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26 '추노' 잔혹한 반전 뒤에 떠오르는 희망?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3.20 추노, 노비당의 그분은 진짜 '그분'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62)
  3. 2009.08.30 다산이 세검정에서 놀던 이야기 들어보니 by 파비 정부권 (6)
지랄 같은 세상을 향한 업복이의 마지막 분노

큰일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하던 대로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었습니다. 저는 앞에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어서는 안 되며 절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역시 희망 섞인 말을 하면서도 불안했었던 때문이겠지요. 많은 분들의 지적처럼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 무수히 있었고 실은 저도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희망에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한 반전

"그러나 만에 하나 제 생각이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큰일 나는 거지요.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겠어요?"

그리고 결국 그 '큰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분은 노비도 아니었으며 노비당을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더더구나 혁명 같은 건 꿈에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시 출세를 위해 이경식이 시키는 대로 일을 꾸민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도 역시 양반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경식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노비들에게 형님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참겠지만 냄새는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노비들 가까이 가면 냄새가 어찌나 역한지 대업이고 뭐고 당장에 목을 쳐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끝봉이의 주검을 안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광화문 앞에 선 업복이


아, <추노>는 마치 저의 아둔함을 조롱이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잔인한 반전을 만들고 말았네요. 사람 위에 사람 없는 거라던 그분의 진면목이 바로 저런 것이었다니. 그런데 왜 저는 그분이 진짜 그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천 냥짜리 어음 사건을 통해, 물소뿔 상인들과 청인무사들의 피살 사건을 통해 이경식과의 관련성이 복선으로 깔렸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요? 세상을 바꾸자는 그분의 말에 현혹되었던 것일까요? 저 역시도 천한 상것들과 다를 바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알현을 받은 이경식이 이렇게 말했지요. "천것들이란 작은 희망만 보여줘도 죽을지도 모르고 따라오게 돼 있으니." 그랬나 봅니다. 그 작은 희망에 잔혹하게 숨어있는 반전을 보지 못 했던가 봅니다.  

노비당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은 원래 없었다

결국 노비당은, 아니 꾐에 빠진 노비들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초복이와 긴 이별을 해야 했던 업복이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업복이는 끝봉이로부터 그분의 존재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복수를 결심한 업복이는 대궐로 향하고 마침 대궐에서 나오던 이경식과 마주치게 되지요.

이경식과 그분, 그리고 변절자 조선비가 모두 업복이게 죽는다.


그리고 이경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그분, 업복이의 총에 이경식과 그분은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정말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치부를 위해 같은 양반들을 죽이기도 하고, 노비들을 부추겨 세상을 바꾸자는 따위의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이렇게 간단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었다니.

아무튼 애초부터 노비당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마지막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희망이었을까요? 저는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희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길과 태하, 언년이에게서도 희망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대길이의 최후, 역시 멋지다.

대길은 언년이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는 떠나는 언년이를 보며 이렇게 속으로 뇌까렸지요. "네가 살아야 돼.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거다."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베르토 조단이 사랑하는 마리아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추노>의 장혁이 훨씬 멋있었습니다.

휘날리는 머리칼 아래 슬프게 빛나는 눈빛, 루지탕에서 보았던 알랑 들롱의 눈빛 이후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장혁의 눈빛에서도 저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어쩌면 송태하가 청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혜원에게 한 이 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이땅을 떠날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금방 회복될 것입니다. 다 나으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혜원이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그러나 그 말을 통해서도 저는 작은 희망 하나라도 건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송태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송태하는 그저 몰락한 양반에 불과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골에 묻혀 책이나 읽으며 가까운 상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상은 없습니다. 너무 무시하는 것일까요?

업복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노비들


그래도 굳이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저는 오히려 업복이와 한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반짝이 애비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과 이경식을 죽이고 체포되는 업복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이 보이긴 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2, 제3의 업복이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너무나 참혹한, 잔혹하기까지 한 반전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선 그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비당을 만들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할 때 희망은 아침 태양처럼 떠오르는 것이겠지요. 초복이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은실이에게 한 말처럼. 

"은실아,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저건 우리 거야. 왜냐하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녀는 마치 총자루가 업복이의 영혼이라도 된다는 듯이 힘차게 잡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그 총자루는 업복이가 마지막 비장한 결심을 하며 던졌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설령 그 총이 그 자리에 없었던들 들었을 거예요. 총은 업복이의 화신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은 초복이에게도 전해졌을 테지요.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렇게만 되믄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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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노비당 당수 <그분>에게선
홍길동의 얼굴과 허균의 마음이 보인다


<추노>는 초기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노비당 당수를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소위 <그분>이라 불리는 그분의 실체가 무엇일까 모두들 궁금했었지요. 물론 업복이도 그분이 누굴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노비당 패거리 중 어른인 개놈이의 말에 의하면 그분은 "우리 같은 상것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그분이 나타났습니다. 업복이 등이 양반 암살임무를 수행하다 위기에 처하자 바람처럼 나타나 그들을 구한 것입니다. 그분의 무예는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분의 얼굴을 보았는데 이제 갓 약관의 청년입니다. 이렇게 젊은 분이었다니. 

무성한 그분에 대한 소문들

놀란 것은 업복이 등만이 아니었습니다. 열혈 시청자들도 그분의 너무나 젊은 모습에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며 지금 그분이라고 불리는 이분은 그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직 어디엔가 몸을 숨긴 채 은밀한 지시를 내리고 있으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분이라 불리는 에이전트를 통해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그분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들을 합니다. 처음엔 기생 찬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일개 기생이면서도 좌의정 이경식의 의중을 들여다보는 노련한 눈을 가졌습니다. 거기다 당차기까지 합니다.

이경식이 사들이는 물소뿔과 관련된 양반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갈 때 그 은밀한 거래들이 모두 찬의 기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찬이 바로 그분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빼고는 그 은밀한 거래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이경식과 찬이 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극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동안에도 찬에게는 이렇다 할 그분으로서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새로 들어온 젊은 기생에게 자리를 위협 당하고 있는 처집니다. 가끔 젊은 기생을 흘겨보는 눈에 드러나 보이는 질투는 그녀가 결코 그분이 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진짜 그분, 기생 찬에서 이번엔 이경식으로

그러자 이번엔 이경식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분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은 좌상 이경식이란 것입니다. 이경식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물소뿔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왜 물소뿔을 사 모으고 있을까요?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 간단한 이치지요. 그는 자기의 욕망을 위해 청과의 긴장관계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원손 석견은 바로 그 욕망의 세계로 넘어갈 돌다립니다. 그는 이제 목표를 이루었으므로 굳이 석견을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그런데 철없는 사위 황철웅은 말을 안 듣고 석견을 죽이겠다고 날뛰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역모사건을 만들어 반대파들을 모두 제거했을 뿐 아니라 곧 창고에 가득찬 물소뿔을 비싼 가격으로 조정에 내다 팔아 큰돈도 벌게 될 겁니다. 여한이 없는 이경식입니다.

그런 이경식의 계획 중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있는데 바로 노비들의 호적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서 북방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청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물소뿔은 비싼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분이라 불리는 이는 이경식의 하수인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런 설정은 만들어지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노비당은 혁명당입니다. 그저 정권을 바꾸는 정도의 역모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당입니다. 아무리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모인 패거리라도 혁명당은 혁명당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상당한 무력을 확보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차별을 하늘이 내린 법도라고 생각하는 양반들

이경식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노비당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혁명을 부추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은 이경식의 머리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양반 중에 양반입니다. 그런 사람이 노비들이 단결해서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의 머리로선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들 양반들은 노비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 냥 혹은 쌀 한 섬 반에 거래되는 물목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노비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선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양반들 중에도 이런 사상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마 <추노>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허균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양반 중에서도 양반이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동인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의 형제들 또한 자질이 뛰어나서 자기 당파에서 두각을 내며 주도적 인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서자들, 상것들 하고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는 홍길동전을 지어 상것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혁명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혁명을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그는 체포 됐고 모진 고문을 받은 다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참혹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혁명가 허균, 그의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조차 역심 

죽은 다음에도 그의 시신은 분해되어 이곳저곳에 전시되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어찌 말로서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조선조가 다할 때까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역심을 품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조선조에 역모사건이 한두 건이 아닌데, 유독 허균에게만은 왜 그랬을까요?   

허균이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역모는 보통 역모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혁명은 반상의 차별, 적서의 차별을 없애고 노비를 착취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양반들이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에겐 아마도 땅을 뒤집고 하늘을 무너뜨리겠다는 소리로 들렸겠지요.  

자, 다시 이경식 이야기를 해보지요. 이경식이 물소뿔을 사 모으며 청과의 전쟁을 획책하던 시대는 허균이 능지처참을 당한지 불과 이십여 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땝니다. 그러니 위에 전제한 것과 달리 이경식이 노비당이 체제전복을 기도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전혀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 왜냐? 노비당의 혁명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역심을 가진 것이며 도무지 그들 세계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간이 큰 이경식이라도 그것만은 절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이경식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할 뿐인 것이지요.

그분의 진정한 정체는?


그럼 그분은 누굴까요? 우리가 그분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젊은 나이에 놀랐고, 그저 칼 한 자루 들고 종횡무진 하는 모습이 못 미더워 의심을 하기 시작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분이 말만 앞선 사람이 아니란 것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각 처의 노비당 당원들이 모이고, 선혜청을 공격함으로써 그 실천적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정말 그분의 말처럼 궁궐을 들이칠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원기윤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그분의 모습은 실로 지도자의 판단과 강단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실은 원기윤의 처리를 보면서, 그분이 비록 의기는 충천했으되 사리판단에 너무 어두운 것 아닌가 걱정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의심을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선혜청을 습격하다 다리를 다쳐 관군에 잡힌 칼잡이 노비부대의 강아지―이름도 참 특이합니다. 게다가 그는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개 신세가 되어 체포됐지요. ㅋ^^―를 업복이에게 죽이도록 지시한 그분의 행동이 잔혹한 이경식을 그대로 빼닮은 거 아니냐는 의견을 내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업복이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관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 동지들의 이름을 불고 죽느니보다 차라리 우리 손에 깨끗하게 죽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노비당의 당원이 체포됐을 때 가해질 고문의 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설픈 인정은 오히려 동지들의 안위를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짜 '그분'

그러므로 이경식처럼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잔혹한 행위와 그분의 대의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글쎄요, 노비당의 당수 그분의 얼굴에서 홍길동의 얼굴을 보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노비당의 모습에서 활빈당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그분의 마음속에 허균이 앉아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다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제가 보기에 그분은 진정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의 혁명이 비록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연출자가 말한 것처럼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분의 혁명도 실패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어쩌면 월악산의 화적패당들과 한패가 될 수도 있겠지요.

다시 '어쩌면'이지만 월악산은 율도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율도국은 마치 토마스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 같은 곳이겠지요. 유토피아는 곧 인본주의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자기에게 굽실거리는 노비들을 향해 형님들이라고 부릅니다. 형님 소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노비들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하지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노비당원들이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하고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형님들이 드나드는 대궐의 문지기가 하고 싶습니다." "아니 왜요?" "그래야 매일 잘 사시는 형님들 얼굴을 뵐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저분이 진짜 바로 그분이구나!" 하고 느꼈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제 생각이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큰일 나는 거지요.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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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세검정의 뛰어난 경치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 폭포를 보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가 막 내릴 때는 사람들이 수레를 적시면서 교외로 나가려 하지 않고, 비가 갠 뒤에는 산골짜기의 물도 이미 그 기세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정자는 근교에 있으나, 성안의 사대부 가운데 정자의 뛰어난 경치를 만끽한 사람은 드물다.
신해년(1791) 여름에 나는 한해보 등 여러 사람과 명례방에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뜨거운 열기가 찌는 듯하더니 검은 구름이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 천둥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나는 술병을 차고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네. 그대들은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는가. 만약 가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는 벌주 열 병을 한꺼번에 주지.”
하니 모두들,
 “이를 말인가.” 하였다.
이리하여 마부를 재촉하여 나왔다. 창의문을 나서자 비가 서너 방울 떨어졌는데 크기가 주먹만하였다. 말을 달려 정자의 밑에 이르자 수문 좌우의 산골짜기에서는 이미 물줄기가 암수의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하였고, 옷소매도 또한 빗방울에 얼룩졌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아 있으려니, 수목은 이미 미친 듯이 흔들렸고 한기가 뼈에 스며들었다. 이때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 물이 갑자기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은 메워지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흘러내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내리치는 물 속에 마구 쏟아져 내리면서, 물은 정자의 주춧돌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형세는 웅장하고 소리는 맹렬하여 서까래와 난간이 진동하니 오들오들 떨려 편안치가 못하였다.
내가 묻기를,
“어떻소?”
하니 모두 말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좋구먼.”
이라고 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런 농담을 하며 즐겼다. 조금 있자니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산골 물도 점점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붉으락푸르락 천태만상이었다. 서로를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한참 지나자 심화오가 이 일을 듣고 정자에 뒤쫓아왔으나, 물은 잔잔해진 뒤였다. 처음에 화오는 같이 오자고 하였으나 오지 않았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조롱하고 욕을 해댔다. 그와 함께 술을 한 순배 마시고 돌아왔는데 그때 홍약여·이휘조·윤무구 등도 함께 있었다.

위 글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입니다.

이 글은 다산문선 중 유세검정기(세검정에서 노닐은 기) 전문입니다. 다산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다독가로 유명하지만 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집필한 다작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신유사옥 때 천주교도로 몰려―그가 천주학쟁이였던 것은 그게 학문연구의 목적이었든 신앙적 목적이었든 사실이었던 듯하다. 그의 형 정약종은 천주학의 수괴로 한강에서 참수되었으며,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정약종의 아들 정하상은 한국 천주교의 상징적 인물이다. 천주교에선 김대건 신부보다 정하상의 이름이 훨씬 드높다. 기도할 때 부르는 성인 이름 중에 정하상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전남 강진에서 18 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무려 500 권의 책을 썼다고 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노트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잘 써지는 만년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직접 먹을 갈아 붓으로 한 자 한 자 500 권의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그저 숙연해질 뿐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1표2서, 즉 경세유표와 목민심서, 흠흠신서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유세검정기>는 정조가 죽기 전, 즉 신유사옥(혹은 신유박해)가 일어나기 전 젊은 시절 동무들과 어울려 놀던 이야기를 직접 적은 글입니다.
정약용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되실 것입니다. 아주 호탕한 기질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세검정까지 술과 안주를 지고 갔을 ‘종놈’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웬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고요? 글쎄, 제가 좀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이나 상상을 좀 많이 하는 편이지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세검정까지 올라가는 동안 다산이나 그의 동무들이 양반 체면에 술과 안주를 지고 가지 않았으리란 사실은 분명합니다.
요즘처럼 자동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먼 길에 술과 안주를 나르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말에 싣고 갔을 수도 있겠지만, 어떻든 비가 쏟아지는 산길은 고역이었을 겁니다.

목민심서로 만관에게 귀감을 보여준 다산 선생도 결국은 제도의 한계를 어쩌지는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리 보면 허균이야말로 뛰어난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상민들을 친구로 사귀며 함께 술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혁명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조선이 멸망하는 날까지 허균의 이름은 아무도 입에 올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양반이 지배하는 세상을 부정하는 괴물이었으니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