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07 동이, 숙종은 구시대와 다른 신세대 임금님 by 파비 정부권 (4)
  2. 2009.08.26 '선덕여왕' 옥에 티, 황제가 짐이 아니고 과인? by 파비 정부권 (8)
  3. 2009.08.22 역설의 퍼즐,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by 파비 정부권 (5)
임금님으로 나온 지진희, 구세대 임금님들과 확실히 다른 차별성 과시

MBC 월화드라마 동이에 나오는 지진희가 요즘 화젭니다. 지진희를 처음 보았던 것이 언제였지요? 드라마 대장금이었군요. 장금이의 영원한 후견인으로 뭇 여인들의 로망이었지요. 그런데 그 지진희가 이번엔 임금님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대장금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동이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숙종이라 불리우는 임금님의 말투나 행동거지가 문젭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왕이란 어떻습니까? 기품 있는 말투, 반듯하고 근엄한 그리고 느릿느릿한 걸음걸이, 그렇죠,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왕의 말씨는 뭔가 달랐죠. "경들은 들으시오!", 뭐 이런. 

저는 원래 드라마 중에서도 사극을 특히 좋아해서 거의 빼놓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기억나시죠? 김명민이 열연했던 이순신 장군, 가장 이순신 장군다운 이순신이었죠. 저는 그때 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이었는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불멸의 이순신을 할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휴게소로 직행했답니다.

그리고 휴게소 식당에 설치된 대형 PDP를 통해 장군을 뵌 다음 커피 한 잔을 마시고서야 다시 차를 몰고 목적지를 향합니다. 참으로 충성스러운 시청자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 제가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보다 그때가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대장금 할 때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대본미리보기 서비스를 찾아보곤 했답니다. 요즘은 그런 서비스를 안 하더군요.  

아무튼 사극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제 기억 속에도 도대체 지진희 같은 왕은 없었습니다. 지진희는 뭐랄까요, 말하자면 신세대 왕입니다. 그의 말투나 행동, 사고방식은 완전 파격입니다. 기존의 틀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 임금님을 보면서 "어, 저런 임금도 있었네?" 했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할 때, 그랬습니다. 왕이란 어려서부터 임금들만이 즐겨 쓰는 말투를 배우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맞아, 임금이란 그들만이 쓰는 특별한 말투, 특별한 행동을 배우는 거야. 그리고 신하들은 임금 앞에서 써야 하는 특별한 말투, 특별한 행동을 배우는 거고.

뭐 이런 거죠. 과인이 깊이 생각해보건대 그대의 말이 옳소,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시오, 황은이 망극 하옵니다, 통촉 하옵소서, 아, 정말 우리는 틀에 박힌 이런 대사들을 수십 년 동안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진희가 임금이 되어 나타나서는 이걸 완전히 깨부수어 버렸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임금이란 사람이 말을 저따위로… ㅠㅠ

"전하 경연 후에 의정부와 6조 당상관들의 국정상주가 있사옵니다. 또한 3사의 대간들도 뵙기를 청하고 있사옵니다."  
"궁에 떨어진 운석 때문이겠지. 모두 한 자리에 부르게. 한 번에 처리해야겠어."

뒤를 졸졸 따라오며 읍소하는 신하들을 향해 이렇게 가볍고 시원하게 말을 던진 숙종은 옆으로 물러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궁녀들에게 "어, 그래, 음" 하면서 손을 들어 인사합니다. 그리고 이어 또 다른 궁녀들을 향해 역시 손을 흔들며 "어, 별일들 없지? 흠흠~" 하며 지나갑니다. 햐, 참 신기한 왕입니다. 궁녀들한테 인기 만점이겠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임금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저런 모습이 사실은 실제와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어떻게 임금들이라고 매일 쓰기 거북하고 듣기 거북한 그런 말만 입에 올리며 살았을까, 오히려 탓할 자 없는 임금이니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자연스럽게 말을 하지 않았을까, 뭐 그렇게 말입니다.

도리어 우리가 그동안 획일적으로 만들어진 사극 속의 임금님 모습을 진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 말이지요. 아무튼 새로 임금님이 되신 지진희 전하의 파격적인 캐릭터는 상당히 성공적인 듯합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놀란 감탄사들이 들려오는군요. 어떤 분은 아예 허당 숙종이란 별호까지 붙여주셨네요. 허당이라, 꽤 괜찮은 이름입니다.

허당, 허당, 거 참, 역시 아무리 불러 봐도 멋지네요. 허당~, 신세대 임금에게 딱 어울리는 별칭입니다. ㅋㅋ, 마지막으로 임금님의 대화를 한 번 더 들어보시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몰라도 제겐 참 매력적인 임금님입니다. 저런 임금님 모시고 일하는 사람들은 참 행복할 거 같습니다만.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동맹휴학)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지방의 유생들까지 합세하여…"
"몰려온 유생들이 수백이라고?"
"예, 전하."
"근데,  임금을 만나러 왔는데 설마 맨손으로 온 건 아니겠지. 저들이 진상품으로 무얼 가지고 왔는지 알아보게."

이때 임금과 도승지(요즘 대통령실장)의 대화를 옆에서 기록하며 따라가던 쫄따구 승지가 깜짝 놀라 "예?" 하고 눈이 동그래지자 우리의 신세대 숙종 임금님 지진희가 이렇게 말하지요.

"농이네. … 이 친구 몇 년짼데 아직 내 농도 못 알아듣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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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보건대 연말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 듯합니다. 틀림 없습니다. 작년에 김명민의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단연 선덕여왕입니다. 작년 MBC 대상은 송승헌과 김명민의 공동수상으로 김 빠진 맥주 꼴이 되었지만, 올해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꼭 그렇지는 않군요. 김남주의 내조의 여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율 등 충성도에서는 선덕여왕이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요원 씨, 방심하지 말고 분발해야겠군요. 김남주가 워낙 거물이니… 


선덕여왕을 만든 작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대장금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그는 우석훈 씨의 선배이며 운동권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제가 늘 선덕여왕 후기를 올릴 때마다 적었지만, 미실의 모습에서 이명박 정권의 잔혹한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선덕여왕은 재미도 있지만, 철학도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늘 선덕여왕 칭찬만 침이 마르도록 해왔던 제가 오늘은 안티를 좀 걸어야겠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너무 무시한다든지 이런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록 시공을 너무 초월해서 픽션을 만들어낸다는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이란 이해를 합니다. 대가야의 후예들과 금관가야의 후예들이 같은 가야 출신으로서 동맹을 한다는 허구도 이해합니다. 사실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니 동질감을 가진다는 건 김훤주 기자의 지적처럼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아예 눈 딱 감고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드라마에 몰입하기만 하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충분한 행복을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훤주 기자가 그의 블로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지퍼 달린 군화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 사소한 선덕여왕 스탭들의 실수를 옥에 티로 블로깅하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참기 힘든 옥에 티가 발견되었습니다. 진평왕 말입니다. 사실은 선덕여왕에선 진평왕을 진평왕이라 하지 않고 진평제 혹은 진평대제라 불러야 할 겁니다. 물론 시호는 왕이 죽은 후에 신료들이 의논하여 올리는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드라마에서 신라의 왕은 황제입니다. 실제로 신라가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왕이 황제보다 격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황제란 이름은 중국의 시황제가 이전의 왕들과 자신을 구별짓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주나라 시대까지 제후들에겐 공이란 호칭을 사용했지요. 제나라 환공이니 노나라 양공이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원래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왕이었습니다. 진시황 이후부터 중국에서는 황제란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일 뿐이지요. 중국에서 왕 대신 황제란 이름을 사용했다고 다른 나라 왕들이 갑자기 황제보다 격이 낮아진다는 건 엉터리입니다. 

황제나 왕이나 동격입니다. 중국에서만 황제가 왕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신라의 왕들이 자신을 왕이라 부르건, 마립간이라 부르건 또는 황제라 부르건 이는 위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진평왕이든 진평제든 황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자신을 호칭할 때 과인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흥대제를 이어 황제가 된 진평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아예 중국처럼 황제들에게 붙이는 묘호인 조와 종을 썼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도 태종이란 묘호를 쓰긴 했습니다만, 신라시대에는 아직 중국의 제도나 문물이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와 종을 선대의 왕들에게 올리는 관습이 정착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원래 하던 전통대로 그냥 무슨무슨 왕이란 시호를 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부른 것은 난센스였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짐이라고 불렀는데 어제 프로에서만 짐이란 황제의 자기 존칭을 까먹고 과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도 앞에서는 진흥왕도 자기를 짐이라고 했고 진평왕도 그리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위에 적시한 다른 것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그렇네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이건 지퍼 달린 군화하고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다 폐하를 전하로 부르는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대본을 만들 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연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자도 그렇습니다. 조민기는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집에 가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늘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덕여왕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아무튼 황제가 스스로 짐을 과인으로 깎아내린 사건은 매우 유감입니다.

하긴 조민기 같은 베테랑 연기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퍼 달린 군화를 신고 나오든 짐을 과인이라 부르든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이런 사소한 실수가 한 번씩 두 번씩 나올 때마다 김 빠진 맥주 마시는 기분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에이, 저러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자꾸 드니까요. 아무튼 선덕여왕, 제 1막이 끝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소화에게 안겨 사막으로 쫓겨갔던 덕만이 드디어 자기가 태어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실과 어떻게 싸움을 벌여갈지 궁금 또 궁금입니다. 그나저나 문노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겁니까? 오늘 나오려나 내일 나오려나 하고 있는데 계속 안 나오네요, 속 터지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알라딘에서 받은 책 제목이다. 무슨 이런 섬뜩한 책 제목도 다 있단 말인가. 사람을 먹으면 안 된다니. 그럼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이건 나의 기우였다. 섬뜩한 제목과 달리 책은 처음부터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33개의 퍼즐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퍼즐은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어느 왕국이 있다. 이 왕국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왕과 왕비에겐 아리따운 공주가 있다. 그리고 똑똑이 왕자와 안똑똑이 왕자가 있다. 똑똑이 왕자는 별로 잘 생기지도 않았고 남자답지도 못하지만, 대단히 영리하다. 안똑똑이 왕자는 그 반대다. 문제가 있다. 문제는, 왕이 아리따운 공주가 똑똑이 왕자와 결혼하길 원한다.
그러나 왕비는 안똑똑이 왕자를 지지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공주의 마음은? 그녀는 현명하게도 그녀의 사랑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녀의 속마음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왕비가 제안한다. "구혼자들에게 과제를 내야겠어요." 왕이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요. 수학 퍼즐로 합시다. 가령 직각삼각형의…." 왕비가 반대한다. "어림없어요." 수학 문제를 내면 안똑똑이 왕자가 불리할 게 자명하다. "두 사람은 용을 죽여야 해요. 용을 쓰러뜨리고 먼저 돌아오는 구혼자가 우리 딸과 결혼할 수 있어요."
물론 왕은 이 제안이 못마땅하다. 그가 좋아하는 후보가 십중팔구 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때 공주가 끼어들어 옵션을 제시한다. "둘 중 한 명은 단지 용을 죽이겠다는 마음만 가져도 되고, 다른 한 명은 실제로 용을 죽여야 한다면 어떨까요? 
똑똑이 왕자가 재빨리 '마음만' 옵션을 선택한다. 용을 죽이는 힘든 노동을 선택하는 것보다 '마음만' 먹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걸 영리한 그는 순간적으로 눈치 챈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자신의 더딘 이해력을 탓하며 용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왕비는 펄쩍 뛰었다. '무의미하고 바보 같은 짓이야!'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공주의 의도를 눈치 챘을 것이다. 공주는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잘 생기고 남자다운 안똑똑이 왕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별 고민 없이 칼을 차고 달려나가 용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 저자는 이 왕국에는 쉽게 죽일 수 있는 용들이 무수히 많다고 가정한다. 당연히 안똑똑이 왕자는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용을 선택했다. 그럼 우리의 똑똑이 왕자는?


그는 밤새도록 고민했다. '내가 용을 죽이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건 내가 용을 안 죽여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용을 죽이기기로 마음 먹는다는 것은 사실은 용을 안 죽이겠다는 것과 같다. …… 좋아, 어쨌든 용을 죽이는 게 낫겠어. …… 아, 아니야. 그건 미친 짓이야. 그런 중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 내일 동이 트면 용을 죽이겠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는 거야. 하지만 잠깐….'

저자는 '만약 '마음먹기'만의 조건이 안똑똑이 왕자에게도 주어졌다면?' 하고 자문한다. 그의 답은 그래도 안똑똑이 왕자가 이겼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똑똑이 왕자는 별로 영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복잡한 추론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오디세우스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에게 자신을 돛대에 묶어놓고,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이렌의 노래소리를 듣지 않고 살아남았다. 

똑똑이 왕자도 오디세우스처럼 '만일 죽일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죽일 필요가 없을 거라고 일러주는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자신의 의도를 실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류의 퍼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언제나 일어난다. 우리는 늘 역설의 역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자, 첫 번째 퍼즐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에 대해 알았을 것이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그럼 다음 두 번째 퍼즐을 들어보라. 

두 명의 탐험가가 있다. 한 명은 비관주의자 페넬로페이고 다른 한 명은 낙관주의자 오필리아이다. 산악지대를 탐험하고 있던 두 사람은 크고 굶주린 곰을 만났다. 곰은 맛있는 아침식사를 상상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기 시작한다. "달아나는 게 좋겠어."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재촉한다.
"아무 소용없어." 비관주의자 페넬로페가 곰을 보면서 절망스럽게 내뱉는다. "곰보다 빨리 뛸 순 없잖아." 
그러자 낙관주의자 오필리아가 능글맞게 웃는다. "안 그래도 돼. 우린 곰보다 빨리 뛸 필요 없어. '내'가 '너'보다 빨리 뛰면 되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냅다 뛰기 시작한다.  
  
   

저자는 질문한다.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은 무엇일까? 그 곰의 아침식사 거리로 한 명만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둘 중 한 명이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덕성은 그런 자기 희생을 요구할까?" "당신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그 결과로 무고한 사람이 죽게 되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안개 속을 헤맬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몇 가지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건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읽어보시기 바란다. 

안개 속을 직접 걸어보지도 않고 '오리무중'을 이야기하는 건 물론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왠지 허전하다. 그러나,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항의할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퍼즐을 더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가 있다. 이 엽기적인 제목의 퍼즐은 이 책의 열아홉 번째 퍼즐이다. 물론 이 퍼즐도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엽기적인 것도 아니다. 그저 역설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날 산다는 것이 서로 먹고 먹히는 그런 과정 아니겠는가?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입 거리다.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번득이는 휜 이를 드러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금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클럽에서 그렇게 따뜻한 환영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저녁거리지?" 몇몇 사람이 물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게다가 너그럽게 회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명예회원이라고 그들이 말했다. 순진하고 한심한 나.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나 요리사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먹을' 한입 거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단히 관대했지만, 나는 곧 그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읽은 현명한 독자라면 틀림없이 눈치 챘을 테지만, 이 책은 철학 책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안도하는 대로 그다지 어려운 책은 아니다. 거기다 재미도 있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즐겁게 읽기 위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전혀 없다. 사실 이 말은 과장이지만 그리 큰 과장은 아니다. 당신은 글자를 읽을 줄 아는가? 어쨌든 우리는 만난 적이 없지만 그 대답이 '예스'라는 걸 서로 안다. 당신이 여기까지 읽었다면 우리는 이미 그 장애물을 넘은 셈이다."

'철학은 눈을 열고, 고로 '나'를 연다' 그러나 철학은 우리에게서 멀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은 훌륭한 철학 트레이너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기발한 재치들이 퍼즐 곳곳에서 우리를 반겨주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여러분은 상식과 지혜를 얻은 기쁨에 가슴이 불꽃처럼 뜨거워질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비트겐슈타인의 금언을 빌어 말한 것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급하게 가지 말고 퍼즐 하나씩 천천히 읽고 천천히 생각하길 바란다는 뜻에서.

"천천히 하시오!"                   파비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10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마젤란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