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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6 습지와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와 람사르 by 파비 정부권 (5)

우리 친구가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제목이 <습지와 인간>입니다. 책 제목을 왜 <습지와 인간>이라고 했을까 처음엔 좀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도시와 인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겠는데 습지와 인간은 잘 연결이 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훤주 기자가 땀으로 쓴 습지와 인간


그러나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대부터 인간은 습지와 매우 유용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습지는 온갖 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신석기시대의 인간들은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고 고기잡이를 하고 채집을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위험과 부딪히지 않는 안전함”을 유지하면서도 “손쉽게 옮겨” 다니면서 “동시다발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습지였던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저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라곤 동굴에서 살던 인간이 차츰 구릉에 정착하며 살았다는 내용뿐입니다. 습지에 관한 어떤 기억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아왔는가 하는 걸 새삼 알게 됐습니다. 또 얼마나 편의적으로 역사가 기술되었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고고학이 눈에 잘 띠는 마른 땅만 헤집고 다녔으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짐작이 가능하도록 이 책은 잘 안내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 이 책에서 민족주의가 얼마나 역사를 오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의 역사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24쪽은 ‘신석기시대에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신석기시대가 지금에서 1만 년 전부터 3000년 전 정도까지로 아주 넓은 시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쌀이나 조, 기장 같은 농경 자취가 확인된 곳은 같은 신석기시대라 해도 5500년 전 이쪽저쪽밖에 안 됩니다.”

저자는 “전체 신석기시대 6000년 가운데서 초·중기 4000년은 어름하게 지우고, 후기 2000년 남짓한 시절이 신석기시대 6000년 전체를 대표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교과서 지은이의 무지 탓이 아니라 어떤 비틀림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비틀림에는 쓸데없는 민족주의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세계사는 신석기시대가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농경과 목축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경제활동으로 생활양식에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신석기 혁명은 중동과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시작하여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사정이 “우리도 세계 흐름에 처질 수 없다”는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실사구시의 역사의식을 흐리게 했다는 짐작이 그저 짐작일 뿐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최근 습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오늘 신문에 보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창녕 우포늪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는 국감행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국감 ‘행사’라고 굳이 표현하는 것은 이 자리가 국정감사보다는 ‘람사르 총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성격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번 국감을 통해 람사르 총회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우포늪 자연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국민적 관심을 이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창녕 우포늪 인근 유어면 등 일대는 늘 물에 잠기는 습지대였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때 낙동강 변을 따라 높은 제방을 쌓아 습지대를 농경지로 만드는 대역사가 있었습니다. 물론 이 일대는 지금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포늪의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창녕군은 국감에서 둑을 막아 논을 만든 지역을 다시 습지로 조성하는 ‘천변 저류지 조성’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국회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실로 격세지감입니다. 

                
                       10월 15일 오전 창녕 우포늪을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 이윤성 국회부의장, 추미애 환경노동
                       위원회 위원장 등 국회의원들이 대대 제방 위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과 설명= 경남도민일보 김구연 기자> 
        
제가 우포늪을 처음 알게 된 것은 92~3년 무렵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창녕 사람이 아니라면 우포늪을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창녕 사람들도 우포늪이란 이름을 알게 된 것이 이 무렵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녕 사람들에게도 우포늪이란 존재는 92년 이전에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겐 ‘우포늪’이 아니라 대대로 ‘소벌’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처음 우포늪을 접하게 된 것은 아마 지역 환경운동단체를 통해서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소벌’이 아니라 ‘우포늪’이란 이름으로 만났습니다. 그러면 왜 환경운동단체들은 소벌이란 원래의 이름을 지우고 우포늪이란 이름을 쓴 것일까요?

저자는 이 책에서 “환경만 보일 뿐 똑같이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아래 숨통이 끊어져가는 우리 토종말”을 보지 못하는 환경단체들에 대해 통렬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습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오늘날의 우포늪을 만들어온 대단한 공적이 있는 것과 더불어 과오 또한 만만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2002년 낙동강 언저리 한 횟집에서 문인들이 모여 오간 얘기를 소개하며 다시 한 번 뼈저린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쎄, 옛날부터 '소벌'이라 하기는 했지. 그렇지만 소벌이라 하면 왠지 투박하고 천하게 들리잖아.”

이렇게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저자와 고향이 같은 창녕 출신 문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결국은 치명상이 되고야 말겠지만, 머리를 쪼개어 두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나 조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아무런 살의도 품지 않고, 느끼지 않고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벌을 삼켜버린 우포는 좀처럼 소벌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인지도를 바탕으로 스스로 세력화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우포가 이제 이름 가치를 인정해 자기네 상표로 끌어다 쓰는 일이 흔해졌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있지도 않았던 우포라는 말이 이제는 농협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창녕 대합농협과 성산농협을 통합해서 이름을 아예 ‘우포농협’이라 지은 것입니다.

<습지와 인간>은 경남 일대의 내륙습지와 연안습지, 산지습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이 주남저수지를 인공저수지로 잘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인공습지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습지와 인간이 만들어온 역사와 문화를 차분한 어조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람사르 협약’에 대해서도 다루며 마지막으로 ‘얘깃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습지’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친절하고 수려한 문체가 읽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저는 처음 몇 장을 읽어본 순간부터 가슴을 타고 흘러오는 감동에 흠뻑 빠졌습니다.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래 최고의 걸작이 될 것이라는 직감을 했습니다. 아니 친절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보자면 그 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직 책을 읽은 감동이 식기 전에 독후감도 아니고 소개서도 아닌 소감을 이리도 바쁘게 적어 올리는 것입니다.

경상남도가 제작한 람사르 총회 포스터


곧 람사르 총회가 경남에서 열립니다. 저는 람사를 총회를 개최하는 경남을 보면서 이율배반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경남은 한 편에선 람사르 총회를 맞아 습지 보전을 외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선 연안습지를 메우는 매립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포늪을 선전하면서 우포늪을 타고 흘러가는 낙동강을 파헤쳐 대운하를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경상남도와 도지사를 보노라면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따로 없습니다. 어떻게 한 입으로 서로 다른 얘기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떳떳하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원래 정치를 하려면 심장과 얼굴을 철제로 만들어야 한다더니 그 말이 진실인가 봅니다. 그래서 습지와 인간을 다룬 이 책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 책을 “아내이면서 둘도 없는 동지(同志) 이애민에게 바칩니다.”라고 썼습니다. 그의 아내는 1년 반 전에 쓰러져 전신이 마비된 채로 지금껏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엄마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낸 책이라 이 책이 더 없이 갸륵하고 소중합니다.

그는 또 책머리에서 “이애민이 제 곁에 있지 않았다면 이 책 또한 생겨나지 못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모든 공을 자기 아내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그이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문체’ 만큼이나 역시 친절하고 아름다운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아내가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그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2008. 10. 16. 파비  

ps; 책 값은 15,000원이지만,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구매하면 10% 할인이 됩니다. 

     저자의 블로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http://2kim.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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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보다 편리하고 저자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