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1.09.27 홍라희가 여사? 이건희도 곧 선생 되겠군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1.04 나의 첫 블로깅,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야 돼" by 파비 정부권 (9)
  3. 2009.06.02 노무현 서거에 신영철 함께 묻히나 by 파비 정부권 (8)
  4. 2009.06.01 살벌한 세상에 읽는 ‘고민하는 힘’ by 파비 정부권
  5. 2008.09.26 조중동, 니들이 범죄집단이지 신문이야? by 파비 정부권 (8)
  6. 2008.04.23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미더" by 파비 정부권 (124)

작년이었던가. 내가 신뢰하는 우리 지역의 모 일간지가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호칭하며 기사를 쓰는 바람에 몹시 불쾌했던 적이 있다. 기사 제목이 아마도 '의령군이 이병철 선생 생가복원 사업을 한다' 뭐 이런 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내 성격에 가만 있었을 리 없었다. 그 신문사에는 친분이 두터운 기자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것이 내 불쾌감의 표출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즉시 내 블로그에 비판 글을 쓰고 그 신문사에 독자투고도 했다.

"이병철이 선생이라고? 이리 나가다간 개나소나 다 선생 되겠다. 이완용 선생 이래봐라. 어울리냐? 하긴 북한정권은 정주영이 한테도 '정주영 선생' 뭐 이러더라만. 그때 노동자들 기분이 얼마나 더러웠을가. 아니 정주영 식으로 표현으로 하자면 뇌동자지. 북한이야 뭐 얻어먹을 게 있어서 정주영이를 선생 반열에 올려줬다고 치고. 신문사 기자는 대체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이병철이더러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지."

왜 이런 케케묵은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가. 오늘 포털 다음 메인에 보니 이건희 씨와 홍라희 씨가 손을 굳게 잡고 어디론가 가는 사진이 실렸다. 이런 거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년의 부부가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은 실로 아름다운 장면이다. 사실은 그렇게 못하는 우리가 문제다. 문제는 다시 기자다. 오죽 기사를 쓸 게 없었으면 이들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해외로 출국하는 사진을 실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별 문제는 아니다. 뭐 그럴 수도 있다. 기자의 눈에는 이들 부부가 움직이는 모양새가 하나의 중요한 기사감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은 부자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마치 자기기 그리 된 양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기자가 이건희 씨 아내를 일러 '여사'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을 일러 '선생'이라고 부르던 우리 지역의 한 기자가 생각났던 것이다. 이병철 선생이라니. 참 이놈저놈 다 선생이더니 이젠 이년저년 다 여사다. 그냥 편하게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씨가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시장점검을 위해 출국하고 있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일까? 이 기사를 다룬 기자가 혹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여사'란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취미가 아니라면 이것은 정말 난센스다.  

그러고 보니 신문사 이름이 머니투데이다. 머니투데이. 그랬군. 돈, 즉 자본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언론이란 느낌이 이름에서부터 팍 온다. 그러니 당연히 존경하는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를 감히 홍라희 씨라고 부르진 못할 게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건 자기들끼리의 사적인 공간에서 그리 하면 될 일이고 공적인 기사의 영역에서 만인을 향해 '홍라희 여사님'을 읊조리는 건 아무래도 기자로서 상식 이하다. 

글쎄 괜히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성경에도 보면 태초에 말이 있었다고 했고 우리 속담에도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같은 말이 있는 것처럼 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홍라희 씨라고 하는 것과 홍라희 여사라고 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두 말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의 뇌를 지배할 정도의 엄청난 차이가. 

기자님들이여. 제발 말을 제대로 쓰자.    
    

▲ 머니투데이


ps; 제가 요즘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쓰는데 갑자기 열 받아서 한번 썼습니다. 열 받은 참에 앞으로 좀 열심히 써야겠네요. ㅋ~ 그리고 참고로 한말씀 더 드리면 옛날 제가 살던 아파트에 어떤 여자분이(그때 겨우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었을 걸로 기억됩니다만) 자기 남편을 칭해 우리에게 말할 때 늘 "우리 남편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남편께서는 지금 안 계시고 어디 나가셨고요" "우리 남편께 직접 말씀드려 보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말해서 우리를 짜증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부녀회에 와서도 다른 여자분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말해 모두를 벙 찌게 했다는...

그런 거죠. 그럼 뭐야. 우리는 모두 당신 남편의 쫄들이란 말이야? 뭐 그런 경우는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요. 글로 소개하니까 생동감이 없지만 이웃 아주머니가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속에 그림을 그려보세요. 영상으로요. 정말 웃길 거에요. 이렇게요. "우리 남편께서는요. 정말 못하시는 게 없고요. 참 훌륭하신 분이에요." 그때 느낌은 밉다기보다는 그냥 귀엽고 어이없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암튼^^ 그 아주머니, 요즘도 그렇게 사시는지는 모르겠네요. 그 아파트를 떠난지가 벌써 10년이 다 돼 가니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대청소하다 발견한 블로그 첫 포스트 제목,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니다"

오늘 새해를 맞아 블로그 대청소를 했다. 2008년 4월 19일 블로그를 개설한 이래 483건의 글을 쓰고 그중 352개의 글을 다음뷰 등 메타블로그에 발행했다. 발행한 글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은 개인적 자료이거나 가족사진, 스크랩한 기사 등 공개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개인창고(개인자료실, 사진자료실)에 보관 중이거나 존재 이유가 없어 사라졌다.  


말하자면 나는 블로그를 미디어로서 활용하는 외에도 개인자료 보관실이나 가족앨범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가끔 메모장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나중에 언제 어디서든 찾아보기가 아주 쉬우니까 매우 그럴 듯한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블로그는 미디어다. 사회를 향한 내 발언의 무게들이 길게 누워있는 모습이 실로 대견하다. 

죽 훑어보니 내가 과거에 이런 생각을 했었나 하는 것도 있었고, 유치한 것도 있었으며,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옳은 말이며 다시 외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생각이 변한 것도 있고, 착오가 있었던 것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옳든 그르든 이렇게 자료가 정리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하나의 역사란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다. 

처음에는 시사글이나 주변 잡기를 주로 쓰다가 차츰 TV드라마 리뷰를 쓰기 시작했는데, TV드라마를 쓰게 된 계기도 실은 시사적 관심 때문이었다. 『너는 내 운명』이란 연속극을 보다가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반사회적, 반윤리적 소재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이 꽤나 어필했다. 다음뷰에서만 65,000여 명이 읽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TV드라마, 시사토론 후기를 가끔 썼는데『내조의 여왕』, 『선덕여왕』을 통해 거의 이쪽으로 길을 바꾸게 됐다. 그리고 사실 나는 블로그를 시작할 때, 답사여행, 영화, 드라마 등 문화관련 블로그를 하고 싶기도 했었다. 

아무튼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1년 반 세월 동안 열심히 블로깅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갱상도블로그의 <김천령>님이나 <천부인권>님, <크리스탈>님처럼 나중에 다시 살펴보았을 때 가치 있는 자료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그런 블로그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거의 다 정리하고 맨 마지막 하나 남은 자료를 보다 문득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감회가 솟아오른다. 거꾸로 정리해들어갔으니 맨 마지막 남은 글 하나란 맨 처음 블로그에 쓴 글이다. 
http://go.idomin.com/1, 넘버가 1이다. 오늘 쓰는 이 글의 주소는 아마도  http://go.idomin.com/484 될 것이다.
 

죄가 추가됐지만 벌은 추가할 수 없다던 4개월 전 집행유예 판결 때도 시끄러웠다. @레디앙(이창우 화백)


처음 올린 글이 <다음> 포털뉴스 메인(당시엔 블로거뉴스나 다음뷰는 메인에 없었다)에 간택(!)되는 영광을 누렸던 것이다. 원래 글의 제목은 『어느 슈퍼아저씨의 나라사랑』이었지만, 다음 편집진이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니다』란 제목으로 고쳐 달았다. 매우 훌륭한 제목이고 지금도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이글은 네 시간만에 5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당시 삼성은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건, 노회찬과 X-파일, 비자금 편법증여, 김용철 전 삼성법무팀장의 폭로사건 등으로 곤욕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역시 삼성이었다. 삼성은 그룹의 존립 위기라고 할 만한 이 사건들을 유유히 헤쳐 나갔다. 아니 빠져나갔다고 해야 더 적확한 표현일 수 있겠다. 아무튼 삼성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금 이렇게 건재하다. 

그리고 얼마 전, 그나마 죄 값 같지도 않던 죄 값의 멍에를 지고 있던 이건희 삼성 회장(전 회장이 아니라 그는 여전히 실질적으로 삼성 회장임이 틀림없다)에게 이명박 정권은 특별사면이란 은사를 베풀었다. 오로지 이건희 삼성 회장 개인만을 위한 특사였다. 나는 이 가당치도 않은 2009년의 마지막 사건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재벌공화국임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오늘 블로그 대청소를 하다가 블로그를 개설하고 처음 썼던 글의 제목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니다." 처음 올렸던 글이라 애착이 가는 글이기도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세태를 확인하는 마음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다. 혹시 이미 읽으신 분이라도 다시 한 번 살펴보아주신다면 고맙겠다.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니더"                             http://go.idomin.com/1

 마트에서 수육용 제주도산 도야지 600g을 100g당 500원에 구입했습니다. 냄비에 물과 된장을 풀어 섞고 다진 마늘과 파, 무를 썰어 넣은 다음 생강이 없어서 못 넣는 대신 단감 반쪽을 싹둑 잘라 넣어 가스렌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먹다 남은 소주도 반병 부었습니다. 아들놈이 옆에서 “아빠, 감은 왜 넣는거야?”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어. 이런 걸 창조정신이라고 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너는 먹지 마.” “......, !” 그리고는 동네 슈퍼에 소주를 한 병 사기위해 쓰레빠를 끌고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갔습니다.


 내가 소주병을 들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으니 주인장 왈, “손님, 뭘 살피시는 김미까?  그거 유통기한 아직   안 지났어요.” 내가 왈, “아, 네. 유통기한 살피는 게 아니고 도수 살피는 겁니다. 몇도 짜린가 볼라고요. 요즘 술이 도수가 너무 낮아서... 19.5도짜리가 제일 높은 거네.”


 “하하 손님, 16도 짜리도 있심다. 요즘  말임미다.  알콜 도수 낮춰가지고 소주회사들 배 터졌슴미다. 주정 적게 들어가니 원가 절감돼서 돈 벌지, 도수 떨어지니 많이 쳐 먹어서 돈 벌지, 여자들도 인자 부담 없이 마신답디다.” 주인장께서 일장 연설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나도 거들었습니다. “네, 나도 어쩐지 요즘 소주 주량이 많이 늘었다 했더니.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더 많이 판다, 이런 말이로군요. 그러면서 부드러운 술 팔아 국민보건에 앞장선다고 자랑도 하고요. 앉아서 비싼 월급 받고 이런 거만 연구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요즘 삼성 문제로 시끄러운데요. 바로 이런 게 문제에요. 소비자들, 국민들, 일하는 사람들 등골 빼가지고 이런 잔머리 굴리는 놈들한테 수십억씩 연봉 바치고, 뇌물 바치고 하니 사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자 슈퍼 아저씨,  내 말을 잽싸게 끊더니  침을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슈퍼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도, 그건 아님미더. 잘 하는 놈은 더 많이 주고 못하는 놈은 굶어 죽어야 됨미더. 그게 경쟁사회고, 그래야 나라가 발전 함미다. 김용철인가 하는 그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완전 파렴치한 놈 아임미까. 삼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으예......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미더...... (중략) 삼성에서 이건희 다음이라카는 이학수 실장 있다 아임미까. 요 옆에 밀양 사람 아임미까. 마중 출신 아이요. 그라고 삼성기획실에서 실장 다음 차장이라카는 김인주 사장인가 그사람도 우리 마산(마중, 마고 출신)사람 아임미꺼. 이 사람들 얼마나 대접받는지 암미까. 삼성이 그래서 잘하는 김미다...... (후략)”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냄비는 들끓고 있을텐데  우리의 슈퍼엉클 열변이 지칠 줄도 모르시고, 아 열라 불안해지기 시작하네.퍼 아저씨가 숨고르기를 위해 잠시 멈춘 순간, “아저씨, 오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어유 춥다.” 냅다 집으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맛있게 익은 돼지수육을 왕소금에 찍어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드는 생각.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치러지던 날, 저는 중리 삼거리의 한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함안에서 몇 분의 노동자들을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7시를 전후하여 만나기로 했는데 그때 시간이 6시를 갓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도 때울 겸 중국집으로 들어갔지요.


중국집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아저씨 두 분만 계셨는데, 두 사람 모두 텔레비전에 정신을 팔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가 연화장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노란 종이비행기가 영구차 위로 날고 오열하는 사람들도 보이고, 화면은 온통 검은색이었습니다. 아저씨는 한숨만 내쉬면서 들어오는 손님―저 혼자였습니다만―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노무현의 입속으로 들어가던 것은 결국 아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고 함.


아저씨가 아주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 절로(저기로) 가야되는 기라. 그기 운명인기라.” 아주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마, 쓸데없는 소리 말고 조용히 보이소.” 그때서야 저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주인아저씨인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손님이던지 아니면 옆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놀러 온 사람으로 생각했었지요.


물이라도 가져다줄까 하고 한참을 기다리던 저는 짬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아줌마, 짬뽕 하나 해주세요.” 아주머니는 말없이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그러나 얼굴에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채 몇 분도 걸리지 않아 짬뽕 한 그릇을 말아왔습니다. 텔레비전은 울음바다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을 침울하게 응시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잠깐 통화해도 됩니까?” “아, 네.” “그기 말입니다. 내, 검토해보니까, 기업회생절차 결정을 한 날짜가 아니고 그 앞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날짜가 기준이 되겠네요. 그러면 노동부에 체당금 신청하는 데는 좀  더 유리한 기지요?” 체불임금 문제로 상담을 했던 노동교육원 상담실장님으로부터 온 전화였습니다.


그러자 한번도 제게 얼굴을 돌린 적이 없던 주인아저씨가 쌍심지를 켠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빽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봐요. 전화 하려면 밖에 나가서 하시오. 지금 이 장면에서 당신 떠드니까 하나도 안 들리잖아.” 미안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굽실거렸지만, 주인아저씨의 노기는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고.


그렇지만 짬뽕을 내버려둔 채 밖에 나가 전화하기도 그렇고 전화를 끊을 수도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섯 명의 노동자들이 떼인 거의 1년 치에 달하는 임금과 10년 치가 넘는 퇴직금도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산 사람은 살아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부랴부랴 짬뽕을 비운 저는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수고하이소.” 그러나 두 사람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내 돈 내고 음식 사먹고 이런 대접 받아보긴 생전 처음일세, 그려.’ 아마 전화가 걸려왔던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이었나 봅니다.


체불임금 때문에 만나자고 했던 분들 중 한분은 제가 잘 아는 선배입니다. 상담을 끝내고 헤어진 후, 그 선배와 중리에서 방앗간을 하는 한사람 그리고 창원의 자그마한 공장에 다니는 선배가 또 한사람 뭉쳐서 어느 대포집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노무현 이야기에 빠져있었습니다. 간간이 이명박 욕을 섞어가면서 말입니다. 죽일 놈이라고…


노무현 서거의 충격이 상상 이상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의 아성이라고 하는 경남 마산에서조차 이런 정도라면 다른 지역은 어떨까요? 다른 건 몰라도 노무현 대통령이 인생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가 재임 중 펼쳤던 신자유주의 정책, 구체적으로 한미FTA에 격렬하게 반대하였지만, 그의 인품을 존경했다고 블로그에서도 몇 차례 밝힌 바가 있었지요.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 모언론사 기사에서 인용.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그때, 온 나라가 국상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을 그 시간에, 대법원에서는 역사적인 하나의 판결이 무관심속에 해치우듯 처리되었습니다. 바로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표결결과는 6:5였습니다.

6:5! 이 정말 아이러니한 숫자가 아닙니까? 불과 열흘전만 해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의 목소리가 전국을 흔들었고, 인터넷에는 그를 성토하는 글들이 물결쳤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온 국민이 비탄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악마의 웃음을 흘렸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삼성재판에 태연히 법복을 입고 들어갔겠지요.


그리고 그자가 이건희의 무죄에 표를 던졌을 거라는 건 불문가지일 것입니다. 그자가 그토록 뻔뻔한 얼굴을 하며 쪽팔림을 무릅쓰고 버텼던 이유가 삼성 때문이었을까요? 김두식 교수(그는 검사였다)가 쓴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어보면 대법관이란 자리가 법조 최고의 명예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퇴임 후 엄청남 돈이 보장되는 자리이기 때문에 선망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엄청난 돈을 보장해주는 최고의 기업은 역시 삼성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그 시각에 해치우듯 처리된 이건희에 대한 무죄판결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법적 타당성조차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영철, 그자는 우리가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할까요? 그래서 이 전례가 없는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여러분,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자의 음흉한 얼굴에 악마와 같은 미소가 번지는 걸 참고 본다는 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 아니겠습니까.     pabi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내가 이 책 『고민하는 힘』을 다 읽은 것은 낙동강으로 도보기행을 떠나기 위해 탔던 차 안에서였다. 이미 절반 이상을 읽었던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배낭에 넣고 시외버스를 탔던 것이다. 경북 봉화와 안동의 경계지점 어느 곳이었을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5시 30분. 


절밥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위에는 온통 풀로만 만든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국도 반찬도 모두 풀이었다. 쌀도 결국 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강변 둑방에서 풀을 뜯는 소가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허기가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니 주지스님께서 차 공양을 해주신다고 한다.


아직도 하늘에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걱정이 태산이다. 우산도 없고 우비라고 해야 천 원짜리 허접이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걱정되었다. 캐논 450D. 낙동강을 위해 구입한 재산 1호다. 그러나 하늘은 내 걱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계속 비를 뿌려대었다. 그러다 시계바늘이 7시를 향해 다가가면서 서서히 빗방울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우리는 출발했다. 주지스님께서 친히 단천리 비경에서부터 윷판대를 거쳐 도산서원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한다. 길잡이가 되어주시겠다는 뜻이리라. 낙동강을 따라 두 시간여를 걸어 우리는 이육사기념관에 도착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기념관 바로 위에 있는 윷판대를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윷판대는 장관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뱀처럼 휘어들어오는 낙동강. 그 위에 펼쳐진 단천리의 아름다운 벼랑바위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두려운 쾌감이 몸을 휘감아온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이후부터 우리의 낙동강 도보기행은 엉망이 되었다. 형식상으로야 별일 없다는 듯 그대로 진행되었지만, 이미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개중 몇몇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 전례가 없는 사태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살벌한 세상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지금의 일본을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어떤 색이 될까요? 나는 희미한 납색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 눈이 어둡기 때문이며, 그래서 비관적인 이미지를 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급속도로 진행되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경제력의 쇠퇴, 막대한 재정적자, 정치적 폐쇄 상황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가족의 연대가 강하고 사람들 사이의 정을 실감할 수 있다면 고립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겠지요. 즉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 커뮤니케이션이 상호 신뢰에 의해 지탱되고 그것이 각 개인의 정체성에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경제적 곤란이나 정치적 부정이 횡행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희미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는 고립감과 시기심이 가득하고 꿈과 희망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이 <글을 마치고>에 쓴 말이다. 그는 이 책을 매우 부드러운 어조와 친절한 화법으로 썼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일본인들―그는 재일한국인이지만, 역시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이다―은 이렇게 친절한 어법을 구사하길 즐긴다고 들었지만,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옮긴이의 온화한 성품 탓일까?”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행했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마음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읽었던 ‘에세이’ 부류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그런 느낌으로 읽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강상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고민하기―혹은 고민하는 훈련을―위해 정신세계의 지평을 넓히라든가 하는 따위의 에세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끌어들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0년 전은 오늘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다. 오늘날 우리는 뉴욕에서 워렌 버핏이 하는 말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해석까지 덧붙여 접할 수 있는 좁은 지구촌 시대를 살지만, 그때는 확실히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동양의 끝자락과 서양의 끝자락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장치는 당시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 둘은 생각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선 태도 또한 닮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강상중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적 혼돈 상황이 오늘날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시도를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장기불황과 내란 상태로 어지러웠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다른 나라로 몰려갔으며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른바 제국주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는 조정되었으나, 지금 세계를 바라보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고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본주의는 타파되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으며 자유는 무한히 확대되었지만, 그 자유는 인민의 것으로 되지 못하고 시장의 힘에 속박되었으며 자본이 독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강상중은 100년 전의 세기말적 상황과 오늘의 세기말적 상황이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백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 했”다.


그리고 강상중은 고민하는 인간이었던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섞어 ‘고민하는 힘’에 대해 예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풀어쓰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아홉 가지 주제 즉, 자아, 돈, 지성, 청춘, 믿음, 직업, 사랑, 죽음, 늙음에 대하여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의 고민을 빌어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고민에서 벗어날 것인지, 또는 고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앞에 소개한 <글을 마치고>에서 저자가 표현한 것에서 보듯이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보여주듯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살벌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국가는 인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그 인민이 향유해야할 자유와 민주는 시장의 힘에 이끌려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가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다. 국가는 바야흐로 자본을 위한 존재로 된 것이다. 반면 보다 값싸고 유연한―혹은 편리한―비정규직은 넘쳐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있다’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있다’라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몇 십 년 동안의 노력은 그러나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저자는 통렬히 비판한다. 일본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 수상쩍은 그림자를 확실히 보지 않았는가.


과거 독재권력의 충직한 개 노릇을 했던 언론들, 구체적으로 조중동은 이제 자유와 민주란 바람을 타고 자본의 이름으로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검찰과 경찰,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도 자본의 하수인이 되고자 스스로 명단에 이름을 집어넣기에 바쁘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그 시각에 하필 대법원이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선물한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늘 그렇게 하겠지만, 먼저 서문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읽어보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저자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분명히 짚어 본문 책장을 넘긴다면 나침반도 없이 큰 바다에 나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부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독자들은 서문을 대충 읽거나 아니면 생략함으로써 마치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낚시꾼이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을 때 느꼈을 불평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물론 이 책은 앞서 말했듯 빠른 물살이 지나가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그런 기쁨은 없다. 세상을 향한 냉혹한 비판과 주장도 없고 대단한 지혜를 뽐내는 그런 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에 돛단배 하나 띄워놓은 것 같은 그런 책이다. 그러나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그리하여 저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독자라면 수평선 저 멀리 떠오르는 빛나는 별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 별들은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독자에게 노를 저어 수평선을 지나 피안에 닿을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고민하는 힘’을 발휘하며 이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했을, 또 늘 그렇게 하기 위해 분투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강자에게 절대 굴하지 않았으며, 약자에게는 늘 온화한 웃음과 위트로 그가 좋아했던 노래가사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오길 염원했을 그를 추억하며…      파비

ps; 원래 이 서평은 알라딘 리뷰와 이 블로그에 진즉 올렸어야 하나 낙동강 도보탐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특히 노무현의 죽음은 거의 진공상태에 빠진 듯한 무력감을 가져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하기도 싫었습니다. 한동안 리듬이 완전 깨졌습니다. 알라딘과 티스토리에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시의라는 것이 있을 텐데 늦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한 권이 밀리는 곤란함이 생겼습니다. 별로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는 포스팅이긴 하지만, 이 시대가 자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란 생각은 확실히 듭니다. 하필이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리기도 하면서 고민이 더 많았던 책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은 노회찬 전 국회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신학림 기자를 초청했다. 신학림 기자는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이며 현재는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과 '언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미디어스'라는 인터넷 언론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분은 한마디로 자신을 신문을 위장한 범죄집단 족벌언론과의 싸움꾼이라고 소개했다. 강연 제목부터 “MB정권과 언론으로 위장한 범죄집단, 족벌권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였다. 이 제목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대단한 싸움꾼인지 알 수 있었다.

신기자는 서두를 족벌언론과 재벌과 정치권력의 가계도를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가 그려대는 가계도는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재벌과 언론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건 상상 밖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안에 별개로 존재하는 씨족집단이 있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신기자의 설명처럼 경제5단체장과 대통령과 총리가 모여 회의를 열면 바로 ‘가족회의’요 ‘사돈회의’가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과 총리와 삼성, 엘지, 현대 등 재벌가와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언론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었다. 특히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과 이건희의 장인이 된 홍진기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참으로 언어도단의 역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진기는 친일부역자로서 해방이 되자 처벌이 두려워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 그런 그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정권을 잡자 귀국하여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으로 화려하게 재기하게 되었는데, 다시 3·15와 4·19혁명 당시 발포명령자로서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4·19혁명 때 수도권에서만 무려 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그가 지은 죄과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씻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이병철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경북 칠곡 출신의 경북고 대부로 통하는 신현확이었다. 신현확은 전두환 일파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부총리였으며 최규하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도록 종용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병철은 신현확의 조언에 따라 감옥에 있던 홍진기를 면회하면서 가까이 지내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 두 사람은 아들과 딸을 혼인시켜 사돈지간이 됐다. 조중동의 일원인 중앙일보가 삼성재벌의 신문이고, 홍진기의 아들이며 이건희의 처남이 사장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학림 기자는 말했다. 그럼 왜 조중동을 범죄집단이라고 하는가? 바로 탈세와 투기, 감금, 폭행, 성적 범죄까지, 우리가 입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추악한 범죄들이 이들과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원래 친일경제단체 대정실업친목회를 배경으로 창간된 조선일보를 금광으로 큰돈을 벌게 된 방응모가 조선총독부와 밀약을 통해 인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문화정책을 펴던 총독부가 방응모의 친일서약에 조선일보를 넘겼음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조선일보가 이후 해방될 때까지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을 부르짖었음을 모르는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조선일보는 해방 후에도 자유당정권, 다시 공화당정권으로 말을 갈아타가며 추악한 권력을 유지해 왔다. 방응모의 손자인 방일영은 ‘밤의 대통령’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서슬 퍼런 유신시절에 누가 감히 대통령을 사칭할 수 있었겠는가?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붙여준 별호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뻔질나게 요정에서 놀던 사이로 하루는 박정희가 그랬다는 것이다.

“임자,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임자가 대통령이야!”

물론 이런 이야기는 야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야사가 아니라 진실이란 사실도 모르는 이는 없다. 박정희의 밤의 행각에 관해서는 ‘배꼽 밑의 일에 대해선 논하지 말라’던 그의 호탕함만큼이나 인구에 회자되는 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호탕한 방탕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방일영이 2003년에 사망하자 그의 세(네?)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난 2녀1남이 친자확인소송에서 승소하고 재산분할청구소송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현 조선일보 사장인 방상훈은 자기 집안의 추악한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배다른 동생들을 장례식장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아마도 그 일은 자기가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이들 조중동과 같은 족벌언론이 어떻게 권력과 재벌과 더불어 거미줄을 쳤으며, 어떻게 치부를 하고, 어떤 추악한 밤의 역사를 만들었는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것을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심장에는 주름만 늘어날 것이고 건강만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나 같은 시골 촌부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 탓도 있을 터이다.

이 정권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히틀러


그러나 서글픈 일은 이들 정권과 재벌과 언론의 수구반동복합체(이건 신기자가 만들어낸 말로써 미국에 군산복합체가 있다면 한국에는 수구반동복합체가 있다는 비유를 들었다)인 족벌권력이 이 정권을 통해 한국사회를 영구히 장악하고 지배하기 위한 방송장악 음모를 하나하나 착실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싶다고 해서 또는 무력하다고 해서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현 정권은 지상파TV와 종합편성PP(필자주; 종합편성프로그램공급채널),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재벌의 진출을 합법화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여기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없애고 새로운 방송광고대행사(미디어랩, Media Rep)를 만들어 통제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 현 정권의 계략인 것이다.

원래 코박코(KOBACO)는 전두환 정권 때 언론 통제를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언론의 민주화와 독립성 쟁취에 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아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제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 이명박 정부가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신학림 기자의 설명이 진행될 때마다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명박, 정녕 그는 스스로의 생각처럼 방송 빼고는 거칠 것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과거 건설사 사장 시절의 불도저식 저돌성으로 못 밀어붙일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이지만, 역시 방송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여론을 장악하지 못하고선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또한 역으로 대운하, 민영화 등 난관에 봉착한 이 정권의 모든 친재벌 정책들도 방송만 장악하고 나면 일거에 해결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학림 기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너무 어지러워 두뇌의 회로가 타버리는 것만 같았다. 정리도 안 되고 혼란스럽기가 그지없다. 지금은 21세기며 민주주의 시대이다. 19세기도 아니고 20세기 초 군국주의 시대도 아니다. 히틀러도 이미 죽었고 뭇솔리니도 없다. 그런데 왜 자꾸 히틀러가 생각나고 그의 충직한 선전장관이며 여론조작의 귀재 괴벨스가 생각나는 것일까?

오늘 포스팅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길고 정신없다. 죄송한 마음 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를 지배해온 족벌권력을 제 정신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을 이해하는 모든 분들의 이해가 있으리라 믿는다. 언제 꼼꼼히 정리한 강연노트를 시간 내어 깔끔하게 정리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많은 내용이므로, 짧게 잘라서 시리즈 형식으로라도 다시금 포스트에 올리고픈 생각이다. 족벌권력 가계도도 그려 보이고 싶다. 정말 모두가 알아야하고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들이다.

신기자는 조중동과 같은 추악한 집단과 싸우는데 두려워할 일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부도덕한 집단을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느냐는 것이다. 싸우다가 부닥치면 자기 핑계를 대라고 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겁 없는 사람을 여럿 보아왔지만, 이런 사람도 그리 흔치 않으리라.

다음 신학림 기자의 말로 끝맺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노무현의 좌절감의 표시였든 재벌에 대한 대국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든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기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주류에서 출발한 노무현이 큰 틀에서 보아 대부분의 정책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태생이 다르고 출발부터가 다른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지상과제는 방송장악이다. 운하사업도 한미FTA도 방송장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로지 방송장악이다. 지상파 방송만 장악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힌 최시중의 임무도 바로 지상과제인 방송장악이다.

한마디로 이 싸움에 한국 사회의 미래가 걸려있고 노동자, 서민 대중의 삶이 걸려있다. 이명박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나마 형식으로 취했던 국민을 섬기겠다, 소통하겠다는 자세가 180도 달라질 것이다.”

2008. 9. 25 경남도민일보 주최 <신학림 기자 초청강연회>에 다녀와서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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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슈퍼아저씨의 나라사랑

 마트에서 수육용 제주도산 도야지 600g을 100g당 500원에 구입했습니다. 냄비에 물과 된장을 풀어 섞고 다진 마늘과 파, 무를 썰어 넣은 다음 생강이 없어서 못 넣는 대신 단감 반쪽을 싹둑 잘라 넣어 가스렌지에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먹다 남은 소주도 반병 부었습니다. 아들놈이 옆에서 “아빠, 감은 왜 넣는거야?” 걱정스러운 듯 물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어. 이런 걸 창조정신이라고 하는 거야. 혹시 모르니까 너는 먹지 마.” “......, !” 그리고는 동네 슈퍼에 소주를 한 병 사기위해 쓰레빠를 끌고 찬바람을 맞으며 내려갔습니다.


 내가 소주병을 들고  여기저기 살피고 있으니 주인장 왈, “손님, 뭘 살피시는 김미까?  그거 유통기한 아직   안 지났어요.” 내가 왈, “아, 네. 유통기한 살피는 게 아니고 도수 살피는 겁니다. 몇도 짜린가 볼라고요. 요즘 술이 도수가 너무 낮아서... 19.5도짜리가 제일 높은 거네.”


 “하하 손님, 16도 짜리도 있심다. 요즘  말임미다.  알콜 도수 낮춰가지고 소주회사들 배 터졌슴미다. 주정 적게 들어가니 원가 절감돼서 돈 벌지, 도수 떨어지니 많이 쳐 먹어서 돈 벌지, 여자들도 인자 부담 없이 마신답디다.” 주인장께서 일장 연설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나도 거들었습니다. “네, 나도 어쩐지 요즘 소주 주량이 많이 늘었다 했더니. 더 싸게 만들어서 더 비싸게 더 많이 판다, 이런 말이로군요. 그러면서 부드러운 술 팔아 국민보건에 앞장선다고 자랑도 하고요. 앉아서 비싼 월급 받고 이런 거만 연구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 발 더 나갔습니다. “요즘 삼성 문제로 시끄러운데요. 바로 이런 게 문제에요. 소비자들, 국민들, 일하는 사람들 등골 빼가지고 이런 잔머리 굴리는 놈들한테 수십억씩 연봉 바치고, 뇌물 바치고 하니 사회가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자 슈퍼 아저씨,  내 말을 잽싸게 끊더니  침을 튀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슈퍼 장사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지만도, 그건 아님미더. 잘 하는 놈은 더 많이 주고 못하는 놈은 굶어 죽어야 됨미더. 그게 경쟁사회고, 그래야 나라가 발전 함미다. 김용철인가 하는 그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요. 완전 파렴치한 놈 아임미까. 삼성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으예......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줘야 됩미더...... (중략) 삼성에서 이건희 다음이라카는 이학수 실장 있다 아임미까. 요 옆에 밀양 사람 아임미까. 마중 출신 아이요. 그라고 삼성기획실에서 실장 다음 차장이라카는 김인주 사장인가 그사람도 우리 마산(마중, 마고 출신)사람 아임미꺼. 이 사람들 얼마나 대접받는지 암미까. 삼성이 그래서 잘하는 김미다...... (후략)”


 가스렌지에 올려놓은 냄비는 들끓고 있을텐데  우리의 슈퍼엉클 열변이 지칠 줄도 모르시고, 아 열라 불안해지기 시작하네.퍼 아저씨가 숨고르기를 위해 잠시 멈춘 순간, “아저씨, 오늘 말씀 참 잘 들었습니다. 날씨가 엄청 춥네요. 어유 춥다.” 냅다 집으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맛있게 익은 돼지수육을 왕소금에 찍어 소주를 한 잔 들이키며 드는 생각.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200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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