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4.15 군항제 끝난 진해 벚꽃장의 마지막 장관 by 파비 정부권 (3)
  2. 2009.04.22 화왕산 참사에 쓸쓸한 낙동강유채축제 by 파비 정부권 (4)
작년에는 진해 벚꽃장을 다녀왔습니다만, 올해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이 마침 아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서 함께 진해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출발하기 전에 우리 집 앞 창원천 변의 벚꽃을 다시 찍어보았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앞에 이곳 사진을 몇 장 포스팅했었지요. 활짝 피기 전 과 핀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꽃이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목련은 완전히 떨어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군요.  


진해여고 앞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곳도 벌써 꽃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바람도 무척 심하게 불어 꽃잎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는데 추풍낙엽이 아니라 춘풍낙화였습니다. 낙엽은 생을 마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이지만, 낙화는 생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라 낙화란 표현보다는 다른 말을 써야 할 듯싶군요.

그럼 뭐가 있을까요? 춤출 무를 써서 무화? 에이, 그것도 아니군요. 그냥 낙화로 가죠.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으니 그에 맞추면 낙화가 더 어울릴 듯싶네요.


진해여고 앞 벚꽃길이 시작하는 곳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요. 읽어보니 진해에 벚꽃을 심은 유래는 일제 해군이었는데, 이유는 그들의 생명경시사상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경시사상? 아, 가미가제를 말하는 것이구나, 웬 생명경시사상을 좋아해 벚꽃을 심었나 했네요. 

생명경시사상이란 다름 아닌 자기 목숨을 버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다, 뭐 그런 의미였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군에 자원하면서 지원서에 그렇게 썼다죠? "사쿠라처럼 살다가 사쿠라처럼 죽겠습니다." 그는 정말 사쿠라처럼 살다 사쿠라처럼 죽었을까요?

해방 이후 벚나무가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주민들이 부러뜨리기도 하고 베어 불쏘시개로도 쓰고 해서 일제가 심은 10만 5천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1960년대에 다시 도시정비를 하면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하여 심은 것이 오늘날의 진해 벚꽃장을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당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한 것은 왕벚나무의 원래 원산이 제주도임을 한국의 식물학자들이 밝혀내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빨리 자라고 별다른 병충해가 없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35만여 그루가 진해에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벚꽃 아래 잘 정비된 개울에 핀 노란 유채꽃이 장관입니다. 연분홍빛 벚꽃과 잘 어울리네요. 개화시기도 같고, 이런 걸 뭐라고 하지요? 저는 무식해서 금상첨화란 말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러나 금상첨화는 적당한 비유가 아닌 것 같고요.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에 빗댄 적절한 비유가 없을까요?


진해여고에서 시작해 죽 뻗은 길이 한참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올라가면 끝인 줄 알았더니 벚꽃과 유채로 닦여진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유채꽃 뒤로 반짝이며 개울 위를 흘러가는 벚꽃잎이 보입니다.  


위로 올라가니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네인데도 100m 아래와 그 위 북쪽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진해여고 벚꽃길 끄트머리에 있는 환경생태공원입니다. 우연히 진해의 대표 블로거 실비단안개님을 만났는데 이곳을 꼭 가보라고 강권해서 들어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꽃만 보다가 옆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진해 사람들이 왜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을 때―어이구 이거 또 마창진이라고 했다가 민언련의 어떤 분으로부터 창마진이라고 안 했다고 비판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언련이 무엇 하는 곳인가 했더니 정부에서 창마진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 그렇게 부르도록 계몽하는 곳이었나 봅니다. 하긴 뭐 저는 경남도민일보도 아니고 그냥 개인 블로거에 불과하니까―마산은 거지 같다고 통합대상에서 빼자고 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아무튼 진해가 마산보다는 살기가 좀 낫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수지(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래의 번호표를 하나씩 돌리는 겁니다. 한 바퀴 돌면 1, 두 바퀴 돌면 2, 이런 식으로요. 꽤 좋은 아이디어네요.


호수변에 누군가가 그림, 아니 사진인가? 어쨌든 전시를 해놓았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비닐을 씌워 놓았습니다. 그래도 감상은 잘 했습니다. 풍경도 좋고, 그림도 좋고, 모든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도 시원하겠습니다. 마산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늙어죽을 때까지 떠나고 싶지 않을 텐데. 사실 한때 그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 앉으면 이런 말들이 인사인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부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창원에 다 사니까.  

"너 아직도 마산 사나?"


물이 좋아 물가로 휘어진 나무인가 봅니다. 그 나무 앞에 포즈를 취한 친구는 제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어릴 때는 꽤나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함안 군북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적벽은 아니라도 그 비슷한 절벽 아래 차를 세워두고 그 높이에 감탄하며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절벽은 바위 틈새 이곳저곳에서 물이 새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요. 이제 갓 네 살을 넘긴 아들 녀석이 말문을 뗐습니다. "바위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고 있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녀석이 정말 시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또 우리 집에 걸린 그림 중에 북한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것으로 믿고 있는 금강산 그림 한 점이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운무 위를 날고 있는 세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저 그림에 새가 몇 마리냐?" 하고 물어보았지요. 나름 셈을 가르친답시고 그런 것이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99마리."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99마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여기 세 마리밖에 없잖아."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머지는 구름 속에 들어가서 안 보이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왜 구름 속에 숨은 나머지 새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이제 아들의 눈에는 새가 세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물론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바위도 없습니다. 시인 같이 생각되던 어린 아이는 이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승호딕플 사내라고 조르고, 말은 뒤지게 안 듣습니다. 시는 고사하고 책 한 줄 읽기를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보듯 하니, 이거 원.


꽃터널, 사진사들은 꽃들이 만드는 장관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사진사는 허리가 아픈지 가끔 허리를 돌려가며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같다 대고 구도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 차례 바람이 일기라도 하면 꽃잎들은 사방에 휘날릴 것이고 그때가 사진사에겐 셔터를 누를 최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저렇게 한곳에 진을 치고 셔터를 누를 기회를 기다릴 만큼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어떨 땐 그런 사진사들을 보며 태공망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160년을 살았는데 후 80년을 위해 전 80년은 그저 낚싯줄만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고 합니다.

그게 진짠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 흉내 내다간 속 터져 죽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꽃구경은 참 잘했습니다. 진해여고 앞만 한 바퀴 도는데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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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진해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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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금 창녕 낙동강 변은 온통 샛노란 물결로 넘실대고 있습니다. 창녕군 남지읍은 2006년부터 낙동강 변의 드넓은 둔치에다 유채꽃밭을 조성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민가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상습적인 침수로 피해가 극심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녕군에서는 남지에 새로운 이주단지를 만들어 둔치의 주민들을 옮겨가게 하고 이곳에다 체육공원과 광활한 유채단지를 조성한 것입니다남지 낙동강 둔치의 노란 유채꽃 물결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습니다. 매년 여름 장마에 시달리던 상습침수지역이 놀라운 변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에서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것입니다.
 

 낙동강유채축제. 창녕군이 2006년부터 매년 4월말에 개최하는 축제의 이름입니다. 작년까지 세 차례 열렸으니 올해는 4회째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유채꽃축제가 열리지 않습니다. 낙동강용왕대제를 시작으로 각종 공연과 전통행사, 문화행사, 체육행사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던 이곳이 올해는 썰렁합니다.

 

창녕군은 특별한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낙동강유채축제를 열지 않음을 공지하면서 내년에는 꼭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화왕산 참사로 어수선한 군청의 사정을 그저 축제위원회의 사정이란 간단한 말로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참담하고 고통스런 그 심정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채꽃은 예년과 다름없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이는 노란 물결이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유채꽃 물결이 출렁이는 옆으로는 태백산에서부터 천리를 달려온 낙동강이 굽이쳐 흐릅니다. 그 위로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남지철교가 낙동강과 유채꽃밭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유채꽃 사이를 누비는 벌과 나비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운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강변은 그러나 적막하기만 합니다. 화왕산 화마의 여파가 이곳 낙동강에도 불어 닥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채꽃밭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도 왠지 힘이 없어 보입니다. 오직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만이 피 같은 물을 출렁여 힘내라고 박수를 보내는 듯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잘해보려다 도리어 화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창녕군은 큰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 교훈의 대가로 지불한 쓰라린 고통이 참을 수 없을지라도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황량하도록 쓸쓸한 낙동강유채축제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년 오늘 이 드넓은 노란 유채꽃 물결 속에 넘실대는 사람들의 물결을 함께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꽃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벌과 나비가 칭송해주지 않으면 존재이유가 없듯이 유채꽃밭이 제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을 즐겨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불의의 사고에 희생된 분들의 억울한 넋을 생각하면 쉽사리 다시 축제를 열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분위기도 어수선할 것입니다. 의기소침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자숙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내년 오늘
 남지의 낙동강가에선 다시금 희망이 노란 꽃물결에 넘실대는 유채축제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걸린 달빛에 빛나는 유채꽃의 향기에 취해 터져나오는 노래소리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거리 장터에서 새어나오는 고기굽는 냄새와 파전에 동동주 마시는 소리도 그립습니다. 그러자면 하루 빨리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도 필요하겠지요.   

오늘도 세상 모든 영욕, 인간들의 교만과 근심과 걱정을  다 안고서도 지칠 줄 모르는 낙동강은 변함없이 침착하고도 굳센 물결을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실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저 낙동강의 도도하고 줄기찬 바다를 향한 집념입니다. <파비>


낙동강.강변에 유채꽃 단지가 보이고 그 뒤로 남지철교가 보인다.

지앙담. 제왕담의 남지식 발음이라 한다.

1933년 완공된 남지철교. 이편 남지쪽에는 웃개나루가 있었다 한다. 그럼 저쪽 함안에는 아랫개나루?

단일지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유채단지. 전체면적이 12만평이라고 한다.

유채꽃에 붙은 벌이 바쁘게 작업 중이다.

유채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 오히려 한적한 이때가 연인들에겐 그럴듯한 데이트 장소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