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2.25 추노, 가장 혁명적인 인물은 언년이가 아닐까? by 파비 정부권 (13)
  2. 2010.02.12 추노, 운명의 갈림길에 선 대길의 선택은? by 파비 정부권 (4)
  3. 2010.02.06 추노, 명품조연 죽여버린 주연들의 애정행각 by 파비 정부권 (16)
  4. 2010.01.30 양반귀족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7)
  5. 2010.01.15 '추노' 대길, 요즘은 총든 놈이 젤 무서워 by 파비 정부권 (52)
  6. 2010.01.15 추노, 업복이 쏜 총탄이 대길을 비켜간 까닭 by 파비 정부권 (39)
  7. 2010.01.14 '추노'속 대길어록, 해학과 풍자의 상말 속담들 by 파비 정부권 (6)
  8. 2010.01.08 '추노' 장혁과 오지호의 힘, 원천은 곽정환 감독 by 파비 정부권 (9)
  9. 2010.01.07 추노꾼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 by 파비 정부권 (5)

좀 뚱딴지 같지요? 그러나 오늘 추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지금까지 몇 번 추노속 혁명가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보긴 했지만, 언년이(이다해)야말로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더라고요. 물론 혁명가라 하면 의식 뿐 아니라 행동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언년이는 한참 거리가 있지요.

언년이이자 김혜원인 그녀에겐 존재로부터 오는 혁명적 의식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한다면서 어떤 혁명인지 말이 없는 송태하

송태하(오지호)는 직접 혁명을 말하고 있고, 그 혁명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요. 단순히 임금을 바꾸는 게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혁명이 아니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혁명에 대한 상이 있는 건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게 무언지 아무것도 보여주는 게 없습니다. 그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 말고는.

그런 점에서 이대길(장혁)은 혁명에 대한 보다 분명한 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있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길은 양반이었고 지금도 양반입니다. 그가 양반도 상놈도 없는 그래서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은 언년이와 '평생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길의 혁명관은 매우 구체적이고 분명한 것이긴 하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감상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대길이 동료인 최장군과 왕손이 몰래 추노비를 삥땅해서 이천에 땅을 사둔 것도 실은 그런 감상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죠. 모두 모여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길은 참 정이 많은 '양반'입니다.

그 정 많은 양반 이대길이 언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그리고 말하죠.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간 노비들은 모두 벌을 받아야 돼." 물론 본심은 아닙니다. 대길이 10년 가까운 세월 추노질을 하며 돌아다닌 것은 다 언년이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목적이 증오심으로 복수를 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사랑하는 정인을 찾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본인도 잘 모릅니다.

이대길의 혁명론은 구체적이지만 매우 감상적

그러나 TV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길이 그토록 찾아 헤맨 것은 사랑하는 언년이였지요. 대길이가 혁명적 가치관을 가졌던 것도 모두 언년이 때문이었습니다. 언년이에게 고통을 주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하기 싫은 과거공부도 했지요. 어쨌든 그런 그가 '반상의 법도' 운운하며 언년이의 목에 칼을 들이댔습니다. 

"반상이 뚜렷하고 주종이 엄격한데 어찌하여 너는 하늘의 뜻을 저버리고 주인인 나를 배신 하였느냐?"

그러자 눈물을 흘리던 언년이가 냉철하게 받아치더군요. 저는 그 대목에서 매우 놀랐을 뿐 아니라 크나큰 감동을 받았답니다. 언년이에게 저토록 다부진 면이 있었던가? 대길을 만나면 그저 눈물만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줄 알았던 언년이가 자신의 속내에 간직한 이념(?)을 주저 없이 설파했다는 것은 저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반상이란 누가 만든 것이고, 주종이란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 진정 하늘의 뜻 아닙니까?"

추노 속에서 이보다 더 혁명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 또 있을까요? 곽한섬(조진웅)이 조선비의 무력 쿠데타에 반대해 송태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의식을 바꾸는 것이 먼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인정하는 선에서 들여다보면, 언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의식 혁명을 거친 인물입니다.  

반상은 누가 만들었는가? 주종은 어디서 시작된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이죠. 아무튼 오늘 저는 언년이를 보면서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송태하도 이대길도 노비당의 누구도 갖지 못했던 가장 확실한 혁명적 가치관을 언년이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의외의 일이었거든요.

법과 제도란 대체 누가 만들었으며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예고편을 보니 아마 내일쯤 업복이(공형진)도 보다 정리된 혁명적 가치관에 대해 토로할 모양이던데요. 계속 특별한 이유 없이 양반을 죽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지요. 게다가 양반이 아닌 중인계급까지 죽이라는 지령이 있고 보니 그런 의심이 더욱 들었겠지요. "아니 원래 양반을 모두 죽이고 세상을 엎자고 한 거 아니었어?" 하면서 말이죠.    

"양반 상놈이 뒤집어지면 우리가 양반을 종으로 부리는 건가? 그렇게 뒤집어지는 것보단 양반 상놈 구분 없이 사는 세상이 더 좋은 거 아니나?"

아무튼 송태하의 혁명관이 무언지, 바꾸려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아직 한마디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어쩌면 소현세자의 역사적 행보를 통해 유추 해석하라는 제작자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마디쯤은 해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어떤 모양으로 바꾸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말입니다.

어쩌면 내일 대길과의 결투가 송태하의 가치관을 살짝이라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직은 태하의 생각이 무언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언년이의 대담한 발언은 누구보다도 혁명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양반 출신인 이대길이나 송태하로서는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늘 맞는 건 아니라는 걸 두 사람은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사진처럼 의기투합해서...


그들에겐 계급적인 한계가 뚜렷하니까요. 태하는 그래도 2년씩이나 노비생활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지만, 그는 목적의식적으로 노비가 되었던 것이므로 스스로는 절대 노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노비의 고통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설령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은혜적인 차원일 수 있지요.  

언년이가 가장 혁명적인 의식을 가지는 건 존재로부터 오는 당연한 결과

거기에 비해 노비 출신으로 노비의 쓴맛을 처절하게 맛보았던 언년이가 가장 혁명적인 의식을 가지는 게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보통 주절주절 길게 쓰는 편입니다만, 요즘 통 포스팅도 하지 않다가 오랜만에 쓰려니 무척 피곤하고 잠도 오고 그렇습니다. 웬일인지 캡순이도 말을 안 들어 이미지 캡처도 안 되는군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그만 자야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행복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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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여 년을 찾아 헤매던 언년이가 눈앞에서 혼인을…
이대길은 최종적으로 어떤 운명의 수레를 타게 될까?


<추노>가 드디어 12부가 끝났습니다. 24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했으니 반환점을 돈 거지요. 지난주 마지막 엔딩 장면 때문에 말들이 많았는데, 이번 주 이야기 전개를 보니 역시 이다해와 오지호의 키스신이 이유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출자로서는 뭔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운명의 대반전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다해와 오지호가 러브신을 하고 있을 때, 장혁은 이러고 있었죠.


운명의 대반전, 언년이와 송태하의 혼인

지난주는 그야말로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장면들로 화면이 가득 찼었지요. 백호와 윤지의 죽음, 천지호 패거리의 잇단 피살, 곽한섬과 애틋한 정분을 채 피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궁녀 장필순, 그러나 시청자들이 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사이도 없이 펼쳐지는 긴박한 추격전은 이런 파격에 경악할 틈도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조진웅과 성동일의 섬뜩한 명품연기는 단 한시도 눈을 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요. 그런 와중에 느닷없이 오지호와 이다해의 러브신이 이어졌으니 사람들로선 좀 멀뚱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는데, 기다리고 있는 조진웅과 원손이 걱정되어 그랬나 봅니다. 그러나 이번 주 내용을 보니 이미 제주 탈출이 끝난 상태에서 엔딩신이 좀 길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이다해와 오지호의 그 러브신에는 대길의 운명에 대한 암시가 주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주상절리 위에서 벌이는 키스신과 사라지는 언년이의 잔상을 쫓아 절규하듯 손을 뻗는 대길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유독 엔딩신이 길었고, 오해하는(저를 포함하여) 시청자들이 많았든가 봅니다.   

오늘 12부의 엔딩신을 보니 10부의 말 많았던 엔딩신의 결정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주에서의 키스신은 바로 오늘의 마지막 장면을 위한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 장면으로 하여 대길은 크나큰 운명의 반전을 겪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대길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꿈에도 그리던 언년이와 송태하의 혼례식이 치러지려는 순간입니다.

12부의 엔딩 장면, 장혁의 칼 끝에 걸린 이다해와 오지호. 그러나 운명의 발길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자, 여기서 대길은 어떤 것을 선택할까요? 지금까지 해온 것으로 보자면 당장 뛰쳐나가 칼을 휘두르며 송태하와 일전을 벌이는 게 순리입니다. 그리고 송태하를 잡아 서울로 압송하고, 동시에 언년이에게도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대길이 말했지 않습니까? "주인 배신하고 도망간 노비 연놈들, 모조리 잡아 원래대로 돌려놔야지." 

각각 다른 꿈을 꾸는 혁명들, 대길과 태하, 조선비의 혁명

그러나 대길은 그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대길이 8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는 언년이의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추노질을 다닌 것은 언년이를 향한 증오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증오심은 언년이를 찾아야 한다는 명분일 뿐이었지요. 대길이가 언년이를 반드시 찾아야하는 이유는 그녀에게 한 약속 때문입니다. "너하고 평생 살 거다." 

일개 여종을 향해 대길이 이런 약속을 했다는 것은 그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때 시대라면 여종은 그저 취하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대길은 언년에게 단지 함께 평생을 살겠다고만 한 것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 세상을 바꾸겠노라는 대담한 혁명 발언까지 한 것입니다.

혁명, 지금 송태하와 조선비가 꿈꾸고 있는 것도 혁명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들 조선비 일파가 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반정이지요. 조선비 일파가 꿈꾸고 있는 것은 빼앗긴 정권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부터 나온 것일 겁니다. 그들의 당파적 욕망으로부터 반정의 꿈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것은 곧 쿠데탑니다.

누워있는 미륵 옆에서 충성맹세를 하는 과거 무장들이었던 노비들. 이 와불이 일어나면 세상이 바뀐다죠?


반면, 송태하와 곽한섬에게는 혁명에 대한 약간의 인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소현세자와 더불어 청에서 서양문물을 접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선 소현세자가 먼저 접했던 서양문물은 천주굡니다. 로마가톨릭에서 파견된 신부 아담 샬로부터 배운 기독교의 기본사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조선의 신분질서로 보면 매우 혁명적인 사상이지요.   

만약 소현세자가 독살되었다면, 그리고 그 원흉이 인조와 집권당 세력이었다면, 소현세자가 가진 혁명적 사상을 두려워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소현세자와 운명을 함께 했던 송태하와 곽한섬에게 혁명은 소현세자의 유지를 받드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곽한섬이 궁녀 장필순에게 "이제 세상이 바뀔 걸세"라고 말하며 호강시켜주겠다는 장담에서 우린 그걸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송태하는 김혜원이 노비출신임을 알고 있다

송태하도 "이분(원손)이 임금이 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라고 묻는 혜원에게 말했었죠. "세상이 바뀔 겁니다."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것이 곧 혁명을 의미하는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송태하가 오랫동안 소현세자와 더불어 청에서 살며 서양문물을 접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오버해서 해석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알기에 이미 송태하는 김혜원이 노비출신임을 알고 있습니다. 한동안 뜨겁게 논란이 되었던 이다해의 노출신은 바로 송태하가 김혜원이 노비출신이었음을 눈치 채게 하려는 장치였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송태하는 스스로 노비로 2년 넘게 살았을 뿐 아니라 훈련원 판관까지 지낸 조선 최고의 무장입니다. 그는 장군이 되기까지 수많은 노비들을 다룬 경험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노비 문신 자국을 보고도 눈치를 못 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곽한섬이 "궁녀인 나를 그대가 어떻게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이냐"는 말에 "세상이 바뀔 걸세"라고 한 것과 송태하가 혜원에게 "세상이 바뀔 겁니다"라고 한 것은 같은 말이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두 사람이 말하는 세상은 아마도 소현세자가 꿈꾸었던 세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 다시 대길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가 막힌 현실을 두고 이대길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요? (1) 칼을 들고 당장 달려 나가 두 사람을 난도질한다. (2) 안타깝지만 언년이의 행복을 위해 일단 조용히 물러선다. 우리가 당장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 둘 중 하나입니다. 아니면 어떤 돌발변수가 발생해서 선택을 연기시킬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적어보입니다. 그건 기만입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대길의 마음만으로 보자면, 대길은 일단 눈물을 삼키며 물러설 걸로 보입니다. 대길이 쫓았던 것이 원수가 아니라 사랑이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대길은 주어진 새로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조선팔도에 거칠 것 없던 추노꾼 대길에게도 이제 고난의 시대가 올 것이란 예감이죠.

대길이 맞게 될 첫 번째 운명의 반전, 도망자

어쩌면 그 고난의 첫 번째는 그 자신이 도망자가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우선 그는 좌의정 이경식과 약조를 한 것이 있습니다. "달포 안에 송태하를 잡지 못하면 네 목을 내가 거두겠다."  좌의정은 무서운 사람이죠.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5천 냥이란 거금을 받아간 이대길을 그냥 놔 둘리가 없습니다.

송태하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살변은 계속될 것이고요. 이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이대길이 지목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아니 좌의정의 밀계에 의해 이대길이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도망자가 되는 것은 필연일 듯싶습니다. 그렇다면 송태하를 쫓던 이대길이 송태하를 놓아준 대가로 도망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셈이지요.

여전히 드는 의문 "이 둘은 한패가 될 수 있을까?" 사진은 휴식시간인 모양이네요.

이 모든 운명의 중심에는 김혜원 또는 언년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언년이를 그토록 고고하게 그려놓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대길이 맞게 될 첫 번째 운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추적자에서 도망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돌팔이 점쟁이의 어설픈 점괘에 불과하므로 맞지 않더라도 그다지 나무라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흠~ 

그렇다면 도망자가 된 이후 그 다음 운명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점쟁이가 되기엔 아직 턱없이 공부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런 생각은 듭니다. 좌의정은 당대 조선의 최고 권력잡니다. 그런 자로부터 영원히 도망을 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음~ 대길 정도의 인물이라면, 혁명을 해버리는 것이죠. 

어쩌면 대길은 진짜 혁명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해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월악산 영봉에 둥지를 틀고 있는 짝귀가 혁명군을 양성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8년 동안이나 추노꾼이 되어 언년이를 찾아다닌 것도 어쩌면 언년이에게 했던 약속, "양반 상놈 구별 없이 함께 잘 사는 세상 만들어 너하고 평생 살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이대길이 타게 될 마지막 운명의 수레는 과연 혁명일까?

그런 세상을 이루려면 혁명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 그때는 혁명을 하고 싶어도 밑바탕이 될 만한 사상적 토대 같은 것이 없었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그 시대에 그런 사상이 없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민중들에겐 광범하게 미륵사상이 퍼져 있었고, 지배층 내에도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 같은 인물이 이대길이 살던 바로 그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앞으로 더욱 복잡해지겠군요. 혁명을 준비하는 송태하, 살인귀로 변해 송태하를 쫓는 황철웅, 부하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황철웅을 쫓는 천지호, 양반들을 모두 죽이고 상놈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비당, 이들 사이에서 이대길은 어떤 운명의 수레를 타게 될 것인가? 송태하와 이대길이 동시에 사랑하는 언년이 혹은 김혜원이 여기에 어떤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대길과 태하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은 같다는 뭐 그런…. 이다해의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게 어색해 보이는 것도 어쩌면 도로 위에 불쑥 솟아난 이정표처럼 그래서 그런 건 아닐까 뭐 그런…, 이상 어설픈 점쟁이의 점괘였습니다. 대길의 운명이 도망자가 될 점괘는 확실하게 보이는데 그 뒤의 운명은 영 오리무중인지라, 그렇다고 점쟁이가 반은 알고 반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어쨌든 결론은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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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 주연·조연 가릴 것 없는 명품들의 향연,
                때와 장소에 걸맞지 않는 러브신으로 찬물 뿌려 

       
이번 주는 완전히 <추노> 열풍으로 보낸 한 주였습니다. 폭풍처럼 지나갔다고나 할까요? 마치 넋을 빼놓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대단한 <추노>였습니다. 장혁과 오지호의 연기는 물이 오를 대로 올랐습니다. 저는 첫 번째 <추노> 리뷰를 쓸 때 제목을 <☞추노꾼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이라고 적었습니다. 


<추노>, 주연배우들을 위해 준비된 작품?  

그만큼 이대길로 변신한 장혁의 연기가 눈부셨기 때문입니다. 장혁이 이대길을 위해 준비된 인물인지, 이대길이 장혁을 위해 마련된 인물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둘은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1부와 2부에서 그림자처럼 은인자중하던 오지호는 또 어떻습니까? 2부의 막바지에 들면서 그가 드디어 몸을 일으키자 과연 조선 제일의 무장 송태하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이대길과 대비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껄렁대며 저자를 누비는 추노꾼 장혁과 신념과 이상으로 명분과 의리를 쫒는 무장 송태하는 서로의 배경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이런 이들 사이에서 이들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갈등하는 여인 '아름다운 이다해'입니다. 지나친 아름다움이나 때아닌(?) 노출로 논란을 불러오긴 했지만 말입니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영상미를 추구하는 <추노>에서 한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얀 소복과 남색 치마에도 깃든 뜻이 다 있었더군요. 하얀 소복은 죽은 대길을 떠나보내는 것이며, 남색 치마를 입은 것은 태하를 만나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된다는 암호였던 거지요.


그러나 그렇게도 넋을 빼놓을 듯 감동을 주던 10부의 마지막에 또다시 논란거리가 생긴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칼을 놓아두고 떠난 오지호를 다소곳이 앉아서 기다리는 이다해가 아름다운 제주 해안의 절경과 너무나 잘 어울렸기에 그 정도는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래, 아름다운 여인의 기다림 속에 벌어지는 대혈투라, 멋진 일이지.'

때와 장소에 걸맞지 않는 키스신은 왜 만들었을까?

굳이 이다해의 손을 놓지 못하는 오지호의 태도는 촌각을 다투는 대살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만, 그래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오지호와 이다해를 보면서 조진웅과 세손의 안위가 걱정되어 미칠 지경이었으니 혹여 그걸 의도한 것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었죠. 


그러나 이 모든 이해들도 마지막 하나의 장면 하나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다해와 송태하가 그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제주의 아름다운 주상절리 위에서 포옹을 하고 이도 모자라 키스를 한 것입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순간 긴박한 추격전과 아름다운 영상에 취해 있던 정신이 번쩍 들면서 물결치던 감동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버렸습니다.

이다해와 장혁, 오지호, 이 세 사람의 운명의 대반전을 상징하는 키스신. 그러나...


아무리 변명해주고 싶어도 이건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빼어난 영상 속에 상징을 그려넣기를 좋아하는 연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겠지만, 그래도 이건 지나친 일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장혁과 이다해, 오지호의 운명이 뒤바뀌는 대반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대살겁이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서 굳이 키스신까지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추노>는 초반부터 조연들의 열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심지어 카메오로 출연한 배우들이 보여준 찰나의 활약마저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야말로 <추노>는 명품배우들의 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연, 조연 할 거 없이 모든 배역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지요.

<추노>는 명품배우들의 열전

특히 10부에서 보여준 성동일과 조진웅의 연기는 주연을 능가하는 명품조연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성동일은 이미 1부에서도부터 그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추노> 명품조연 제1호 탄생을 알렸습니다. 저도 <추노> 첫 번째 리뷰
<☞추노꾼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에서 대길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진짜 추노꾼 천지호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습니다.

진짜 밑바닥 추노꾼 성동일,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다!"


"…… 그러니 일단 단 1부로 세상을 평정한 이 위업은 결국 장혁의 공로인 셈입니다. 여기엔 대길을 빛나게 하는 다른 또 다른 추노 성동일의 역할도 컸습니다. 역시 성동일에게도 그를 위해 마련된 것이 분명한 추노 천지호가 있습니다. 왕년에 자기 휘하에서 졸병질을 하던 대길에게 밀린 한수 이북 최고의 추노꾼이 바로 천지홉니다. 

냉혹하고 야비하며 근성으로 똘똘 뭉친 인간성이라곤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추노꾼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배우 성동일로 인해 추노 대길은 더욱 빛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뛰어난 주연 뒤에는 반드시 뛰어난 조연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림 속의 인물도 훌륭한 배경이 있어야 더욱 멋지게 그려지는 법이죠. …… "      <추노꾼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 중에서

그러나 이제 성동일에 대한 위의 소개는 수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는 더 이상 주연배우들의 뒤에서 그들을 빛내주는 배경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10부에서 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명한 존재감을 알렸던 것입니다. 조진웅은 또 어떻습니까? 그를 처음 본 것은 <열혈장사꾼>이었습니다. 꽤 재미있는 배역이었지만, 그냥 '바보스런 연기를 참 잘한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추노>에서 만난 조진웅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특히 9부와 10부에서 보여준 조진웅의 모습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도대체 바보처럼 보이던 그에게 어떻게 저런 카리스마가 숨어 있었을까?' 세손을 업고 쓰러진 궁녀를 부여잡고 절규하는 모습은 참으로 처절했습니다. 만약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흔들리고 눈물이 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품진열장 <추노>에서도 특별히 빛나는 조연들, 조진웅과 성동일 

이종혁과 대결하기 전 고개를 들어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아래로 숙이며 크게 내뱉은 다음 칼을 부여잡는 장면에선 실로 비장함이 감돌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엔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수려한 제주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진 조진웅과 이종혁의 대결, 이어 벌어진 오지호와 이종혁의 대결은 과연 압권이었습니다. 

조진웅과 사현진의 열연, 이들은 진정한 명품이었다.


성동일과 조진웅만 빛나는 조연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추노>에 등장하는 조연들은 모두 주연 이상의 명품들이었습니다. <추노>를 '명품진열장'이라고 부른다 한들 누가 여기에 토를 달 수 있을까요? 누군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도 모두 돈으로 보였다'고 했지만, <추노>야말로 굴러다니는 돌 하나하나가 모두 빛나는 보석들이었습니다. 

궁녀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자기 이름을 밝혔던가요? 저는 그녀의 이름을 듣지 못했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분명히 자기 이름을 조진웅에게 알려주려고 했었던 것 같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못 알아들은 것일까요? 조금 전 들렀던  ☞들까마귀님의 블로그에 의하면 그녀의 본명은 사현진이라고 하는군요.

특별히 그녀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면 예의에 어긋난다는 생각마저 들어 이렇게 굳이 다시금 ☞들까마귀님의 블로그를 찾아 이름을 확인해 올립니다. 저역시 많은 네티즌들의 아우성처럼 그녀가 그렇게 일찍 죽은 것에 대해 매우 불만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었고, 이후 조진웅의 복수전이 기대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명품조연들로부터 받은 감동에 찬물을 끼얹은 주연들의 애정행각

아무튼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명품연기들로 채워진 <추노> 9부와 10부는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정말이지 이토록 가슴을 졸이며 TV를 지켜보기는 예전에 없던 일입니다. 작년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선덕여왕>도 이처럼 사람을 긴장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절경들과 시리도록 눈부신 영상미까지… . 

그러나 이 모든 감동들을 단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다해를 찾아 달려간 오지호가 느닷없이 이다해를 포옹하더니 키스를 한 것입니다. 물론 이 상징적 사건이 전해주는 감동을 오래도록 전하고 싶었을 연출자의 의도가 분명 있었을 터이고, 이에 따라 두 사람이 나누는 포옹과 키스도 그 시간이 꽤나 길었습니다.

위 세 장면의 교차엔 큰 의미가 숨어 있겠지만, 그냥 포옹으로 넘어가기엔 뭔가 대반전에 대한 상징성이 부족했을까?


그러나 이 돌연한 두 주인공의 연애행각은 무려 두 시간에 걸친 감동의 도가니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두 사람에겐 너무나 애절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을지 몰라도 시청자들에겐 감동을 빼앗기는 최악의 시간이었습니다. 명품조연들이 만들어놓은 감동들도 이 지리한 시간을 타고 제주 해안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처럼 태평양 넓은 바다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냥 가볍게 포옹이나 하고 빨리 조진웅과 세손이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가셨어야지요. 지금 제주 관군이 잡으러 오고 있거든요. 참, 아무리 생각해도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워낙 <추노> 자체의 작품성이 좋은지라 이해하고 넘어가긴 가지만, 아무래도 찝찝하군요. 거 참~^^ 뭐 아무튼, 이번에 큰 거 하나는 깨달았습니다. 

키스든 뭐든, 어떤 종류의 연애행각이든 시도 때도 없이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도 아름답기는 했습니다. 역시 사랑하는 장면은 언제 봐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최장군과 큰주모 조미령도 좀 만나게 해주지 않으시고. 그 두 사람이 만나야 큰주모의 살살 녹는 애교를 볼 수 있을 텐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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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꾼 이대길의 정체에 대한 물음, "대길이가 추노꾼이 된 까닭?" 
"사랑을 쫒는 연인? 원수를 쫒는 복수의 화신? 아니면, 새세상을 쫒는 혁명가?" 
 

이대길(장혁)은 양반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대길은 노비도, 천민도, 평민도 아닌  여전히 현재에도 양반이란 사실입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모두들 잊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대길이 저자에서 거의 천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천민들에게조차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천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추노꾼 이대길은 양반귀족이다

그럼 대길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대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추노>는 언년이(이다해)의 오라비인 큰놈이(조재완)가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모조리 도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큰놈이가 혼자서 대길의 집안을, 그러니까 대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 많은 수의 노비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듭니다. 아무리 집에 큰불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몇 명은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언년이를 데리고 도망친 큰놈이가 이후에 큰돈을 벌어 양반까지 사서 신분상승을 할 정도의 큰 재목이었다면 이미 노비 시절에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대의 방화사건에는 공범들이 있었고, 그래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멸문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큰놈이도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토록 치밀한 성격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위인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럼 첫 번째 의문은 별로 문제가 안 되는군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 이건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추노>가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살펴보아야 할 핵심 주제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집이 불에 타고 가솔들이 모두 죽었다고는 하나 대길은 양반이다. 게다가 대길의 집안 경제를 지탱해주었을 전답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지는 것도 아니다. 집은 그저 주거용일 뿐이고 경제적 기반은 역시 전답, 즉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이 불탔다고 하더라도 대길은 그대로 양반이며 지주다."

양반귀족 이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이것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깁니다. 대길은 왜 양반신분을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 신분이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양반 신분이란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비 신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길의 집안이 멸문했다고는 하지만 친척도 있을 것이고, 관청에서도 대길의 신분을 보증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시 인구구성으로 보아 양반은 5%를 넘지 않는 소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대길은 양반신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있을까?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대길이 언년이를 잊지 못해 찾기 위해서란 겁니다.
 
이는 대길이가 언년이의 초상화(요즘 같으면 몽타쥬 또는 수배사진)를 그려달라고 방 화백(안석환)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길은1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언년이의 초상화를 고집합니다. 대길이에게 10년은 정지된 시간이죠. 대길에게 추노는 애타는 사랑을 찾기 위한 대장정입니다. 그럼 추노꾼이 된 다른 이유 하나는 무엇일까?

복수하기 위해섭니다. 사랑이 컸던 만큼 복수심의 크기도 상상 이상일 겁니다. 다음 주 예고편을 보면 대길은 백호(데니안)를 통해 언년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눈치 채게 됩니다. 설화(김하은)를 이용해 큰놈이가 김성환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집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섬뜩한 표정으로. "주인 배신하고 도망친 노비 연놈들 싹 다 잡아서 돌려 놔야지, 원래대로." 

예고편만 보아서는 대길의 심정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큰놈이가 휘두른 낫에 입은 칼자국 가운데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는 사무친 원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 차가운 눈동자 저 뒤편으로 잊을 수 없는 언년이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장혁만이 만들어낼 만한 이 복잡한 표정들은 실로 압권입니다.

냉혹한 추노꾼 이대길,
그러나 심장 속엔 따뜻한 피가 흐른다


그런데 대길에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바로 돈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블로거 초록누리님도 이미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길은 매우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지만, 실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결국 대길의 운명을 이토록 질기게 만든 까닭도 누구보다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그는 노비를 사랑할 만큼 진실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온정은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원의 손길이 되기도 합니다. 짝귀가 그렇고 대길이 풀어준 노비 모녀가 그렇습니다. 설화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모두 나중에 대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대길이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으로부터 5천 냥을 이미 선금으로 받고서도 받았다는 내색은커녕 5백 냥짜리 추노라고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대길이 왜 그랬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던 대길과는 완전 딴판이었으니까요. 대길은 천지호(성동일)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천지호조차도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저자의 법도라고 철썩 같이 믿습니다. 

그런데 왜? 무려 4천5백 냥이나 속이는 것은 최장군(한정수)이나 왕손이(김지석)에겐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추노>를 볼 때마다 늘 염두에 두고 봤지만, 그 답을 알아낼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이 대길이 추노꾼이 된 연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확신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초록누리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추노>8부 첫 장면에서 그 단서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짐작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았지요. 8부 첫 장면은 대길이가 여종 언년이를 업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요?"
"과거에 급제해야지."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아주아주 높은 벼슬을 할 거야."
"그러면요?"
"나라를 바꿔야지."
"어떻게?"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 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 거다, 평생."
"치, 거짓말."
"참말."

이대길의 꿈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요? 그건 바로 혁명입니다. 혁명을 통해 체제를 바꾼다는 의미지요.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법도인 나라를 없애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의 신>에서 강석호 변호사(김수로)가 말한 대사와 참으로 흡사하구나.' 강석호가 그랬죠. '세상을 바꾸려면 공부를 해서 천하대에 가서 법을 바꿔라' 

그런데 초록누리님에 의하면, 이대길은 공부를 해서 세상을 바꾸는 쪽보다 천민들과 작당―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당을 만든다는 뜻이죠―을 해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요.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짐작이 영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5천 냥의 용처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았던 부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좌의정 이경식을 만났던 정자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대길을 바라보던 기생 찬(송지은)이 생각납니다. '만약 그녀가 노비당에 양반 살해를 명하는 '그분'이라면 이대길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갈등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의 감정이 이끄는 행로는 추노꾼 대길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소용돌이는 혁명을 꿈꾸는 노비당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좌의정 이경식에게 부하들을 하나씩 잃게 되는 천지호도 결국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겠지요. 그는 귀족세계가 무슨 짓을 하든 저자의 법도에 관여만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도 결국 냉엄한 벼슬아치의 세계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들에게 사람은 명분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가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한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노비당, 노비들, 이대길, 천지호,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8부에서 전 좌의정 임영호를 대신해 당파를 모아놓고 송태하를 중심으로 이룰 대업에 관해 역설하던 조선비(최덕문)가 한 말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결국 송태하를 배신하게 될 인물입니다.

조선비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명하여 노비가 되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송태하(오지호)의 과거 부하들에게 격문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모두 한때 조선에서 나노라하는 무장들이었습니다. 조선비는 노비들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우리의 목표는 거병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그 거병에 이들 노비들이 앞장 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거병이네. 그들이 장수가 되고 뜻을 따르는 백성들이 군졸이 되고 우리는 그들 모두를 이끄는 머리가 돼야 함을 잊지 말게." 이 대목에서 불현듯 최장군이 대길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의미심장한 대구는 <추노>에서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업복이(공형진)와 끝봉이(조희봉)의 대화를 한 번 보시죠.

"너는 저 그 양반 본 적이 있나?"
"아이, 그 양반이 뭐여, 그분한테. 그리고 그분은 양반이 아녀, 우리 같은 상놈이지."  
"아이그, 무식하긴, 상놈이 뭐나, 상놈이. 천민이란 좋은 말 놔두고선."
"자네가 언제 글을 깨우쳤나. 그런 문자속을 주워 담고."
"그야 뭐 참~"

이때 살인지령을 하달하는 편지가 달린 화살이 날아와 박힙니다. 그러나 문자속을 자랑하던 업복이는 한 자도 읽을 수 없습니다. 끝봉이가 "염병하고, 이것이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자인디? 어디~" 하면서 편지를 업복이에게 건넵니다. 그러나 업복이도 까막눈이긴 마찬가집니다. "뭐여, 문자속은 다 주워 담더니 언문도 못 깨쳤어?"

거대한 음모를 암시하는 말,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사진처럼 이들은 한패가 될 수 있을까?

"언문 깨쳐야 뭐 호랭이 사냥을 잘하나? 포수가 불만 장 댕기면 되는 거지, 무슨 참." 이건 단순하게 극에 재미를 주기 위한 코미디가 아닙니다. 이 대화 속에는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우쳐주기 위한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를 업복이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업복이와 노비당의 뒤에 도사린 무서운 음모에 대한 암시인 것이죠. 아무튼 <추노>도 벌써 3분지 1이 지났습니다. 이제 서서히 그 음모의 윤곽이 드러날 때가 되었습니다. 기생 찬이 어떤 형태로든 노비당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길이 이 당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곧 그도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이대길, 송태하, 천지호, 노비당의 관계들이 새롭게 정리될 것입니다. 쫓고 쫓기던 관계가 동지가 되고, 동지였던 자들이 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라도 최장군이 늘 염려하던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그 '무서운 자들'이란 민중의 이익보다는 알량한 신념이나 명분에 목숨 걸기도 하고, 때로는 당파의 이해타산을 위해선 배신도 밥 먹듯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최장군의 말이 아니어도 이대길은 양반들의 생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제목에 담긴 뜻과 똑같습니다.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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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 누가 제일 셀까?


오늘 아침에 발행한 글
<추노, 업복이 쏜 총탄이 대길을 비켜간 까닭>주작님이 트랙백을 달아 주셨습니다. 일단 고맙기도 하고 무슨 내용인가 궁금하기도 해서(트랙백이 달리면 당연히 읽어봐야 하는 게 예의지만 어쨌든) 들어가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제가 궁금해 하던 부분에 대해 정리를 잘 해놓으셨더군요. 

역시 정통무예의 달인 송태하가 1등?

글 제목이 <추노속 인물들 무술순위>였습니다. 제목부터가 아주 섹시합니다. 저는 이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그게 가장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회전을 지켜본 결과를 저에게 판정하라고 한다면 송태하에게 우세승을 주고 싶습니다. 우선 이대길은 약간 스치긴 했지만 송태하에게 자상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이대길은 말을 타고 송태하를 공격하는 상황이었고, 송태하는 아무래도 방어적 무술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송태하는 전혀 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길에게 칼집을 내주었습니다. 자신은 멀쩡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만약, 천지호 패거리가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퍼붓지만 않았어도 대길은 크게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작님이 매기신 순위의 1등에 송태하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저자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대길의 무술도 대단하지만, 역시 정통무술을 익힌 송태하의 무술이 한 수 위라고 생각됩니다. 청나라 군대에 맞서 좌충우돌하던 조선 최고의 무장이란 칭호는 허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잠깐 주작님이 매긴 순위부터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등, 송태하 (오지호)
2등, 황철웅 (이종혁)
3등, 이대길 (장혁)
4등, 최장군 (한정수)
5등, 왕손이 (김지석)
그리고 그외, 백호((데니안), 자객 윤지(윤지민), 업복이(공형진), 천지호(성동일), 곽한섬(조진웅)과 이광재(조성일)

주작님이 매긴 순서대로 좌로부터 1등부터 5등까지. 그런데 5등 왕손이는 바람 피는데는 1등이다.


저자에서 익힌 변칙무공 이대길의 상승도 무시 못해

송태하가 1등이란 점에 대해선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2등이 황철웅이란 점에 대해선 약간 의견을 달리 하는데요. 이대길의 무공도 만만지 않거든요. 총알도 피하는 이대길이 아닙니까? 그의 무공은 정통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저자거리에서 잔뼈가 굵으며 편법으로 익힌 무공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부적인 순발력과 지각능력, 무술을 익히기에 적합한 근골, 뛰어난 두뇌, 이런 것들이 합성해 만들어낸 결과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대길이 정식으로 무술 교습을 받았다면 송태하가 과연 이대길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지요. 그러므로 1회전에선 비록 송태하의 우세승이었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런 말입니다. 

송태하나 황철웅의 무술이 완성된 것이라면 이대길의 무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말하자면 상승무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최장군의 무술도 대단했었지요. 한수 이북 최고의 추노꾼이라는 천지호조차도 단 1합에 이대길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최장군은 대길과 수십 합을 겨루었지요. 

다시 매겨본 무술 순위 황철웅과 최장군이 공동 3위. 배신자 황철웅에 대한 미움의 결과 나온 순위라 좀 미심쩍다.


그러니 최장군도 가히 송태하나 황철웅과 겨루어도 절대 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역시 송태하의 무공은 천하일절임에 틀림없습니다. 『추노』제작진이 지금까지 인터넷에 제공한 24장의 사진을 보면 이대길과 황철웅이 협공으로 송태하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둘이 힘을 합쳐도 송태하를 제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지요.  

역시 송태하가 제일 세다는 증명사진.

그런데 저는 주작님의 글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태하가 아무리 출중한 무공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대길이 지닌 선천적인 순발력과 무술 실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총 앞에서야 어떻게 당할쏘냐. 아무리 칼 든 놈이 날고 기어도 총 든 놈 앞에서는 그저 어린아이 재롱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느냐, 뭐 그런.

그러나 역시 총 든 놈이 최고 세다 

최장군은 비록 추노꾼이 되어 대길, 왕손이와 함께 도망친 노비를 잡으러 다니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사려 깊은 인물입니다. 대길이가 패거리의 우두머리임에도 늘 대길을 걱정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듬직한 언니(형) 같은 존재죠. 그런 최장군이 대길에게 양반네 특히 권력자들을 조심하라고 충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양반들을 가까이 하지 말게. 특히 관리들은 조심해야 하네. 칼 든 자보다 붓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야."

그 말에 대길이 무어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대길이 최장군의 말에 냉소하며 이렇게 말했죠.

"요즘은 총 든 놈이 제일 무서워."

하하, 이쯤 되면 주작님께서도 <추노속 인물들 무술순위>를 스스로 수정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길이가 자발적으로 총 든 업복이가 최고 무섭다고 실토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이렇게 되겠군요. 1등은 업복이, 2등 송태하, 3등은 그럼 타협적으로 대길이와 황철웅 공동 3등, 4등 최장군, 5등 왕손이, 그런데 아직 저는 왕손이의 진정한 실력을 보지 못했으니.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총이 제일. 그럼 1등은 업복이, 2등 송태하, 3등 대길이 순. 황철웅은 공동 3등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작님의 순위와 타협해서 나온 것이고, 만약 최장군과 붙으면 어떻게 될까? 내 보기엔 최장군도 만만찮은데요.


아무튼 이 글은 주작님의 트랙백을 읽고 심심풀이로 써 본 것이니 만큼 크게 신경 쓸 것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이 글을 적으며 생각났던 대길과 최장군의 대화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군요. 곽정환 감독이나 천성일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대화를 집어넣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죠.

"칼 든 놈보다 붓 든 놈이 더 무서운 법이야."
"아니야, 요즘은 총 든 놈이 제일 무서워"

요즘은 총 든 놈이 제일 무서워, 이 말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섬뜩한 말이지요. 지금이야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흥미로운 대사쯤으로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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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메트릭스,
    대길이 총알을 피한 것일까? 총알이 대길을 비켜간 것일까?


방금 추노가 끝났습니다. 역시 재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길(장혁)이가 언년이(이다해)의 존재를 눈치 챈 듯 하더군요. 어찌 될까요? 알아볼까요? 아니면 그냥 또 긴가민가하다가 놓치고 말까요? 만약 송태하(오지호)와 같이 있는 여인이 언년이임을 알게 된다면 이제 돈 5천 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죠. 사생결단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질 겁니다. 

미디어다음 이미지 '뷰티풀라인' 캡처사진



업복이의 총알을 피한 것은 순전히 대길의 순발력 탓이었나?

송태하의 뒤에 숨은 언년이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전해 옴을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눈과 귀, 코가 아니어도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다가
뒤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도 있고, 멍하니 앉아있다 딸아이의 손에서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조각이 땅에 닿기 직전에 손으로 받은 적도 있었죠.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느낌이 왔던 거죠. 아무튼, 각설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업복이(공형진)가 말을 타고 추노질을 하러 떠나려던 이대길을 향해 화승총으로 회심의 한방을 날렸는데요. 총알이 정확하게 대길이의 이마, 상스러운 말로는 막박을 향해 날아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총알이 대길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순간, 대길의 날카로운 그리고 재빠른 눈이 총알을 보고 말았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화면상으로는 분명히 대길이 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보았고 순간 머리를 틀었죠. 이런 정도의 경지는 그야말로 등봉조극,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어 입신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이대길의 무공 수위가 이 정도라면 아무리 조선팔도에서 검으로 당할 자가 없는 송태하라도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대길이가 구사일생으로 총알을 피한 것이 순전히 대길의 타고난 순발력과 출중한 무예 탓 만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업복이의 실수도 있었던 것이죠. 마누라 속곳 벗기는 것보다 더 쉽게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관동 제일의 포수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총잡이였는데 말입니다. 

관동제일포수 업복이가 총질에 실수한 까닭은?

만약 그가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면 벌써 호랑이 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럼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제 생각에 그것은 업복이가 사수로서 지켜야할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남자들 중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오셨을 겁니다. 군대 가면 제일 고통스럽게 배우는 게 바로 사격술이죠. 

피알아이(PRI) 기억나십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훈련과정이라 모두들 이 피알아이(사격술예비훈련) 훈련장을 일러 피가 터지고 알이 배기는 기초사격훈련장이라고들 합니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무르팍이 깨지듯 하던 고통이 느껴집니다. 각개전투도 힘들고 총검술도 힘들지만, 피알아이 만큼 힘든 훈련도 없었지요. 

미디어다음 이미지 '데일리안' 캡처사진

그런데 그때 우리가 늘 주지하던 타겟의 조준 목표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십니까? 바로 가슴이죠. 가슴은 목표물의 정중앙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혹시 조준이 조금 빗나가더라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수의 조준선 정열은 반드시 가슴을 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리에 따라서 조준선 정열의 지향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미세하지만 총알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100m 표적은 가슴보다 약간 낮은 지점을, 200m는 정중앙을, 250m는 머리 부분을 조준하는 것이죠.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조준선 정열의 목표는 가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업복이는 왜 대길이의 머리를 겨냥했을까요? 커다란 몸통을 제쳐두고 그 자그마한 머리를 겨냥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업복이의 가슴속에 불타는 복수심이 평정심을 잃게 했을까?

17세기로 돌아가서 업복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업복이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입니다. 업복이를 비롯한 노비들을 잡아들인 대길이가 오포교에게 넘기면서 돈을 받는 모습에 분노한 업복이가 대길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었죠. "니놈 대갈통을 부셔버릴 기야." 

그리고 양반들을 모조리 죽여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노비들의 당에 입당한 업복이가 화승총를 시험할 시범케이스로 대길을 지목하고 또다시 말합니다. "내 그놈 대가빠리부터 쪼사버릴 기래요." 복수심에 불타는 업복이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어떻게 화승총으로 바람구멍을 낼 것인가, 이것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중요한 순간에 사격술의 FM을 잊어버리고 머리를 조준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타는 복수심은 오직 대길의 대갈통만 눈에 보이도록 했을 테죠. 만약 업복이의 총이 화승총이 아니라 망원렌즈가 달린 초현대식 저격총이었다면 머리를 조준해도 무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 귀를 조준한들 백발백중을 못 시키겠습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업복이의 총은 임진왜란 때나 보았을 화승총입니다. 총구에 화약을 쑤셔넣고, 쇠꼽(탄환) 재고, 꼬챙이질을 한 다음  불을 붙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뭐 그런 구닥다리 총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 총을 가지고 몸통이 아니라 자그마한 머리를 조준해 맞춘다는 것은 아무리 마누라 속곳 벗기기보다 쉽게 호랑이를 잡는 관동제일포수라도 어려운 일이죠. (총알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면 천하의 대길이라도 쉬 피하진 못했을 겁니다.)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러므로 업복이의 실수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복수심, 바로 그 복수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하는 건가 봅니다. 저는 업복이를 보면서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송태하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차분하게 대응합니다.

"어찌 이리 태평하십니까? 대감." 당황하여 달려온 같은 당파를 향해 이경식은 이렇게 말하죠. "일희일비 하지 마시게. 정치를 하려면 무릇 가슴엔 불이 일어나도 언행은 깊은 물처럼 잔잔해야 하니…."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대길의 추노꾼 동료 최장군(한정수)의 말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 붓 든 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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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사롭지 않은 『추노』의 인기엔 
                껄렁대는 주인공 대길의 상말 속담도 한 몫


『추노』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3회 만에 30%대에 육박하는 시청률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추노』는 재미있는 드라맙니다. 화려하고 선명한 영상미도 멋진 드라맙니다. 극의 재미와 사람의 눈을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영상에 주조연 배우들의 눈부신 연기도 뛰어난 드라맙니다. 이래저래 시청률이 상승하는 건 당연지삽니다.

그러나 조정이니 정치니 하는 것들 때문에 노비도 생기고 추노꾼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추노』의 인기를 이끄는 이유에는 이것들뿐일까? 『추노』에는 아름다운 영상, 흥미로운 스토리, 주조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에 더해 재미를 만들어주는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주연배우 장혁의 입을 통해 나오는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상말 속담들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대길어록'이라고나 할까요?

가장 먼저 상말 속담을 선보인 이는 사기꾼 원기윤(윤기원)입니다. 도망친 노비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역시 도망한 노비 원기윤은 1부 첫장면에서 압록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구하는 업복이에게 돈을 더 내놓지 않으면 줄 수 없다고 엄포를 놓고, 이에 죽일 듯이 달려드는 업복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집니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도 못한 법이야."

"살 길이 있는데 죽을 생각부터 하면 쓰나. 흐흐,  헛심 쓰지 말고 어디 지나가는 상단 봇짐이라도 털어봐. (함께 도망 중인 노비 모녀를 쳐다보며) 팔 게 있으면 팔아 넘기고. 으이? 흐흐흐흐~" 그러나 이후부터 이런 해학적인 풍자 섞인 상말 속담들은 주로 주연배우 장혁의 입을 통해서 거의 전해집니다.

도망친 훈련원 관노들을 추격하던 이대길이 갈대밭에서 마주친 송태하와 일검을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송태하가 자신의 칼을 가볍게 받아내자 이대길은 믿을 수 없는 놀라움에 신기한 듯 태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송태하와 첫 일검을 나눈 이대길이 칼을 어깨에 걸고 묘한 웃음을 날리고 있다.


"멸치도 창자가 있다더니…"

조선 최고의 무장, 전 훈련원 판관이며 검으로는 조선팔도에서 상대를 찾을 수 없다던 송태하를 일러 멸치라니요. 하긴 아직 이때까지 송태하의 정체를 모르는 이대길이 멸치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감히 노비 주제에 내 칼을 받아 내다니…", 뭐 이러면서 작다고 무시해서도 안 되겠다는 뜻이었겠지요.   

갈대밭에서 일전을 치르고 부상을 입은 대길은 동료 최장군에게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님을 강변하며 자존심을 세우려 하지만 "그럼 왜 그렇게 고전했느냐"는 장군의 말을 들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튼 언니고 나발이고 아주 물고를 틀어버려야지." 송태하와 자기가 싸우는 갈대밭에 무차별 화살 세례를 퍼부은 추노꾼 천지호 패거리를 향한 분노의 표출입니다. 

"오는 방망이에 가는 홍두깨야." 

또 대길은 나이도 한참 어린 것이 말끝마다 반말을 집어던지는 되바라진 애기사당 설화(김하은)에게 이렇게 일갈하며 껄렁거리는 그의 매력을 한껏 발산합니다. "야 이년아, 니년은 혓바닥이 반토막이야? 왜 말끝마다 반말이야 이 년아." 그러면서 대길패에 기어이 남겠다는 설화의 고집을 나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집 센 소가 매 맞는 법이야." 

대길의 상말 속담은 1회부터 간간한 양념처럼 껄렁거리는 추노꾼 대길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지며 대길을 더욱 껄렁대는 개차반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의 원작 『토지』에서도 이런 상말 속담이 많이 등장해 재미를 더해주었었지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랍니다. 

"아나 곶감아." 

'아나 곶감아'란 말의 뜻은 아마 "바랄 걸 바라라" 하는 뜻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자주 쓰시던 말이었는데, 문경이 고향이지만 진주에서 주로 자란 어머니가 쓰시던 서부경남 지역 말입니다. 『토지』의 주무대가 진주 권역이라고 할 하동 악양이니 이용의 아내 임이네가 심술을 부리며 자주 썼을 법도 합니다.

아무튼 『추노』에서도 『토지』토지 못잖게 많은 상말 속담이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다음 대길이 던져주는 상말 속담을 몇 개만 더 감상해보시겠습니다.


(되지도 않는 머리 굴리지 마라며) "호미 빌려간 년이 알고 보면 감자 캐간 년이라더니…"
"작두 타냐? 내 맘도 모르는데 내가 니 맘을 어떻게 알아."
"상놈은 나이가 벼슬이유."
"검정개든 누렁개든 맛있는 개가 최고 아닌가."

아, "검정개든 누렁개든 맛있는 개가 최고 아닌가?" 이거는 오포교 나리께서 하신 말씀이시구먼요. 어쨌든…, 그러나 저는 무엇보다 2부에서 이대길과 최장군이 주막 마루에 앉아 나누던 대화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들 둘의 대화를 들으며 콧잔등이 시큰해지기까지 했다고 말씀드리면 제 감동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시겠지요?

"우리 주제에 안돈은 씨, 길바닥에서 객사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아 최장군, 자네가 나보다 대여섯 더 많지?"
"한 예닐곱은 더 되지."
"뭐 아무튼, 그때까지 살면 어떤가? 세상 재미진가?"
"누가 재미있어서 사나. 다들 내일이면 재미있을 줄 알고 사는 거지."
"허허, 맞어 맞어. (고개를 끄덕이던 대길이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세상살이 별 거 없는 거야. 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
(그리고 대길은 마루에 벌렁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체념하듯 속삭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게야."

앞으로도 대길은 풍자와 해학이 가득 찬 상말 속담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상말 속담들은 칼잡이 대길의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할 겁니다. 어제 보니 마침내 업복이가 노비당에 입당했군요. 앞으로 양반을 모조리 죽이고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그들의 야망은 어떻게 될까요?

그러나 늘 그렇듯 이런 민초들의 혁명은 몇몇 사기꾼들에 의해 좌초되기 일쑵니다. 같은 노비로서 노비들의 등을 쳐 먹고 사는 원기윤이 어떻게 흘러 돌다 양반들을 죽이는 당에 입당하게 되고, 재능을 인정받아 당의 재산을 불리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노비당원이 됐다 한들 그 본색이 어디 가겠습니까? 결국 당을 위험에 빠뜨리는 배신자의 길을 걷겠지요. 

3부의 마지막 장면은 노비당의 당원이 된 업복이(공형진)가 화승총으로 대길을 저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말에서 떨어진 대길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물론 대길이 주인공이니 겨우 3부에서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어떻든 업복이의 총질은 중상을 입은 오지호와 이다해가 더 멀리 도망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오늘 밤이 기대되는군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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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의 힘,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장혁? 오지호? 아니면, 곽정환 감독?

추노 1부는 회식 때문에 다음날 저녁에야 보았습니다. 그 회식 장소에서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후배가 말했습니다. "오늘 저는 일찍 들어가서 추노나 봐야겠어요." 그리고 그 친구는 2차를 마다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거나하게 술이 오른 우리는 오랜만에 방앗간에 들른 참새들처럼 어시장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2차로, 3차로 아쉬움을 달랬지요.

사진제공@kbs


곽정환 감독이 만든 작품은 무조건 본다는 후배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그 후배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곽정환 감독님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 감독님이 만든 거는 무조건 봅니다. 진짜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곽정환 감독'이라고 하지 않고 꼬박꼬박 '곽정환 감독님'이라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존경하는 모양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는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합니다. 그리고 그런 직업에 걸맞게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주로 갇혀 있는 국내와 헐리우드를 벗어나 프랑스, 이태리 등 유럽 나아가 동유럽, 인도, 아시아까지 폭이 아주 넓습니다. 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후배가 추노를 일러 "아마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는 "곽정환 감독님(!)이 만드신 작품은 무조건 본다"고 하니 아니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 오늘 저녁이로군요. 컴퓨터로 재방송(재방송이 맞나요? 아무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포스팅을 이미 몇 시간 전에 올렸습니다. <추노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

저는 그 포스팅에서 <추노>가 단 1부의 방영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한 것은 장혁의 매력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실로 장혁은 추노를 위해 준비된 인물이었습니다. 아니 추노 대길이 오직 장혁을 위해 마련된 캐릭터라고 말했던가요? 아무튼 장혁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껄렁거리는' 그의 독특한 연기는 대길을 조선 최고의 추노답게 만들었습니다. 

사진제공@kbs


그러면서 저는 감독의 연출과 시나리오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했습니다. 단 1부의 방영만으로도 세상을 평정한 것은 오로지 장혁의 빛나는 매력 때문이었다는 말로 우선은 지켜보기로 하자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전 2부를 보고난 후에 비로소 저는 이 드라마의 가공할 마력 뒤에는 감독의 놀라운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역시 추노의 힘의 원천은 곽정환 감독이었다

아, 정말 그렇군요. 제게 곽정환을 '감독님'이라고 호칭하던 후배의 말처럼 과연 곽정환 감독은 대단한 연출자였습니다. 신비하고 화려한 영상들이 마치 구름처럼 흐르는(실제로 화면이 구름처럼, 어떨 땐 바람처럼, 물결처럼 흘렀어요) 장면들에선 온 몸의 근육이 팽창하며 숨이 멈출 듯했습니다. 마지막 광활한 갈대밭에서 마주 선 장혁과 오지호를 보셨나요? 그 두 사람 주변을 흘러드는 화사한 영상들에선 비장한 슬픔마저 배어나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2부에서 드디어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오지호, 껄렁거리는 대길과 대조되는 강인하고 비장한 남자의 모습에서 뿜어 나오는 매력이 대길과는 또 다릅니다. 그렇군요. 대길에게 송태하가 없다면 조선 최고의 추노꾼 대길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오지호 역시 장혁이 없이는 자신을 완성하기 힘들겠지요.


그러나 역시 이들 두 사람의 멋진 연기를 화려한 영상에 담아내는 것은 감독이었습니다. 광활한 갈대밭을 가로질러 달리는 두 사람의 동작들을 감싸고 흐르는 신비한 화면의 변화들은 순식간에 보는 사람을 압도했습니다. 신비한 빛에 싸여 세상이 멈춘 듯한 화면, 그 속에서 빛나는 대길과 송태하의 숨 막히는 대결, 이것들을 만들어낸 것은 역시 감독이었습니다. 

하하~ 아무튼 저도 앞으로 그 후배처럼 곽정환을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될까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그렇게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시진 않는군요. 그리고 <추노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극본을 쓰신 분은 천성일 작가로군요. 그런데 천성일 작가가 올려놓은 한 구절이 제 눈에 너무나 크게 들어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희망은 작고 부질없지만, 그것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아, 명품 감독에 명품 작가의 어록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겁니다. 저도 바로 몇 시간 전에 썼던 <추노 장혁을 위해 준비된 인물, 대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중요하다

"작년 한해를 풍미했던 <선덕여왕>은 현대 정치사를 고대 신라에 옮겨놓은 것 같은 각본으로 대성공을 연출했습니다. 선덕여왕이나 미실은 단순히 고대 신라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호흡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커다란 공감을 불러냈습니다. 인터넷은 온통 <선덕여왕> 천지였지요. <추노>(본문에선 '장혁')도 그리 할 수 있을까요? 1부에서 만난 <추노>라면 충분히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이 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추노>에 거는 기대가 더 큽니다. <추노>에는 곽정환 감독의 화려하고 신비한 영상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명품 감독과 만난 명품 작가가 전해주는 메시지가 어떤 것일지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정말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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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부 만에 세상을 평정한 <추노>의 힘은?

<추노>가 단 1부 만에 세상을 평정한 듯이 보입니다. 여기엔 단연 장혁의 공이 으뜸입니다. 장혁이란 배우가 누굴까? 자주 보아왔던 배우지만, 제게 그리 큰 흔적을 남긴 배우는 아닙니다. 뭐랄까, 좀 느끼하다고나 할까, 하여간 제 스타일은 아니었던 거죠. 그런 제가 보기에도 장혁이 맡은 대길이란 추노의 캐릭터는 참 매력적입니다.


추노 대길, 장혁을 위해 마련된 캐릭터

추노 대길은 실로 장혁을 위해 마련된 인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추노>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우와~ 장혁이 저렇게 멋진 배우였던가?" "장혁이 저토록 연기가 뛰어난 배우였던가?" 어쩌면 '껄렁거리는' 기질을 마음껏 선보일 수 있는 대길의 역할에 장혁이야말로 최고의 적임자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추노 대길이 장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으리라는 상상도 그리 오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추노 대길이 먼저 존재하고 다음에 장혁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는 대길 역에 정우성, 고수, 이준기, 강지환이 거론되었다고 합니다. ('미디어다음/마일리데이'에서 인용) 

그러나 정우성은 영화배우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강지환은 눈에 독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제됐고, 고수와 이준기는 고사했습니다. 결국 최지영 책임프로듀서가 처음부터 낙점하고 있던 장혁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설득해 기용한 것이 성공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마치 장혁을 위해 마련된 듯한 추노 대길이 탄생한 것입니다.

노오란 먼지가 뿌옇게 날리는 압록강 변 만주 땅에 나타난 세 명의 남자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첫 화면은 마치 오래된 무협영화를 보는 듯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광야의 먼지를 막기 위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걷어내자 장혁의 날카로운 눈매와 꽉 다문 입술이 나타났고 추노의 카리스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미 이 첫 화면으로 대길은 뭇 사람들을 장악한 것입니다. 사실은 저는 어제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에서야 집에서 컴퓨터로 재방을 보았습니다. 어제는 회식자리가 있어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탓입니다. 그런데 한 후배는 10시가 되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제게 말했습니다. "빨리 가서 <추노>나 봐야겠어요." 

추노의 성공, 우선은 감독보다 눈빛 하나로 세상을 장악한 대길의 공

그는 곽정환 감독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일단 곽정환이 만들었다고 하면 무조건 본다는군요. 이 후배는 대형극장에서 영사기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친구가 좋은 영화 혹은 드라마라고 하면 일단은 인정해주고 들어가는 편이죠. "음, <추노>가 그렇게 훌륭한 드라마였군. 그럼 나도 꼭 봐야지." 

물론, 그 후배의 추천이 아니더라도 저는 이 드라마를 보았을 겁니다. 어차피 <아이리스> 후속으로 나오는 이 프로를 보게끔 되어있었던 것이니까요. 그런데 역시 <추노>는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곽정환 감독이 만든 드라마라서 멋진 게 아니라 장혁이 만들어내는 추노 대길이 멋진 드라마였습니다. 시나리오나 연출에 관해서는 더 지켜보아야겠지요. 

그러니 일단 단 1부로 세상을 평정한 이 위업은 결국 장혁의 공로인 셈입니다. 여기엔 대길을 빛나게 하는 다른 또 다른 추노 성동일의 역할도 컸습니다. 역시 성동일에게도 그를 위해 마련된 것이 분명한 추노 천지호가 있습니다. 왕년에 자기 휘하에서 졸병질을 하던 대길에게 밀린 한수 이북 최고의 추노꾼이 바로 천지홉니다. 

냉혹하고 야비하며 근성으로 똘똘 뭉친 인간성이라곤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추노꾼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배우 성동일로 인해 추노 대길은 더욱 빛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뛰어난 주연 뒤에는 반드시 뛰어난 조연이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림 속의 인물도 훌륭한 배경이 있어야 더욱 멋지게 그려지는 법이죠. 


대길과 더불어 <추노>를 이끌고 갈 쌍두마차 오지호는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재 음모에 휘말려 검으로는 당할 자가 없다는 조선 최고의 무장에서 관노 신분으로 전락해 쥐죽은 듯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곧 그에게 소현세자의 피맺힌 서찰이 전달되면 그의 녹슨 칼에도 광채가 일겠지요. 

또 다른 주인공 오지호의 본격적인 등장으로 장혁은 더욱 빛나게 될 것 

작년 한해를 풍미했던 <선덕여왕>은 현대 정치사를 고대 신라에 옮겨놓은 것 같은 각본으로 대성공을 연출했습니다. 선덕여왕이나 미실은 단순히 고대 신라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호흡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 시대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커다란 공감을 불러냈습니다. 인터넷은 온통 <선덕여왕> 천지였지요. 

장혁도 그리 할 수 있을까요? 1부에서 만난 장혁이라면 충분히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추노 대길의 눈을 통해 쏘아져 나오는 장혁의 강렬한 눈빛,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벌써 세상이 평정된 것처럼 보이는데, 이제 곧 오지호와 쫓고 쫓기는 대결이 벌어진다면 그 평정된 세상에 다시금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추노 대길과 쫓기는 노비 송태하, 언년이 김혜원의 대 추격전이 빠져들게 될 당쟁의 소용돌이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것인지…, 오늘 밤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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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