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2.05 '추노' 좌의정 이경식이 원손을 죽이려는 진짜 이유 by 파비 정부권 (16)
  2. 2010.01.22 '추노'속 소현세자 독살설의 배경은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13)

"나라를 사랑하는 만큼 그에 따른 대가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 법이지. 대가? 바로 재산 아닌가."
"용골대가 온다고? 청국과 전쟁을 하자는 중론이 일겠구만. 그러니 자네는 열심히 물소뿔을 모으시게나."

<추노>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물론 그는 권력욕에 가득 찬 간교한 인물입니다. '전반적으로다가(!)' 느껴지는 분위기로 보면 아마도 소현세자 독살에도 깊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세자빈을 역모로 몰아 죽이고 세 원손들을 제주도로 귀양 보낸 것도 그의 작품이었을 겁니다. 


반정의 씨앗 원손 이석견을 죽여라

그는 이제 마지막으로 반정의 씨앗이 될 수도 있는 원손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리고 황철웅이 이 일에 투입되었습니다. 황철웅은 송태하의 동료이지만, 늘 태하의 그늘에 가려 2인자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 점이 그에겐 참을 수 없는 콤플렉습니다. 이런 콤플렉스가 생기게 된 데에는 가난한 그의 집안 환경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에겐 노모가 있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홀어미로 자신을 키운 노모에 대한 지극한 효심은 그가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윱니다. 그런 그에게 송태하는 자기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입니다. 무관으로서 송태하 못잖은 자긍심으로 충만한 그이지만, 내면에 또아리를 튼 콤플렉스는 늘 그를 괴롭힙니다. 그런 황철웅을 너무나 잘 아는 좌의정 이경식은 이를 적절히 이용합니다.

황철웅이 원손을 죽이기 위해 제주도로 떠난 후, 청국에서 사신이 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바로 병자호란 때 청군 사령관으로 조선에 침입해 소현세자를 볼모로 끌고 갔던 용골댑니다. 용골대는 소현세자 사후에 소현의 장남 이석철을 아깝게 여겨 인조에게 데려다 기르게 해달라고 청했던 점으로 미루어 소현세자와는 매우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소현세자가 로마 가톨릭과 서양문물을 접하게 된 데에도 용골대의 역할이 꽤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발달한 서양문명에 감동한 소현세자의 친청 행보는 인조와 서인정권의 눈에는 가시였겠지요. 특히 삼전도에서 당한 치욕을 잊지 못하는 주전파들에게 소현세자는 도저히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전쟁에는 경제 문제가 깔려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이를 빌미로  3년 만에 쳐들어온 후금에 패해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후금이 쳐들어온 표면적인 이유는 중립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폐위시킨 것이 발단이었지만, 실상은 명을 정벌하기 위해 배후를 쳐야 한다는 전략과 경제교류의 단절로 인한 심한 물자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정치는 경제의 집중적 표현이다!"라는 말을 상기해보면 "모든 전쟁의 원인은 경제 문제다!"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모든 전쟁이 경제가 근본적 이유인 것은 아닙니다. 남미에서는 축구경기에서의 다툼이 분쟁으로 비화되고 전쟁까지 벌이는 어이없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러나 대부분 전쟁의 밑바탕에는 경제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묘호란이라고 부르는 후금(청)의 1차 침공은 형제의 맹약을 하는 정도로 가볍게 끝났습니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하는 난리를 겪긴 했으나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까지는 겪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다시 쳐들어온 청나라 군대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올리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의 치욕은 평생 인조를 따라다니며 괴롭혔을 겁니다. 일국의 왕이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적국의 왕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올렸다는 것은 실로 참기 어려운 치욕이지요. 이를 역사는 삼전도의 치욕이라 기록했으며 이 전쟁을 일러 병자호란이라 부릅니다. 호란, 오랭캐가 일으킨 난이란 뜻입니다. 주전파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이름이지요.  

"용골대가 온다고?
그러니까 물소뿔을 모아야지"

"아무 걱정 말고 자네는 물소뿔이나 열심히 사들이시게나"


아무튼, 용골대가 온다는 소식에 놀라 어쩔 줄을 모르는 같은 당파의 대신에게 이경식은 말합니다. "무에 그리 걱정이신가? 사신 접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시고." "용골대 대장군은 소현세자와 막역지우로 보내지 않았습니까? 제주에 있는 원손을 만나자 할 텐데, 하, 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올습니다." 

"어허, 그리 대가 없으셔서 어찌 정치를 하시려나. 아무리 청국 사신이라 하나 조선의 내정까지 간섭할 권리는 없으시네." "그 일을 꼬투리로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올지도 모르잖습니까?" "당연히 그러시겠지." "허면?" "청과의 전쟁을 하자는 중론이 생기지를 않겠나? 그래서 자네가 물소뿔을 모으시는 것이고. 제주 일은 걱정치 말고, 맡은바 소임만 잘 해주시게."   

업복이의 총에 맞아 죽은 박진사가 죽기 전에 5만 냥짜리를 단돈 천 냥이란 헐값에 이경식에게 넘긴 물건이 무엇이었던가요? 물소뿔이었습니다. 이경식은 지금 물소뿔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전국에 있는 물소뿔을 모두 독점하겠다는 심산이지요. 그럼 왜 물소뿔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요? 물소뿔은 활을 만드는데 필수 소재입니다. 말하자면 핵심 군수물자지요.

"청과의 전쟁을 하자는 중론이 생기지를 않겠나? 그래서 자네가 물소뿔을 모으시는 것이고. 제주 일은 걱정치 말고, 맡은바 소임만 잘 해주시게." 무서운 사람입니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주전파의 목소리를 키우겠다는 의도가 아닙니까? 전쟁준비를 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이 독점한 물소뿔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겠지요.

서인정권의 반청주의는 효종의 북벌계획으로 나타나

결국 역사는 이경식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인조가 죽고 등극한 다음 왕은 세손이 아니라 봉림대군이었습니다. 봉림대군은 소현세자의 아우였지만, 세손을 제치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수대에 걸친 정통성 시비의 원인이 되었지요. 그 결과는 2차에 걸친 예송논쟁과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어떻든 효종은 소현세자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등극하자 친청세력을 몰아내고 김상헌, 송시열 등 서인계 대청강경파를 중용합니다. 송시열은 모두들 아시는대로 서인의 영수로서 예송논쟁의 주역입니다. 특히 효종의 북벌계획 중 송시열이 천거한 이완을 어영대장으로 임명하여 군사양성 임무를 맡긴 것은 매우 파격적인 군인사정책으로 가장 성공적인 군사강화책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지요.  

오래 전에 이완 대장과 송시열, 효종을 주인공으로 하는 사극이 방영되었던 적이 있었지요. 너무 오래 전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세 사람이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처럼 보여 매우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효종이 너무 일찍 죽어 북벌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이완과 송시열이 애통해하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선합니다.

이석견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현세자의 아들로 후사를 남겨 소현세자 세계(계보)를 이루었다.


그럼 <추노>에 등장하는 좌의정 이경식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붕당의 어디에도 기울지 않는 중도를 표방한다고 하지만, 실은 서인계 대청강경파를 대표하는 사람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송시열이나 김상헌 같은 인물과는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달랐을까요? 우리가 듣고 배운 송시열이나 김상헌은 만고에 충신인데 어떻게 이경식 같은 인물과 비교를 하느냐고요?

좌의정 이경식이 원손 이석견을 죽이려는 진짜 이유는?

글쎄요. 2백 년 동안이나 서인정권이 장기집권하는 동안 서울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했던 영남과 호남의 선비들이 자기 집 개 이름을 시열이라 지어놓고 볼 때마다 "시열이 이놈, 시열이 이놈" 하면서 때렸다고 하니 혹 옛날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각설하고, <추노>를 즐겁게 보면서도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한 것은, 결국 이경식 일파가 승리할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송태하와 곽한섬, 이광재 등이 겪게 될 슬픈 비운의 예감 때문에, 업복이와 노비당이 준비하는 혁명이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음모의 희생양이 될 것 같은 불길함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 거의 현실이 될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물론 결말이 제 생각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권선징악적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수도 있겠지요. 뭐 아무튼, 제 눈에 이경식은 참으로 특이한 인물입니다. 아니 너무나 뻔한 권력자의 더러운 모습을 드라마에서 공공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신기해서 특이하게 생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이경식 같은 인물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 참, 좌의정 이경식이 원손을 죽이려는 진짜 이유에 대해선 답도 안 내고 끝낼 뻔 했군요. 표면적으로야 반정의 씨앗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겠지요.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딴 데 있어 보입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소견일 뿐입니다만. 제가 생각할 때 이경식이 원손을 죽이려는 진짜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섭니다. 물소뿔 장사를 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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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속 소현세자 죽음의 원인은 독살? 그럼 독살의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독살설이 맞다면, 그 결론이 추악한 욕망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추노>의 시대적 배경은 인조시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조가 통치하던 조선은 격동기였습니다. 두 차례의 왜란에 이어 다시 두 차례의 호란을 겪은 나라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습니다.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노비가 급증하면서 도망가는 노비도 늘어났습니다. 추노질이 돈벌이의 한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당시 사회의 혼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인조반정은 광해군의 실리노선에 대한 근본주의의 도전 

이처럼 하층사회만 소용돌이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 양반사회의 당쟁은 권력암투로 날이 새고 날이 졌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인조가 등장한 것입니다. 선조가 죽고 등극한 왕은 광해군이었습니다. 광해군은 매우 총명한 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정사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광해군이 매우 영특했었다는 것은 사실인 듯싶습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스러져가는 명과 신흥 강대국 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리외교는 성리학에 물든 조선 유학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오랑캐에 굴복하는 굴욕외교였을 것입니다. 동인의 일파인 북인세력이 광해군과 함께 친청외교를 주도하자 이를 빌미로 대북파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결집했습니다.

그들은 인조를 옹립하고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에 성공했습니다. 역사는 늘 온건파보다는 강경파가 득세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이때도 그랬습니다. 광해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킨 반정파들은 즉시 명에 의리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청과의 외교를 단절하는 친명배금정책을 취했습니다. 이 반정으로 정인홍을 비롯한 대북파들이 몰락했고, 이후 남명 조식 선생의 문하들은 씨가 말랐지요.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세력은 훗날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기까지 무려 250여 년에 걸쳐 오랜 세월 집권합니다. 물론 중간에 남인이 정권을 잡은 경우도 있지만 아주 짧은 세월로 그렇게 유념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서인은 나중에 노론으로 이름이 바뀌고 이 노론에 소외당한 소수의 서인 일파들을 일러 소론이라 불렀지요. 

인조의 콤플렉스와 소현세자의 의문의 죽음

인조가 정권을 잡은 것은 표면상으로는 실리주의 외교에 대한 단죄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이후 조선은 급격하게 성리학 근본주의로 나가게 됩니다. 근본주의 하니까 갑자기 이슬람이 생각나십니까? 맞습니다. 극단적 반미주의와 극단적 반청주의는 시대는 달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근본주의는 정치적으로는 폐쇄적 패권주의, 독재로 이어지는 것이 필연입니다.

결국 인조의 반청주의는 두 차례의 전란의 소용돌이로 조선을 밀어 넣게 됩니다. 그리고 그 끝은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 태종에게 세 번 큰 절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의 예를 올리는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아마도 인조는 신하들 앞에서 당한 이 치욕을 죽는 순간까지도 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미디어다음 뉴스엔

그런데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세자 소현이 원수의 나라 청나라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문물을 선진문물이라고 말하며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일국의 왕이기 전에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한 인조의 분노가 어떠했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갑니다. 자신의 대를 이을 장남이 원수들과 시시덕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겠지요.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돌아온 지 불과 두 달 만에 죽었습니다. 학질에 걸렸다고 했지만, 인조실록에 의하면 시신이 온통 검은 빛이고 아홉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와 곁에 있는 사람도 얼굴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소현세자의 독살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가 기록된 셈입니다.

물론 소현세자가 독살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랜 볼모생활로 인한 피로의 누적과 국내로 돌아온 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환 화병 등이 겹쳐 병사했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귀국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병을 얻고 사흘 만에 죽었다는 것은 누구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소현세자의 검은 시신은 독살 의혹을 강한 어조로 주장합니다.   

소현세자가 청에서 들고 온 선진문물은 
권력자들에겐 환영할 수 없는 위협적 존재


게다가 소현세자가 청으로부터 돌아올 때 들여온 문물들은 성리학을 떠받드는 조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독일인 주교 아담 샬로부터 선물 받은 천주교 서적들과 지구의, 천문관련 서적들을 조선 조정에서는 도저히 환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현세자는 집권당인 서인세력과 인조에게는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였던 것이지요.   

<추노>는 소현세자 독살의 배후를 확실하게 인조로 지목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소현세자가 그의 오랜 친구인 송태하에게 보내는 편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소현세자는 송태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에게 이 편지가 전달될 때쯤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독살될 것을 알고 있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자신이 독살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일국의 2인자요 차기 국왕을 죽일 계략을 꾸미고 있으며 그걸 세자 자신이 알고 있단 말입니까?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송태하에게 후일을 기약하는 편지만을 남기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가 다름 아닌 조선의 1인자, 곧 국왕인 인조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언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학질에 걸려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이 편지가 그대에게 전해질 때쯤이면 나는 이미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아내와 아이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후사를 부탁했다는 것은 단순한 병사가 아님을 말합니다.

소현세자의 죽음이 원인 된
피비린내 나는 1, 2차 예송논쟁  

그리고 소현세자가 죽은 다음 세자빈 강씨는 인조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약을 받고 죽었으며,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오직 하나 남은 소현세자의 아들 이석견은 천운으로 살아남게 되는데 <추노>는 인조의 한마디로 석견이 살아남았음을 암시해주는 장면을 삽입했습니다.

"참으로 가엾은 아이가 아닌가."

좌의정 이경식 일파가 반대파들을 숙청할 목적으로 '역병으로 죽어가는 제주도민들 속에 홀로 선 어린 이석견'의 그림을 만들어 은밀히 돌렸는데 그걸 살펴보던 인조가 던진 말입니다. 제게 이 말은 역설적으로 하나 남은 소현세자의 아들 원손 석견만은 살려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무튼 소현세자의 죽음은 훗날 두 차례에 걸친 예송논쟁을 일으키며 피비린내 나는 당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기해예송과 갑인예송으로 불리는 자의대비가 상복을 어떻게 얼마나 입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은 당파싸움의 폐단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 보면 예송논쟁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투쟁이었지요.

바로 인조를 이은 효종 그리고 현종, 숙종의 정통성과 관련한 문제였으니까요. 이 쟁투의 주연으로 말하자면 그 유명한 송시열이죠. 송시열은 기호학파들에게는 위대한 유학자였지만, 영남과 호남의 유림들에게는 악마와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그래서 영호남의 선비들은 대문 앞에 송시열의 이름을 그려놓고 밟고 다녔다고 합니다. 

모든 당파투쟁의 시작과 끝은 배타적 이데올로기와 부정부패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개 이름을 시열이라 지어놓고 개를 볼 때마다 "시열이 이놈의 똥개새끼" 하면서 욕을 했다고 하니 그 증오심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는 보통 조선시대에 호남이 차별 받은 건 기억하면서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영남 역시 똑같이 차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각설하고, 소현세자의 죽음이 어떻게 조선시대 당파투쟁의 절정을 보여준 2차에 걸친 예송논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인지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추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당파투쟁도 처음엔 이념이 중요했지만, 이게 나아가면 패권주의로 다시 이기적 욕망으로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적이고 배타적인 이념이 패권주의를 낳고, 이 패권주의는 독재가 독버섯처럼 자라는 토양이며, 독버섯처럼 자란 독재의 그늘에선 늘 부정과 부패가 판치는 것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던 터입니다. 그러므로 <추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먼 옛날 사람들이 아닌 게지요. 

다시 한 번 <추노> 제작진의 기획의도의 마지막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아, 제목으로 낸 문제의 답을 말하지 않았군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습니다. 당연히 정답은 아닙니다.

"소현세자를 죽인 것은 인조의 콤플렉스(어심)를 이용한 이경식 일파의 추악한 욕망이다.
 이 욕망은 근본주의란 음지에서 태어났으며, 좌의정 이경식의 말처럼 '어심'을 먹으며 자랐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죽음은 향후 백 년에 걸친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의 원인을 제공한다."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
지금 이 시대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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