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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16 김수용과 왕자웨이의 공통점 by 파비 정부권
  2. 2011.01.08 마프 김태희, 진짜 배우 되려면 더 망가져야 된다 by 파비 정부권 (13)

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보며 드는 생각. 왕자웨이 감독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특히 <아비정전>. 모든 주변의 것들을 생략시키고 오로지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만의 대사에 몰입하는 방식이라거나, 달리는 밤 열차 천장에서 피곤한 듯 희미하게 흔들리는 전등 불빛을 잠시 보여준다거나, 영화 속의 또 다른 관객인 듯 주인공을 훔쳐보는 뭇시선들을 잠시 비추어준다거나, 무엇보다 특기할 것은 정지된 사진, 하나의 사진틀 속에서 활달하게 움직이던 인물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정지된 동작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곧 이들 감독들이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바로 시간이라는 것. 모든 시간, 전체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정지된 공간에서의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주인공들이 마주하게 되는 다소 일탈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준다는 것. 

이런 기교는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극 전체를 주도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김수용보다는 왕자웨이가 기교나 기술적인 면에서 조금 진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왕자웨이가 훨씬 후대의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아무튼 <안개>, <아비정전>, 모두 좋은 영화다. 다른 장르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별로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게는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들이다.


ps; 일전에 이성철 교수의 책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한 적이 있는데, 이런 것이었다. 


왜 노동자들은 (대체로) 할리우드 액션이나 홍콩 무협영화를, 그것도 비디오를 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할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이 프린세스(마프) 2부는 우려를 깨끗이 불식시키고 기대를 증폭시킨 한 회였습니다. 김태희가 뼈를 깎는 노력을 했군요. 얼굴만 예쁜 배우에서 이제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로 거듭날 기세가 확실히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도 너무 예쁜 얼굴 때문에 무언가 연기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해답은? 인터넷을 후끈 달구고 있는 것처럼 확실하게 망가지는 게 답입니다. 예쁜 쪽을 너무 부각시키려다 보면 분명 어딘가 연기가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워지는 법입니다. 뭐 제가 연기 전문가는 아니지만도 그 정도는 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뿐만이 아니죠.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집니다. 자기 잘난 과거에 너무 연연하다보면 역할에 불충실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런 점에서 김태희가 마프에서 푼수 연기를 한다거나 똥마려운 연기를 하는 것은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저렇게 잘 할 수 있는데 전에는 왜 못했을까? 아니 안 했을까? 아이리스에서도 초반에 김태희가 발연기를 벗었다는 호평이 많이 나왔더랬습니다. 제 생각엔 그때도 확실하게 망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 마이 프린세스에서 푼수 연기에 도전하는 김태희


똥마려운 연기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남자들이 김태희는 똥도 안 누는 걸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열연에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게 김태희에게는 기회이면서 위기였던 것입니다. 예쁜  것이 처음엔 김태희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그게 거꾸로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김태희가 예쁜 것은 맞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미인일까요? 그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많은 예쁜 여배우들 중의 한명일 뿐이지요. 그리고 이건 김태희 씨에게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제 경우에 김태희의 예쁜 얼굴은 예쁘긴 하지만 매력은 별로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성적 감흥은 별로인 거죠.
 
게다가 아무리 예쁜 얼굴이라도 유효기간이란 게 있습니다. 아마 제 또래쯤 됐을 텐데, 배우 중에 전인화라고 있습니다. 이분의 미모도 보통이 아니죠. 지금도 보통 미모가 아니니 젊었을 땐 오죽했겠습니까? 황신혜도 있죠. 제 기준에서는 아무리 김태희라도, 글쎄요, 전인화나 황신혜의 20대 시절 미모에 미칠까 싶네요. 

그런데 이 두 분이 출중한 연기력을 바탕에 두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테레비 화면에 자기 모습을 내보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아니오!"라고 답해야 맞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아니오!"가 맞습니다. 특히 전인화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에 한명이죠. 그녀의 신들린 연기력에 대해선 정평이 나 있으니 더 언급이 필요 없을 테지요 .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윤정희도 나오고 김지미도 나올 수 있는데요. 얼굴로 말하자면 김태희도 감히 이분들 앞에 명함 내밀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분들 그냥 얼굴값만 가지고 유명세를 유지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소유한 훌륭한 배우들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윤정희가 활동하던 시대엔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겨우 유치원,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였을 텐데요. 그러니 당연 그녀의 이름만 들었을 뿐 실제 작품은 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EBS에서 주말마다 한국영화를 틀어주는 덕에 그녀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안개라는 작품이었습니다. 

▲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로또가 떨어지듯 진짜 공주과 된 김태희


이 작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지요. 감독도 김승옥 씨가 직접 했습니다. 무진기행. 정말 좋은 소설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무진기행을 지금도 가끔 꺼내 읽습니다. 특히 어디론가 여행을 가게 될 때면 무진기행을 들고 갑니다. 버스 안에서 읽기 딱 좋을 분량이거든요.

무진기행의 수려한 문체는 기적적이죠. 안개 낀 바닷가 마을 방죽길을 걸어가는 주인공의 희끄무레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그런 작품입니다. 마을 지인들과 화투를 치며 시골 학교 음악선생 하인숙이 부르던 목포의 눈물이 정말 아스라이 또는 환청처럼 활자 속에서 미끄러져 나오듯이 그런 작품이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그 환상 같은 그림을 안개에서 윤정희가 그대로 재현해 보여주었습니다. 활자 속에서 마치 바다 저 깊은 곳에서 파도 소리를 잠재우며 들려오던 목포의 눈물,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여교사의 멍한 표정을 윤정희가 똑같이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저는 안개를 보면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아,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옛날에 저토록 훌륭한 영화가 있었고 훌륭한 배우들이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김태희의 연기가 많이 늘었다는 호평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망가진 김태희의 똥마려운 연기는 거의 압권이라고들 난리지경입니다.

혹자는 김태희가 연기 7년차의 베테랑인데 뭘 그 정도 는 걸 가지고 호들갑이냐고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장동건도 대개 오랫동안 발연기로 고생했습니다. 얼굴만 잘난 형편없는 배우란 혹평이 늘 그를 따라다니던 시절이 있었죠. 아마 의가형제였던가요? 그걸로 대변신에 성공했죠. 

김태희에게도 그런 기회가 될 하나의 작품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리스가 그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죠. 초반에 잘 나가다가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는데요. 이번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난 걸까요? 아무튼 초반 1, 2부에서 보여준 김태희의 연기는 매우 놀랍다고 할 정도였음에 틀림없습니다.  

확실히 대변신에 성공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2부의 마지막 망가지는 장면은(사실 이런 걸 망가지는 거라고 할 순 없죠. 가장 원초적이고 인간적인,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요. 그리고 여자가 설사하는 장면에 실망하는 그런 좀스런 남자는 극히 예외적인 존재들이고요) 그 압권이었죠. 

어쨌든 저는 김태희의 마프 초반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드디어 김태희도 CF 찍듯이 연기하는 패턴을 과감하게 버렸구나. 나는 예쁜 여자야, 라는 인식을 깨끗하게 지우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진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 진정성이 팬들에게 전달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 똥마려워 죽겠는데 능청만 부리는 송승헌, 미워 죽을 지경인 김태희


뭐 아직 2%가 부족하다는 분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아직 김태희의 예쁜 얼굴은 오히려 몰입에 방해요소가 됩니다. 뭔가 부자유스러움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건 김태희 탓이 아니고 김태희의 CF를 너무 많이 본 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이영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도 산소 같은 여자, 깨끗하고 예쁘기만 한 이영애를 지우는데 많은 공을 들여야 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김태희는 마프를 통해 크게 변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장동건의 경우를 보면, 한번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나 캐릭터와의 합체에 성공하고 나면 대변신을 하더라는 겁니다. 

장동건은 지금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최고의 배우죠.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본 장동건은 거의 환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 기관총을 난사하며 스러지던 그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선합니다. 저는 김태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중요한 건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작품을 한번 만나야 한다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죠. 김태희에게 마프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로 보면 마프는 틀림없이 김태희에게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이미 김태희의 예쁜 얼굴도 유효기간이 다가왔으므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그 기회를 확실히 잡기 위해선 확실히 망가지는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보면 그렇게 하기로 한 거 같습니다. 사실 모든 인생이 다 그렇기도 하지만 이 연기란 것도 특히 그렇습니다. 점진적인 발전 이런 게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급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처럼.

무협지를 읽어보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재도 기연을 만나 임독이맥이 타동 되고 탈태환골 해야 비로소 오기조원, 등봉조극을 넘어 입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탈태환골 하는 주인공이 엄청난 고통을 겪는 부분에 대해선 독자들이 대체로 간과하고 그냥 넘어가죠. 

이거 이야기가 갑자기 오버했는데요. 아무튼 김태희도 뼈를 깎는다는 각오로 보다 철저하게 망가져야만 탈태환골 할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아마 김태희에게는 예쁜 자기 사진에 사정없이 황칠을 해대는 것이 그 일이 될 것입니다. 여하간 잘 하고 있습니다. 더 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건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전하는 격려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게도, 사정없이 자기를 버리도록….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