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28 선덕여왕은 박근혜가 아니라 심상정이다 by 파비 정부권 (13)
  2. 2009.04.30 노회찬, "좌파척결한다더니 수구가 척결됐다" by 파비 정부권 (2)
  3. 2009.01.13 민노당이 분열하고 있다구요? by 파비 정부권 (9)
심상정이 창원에 왔다. 그녀가 누구인가? 박근혜가 선덕여왕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정 그렇게 선덕여왕다운 사람을 찾고 싶다면 그건 심상정이 아닐까? 누가 그녀처럼 민중들과 고락을 나누며 평생을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단 말인가? 박근혜가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면 예쁘장한 나경원이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지 않는가.

그녀는 서울대를 나온 재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85년, 유명한 구로동맹파업은 그녀의 작품이었다. 물론 이 말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구로공단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일으킨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이 개중 가장 중요하고 컸으므로 그녀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라 할 수 없고, 당시 동맹파업에 동참했던 많은 노동자들도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 믿는다.

 

창원노동회관 4층 강당에서 열린 심상정 초청 강연회 '핀란드 교육을 통해 본 우리 교육 제자리 찾기'


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던 심상정 

그녀는 원래 꿈이 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꿈은 수시로 변한다.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은 스무개도 넘었는데 그 중 마지막으로 가진 꿈이 학교 선생이었다. 그래서 사범대학을 갔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그녀에게 그녀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당시는 엄혹한 유신정권을 거쳐 전두환이 쿠데타에 성공하고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세상은 흉흉했다. 이런 세상에서 편안하게 자신만의 꿈을 꾸며 안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그녀의 양심으론 허용되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마침내 여공의 길을 택했고, 노동운동가가 되었고, 수배와 구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최근까지도 그녀의 둥지는 금속노조였다. 그런 그녀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원래 선생이 되고자 했던 그녀는 정치가가 되는 꿈을  꾸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 정치에 입문했다. 세상은 그녀가 정치를 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만들었다.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그녀는 노동운동가에서 경제전문가로 변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참모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정태인 교수는 심상정의 탁월한 경제적 식견에 반해 그녀의 팬이 되었고 끝내는 노무현 대신 심상정을 택하는 결단을 하기도 했다. <100분토론>이나 <심야토론>이 경제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면 가장 먼저 심상정을 섭외했다. 그녀는 17대 국회에서 최고의 경제전문가로 통했던 것이다. 사실 노동운동가가 경제전문가가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노동운동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제공부를 했을까?
 

블로그 '거다란닷컴' 커서님도 오셨다. 그는 심상정을 인터뷰하기 위해 공항에서 만나 함께 왔다고 했다.


학교 선생의 꿈에서 노동운동가로, 국회의원으로, 경제전문가로 그 이름을 날리던 심상정. 그녀가 이번엔 교육을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진보신당 경남도당(위원장 이승필) 주최로 열린 심상정 초청 강연회의 제목은 <핀란드 교육을 통해 본 우리 교육 제자리 찾기>였다. 여기서 그녀는 우리 사회는 희망이 거세된 사회라고 말했다. 그녀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나본 많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참으로 절망적이었다. 

희망이 거세된 사회, 꿈이 없는 아이들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그 다음 그녀는 대학생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꿈이에요."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경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 사회는 결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회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모든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미 대학진학율 80%를 훌쩍 넘긴지도 오래다. 그러나 쏟아지는 고학력자를 받아낼 사회적 준비는 전무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대졸 실업자가 존재하는지.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실패를 경험한 이들 중에는 이를 딛고 일어설 어떤 준비도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로 '희망이 거세된 사회'란 과장이 아니다.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설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통감하던 심상정에게 핀란드 교육이 보였다. 

핀란드는 그녀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을까? 그녀는 핀란드로 날아갔다. 그곳의 교육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혹자는 이런 심상정에게 못마땅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핀란드 며칠 가서 무얼 배워오겠단 말이요?" 실제로 레디앙에 실린 심상정의 핀란드 방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나도 보았지만, 그들에게선 진정으로 걱정하는 비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일종의 직업적이고 감정적인 안티에 불과해보였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충분히 할 수도 있을 법하다. 

"아니 내가 겨우 한 달 북유럽 3국 순방하고 핀란드 교육을 다 공부했다고 하겠어요? 나는 이미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갔어요. 이미 내가 발표한 내용들은 미리 학습하고 준비한 것들이에요. 다만, 마지막으로 직접 가서 확인한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거기 가서 핀란드 교육청 장관으로 20년을 봉직하며 교육혁명을 주도한 에리키 아호를 만났을 때,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핀란드 교육에 관심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이 있죠. 그러나 커다란 영감을 얻었어요." 

커서님과 심상정을 위해 한 사진 찍었다. 옆은 부산지하철 노보편집위원이다.


노동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다시 꿈을 찾는 교육혁명의 길에 자신을 던지다

그녀가 핀란드에 가서 배웠다는 영감, 무한한 상상력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그 영감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말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강연을 들으면서―또 이전부터 알고 있던 그녀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도―그녀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갖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는 학교 선생이 되려는 꿈을 꾸었고, 대학에 가서는 노동운동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어 경제전문가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꿈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꿈을 찾을 수 있는 교육혁명의 꿈을 다시 꾼다. 그랬다. 그녀의 말처럼 교육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희망이 거세된' 이 나라의 미래는 없을 듯하다. 요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다. 이 바람을 타고 일부에서 선덕여왕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 박근혜야말로 선덕여왕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그들은 첫째, 모두 지지기반이 대구경북이란 점, 둘째, 모두 최고지도자의 딸로서 공주출신이란 점을 들었다. 나는 이 기사들을 읽어 보고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다. "박근혜가 선덕여왕? 그럼 김정일은 광개토대왕이냐? 
http://go.idomin.com/261" 나는 박근혜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가 어떤 꿈을 갖고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녀라고 해서 아무런 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되고 싶은 꿈을 그녀의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오늘날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꿈이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즐겁게 보고 있는 선덕여왕의 덕만이 꾸고 있는 꿈이 겨우 그런 꿈일까? 그렇지 않다. 덕만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자신을 간신히 매달고 있는 줄마저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다. 

박근혜, 나경원? 천만에, 심상정이야말로 선덕여왕의 재목 

박근혜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민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이 있을까? '희망이 거세된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 고난의 길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까? 행동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럴 마음이라도 먹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박근혜라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아니 그럴 마음이 애초부터 없다는 것쯤은 진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보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마산시 이옥선 의원과 심상정. 이옥선은 마산시 22 명의 의원들 중 단 세 명 뿐인 여성의원 중 한 명이다.


만약 박근혜도 민중을 위해 자기 목숨쯤 초개처럼 바칠 용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코메디다. 차라리 미실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러나 심상정은 어떤가? 그녀는 젊음을 송두리째 민중을 위해 저당잡혔다. 그녀는 당시만 해도 출세가 보장되던 서울대 출신의 길을 버리고 노동자의 길을 택했다.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치하에서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인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그녀는 서민들과 함께 꾸는 꿈의 길을 고집한다. 나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덕만처럼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덕만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용기를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심상정이야말로 오늘날 선덕여왕의 재목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에 견주어 선덕여왕에 비교하는 것이 오히려 심상정 그녀에게 실례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민중의 삶과 함께 해온 심상정을 박정희의 딸로 청와대에서 공주 행세를 하며 살아온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덕으로 살고 있는 박근혜 같은 사람에게 견준다는 자체가 어쩌면 심상정에게는 지독한 모욕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도 심상정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그녀는 충분히 통이 큰 인물이니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사진=레디앙(이상엽 사진작가), 좌로부터 심상정, 조승수, 노회찬

4월 29일은 수구척결의 날 

4 29일은 한나라당에게 재앙의 날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겐 수구가 척결되는 통쾌한 날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전패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 어떻게 해서든지 한 석이라도 건지는 것이 그들의 최대전략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나라당의 처지는 비참한 것이었다.

 

이미 민심은 한나라당을 버린지 오래다. 미국인도 고개를 돌리는 불량한 쇠고기를 수입해다 자국 국민에게 먹인다고 할 때부터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말로는 결정된 것이었다.

4대강 살리기란 이름으로 멀쩡한 강을 죽여 대운하를 만들겠다는 희한한 생각을 하는 것이 이나라 정부다.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건설자본의 이해를 관철하겠다는 건설회사 사장 출신 대통령은 과연 뇌가 없는 불도저다. 아니라면 국민의 피를 빨아서라도 자기네 계급의 배를 불리겠다는 야차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데도 아무 것도 할 능력이 없는 이 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MBC와 피디수첩을 제물로 삼고자 검찰과 경찰을 앞세워 온갖 비열한 음모를 서슴지 않는다. 애꿎은 미네르바를 구속해 네티즌들에게 소위 시범케이스로 겁주기란 구태의연한 사술을 부리다 창피도 당했다.

 

일개 가수 신해철의 북한의 로켓발사를 축하한다는 해프닝성 발언에 국가보안법을 들이대 수사를 벌이겠다는 해프닝을 연출하기도 한다. 참 나라가 돌아가도 우습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불도저를 트레이드 마크로 달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 불도저가 지난 1년간 한 일이 무엇이었던가. 나라경제 망치면서도 부자들 이익 챙기기에 바쁜 1년이었다. 부자에겐 세금 깎아주고 서민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라고 밀어붙이던 1년이었다. 그리하여 멀어지는 민심을 기만하기 위해 언론장악에 온갖 추악한 수단을 다 동원한 1년이었다.

이토록 나라를 망치고 민심을 잃은 한나라당이 이번 보궐선거에서 완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그들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뻔한 것이었다. 
고리타분한 색깔론을 또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울산에서 진보진영의 단일후보로 추대된 진보신당 조승수 후보를 지목해 좌파를 척결하겠다고 공언하며 보수층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투표장에서는 현대중공업 유니폼을 입은 유권자가 투표를 마치고 그 투표용지를 폰카메라로 촬영하다 적발돼 부정선거시비가 일기도 했다
. 진보신당은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시도된 증거라며 반발했다. 그러나 결국 한나라당은 완패했다. 기름 떨어진 녹슨 불도저는 더 이상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조승수 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좌파를 척결한다더니, 척결은 수구보수세력이 당했다. 명불허전, 역시 촌철살인의 대명사다운 말이다. 그렇다. 이번 선거는 확실히 수구를 척결하는 선거였다. 그러나 아직 수구척결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두산중공업 정문 앞을 파고드는 골바람은 매서웠습니다. 본부석으로 차려진 트레일러 운전석 위로 금속노조 깃발이 얼음처럼 차디찬 바람에 부딪혀 팽팽하게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6년 전 이날,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도 차디찬 자본의 공세에 맞서 팽팽하게 나부끼는 불길 속에 자신의 몸을 내던졌습니다.

배달호 열사는 두산중공업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50년 인생 중 절반을 두산중공업(구 한국중공업)에 바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한국중공업을 인수한 두산자본에 의해 노조간부들이 부당하게 해고되자 여기에 불복하여 맞서 싸우다 구속까지 되어야 했습니다.

신자유주의 민영화 바람이 몰고온 대규모 해고 사태

5조 원 가치의 공기업 한국중공업을 3000억 원이란 헐값에 손아귀에 넣은 두산자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노동조합을 길들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구속되었다 출소한 노동자 배달호에게 내려진 것은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재산과 임금에 대한 가압류였습니다.

막막해진 생계를 위해 회사 복지기금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압류자에게는 대출 불가라는 통보뿐이었습니다. 현장에 복귀해서도 단지 노조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관리자와 노무팀의 관리대상(소위 블랙리스트)에 올라 끊임없이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했습니다.

결국 노동자 배달호는 한 장의 유서를 남겨놓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는 유서에서 “하늘에서 반드시 지켜볼 것”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동지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남겼습니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부탁도 남겼습니다.

배달호 열사의 항거는 결국 63일에 걸친 투쟁의 불길을 일으켜 손배, 가압류를 철회시키고 금속노조 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들어냈으며 일부 해고자 복직의 성과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 배달호가 분신으로 열망한 세상은 아직 멀었습니다.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회장 김창근 전 금속노조 위원장


손배의 사슬을 끊기 위해 분신, 그러나 악랄한 자본의 손배는 아직도 살아 있어

1월 9일, 배달호 열사가 그토록 아끼던 민주광장이 아닌 회사 정문 앞에서 치러진 추모제에서 <배달호열사 정신계승사업회> 김창근 회장(전 금속노조 위원장, 두산중공업 해고)은 “고 배달호 동지가 손배가압류의 사슬을 벗기 위해 끝내 하나뿐인 목숨을 끊은 지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우리 현실은 아직 그대로다.”며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이어 그는 “지금도 노동자들이 굴뚝 꼭대기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데, 여전히 악랄한 두산자본은 (전국에) 널려있다.”고 말했습니다. 추모제가 열리는 시간, 또 다른 배달호들이 칼바람 몰아치는 100m 굴뚝 꼭대기에서 또 다른 두산자본, 현대미포조선 정몽준에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가슴에서 지울 수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한 두산중공업 박종욱 노조지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고 분열만 시키는 MB정부”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는 또 “올해는 노사관계가 더 악화될 것 같고, 경제 악화로 구조조정과 노동탄압이 자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두산을 비롯한 자본은 그 기회를 엿보고 있다”면서 “힘들게 사는 노동자들이 또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도 분열하고 있습니다.”

권영길 민노당 국회의원


추모사에서 갑자기 왠 민노당 분열?

그런데 이 말은 작년 1월 9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안타깝게 절규하는 목소리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똑같은 분에게 말입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습니다.”란 외침 속에는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진보정당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들어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또 다시 듣게되는 똑같은 절규 속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기 때문일까요? 1년이나 지난 지금 이 순간에 무엇 때문에 과거에 부르대던 소리를 다시 하는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중 대다수는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민주노동당을 만든 1세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민주노동당을 자기 당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진보신당의 60% 이상이 민노당과 무관한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짐으로써 이제 그들 마음대로 민노당과 어쩔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민노당의 종북정책과 대남 간첩행위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져나간 사람들이 김일성주의와 주체사상, 간첩행위에 대한 반대를 명시하지 않는 한 단결이 어렵다는 것은 대공장 노조지회장쯤 되시는 분이 모르실리 없습니다.
 
민노당이 종북, 간첩행위 반대를 명시하지 않는 한 정치조직적 단결은 어려울 것

그러나 그분의 뜬금없는 “민주노동당이 분열하고 있다”는 철지난 탄식이 아예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도 있고 내부 단속용일 것이라는 이해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울산의 고공농성장에서 벌어진 행태는 암울한 노동계와 진보운동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굴뚝 위에서 20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영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권한대행과 김순진 현대미포조선 조합원은 진보신당 당원들입니다. 이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현장투쟁에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를 비롯한 진보신당 당원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는 심상정 대표에게 마이크를 줄 것이지 말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에게는 당연히(?) 발언권이 주어졌습니다. 문제는 진보신당(!) 심상정 대표였던 것입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노동운동에 헌신한 여전사에 대한 대접치곤 너무 어이없습니다.

러나 이런 일은 비단 울산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며 우리 동네에서도, 또 다른 곳에서도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루 이틀 겪는 일이 아니어서 사람들도 이제 감각이 무디어졌습니다. 바로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가 배타적 분열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말로만 단결, 실제로는 배타적 종파주의

말로는 통일을 외치지만, 그 통일을 위해 반통일적 행위를 자행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고서 어떻게 통일단결해서 막강한 자본에 싸워 이기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명박의 대국민 분열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자신부터 거울에 비춰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옛날 밤이슬 맞으며 부르던 ‘진짜노동자’ 노래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생각납니다. ‘반성하는 민주투사~’ 

왼쪽부터 조승수 전 의원, 노옥희 진보신당 울산대표, 심상정 전 의원, 단병호 전 의원, 홍희덕 현 민노당 의원


배달호 열사는 유서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더러운 세상, 악랄한 두산, 내가 하늘나라에서 꼭 지켜볼 것이다. 동지들이여. 끝까지 투쟁해서 승리해주기 바란다. 불쌍한 해고자들 꼭 복직 바란다. 나는 항상 우리 민주광장에서 지켜볼 것이다. 내가 없더라도 우리 가족 보살펴주기 바란다. 미안합니다. 배달호”

21년을 한 직장에서 쉰을 넘기도록 살아온 노동자 배달호, 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부릅뜬 그의 두 눈은 악랄한 두산 자본이 아니라 민주광장이 아닌 두산중공업 정문 앞에서 치러지는 추모제를, 현대미포조선 굴뚝 위에서 찬바람 맞으며 싸우고 있는 두 명의 노동자 동지를 바라보면서 슬픔에 눈물 젖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번 주에도 내도록 한겨울 강추위가 맹위를 떨칠 것이라고 합니다.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2009. 1. 13.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