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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0 광개토태왕, 도영을 백제왕비로 만드나 by 파비 정부권 (18)

앞의 글 ☞<광개토태왕의 역사왜곡, 최고수준급이야> 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전쟁까지 치른 적대국가 후연에 사신으로 가면서 담덕이 자신의 비를 데리고 간다는 것부터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부부라 떨어지기 아쉬워 그랬을까요? 아예 전쟁터에 나갈 때도 데리고 다니지 그러셔요.

에이고, 그러더니 결국 태자비 도영은 후연의 간계에 빠져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도영을 구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고구려의 적대국인 백제의 왕자 아신이었습니다. 아신은 침류왕의 장자로 현왕 진사왕의 조카인데 드라마에선 관미성주로 나옵니다.

도영을 바라보는 아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아신은 첫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도움이 필요한 여인에게 반하고 만 것입니다. 아신의 도움으로 곤란한 지경을 벗어난 도영은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 개연수는 역모혐의로 목이 잘려 효수되고 오라비는 종적이 묘연합니다.

갈 곳을 잃은 도영. 뱃속에 아이마저 유산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제 생각엔 죽든 살든 그저 남편 곁으로 가는 게 옳다는 생각이지만 어쩐 일인지 도영은 담덕에게로 가지 않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다들 아시다시피 매우 숭고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고구려의 국상 개연수의 딸 도영은, 이제는 역적의 딸이 된 자신의 처리 문제로 고구려의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을 만큼 애국심도 강하고 정치적 판단력도 뛰어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도영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백제였습니다. 자신을 구해준 적이 있는 아신에게 몸을 의탁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오,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랍니까. 애국심에다 정치적 식견까지 갖춘 우리의 태자비 도영낭자가 적국에 몸을 의탁할 생각을 하다니요.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연수의 아들 고운이 후연으로 망명해 담덕과 원수지간이 되더니 개연수의 딸이자 담덕의 비 도영은 백제로 망명해 아신왕의 왕비가 된다? 그리하여 두 오누이는 남과 북에서 각각 담덕과 운명을 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역시 남자인 담덕은 후연보다는 자신의 마누라를 뺏어간(도영이 자발적으로 간 거지만) 백제를 먼저 응징하기로 할 것 같군요. 사서에 의하면 담덕은 즉위하자마자 백제부터 공격해 석현성 등 10여개 성을 빼앗고 난공불락의 관미성마저 함락시키고 맙니다.

줄기차게 백제를 공략하는 담덕. 마침내 58성 700촌을 쳐부수고 아신왕에게 항복까지 받아냅니다. 어떻게 될까요? 백제왕의 동생과 대신들을 인질로 잡아갈 때 사랑하는 도영이도 함께 데리고 갈까요? 위풍당당하게. 자기가 무슨 일리아스의 메넬라오스 왕도 아니고.

그러고 나서 후일 모반을 해서 후연(북연)의 황제가 된 고운과도 사이좋게 지내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도영의 오빠니까. 죽마고우이기도 하고. 후연은 고구려를 치기 위해 이용하려던 망명객(드라마상의 설정이지만) 고운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게 되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건 뭐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업적을 한낱 질투심으로 가득한 연적과의 결투 정도로 만들 요량인 거 같아서 아찔하다 못해 무섭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스토리를 전개하는 양상을 보아하건대 전혀 불가능한 추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도 않으면서 도무지 개연성도 없고 정교하지도 못한 드라마 작가의 글쓰기 성향으로 보아 무슨 일을 낼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나 작가님. 이글을 보신다면 제발 그렇게는 만들지 말아주세요.

세종대왕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조상 중의 한분이신 광개토대왕이 너무 추해지지 않습니까? 그러지 마시고 차라리 이러면 어떨까요. 도영을 그냥 아웃시킵시다. 일단 아신을 만났으니 백제로 가는 것은 어쩔 수 없고, 그냥 어느 날 자다가 건물에 불이 나 죽는 걸로 끝냅시다.

오지은 씨에겐 미안하지만 그러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건 제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고, 바야흐로 개연수의 복수가 시작될 모양입니다. 후연에선 아들 고운이, 백제에선 딸 도영이. 오누이가 비명에 간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남과 북으로 흩어진 셈입니다.

물론 드라마가 도영의 복수심을 결코 드러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백제와 전쟁을 벌이는 담덕을 보며 눈물콧물 다 짜면서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저로서는 정말이지 있는 짜증 없는 짜증 안 낼 도리가 없겠군요.

어쩌면 저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아신의 도영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지극해서 그녀를 아내로 취하지 않고 그냥 백제 한성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선에서 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드라마나 소설 속에선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영을 백제의 왕비로 만들건, 아신왕과의 플라토닉 러브로 만족시키건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입니다. 꼭 이런 신파조를 넣어야 드라마가 재미가 나는 것일까요? 도영과 백제왕 아신을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비약 아닐까요?

광개토태왕에게 최대의 숙적이라면 남쪽은 백제요, 북쪽은 후연입니다. 광개토태왕의 수많은 전투 중에 이 두 나라와의 전투가 가장 치열하고 위기감도 팽배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보이던 고운과 도영 남매가 별다른 해명도 없이 각각 이들 두 적국으로 가게 되다니요.

담덕의 가장 신실한 측근이었던 고무 대장군의 차남 고창이 어느 날 갑자기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흘리더니 간신배 비슷한 인물로 바뀐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별다른 변화 과정도 보여주지 않은 채 담덕과 원수가 된 고운은 정말이지 충격이었습니다.


거기에 도영이 보태주는 메가톤급 충격. 아신과의 해후.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결혼할까요, 아니면 그냥 플라토닉으로? 그리고 아직 충격이 하나 더 남은 듯합니다. 담덕의 동생 담주공주의 후연 탈출.

다들 아시다시피 담주공주는 담덕이 인질로 후연 태자에게 시집보냈습니다. 늘 고국을 그리워하던 담주는 후연 태자 모용보가 담덕의 결혼축하사절로 고구려에 갈 때 따라가게 해달라고 졸라 허락을 얻습니다. 목적은 단 하나. 후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구려에 남으려는 심산.

모용보가 노발대발 하겠지요? 담주공주에게 반해 고구려에 대한 반감이 많이 꺾였던 찌질이 후연 태자가 다시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히 보이는 스토리. 그거 참, 모용보도 할 짓 아닙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려니 참 힘들겠어요. 흐흐.

한편, 담덕은 도영을 잃어버리고(담덕은 도영이 죽은 줄 알고 있죠) 약연을 새 왕비로 맞아들이는데요. 주변 나라들에 축하 사절과 함께 고구려 포로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합니다.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담덕, 역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ㅋ~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