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20 회룡포에 빼앗긴 이름, 의성포의 사계 by 파비 정부권 (12)
  2. 2009.04.02 세상엔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by 파비 정부권 (2)

낙동강 4차 도보기행, 우리는 마침내 경북 안동 풍산면 화회마을을 거쳐 예천 풍양면의 삼강나루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을 지나면서 유독 바람 풍자가 많은 동네란 생각을 했습니다. 풍산과 풍양 외에도 바람 풍자가 들어간 동네 이름들이 곳곳에 있었거든요. 풍산이라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풍산 유씨죠. 하회마을은 바로 풍산 유씨의 집성촌입니다.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인 공윤님이 촬영한 삼강의 아침. 내가 찍으면 이렇게 안 나온다.


그럼 풍양은요? 물론 요즘 풍양하면 삼강나루와 삼강주막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얼마 전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가 이 삼강주막에서 자기 부인과 막걸리를 마시며 양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갈 건지 말 건지를 고민했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나가면 그냥 나갈 것이지 왜 하필 이곳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자를 불렀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삼강주막이 요즘 꽤 유명한 건 사실인 모양입니다. 

풍양은 본래 조선 후기 안동 김씨와 더불어 세도정치의 한 축을 담당했던 풍양 조씨의 본향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예안-안동-풍산-풍양, 이 벨트야말로 양반들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안은 퇴계 이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정치사에서 이곳을 비롯한 영남은 철저하게 배척당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정조 임금이 도산서원 앞 시사단에서 영남 선비들만을 위한 과시를 열었을 때, 7천명이나 모여들었을까요? 우리들의 도반 신정일 선생에 의하면 조선시대 정치사에서는 호남만 배척 당한 것이 아니라 영남도 철저하게 배척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흥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서울에서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들을 이곳에선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곳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그들은 이단이었던 것이지요.

삼강이란 지명은 이곳이 금천과 내성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아마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을 양수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 같습니다. 이 삼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면 문경 영순입니다. 역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문경은 국민학교와 중학교까지 제가 자라던 곳입니다. 풍양에는 외가 친척들도 있었지요.
 

삼강주막 뒤 회나무 아래 평상에 앉으면 삼강이 시원하게 보였을 터다. 그러나 이제 다릿발과 제방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삼강은 나룻배를 띄우지 않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가 삼강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풍양과 문경을 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필 세개의 강이 합쳐지는 한복판을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을까요? 교량에 새겨진 준공일자(2004. 3. 11일)를 살표보니 다리가 생긴 지가 불과 5년입니다. 한편으로 삼강주막을 선전하고 또 한편으로는 거기에 다릿발을 세워 기를 죽이는 아이러니…

그러므로 삼강주막의 유명세를 듣고 한적한 강변의 정취를 기대하고 오시는 분들이라면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무척 실망했습니다. 거대한 교각 아래 초라한 초가집과 500 년 묵은 회나무를 덩그러니 넓은 마당과 주차장에 서서 지켜보려니 차라리 을씨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 삼강이 유명해진 것은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물돌이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성천이 굽이쳐 내려오다 낙동강에 몸을 풀기 전 마지막 용트림을 대지에 새겨놓았습니다. 바로 의성포입니다. 낙동강의 하회마을과 동강의 물돌이동이 유명하지만 의성포에 견줄 바가 못 됩니다.

그런데 이제 의성포는 의성포라 부르지 아니하고 회룡포라 부릅니다. 회룡포란 이름은 예천군청에서 이웃한 의성군과 지명이 혼동된다고 하여 새로 정한 이름입니다. 1999년부터 그리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의성포를 의성포라 부릅니다. 이 또한 지방자치제가 만들어낸 폐단의 한 단면이란 생각이 듭니다. 

의성포란 이름은 오래 전에 의성에 살던 사람들이 이주해 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겠지만, 뜻풀이로 보자면 '의를 이룬다'는 의미가 이 지역의 전통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인 듯하여 섭섭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름을 버린다는 것은 굳이 따져 말하자면, 이름에 깃든 역사도 함께 버린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새벽 5시 반에 기상한 우리는 삼강나루가 아닌 삼강다리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일찍 아침을 먹고 의성포로 향했습니다. 의성포를 보기 위해선 비룡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비룡산은 낮으막한 산이지만 올라가는 길은 뱀처럼 구불거리는 게 낙동강 만큼이나 험합니다. 이곳까지 차가 올라갑니다.  

비룡산에 올라 회룡대에 서니 의성포가 보입니다. 장관입니다. 의성포의 물돌이는 350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의성포의 목 부분은 불과 80여m, 끊어질 듯 아슬아슬합니다. 저것이 끊어지면 섬이 되겠지요. 그러나 물은 그렇게 잔인하지 않습니다. 막으면 돌아가는 게 물의 천성입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절경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지요.  

아래는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게시판에 올렸던 의성포의 사진입니다. 사진 솜씨가 조잡하여 현장의 감동을 전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올려봅니다. 아마 의성포를 가보실 수 있는 분은 별로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저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불과 3~40리 거리에 살았지만, 처음이었답니다.    
     파비

낙동강 도보기행 4차, 회룡대에서 찍은 의성포 사진입니다. 요즘은 의성포라 하지 아니하고 회룡포라 부른다지만, 저는 의성포가 더 좋습니다. 이웃에 있는 의성군을 의식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곳의 오래된 풍습에도 의성포가 더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러나 지역민들이 굳이 회룡포라고 부르길 원한다면 그렇게 불러주어야겠지요.  

이리하여 마음이 약해 잘도 변하는 제가 찍은 회룡포 사진입니다. 6월 28일에 찍은 사진이니 여름 풍경이 되겠네요. 그 아래 하얀 겨울 풍경도 있습니다. 오곡이 풍성한 가을 풍경의 회룡포도 있고요. 이렇듯 회룡대에 오르니 푸른 회룡포 뿐아니라 하얗고 노랗고 또 히끄무리한 모든 풍경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실은 하얗고 노란 풍경 사진은 회룡대 벽에 걸려있던 사진을 찍은 것이랍니다. ㅎㅎ 혹시 눈앞에 보이는 회룡포의 절경에 취해 이것을 못 보신 분이 계실지 몰라서 올려봅니다. 감상은 무료이니 마음껏 즐기시기를…


카메라로 한 번 찍었지만 완전히 안 잡혀서 다시 한 번 더 찍었지만 역시 다 못 잡았네요. 화각이 1mm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사진 찍을 때 무조건 자동모드입니다. 다른 건 손댈 줄 모릅니다요. 카메라는 꽤 비싼 걸 샀습니다. 낙동강을 위해서… 캐논 450d 번들인데요. 85만 원 들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회룡포 마을로 건너가는 다리를 찍은 사진입니다. 망원이 아니라 제대로 잡진 못했습니다.


회룡포의 모가지가 사슴 목보다 더 가늘어 보입니다. 회룡포를 한바퀴 휘돌아온 강은 다시 반대로 꺾어 우리가 서있는 회룡대의 뒤로 흘러갑니다. 정말 장관이지 않습니까? 이렇듯 아무리 앞을 가로막아도 구불구불 휘돌아 마침내 가야할 길을 가고야 마는 강의 인내가 정말 대단합니다. 태백에서는 돌아갈 길이 없을 때는 결국 산을 뚫어서라도 가고야 마는 부드러운 물길의 강철같은 의지도 보았었지요. 구무소에서…


이하는 제 사진이 아니고 회룡대에 걸려있던 전문가들의 사진입니다. 어차피 그걸 또 제가 찍었으니 제 사진이라는 것도 맞는 말 아닐까요? 그냥 제 사진으로 보아 주십시오. ㅎㅎ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세상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오후 7, 구미종합터미널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초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분 안에 도착할 테니 터미널 옆 주유소 앞에 서있으란다.


잠시 후 낙동강 변 도로에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달려오는 카렌스 승용차가 보인다
. 이제 출발이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다.


초석님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이다. 내일은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지만 치과의원 문도 닫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그가 신정일 선생의 열렬한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정일 선생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르는 줄 몰랐다.

 

주말엔 쉬어야지요. 우리나라도 대부분 주 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는데, 그래도 토요일 하루 쉬니까 간호사들은 좋아하겠네요?

, 좋아하지요. 그치만 돈이 안되잖아요. 주말만 되면 이러이 돌아댕기니 우리 마누란 별로 안 좋아해요.

 

자동차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려 금새 안동에 닿았다. 구미에서 안동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던가. 이미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점령당해 있었다. 차는 도산서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면 안동시내를 지나가야만 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다리를 건넜다.

 

강은 저 아래 어둠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어둠이 빛을 가린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기질마저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줄기가 대지를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변을 밝히는 불빛들이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 그런데 신호등들이 모두 황색점등 일색이다. 깜박거리는 노란색 신호등 아래로 차들은 잘도 지나다닌다. 초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익숙한 솜씨다. ~ 조수석에 뻗은 두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다시 어둠에 점령당한 시골길을 달린다. 지금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농암종택(조선 중기 문신 농암 이현보의 종가)이다. 그곳에 <낙동강역사문화탐사>의 저자 신정일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일행들의 낙동강답사(안동지역)에 강연을 한다고 했다.

농암종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 안동댐에 수몰되면서 옮겨온 이곳이 아직도 안정이 덜 된 듯했다.

이미 시간은 9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초석님은 걱정이 되는 듯 신정일 선생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 조금 늦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 이거 선생님 추운데 많이 기다리시겠네. 에이, 농암종택 거 군불도 뜨끈뜨끈하게 때 놓았을 텐데 방안에 가만 계시면 되지 뭐. 혼자서 중얼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더니 깜깜한 시골길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이 길을 제집 드나들 듯 했을 초석님도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던지 길을 잃고 말았다. 깜깜한 비포장 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경운기 한대도 겨우 지나갈 것처럼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차를 돌렸다. 다시 되돌아 나와 국도변에서 보니 농암각자(聾巖刻字)라고 쓰여진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걸 보고 잘못 길을 들은 것이었다.

 

, 저걸 보고 헷갈렸네. 길도 진짜 비슷하게 생겼습디더. 그래도 좋은 거 하나 알았네요. 저 안에 어디 농암각자가 있는 모양인데 다음에 꼭 한 번 와봐야겠심더. 초석님의 사투리는 속된 말로 완전 오리지널이다. 의사보다는 농군 냄새가 더 물씬한 것이 정겹다.

 

다시 1Km쯤 더 내려오니 이번엔 진짜 농암종택이라고 쓴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꺾어 드니 정말 아까 잘못 들었던 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한참을 달리니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 변을 달리는데 낭떠러지 아래 물살이 제법 세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결이 무섭기까지 하다.

 

드디어 농암종택 도착. 대문 앞 공터에는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승용차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최신형 제네시스도 보이고 대체로 고급차들이다. , 그러고 보니 오면서 들은 대로 이곳에는 7명의 환노위 국회의원들과 봉화군수와 안동시장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수행원들도.

 

이분들은 오늘 안동과 봉화 일원의 낙동강을 직접 발로 걷고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강문화 전도사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훌륭한 강연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결심했을까? 글쎄 그게 가장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연도 모두 끝나고 왁자지껄한 담소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고색창연한 고가의 적막을 기대했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이미 국회의원들과 이 고을 수령들과 수행원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기대는 애초부터 말았어야 했다.

 

바깥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앞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맑게 빛났다.

대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맑은 대낮에 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머리 위에 쏟아질 듯 지척에다 별들을 매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없이 하얗게 빛난다.

 

사랑채와 긍구당(肯構堂)등을 둘러본 다음 이 저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로 가보았다. 안채는 대청에 매달린 불빛만이 사람이 산다는 것을 증거할 뿐 조용하다.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해 그저 묵묵히 안방만 지키기로 한 것일까.


다시 사랑채 마당으로 나오니 신정일 선생이
MBC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찬스다! 싶어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항상 자동모드만 고집하는 내 카메라는 번쩍 플래시를 터트렸다. 카메라 기자가 움찔하며 손을 들어 제지하며 당황한다.

 

이런, 이럴 때 플래시를 꺼야 하는데 할 수 없지. 이미 지나 간 일. 나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던 얼굴에 갑자기 하얀 불빛이 지나가면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초석님이 옆에서 훈수를 둔다.

 

이런 데는 플래시 터트리면 안됩니더. 오토에다 놓지 말고요. 항상 플래시발광금지 모드에다 놔 두이소. 사람들이 잘 모르고 무조건 오토에다 놔 두거든예~. 그런데 플래시발광금지가 오토하고 똑같심니더. 플래시만 안 터진다 뿐이지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것이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낙동강 살리기다 운하다 말들이 많은데, 물론 나는 대운하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요즘처럼 낙동강에 많은 관심을 보인 시절이 어디 있었나? 그러니까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제. 

 

그러고 보니 낙동강이 오늘날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랬다. 매년 6월 깨나 ‘낙동강전선’이란 피어린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 뿐 낙동강을 낙동강으로 살펴준 적이 제대로 있었던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절대적인 선이란 것도 없다는 그 말.  나는 철학적 심오함이 숨겨진 듯한 그 말의 깊은 뜻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낙동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서서히 그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멀리 철암역의 불빛이 보인다.

 

쓸쓸한 적막 속에 아스라히 빛나는 역사의 불빛. 언젠가 읽었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느낄 수 있는 불빛이 아마 저런 것이었으리라.       파비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