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영국'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4.12.05 박종훈과 홍준표, 대체 누가 인면수심? by 파비 정부권
  2. 2014.03.05 잘한다! 여영국, 발로 뛰었습니다 by 파비 정부권
  3. 2014.02.03 여영국, 하늘에서 온 편지(상남동사람들) by 파비 정부권
  4. 2014.02.03 하늘에서 온 아들의 편지(상남동사람들) by 파비 정부권
  5. 2014.01.29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 by 파비 정부권
  6. 2013.06.10 여영국 "홀에 작업복이 없잖아예!" by 파비 정부권
  7. 2013.06.07 여영국, "권리금 강탈하는 '갑'" by 파비 정부권
  8. 2013.06.05 여영국, "작년은 가을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9. 2013.05.10 홍준표를 창조컨설팅으로 보내자는 말인가? by 파비 정부권
  10. 2009.12.13 대림차와 지역노조 양쪽에서 눈총받는 천막농성 by 파비 정부권 (2)

교육감과의 대화두 번째 포스팅을 위해 박삼동 도의원(새누리당, 경남도의회 부의장)이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했다는 발언의 요지를 열심히 들여다보다 도저히 해독 불능하여 아래와 같이 페이스북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얼마 전 우리나라 장년층의 문자 독해력 수준이 OECD 22개국 중 최하위권인 20위에 랭크됐다는 기사를 봤는데요거의 실질 문맹 수준이라고 하더라고요한글이 그렇게 쉽고 우수한 글인데 어째서 독해능력은 문맹 수준이라는 걸까요아무튼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도 아래 말이 도무지 독해가 안 되는데요아래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는 분해독 좀 부탁드립니다진짜로요블로그에 <교육감과의 대화포스팅 하려는데 저 말이 해독이 돼야 진도가 나가겠어요ㅠㅠ 참고로 아래 말씀은 창원 출신 박삼동 경남도의원의 발언이고요부의장이라지요 아마?

지사님교육감이 인면수심도 유분수저렇게 자기중심적으로 감사를 거부하는데, 3040억 원이란 예산을 직무유기라는 오명을 받더라도 포기하십시오.”

특히 뒷부분 말씀이 이해가 안 됩니다무슨 오명을 받는다는 거고 포기할 3040억의 예산은 또 뭔지……. 인면수심도 유분수란 말은 부족하나마 대충 이해는 갑니다어린아이 과자 조르듯 예산은 달라고 떼쓰면서 감사는 안 받겠다는 게 인면수심이란 건데요인과관계의 존재 여부를 떠나 말은 이해가 되는데뒷말이 영~~~~

  

@<경남도민일보> 박삼동 도의원 지역구 학부모들이 1일 석전2동 주민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정질문에서 한 발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 김민지 기자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 여영국 도의원의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저 지금 울고 있습니다.

도청 교육청 예산심의에서 홍지사의 뜻이 100% 관철되었습니다.


세입에서 급식지원비 257억을 삭감했습니다.

   경남도청에서 교육청에 주겠다고 약속한 급식비 지원비입니다.

세출분야에서 엉뚱한 257억을 삭감했습니다.

  교원인건비교육전문직인건비비정규직인건비신규학교건설비비정규직노조지원비 등   에서 삭감 했습니다.

급식용 세입인 257억을 삭감했으면 세출도 세입 목적에 따라 편성된 급식비지출예산을     삭감해야지 급식지출예산을 그대로 둔채 법정 인건비법정부담금 등 엉뚱한 예산을 삭감    한 것입니다.


무상급식하고 싶으면 인건비 깍아서라도 해라?


  교육청자체예산으로 무상급식을 하라던 홍지사 뜻이 그대로 반영....

  홍지사주장이 그대로 부대의견에 반영되었네요

 

  "무상급식과 관련된 시.군 전입금의 세입결손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제 1회 추경에산편성     시 순세계잉여금 등의 자체 재원으로 세입을 충당하도록 할 것"


반면 도청예산심의는 전혀 다릅니다.

  누리과정 예산은 도 교육청에서 도청으로 예산을 주는데 교육청이 필요한 재원확보를 다     못해서 예산에 일부만 반영했는데 누리과정 세입과 세출 공히 597억을 삭감했습니다.


급식비 지원 여지를 없애 버린 예산심의

  도청 예비비로 편성되었던 급식비원비 257억을 '서민자녀 교육지원과목을 2개 신설하     여 129,128억 각각 편성하였습니다급식비지원대신 서민자녀교육비 직접지원도 홍지     사가 이야기하던 그대로 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도의원들의 자의적 판단의로 한 결정이라면 누가 믿겠습니까?

이건 박종훈 교육감에 대한 도청의 야비한 보복입니다.

이건 박종훈 교육감에 대한 도청의 야비한 폭력입니다.

이건 행정이 아니라 갑의 야비한 횡포입니다.


정말 우울합니다.

정말 제가 두렵습니다.

제 마음에 도의회는 점점 지워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너무나 분한 마음에 급하게 써내려가 정제되지 않은 글이긴 하나 치밀하게 준비했을 도의원의 도정질의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나는 아직도 독해가 안 된다. 인면수심’, ‘직무유기’, ‘오명……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무엇일까? 참 어렵다. 

 (계속)


관련포스팅; 박종훈교육감, 인면수심 얼굴이 왜 이렇게 착해? http://go.idomin.com/1068    

Posted by 파비 정부권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여영국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에 이어 역시 편집회의에서 삭제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5장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의 한 부분인데요. 자살한 편의점주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너무 뜬금 없다는 평가가 있어서 편집회에서 삭제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도입부분을 함께 소개합니다.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목차; 바닷가의 자살사건- 조선소, 그리고 가로등- 불안한 하루-불행의 전조-

           유혹- (하늘에서 온 편지)- 사건의 전말- 유배지의 밤


 바닷가의 자살사건

 

시내를 벗어난 자동차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시원하게 뻗은 산업도로 왼편 언덕 아래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바다는 푸른 사막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모든 빛을 집어삼킨 심연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물과 뭍을 두 세계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는 영원한 숙명적 장벽’ 건너 그곳에 있었다쪽빛 바다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그 너머로 저 멀리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배 한척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떠있는 것이 보였다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영원히 잠든 것처럼 정지된 배는 무겁고 나른한 파도가 출렁이며 몸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을 것만 같았다피에르 로티가 묘사한 것처럼 거대한 도살자 같은 바다는 붉은 노을에 젖은 잿빛 입김을 내쉬면서 가만히 누워 졸고’ 있었다실로 비할 데 없이 고요하고 온화한 평화가 한가롭게 노니는 심연 저 깊은 곳에서 낡고 오래된 성당 풍금처럼 은은하게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멍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깊고 넓어서 자동차 엔진 소리조차 파묻혀 들리지 않았으며 꿈결처럼 모든 존재가 희미하게 증발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바다는 마법과도 같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다바다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거대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고 끊임없는 수태와 탄생의 신비를 자아내는 생명의 보고였다그리하여 모든 생명들은 최초에 바다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결국에는 모두 물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키워낸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거대한 바다는 온갖 것을 다 품고 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파도를 일으켜 웅장한 포효소리와 함께 바위에 부딪혔다하얀 포말이 연기처럼 흩어진다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해변과 장중한 침묵으로 누워있는 해역을 바라보며 조유묵이 말했다.

아직 멀었나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

도로는 깨끗하게 잘 뚫려 있었다짜디 짠 소금기를 담은 해풍이 아스팔트 위를 달려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에는 묘한 여운이 스며있었다정신없이 달려온 일상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겪게 될 상흔의 기억들이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녹아있었다곧 이어 시가지의 육중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며 나타났다잠자듯 고요한 섬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도시였다자동차는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잿빛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스쳐가는 자동차를 배웅하고 있었다백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도시를 쳐다보며 조유묵은 생각했다.

도대체 편의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다니그럼 여기 말고 이 섬에 다시 다른 도시가 또 있어 나타난다는 것인가?”

…………… 


(편의점주의 자살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은 한적한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도입부와  이 글 사이에 편의점주의  어머니와 고인이 편의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 편의점 운영과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 등이 이어집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저는 잘 있습니다여긴 너무나 평온하답니다어머니가 계신 그곳에서 이곳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일 테지만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실제로는 너무나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요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이미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그걸 밝혔다지요아마도 이곳에서의 하루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의 시간으로 보자면 1년은 족히 되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곳에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선 너무나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어머니에게 그걸 직접 보여드릴 수 없다니 정말이지 한스럽습니다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아직도 울고 계실 테지만저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에요.어머니이제 울지 마세요저는 너무나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요이곳은 특별한 슬픔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는 곳이에요누구에게 상처 줄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죠그래서 혹자에게 지루할는지는 몰라도 그러므로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에요그러나 제게 오직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뿐이랍니다.


옛날 토마스 모어란 사람이 유토피아란 책을 써서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말했었지요사전이 해석하는 대로 말하자면유토피아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공산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의 이상국이에요토마스 모어란 분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서 대법관이었는데 영국 왕이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재혼하는 것에 반대하여 끝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다가 결국 목이 잘렸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가톨릭교회법이 그랬다고 합니다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혼과 재혼은 금지되었던 거지요정말 고집이 센 분이었어요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단두대에 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니 놀랍고도 존경할만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에 반해 헨리 왕은 그를 죽이고도 모자라 반역의 문에 한 달 동안이나 그의 목을 걸어 놓았었다니 정말 포악한 임금이었지요.


그러나 아무튼 그로 인해 우리는 토마스 모어란 분이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그의 말이라면 온전하게 사실이라고 믿어도 좋을 만큼그러므로 제가 있는 이곳은 사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가 아니라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의 의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제가 너무나 평온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충분히 믿으셔도 좋아요저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어머니가 걱정이지요그래서 이렇게 어머니를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랍니다그러나 사실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가 얼마나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군요아무래도 저는 어머니와 달리 사는 세계가 달라서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게 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러나 어머니저는 그곳에서 보았을 때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자 해요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얼마나 평안하게 잘 지내는지를 보여드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우리가 처음에 편의점 사업을 하고자 마음먹고 가게를 구하러 다닐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지요어머니가 저에게 얘야너는 편의점이든 휴대폰 가게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았지 않니직접 그런 가게라도 한번 해보지 않으련?” 하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이지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답니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잠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아늑한 곳에 있는 아담한 가게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작업복을 입고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늠름하게 보이던지…….

어머니와 제가 함께 만났던 본사직원도 그렇게 말했었지요.


여긴 정말 최상의 자립니다어떻게 이런 자리를 구하셨는지 정말 용하십니다선생님께서 안 하시겠다면 제가 하고 싶군요.”


어머니께서 평소에 그러셨지요사람이 망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라고요.


세상을 돌아보렴건실하게 제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큰일이 일어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다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집안도 망치고 몸도 망치는 거란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었지요그런데 그날만큼은 우리도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군요. “월수입 600만 원 보장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저도 그만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충고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자책하지 마세요그건 어머니 탓이 아니랍니다모든 것이 이 못난 아들 탓이지요제가 제대로 직장만 잘 구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하셨겠습니까모든 것이 제 탓이에요.


그러니 어머니절대 슬퍼하지 마세요어머니는 오로지 크신 자식사랑을 가졌던 죄밖에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제가 잠시 부산에 일 보러 간 사이에 어머님이 제 대신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모든 준비를 해놓으셨을 때저는 실로 어머님의 크신 은혜를 가슴 깊이 느꼈답니다.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되었구나그것도 내가 주인인 직장이야열심히 일해서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하나뿐인 여동생 잘 보살피며 멋지게 살아볼 테야.”


그렇게 다짐하며 희망 가득한 미래의 설계도를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습니다그렇게 3개월 정도는 정말 행복했었지요어머니도 사랑하는 여동생 분이도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몇 개월이 제게는 정말 꿈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3개월뿐이었지요사실은 그 3개월도 불행의 전조를 보여준 것 말고는 그 어떤 밝은 전망도 우리에게 준 것이 없었지만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던 가봅니다사랑에 눈이 멀 듯이 우리는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탐욕이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욕심이 너무 소박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어머니와 분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꿈그게 제 탐욕의 전부였거든요.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저는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을씨년스런 그 편의점을 혼자 밤새워 지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본사직원은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에게 다른 장소를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을까왜 매달 6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보장된다고 큰소리를 쳤을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저는 정말 그가 미웠습니다어떨 땐 정말이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답니다그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었어요그도 이 사막과도 같은 인생의 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가련한 생명체일 뿐이었죠산다는 것은 고통이니까요그리고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그는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건수를 올려야 했을 거예요.


이른바 실적이라 부르는 것이죠그들 점포개발 영업사원들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곳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하게 다 보이더군요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 사기 쳐서 등쳐먹고 사는 그들은 제가 있는 이곳에 올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요그러니 그들이 훨씬 더 가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제가 그곳에서 550여일 가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울 때 유일하게 저를 찾아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그 두려움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톱만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그 550여 일의 밤마다 뼈저리게 느꼈고 깨달았습니다할 수만 있다면 조선소 정문으로 뛰어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편의점 매장에 줄을 세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그것은 그저 망상일 뿐이었지요.


대낮보다 더 환한 조명 아래 앉아서 깜깜한 바깥을 쳐다보면 어떨 땐 제가 말로만 듣던 지하 취조실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유리창 너머 저곳에서 누군가 제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이럴 때이런 나날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저의 두려움도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어머니께서 어느 날 제게 그러셨지요.


얘야밤에는 손님도 없는데 힘들면 야간에는 문을 닫지 그러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 어머니가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그러나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아니 한 것이 아니랍니다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불을 켜놓고 밤새 가로등처럼 지키고 서있는 것이 저로서도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거든요수익이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밤새 켜놓는 램프의 전기세도 나오지 않는 적자의 노동이 제게는 고문처럼 아팠습니다.


하루에 도 몇 번식 최소한 야간영업만이라도 그만둬야지 둬야지 하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만약 하루라도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벌로 강제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던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듣자하니 제가 죽고 난 이후에 현대판 지주-소작 관계다 뭐다 해서 난리들이던데왜 꼭 그들은 누군가가 죽어나간 뒤에야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요왜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어머니저는 강제노동을 당한 것이에요억지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에요그러나 이것은 흔히들 말하는 강제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답니다강제노동에 대해서 사전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지요.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억압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행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제가 했던 강제노동은 정신상신체상의 억압뿐 아니라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까지 병행하는 것이었어요게다가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제노동을 계속 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했어요말이 안 되지요어머니사실이에요제가 진즉에 어머니에게 말씀 못 드린 것은 어머니가 너무 마음 아파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였어요죄송해요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랍니다.


야간영업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어요저는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를 빌려 써야만 했답니다손님이 아무도 없어 수입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밤에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면 마이너스가 나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수학이지요손님은 없어도 불은 켜놓아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아야 하니까요편의점은 그래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아무리 어려워도 알바 직원들 월급은 떼먹기 싫었어요정말이지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저도 실은 알바 출신이니 알바의 마음은 알바가 알아준다고나 할까요그래서 독사과인 줄 알면서도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저도 보았답니다이곳에서도 그곳 사람들이 보는 신문을 가끔 볼 기회가 있어요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마지막에다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유족들이 우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으로 대부업체의 독촉문자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입금하지 않을 시 독촉장이 발송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얼마나 원통하셨을까요아들이 죽었는데그 장례식장에서 아들 휴대폰으로 비정하게 날아드는 채무독촉 문자메시지를 보는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하지만 어머니저는 이곳에서 다 보고 있었답니다어머니의 그 찢어지는 가슴을 저는 다 이해하고 있었답니다.용서해주세요어머니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기를 써보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동생 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어째서 어린 동생으로 하여금 연대보증인이 되게 했을까요분이에게는 어떻게든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어요그리하여 슬프지만 저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이제 더 이상 울지 마세요어머니가 자책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답니다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끝을 알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뿐이랍니다모든 것은 제가 못난 탓이지요제가 제대로 된 직장만 얻을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이토록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드리진 않았을 터인데한스럽군요그리고 그 본사직원 탓도 아니에요그이도 원망하지 마세요그 사람도 실은 우리처럼 위로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랍니다.


저는 편의점을 시작하고 두 번째 맞는 추운 겨울 어느 날깨달았습니다그날도 오로지 우리 가게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뿐 사방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그날은 하늘에 별들도 모두 숨어버려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오래된 습관으로 저 멀리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다만 그걸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이제 지쳤어나는 이제 쉬어야 해거추장스런 낡은 껍데기만 벗어버린다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 거야그건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야.”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저는 그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거대한 자본대기업이란 걸 깨달았어요그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죠그들은 제 피를 다 빨아먹고 마침내 제 뼈를 발라서 갈아 마실 위인들이죠제 몸이 갈기갈기 찢겨 공중에 흩어지고 나면 그 다음엔 어머니와 분이에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제가 떠나기로요제가 모든 것을 안고 죽는다면설마 그때도 그들이 모질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보다 무서웠어요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죄송해요어머니정말 무서웠어요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요정말 이기적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편의점 냉장고 뒤편 자그마한 공간에 숨어 술을 마실 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왔어요번개탄을 피웠어요양주에 수면제를 조금 탔는데 술맛은 그런대로 괜찮더군요약을 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그렇게 어머니와 제 희망이 꽃필 줄로만 알았던 그곳편의점 한구석에서 저는 생을 마쳤습니다어머니와 사랑하는 제 여동생 분이와 헤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저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어머니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고 떠나온 제가 있는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여기선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요실업자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답니다저처럼 회사에서 잘리고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는 사람들 꼬드겨서 피 빨아먹는 가맹점이 없는 것도 물론이고요저는 이곳에서 완전한 자유인이랍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저는 자유인으로 간주되었었죠하지만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었어요이곳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저는 노예였습니다생각해보세요어머니. 1년 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24시간을 편의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냐고요옛날 프랑스에 루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


루소가 살던 시대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가맹점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한 노예란 신분적으로 예속된 전통적 의미의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노예는 겉보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루소의 노예보다 그 참상이 훨씬 참혹하답니다전통적 의미의 노예는 육신만을 주인에게 구속당하면 되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육신뿐 아니라 사채까지 빌려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가 마침내는 완전한 파멸까지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존재를 인정했다지요시민으로 불리는 자유인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노예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거든요노예가 대신 힘든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유인들은 광장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사색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완전한 자유란 시간을 자유롭게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그들은 그 허비할 수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정치적 자유를 위해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당연히 그것은 노예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고 유지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노예가 상당히 비쌌다고 하더군요그래서 노예가 병이 들면 주인은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돈을 들여 노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는 거지요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테지만요.


그러나 어머니오늘날의 현대판 노예는 어떤가요자유로운 노예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는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 같은 존재일 뿐이어서 병이 나든 말든 상관조차 하지 않습니다제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도리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계약에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위약금을 요구하지요.


루소가 말한바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라는 정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답니다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야라고 하면서 크게 화를 내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에요어떤 사람에겐 노예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적이지만또 어떤 사람에겐 노예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니 말이에요하지만 공상일 뿐이었어요제겐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요.제가 할 수 있는 혁명은 오로지 제 자유의지에 따라 제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아무튼 저는 이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이곳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쇠사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이곳에선 어떤 차별이나 경제적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이곳은 실업이 없어요비정규직도 없고요그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누구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죠그러나 대신 누구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어요그러면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잃게 되니까요그리고 주말은 반드시 쉬어야 하죠이것들은 의무사항이에요.


말하자면 자유인에게 부과되는 부자유한 속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우리는 이 부자유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필요할 때 원하는 사람에겐 안식기간도 주어지는데요저는 주로 그 시간들을 아무런 계획 없이 허비하는데 쓰고 있어요저는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여기에 와서야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사랑하는 어머니보세요.


분이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시나요정말이지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습니다제가 이곳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어머니와 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그리움보다 더 큰 고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그것만 빼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어머니가 걱정이지요제가 전하는 이 편지를 어머니가 받아볼 수 있어서 어머니의 걱정이 덜어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그렇게 된다면 유일한 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곳에서 저는 진정으로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어머니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언젠가는 만나게 될 그날을 기약하며 서로 각자가 사는 곳에서 열심히 살기로 해요저도 그러겠습니다분이에게도 제 사랑의 인사를 전해주세요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이제 저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오로지 어머니의 건강만을 생각하세요그러면 저는 더없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에 이어 역시 편집회의에서 삭제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5장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의 한 부분인데요. 자살한 편의점주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너무 뜬금 없다는 평가가 있어서 편집회에서 삭제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도입부분을 함께 소개합니다.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목차; 바닷가의 자살사건-조선소, 그리고 가로등-불안한 하루-불행의 전조-

           유혹(-하늘에서 온 편지)-사건의 전말-유배지의 밤


 바닷가의 자살사건

 

시내를 벗어난 자동차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시원하게 뻗은 산업도로 왼편 언덕 아래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바다는 푸른 사막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모든 빛을 집어삼킨 심연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물과 뭍을 두 세계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는 영원한 숙명적 장벽’ 건너 그곳에 있었다쪽빛 바다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그 너머로 저 멀리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배 한척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떠있는 것이 보였다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영원히 잠든 것처럼 정지된 배는 무겁고 나른한 파도가 출렁이며 몸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을 것만 같았다피에르 로티가 묘사한 것처럼 거대한 도살자 같은 바다는 붉은 노을에 젖은 잿빛 입김을 내쉬면서 가만히 누워 졸고’ 있었다실로 비할 데 없이 고요하고 온화한 평화가 한가롭게 노니는 심연 저 깊은 곳에서 낡고 오래된 성당 풍금처럼 은은하게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멍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깊고 넓어서 자동차 엔진 소리조차 파묻혀 들리지 않았으며 꿈결처럼 모든 존재가 희미하게 증발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바다는 마법과도 같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다바다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거대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고 끊임없는 수태와 탄생의 신비를 자아내는 생명의 보고였다그리하여 모든 생명들은 최초에 바다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결국에는 모두 물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키워낸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거대한 바다는 온갖 것을 다 품고 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파도를 일으켜 웅장한 포효소리와 함께 바위에 부딪혔다하얀 포말이 연기처럼 흩어진다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해변과 장중한 침묵으로 누워있는 해역을 바라보며 조유묵이 말했다.

아직 멀었나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

도로는 깨끗하게 잘 뚫려 있었다짜디 짠 소금기를 담은 해풍이 아스팔트 위를 달려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에는 묘한 여운이 스며있었다정신없이 달려온 일상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겪게 될 상흔의 기억들이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녹아있었다곧 이어 시가지의 육중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며 나타났다잠자듯 고요한 섬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도시였다자동차는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잿빛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스쳐가는 자동차를 배웅하고 있었다백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도시를 쳐다보며 조유묵은 생각했다.

도대체 편의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다니그럼 여기 말고 이 섬에 다시 다른 도시가 또 있어 나타난다는 것인가?”

…………… 


(편의점주의 자살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은 한적한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도입부와  이 글 사이에 편의점주의  어머니와 고인이 편의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 편의점 운영과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 등이 이어집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잘 있습니다. 여긴 너무나 평온하답니다.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서 이곳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일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실제로는 너무나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요. 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이미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그걸 밝혔다지요? 아마도 이곳에서의 하루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의 시간으로 보자면 1년은 족히 되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곳에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선 너무나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그걸 직접 보여드릴 수 없다니 정말이지 한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아직도 울고 계실 테지만, 저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에요. 어머니, 이제 울지 마세요. 저는 너무나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요. 이곳은 특별한 슬픔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는 곳이에요. 누구에게 상처 줄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죠. 그래서 혹자에게 지루할는지는 몰라도 그러므로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에요. 그러나 제게 오직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뿐이랍니다.


옛날 토마스 모어란 사람이 유토피아란 책을 써서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말했었지요. 사전이 해석하는 대로 말하자면, 유토피아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의 이상국이에요. 토마스 모어란 분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서 대법관이었는데 영국 왕이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재혼하는 것에 반대하여 끝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다가 결국 목이 잘렸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가톨릭교회법이 그랬다고 합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혼과 재혼은 금지되었던 거지요. 정말 고집이 센 분이었어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단두대에 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니 놀랍고도 존경할만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헨리 왕은 그를 죽이고도 모자라 반역의 문에 한 달 동안이나 그의 목을 걸어 놓았었다니 정말 포악한 임금이었지요.


그러나 아무튼 그로 인해 우리는 토마스 모어란 분이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의 말이라면 온전하게 사실이라고 믿어도 좋을 만큼. 그러므로 제가 있는 이곳은 사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가 아니라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의 의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제가 너무나 평온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충분히 믿으셔도 좋아요. 저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가 걱정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어머니를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랍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가 얼마나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군요. 아무래도 저는 어머니와 달리 사는 세계가 달라서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게 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러나 어머니. 저는 그곳에서 보았을 때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자 해요.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얼마나 평안하게 잘 지내는지를 보여드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우리가 처음에 편의점 사업을 하고자 마음먹고 가게를 구하러 다닐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가 저에게 얘야, 너는 편의점이든 휴대폰 가게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았지 않니? 직접 그런 가게라도 한번 해보지 않으련?” 하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이지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답니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잠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아늑한 곳에 있는 아담한 가게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늠름하게 보이던지…….

어머니와 제가 함께 만났던 본사직원도 그렇게 말했었지요.


여긴 정말 최상의 자립니다. 어떻게 이런 자리를 구하셨는지 정말 용하십니다. 선생님께서 안 하시겠다면 제가 하고 싶군요.”


어머니께서 평소에 그러셨지요. 사람이 망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라고요.


세상을 돌아보렴, 건실하게 제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큰일이 일어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다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집안도 망치고 몸도 망치는 거란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었지요. 그런데 그날만큼은 우리도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군요. “월수입 600만 원 보장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저도 그만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충고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어머니 탓이 아니랍니다. 모든 것이 이 못난 아들 탓이지요. 제가 제대로 직장만 잘 구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하셨겠습니까? 모든 것이 제 탓이에요.


그러니 어머니, 절대 슬퍼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오로지 크신 자식사랑을 가졌던 죄밖에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제가 잠시 부산에 일 보러 간 사이에 어머님이 제 대신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모든 준비를 해놓으셨을 때, 저는 실로 어머님의 크신 은혜를 가슴 깊이 느꼈답니다.


,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되었구나. 그것도 내가 주인인 직장이야. 열심히 일해서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하나뿐인 여동생 잘 보살피며 멋지게 살아볼 테야.”


그렇게 다짐하며 희망 가득한 미래의 설계도를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는 정말 행복했었지요. 어머니도 사랑하는 여동생 분이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몇 개월이 제게는 정말 꿈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3개월뿐이었지요. 사실은 그 3개월도 불행의 전조를 보여준 것 말고는 그 어떤 밝은 전망도 우리에게 준 것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던 가봅니다. 사랑에 눈이 멀 듯이 우리는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탐욕이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욕심이 너무 소박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와 분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꿈, 그게 제 탐욕의 전부였거든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을씨년스런 그 편의점을 혼자 밤새워 지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본사직원은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에게 다른 장소를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 매달 6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보장된다고 큰소리를 쳤을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저는 정말 그가 미웠습니다. 어떨 땐 정말이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답니다. 그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그도 이 사막과도 같은 인생의 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가련한 생명체일 뿐이었죠. 산다는 것은 고통이니까요. 그리고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 그는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건수를 올려야 했을 거예요.


이른바 실적이라 부르는 것이죠. 그들 점포개발 영업사원들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곳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하게 다 보이더군요.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 사기 쳐서 등쳐먹고 사는 그들은 제가 있는 이곳에 올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들이 훨씬 더 가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제가 그곳에서 550여일 가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울 때 유일하게 저를 찾아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톱만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그 550여 일의 밤마다 뼈저리게 느꼈고 깨달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조선소 정문으로 뛰어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편의점 매장에 줄을 세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그것은 그저 망상일 뿐이었지요.


대낮보다 더 환한 조명 아래 앉아서 깜깜한 바깥을 쳐다보면 어떨 땐 제가 말로만 듣던 지하 취조실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유리창 너머 저곳에서 누군가 제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이럴 때, 이런 나날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저의 두려움도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느 날 제게 그러셨지요.


얘야, 밤에는 손님도 없는데 힘들면 야간에는 문을 닫지 그러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 어머니가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러나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아니 한 것이 아니랍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불을 켜놓고 밤새 가로등처럼 지키고 서있는 것이 저로서도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거든요. 수익이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밤새 켜놓는 램프의 전기세도 나오지 않는 적자의 노동이 제게는 고문처럼 아팠습니다.


하루에 도 몇 번식 최소한 야간영업만이라도 그만둬야지 둬야지 하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만약 하루라도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벌로 강제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던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듣자하니 제가 죽고 난 이후에 현대판 지주-소작 관계다 뭐다 해서 난리들이던데, 왜 꼭 그들은 누군가가 죽어나간 뒤에야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요? 왜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머니. 저는 강제노동을 당한 것이에요. 억지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흔히들 말하는 강제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답니다. 강제노동에 대해서 사전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지요.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억압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행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제가 했던 강제노동은 정신상, 신체상의 억압뿐 아니라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까지 병행하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제노동을 계속 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했어요. 말이 안 되지요? 어머니. 사실이에요. 제가 진즉에 어머니에게 말씀 못 드린 것은 어머니가 너무 마음 아파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였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랍니다.


야간영업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어요. 저는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를 빌려 써야만 했답니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 수입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밤에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면 마이너스가 나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수학이지요. 손님은 없어도 불은 켜놓아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아야 하니까요. 편의점은 그래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아무리 어려워도 알바 직원들 월급은 떼먹기 싫었어요. 정말이지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실은 알바 출신이니 알바의 마음은 알바가 알아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독사과인 줄 알면서도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 저도 보았답니다. 이곳에서도 그곳 사람들이 보는 신문을 가끔 볼 기회가 있어요. 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마지막에다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유족들이 우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으로 대부업체의 독촉문자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입금하지 않을 시 독촉장이 발송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얼마나 원통하셨을까요? 아들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장에서 아들 휴대폰으로 비정하게 날아드는 채무독촉 문자메시지를 보는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어머니. 저는 이곳에서 다 보고 있었답니다. 어머니의 그 찢어지는 가슴을 저는 다 이해하고 있었답니다.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기를 써보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동생 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 어째서 어린 동생으로 하여금 연대보증인이 되게 했을까요? 분이에게는 어떻게든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어요. 그리하여 슬프지만 저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이제 더 이상 울지 마세요. 어머니가 자책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끝을 알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뿐이랍니다. 모든 것은 제가 못난 탓이지요. 제가 제대로 된 직장만 얻을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이토록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드리진 않았을 터인데, 한스럽군요. 그리고 그 본사직원 탓도 아니에요. 그이도 원망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실은 우리처럼 위로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랍니다.


저는 편의점을 시작하고 두 번째 맞는 추운 겨울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날도 오로지 우리 가게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뿐 사방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날은 하늘에 별들도 모두 숨어버려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오래된 습관으로 저 멀리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그걸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이제 지쳤어. 나는 이제 쉬어야 해. 거추장스런 낡은 껍데기만 벗어버린다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 거야. 그건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야.”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그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거대한 자본, 대기업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죠. 그들은 제 피를 다 빨아먹고 마침내 제 뼈를 발라서 갈아 마실 위인들이죠. 제 몸이 갈기갈기 찢겨 공중에 흩어지고 나면 그 다음엔 어머니와 분이에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제가 떠나기로요. 제가 모든 것을 안고 죽는다면, 설마 그때도 그들이 모질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보다 무서웠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 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정말 이기적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편의점 냉장고 뒤편 자그마한 공간에 숨어 술을 마실 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왔어요. 번개탄을 피웠어요. 양주에 수면제를 조금 탔는데 술맛은 그런대로 괜찮더군요. 약을 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머니와 제 희망이 꽃필 줄로만 알았던 그곳, 편의점 한구석에서 저는 생을 마쳤습니다.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 여동생 분이와 헤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저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고 떠나온 제가 있는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기선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요. 실업자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답니다. 저처럼 회사에서 잘리고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는 사람들 꼬드겨서 피 빨아먹는 가맹점이 없는 것도 물론이고요. 저는 이곳에서 완전한 자유인이랍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저는 자유인으로 간주되었었죠. 하지만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었어요. 이곳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저는 노예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1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24시간을 편의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냐고요. 옛날 프랑스에 루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


루소가 살던 시대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가맹점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한 노예란 신분적으로 예속된 전통적 의미의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노예는 겉보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루소의 노예보다 그 참상이 훨씬 참혹하답니다. 전통적 의미의 노예는 육신만을 주인에게 구속당하면 되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육신뿐 아니라 사채까지 빌려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가 마침내는 완전한 파멸까지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존재를 인정했다지요? 시민으로 불리는 자유인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노예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거든요. 노예가 대신 힘든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유인들은 광장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사색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완전한 자유란 시간을 자유롭게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그 허비할 수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정치적 자유를 위해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노예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고 유지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노예가 상당히 비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노예가 병이 들면 주인은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돈을 들여 노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는 거지요.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테지만요.


그러나 어머니. 오늘날의 현대판 노예는 어떤가요? 자유로운 노예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는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 같은 존재일 뿐이어서 병이 나든 말든 상관조차 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도리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계약에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위약금을 요구하지요.


루소가 말한바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라는 정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답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야라고 하면서 크게 화를 내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에요. 어떤 사람에겐 노예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적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노예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공상일 뿐이었어요. 제겐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혁명은 오로지 제 자유의지에 따라 제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아무튼 저는 이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곳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쇠사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선 어떤 차별이나 경제적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이곳은 실업이 없어요. 비정규직도 없고요. 그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누구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죠. 그러나 대신 누구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잃게 되니까요. 그리고 주말은 반드시 쉬어야 하죠. 이것들은 의무사항이에요.


말하자면 자유인에게 부과되는 부자유한 속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부자유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할 때 원하는 사람에겐 안식기간도 주어지는데요. 저는 주로 그 시간들을 아무런 계획 없이 허비하는데 쓰고 있어요. 저는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여기에 와서야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분이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정말이지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어머니와 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리움보다 더 큰 고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 그것만 빼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걱정이지요. 제가 전하는 이 편지를 어머니가 받아볼 수 있어서 어머니의 걱정이 덜어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일한 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곳에서 저는 진정으로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어머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그날을 기약하며 서로 각자가 사는 곳에서 열심히 살기로 해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분이에게도 제 사랑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 이제 저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오로지 어머니의 건강만을 생각하세요. 그러면 저는 더없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래 글은 오는 2월 26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간하는 <상남동사람들> 편집회의에서 잘라낸 부분입니다. 즉 책에는 없는 내용이죠. 그래서 미리 이렇게 소개합니다. 약 70여 페이지가 절삭됐는데 이외에도 몇 개의 에피소드가 더 있습니다. 그것도 <상남동사람들> 출판기념회 전에 맛뵈기로 하나씩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 <파업>의 주인공은 현재 버스운전사입니다. 그는 10년 가까이 (배달)자영업을 하다 얻은 뼈가 썩어들어가는 상처를 수술한 이후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출판기념회 당일은 그가 오후반이어서 저자와의 대담에 나오기가 어려운 형편이지만 근무를 조정해서라도 꼭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책 속에는 그가 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뒷모습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만, 아직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출판기념회 웹자보를 올리오니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라 마지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 2014년 2/26일(수) 18:00 창원사파중학교 체육관 (주차는 운동장) 


파업


김휘성은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여섯시였다. 새벽까지 마신 술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 그렇군. 어젯밤에 최성규를 비롯한 공작과 친구들이 다녀갔었지.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열흘 만에 파업현장에 나타난 그들의 양 손에는 술과 안주가 한가득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최성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매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싸우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밖에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늦었지만 우리도 동참하겠습니다.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 그렇게 힘을 합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성규는 민추위(민주노조추진위원회) 회원이었고 조직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그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파업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며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파업이 세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름 전이었다. 민추위 회원이었던 하봉연이 이른바 위장취업자였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회사는 그를 즉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닷새 후에 해고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에 십여 명의 민추위 회원들이 식당에서 식판을 집어던지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우발적이었던 이 사건은 삽시간에 파업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지게차가 컨테이너박스를 실어오고 공장 정문은 거대한 바리케이드로 봉쇄됐다. 검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쇠파이프와 성난 함성에 쫓겨 관리직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어서 공장 울타리에는 붉은 깃발들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호들이 적혀있었다어용노조 퇴진 민주노조 건설. 위원장 직선제 쟁취.’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와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고맙소, 동지들. 우리 힘을 합쳐 민주노조 반드시 쟁취합시다.”


김휘성은 최성규의 손을 굳게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는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란 말이 주는 뉘앙스에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보다는 10일 만에 나타난 동지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민추위에서 홍보부장 역할을 맡았던 그는 최성규와는 막역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생각에 김휘성을 비롯한 파업노동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 300여 명이 넘던 노동자들의 대오는 날이 가면서 하나둘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떨어져나갔다. 이제 겨우 7, 80명 남짓만이 남아 곧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최성규 등이 방문해준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에 크게 고무된 김휘성 등은 파업 첫날의 의기와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3월의 밤이슬은 아직 차가웠지만 본관건물 2층 사장실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자자, 한잔들 합시다. 그동안 술 구경도 못했지요? , 이리들 둘러 앉읍시다.”


최성규가 말했다. 그들이 들고 온 봉지에는 소주며 나폴레옹, 캡틴 큐 같은 술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오징어, 새우깡 따위의 안주꺼리도 그득했다.최성규의 제안에 따라 공장 울타리 초소를 지키고 있는 정방대원들에게도 술과 안주가 전달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살벌한 파업현장은 뜻밖의 방문으로 인하여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불콰해진 김휘성은 애리조나 카우보이도 한곡 멋들어지게 뽑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일 다시 오겠다는 최성규 등을 배웅하고는 곧 사장실 바닥에 누워 얼마만인지 모를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결처럼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잠에서 깼던 것이다.


김휘성은 순간적으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지만 그는 번개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재빨리 잠자리 옆에 놓아두었던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를 맞이한 풍경은 노란 물결이었다.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화해 있었다. 그 노란색 물결 위에 몇몇 자그마한 검은 점들이 흩어져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와장창…….”


은빛 쇠파이프가 허공을 가르며 공장 마당에 세워진 승용차들을 가격했다. 새벽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회사간부들이 버리고 간 자동차 유리 파편들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며 비명을 토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검은 점들은 정문을 지키던 정방대원들이었다.


구사대다! 구사대가 쳐들어왔다!”


공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방대원들 중 일부는 본관건물 2층으로 도망쳐 들어왔고, 나머지는 정문 반대편으로 죽어라고 내달렸다. 불과 1,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노란색 물결은 쓰나미처럼 공장을 집어삼켰다.


본관건물 2층 사장실만이 거대한 파도 위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흔들거렸다.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에는 여명에 번쩍거리는 40여개의 쇠파이프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구사대의 1차 공장 진입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완전히 고립된 사장실은 한차례 태풍이 쓸고 지나간 뒤의 들판처럼 먹먹한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에 수천 명―실제로 나중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800명이었다―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란 화이바를 쓴 구사대는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공장장이었다. 그는 사장실이 마주보이는 광장(나중에 이곳은 민주광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에 구사대를 2열로 전개시켰다


그들은 모두 학생용 가방 크기의 포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주먹 크기의 돌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두 개의 소화전으로부터 소방호스도 길게 뽑아 연결했다. 별도로 편성한 일단의 노란 화이바 부대가 본관 건물 구석에 사다리를 걸치고 2층 지붕위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본격적인 2차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수천수만 개의 돌과 소방호스로부터 뿜어지는 물대포가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을 향해 발사될 것이었다. 구사대의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전세가 결정된 전투에서 후방군으로 편성돼 뒤로 빠진 많은 수의 노란 물결들이 대오를 지어 서서 마치 좋은 구경이라도 한다는 듯이 담배를 피워 물고 저희들끼리 키득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김휘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치 형틀에 묶인 사형수가 자신의 목을 자를 칼을 벼리고 있는 망나니를 지켜보고 있는 심정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으리라.


휴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장장이 앞으로 나섰다. 포마드를 발라 뒤로 빗어 넘긴 그의 머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그는 마치 전쟁의 신 아레스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했다. 양손을 허리에 얹고 두 다리는 한껏 벌려 마음껏 위세를 부린 모습이었다. 그가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전투준비!”

“1열 앞으로!”

소방호스 사격준비!”

“1열 던져!”

소방호스 사격 개시!”

“2열 앞으로!”


노란 물결 속에서 시커먼 돌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우박처럼 쏟아져 날아왔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떼들이 태양을 가리며 새까맣게 날아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차앙…… 창…… 차창.”


심장을 찢을 듯 미친 듯이 울어대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이어 후두두… 퍼벅…… 퍽하고 소리를 내며 시커먼 돌들이 사장실 양탄자 위에 떨어졌다. 뒤이어 두 개의 소방호스로부터 콘크리트 벽이라도 부수어버릴 것 같은 물세례가 쏟아졌다. 사장실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아비규환.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을 헤치며 검은 옷들은 허우적거렸다. 여기저기서 으악하는 비명이 터졌다.


쾅……콰쾅.”


그러더니 천장 위로부터 무언가 둔중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천장이 일부 깨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노란 화이바 하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구사대 중 하나가 발을 헛디뎌 지붕 위에서 사장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도 무릎까지 차오른 물바다가 그에게 구명튜브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일어서려는 찰나, 성난 검은 옷들이 그를 덮쳤다. 쇠파이프가 그의 몸 위에서 춤을 추었다. 김휘성은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사람 하나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검은 옷들 사이에 끼어들며 외쳤다.


그만 두시오, 그만 둬! 이놈은 내버려두고 일단 사장실 문부터 방어하도록 하시오!”


그때 김휘성의 눈가에 번쩍 하고 하나의 섬광이 비쳤다. 뜨뜻한 기운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피였다. 오른쪽 눈두덩이 위에 구사대가 던진 돌이 명중한 것이다.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는데 다시 한 번 소리가 나더니 섬광이 일었다. 뒤이어 흘러내리는 뜨뜻한 핏물. 김휘성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생각했다.


이러다 우리 다 죽고 말 거다. 이왕 죽을 바에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그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살을 헤치며 사장실 한쪽 구석에 쌓아둔 방어용 시너 통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약 오십여 개의 시너 통이 가지런히 적재돼 있었다. 그 중에 한통을 들어 뚜껑을 땄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 들어 올리고 그대로 뒤집어썼다. “촤아아하고 신나 흐르는 소리에 이어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이 매캐하다. 그리고는 다시 시너 한통을 들어 왼팔에 끼고 사장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불을 켜고서 높이 들었다.


돌 던지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계속하면 다 죽는다!”


일순 양편 모두에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커다란 배의 닻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작살을 들고 2층 사장실 입구까지 올라와 출입문을 부수고 있던 일단의 구사대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지 황급히 뒤로 물러나 멀찍이 달아났다.


맨 앞에서 작살을 들고 문을 부수던 화이바는 특이하게도 노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는데 마치 악어가죽처럼 울퉁불퉁한 철갑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구사대들도 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경찰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무튼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투석전을 위해 열을 지어 서있던 구사대들 중에서도 그 누구도 섣불리 앞으로 나서서 돌을 던지려는 자가 없었다. 소방호스도 멈췄다. 그러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공장장이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 이 새끼들아. 뭐 하는 거야. 빨리 던져.”


공장장은 다시 김휘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외쳤다.


어이, 소방호스. 저 새끼를 조준해서 뿌려. 빨리.”


20133. 아직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자욱한 안개가 검은 아스팔트 위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거리를 달리며 김휘성은 담배연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뿜었다. 승용차 앞으로 달려드는 안개가 마치 하얀 소복을 입고 나풀거리며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뿌연 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공중으로 피어올랐다가 열려진 창문 틈으로 쏜살같이 달음박질쳤다.


벌써 25년 전 일이군.”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스물다섯 청년이었던 그의 나이가 어느덧 지천명에 이르렀다. 25년 전 민추위의 파업은 처절하게 깨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43명은 시너와 소화전에서 뿌려진 물이 뒤범벅이 된 물에 홀딱 젖은 채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러나 민추위는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2명의 위장취업자를 빼고 모두 훈방된 41명이 다시 노조원들을 규합해 재차 투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노조사무실 앞에서 어용노조 위원장 퇴진을 외치며 노조원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가자 화가 난 공장장은 농성노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위원장의 작업복 가슴에 달린 명찰을 뜯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이렇게 악을 썼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위원장이야? 위원장이 이런 것도 하나 해결 못해? 너는 새끼야, 위원장 자격이 없어.”


노조원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위원장은 한시간만에 사퇴서를 던져버렸다. 대의원들도 일괄 사퇴했다.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노조위원장은 사퇴하기 전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노조규약을 개정해 간선제이던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실로 졸지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날 오후 열두 명의 민추위 위원들이 그들이 물러간 노조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위원장 선거에 누구를 내보낼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네가 해라” “네가 해라하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그 중 한 위원이 비밀무기명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각자가 지명하는 후보 이름을 써넣고 가장 많이 나온 사람을 위원장후보로 추대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김휘성이 다섯 표, 이영수가 네 표, 최의선이 세 표가 나왔다. 김휘성은 민추위가 추대하는 노조위원장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차로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업 주동 등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으며 차가운 밤거리를 떠돌다 마침내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16개월을 살았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는 택시운전사가 되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간 핸들을 잡고 도시의 거리를 누볐다. 택시운전사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생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2년 만에 투자한 돈을 다 털어먹은 그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월급 30만 원에 15일 운행하면 사납금 내고 하루 10만 원 내외가 남아 월 180만 원 정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택시업계의 사정은 어려워졌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에 그는 택시운전사를 그만 두고 자영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가 자영업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보다는 수입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또 자기계획 아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8년 만에 자영업시장으로부터 스스로 퇴출되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만큼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자영업은 큰돈도 벌 수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게다가 철가방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의 엉덩이 아래쪽 뼈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옛날 파업 당시에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부위가 힘든 배달일 때문에 도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이상 돌솥을 철가방에 넣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일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이번엔 버스운전사였다. 마침 택시운전을 할 때 틈틈이 시간을 내 대형면허를 따놓았던 것이다. 깜깜한 이 시간에 그는 버스를 몰기 위해 시내버스 종점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새벽 다섯 시.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어둠이 점령한 거리엔 붉은 가로등만이 유령처럼 검은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는 뿌연 안개들의 행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휘성은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인 담배를 입술로 가져갔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인 다음 푸우 하고 내뱉는다푸른빛이 감도는 흰 담배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칼을 타고 피어오르다 자동차 천장에 부딪힌 다음 아래로 떨어지며 마치 거리를 떠도는 유령에 이끌리듯 차창 밖으로 쏜살처럼 달음박질친다.


그는 크게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반 출근을 위해 새벽길을 달리다 도로 위에 떠도는 자욱한 안개를 만날 때면 가끔 이렇게 까마득한 옛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푸른빛이 감도는 연기를 내뿜으며 나직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벌써 25년이나 세월이 흘렀어.”



바람


그것은 바람이었다. 아니 필연적으로 불어오고야 말 계절풍이었다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그것은 초여름에 몰아닥친 비바람이었다. 김휘성이 2년여의 수배와 그에 이은 1년 반가량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의 품에 안겼을 때,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달라져 있었다.  


······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리가 설문지로 “자영업이 전반적으로 경영상의 위기를 겪고 있다면 가장 큰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역시 가장 많은 응답자(72.3%)가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액 급감”을 들었다.

이명박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면접 인터뷰에 응해준 자영업자들은 그 시기를 2010년으로 꼽았는데 거의 일치했다-경기는 급격하게 위축되었는데 2010년보다 2011년이, 그리고 2011년보다 2012년이 더 좋지 않았다. 2012년에는 매출이 거의 삼분의 일 수준으로 떨어져서 ‘급전직하’라는 말을 실감나게 했다.

매출 규모를 보면 그 실감이란 것은 더욱 적나라해지는데 한 달 매출이 천만 원이 안 된다는 자영업자가 51%에 달했다. 그 중에서 월 매출이 500만원이 안 된다는 경우는 30%였다.

갈수록 나빠져 … 2012년엔 매출이 삼분의 일 수준 급전직하

실로 믿기지 않는 결과였지만 그래도 이번에 조사한 지역은 창원에서도 사정이 가장 좋은 곳에 속했다. 마산의 어느 아파트단지에서 치킨호프를 운영하고 있는 내가 잘 아는 분은 보통 하루에 7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어쩌다가 10만원이 넘어가는 날은 큰 횡재를 한 기분”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입가에선 묘한 슬픈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도 그녀의 가게 좌우로 치킨호프가 두 개나 더 생겼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다들 죽는 장사를 하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긴 나도 뭐 아파트단지가 이 정도 되니까 이 정도 장사는 되겠지 하는 기대로 들어왔으니까. 그렇지만 장사를 해보면 꿈 깨는 거지요. 어떤 날은 온종일 파리만 날리는 날도 많아요. 아니 파리도 손님 없다고 안 온다니까. 하하.”

그녀는 15년 전에도 장사를 했지만 하루에 십만 원은 너끈히 팔았는데 지금은 십만 원 팔기가 하늘에 별 따기 같다면서 이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그때 돈 십만 원과 지금 돈 십만 원이 같으냐는 것이다.

부부가 하루 열 두 시간 일해도 최저임금 안 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들 죽는 소리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달 매출이 1억 넘는다는 자영업자도 2% 있었다. 매출과 별도로 월 평균 순이익을 묻는 질문에서도 한 달에 2천만 원 가량 번다는 응답이 비슷한 수치로 나왔다. 그러나 비율적으로 이 수치는 크게 대세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못된다. 어디까지나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문제는 월 평균소득이 100만 원도 안 된다는 자영업자들이다. 23%가 그랬다. 29%는 100만원 내지 200만원의 월평균소득을 얻고 있다고 답했다. 두 개의 통계를 병렬시켜보면 51%의 자영업자가 월 평균매출이 천만 원에 미치지 못하고 53%의 자영업자가 200만원 미만의 월 평균소득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 2013 창원 자영업 실태와 대책 자료집 중

우리가 방문한 대다수의 자영업자들은 부부가 함께 일하고 있었는데-방금 점심을 먹고 온 국수집도 부부가 함께 일하고 있다. 부인은 국수를 끓이고 남편은 국수를 나르고 빈 그릇을 치우고 탁자를 닦는다. 한 그릇에 4천원이다-거의 매일 쉬지 않고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는 그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올 법정최저임금은 4860원이다)으로 따져도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홀에 작업복이 없잖아예. 양복입은 사람들 와봐야 소용없어예"

자, 그러면 왜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선 앞에서 답을 내렸다. 경기침체로 매출액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상남동상업지역에서 갈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손○○씨의 부인-이들도 부부가 함께 일하면서 한 명의 시간제 알바를 두고 있다-은 이렇게 말한다.

“경기가 너무 안 좋아예. 보이소. 홀에 작업복이 없잖아예. 양복 입은 사람들 와봐야 소용없어예. 작업복 부대가 많이 와야지예. 그래야 안정적으로 장사가 되는 기라예.”

그녀의 말을 뒤집어보면 경기가 안 좋다는 말은 곧 직장인들의 주머니에 돈이 없다는 말이고 이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이다.

자, 여기서 잠깐 이 글의 1편으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그렇다, 구조조정의 파고에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소비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직장에서 퇴출된(혹은 퇴직한) 노동자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골목사장이 되어 경쟁자로 변신한 것이다.

어떻든 최소한 내가 실태조사를 한 지역에서 자영업이 힘든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로 인한 매출 급감이었으며 작업복 부대(노동자들)가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손○○씨처럼 먹는 장사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우리가 조사한 통계결과에 따르면 모두가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업종은 ‘유흥업’과 ‘의류업’이었다.

'먹는 장사'는 양반, 유흥업/의류업 손님 80~90% 줄어

다른 업종들이 평균적으로 전년도에 비해 고객이 줄었다는 응답이 60~70%인데 비해 유흥업은 95%, 의류업은 82%가 고객이 줄었다고 응답했다. 더욱이 당장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응답이 유흥업은 37%, 의류업은 23%나 됐다. 일반음식업은 13%였다.

아마도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니까 제일 먼저 이 두 개의 업종이 타격을 받은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소비자들이 불요불급한 소비는 자제한다는 것. 여담이지만 그럼에도 숙박업(모텔)이 경기불황기에 도리어 영업이 잘 된다는 보고는 매우 의외였다.

그래서 이번 조사에서는 숙박업, 학원업, 병의원, 고급룸살롱 등은 제외하고 생계형 자영업을 위주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물론 최근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애 학원은 안 끊는다!”던 신화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추세가 감지되고 있긴 하지만 역시 포함시키지 않았다.

자, 그런데 이번 조사결과를 보면서 커다란 의문이 하나 생겼다. 매출액이 이토록 급감하고 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23%-부부 둘이서 운영하면 1인당 50만원도 벌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라!-나 되는데도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솟는다는 것이다.

천정부지 치솟는 임대료… 권리금과 임대료의 물고 물리는 생태계

내가 이글의 2편에서 35평짜리 1층 매장 임대료(월세)가 850만원 한다는 가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대체 그 자영업자는 어떤 배짱으로 한 달 월세를 850씩이나 주고 장사를 하겠다는 것일까?

하지만 오늘 내가 잘 아는 어느 공인중개사와의 대화를 통해 의문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볼 때도 턱없이 비싼 거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왜 들어가느냐? 새 건물이니까 그렇죠. 새 건물이니까 일단 권리금이 없잖아요. 이 동네에서 그 장소에 그 규모에 그 업종으로 장사하려면 적어도 권리금을 1억5천, 2억 줘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임차인 입장에서는 권리금 대신 비싼 임대료 주고 들어간다 생각하는 거죠. 그러고 적당한 기회 봐서 권리금 받고 팔아넘기면 비싼 월세 준 거는 충분히 뽑을 수 있다, 이런 계산이겠죠.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가 알아듣기 쉽게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여기 상업지구에 1층 매매가가 천오백에서 4천까지 한단 말이에요. 2층은 5백에서 8백, 3층부터는 4백에서 6백, 스카이라운지는 5백에서 6백, 이런 식으로. 임대료는 대충 매매가의 60% 내외 선에서 결정돼요. 그러면 보세요. 제일 비싼 4천짜리라 하더라도 2천4백이죠. 그럼 35평이라 치면 8억4천이죠. 보증금 1억 내면 나머지 7억4천이 월세가 되는 건데, 환산하면 740만원이에요. 850만원이면 비싼 거죠. 게다가 거기는 최고 좋은 자리도 아니고 B급인데. 각지도 아니고.”

아하, 권리금과 임대료의 물고물리는 생태계가 이제 약간은 이해될 듯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생태계란 것은 강자의,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갑이 만들어놓은 생태계일 뿐이다.

실태조사 초기에 해물찜 식당을 운영하는 여사장으로부터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내가 장사를 하는데 건물주들이 계를 하는 거예요. 우리 가게에 온 거지. 그렇게 말하는 거야. ‘야, 절대로 임대료는 얼마 이하로 하면 안 된다.’ 뭐 자기들끼리 담합하는 거지. 그 사람들끼리도 서로 정보 공유해요. 권리금 털어먹기 그것도 마찬가지야. 야, 저 집에는 어떻게 해먹었다더라, 그러면 야, 나도 해봐야겠다, 당장 그렇게 되는 거지 뭐. 인간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에요?”

경기침체에 비싼 임대료 상납, 마지막엔 권리금마저 강탈 당하고

그랬다. 자영업 위기의 원인은 경기침체다. 그리고 작업복 부대의 이탈이다. 그러나 “영업활동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자영업자들은 판로(31%)와 더불어 비싼 임대료(29%)를 가장 많이 꼽았다.

자영업자들은 1차로 경기침체로 인한 판로의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2차로 쥐꼬리만큼 번 돈을 다시 건물주들에게 비싼 임대료로 상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권리금마저 강탈당하는 자영업자마저 생긴다. 이것이 오늘날 자영업자들의 운명이다.

우리가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조사지역의 월평균매출액은 1638만원인데 비해 임대료(월세)는 778만원에 달했다. 평균순이익은 299만원. 매출액을 발생시키기 위한 매출 원가의 절반 이상이 임대료로 나간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이므로 개별 자영업자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액임대료를 내는 자영업자 상위 15%를 뺀 나머지를 평균했더니 월 평균임대료는 133만원이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월평균매출액도 대폭 떨어질 것이므로 효과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문제는 버킹검이 아니라 임대료였다. 허나 어쩌랴. 탐욕이 가득한 상식을 뛰어넘는 임대료가 지뢰처럼 버글거리지만 거기 가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없다. 그리하여 오늘도 다리가 잘릴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창업자는 도전정신으로 무장한다. 이건 무슨 해병대 정신도 아니고, 실로 참담하다.

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자. 우리가 실태조사를 위해 캠프를 상남동상업지역에다 차렸는데, 그 사무실 바로 옆에 우리 팀이 즐겨 모이던 멸치쌉밥집이 있었다. 거기서 멸치회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여독을 풀곤 했었는데, 실태조사가 진행되던 중에 그 집이 사라졌다.

어느 날 문득 보았더니 멸치횟집은 사라지고 국수집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집도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가게를 내놓았다는데 잘 안 나가는 모양이다. 하긴 이런 일쯤이야 병가지상사가 아니고 상가지상사다.

▲ 창원 자영업 실태조사 포럼에서 발언하는 여영국 의원

<추신> 오늘 3회로 이야기를 끝내려 했으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글의 편성도 영 어설프다. 준비 없이 쓴 탓이다. 여하튼, 못다 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하기로 한다.

사실 이 글도 진주의료원 사태 등 숨가쁜 도의회 일정에 잠시 짬을 내 쓸 수 있었던 글이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자영업실태조사 종합보고서도 만들어야 하고, 그걸 토대로 의정보고회도 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를 대중화하기 위해 르뽀 형식의 책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한회만 더 쓰기로 한다. 3회에 걸쳐 쓴 글에 대한 종합이라고 해도 좋고, 후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엊그제 5월 21일, 사단법인 경남고용포럼과 함께 경남도의회 대강당에서 <실태조사 보고 및 정책토론회>를 열었는데 그 이야기다. 아무쪼록 마지막까지 많은 관심을 바란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에 대한 한없는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들의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실제 그들은 스스로 임금을 받는 노동자에 다름 아니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여영국 경남도의원(진보신당)이 5월 21일 도의회에서 <창원지역 자영업의 실태와 정책>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여 경남 창원지역의 자영업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과정에서 여의원이 만났던 자영업자들의 사연과 현실, 고민을 ‘자영업 실태조사기’라는 이름으로 4차례 게재합니다. 이 기획기사는 인터넷 매체 <레디앙>의 기획기사이며 <레디앙>과의 협의하에 여영국 의원의 연재글을 이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파비>

☞ 레디앙기사 바로가기 

지난 겨울은 지독히도 추웠다. 설사가상으로 창원에는 거의 10여년 만에 폭설까지 내렸다.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건 내가 창원에 온 게 1983년 봄이 오기 전이었으니 그 이후로는 처음이었을 거다.

몇 년 만에 내린 폭설에 온 시가지가 하얗게 점령 당해 거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시내버스들은 10km 이하의 속도로 엉금엉금 기었으며 승용차는 물론이고 택시들도 아예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리는 텅텅 비었다. 한때 세상을 마비시켰던 눈덩이들이 그 이후로도 동네어귀나 아파트의 후미진 그늘에서 열흘 가까이 녹지 않고 버텼으니 얼마나 추운 겨울이었던가.

그 겨울에 나는 마음마저 동토의 호수처럼 꽝꽝 얼어붙었을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두툼한 목도리를 두르고 검은 장갑 낀 손으로 왼쪽 옆구리에서 설문지 한 장을 꺼내 들이미는 나를 보며 말했다.

▲ 어느 식당이 철거되는 모습. 옆의 가게도 마찬가지이다.


“아이고, 수고 많습니더. 그래야지예. 이런 거 진작 했어야지예. 그렇지만 우린 이미 늦었습니다. 다음 주면 문 닫고 나갑니다. 우리 쫓겨난다 아입니꺼.”

그녀는 ○○○○○라는 이름의 횟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였다. 그녀는 말했다.

"아이고 수고 많습니더, 근데 우린 쫓겨납니더"

“내가 여기 장사한 지 l0년쨉니다. 들어올 때 권리금 1억 주고 들어왔지예. 그때 1억이면 큰돈이었습니더. 그런데 나가라카는 깁니더. 우리는 장사 더 하고 싶은데, 그냥 나가라카이 참 돌겠네요. 우리만 그런 기 아이고 우에 집도 나가라카는데, 저 집은 더 억울하지예. 젊은 여자들이 이자 장사한 지 4년밖에 안됐는데, 거도 권리금 1억 넘게 줬을 건데. 우리보다 평수도 두배나 넓고 하이.”

결국 그녀는 얼마 안 있어 문을 닫았다. 그녀의 남편과 함께 직원 한명을 고용해 10여년 가까이 장사를 했지만 나올 때는 이사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어느 찻집에서 다시 만난 그녀가 말했다.

“주인이 그러는 거라. 원상복구할라믄 돈도 많이 드는데 고마 집기 저런 거는 내가 팔아서 할게. 그래 우리 남편도 그러는 거라. 고마 다 주삐라. 욕심부리지 말고 다 주고 나가자. 그렇지만 그게 되나. 너무 억울해서 내가 철거하는 사람을 만났지. 계산을 뽑아보니까 답이 안 나오는 거라. 바닥이 온돌인데 이거 다 걷어내고 합판이며 벽돌 뜯고 하면 1톤 트럭이 열 몇대는 와야 된다카데. 그래 고마 다 하이소 카고 나와뿌다 아이가. 지돈 10만원은 아까버서 벌벌 떠는 사람이 남의 돈 1억은 어찌 그렇게 하는지.”


연산홍이 도시를 붉게 물들이던 4월 중순, 그녀는 세무서를 찾았다. 너무 억울했던 것도 그렇지만 이렇게 놔두어서는 다음 사람이 또 다음 사람이 당할 거라는 생각에 세무서에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정의를 세워야지. 바꿔야 되는 기라. 이기 하나의 풍조가 되면 사회에 악이 그득히 차고 문란해지는 기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권리금도 내놔라 할 처지도 안 되니깐. 그냥 장사만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될 긴데 말이다. 할 거는 없고 내가 매달 월세 250만원씩 냈는데 세무서에는 아마 80만원만 낸 걸로 돼있을 거라. 엊그제 아는 이에게서 전화도 왔어요. 당신이 신고 안하면 당신도 같은 범죄자라고 하면서, 빨리 해라 하는 기라.”

그녀는 동병상련의 2층 삼겹살집 젊은 여사장도 설득해서 함께 세무서에 가서 탈세혐의로 건물주를 고발했다.

그 이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들이 쫓겨난 건물은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변 부동산업소의 말을 들어 보니 대형 체인점이 들어올 거라고들 말한다.

"갑이 나가라 하면 을은 나갈 수밖에"

이런 일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이미 몇 년 전부터 상남동 지역에는 건물주가 임차인을 쫓아내고 새 임차인을 들이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 “허, 저 집 또 쫓겨나는구먼!” 할 정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

어제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상남동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옛 동지요 형제와도 같은 선배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라, 저도 곧 나가야 된다. 쫓겨나는 거지.” 그 집은 상남동에서도 상당히 큰 편에 속하는 일식형 횟집이었다.

나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내부 시설도 시설이지만 규모가 으리으리한 게 보통이 아니었었다. 옆에서 거드는 친구의 말이 가슴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왔다. “갑이 나가라 그러면 힘이 있나? 을이 나가야지. 할 거라곤 전에 그 할매처럼 꼬장 부리는 거밖에 없어.”

자,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마치 하나의 트렌드처럼 번지고 있는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권리금과 높은 임대료에 있었다.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대폭 인상하는 수단으로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쫓아내고) 새로 임차인을 들이는 수법을 쓰는 것은 어쩌면 고전적인 방법이다.

새로 생긴 옆 건물에선 한 달 월세가 850만원인데 나는 300만원밖에 못 받고 있다 생각하면—이건 실제상황이다. 나도 잘 아는 그분이 왜 850씩이나 월세를 주고 장사를 하는지 그걸 이해 못한다. 목도 그리 썩 좋은 것도 아니고 1층이라지만 평수도 35평 남짓이다—아무리 돈이 많은 건물주라도 억울하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임차인 내쫓고 새 임차인한테 권리금 뜯고

그런데 더 쇼킹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건물주들이 기존 임차인을 내보내고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수수하는 행위가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예를 든 횟집과 삼겹살집도 그런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약과였다. 내 선거구인 대방동의 아파트단지에 사는 한 자영업자는 감자탕 식당을 시작하면서 권리금을 1억4천만 원을 주었는데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2년 만에 몽땅 날렸다.

그런데 이이는 지난 1월에 만났을 때만 해도 권리금은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왜냐하면 권리금을 건네준 이가 바로 건물주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예의 횟집과 삼겹살집 사장님들을 만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을 만나게 되면서 문제가 범상치 않음을 느꼈고 그에게 연락해서 술을 한잔 하자고 했다. 어렵게 나타난 그는 한껏 풀이 죽어있었다.

“다 날렸습니다. 한 푼도 못 준다 카데예. 이사비라도 좀 주라 했더니 그것도 안 준다 그러고. 따지니까 바로 명도소송장 날라오는데, 계산 바로 나오데예. 그래서 마 내가 돈 들여서 장만한 집기며 뭐며 다 놓고 나왔다 아입니까. 그거 철거하려면 돈이 더 드니께. 허허.”

근 20년 가까이 직장생활하며 알뜰히 모았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갔건만 그는 허허 웃으며 “다시 벌면 되지요”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듯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 그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부산 인근 어느 신도시의 부동산중개사무실에서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공고 출신인 그의 친구들이 인근 공단에서 자그마한 공장들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다시금 보란 듯이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공장전문 부동산을 해보겠다는 건데, 그의 재기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 <계속>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여영국 경남도의원(진보신당)이 5월 21일 도의회에서 <창원지역 자영업의 실태와 정책>이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여 경남 창원지역의 자영업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과정에서 여의원이 만났던 자영업자들의 사연과 현실, 고민을 ‘자영업 실태조사기’라는 이름으로 4차례 게재합니다. 이 기획기사는 인터넷 매체 <레디앙>의 기획기사이며 <레디앙>과의 협의하에 여영국 의원의 연재글을 이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파비>

☞ 레디앙 기사 바로가기  

“작년이 가을이다”

대체 어떻게 이토록 문학적인 표현이 소고기국밥이며 선지국밥을 마는 할머니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 내게 늘 “동상, 동상이 없으면 이 창원이 어찌 되겄노? 동상 없으면 이 동네 망해도 벌써 망했을 기다” 하며 어깨를 툭툭 치는 그녀가 환갑을 넘긴 지가 어언 언제인지 가물거리니 말 그대로 할머니다. 그러나 그녀는 직원을 두 명이나 거느린 어엿한 자영업자였다(두 명의 직원 중 한명은 남편이지만).

나는 처음에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작년이 가을이라니. 이 할마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람?’ 그러나 궁금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분노가 가슴에 찬만큼 말도 많은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던 것이다.

“동상, 이자 상남시장은 다 죽은 기라. 작년은 가을이라.”

그렇구나. 작년은 가을이었구나. 바야흐로 쌩쌩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이 닥치고 보니 사상 최악의 한 해였다는 작년은 그저 가을이었구나. 자영업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가게를 방문한 나에게 할머니 같은 그 누님은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쩌면 내년에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작년이 이승이었는 기라.”

▲ 여영국 의원의 도의회 발언 모습(출처는 경남도의회)


내가 처음부터 우리 동네 자영업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었다. 나는 본래 노동자 출신이며 평생을 노동운동을 업으로 안고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흔히들 자조적으로 말하는 기름밥을 먹으며 살았다. 하루 열두시간의 힘든 노동은 나를 노동운동가로 만들었다.

나는 삽십여 년 넘게 노동운동을 본업으로 하며 살았다. 마창노련(마산창원지역노동조합총연합)과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민주노총이 나의 거처요 삶의 터전이었다. 모든 사고와 행동과 양식은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노동문제야말로 한국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지요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생각을 바꿨다. 문득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세계야말로 노동이 안고 있는 모순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현실을 보았던 것이다.

이른바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를 잃고 찾아간 곳은 자영업 시장이었다. 마치 1960년대의 엑소더스처럼 농촌으로부터 탈출한 예비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포화상태를 가져왔던 것처럼 이들은 자영업 시장을 비정상적으로 비대하게 만들었다.

외환위기 이후 일터 잃은 노동자들의 엑소더스- 자영업 시장

이미 그 이전에도 한국의 자영업 시장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지나치게 과밀한 상태였고 이로 인해 시장은 수용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거의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수익성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주변 동종업체와의 경쟁을 꼽았다.

실제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위해 우리가—자영업 실태조사를 위해 나는 사비를 털어 <창원자영업실태조사위원회>란 조직을 구성하고 실무자도 고용했다—둘러본 대부분의 상가들은 동종업종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부터 퇴출된, 특히 베이비부머들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2012년 8월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36만4000명 늘었다”고 밝힌 통계청의 발표를 토대로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가운데 자영업 종사자 비중이 38.4%에 이른다. 새로 늘어난 일자리 10개 가운데 약 4개가 자영업 관련 종사자란 말이다.

특히 “그 지난달엔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8.2%나 됐다”고 하니 거의 절반이 자영업에 취업을 한 셈이다.

취업자 두 명 중 한 명은 자영업

여기에 대해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경기가 나쁜데도 자영업자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50대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은퇴 이후 창업 이외엔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정부가 발표하는 고용지표가 사실상 고용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여영국 의원의 실태조사 자료 중


한편 2012년 국세청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개인사업자별 업태별 폐업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82만9669명으로 2010년에 견줘 2만4163명(3%)이 늘었다.”

이는 전체 자영업자 수의 16%에 해당하는 수치로 여섯 명 중 한 명이 폐업을 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사실상 서비스업 등에 고용되어 일하는 자영업자가 89만 명, 신규사업자가 21만5천명(2010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폐업비율은 20%에 달해 다섯 명 중 한명 꼴로 문을 닫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세청은 여기에 덧붙여 “올해는 글로벌 경기침체에 내수부진까지 겹쳐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해 2013년 국회에는 훨씬 많은 수의 자영업자들이 폐업했다는 보고가 올라올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섯 명 중 한 명이 폐업

그리고 며칠 전 경남고용포럼과 함께 연 <창원지역 자영업의 실태와 정책; 사장님 먹고 살만 합니까?>란 주제의 정책토론회(5월 21일, 경남도의회 대강당)에서 내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내용은 그대로 확인되었지만 그러나 실상은 훨씬 충격적인 것이었다. 대규모 공단이 위치한 공업도시란 특징 때문이었을까? 전직 회사원이 창업자의 40%에 달했다.

이들이 아무런 기술도 없이 자영업 시장에 뛰어드는 현실을 반영하듯 가맹점 비율은 전국평균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 16%를 넘어섰다. 당연히 창업비용이 높았다. 1억2700여만 원. 소상공인진흥원이 조사한 2010년 창업비용 평균금액 6500만원을 훌쩍 상회하는 금액이다.

이렇듯 창업비용은 높은 반면에 창업기간은 채 6개월이 안 된다는 비중이 전체 응답자의 60%에 달해 전직 회사원들, 현장으로부터 퇴출된(혹은 퇴직한) 노동자들이 가맹점을 선호하면서 이런 현상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하게 만들었다.

‘작업복부대’가 유니폼을 벗고 ‘골목사장’의 길로 들어서는 모습들이 우리가 작년 9월 27일부터 시작해 6개월 동안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문지를 돌리고 면접 인터뷰한 결과를 다시 2개월여에 걸쳐 분류하고 통계내고 분석한 그래프들 위에 뿌연 안개를 걷어내며 쏟아지는 햇살처럼 아스라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래는 경남도 여영국 의원이 어제 도의회에서 한 발언 내용입니다. 후문에 의하면 이 발언이 끝나고 돌아갈 때 홍준표 지사는 여 의원과 마주치자 다른 길로 돌아갔는데, 다시 여 의원이 그 앞으로 가 기다리고 있자 악수를 하지 않으려는 양 뒷짐을 지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 의원이 그랬다는군요. 


"지사님, 잘 가이소."


그러자 홍준표 지사는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써끔한 미소를 짓더라는 것입니다. 써금한 미소...... 라고 하면 대충 경상도 사람들은 알아듣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홍 지사. 당당한 경남 타령 같은 거 좀 하지 말고 사람이 아는 체 하면 같이 좀 아는 척 하고 합시다.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노동기본권, 헌법정신 부정할려면 
지사직을 사퇴하라!

여 영 국 의원(기획행정위원회)


존경하는 340만 도민 여러분! 선배 동료의원 여러분! 
창원 출신 기획행정위원회 소속 여영국 의원입니다.

4월30일, 진주의료원 노동조합 비방전단 10만 장이 경상남도 명의로 경남전역에 배포 되었습니다. 어버이날 전후해서 만난 어떤 어르신은 돈벌어서 노조 저것들이 다가져간다며 진주의료원 없애야 한다고 강변하시기도 했습니다. 
경남의 대표기업인 STX그룹의 유동성위기 원인도 노동조합에 있다는 말들이 너무 쉽게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온 행정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사회적 악으로 각인시키며 유포한 반노조 바이러스 효과이겠죠? 

헌법정신, 노동기본권 부정하는 홍준표 지사
헌법 제 33조 1항에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노동3권을 분명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노동자가 사용자에 비해 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단결하고 대항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주의료원 문제를 통해 홍지사와 일부 공직자들의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대하는 시각이 너무나 편향적이고 반 헌법적 사고에 젖어 있습니다.
헌법의 정신을 존중하고, 그것이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공직자의 신분을 홍지사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노사관계에 대한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반노동자적, 반노동조합적 태도를 유감없이 드러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들의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홍준표 도지사는 행정을 수행할 기본 자질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87년 이후 정의로운 사회는 노동조합이 만들었습니다.
홍지사께서는 유독 ‘정의’를 강조합니다. 과연 홍준표 도지사의 정의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의입니까?
87년 사회전반의 민주화운동과 더불어 노동조합운동도 활성화 되었습니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큰 폭으로 개선하였습니다. 그 결과 내수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한국경제의 체질을 사실상 노동조합이 바꾸었습니다. 

부정부패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공직 사회였습니다. 누가 이 환경을 바꾸었고 바꾸고 있습니까? 
고질적인 학교의 촌지문제에 대해 가장 발 벗고 나선 조직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었습니다. 자신의 치부를 가장 먼저 드러내고, 양심선언과 자정노력, 그리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공무원 노동조합은 ‘공직사회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아예 자신의 캐치플레이즈로 걸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진주의료원이 속해 있는 보건의료 노동조합이 가장 앞장서서 공공의료 실현과 의료제도개혁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유동성위기에 처한 STX 조선,엔진 그리고 대우조선 등 경남의 대표기업들이 과거 부도 등 어려움에 처했을 때 노동조합이 가장 앞장서서 회사를 살려냈습니다. 
쌍용자동차를 중국 상하이 자동차가 인수할 때 노동조합은 기술만 빼먹고 튈 것 이라며 결사반대했고 정부와 채권단은 노조 주장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결국 기술만 빼먹고 날라버렸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공권력을 동원해 짓밟았습니다. 

산업현장에서, 병원에서 언론사에서 공직사회와 교단등 모든 직장과 여의도 광장에서 다수를 위한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탄압에도 불구하고 나선 것은 홍지사께서 그렇게 증오하는 노동조합이었습니다. 

노동의 가치실현을 위해 노동조합 기차는 지금도 달립니다. 
노동조합은 사회를 보다 더 정의롭게 바꾸고자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바로 자본과 정부가 노동자들을 분할통치하고, 사회적으로 고립시켰기 때문입니다.
노동조합은 기업별 교섭이 아니라 산별교섭을 통해 임금협약 적용률을 확대하고 기업복지에 목맬 게 아니라 사회적 복지를 확충해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자본은 이를 거부했고 지금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교섭을 포함한 노동조합의 행보를 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버린채 비정규직을 확대했습니다. 기업에 갖힌 노동자들의 살기위한 몸부림은 기업복지 확대로 귀결되었습니다. 사회적 보편복지 확충을 위한 노동조합의 연대를 정부와 자본이 차단시킨 결과가 기업,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기업복지의 결과물이 단체협약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진주의료원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도 그 부산물 입니다. 이것은 정부와 자본의 전략이었고 현재도 그러합니다. 기업울타리에 갇혀버린 노동조합은 극단적 양극화로 신음하는 한국사회의 공범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노동조합은 정부와 자본이 강제한 기업울타리에 갇혀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기업에서 버림받으면 모든 것이 절망인 한국사회! 그래서 노동자들은 기업에 목을 매어 생존에 발버둥 치고 있습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노동조합은 자본의 천국으로 변해버린 한국사회를 바꾸려고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노조파괴 전문컨설팅사로 가시라
홍지사님!
이런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습니까?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영혼도 없이 자본과 권력자의 입맛에 순응하는 노예가 되는 것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의 정신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힘없는 노동자를 짓밟아 어떤 정의를 세우겠다는 겁니까?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으로 경남에서 정의를 바로세우겠습니다. 가지지 못하고 힘없는 사람의 편에 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 취임사에서 하신 말입니다. 

진주의료원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힘 있는 불의의 세력입니까? 생존권을 지키겠다고 나선 노동자들이 강한 자들입니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들 거린다고 했는데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강성지렁이 입니까?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에 얼마나 적대적 태도를 가졌길래 행정권력을 이용하여 먹이사냥 하듯 노동조합을 공격하고 공공의료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도 노동조합이 사회악 이라면 홍지사께서 생각하는 정의실현을 위해 노조파괴 전문 컨설팅사로 가시기 바랍니다.

노동조합을 계속 적대 하실 겁니까?
다수의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기본권과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홍준표 지사님! 우리 사회의 근간과 룰을 부정하면서 어찌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행정을 수행하겠습니까?

세계 어느 복지국가를 보더라도 그 중심에는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노동조합 없이는 복지사회 근처도 못 갈 뿐만 아니라 노동가치와 노동기본권,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세력은 ‘공공의적’입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적대하는 모든 행위와 세력에 대해서는 의원직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걸고 맞서 싸워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고, 헌법정신을 지켜내겠습니다. 자본의 탐욕에 신음하는 한국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노동조합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 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홍준표 지사님! 노동조합을 존중하고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준수할 생각이 없으시면 차라리 지사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떠나십시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대림자동차 정리해고에 반대해 진보신당이 천막농성을 한 지가 벌써 한달이 넘었다. 11월 11일에 천막을 쳤으니 한달 하고도 3일이 지났다.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직접 노조의 투쟁에 몸으로 개입한다는 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게 옳은 방법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도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대림자동차 정문 앞 진보신당 천막농성장. 정리해고를 중단하라 만장기를 든 사람이 여영국 위원장.


나는 그 이유를 천막에서 많은 날들을 지새우며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이다. 그러나 그 주관이 객관에 비해 결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주관이란 지역 노동진영의 대응이 너무 미미한 상태에서 노조의 연대를 견인하기 위해 천막농성이 불가피했다는 점이다. 

천막농성을 주도하고 있는 진보신당 여영국 위원장도 나와 생각이 같았다. 천막을 친지 딱 한 달 하고도 이틀이 지난 12월 12일 아침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가 진보신당 천막을 찾았을 때 여 위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기에 천막을 친 데는 나름 배경이 있습니다. 정당이 사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고민도 있었지만,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문성현 대표는 사실상 최초로 진보신당 천막을 찾은 민노당 인사다. 문 대표가 오기 일주일 전에 권영길 의원이 잠시 천막에 들어와 인사를 하고 갔지만, 매우 의례적이었다. 그는 마치 어쩔 수 없이 진보신당 천막에 들렀다는 듯이 부랴부랴 수고한다는 말만 던지고 떠났다. 수차례 권영길 의원실과 민노당에 관심을 호소했던 여 위원장으로선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권영길 의원이 움직인 데는 나름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오해할 만한 정황도 있었다. 효성이 직장폐쇄에 맞서 두 달 넘게 파업을 하고 대림차가 정리해고에 맞서 한 달 넘게 싸우는 동안 권 의원은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울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조승수 의원이 대림차와 효성을 방문한 것이다.

대림차 농성장(좌)과 효성노조 농성장(중, 우)을 방문한 진보신당 조승수 국회의원.


여기에 자극 받은 듯 권 의원은 부랴부랴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대림차 정문 앞에서 여는 집회에 참석했다. 조 의원이 대림차 농성장에 들어가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어 효성 노동조합에 설치된 농성장에 들른 다음 다시 대림차 정문에서 열리는 금속노조 집회장에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권 의원이 온다는 얘기도 없었고, 진행표 순서에도 없었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되기 불과 몇 분 전에 권 의원의 연설 일정이 맨 앞에 잡히고 조승수 의원의 연설은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권 의원실과 민노당을 향해 관심과 더불어 연대를 요청했음에도 오지 않던 권 의원은 조승수 의원이 나타나자 실로 번개처럼 나타난 것이다. 물론 고마운 일이다. 어떤 이유였든 권 의원이 자기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 사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날 연설을 마친 권 의원은 준비가 없었던 듯 현장 방문을 생략한 채, 진보신당 천막을 그냥 지나친 것은 물론이고, 왔을 때처럼 부랴부랴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잃어버린 숙제라도 하듯이 다시 대림차를 방문했고, 바람처럼 스쳐가듯 했지만 진보신당 천막에도 들러 격려도 했다. 나는 불만은 있지만―권 의원 정도의 위상에 불만이 없다면 이상한 일임이 분명하다―그래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권 의원의 관심이 부족한 것은 권 의원 만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개 노조의 농성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는 것을 민노당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창진 통합 문제에는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할 수 있어도, 자그마한 사업장의 투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민노당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저마다 정당의 논리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옳니 그리니 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관점의 문제다. 내 관점은 옳고 네 관점은 틀렸다고 말하면 그야말로 아집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섭섭함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아직 섭섭할 만큼 기대를 품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금속노조 집회에 맨 우측부터 진보신당 경남도당 이승필 위원장, 민노당 권영길 의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앉아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애증의 갈등을 섞어 문성현 전 민노당 대표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던지, 여 위원장은 따로 귓속말로 문 대표에게 불필요한 말로 갈등을 일으키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문 대표의 말을 들으며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이다. 

내가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 그때 나는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노동자였는데, 노조 사무장이었던 문 대표는 네루가 딸에게 쓴 편지를 모은 <세계사 편력>이란 책을 읽기를 권했던 인물이다. 주로 노조 사무실에 들러 박범신의 <풀잎처럼 눕다> 따위의 소설만 빌려 읽던 내게 <세계사 편력>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았고 그를 무척 존경했다.  

그런 그는 아직 민노당에 남아 있고, 나는 민노당을 떠났다. 함양에 가 있다던 그가 창원에 다시 나타난 이유는 아마도 들리는 소문처럼 창원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일 것이다. 천막에 들른 이유도, 앞으로 자주 오겠다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그의 말은 대체로 옳았다. 아니 지극히 옳은 말들 뿐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 첫 만남에서 나온 의전적인 언사들을 두고 이러니저러니 평을 하는 것은 속단일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도 지극히 옳은 말을 들으며 나는 속에서 밀려 올라오는 갈등의 목소리를 참기가 어려웠다.
 
"문 대표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네요. 이런 말씀을 들으시고도 통합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지 말입니다. 당장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선거연합이라도 하자는 소리를 할 수 있을지 말입니다. 엊그제 STX엔진 지회장이 대림차 지회장을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진보신당이 대림차 정문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를 해주겠다. 그런데 천막 옆에 진보신당 차는 왜 세워두는 것이냐. 그거 아주 보기 안 좋다. 그리고 여영국은 왜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민노당 보고 연대를 하자니 말자니 그딴 소리를 하는 거냐. 하려면 자기들만 잘하면 되지.'

저는 이 소리를 듣고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리는 다른 곳에서도 들었습니다. 바로 대림차 사장이 하는 소리와 똑같았습니다. 대림차 사장도 진보신당 이승필 위원장에게 말했답니다. '아니 왜 하필 여기 와서 천막농성을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그 진보신당 트럭은 왜 그 옆에다 세워두시는 겁니까?'

천막 옆에 세워진 진보신당 탑차.


아무튼 이게 현실입니다. 민노총이 민노당과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반분된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갈라진 배경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모든 걸 무시하고 통합만 주장하거나, 전술적 연합을 제안하는 것은 정치적 쇼맨십일 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것부터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은 결국 하지 않았다. 괜히 얼굴을 맞대고 앉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비정치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진심이든 의전이든 나름 예의를 차렸다면, 나도 응당 그에 합당한 행동을 하는 게 옳다. 그리고 여 위원장의 부탁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존경받아 마땅한 대선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로라도 내 심정을 밝히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다시 심중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밝히기로 했다. 그리고 글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보다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친 김에 글 서두에 권영길 의원과 민노당에 대한 불만도 슬쩍 담았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분위기에서는 결코 양당의 화합적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지독한 위선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심을 담아 한마디만 더 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그래도 문 대표님. 자주 만나십시오. 우선은 대림에서 자주 만나십시오. 양당의 이해를 떠나 당장 정리해고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