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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9 아비정전, 어긋난 시간의 노예 by 파비 정부권 (1)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을 보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는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가 처음이었다. 이후 일대종사를 이해하기 위해 동사서독을 봤고 다시 왕가위를 이해하기 위해 열혈남아, 화양연화, 아비정전을 차례로 보았다. (모두 <다음영화>에서 편당 1,000원씩 주고 다운로드 받았음)

 

1. 특징. 모두 시계가 나온다는 점. 동사서독(일대종사도 마찬가지지만)에서 시계가 안 나오는 건 단지 그 시대에 시계가 없었기 때문이고 역시 이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중요한 소재이며 이슈라는 것.



 2. 왕가위의 모든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을 그리고 있다는 것. 수리첸(장만옥)에게 아비(장국영)는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라고 말한다.

“16, …… 416…… 1960416259……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나와 함께예요. 당신 덕분에 난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하겠군요. 우린 1분 동안 친구였어요.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내일 다시 올게요.”

 

수리첸은 아비와 함께 한 1960416일 오후 3시를 잊지 못한다. 그에 집착한 나머지 새로 찾아온 사랑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경찰을 그만두고 선원이 되어 바다로 떠난 경찰관(유덕화)에게 전화를 걸지만 이미 타이밍이 어긋난 사랑일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리첸이 과거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간을 개척할 마음을 가졌다는 것. 아비는 끝내 시간의 굴레를 떨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3. 아비정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여우의 충고. 여우가 말한다. 그렇지만 만약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아마 환하게 밝아질 거야. 그렇게 되면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들과는 다른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되겠지. 그리고 다시 말한다. 있잖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오는 게 좋겠어. 만약 네가 항상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네 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마음이 설레게 되겠지. 그리고 네 시가 다 되면 나는 흥분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할 거야. 아마 정말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겠지! 그렇지만 네가 아무 때나 나를 찾아온다면 도대체 몇 시에 맞추어 내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게 될 거야. 그래서 일종의 준비의식 같은 게 필요한 거야. 의식이란 건 무엇을 말하는지 묻는 어린왕자에게 여우는 계속해서 말한다. 의식이란 어느 하루를 다른 날과는 다른 특별한 날로 만들어 주고, 어떤 한 시간을 다른 시간과는 다르게 만들어 주는 거야. 정말이지 이 대목이야말로 여우가 왜 지혜로운 동물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는데, 아비도 역시 그랬다. 그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수리첸이 근무하는 축구협회 매표소에 찾아가 그녀를 유혹했는데, 나는 그가 매우 영리하며 여자 꼬시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그는 여우를 만났던 것인지도 모른다.

 

4. 또 하나 생각난 것은,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중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일이다. 영국인들은 인도에서의 골치 아픈 생활은 잊고 여가도 즐길 겸 캘커타에 골프장을 하나 만들었다. 그런데 골프를 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 나타나 경기를 망쳐놓았다. 방해꾼은 다름 아닌 원숭이. 이 원숭이들은 영국인들이 쳐올린 골프공이 필드에 떨어지자마자 얼른 집어가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곤 했다. 화가 난 영국인들이 골프장의 담장을 두 배로 높였지만 원숭이들에게 소용이 있을 리 만무. 생각다 못한 영국인들은 새로운 골프 경기규칙을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하라, 는 것이었다. 물론 이 새로운 규칙은 예상 밖의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었지만 영국인들은 그 경기를 통해 하나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골프 경기만이 아니라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매번의 코스마다 긴꼬리 원숭이가 튀어나와 골프공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려 놓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5. 아비는 영국인들처럼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아비는 시간의 노예였다. 일대종사에서 궁이(장쯔이)는 시간의 노예였지만 엽문(양조위)은 원숭이가 골프공을 떨어뜨린 바로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진행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했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비는 다리가 없는 새였다. 다리가 없는 새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평생을 하늘에서 날아야만 한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자유롭게 하늘 훨훨 날아다니지만 땅에 닿을 수 없기에 잠 잘 때도 날개를 펴고 하늘에서 자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몸이 땅에 닿는 순간은 죽음에 이르는 시간이다. 아비는 죽음을 앞에 두고 비로소 한 여자를 생각하며 그리워한다. 수리첸(이 부분은 확실치 않다. 단지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랑했던 그녀였던 것인지도. 즉, 아비는 죽을 때까지 그리운 대상을 찾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이미 늦었다.


6. 매력적인 영화다. 딱 내 취향이다. 이리 좋은 영화가 어째서 흥행에 참패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대작이라고 평가받는 화양연화보다 아비정전이 더 좋다. 열혈남아도 좋았지만 현재로서는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이 내겐 최고.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도 물론. <다음영화> 예고편 동영상 첨부함. 많이 본 장면일 듯. 아비 장국영을 잊지 못하게 하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영원히 잊지 못할 바로 그 시간. 그러고 보니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중국의 끝도 없는 팬들의 행렬이 사스를 피해 마스크를 쓰고 울먹이던 모습이 생각나는군.  


http://movie.daum.net/moviedetailVideoView.do?movieId=3096&videoId=20993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