이데올로기는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이 세상에 빛날 뿐입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민족이라는 보더 큰 대의로 역사를 바라봐야 합니다.
성서에도 쓰여져 있듯이
의인과 주님앞에 범죄하는 자가 있듯이,
우리는 역사의 위인을 의인과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지어야합니다.

의인이란 주님께서 예정하신 사역대로의 삶을 살아가며,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함에 기여한 분들을 일컫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순신이 과연 의인이었을까요?

 

 

고니시 장군은 왜군 중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그의 수하 군대는 늘 십자가 군기를 높이 들고 조선의 전장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조선군과 맞섰습니다.

이순신은 어떠했나요?

이순신은 우리 주님의 군대 입장에서 보면
불신자요, 적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과연 주님을 알았을까요?
믿음이 있었을까요?
그는 불신자였으며
주님 주자도 모른 지옥권세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야합니다.
우리 나라 장군이라고 무조건 존경합니까?


십자기 앞세우고 순교의 피를 흘리러 오신 분들께
칼을 들이댄 무지한 이순신의 휘하 장졸들 즉,
""저희조상""들 정말 잘못 된 것이죠???

과거와 현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우리나라에 다른 이민족의 침략이 있어도
십자기 앞세우고 전 국민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 쳐들어오면
절대로 총 들이대고 맞싸워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순신은 그리스도적 입장에서 보면 "의인"은 절대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의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올바로 알고,

주님앞에 온전한 자녀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진자료-레디앙, 이창우 화백

신영철이란 이름은 대한민국 사법역사의 오점이다. 법관들에겐 수치스러운 이름이다. 그런 신영철 대법관에게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경고·주의 조처 권고’라는 미온적인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전국의 일선 판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만약 대법원의 의지대로 신영철 파동이 이대로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앞으로 영원히 법관들은 치욕스런 오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자신들의 판결이 정의와 공평으로부터 나왔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선 법관들이 대법원장에게 결단을 촉구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 결단이란 다름아닌 신영철 대법관 스스로의 사퇴를 종용하거나 그러지 아니할 경우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적법절차에 따르는 것이다. 일선 법관들의 움직임으로부터 아직 사법부에서 정의라는 이름이 완전히 축출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잠깐 엉뚱한 시비 하나를 걸고자 한다.


신영철이 마속이라고? 천하의 제갈량이 통곡하겠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신 대법관의 행태는 명백히 재판관여에 해당했다”며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모법을 보여야한다”고 신 대법관의 징계를 거듭 촉구했다고 한다.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읍참마속이라….
우리는 보통 조직 내의 어떤 특정한 사람을 솎아낼 것을 요구할 때 이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자주 인용한다. 그렇다면 마속이란 이 고대의 인물과 신영철을 비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내가 볼 때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비록 마속이 제갈량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공명심에 군사를 움직여 크나큰 실책을 범했다고는 하나 그는 촉한의 가장 뛰어난 장수 중 한사람이고 제갈량이 최고로 아끼는 심복이었다. 가정전투에서 대패한 마속은 거점을 상실해 나라를 위태롭게 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묶어 참하기를 청했으니 그 충성심 또한 가히 천하일절이다. 그러나 지금 마속과 비교되고 있는 신영철이란 사람은 어떠한가? 그는 법관의 신분을 망각하고 권력에 아부한 사람이다.


그가 무엇 때문에 일선 재판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신속한 재판을 독려했을까? 심지어는 판결의 방향까지 유도하는 듯이 인상을 주면서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대법관으로 영전했다는 사실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그런 신영철을 마속에 견주다니…, 마속이 지하에서 들으면 대성통곡을 할 일이다. 제갈량이 이 소식을 들으면 “내 충심에 따른 결단이 신영철 같은 자에게 비유되다니 내 이럴려고 마속을 죽였던가?” 하고 땅을 치며 통분할 일이다. 


‘읍참마속’ 아니라 ‘일벌백계’라고 해야
신영철 같은 아부꾼에게 「읍참」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법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킨 신영철 같은 사람을 「마속」과 비교하다니 어불성설이다. 오로지 「일벌백계」의 심정으로 결단하기를 촉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닌가?
김훤주 기자가 늘 주장하는 것처럼 말을 정확하게 구사하기도 해야 하지만, 적절하게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신영철 대법관 탄핵을 주도하는 일선 법관들의 충심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그들에게 감사한다.


다만, 신영철을 마속과 같은 훌륭한 인물에 견주는 것이 언짢을 뿐이다. 신영철은 법관의 양심을 팔았다. 그는 사법부에 마속이 아니라 이완용에 불과하다. 이완용이 절대 이순신에 비교돼서는 안 되는 것처럼 신영철도 결코 마속에 비교되어서는 안 되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인물이다. 어쨌든 이번 기회가 신영철 같은 인물이 법원에 절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망우정(忘憂亭)

망우정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곽재우 장군이 말년에 은거하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곳이다. 곽재우는 1602년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낙동강을 바라보는 자그마한 언덕 위에 기와집을 짓고 망우정이라 이름 지었다. 이때부터 자신의 호를 망우당이라 하고 세상과 절연한 채 낚시로 세월을 낚으며 신선처럼 살았다고 한다.

그의 행적에 관하여 다소 신비화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를 들여다보면 정말 신선이든 도인이든 되지 않고서는 올바른 정신을 유지하며 살기는 힘들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본다.

1592년은 선조가 왕이 된지 24년이 되는 해였다. 역대 조선의 왕들 중에 선조처럼 무능할 뿐만 아니라 시기와 질투로 좁은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낸 것으로 평가 받는 왕도 드물다. 

“말짱 도로묵”이란 말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는 선조의 품성이 어떠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는 왕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을 갔다. 피난생활의 곤궁함은 왕이라고 해서 피할 수는 없는 노릇. 매일 올라오는 밥상에는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라곤 구경하기 힘들었을 터이다. 

그런데 어느 날, 참으로 맛있는 생선이 반찬으로 올라왔다. 이름이 묵이라고 하는 고기였는데, 감격한 왕은 그날로 그 고기에다 은어란 이름을 하사했다. 뒷날 대궐로 돌아온 왕이 다시 그 고기를 찾아 먹어보았더니 의주행궁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라, 매우 실망한 왕은 이렇게 말했단다. “도로 묵이라 하라!” 그래서 ‘말짱 도로묵’이란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후로  말짱 도로묵이란 “헛수고 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선조는 이렇듯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성격이었던 데다가 의심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난세가 되면 영웅이 태어나게 마련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제일 먼저 의병을 일으킨 사람은 의령 사람 곽재우였다. 곽재우는 남명 조식의 문하생이었는데 조식의 제자들 중에 특히 의병을 일으킨 선비들이 많았다.
 

1789년(정조13년)에 지방유림들이 세운 추모비. 망우정 지붕 너머 낙동강은 세월따라 이리로 흐르다 저리로 흐르다 한다.


곽재우는 다른 장수들과 연합작전으로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전남 담양 출신의 의병장 김덕령과 합동으로 왜적을 크게 물리친 의령 정암진 전투가 유명하다. 또 1594년에는 이순신, 김덕령과 함께 거제 장문포에서 합동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특별히 김덕령과는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아주 절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 김덕령 장군이 역모를 꾸몄다는 무고를 뒤집어쓰고 옥사하고 말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김덕령은 감옥에서 살이 터지고 뼈가 튀어나와 그 꼴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왜군을 벌벌 떨게 하던 의병장의 마지막은 참혹했다. 김덕령 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엔 이순신도 옥에 갇혀 사형 직전까지 갔다. 유성룡의 변호로 겨우 목숨을 건진 이순신은 백의종군했다.

김덕령, 이순신과 연합작전으로 큰 전과를 올리며 그들과 우의를 다지던 곽재우에겐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곽재우 장군도 한때 경상감사 김수로부터 모함을 받아 투옥되었던 적이 있다. 김수는 왜군을 피해 도망만 다니던 자였는데, 곽재우가 세곡을 훔쳤다고 거짓 고변을 한 것이다.

결국 초유사 김성일의 장계로 풀려나긴 했지만, 곽재우 장군이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을 모두 마다하고 이곳에 은거하게 된 연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럼 선조는 왜 이토록 전공이 특출한 장군이나 의병장들에게 모질었던 것일까? 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선조의 소심한 의심병과 공을 세워 민심이 두터워지는 장군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들 말한다. 

의주행궁에서 돌아와 백성들에 의해 시커멓게 잿더미로 변한 경복궁을 바라보는 선조의 심사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면 한편 그럴 듯한 말이다. 그의 눈에는 무력을 갖추고 민심까지 얻은 장수들이 언제든 자신을 권좌에서 밀어낼지도 모르는 위험한 세력이었을 것이다. 말짱 도로묵의 변덕에다 소심한 의심병에 찌든 선조에겐 왜적보다 이들이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망우정 편액


   
망우(忘憂)란 근심·걱정을 잊는다는 뜻이다. 곽재우 장군에게 근심 걱정이 무엇이었을까?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지의 내용이 선조의 미움을 사 합격이 취소되는 불운을 겪은 이후 출사의 뜻을 접었던 장군은 그러나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친 공으로 무려 스물아홉 차례에 걸쳐 벼슬을 제수 받는다.

이중 열네 번은 고사하고 열다섯 번은 출사하였으나 이마저도 곧 사직하고 마침내는 이곳 망우정에 몸을 숨겼다. 여기서도 끝끝내 사정하는 광해군의 청을 못 이겨 두어 번 임지로 나갔으나 곧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 망우정에서 곽재우는 모든 곡기를 끊고 신선처럼 살았다고 한다.  

외손에게 상속된 이 집은 나중에 여현정으로도 불렀다.


곡기를 끊고 사람이 살 수가 있었을까. 물론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아련하긴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위인전에 묘사된 장군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어느 날 저녁 해가 질 무렵,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강을 바라보며 장군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리고 맑은 술을 한 잔 들이킨 다음 그 술을 다시 귀로 쏟으며 앉은 채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어린 마음에도 장군이 참으로 신비롭게 느껴졌었다. 붉은 옷을 입고 적진을 좌충우돌하던 신과도 같은 존재가 강변에 홀로 앉아 맑은 술잔을 들고 신선처럼 마지막을 장식하는 모습은 고고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오늘 망우정에 올라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어쩐지 처량하기만 하다. 

초라한 세칸 짜리 기와집 대청마루 위 편액에 선명한 忘憂亭(망우정), 근심과 걱정을 잊겠다는 저 뜻을 그저 의롭다거나 신비롭게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떨쳐 일어선 장군들 중에 유독 이순신과 곽재우의 공이 제일”이라고 칭송했다. 그런 장군이 고향인 의령에서 꽤 떨어진 이곳에다 집을 짓고 말년을 보낸 뜻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고 고개를 갸웃거려보아도 짐작하기 어려우니 아직 나는 신선의 경지에 오르긴 틀렸나 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