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복이'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3.26 '추노' 잔혹한 반전 뒤에 떠오르는 희망?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3.19 '추노' 대길이 선택한 마지막 운명은? by 파비 정부권 (18)
  3. 2010.02.22 '추노' 나쁜놈하고 좋은 일 해도 되는 것일까? by 파비 정부권 (7)
  4. 2010.01.30 양반귀족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7)
  5. 2010.01.15 '추노' 대길, 요즘은 총든 놈이 젤 무서워 by 파비 정부권 (52)
  6. 2010.01.15 추노, 업복이 쏜 총탄이 대길을 비켜간 까닭 by 파비 정부권 (39)
지랄 같은 세상을 향한 업복이의 마지막 분노

큰일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하던 대로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었습니다. 저는 앞에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어서는 안 되며 절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역시 희망 섞인 말을 하면서도 불안했었던 때문이겠지요. 많은 분들의 지적처럼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 무수히 있었고 실은 저도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희망에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한 반전

"그러나 만에 하나 제 생각이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큰일 나는 거지요.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겠어요?"

그리고 결국 그 '큰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분은 노비도 아니었으며 노비당을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더더구나 혁명 같은 건 꿈에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시 출세를 위해 이경식이 시키는 대로 일을 꾸민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도 역시 양반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경식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노비들에게 형님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참겠지만 냄새는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노비들 가까이 가면 냄새가 어찌나 역한지 대업이고 뭐고 당장에 목을 쳐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끝봉이의 주검을 안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광화문 앞에 선 업복이


아, <추노>는 마치 저의 아둔함을 조롱이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잔인한 반전을 만들고 말았네요. 사람 위에 사람 없는 거라던 그분의 진면목이 바로 저런 것이었다니. 그런데 왜 저는 그분이 진짜 그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천 냥짜리 어음 사건을 통해, 물소뿔 상인들과 청인무사들의 피살 사건을 통해 이경식과의 관련성이 복선으로 깔렸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요? 세상을 바꾸자는 그분의 말에 현혹되었던 것일까요? 저 역시도 천한 상것들과 다를 바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알현을 받은 이경식이 이렇게 말했지요. "천것들이란 작은 희망만 보여줘도 죽을지도 모르고 따라오게 돼 있으니." 그랬나 봅니다. 그 작은 희망에 잔혹하게 숨어있는 반전을 보지 못 했던가 봅니다.  

노비당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은 원래 없었다

결국 노비당은, 아니 꾐에 빠진 노비들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초복이와 긴 이별을 해야 했던 업복이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업복이는 끝봉이로부터 그분의 존재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복수를 결심한 업복이는 대궐로 향하고 마침 대궐에서 나오던 이경식과 마주치게 되지요.

이경식과 그분, 그리고 변절자 조선비가 모두 업복이게 죽는다.


그리고 이경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그분, 업복이의 총에 이경식과 그분은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정말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치부를 위해 같은 양반들을 죽이기도 하고, 노비들을 부추겨 세상을 바꾸자는 따위의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이렇게 간단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었다니.

아무튼 애초부터 노비당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마지막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희망이었을까요? 저는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희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길과 태하, 언년이에게서도 희망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대길이의 최후, 역시 멋지다.

대길은 언년이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는 떠나는 언년이를 보며 이렇게 속으로 뇌까렸지요. "네가 살아야 돼.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거다."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베르토 조단이 사랑하는 마리아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추노>의 장혁이 훨씬 멋있었습니다.

휘날리는 머리칼 아래 슬프게 빛나는 눈빛, 루지탕에서 보았던 알랑 들롱의 눈빛 이후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장혁의 눈빛에서도 저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어쩌면 송태하가 청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혜원에게 한 이 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이땅을 떠날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금방 회복될 것입니다. 다 나으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혜원이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그러나 그 말을 통해서도 저는 작은 희망 하나라도 건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송태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송태하는 그저 몰락한 양반에 불과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골에 묻혀 책이나 읽으며 가까운 상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상은 없습니다. 너무 무시하는 것일까요?

업복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노비들


그래도 굳이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저는 오히려 업복이와 한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반짝이 애비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과 이경식을 죽이고 체포되는 업복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이 보이긴 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2, 제3의 업복이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너무나 참혹한, 잔혹하기까지 한 반전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선 그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비당을 만들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할 때 희망은 아침 태양처럼 떠오르는 것이겠지요. 초복이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은실이에게 한 말처럼. 

"은실아,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저건 우리 거야. 왜냐하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녀는 마치 총자루가 업복이의 영혼이라도 된다는 듯이 힘차게 잡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그 총자루는 업복이가 마지막 비장한 결심을 하며 던졌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설령 그 총이 그 자리에 없었던들 들었을 거예요. 총은 업복이의 화신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은 초복이에게도 전해졌을 테지요.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렇게만 되믄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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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 최고 최후의 관심사,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까?"


요즘 블로그 포스트들을 읽어보면 <추노>에서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매우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추노>도 곧 끝날 때가 되었다는 뜻이로군요. 아쉬운 일입니다. 저 같은 TV 연속극 광에게는 좋은 낙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까요? 우선 주인공들 중 황철웅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그에게 어떤 숨겨진 연유가 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든지 간에 그가 악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는 완벽한 살인귀로 변모했습니다. 만약 그런 살인행위를 특수한 사정이 있어 용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김길태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열세 살짜리 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다음 시체를 유기한 것에 대해 용서해주어야 한다며 팬 카페를 만드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것과 같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황철웅이 죽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운명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지금 송태하를 쫓는 게 아니라 죽음을 향해 바삐 뛰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남은 것은 두 사람입니다. 아니 세 사람이죠. 이대길과 송태하 그리고 언년이, 아니 김혜원인가요? 아무튼 이 세 사람이 우리의 관심삽니다. 물론 최장군과 왕손이도 그 생사가 궁금하긴 마찬가집니다. 아, 또 있군요. 업복이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중요한 관심사지요. 그러나 무어라 해도 대길과 태하, 언년이, 이 세 사람의 생사가 핵심입니다.

최장군과 왕손이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살아서 이천으로 갈 것 같기도 합니다. 이미 대길이가 몰래 삥땅 쳐서 모아둔 돈과 이경식에게 받은 5천 냥이 있으니 '장래의 터전'을 완성하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업복이는? 죽게 되겠지요. 노비들이 당을 만들어 역모―보통 역모가 아니죠―를 일으켰으니 살아남긴 힘들 겁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업복이도 살아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업복이를 죽이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추노>는 단 2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두 시간이 남은 것이지요. 이 두 시간 동안에 노비당이 대대적인 혁명을 일으키고 전투 과정에서 업복이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장면을 만들긴 좀 무립니다.

혹 모르지요. 한섬이가 어디 갔는지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것처럼 업복이도 그렇게 가게 될는지 모를 일입니다. 음, 가만 생각해보니 언년이도 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녀는 지금 원손을 모시고―데리고 있는 것인지 좀 헷갈리지만―있는 일 외에 이렇다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 역시 갑자기 죽는 일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황당 시추에이션 소리 듣기 딱 알맞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도 죽지 않을 거 같습니다. 그럼 결국 남은 최고의 관심사는 대길이와 태하, 이 둘 중에 과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까 하는 것입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한다면, …… 대길이가 죽고 태하가 살 것 같습니다. 

송태하의 죽음에 무게를 더 두시는 분도 있습니다. 초록누리님이 그렇습니다. 초록누리님은 거기에 대해 제법 상세하고 부정하기 어려운 근거들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송태하가 언년이, 아니 태하에겐 언년이가 아니라 김혜원이군요. 혜원에게 남긴 서찰, 청에서의 소현세자의 행보를 기록한 서찰은 그런 심중을 충분히 갖게 합니다.
(글을 써놓고 ☞초록누리님의 글을 읽어보니 비슷한 부분도 많군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태하는 살아남을 것이며 죽는 것은 대길이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다 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겠으나 그리 되긴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양으로 떠나는 태하를 따라났을 때 이미 대길은 죽기로 결심했을지 모릅니다. 결심은 아니라도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정도는 했을 테지요. 

대길이가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가졌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요? 바로 언년이가 양반, 상놈 구별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도 역시 언년이를 위해섭니다. 아마도 대길은 언년이의 남편인 송태하가 죽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언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대길이 네가 행복하게 해주면 될 거 아니냐고. 그게 네가 원하던 것 아니었냐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고루한 전통적 사고방식을 고집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대길이는 결코 언년이의 남편이 죽음을 맞이하는 불행한 사태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저의 상상입니다. 그러나 대길의 마음속에 그러한 결심이 선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월악산 짝귀의 산채에서 잔치가 있던 날 밤, 대길은 둥그렇게 뜬 달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는 그때 대길이 뒷짐을 진 모습에서, 그의 등짝을 타고 흘러내리는 무수한 고독과 슬픔을 보았습니다. 

대길은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는 한양으로 떠나는 태하를 기다렸다 동행한다.


그리고 그는 그때 자기 운명이 무엇인지 알아챘을 것입니다. 아니,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이대길의 혁명은 언년이가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한양으로 가는 태하를 기다리던 대길이 묻습니다. "이번에 마실 떠나면 네놈과 원손 그리고 네놈 부인이 다 잘 살 수 있는 거냐? 대답해라. 어디 안전한 곳에서 평생 잘 살 수 있는 거냐?" 

지금 대길의 당면한 목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송태하를 살리는 것입니다. 만약 대길이 언년이의 목숨을 구하는 것만을 생각했다면 벌써 데리고 도망갔을 겁니다. 그러나 언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대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엇을 해야 근본적으로 언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인지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곧 태하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다가 설령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어쨌든 송태하만 살린다면 지금의 대길로서는 혁명에 성공한 것입니다. 대길의 혁명은 곧 언년이의 행복이었으니까요. 그가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저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언년이를 향한 대길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느꼈을 뿐 아니라 감동까지 받았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네가 혁명을 해 새 왕을 세워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겠다고? 가장 아끼는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면서 누가 누구를 구한단 말이냐!" 

꿈에도 잊지 못하는 언년이를 그리는 이대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미 그는 자기 운명을 정한 듯하다.


저는 사실 언년이와 송태하가 죽고 사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대길과 최장군, 왕손이 그리고 설화가 이천에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지요. 그러나 대길이는 이천에 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대길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길이가 원하는 결말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월악산 영봉에 뜬 달을 보며 대길이가 마음속으로 내린 결정이니 우리로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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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곽한섬, "저들의 혁명은 우리의 혁명과 다릅니다.
                                                      저들은 세상을 바꾸자는 게 아니라 벼슬이 하고 싶은 겝니다."

송태하, "그들과 우리는 스승이 같으니 생각도 별로 다를 것이 없네.
           그러니 우리끼리 분란하지 말고 함께 해야 하지 않겠나."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 그의 입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세상이란 것입니다. 곽한섬이 궁녀 장필순에게 말했던 세상도 바로 새로운 세상이었죠. 한섬의 프로포즈에 "궁녀인 내가 어떻게 댁과 혼인을 한단 말이요?" 하고 말하자 곽한섬은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했지요. "세상이 바뀔 걸세." 


송태하가 꿈꾸는 세상과 조선비가 꿈꾸는 세상은 같을까? 곽한섬의 대답은,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송태하나 곽한섬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정권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다? 그것은 바로 혁명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조선비가 하고자 하는 것은 것은 혁명일까요, 아닐까요? 조선비도 분명 송태하에게 혁명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곽한섬과 송태하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조선비가 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송태하와 곽한섬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하자고 나섰지만, 조선비는 그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조선비는 세상을 바꾸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정권을 바꾸고 싶은 게 그의 욕심이지요. 무력에 의한 정권탈취, 이것을 우리는 쿠데라라고 부릅니다.

한때는 이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가운데에는 버젓이 이 쿠데타를 기념하는 혁명기념탑이 세워져 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 탑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학교 입구에 세워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탑과 함께 5, 1, 6이란 세 개의 숫자를 디자인한 이 탑은 우리학교의 상징물이었습니다.

이 기념탑을 매일 두 번 이상씩 지나다니면서 웬지 뿌듯한 마음이 되었던 옛날을 생각하니 우습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든 세월은 흘러 이제 세상은 많이 개명됐습니다. 요즘도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부르는 얼빠진 사람들은 아마 아무도 없겠지요. 조선비가 송태하 일파를 충동질해 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바로 이런 쿠데타, 즉 반정인 것이지요.


곽한섬이 송태하에게 질문합니다. "장군, 이게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조선비 등이 말하는 것은 반정입니다. 그냥 정권만 바꾸자는 것이지요. 자기들이 벼슬을 하기 위해 우리를 앞세우려는 겁니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은 칼을 놓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생각이 다르더라도 목적은 같으므로 분란하지 말고 함께 해야 한다?

물론 송태하의 생각도 곽한섬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섬아, 그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냐?" "그렇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은 다 틀린 생각인가? ('흠' 하고 한숨의 쉬며) 나와 다르다고 그것을 다 틀렸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잊었느냐? 우리는 그것을 가장 경계해야 된다는 것을…."

송태하의 마지막 말, "나와 다르다고 그것을 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이란 말은 반박할 수 없는 지극히 온당한 말입니다. 역시 곽한섬도 여기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옳은 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보편타당한 말이 이토록 격동적인 상황에서도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송태하는 곽한섬 등에게 그들(조선비 일파)도 모두 자신들처럼 스승님의 제자라고 말합니다. 즉 황철웅에게 피살된 전 좌의정 임영호를 중심으로 모두 하나이니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함께 해야 하고 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곽한섬의 말처럼 그들의 생각은 너무나 다릅니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하자는 사람들과 쿠데타를 하자는 사람들은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이기 어려운 건 자명한 이치지요. 이 장면을 보면서 몇 부 전에 업복이와 초복이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업복이와 초복이가 처음으로 화승총으로 양반을 쏴죽이고 입수한 것이 1000냥짜리 어음이었지요. 그런데 이 어음의 환전을 위해 전문 세탁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비당에서 이 일을 잘 해줄 노비 하나를 새로 영입했는데, 그런데 이 자가 다름 아닌 도망노비이면서 같은 도망노비들을 등쳐먹고 살던 원기윤이었던 것입니다. 업복이의 입장에선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이었죠. 분기탱천해 원기윤을 향해 달려들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만류로 싸움을 멈추고 결국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업복이, "좋은 일을 나쁜놈하고 같이 손잡고 해도 되는 기래?"
초복이, "손은 잡고 싶을 때 잡고, 놓고 싶을 때 놓으면 되는 거에요."

그리고 노비당 회합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초복이에게 물어봅니다. "좋은 일 하자면서 나쁜놈하고 손잡고 일하는 게 옳은 일이래? 그래도 되는 기래?" 그러자 빙긋이 미소짓던 초복이가 대뜸 업복이의 손을 잡습니다. 화들짝 놀라 어쩔 줄을 모르는 업복이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초복이는 다시 슬며시 손을 놓아 주며 이렇게 말하죠. "보세요. 잡고 싶을 때 잡고, 놓고 싶을 때 놓으면 되는 거에요." 


초복이의 말도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손은 잡고 싶을 때 잡고, 놓고 싶을 때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비당처럼 양반을 모두 죽이고 상놈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당이 원기윤처럼 노비들의 등을 쳐먹고 살던 인물을 영입하는 것은, 아무리 필요에 의해서라지만 불안한 일입니다. 실제로 노비당은 원기윤의 배신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고 궤멸되게 될 겁니다.

송태하의 혁명세력도 마찬가집니다. 조선비는 어떤 면에서 보면 노비당의 원기윤과 비슷한 인물입니다. 원기윤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노비당에 들어온 것처럼 조선비 일파도 결국 개인의 영달을 위해 송태하와 원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혁명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라 높은 벼슬을 얻기 위한 반정입니다.

곽한섬이 송태하에데 질문한 것은 업복이가 초복이에게 했던 질문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혁명을 하는데 나쁜놈들하고 같이 해도 좋을까? 그래되 되는 것일까?" 이 드라마의 끝은 "그것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결국 송태하도 조선비 일파의 배신으로 말미암아 치명타를 입고 궤멸될 것이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업복이와 곽한섬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에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답니다. 그들이야말로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지요. 그러나 그들에겐 아쉽게도 주도권이 없습니다. 그저 충실하게, 어쩌면 맹목적으로 명령에 따르는 게 그들이 할 일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깨어질 운명을 타고난 동상이몽의 연대

결국 그들은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될 겁니다. 곽한섬이 송태하에게 하던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군요. "제도를 바꾸기 전에 사고부터 바꾸는 게 혁명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혁명은 칼을 놓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업복이와 곽한섬이 우려하는 동일한 지점은 바로 "나쁜놈과 함부로 손잡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힘은 턱없이 모자라고, 공동의 적인 집권세력의 힘은 너무나 강고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채 탄생한 이 동상이몽의 연대로 인해 어느 하나의 세력은 완벽한 몰락의 길을 걷겠지요. 가장 힘없는 세력 그러나 가장 정직한 세력이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
지금 이 시대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제작진이 던진 이 말은, 그러니까 결국 이런 이야기들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 벌어지고 있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라 그런 이야기로군요. 그러니 실은 지나간 시대를 살다간 노비당이나 송태하의 혁명이 걱정이 아니라 우리들이 더 걱정이라 이런 말이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나쁜놈하고 손잡고 좋은 일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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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꾼 이대길의 정체에 대한 물음, "대길이가 추노꾼이 된 까닭?" 
"사랑을 쫒는 연인? 원수를 쫒는 복수의 화신? 아니면, 새세상을 쫒는 혁명가?" 
 

이대길(장혁)은 양반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대길은 노비도, 천민도, 평민도 아닌  여전히 현재에도 양반이란 사실입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모두들 잊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대길이 저자에서 거의 천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천민들에게조차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천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추노꾼 이대길은 양반귀족이다

그럼 대길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대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추노>는 언년이(이다해)의 오라비인 큰놈이(조재완)가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모조리 도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큰놈이가 혼자서 대길의 집안을, 그러니까 대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 많은 수의 노비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듭니다. 아무리 집에 큰불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몇 명은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언년이를 데리고 도망친 큰놈이가 이후에 큰돈을 벌어 양반까지 사서 신분상승을 할 정도의 큰 재목이었다면 이미 노비 시절에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대의 방화사건에는 공범들이 있었고, 그래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멸문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큰놈이도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토록 치밀한 성격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위인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럼 첫 번째 의문은 별로 문제가 안 되는군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 이건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추노>가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살펴보아야 할 핵심 주제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집이 불에 타고 가솔들이 모두 죽었다고는 하나 대길은 양반이다. 게다가 대길의 집안 경제를 지탱해주었을 전답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지는 것도 아니다. 집은 그저 주거용일 뿐이고 경제적 기반은 역시 전답, 즉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이 불탔다고 하더라도 대길은 그대로 양반이며 지주다."

양반귀족 이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이것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깁니다. 대길은 왜 양반신분을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 신분이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양반 신분이란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비 신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길의 집안이 멸문했다고는 하지만 친척도 있을 것이고, 관청에서도 대길의 신분을 보증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시 인구구성으로 보아 양반은 5%를 넘지 않는 소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대길은 양반신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있을까?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대길이 언년이를 잊지 못해 찾기 위해서란 겁니다.
 
이는 대길이가 언년이의 초상화(요즘 같으면 몽타쥬 또는 수배사진)를 그려달라고 방 화백(안석환)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길은1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언년이의 초상화를 고집합니다. 대길이에게 10년은 정지된 시간이죠. 대길에게 추노는 애타는 사랑을 찾기 위한 대장정입니다. 그럼 추노꾼이 된 다른 이유 하나는 무엇일까?

복수하기 위해섭니다. 사랑이 컸던 만큼 복수심의 크기도 상상 이상일 겁니다. 다음 주 예고편을 보면 대길은 백호(데니안)를 통해 언년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눈치 채게 됩니다. 설화(김하은)를 이용해 큰놈이가 김성환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집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섬뜩한 표정으로. "주인 배신하고 도망친 노비 연놈들 싹 다 잡아서 돌려 놔야지, 원래대로." 

예고편만 보아서는 대길의 심정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큰놈이가 휘두른 낫에 입은 칼자국 가운데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는 사무친 원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 차가운 눈동자 저 뒤편으로 잊을 수 없는 언년이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장혁만이 만들어낼 만한 이 복잡한 표정들은 실로 압권입니다.

냉혹한 추노꾼 이대길,
그러나 심장 속엔 따뜻한 피가 흐른다


그런데 대길에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바로 돈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블로거 초록누리님도 이미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길은 매우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지만, 실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결국 대길의 운명을 이토록 질기게 만든 까닭도 누구보다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그는 노비를 사랑할 만큼 진실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온정은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원의 손길이 되기도 합니다. 짝귀가 그렇고 대길이 풀어준 노비 모녀가 그렇습니다. 설화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모두 나중에 대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대길이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으로부터 5천 냥을 이미 선금으로 받고서도 받았다는 내색은커녕 5백 냥짜리 추노라고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대길이 왜 그랬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던 대길과는 완전 딴판이었으니까요. 대길은 천지호(성동일)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천지호조차도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저자의 법도라고 철썩 같이 믿습니다. 

그런데 왜? 무려 4천5백 냥이나 속이는 것은 최장군(한정수)이나 왕손이(김지석)에겐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추노>를 볼 때마다 늘 염두에 두고 봤지만, 그 답을 알아낼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이 대길이 추노꾼이 된 연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확신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초록누리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추노>8부 첫 장면에서 그 단서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짐작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았지요. 8부 첫 장면은 대길이가 여종 언년이를 업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요?"
"과거에 급제해야지."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아주아주 높은 벼슬을 할 거야."
"그러면요?"
"나라를 바꿔야지."
"어떻게?"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 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 거다, 평생."
"치, 거짓말."
"참말."

이대길의 꿈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요? 그건 바로 혁명입니다. 혁명을 통해 체제를 바꾼다는 의미지요.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법도인 나라를 없애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의 신>에서 강석호 변호사(김수로)가 말한 대사와 참으로 흡사하구나.' 강석호가 그랬죠. '세상을 바꾸려면 공부를 해서 천하대에 가서 법을 바꿔라' 

그런데 초록누리님에 의하면, 이대길은 공부를 해서 세상을 바꾸는 쪽보다 천민들과 작당―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당을 만든다는 뜻이죠―을 해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요.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짐작이 영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5천 냥의 용처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았던 부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좌의정 이경식을 만났던 정자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대길을 바라보던 기생 찬(송지은)이 생각납니다. '만약 그녀가 노비당에 양반 살해를 명하는 '그분'이라면 이대길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갈등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의 감정이 이끄는 행로는 추노꾼 대길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소용돌이는 혁명을 꿈꾸는 노비당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좌의정 이경식에게 부하들을 하나씩 잃게 되는 천지호도 결국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겠지요. 그는 귀족세계가 무슨 짓을 하든 저자의 법도에 관여만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도 결국 냉엄한 벼슬아치의 세계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들에게 사람은 명분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가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한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노비당, 노비들, 이대길, 천지호,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8부에서 전 좌의정 임영호를 대신해 당파를 모아놓고 송태하를 중심으로 이룰 대업에 관해 역설하던 조선비(최덕문)가 한 말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결국 송태하를 배신하게 될 인물입니다.

조선비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명하여 노비가 되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송태하(오지호)의 과거 부하들에게 격문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모두 한때 조선에서 나노라하는 무장들이었습니다. 조선비는 노비들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우리의 목표는 거병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그 거병에 이들 노비들이 앞장 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거병이네. 그들이 장수가 되고 뜻을 따르는 백성들이 군졸이 되고 우리는 그들 모두를 이끄는 머리가 돼야 함을 잊지 말게." 이 대목에서 불현듯 최장군이 대길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의미심장한 대구는 <추노>에서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업복이(공형진)와 끝봉이(조희봉)의 대화를 한 번 보시죠.

"너는 저 그 양반 본 적이 있나?"
"아이, 그 양반이 뭐여, 그분한테. 그리고 그분은 양반이 아녀, 우리 같은 상놈이지."  
"아이그, 무식하긴, 상놈이 뭐나, 상놈이. 천민이란 좋은 말 놔두고선."
"자네가 언제 글을 깨우쳤나. 그런 문자속을 주워 담고."
"그야 뭐 참~"

이때 살인지령을 하달하는 편지가 달린 화살이 날아와 박힙니다. 그러나 문자속을 자랑하던 업복이는 한 자도 읽을 수 없습니다. 끝봉이가 "염병하고, 이것이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자인디? 어디~" 하면서 편지를 업복이에게 건넵니다. 그러나 업복이도 까막눈이긴 마찬가집니다. "뭐여, 문자속은 다 주워 담더니 언문도 못 깨쳤어?"

거대한 음모를 암시하는 말,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사진처럼 이들은 한패가 될 수 있을까?

"언문 깨쳐야 뭐 호랭이 사냥을 잘하나? 포수가 불만 장 댕기면 되는 거지, 무슨 참." 이건 단순하게 극에 재미를 주기 위한 코미디가 아닙니다. 이 대화 속에는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우쳐주기 위한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를 업복이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업복이와 노비당의 뒤에 도사린 무서운 음모에 대한 암시인 것이죠. 아무튼 <추노>도 벌써 3분지 1이 지났습니다. 이제 서서히 그 음모의 윤곽이 드러날 때가 되었습니다. 기생 찬이 어떤 형태로든 노비당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길이 이 당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곧 그도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이대길, 송태하, 천지호, 노비당의 관계들이 새롭게 정리될 것입니다. 쫓고 쫓기던 관계가 동지가 되고, 동지였던 자들이 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라도 최장군이 늘 염려하던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그 '무서운 자들'이란 민중의 이익보다는 알량한 신념이나 명분에 목숨 걸기도 하고, 때로는 당파의 이해타산을 위해선 배신도 밥 먹듯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최장군의 말이 아니어도 이대길은 양반들의 생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제목에 담긴 뜻과 똑같습니다.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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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 누가 제일 셀까?


오늘 아침에 발행한 글
<추노, 업복이 쏜 총탄이 대길을 비켜간 까닭>주작님이 트랙백을 달아 주셨습니다. 일단 고맙기도 하고 무슨 내용인가 궁금하기도 해서(트랙백이 달리면 당연히 읽어봐야 하는 게 예의지만 어쨌든) 들어가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제가 궁금해 하던 부분에 대해 정리를 잘 해놓으셨더군요. 

역시 정통무예의 달인 송태하가 1등?

글 제목이 <추노속 인물들 무술순위>였습니다. 제목부터가 아주 섹시합니다. 저는 이대길(장혁)과 송태하(오지호)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그게 가장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1회전을 지켜본 결과를 저에게 판정하라고 한다면 송태하에게 우세승을 주고 싶습니다. 우선 이대길은 약간 스치긴 했지만 송태하에게 자상을 입었습니다.

게다가 이대길은 말을 타고 송태하를 공격하는 상황이었고, 송태하는 아무래도 방어적 무술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송태하는 전혀 밀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대길에게 칼집을 내주었습니다. 자신은 멀쩡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만약, 천지호 패거리가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퍼붓지만 않았어도 대길은 크게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작님이 매기신 순위의 1등에 송태하의 이름이 올라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저자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대길의 무술도 대단하지만, 역시 정통무술을 익힌 송태하의 무술이 한 수 위라고 생각됩니다. 청나라 군대에 맞서 좌충우돌하던 조선 최고의 무장이란 칭호는 허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잠깐 주작님이 매긴 순위부터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등, 송태하 (오지호)
2등, 황철웅 (이종혁)
3등, 이대길 (장혁)
4등, 최장군 (한정수)
5등, 왕손이 (김지석)
그리고 그외, 백호((데니안), 자객 윤지(윤지민), 업복이(공형진), 천지호(성동일), 곽한섬(조진웅)과 이광재(조성일)

주작님이 매긴 순서대로 좌로부터 1등부터 5등까지. 그런데 5등 왕손이는 바람 피는데는 1등이다.


저자에서 익힌 변칙무공 이대길의 상승도 무시 못해

송태하가 1등이란 점에 대해선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만, 그러나 2등이 황철웅이란 점에 대해선 약간 의견을 달리 하는데요. 이대길의 무공도 만만지 않거든요. 총알도 피하는 이대길이 아닙니까? 그의 무공은 정통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저자거리에서 잔뼈가 굵으며 편법으로 익힌 무공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천부적인 순발력과 지각능력, 무술을 익히기에 적합한 근골, 뛰어난 두뇌, 이런 것들이 합성해 만들어낸 결과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대길이 정식으로 무술 교습을 받았다면 송태하가 과연 이대길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지요. 그러므로 1회전에선 비록 송태하의 우세승이었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이런 말입니다. 

송태하나 황철웅의 무술이 완성된 것이라면 이대길의 무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말하자면 상승무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최장군의 무술도 대단했었지요. 한수 이북 최고의 추노꾼이라는 천지호조차도 단 1합에 이대길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최장군은 대길과 수십 합을 겨루었지요. 

다시 매겨본 무술 순위 황철웅과 최장군이 공동 3위. 배신자 황철웅에 대한 미움의 결과 나온 순위라 좀 미심쩍다.


그러니 최장군도 가히 송태하나 황철웅과 겨루어도 절대 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역시 송태하의 무공은 천하일절임에 틀림없습니다. 『추노』제작진이 지금까지 인터넷에 제공한 24장의 사진을 보면 이대길과 황철웅이 협공으로 송태하를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둘이 힘을 합쳐도 송태하를 제압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지요.  

역시 송태하가 제일 세다는 증명사진.

그런데 저는 주작님의 글을 읽으면서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태하가 아무리 출중한 무공을 지녔다 하더라도, 이대길이 지닌 선천적인 순발력과 무술 실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총 앞에서야 어떻게 당할쏘냐. 아무리 칼 든 놈이 날고 기어도 총 든 놈 앞에서는 그저 어린아이 재롱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느냐, 뭐 그런.

그러나 역시 총 든 놈이 최고 세다 

최장군은 비록 추노꾼이 되어 대길, 왕손이와 함께 도망친 노비를 잡으러 다니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사려 깊은 인물입니다. 대길이가 패거리의 우두머리임에도 늘 대길을 걱정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듬직한 언니(형) 같은 존재죠. 그런 최장군이 대길에게 양반네 특히 권력자들을 조심하라고 충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양반들을 가까이 하지 말게. 특히 관리들은 조심해야 하네. 칼 든 자보다 붓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야."

그 말에 대길이 무어라고 했는지 혹시 기억나십니까? 대길이 최장군의 말에 냉소하며 이렇게 말했죠.

"요즘은 총 든 놈이 제일 무서워."

하하, 이쯤 되면 주작님께서도 <추노속 인물들 무술순위>를 스스로 수정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길이가 자발적으로 총 든 업복이가 최고 무섭다고 실토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럼 이렇게 되겠군요. 1등은 업복이, 2등 송태하, 3등은 그럼 타협적으로 대길이와 황철웅 공동 3등, 4등 최장군, 5등 왕손이, 그런데 아직 저는 왕손이의 진정한 실력을 보지 못했으니.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총이 제일. 그럼 1등은 업복이, 2등 송태하, 3등 대길이 순. 황철웅은 공동 3등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작님의 순위와 타협해서 나온 것이고, 만약 최장군과 붙으면 어떻게 될까? 내 보기엔 최장군도 만만찮은데요.


아무튼 이 글은 주작님의 트랙백을 읽고 심심풀이로 써 본 것이니 만큼 크게 신경 쓸 것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이 글을 적으며 생각났던 대길과 최장군의 대화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군요. 곽정환 감독이나 천성일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대화를 집어넣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죠.

"칼 든 놈보다 붓 든 놈이 더 무서운 법이야."
"아니야, 요즘은 총 든 놈이 제일 무서워"

요즘은 총 든 놈이 제일 무서워, 이 말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섬뜩한 말이지요. 지금이야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흥미로운 대사쯤으로 재미있게 보고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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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조선판 메트릭스,
    대길이 총알을 피한 것일까? 총알이 대길을 비켜간 것일까?


방금 추노가 끝났습니다. 역시 재밌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길(장혁)이가 언년이(이다해)의 존재를 눈치 챈 듯 하더군요. 어찌 될까요? 알아볼까요? 아니면 그냥 또 긴가민가하다가 놓치고 말까요? 만약 송태하(오지호)와 같이 있는 여인이 언년이임을 알게 된다면 이제 돈 5천 냥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죠. 사생결단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질 겁니다. 

미디어다음 이미지 '뷰티풀라인' 캡처사진



업복이의 총알을 피한 것은 순전히 대길의 순발력 탓이었나?

송태하의 뒤에 숨은 언년이도 무언가 심상찮은 느낌이 전해 옴을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눈과 귀, 코가 아니어도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언젠가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다가
뒤에서 날아오는 야구공을 맨손으로 받아낸 적도 있고, 멍하니 앉아있다 딸아이의 손에서 떨어지는 아이스크림 조각이 땅에 닿기 직전에 손으로 받은 적도 있었죠. 눈으로 보진 못했지만 느낌이 왔던 거죠. 아무튼, 각설하고.

그런데 말입니다. 업복이(공형진)가 말을 타고 추노질을 하러 떠나려던 이대길을 향해 화승총으로 회심의 한방을 날렸는데요. 총알이 정확하게 대길이의 이마, 상스러운 말로는 막박을 향해 날아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총알이 대길의 머리에 구멍을 내려는 순간, 대길의 날카로운 그리고 재빠른 눈이 총알을 보고 말았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화면상으로는 분명히 대길이 자기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총알을 보았고 순간 머리를 틀었죠. 이런 정도의 경지는 그야말로 등봉조극, 오기조원의 경지를 넘어 입신에 다다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이대길의 무공 수위가 이 정도라면 아무리 조선팔도에서 검으로 당할 자가 없는 송태하라도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대길이가 구사일생으로 총알을 피한 것이 순전히 대길의 타고난 순발력과 출중한 무예 탓 만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업복이의 실수도 있었던 것이죠. 마누라 속곳 벗기는 것보다 더 쉽게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관동 제일의 포수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총잡이였는데 말입니다. 

관동제일포수 업복이가 총질에 실수한 까닭은?

만약 그가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면 벌써 호랑이 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럼 업복이가 실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제 생각에 그것은 업복이가 사수로서 지켜야할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남자들 중 대부분은 군대를 다녀오셨을 겁니다. 군대 가면 제일 고통스럽게 배우는 게 바로 사격술이죠. 

피알아이(PRI) 기억나십니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훈련과정이라 모두들 이 피알아이(사격술예비훈련) 훈련장을 일러 피가 터지고 알이 배기는 기초사격훈련장이라고들 합니다.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면 무르팍이 깨지듯 하던 고통이 느껴집니다. 각개전투도 힘들고 총검술도 힘들지만, 피알아이 만큼 힘든 훈련도 없었지요. 

미디어다음 이미지 '데일리안' 캡처사진

그런데 그때 우리가 늘 주지하던 타겟의 조준 목표가 어디였는지 기억나십니까? 바로 가슴이죠. 가슴은 목표물의 정중앙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혹시 조준이 조금 빗나가더라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수의 조준선 정열은 반드시 가슴을 향하는 것입니다. 물론 거리에 따라서 조준선 정열의 지향은 조금씩 달라집니다. 

미세하지만 총알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100m 표적은 가슴보다 약간 낮은 지점을, 200m는 정중앙을, 250m는 머리 부분을 조준하는 것이죠.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조준선 정열의 목표는 가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업복이는 왜 대길이의 머리를 겨냥했을까요? 커다란 몸통을 제쳐두고 그 자그마한 머리를 겨냥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업복이의 가슴속에 불타는 복수심이 평정심을 잃게 했을까?

17세기로 돌아가서 업복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업복이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말입니다. 업복이를 비롯한 노비들을 잡아들인 대길이가 오포교에게 넘기면서 돈을 받는 모습에 분노한 업복이가 대길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었죠. "니놈 대갈통을 부셔버릴 기야." 

그리고 양반들을 모조리 죽여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노비들의 당에 입당한 업복이가 화승총를 시험할 시범케이스로 대길을 지목하고 또다시 말합니다. "내 그놈 대가빠리부터 쪼사버릴 기래요." 복수심에 불타는 업복이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어떻게 화승총으로 바람구멍을 낼 것인가, 이것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중요한 순간에 사격술의 FM을 잊어버리고 머리를 조준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타는 복수심은 오직 대길의 대갈통만 눈에 보이도록 했을 테죠. 만약 업복이의 총이 화승총이 아니라 망원렌즈가 달린 초현대식 저격총이었다면 머리를 조준해도 무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 귀를 조준한들 백발백중을 못 시키겠습니까?
 
그러나 애석하게도 업복이의 총은 임진왜란 때나 보았을 화승총입니다. 총구에 화약을 쑤셔넣고, 쇠꼽(탄환) 재고, 꼬챙이질을 한 다음  불을 붙이고 방아쇠를 당기는 뭐 그런 구닥다리 총이라 이런 말입니다. 그런 총을 가지고 몸통이 아니라 자그마한 머리를 조준해 맞춘다는 것은 아무리 마누라 속곳 벗기기보다 쉽게 호랑이를 잡는 관동제일포수라도 어려운 일이죠. (총알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면 천하의 대길이라도 쉬 피하진 못했을 겁니다.)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러므로 업복이의 실수는, 오로지 대길의 대갈빡에 구멍을 내고야 말겠다는 불타는 복수심, 바로 그 복수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하는 건가 봅니다. 저는 업복이를 보면서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송태하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차분하게 대응합니다.

"어찌 이리 태평하십니까? 대감." 당황하여 달려온 같은 당파를 향해 이경식은 이렇게 말하죠. "일희일비 하지 마시게. 정치를 하려면 무릇 가슴엔 불이 일어나도 언행은 깊은 물처럼 잔잔해야 하니…."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대길의 추노꾼 동료 최장군(한정수)의 말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칼 든 자보다 더 무서운 이들이 붓 든 자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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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