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10.07 "나는 인맥도 없는 찌질이가 아니"란 아들의 말씀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2.21 파스타, 갈매기, 청사포등대와 함께 한 아들 졸업식 by 파비 정부권
  3. 2009.11.14 아들과 올라간 장복산, 감동적 일몰과 비극적 결말 by 파비 정부권 (8)
  4. 2009.05.20 내조의 여왕, 생활속의 사랑법 by 파비 정부권 (1)
  5. 2009.02.14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란 사실을 봄바람에 느끼다 by 파비 정부권 (5)
요즘 별 하는 일도 없었는데 테레비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테레비블로그를 하면서 테레비를 안 본다니 이거 완전 어불성설 되겠습니다만, 제가 사실은 그렇게 테레비 앞에 죽치고 앉아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ㅋ~ 게다가 테레비를 특별히 봐야 하는 프로가 아니면 앞에 붙어 있는 성격도 아니고요.

제가 아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집에 들어가면 즉시 방바닥에 뒹굴며 콘맨이 된다고들 하던데요. 저하고 꽤나 친한 건설업을 하는 친구도 그렇고, 화류계에 종사하는 친구도 그렇습니다.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는 거 말고는 집에선 할줄 아는 게 없는 탓도 있을 테지요.

사실은 또 제가 잘 아는 어느 블로거께서도 집에 들어가면 리모콘 독점권을 행사해서 요리조리 돌리는 재미로 산다고 하시더군요. 공장에 다니는 잘 아는 형님도 그러시더군요. 평일에는 늦게 퇴근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면 테레비 볼 시간 별로 없지만 주말엔 테레비 돌리는 게 일이라고요.

암튼^^ 이야기가 엇나갔는데요. 테레비블로그를 하는 저는 그분들에 비해선 테레비 보는 시간이 거의 새발에 피라는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다가 최근에 바쁘지 않게 바빠서 테레비 이야기를 거의 포스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사실은 술자리가 있어서 곧 나가야 합니다.

실은 제가 포항에 전화로다가 고래수육과 육회를 주문했거든요. 이거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들 들으면 매우 미워할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환경운동 같은 거 안 하지만, 주변에 꽤 많거든요. 그런 분들. 그런데 환경단체에서 고래고기 먹는 것도 반대할랑가요? 제가 뭘 잘 몰라서….

하여간 그래서 택배로 집으로 배달된 그 고래고기를 가져가기 위해 잠시 집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녀석이 생각지도 않게 일찍 집에 들어와 있군요. 화장실에서 일보는 중인 모양입니다. "어? 너 오늘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냐? 아직 5시도 안 됐는데."

"오늘 시험 쳤잖아. 그래서 일찍 왔다. 아, 잠깐만. 아빠, 이거 휴대폰 밖에다 충전시켜주면 좋겠는데…" 녀석은 휴대폰을 화장실 콘센트에다 꽂아놓고 충전을 시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거실에서 충전시키지 왜 그걸 들고 드갔는데?"

그러자 녀석이 말합니다. 아참, 대부분 집들이 다 그러리라고 짐작합니다만, 우리집도 화장실과 욕실이 공용입니다. 녀석은 일을 본 후 샤워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은 언제부턴가 목욕탕에 안 가고 집에서 목욕하길 즐기더군요. "내가 인맥도 없는 찌질인 줄 아나." 

"내가 인맥이 얼마나 많은데. 수시로 전화가 오거든. 그러니까 들고 들어온 거지. 인맥 관리 하려면 늘 신경 써야 된다." 허허~ 인맥이라. 조그만 게 무슨 인맥? 이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긴 인맥 관리, 그거 대단히 중요하죠.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란 말도 그래서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저도 고래고기 들고 공원으로 나가는 것도 다 인맥 관리 때문 아닐는지요. 몇 명의 인맥이나 모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너 명 올 것 같습니다. 5만원어치 고래 가지고 그들 인맥이 제대로 관리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로써 저도 썰을 줄이고 나갈 준비해야겠군요. 인맥을 위해서. ㅎ~ 

아, 그리고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저는 애가 둘인데 하나는 열네 살이고 하나는 열살입니다. 아직 두 아이가 다 제게 반말을 씁니다. 제가 그 표현 그대로 옮겼더니 일전에도 누군가 아, 애 교육부터 똑바로 시키라고 그러더군요. 뭐 그 말씀도 백번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냥 놔둘랍니다.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국민들 등쳐먹는 사기꾼이 된 것도 아닌데 굳이 부모의 훈계를 내세워 분위기를 경색시킬 필요가 있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다 때가 되면 제자리를 찾아가게되겠죠. 늦고 빠르고의 차이일 뿐. 다만, 그 때가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플 뿐이죠. 

그런 저도 가끔 인상을 쓰거나 목에 힘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집안이 아주 썰렁해지죠.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기를 못 펴는 아이들을 보면 순식간에 이거 내가 괜히 목에 힘줬네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장부가 한번 뺀 칼은 결코 쉽사리 넣지 못하는 법, 아시죠? 

확실히 아이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안답니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힘이 세다는 사실. 그래서 엄마 말은 뒤지게 안 듣다가도 아빠의 인상 하나에 시아시가 되는 것입니다. 시아시. 오랜만에 써보는 일본말이네요. ㅋ~ 이런 말 쓰면 안 되는디…. 

시간관계상, 그럼 이만. 모두들 평화롭고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테레비 이야기 대신 쓰는 포스팅이었습니다. 끝.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들 졸업식날, 말로만 듣던 정통 이태리식당에서 파스타도 먹고, 
                     해운대에서 갈매기도 보고, 마지막으로 청사포도 구경하고…

2010년 2월 17일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졸업식이 있던 날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라니. 졸업식은 입학식을 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치러졌습니다. 6년 전 입학식이 있던 날에는 아들녀석이 왜 그리 안쓰럽던지, 부모 품을 떠나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 녀석을 보며 기쁨보다는 왠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었지요.


그러나 6년 후 같은 장소에서 치러지는 졸업식장에서는 이번엔 반대의 감정으로 인해 슬퍼졌답니다. 얄미울 정도로 천방지축이 된 아들녀석에 비해 제가 훨씬 초라하고 불쌍해보였기 때문입니다. 6년 전만 해도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젊은이였던 제가 이제는 머리털도 많이 빠지고 몸에는 비계가 늘어 볼품 없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중년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지막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중년이 아니라 중늙은이가 되어 있겠지요. 인생무상이라더니, 남들은 다 기뻐서 웃고 떠들고 난린데 저는 왜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요? 확실히 감상적인 인물이라 남다른데가 있습니다. 흠흠~, 아무튼 아들녀석은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광안대교. 갈때는 아래층으로 올때는 위층으로 달린다.

아들은 이날 졸업식에서 과학탐구상이란 걸 받아 왔는데요. 자기 말로는 이게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는 상이라고 자랑을 하더군요. 그런데 학교측에서 나누어준 유인물을 보니 모든 학생들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상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았지요. "다른 애들도 다 상 받았다고 하던데?" 

"다른 애들은 대부분 행동발달상이고 과학탐구상은 두 명만 주는 거다." "그럼 국어탐구상 같은 것도 있을 거 아니냐? 수학탐구상도 있을 테고." 그러자 아들녀석은 기분 잡쳤다는 듯이 "에이, 몰라" 하면서 더이상 말을 안 하더군요. 그냥 잘했다, 수고했다 그러고 말 걸 하는 후회가 일었지만 '내가 뭐 예수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닌데' 하고 생각하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졸업식장에는 아내의 대학선배도 참석했습니다. 마침 이날 휴가를 빼고 부산 센텀시티에 있는 어느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같이 보기 위해 전화했다가 합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위대한 침묵>이었는데 이날 딱 한 번만 상영하는 그야말로 희귀한 영화였답니다. 상영시작 시간은 오후 1시.

그런데 졸업식을 끝내고 반으로 들어간 아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생들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나누어주는 통에―매우 고마운 일이었지만―졸업식도 평소에 비해 엄청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던 터라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지루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떨면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부모들의 입에서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사포 등대(아들사진)


"뭔 할 말이 그렇게 많아?"
"아니 졸업식 하기 전에 미리 할말이나 필요한 일들은 다 끝냈어야지."
"와~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치면서 왜 정작 자기들은 부모들 배려를 하나도 안 하는 거야? 이렇게 추운데 세워놓고서는."

모두들 일리 있는 말씀이었습니다만, 아이들과 헤어지는 선생님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닌 게지요. 그러나 당장 1시 전에 부산 수영 센텀시티에 도착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불만이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아이는 11시 45분께 나왔고, 부랴부랴 기념사진 몇 장 찍고, 곧바로 부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위대한 침묵>은 유럽의 어느 수도원(트라피스트계 수도원이라고 했습니다)을 한 영화감독이 무려 16년을 기다려 찍은 영화라고 했습니다. 수도원 측이 영화 찍는 것을 허용하고 문을 열어주는데 16년이 걸렸다는 이야기지요. 사실 저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봤다면, 정말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은 그런 영화였지만 말입니다.

우리가 부산 동서고가도로와 광안대교를 지나 센텀시티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1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그거였습니다. "차를 길에다 세우고 민이 엄마하고 나는 잽싸게 뛰어서 영화보러 가는 거야. 그럼 민이 아빠는 애들 데리고 다른데 가서 놀던지 하는 거지. 오케이?" 요약하면, 저더러 영화보지 말라는 이야기였지요.

나중에 장장 2시간 40분 동안 상영하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저는 "아니 그게 바로 내가 봐야하는 영화였단 말이에요" 하고 장탄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영화는 2시간 40분 내내 대사가 한마디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없었다고 무시해도 좋을 그런 수준이었답니다. 하얀 눈에 포위된 수도원에서 울려퍼지는 라틴 성가소리, 아~, 완전 내 스타일인데….

두 여자가 영화를 보러 간 사이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레스토랑에 가서 파스타를 먹기로 했습니다. 요즘 파스타가 유행이지요. MBC에서 하는 월화드라마 <파스타>, 정말 달콤하고 맛있는 드라마 덕에 저도 파스타가 스파게티인 것을 알았답니다. 아니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일종인가요? 아무튼 너무 깊은 것은 따지지 말기로 하고요.
 

부산 해운대 풍경. 글라이더를 날리는 사람들과 장구(북인가?) 치는 사람들 모습이 참 아름답죠? (아들사진)


일단 해운대 달맞이고개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해운대로 내려와 몇바퀴를 돌았지만, 안 보이더군요. 그런데 아들녀석이 "앗, 방금 정통 이태리식당 지났다" 하고 외치는군요. 그래서 다시 한바퀴 돌았더니 역시 정통 이태리식당이 있긴 있네요. 그런데 이런~. 

무슨 호텔 3층에 있군요.(나중에 알고보니 시클라우드 호텔이었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통 이태리식당"이란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데 대한 후회도 밀려옵니다. 그 '정통'이란 용어에 주의를 했어야 하는데. 2층 식당 이름이 <VIPS>입니다. 슬쩍 곁눈질로 살펴보니 어린이용 특선 뭐뭐라 적어놓고 가격이 할인해서 8만 7천 원이랍니다. 어이쿠~. 

우리가 가는 식당은 3층 정통 이태리식당, 이름이 <벨라 치타>라고 되어 있습니다. 벨라 치타, 친숙한 이름이네요. 벨라 차오란 제가 특히 좋아하는 노래 제목과 이름이 비슷합니다. 벨라 차오는 '안녕, 예쁜 아가씨'란 뜻이라던데 벨라 치타는 무슨 뜻일까요? 어쨌든 이름 때문에 밀려들던 불안감도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들어서니 역시 분위기가 예사가 아니네요. 헐~ 내가 이런 델 다.  

벨라 치타. 창문 너머로 망망대해가 보인다. 감도와 조리개값을 높였다면 파란 태평양을 보여드리는 건데... 초보탓.


아무튼 오늘의 주인공은 아들녀석입니다. 녀석은 늘 정통 파스타를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심저어 저더러 파스타 재료를 사다주면 자기가 파스타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던 녀석입니다. 파스타를 만들 때는 고급 와인을 써야 한다나요? 그래서 제가 그랬었죠. "야, 이놈아. 내 입에 들어갈 고급 와인도 없는데, 재료로 쓸 와인이 어디 있냐?"

아무튼 녀석은 이날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녀석이 시킨 파스타는 모짜렐라 스파게티라고 부른 건데 메뉴판을 보니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무슨 재료와 무슨 재료와 무슨재료 그리고 또 무슨 무슨 재료들로 맛을 내고 어쩌구 한 스파게티' 이름이 하도 길어서 저는 그게 무언지 몰랐는데 나중에 아들에게 물어보니 모짜렐라 스파게티였다고 하더군요.

역시 아이들은 스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방 배우죠. 우린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아이들은 금방 배웁니다. 문화를 흡수하는 힘이 우리보다 백배 천배는 뛰어나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었답니다, 슬픔과 함께. 아무튼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게 가격이 2만 1천원(부가세 별도)이었거든요. 순간 속으로 '후유~' 한숨을 내쉬며 호기롭게 아들에게 말했죠.

"야, 이거보다 더 맛있는 것도 많잖아. 꼭 이거 먹을래? 봉골레도 있네. 이건 어때?" 저도 요즘 연속극 <파스타>에서 공효진과 이선균에게 배운 게 좀 있는 터라 "봉골레는 어때?" 하면서 좀 아는 체도 하는 여유를 부려봤답니다. 흐흐~. 그러나 아들녀석은 뭔가 심오하게 아는 게 있다는 듯이 그러는군요. "아니, 이게 좋아. 이걸로 할래."

게다가 더 기분 좋은 일은 딸아이는 9900원짜리 피자를 시켰다는 겁니다. 저는 딸에게도 "얘, 너도 오빠처럼 파스타 먹어. 파스타 맛있잖아." 그러나 딸아이는 아직 파스타에 대한 신뢰를 할 수 없다는 듯이 자기가 잘 아는 피자를 먹겠다고 고집해서 결국 피자를 시켰습니다. 물론 저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고, 나중에 딸아이는 후회했습니다.

"아빠, 오빠야 파스타 정말 맛있더라. 담엔 나도 그거 먹을래." 

배가 부르니 녀석들이 많이 친해졌습니다.


뜻하지 않게(!) 정통 이태리식당에서 고급 파스타를 맛본 두 녀석은 기분도 좋아졌을 뿐 아니라 매우 친밀해졌습니다. 원래 서로 앙숙이라 이렇게 가까이 붙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은데 이날은 아주 자연스럽군요. 역시 민주주의나 평화 뭐 이런 게 달성되려면 먼저 배가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해운대 백사정 멀리 끄트머리에 조선비치호텔이 보입니다. 제가 이곳 해운대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에는 저 건물이 가장 큰 건물이었습니다. 해운대 어디서든 조선비치호텔과 동백섬이 선명하게 보였었지요. 그러나 이제 아닙니다. 주변의 웅장한 마천루들에 가려 조선비치와 동백섬은 너무나 초라해지고 말았더군요.

아래 오른쪽 사진의 거대한 건물들이 서있는 자리 오른편으로는 원래 송림이 있었습니다. 고교시절, 이 송림에 비둘기집을 만들어 달던 기억이 나는군요. 물론 선생님이 시켜서 했던 일이지만, 재미있었지요. 그런데 이제 송림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웅장한 건물들이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센텀시티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도시는 강남이나 분당보다도 더 대단하다는군요.

(아들사진) 이 글을 쓰는 중에 녀석이 나타나서 "내가 찍은 사진은 저작권 확실히 표기해라"고 해서... ㅎㅎㅎ


다시 두 여자를 내려주었던 곳으로 돌아오니 딱 시간이 맞습니다. 2시간 40분이 지났습니다. "영화는 재미있었어요?" "아, 정말 감동적인 영화였어요. 그런데 말이 한마디도 없어서 보통 사람들은 보기가 쉽지는 않을 거 같애. 우리도 잠깐 잠깐 졸았다고요. 아니 수도자들이 가만히 앉아 묵상하는 장면이 한참 나오는데 안 졸 수가 있어야지. 하하."

"하얗게 눈내린 수도원, 나무들, 조용한 라틴 성가, 오르간 소리, 기도소리, 아~." 이런, 사람 염장 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게 바로 딱 내 취향인데. 아무튼 재미있었다니 다행입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우리는 해운대를 몇바퀴 또 돌다가, "고마 경치 좋은 데 가서 밥 먹자" 결론 내리고 달맞이고개를 넘어 청사포로 갔습니다.

거기 유명한 밥집이 있다는군요. 아래 사진에 보시는 집입니다. 분위기는 벨라 치타와는 완전 딴판이었습니다. "그래 나한테는 역시 이런 집이 딱 어울리지." 마치 고향집에 온 느낌이 들더군요. 벨라 치타에서는 식탁에 뭘 흘리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해야 했었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 역시 자유는 좋은 것이여. 흐흐~  

커다란 소나무를 앞에 둔 집이 우리가 장어구이를 먹은 수민이네.


자, 이상으로 아들 졸업식날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여기서 배불리 먹고 마시고 그리고 모두들 집으로 갔습니다. 물론 저는 소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못했습니다" 라고 하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죠? 어쨌든 두 여자는 술을 마시지 않는 제 모습이 무척 좋아보였나 봅니다. "민이 아빠 술 안 마시는 꼴을 보니 오늘 내가 기분이 엄청 좋다." "??? !!!"

(아들사진)


아래 사진들은 배가 불러 기분 좋은 녀석들이 어른들이 장어구이를 안주로 소주를 먹고 있을 동안에 식당 앞 바닷가에 나가 풍경을 찍은 사진들입니다. 물론 아들녀석이 찍었습니다. 장비는 캐논 450d.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었습니다. 주변에 횟집도 많았습니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의 조용한 풍광이 참 마음에 드는 곳이었습니다. 

청사포란 이름도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럼 이만…, 안녕히.

(아들사진) 맨아래 숯불은 식탁 밑에 있던 것임. 발밑이 뜨뜻해서 깜짝 놀랐음. 이것도 아이가 찍었더군요. 기특하게. ㅎㅎ

                                                                                                                       제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ook!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 씨에게 희망을 주세요. ☜클릭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제1동 | 벨라치타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들과 함께 장복산에 올랐습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10월 25일에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러니까 10월 25일 우리는 장복산을 오른 것입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진해시민회관에서 내려 장복산 공원과 삼밀사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장복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봉우리들을 넘어 안민고개에서 도로변 데크 등산로를 걸어 태백동으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진해시민회관에서 조금 올라가니 장복산 공원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오뎅을 사먹었는데 맛은 하나도 없는 것이 개당 700원, 세 개에 2000원 하더군요. 기분 잡쳤습니다. 가격이 비싸면 그만한 값어치를 해야 하는데 이건 내가 만든 오뎅보다 더 맛이 없는데다가, 주인아주머니(할머니인지)가 경상도 갯가 사람 아니랄까봐 퉁명스럽기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초장부터 기분 잡쳤군. 오늘 산행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이거 기분이 영 안 좋아." 위에 보이는 녀석이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산에 따라온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요즘 제 카메라에 부쩍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캐논 450D인데 나름대로 쓸 만한 DSLR 카메라죠. 전문가용은 아니라도 전문가용을 흉내 낸 보급형 SLR 카메랍니다.

저는 이 카메라를 산지 무려 8개월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자동모드만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놈은 재산 1호인 이 카메라에 손을 못 대게 하는 데도 벌써 수동모드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알지 못하는 용어까지 써가면서 말입니다. 확실히 신식문물을 익히는 데는 아이들이 빠른 것 같습니다.

빛의 세계에 대해 더 고수인 것처럼 보이는 아들에게 저는 "그래, 좋다. 오늘은 카메라 니거다." 하고 과감하게 맡기고 말았습니다. 저는 8개월 동안 이 재산 1호를 불면 꺼질 새라 신주처럼 모셔왔습니다. 아직 잔기스 하나 없으니 방금 산거라고 해도 믿을 겁니다. 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보시는 모든 사진들은 아들놈의 솜씨랍니다. 

다람쥐가 지나가고 있군요. 녀석이 잽싸게 셔터를 눌렀지만, 18-55미리의 표준 줌렌즈로는 한계가 명백합니다. 녀석이 말합니다. "아빠, 봐라. 지름신이 안 내리나? 아, 나는 자꾸 지름신이 내리는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망원렌즈 사고 싶지 않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더군요.  


망원렌즈? 아직 초보인 우리에게는 표준 줌렌즈면 꿀떡입니다. 그리고 풍경을 찍기에는 표준렌즈가 딱이죠. 산을 오르다보니 이런 태그가 나무에 붙어있군요. 산을 사랑하는 부부. 오우, 정말 훌륭한 부붑니다. 함께 산을 오르내리면 건강에도 좋겠지만, 정도 돈독해지고 일석이조란 생각이 드는군요.  


장복산 정상입니다. 아 참, 우리가 산에 오른 목적은 산행도 산행이지만, 장복산 일몰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랍니다. 사실은 2주 전에 장복산에 올랐었는데 넘어가는 해가 너무 멋졌거든요. 아마 평생 그렇게 멋진 일몰광경은 처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놈을 꼬여 다시 장복산에 오른 것입니다.

12시 반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쉬엄쉬엄 올랐는데도 시간이 2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려면 5시는 넘어야 할 텐데….


북쪽을 보니 창원시가지와 공단이 보입니다.


서쪽을 보니 마산시가지가 보입니다.


이번엔 다시 남쪽을 보니 진해시가지가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장복산이 진해, 마산, 창원의 중심에 솟은 산이었습니다. 아들놈이 장복산 정상 표지석에 섰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받아 한 컷 찍었습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5백 수십 미터쯤 되었는데, 정확한 높이는 까먹었습니다.


저 멀리 마창대교도 보이는군요. 다리 건너 오른쪽에 희미하지만 가포 매립현장이 보입니다. 날씨가 구름이 많고 황사가 있었던지 시계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며칠 전처럼 선명하고 대단한 크기의 일몰은 기대하기 어렵겠습니다.


저물어가는 가을에 웬 봄꽃이 피었습니다. 이게 창꽃이던가요, 진달래던가요? 아무튼 찬바람을 맞고 있는 꽃이 애처로웠습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에 핀 봄꽃의 피부 곳곳은 멍이 든 것처럼 시커멓게 시들어 있었습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 왠지 불길한 생각이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장복산 정상 바위에서 내려오는데 이렇게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옆에 목재로 잘 만들어놓은 계단이 있는 줄을 모르고 이리로 내려왔습니다. 마치 유격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정상 부근의 바위들이 멋들어지게 서있군요. 아마 이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능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름다운 능선에 아름다운 꽃들도 만발하고요. 이 꽃은 구절초라고 하나요? 아니면 국화일까요? 저는 꽃 이름은 장미, 코스모스 밖에 몰라서…


장복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옆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여기서 배낭에 넣어온 도시락을 먹고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시간은 2시. 세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저는 미리 책을 한 권 넣어왔습니다. 주변의 적당한 바위를 찾아 그곳에 앉아 세 시간을 버티려면 독서가 최고지요. 아들 녀석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테고요.


측량기준점인 모양입니다. 삼각점의 중심에 추를 늘어뜨리면 거기가 기준이지요.


드디어 서서히 일몰이 시작 되려나 봅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하늘에 비행기도 지나가고요.


이제 다섯 십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역시 다가오는 저녁의 색은 아름답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사진만 감상하시겠습니다. 물론 다 우리 아들이 찍은 사진입니다. 아 우리 애는 월포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죠.


자, 잘 감상하셨습니까? 여기까지가 마지막 사진입니다. 아들 녀석은 진해시가지 야경도 찍겠다고 했지만 찍지 못했습니다. 장복산 정상에서부터 안민고개까지는 예닐곱 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죠. 그런데 흥분에 도취된 아들놈이 내리막길을 카메라를 손에 든 채 뛰어가다가 엎어진 것입니다.

다음 봉우리에 뛰어올라가서 거기서 또 다른 일몰장면을 잡고 싶었던 것이죠. 제 딴에는 엎어지면서도 최대한 카메라를 보호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보시다시피 이후부터 사진은 없습니다.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지만, 암흑은 산중에만 찾아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씩씩거리면서 능선을 달렸고, 녀석은 모르겠습니다. 대화가 단절되었으니까…. 

일몰이 지나가자 세상은 순식간에 검은색으로 변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칼 같은 바위 능선의 양쪽은 천 길 낭떠러지,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화가 났던 터라 아무 생각이 없더군요. 그냥 묵묵히 한 시간 가량을 달리니 안민고개가 나왔습니다. 속으로 살았다 싶었지만 일단 냉전을 유지해야 하므로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 

안민고개에서 진해시가지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가려니 진해에 사는 아내의 대학 선배가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평소 잘 가는 어느 실내포장에 들어가서 닭발 요리와 소주를 한 병 시키고 녀석에겐 우동과 만두를 한 접시 시켜주었습니다. 그 선배가 아들놈의 눈치를 살피더니 "야, 너 무슨 기분 안 좋은 일 있나. 표정이 와 그렇노." 

"일마 이거 오늘 사고 한개 칬다 아임니까." "와 무슨 사고 칬는데?" 경위를 들은 그 선배는 "야, 너그 애비 재산 1호를 그래 뿌사삤으니 성질 안 날끼가. 조심 좀 하지. 지나간 일인께 신경 쓰지 말고 만두나 먹어라." 그리고 제게도 한마디 했습니다. "아한테 너무 그라지 마라. 카메라가 중요하나, 아가 중요하지." 

하긴 맞습니다. 그러나 어디 사람이 그게 됩니까? 기분 나쁜 건 나쁜 것이고 또 아들은 아들이고 카메라는 카메라인 것이지요. 어쨌든 카메라는 2주 후에 부산에 가서 깨끗하게 수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놈은 매일 저녁마다 아르바이트로 설거지를 해서 받은 1000원을 모아 2만원을 변상했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애 엄마는 "야 임마, 시키지도 않는 설거지를 니가 와 하는데?" 하면서 불만입니다. 그리고 제게도 불만입니다. "설거지를 할라면 자기가 하지 와 아를 시키노?" 제가 시켰거든요. 설거지해서 돈 벌어 갚으라고요. 어쨌든 오늘부로 2만원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녀석이 꽤 설거지를 많이 한 셈이죠. 

오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동민아, 오늘까지 2만원 받은 걸로 끝내자. 5만원은 받아야 되는데 나머지는 탕감이다. 됐나?" 그러자 녀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무척 기분 좋아라 하는군요. 가만 생각하니 저도 좀 웃기는 구석이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쨌든 벌어진 일이니까….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방법으로 2만원은 돌려주어야 할 듯합니다. 아무튼 카메라는 무상수리로 간단하게 고쳤거든요. 물론 부산까지 두 차례 왕복 차비는 들었지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내조의 여왕」이 끝났네요. 섭섭합니다. 사실은 오늘 끝난 게 아니라 어제 끝났지요. 그런데 어제 제가 술을 한잔 하는 바람에 마지막회를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500원을 내고 컴으로 보았습니다. “아유~ 아까운 내 500원”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쨌든 그래서 제게는 「내조의 여왕」이 오늘 새벽에 끝난 셈이 되었답니다. 

역시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듯 결말은 그렇고 그렇습니다. 요란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들을 욕조에 물 빼고 청소하듯 그렇게 정리해야 하는 거니까요. 물 빠진 욕조는 황량하지요. 오늘도 그렇군요. 물 빠진 욕조를 보는 기분… 그러나 뿌듯합니다.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는 기쁨, 천지애 같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보람, 뭐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사실 작년 말에 종영했던 「너는 내 운명」을 보고 난 이후 드라마를 끊었었답니다. 막장드라마로 유명했던 드라마였지요. 막장드라마였다지만 시청률이 엄청났었지요.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리드하고, 다시 방송사들은 그 시청률을 따라 막장드라마를 만들고, 그래서 막장드라마가 대세가 되는 악순환이 사실은 문제로 많이 지적되었었지요.

「아내의 유혹」을 비롯해 많은 드라마들이 막장드라마라는 악평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저는, 글쎄요. 「너는 내 운명」을 따라올 만한 막장드라마는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전무후무하다고 하지요. 하여튼, 「너는 내 운명」이야말로 전무후무한 불후의 막장드라마였다는 게 제 평가예요.


「너는 내 운명」은 자극적인 소재, 비상식적인 설정뿐만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연기수준도 거의 막장이었지요. 심지어는 정애리 같은 쟁쟁한 연기자들의 연기마저도 역겨울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거의 매회 등장하는 반사회적 반인간적 요소들은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저는 그 막장드라마의 신기원을 열었던 「너는 내 운명」이후 드라마를 딱 끊었답니다.

그런데 「내조의 여왕」이 꽤 괜찮은 드라마란 소문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걸 한번 봐?’ 하는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드라마 광이었거든요. 거의 모든 드라마를 다 보았지요. 아마 제가 안 본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뒤지도록 재미없는 것임에 틀림없을 거예요.


결국 다시 유혹을 못 이기고 TV 앞에 앉았는데, 아~ 정말 재미있더군요.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드라마였어요. “Good!” ‘내조’란 다소 봉건적인 소재를 사용하긴 했지만, 전혀 봉건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고요. 여성비하적인 그런 느낌도 별로 없었어요.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저는 그게 진짜 사랑 같더라고요.

「사랑과 영혼」이나 「남과 여」, 「라스트 콘서트」에 나오는 로맨틱한 사랑만 사랑이 아니라 이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생활 속에 진하게 배어 잔잔하게 타들어가는 그런 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저만 감동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동적인 사랑을 느꼈었지요.

그러니까 어제 그저께군요. 딸과 함께 「내조의 여왕」을 보고 있었는데요. 우리 딸애가 또 저를 닮아 그런지 드라마 꽤나 좋아한답니다. 앞부분 조금 보면 거의 뒤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감 잡아버린다는 점에서도 절 쏙 닮았지요. 저로 말하자면, 우리 마누라가 “그냥 드라마 작가로 한번 나가보지” 하고 말할 정도랍니다. 그야 물론 비웃는 말인 줄 잘 알지만…

드라마를 한참 보다가 딸애가 갑자기 그러는 겁니다. “아빠, 우리 편지 쓰기 하자.” 그러더니 꽃무늬 편지지를 제게 한 장 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뭐 대충 “앞으로 말 잘 들어라, 까불지 마라, 오빠하고 싸우지 마라.” 이런 식으로 무성의 하게 적어서 주었는데요. 딸애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이혼하자!” … 헉~ (애가 테레비를 너무 많이 봤나…)

뭐 장난이니까. 그렇지만 좀 심하군요.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 우리 이혼하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남남이다.” 그러자 딸애도 막 웃으면서 그랬습니다. “그래, 이제 우린 남남이다.” 글쎄, 이혼이란 인생최대의 비극이라 할 상황이 우리 부녀에겐 장난거리가 된 것입니다.

마침 TV에서도 천지애와 온달수가 이혼하네 마네하며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딸애의 정색을 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며 진지하면서도 매우 조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나하고는 이혼하더라도 엄마하고는 절대 이혼하지 마라.” “왜?” “그러면 내가 너무 쓸쓸해지잖아.”

우리 딸애는 아홉 살입니다. 아홉 살이지만 드라마의 앞을 조금만 보면 뒤를 읽어낼 정도로 영민한 아이랍니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치른 받아쓰기 시험에서 받은 1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와서 칭찬해달라고 조를 정도로 배포도 큰 아이죠. ‘애늙은이’같은 딸아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한숨이 나오더군요. ‘얘가 이혼이 뭔지 알기는 아는가 보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그때 보고 있던 드라마가「내조의 여왕」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아마 다른, 그러니까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면 저는 참으로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했을 것입니다. 딸애는 TV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빠, 쟤들 절대 이혼 안 한다.” “니가 어떻게 아는데?” “에이~ 다 알지. 쟤들은 진짜로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이혼 못해.”

어젯밤, 딸아이가 술이 취해 일찍 자고 있는 저를 막 흔들며 「내조의 여왕」마지막회 한다며 깨웠지만 저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잠든 새벽에 일어나 홀로 이렇게 그 마지막회를 감상했답니다. 우리 딸애의 예언처럼 걔들은―애들이 어른 보고 쟤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걸 따라하는 저도 참 한심하군요―이혼하지 않았군요. 천지애와 온달수 말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은 제 큰아들이―그래봤자 아들 하나 딸 하나, 둘입니다―수학여행 가는 날입니다. 서울로 간다는군요.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우리 때는 초등학교는 경주로, 중고등학교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어제 저보고 5시 반에 깨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깨울 시간이 다 돼가는군요.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보고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천지애의 본명이 김남주였던가요? 저는 원래 김남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좋아해줄 생각입니다. 훌륭한 드라마, 훌륭한 연기자는 많이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막장드라마를 퇴출시키고 좋은 드라마를 안방에 앉히는 첩경이 아닐까 해서요…  

음~ 이제 아들놈 깨워 수학여행 보내야겠군요. 자기네 학교 운동장에서 6시 30분에 버스가 출발한다니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 봄이다. 창문을 여니 봄내음이 확 코끝을 스친다. 어제는 비바람이 용천을 부리더니 오늘 이렇게 맑은 날씨를 선물하려고 그랬나보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산동네다. 해안가 산비탈에 도시가 형성된 마산은 모든 마을이 산동네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마산을 차지하고 난 이후 그들의 방식대로 바다는 매립되었고 이제 평지도 꽤 넓어졌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난 이후에도 매립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바다를 메우는 간척을 영토 확장 사업쯤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는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바다가 어떻게 메워지고 있으며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배웠고 시험도 치렀다. 어느 선생님은 간척사업을 (거의 찬양에 가깝게) 칭찬하면서 박통은 광개토대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산만이 시원하다. 멀리 창원도 보이고, 두산중공업도 보인다. 아들놈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마산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
수년 전에 경남도민일보가 기획으로 연재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아마 1976년이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당시 마산시청을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니 그곳에서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곳이 193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는 것이다. 바다라도 보통 바다가 아닌 아주 특별한 바다 말이다. 바로 마산시청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이다.

월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 때만 하더라도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던 명소였단다. 인천의 송도와 더불어 조선팔도에 쌍벽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해수욕장으로 인해 경성에서 마산까지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고 할 정도니 가히 그 명성을 알만하다. 하긴 산 위에서 가만이 내려다보니 둥근 항아리처럼 생긴 마산만 한쪽에 자리한 모양이 해수욕장의 입지로서 그만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해수욕장을 따라서 길게 송림이 있었다고 하니 그 운치가 오죽했으랴.

나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월영이란 사실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누가 월영이라고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월영이란 달그림자. 이름 한 번 대단하다. 이 퀴퀴한 냄새나는 마산만에 도대체 달그림자가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 이름을 지었다는 분이 다름 아닌 고운 최치원 선생. 아, 이분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드높은 학식은 이 좁은 땅을 넘어 당나라에까지 떨쳤다.

그러나 인걸이 시대를 잘못 만나면 할 수 있는 일은 방랑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중환도 권력에서 밀려나 20여년의 방랑 끝에 택리지를 썼다. 정약용은 맏형 정약종이 천주학쟁이(천주교)의 괴수로 지목돼 한강에서 목이 잘리었으며, 또 다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 자신도 18년 유형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가 권력의 품 안에서 달콤한 나날을 보냈다면 우리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날고개에 얽힌 전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읽어보면 눈물 난다. 참말로 옛날엔 저리 살았나.

따스한 봄볕 아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부부가 부럽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월영대의 전설이 어린 마산, 그러나 이제 달그림자 대신 쓰레기만…
이렇든 저렇든 나는 그 고매하신 최치원 선생이 어째서 마산의 이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월영대를 짓고 시가를 읊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답은 매립에서 나왔다. 최치원이 감동해서 3년을 머물렀다는 월영대. 그 월영대가 바라보던 바다는 매립되어 이제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린다.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던 아름다운 밤바다는 이제 휘황한 네온사인과 젊은 남녀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어느 취객이 웩웩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들로 가득 찬다.

어제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산은 퇴근시간이면 항상 붐비는 고속도로와 국도, 낡은 건물, 구불구불한 도로, 그리고 오염된 바다로 이제는 그 초라함을 감출 수가 없다. ……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마산 앞바다가 현재 마산의 실상이다. 쇠퇴해가는 도시에 대한 아쉬움과 마산 시내의 도로에 대한 불평을 달고 마산을 가로질러 달린다.”

이런 괘씸한 녀석이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다. 대학졸업 기념으로 전국을 일주하고 있단다. ‘로시난테’라고 명명한 자전거를 타고서. 그렇다면 녀석은 틀림없는 돈키호테일 터. 그러나 녀석의 말은 하나 틀린 데가 없다. 책이름은 <『달리는 거야 로시난테』글/사진 양성관, 즐거운상상>, 문장이나 구성이 신선하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었다. 나는 원래 서점에서 너댓시간씩 죽치며 공짜로 책 읽기를 즐기는 데 이 책은 너무 좋아 직접 돈을 주고 샀다. 내가 다 읽고 아들에게 물려 주려고….

사실 마산은 도로도 엉망이고 가로수도 별로 없고 공원도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 키우기에 가장 부적합한 도시가 마산이다. 노인들에게는 편리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선에 가까운 교통망하며 인근에 어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노인들이 살기에는 편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을 터이다.

지금 마산은 매립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공장을 유치한단다. 그러면 마산의 인구가 늘고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이 생필품이 된 시대에 STX가 수정만에 들어오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산에 정착하고 창동 상권이 살아날까? 몇 년 지나보면 자연히 알 일이다.

차이나 최가 뽑는 옛날 손짜장은 정말 맛있다. 한 번 가 보시길. 만날재에 올라 마산만도 감상하시고.

그래도 만날재 공원이 있어 마산만은 아직 푸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겨울이 바로 엊그제, 너무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그저 만날고개 꼭대기까지만 올라가 봄바람을 마음껏 쐬기로 했다. 만날고개 입구에 ‘만날재 옛날 손짜장’ 집이 있다. 최점구 씨가 하는 가게다. 그의 별명은 ‘차이나 최’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호다.

보신 분은 수긍하겠지만, 그는 꼭 무술영화에 나오는 검객(또는 권객)처럼 생겼다. 주먹도 엄청 큰 게 진짜 강호에 태어났더라면 한 가닥 했을 것처럼 보인다. 거기서 일단 요기부터 했다. 아들은 짜장면, 나는 짬뽕. 계산을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마산 앞바다가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준다. 아들녀석이 돝섬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 요즘은 돝섬에 사람이 아무도 안 가나봐.” 지난 가을 국화축제 때 녀석을 데리고 돝섬에 갔었다. “어떻게 아는데?” “봐라. 배가 안 다니잖아. 배가 안 가면 사람이 어떻게 가는데?” ‘음, 역시 젊은 놈이라 관찰력이 나보다 뛰어나군.’

그러나 어떻든 정말 시원하다. 마산에도 이렇게 시원한 공원이 있다. 나는 예의 그 돈키호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탁 트인 호수 같은 바다를 조망하며 등산까지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원이 세상에 그리 흔한 줄 아느냐? 보아라. 예서 보니 마산 바다가 얼마나 푸르고, 봄바람은 또 얼마나 상큼하단 말이냐.”

만날재 공원 주변에 심어놓은 자그마한 나무들이 불쌍해보였다. 저놈들이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저것들이 훌쩍 커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 때쯤이면 나는 백발을 날리며 여기 기어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할 테지. 그리 생각하니 괜히 또 짜증이 난다. ‘대체 마산의 조상님들은 지금껏 무얼 하셨단 말인가.’

하긴 못난 놈이 조상 탓이다. 가수 이용 생각이 난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배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하여간 나무를 많이 심자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은 앙상한 뼈대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 애처로운 나무들도 머잖아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처로 사랑받게 되겠지.

만날공원 내에 주막집도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허름하던 옛집을 신축한 모양이다.

새로 지은 주막 옆에 오래된 옛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공원 안에 만들어놓은 자리에서 한참을 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서려니 불룩한 배가 장히 부담스럽다. “아, 이거 나도 배가 꽤 나왔는데. 운동을 너무 안 했나?” 그러자 옆에서 아들 녀석이 응수한다. “아빠. 나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배에 왕(王)자가 새겨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배에는 왕자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다
너무나 바싹 말라 불쌍해 보이는 녀석이 언젠가 자기 배를 내어 보이며 왕자를 살펴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배에 새겨진 것이 왕자 같기도 했고, 또는 너무 말라 뼈대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살찌지 않는 체질은 실로 복 받은 일이라는 데 둘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마라, 아들아. 이 아빠도 어릴 때 별명이 자그마치 ‘며르치’였단다. 그러나 이제 80Kg에서 1~3Kg이 들락거리는 ‘살찐 며르치’가 되었단다. 오늘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내일을 염려하며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으름이 없어야한단다. 그리해도 겨우 자기를 보존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게 인생이란 것이지.

그런데 녀석이 안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빠, 나 먼저 내려갈게.” 하며 내려갔었지. 나는 아래쪽 공연무대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겠다는 소리로 알아듣고 그러라고 했었다.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지금 어디냐?” “아빠, 나 지금 중앙캐스빌에 와 있는데. 먼저 내려간다고 했잖아. 친구랑 좀 놀다 갈게.”

중앙캐스빌은 월포초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의 집이다. 아, 이럴 수가, 아들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 터덜거리며 혼자 내려오는 길이 외롭다. 화도 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운명이다. 결국 아들들이란 모두 배신자다. 나도 배신자가 아니던가?

그래, 배신자여. 너는 네 갈 길로 떠나라. 나도 내 갈 길로 가련다. 아들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딸내미를 데리고 풍물 연습하러간다고(또는 구경) 갔다. 모두들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재미있나보다. 에이~ 배신자들….

이 녀석이 바로 배신자다.


2009. 2. 14. 토요일
오후 6시 정각.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