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2.08 아고라, 니들이 바로 언론이야 by 파비 정부권 (4)
  2. 2008.09.26 조중동, 니들이 범죄집단이지 신문이야? by 파비 정부권 (8)

한 아고리언이 언론을 향해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언론인 양반들,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뜨겁습니까?
“도대체 당신들은 뭐하는 겁니까? 이제 당신들이 직접 매를 맞으니 아파서 이렇게 거리로 나온 거 아닙니까? 우리가, 촛불이 아파할 때 당신들은 무얼 했지요? 우리가 그토록 당신들에게 손짓할 때 당신들은 구경만 했지요. 별로 한 게 없지요. 그런데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우리더러 거꾸로 손을 내미네요. 제발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차버리는 짓은 하지 마세요.”

용산참사 규탄집회장으로 행진하는 부산아고라와 미디어행동. 사진 왼쪽 맨 앞, 기자협회 곽?? 기자.

부산아고라 여성회원. 나중에 미디어행동과의 회합에 합석해서 아고리언 줄 알게 됐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제 기억이 맞는다면 이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불평은 서울에서 내려온 언론인(미디어행동)들과 부산의 아고리언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나온 친근한 불만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언론인들은 그 불평에 매우 기꺼워하고 격려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는 조중동 기자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아고리언의 불만도 번지수를 제대로 찾았던 셈입니다. 만약 조중동 기자에게 그런 말을 했다면 마치 돼지나 소를 잡고 대화를 거는 거나 마찬가지 부질없는 짓이었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불만은 반갑고 고마운 연대의 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항상 늘 그렇듯이 불만이 있으면 반드시 반격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산의 이름 모를 어느 식당을 떠나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아고리언들과 헤어지는 마지막 인사를 미디어행동의 몇 분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습니다.

아고라가 바로 언론이다!
“화기애애한 자리라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 헤어질 시간이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한마디 하겠다. 아까 어느 아고리언 분이 언론인을 질책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이고 고마운 말이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 주기 바란다.

도대체 누가 언론인인가? 여기 있는 언론노조 사람들이 언론인인가? 여기 MBC, SBS 기자가 언론인인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언론인이다. 아고라가 언론이다. 그러므로 언론의 자유는 여러분들이 쟁취해야하는 것이다. ‘니네들 잘해라. 우리는 구경꾼이다.’ 그런 생각은 이제 벗었으면 한다. 아고라, 바로 여러분이 언론인 아닌가?”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 홍보물 박스를 들고 있는 부산블로거 커서.

부산 서면에 휘날리는 미디어행동 깃발


역시 내 기억에 의존한 말로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평소 메모하기를 즐겨하지만, 이때는 메모를 못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신학림 위원장,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에다 고명하신 천주교 언론지키기운동의 이필모 선생님, 그리고 몇 분의 이름을 대면 알만하신 분들과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다 보니 좀 많이 마셨나봅니다.

그러나 나는 술이 확 깨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너무나 훌륭한, 명언이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바로 아고리언들이 언론인이지. 그리고 블로거들도 언론인임이 마땅하고. 그렇고말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보니 언론의 자유는 소위 언론으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들 핑계 댈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야.’

교수들이야 늘 차갑게 비판하는 걸 즐겨하는 사람들인데, 이날의 차가운 비평은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두들 박수를 열렬히 쳤음은 물론입니다.

미디어행동,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사람들
부산 아고리언과 헤어져 해운대에 자리 잡은 숙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늦은 관계로 나도 거기에 꼽사리끼어 하룻밤 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지만. 언제 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자주 있겠습니까?

아직 10시도 되지 않았습니다. 방 한가운데 신문지를 깔아 술상을 만들었습니다. 소주와 맥주가 대령했습니다. 국민이 언론의 주인이든 어떻든 그들은 역시 언론으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화마다 재치와 위트가 넘쳤습니다. 마치 능글맞은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밤이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커다란 양푼에 맥주를 장약 삼아 소주를 뇌관으로 심어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며 지는 밤을 밝혔습니다.

부족한 장약과 뇌관을 조달하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그 자리에서 가장 어린(아니 젊은) 유민권 변호사(언론개혁시민연대 자문변호사)가 종종걸음으로 수고를 했습니다. 그는 올해 삼십하고 1년을 더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갓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처럼 보였습니다. 모두들 운송단가가 비싸게 치이는 술을 먹는다고 농담을 던졌습니다.

부산 서면, 용산참사 규탄집회장의 시민들

가운데가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초를 다투는 언론인들답게 약속된 12시 반, 어김없이 땡!

나는 유변호사에게서 그의 변호사란 직업보다는 그 젊음이 부럽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아직 나도 젊지만, 그는 나보다 더 젊습니다. 그 젊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이렇게 열렬히 나서는 그를 보는 것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그의 동안(童顔)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40대가 될 무렵이면 이 나라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때 우리는 희망을 논할 수 있을까? 그때쯤이면 우리 아이들도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할 테지.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가슴 설레는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내 결론은 희망적입니다. ‘미디어행동과 아고라, 그리고 이들과 연대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있는 한… 역사의 수레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리라….’

2009. 2. 8.  파비

ps; 미디어행동은 다음날 아침 일찍 대구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대절한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들은 이렇게 서울에서 김해로 부산으로 창원으로 다시 대구로 전국을 투어 중이라고 했다.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김해를 거쳐 그들이 타고 온 버스에 함께 타고 부산 서면으로 갔다.
ps2; 아, 참, 조중동 기자는 없었지만, 조중동과 싸우는 중앙일보 지국장 출신의 어른(신학림 기자 옆)이 한 분 계셨습니다. 그분은 중앙일보에서 쫓겨났고 지금은 전국신문판매노동조합 위원장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너무나 많은 사실을 그분에게서 들었는데요. 조중동, 정말 흡혈귀더군요. 신문판매노조 홈페이지 주소가 npnet.or.kr이랍니다. 관심 많이 가져주시고 가끔 들러주세요. 사실은 저도 아직 못 들렀는데, 오늘 들러보려구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은 노회찬 전 국회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신학림 기자를 초청했다. 신학림 기자는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이며 현재는 '미디어행동' 집행위원장과 '언론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미디어스'라는 인터넷 언론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분은 한마디로 자신을 신문을 위장한 범죄집단 족벌언론과의 싸움꾼이라고 소개했다. 강연 제목부터 “MB정권과 언론으로 위장한 범죄집단, 족벌권력은 어떻게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였다. 이 제목 하나만으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대단한 싸움꾼인지 알 수 있었다.

신기자는 서두를 족벌언론과 재벌과 정치권력의 가계도를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가 그려대는 가계도는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재벌과 언론과 권력의 유착관계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이건 상상 밖이다. 도대체 대한민국 안에 별개로 존재하는 씨족집단이 있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대로라면 신기자의 설명처럼 경제5단체장과 대통령과 총리가 모여 회의를 열면 바로 ‘가족회의’요 ‘사돈회의’가 되는 것이었다.

대통령과 총리와 삼성, 엘지, 현대 등 재벌가와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언론이 거미줄처럼 엮여있었다. 특히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과 이건희의 장인이 된 홍진기의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에선 참으로 언어도단의 역사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홍진기는 친일부역자로서 해방이 되자 처벌이 두려워 일본으로 도망을 갔다. 그런 그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고 정권을 잡자 귀국하여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으로 화려하게 재기하게 되었는데, 다시 3·15와 4·19혁명 당시 발포명령자로서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4·19혁명 때 수도권에서만 무려 2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니 그가 지은 죄과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씻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이병철에게 소개한 사람이 바로 경북 칠곡 출신의 경북고 대부로 통하는 신현확이었다. 신현확은 전두환 일파가 12·12 쿠데타를 일으킬 당시 부총리였으며 최규하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도록 종용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병철은 신현확의 조언에 따라 감옥에 있던 홍진기를 면회하면서 가까이 지내기 시작했으며, 결국 이 두 사람은 아들과 딸을 혼인시켜 사돈지간이 됐다. 조중동의 일원인 중앙일보가 삼성재벌의 신문이고, 홍진기의 아들이며 이건희의 처남이 사장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학림 기자는 말했다. 그럼 왜 조중동을 범죄집단이라고 하는가? 바로 탈세와 투기, 감금, 폭행, 성적 범죄까지, 우리가 입에 담을 수 있는 모든 추악한 범죄들이 이들과 똘똘 뭉쳐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원래 친일경제단체 대정실업친목회를 배경으로 창간된 조선일보를 금광으로 큰돈을 벌게 된 방응모가 조선총독부와 밀약을 통해 인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위 문화정책을 펴던 총독부가 방응모의 친일서약에 조선일보를 넘겼음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조선일보가 이후 해방될 때까지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을 부르짖었음을 모르는 이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조선일보는 해방 후에도 자유당정권, 다시 공화당정권으로 말을 갈아타가며 추악한 권력을 유지해 왔다. 방응모의 손자인 방일영은 ‘밤의 대통령’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서슬 퍼런 유신시절에 누가 감히 대통령을 사칭할 수 있었겠는가?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붙여준 별호였던 것이다. 두 사람은 뻔질나게 요정에서 놀던 사이로 하루는 박정희가 그랬다는 것이다.

“임자,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임자가 대통령이야!”

물론 이런 이야기는 야사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야사가 아니라 진실이란 사실도 모르는 이는 없다. 박정희의 밤의 행각에 관해서는 ‘배꼽 밑의 일에 대해선 논하지 말라’던 그의 호탕함만큼이나 인구에 회자되는 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호탕한 방탕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방일영이 2003년에 사망하자 그의 세(네?)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난 2녀1남이 친자확인소송에서 승소하고 재산분할청구소송에 들어갔다고 한다. 물론 현 조선일보 사장인 방상훈은 자기 집안의 추악한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배다른 동생들을 장례식장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했지만, 이제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아마도 그 일은 자기가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이들 조중동과 같은 족벌언론이 어떻게 권력과 재벌과 더불어 거미줄을 쳤으며, 어떻게 치부를 하고, 어떤 추악한 밤의 역사를 만들었는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런 것을 하나씩 알게 될 때마다 심장에는 주름만 늘어날 것이고 건강만 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나 같은 시골 촌부가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 탓도 있을 터이다.

이 정권만 생각하면 떠오르는 히틀러


그러나 서글픈 일은 이들 정권과 재벌과 언론의 수구반동복합체(이건 신기자가 만들어낸 말로써 미국에 군산복합체가 있다면 한국에는 수구반동복합체가 있다는 비유를 들었다)인 족벌권력이 이 정권을 통해 한국사회를 영구히 장악하고 지배하기 위한 방송장악 음모를 하나하나 착실히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싶다고 해서 또는 무력하다고 해서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현 정권은 지상파TV와 종합편성PP(필자주; 종합편성프로그램공급채널), 보도전문채널에 대한 재벌의 진출을 합법화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여기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를 없애고 새로운 방송광고대행사(미디어랩, Media Rep)를 만들어 통제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 현 정권의 계략인 것이다.

원래 코박코(KOBACO)는 전두환 정권 때 언론 통제를 목표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87년 6월 항쟁을 거치면서 언론의 민주화와 독립성 쟁취에 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아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제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이제 이명박 정부가 폐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신학림 기자의 설명이 진행될 때마다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명박, 정녕 그는 스스로의 생각처럼 방송 빼고는 거칠 것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해 보였다. 과거 건설사 사장 시절의 불도저식 저돌성으로 못 밀어붙일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이지만, 역시 방송만큼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여론을 장악하지 못하고선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들은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또한 역으로 대운하, 민영화 등 난관에 봉착한 이 정권의 모든 친재벌 정책들도 방송만 장악하고 나면 일거에 해결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신학림 기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너무 어지러워 두뇌의 회로가 타버리는 것만 같았다. 정리도 안 되고 혼란스럽기가 그지없다. 지금은 21세기며 민주주의 시대이다. 19세기도 아니고 20세기 초 군국주의 시대도 아니다. 히틀러도 이미 죽었고 뭇솔리니도 없다. 그런데 왜 자꾸 히틀러가 생각나고 그의 충직한 선전장관이며 여론조작의 귀재 괴벨스가 생각나는 것일까?

오늘 포스팅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길고 정신없다. 죄송한 마음 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를 지배해온 족벌권력을 제 정신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을 이해하는 모든 분들의 이해가 있으리라 믿는다. 언제 꼼꼼히 정리한 강연노트를 시간 내어 깔끔하게 정리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많은 내용이므로, 짧게 잘라서 시리즈 형식으로라도 다시금 포스트에 올리고픈 생각이다. 족벌권력 가계도도 그려 보이고 싶다. 정말 모두가 알아야하고 알았으면 하는 이야기들이다.

신기자는 조중동과 같은 추악한 집단과 싸우는데 두려워할 일이 없다고 했다. 도대체 부도덕한 집단을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느냐는 것이다. 싸우다가 부닥치면 자기 핑계를 대라고 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겁 없는 사람을 여럿 보아왔지만, 이런 사람도 그리 흔치 않으리라.

다음 신학림 기자의 말로 끝맺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에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노무현의 좌절감의 표시였든 재벌에 대한 대국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이었든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자기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주류에서 출발한 노무현이 큰 틀에서 보아 대부분의 정책이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태생이 다르고 출발부터가 다른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지상과제는 방송장악이다. 운하사업도 한미FTA도 방송장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로지 방송장악이다. 지상파 방송만 장악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방송통신위원장에 앉힌 최시중의 임무도 바로 지상과제인 방송장악이다.

한마디로 이 싸움에 한국 사회의 미래가 걸려있고 노동자, 서민 대중의 삶이 걸려있다. 이명박 정권은 방송을 장악하는 순간 지금까지 그나마 형식으로 취했던 국민을 섬기겠다, 소통하겠다는 자세가 180도 달라질 것이다.”

2008. 9. 25 경남도민일보 주최 <신학림 기자 초청강연회>에 다녀와서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