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공'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7.23 선덕여왕, 미실은 몇 번 결혼 했을까? by 파비 정부권 (9)
  2. 2009.06.11 선덕여왕도 색공을 받았을까? by 파비 정부권 (84)
어제는 제가 음주회동이 있어서 《선덕여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니지, 자정이 넘었으니 그 오늘도 이제 어제가 되었군요. 아무튼 역시 또 음주 회동이 있었지만, 과음을 자제하고 맑은 정신으로 들어와 거금 1000원을 결재하고 보았습니다. 물론 500원짜리도 있습니다만, 선덕여왕만큼은 1000원을 내고 보는 편입니다. 화질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선덕여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싶은 그런 사소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선덕여왕》을 보면서 신라의 색공 풍습에 관한 문제라든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문란해 보이는 당시의 혼인제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몇 차례 포스팅을 하면서 여러 서적들을 살펴보았던 제가 좀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했던 생각은 《선덕여왕》 제작진이 좀 오버한다는 것입니다. 자, 제가 오버한다고 생각한 장면은 이겁니다. 미실이 위천제를 올리고 하늘의 계시를 핑계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데 성공합니다. 봇짐을 메고 줄줄이 쫓겨나는 가야인들이 마치 재개발에 밀려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철거민들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지요.

그러고 나서 미실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 측근들을 모아놓고 다음 계책을 이야기합니다. 채찍으로 상처를 주었으니 이제 약을 발라줄 차례라는 거지요. 그 약이란 다름 아닌 김서현의 가문과 자기네 가문이 혼사를 통해 동맹을 맺자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듣고 있던 하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외칩니다. "어머니, 또요? … 아이, 정말…" 

하종의 짜증스러운 말의 의미를 눈치 챈 세종 또한 얼굴색이 변합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원망이 얼굴 가득하더군요. 그렇다고 큰 소리 칠 수도 없고….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역시 설원공이더군요. 그의 얼굴에도 원망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세종 부자처럼 내놓고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그 다음 미실의 반응입니다.

미실은 측근들의 불만에, 사실 측근들이라고 해봐야 남편들과 아들들과 친동생이었지만, 내심 스스로도 무안했던지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 말고…" 그러나 저는 미실이 얼굴을 살짝 비틀어 숙인 자세로 찡그리며 "나 말고… 자식들 중에서… 아니면, 하종의 여식은 어떨까?" 할 때, 정말 큰 소리로 웃을 뻔 했습니다.

《선덕여왕》이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소재가 신선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연기자들의 연기가 훌륭합니다. 《선덕여왕》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드라마도 흔하지 않습니다. 《대장금》의 인기를 넘어서는 드라마가 아직 없었다고 하지만, 그 《대장금》도 이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햇습니다.

또, 《선덕여왕》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코미디적인 요소입니다. 사극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심각하고 어두운 면을 이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잘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이지요. 죽방거사의 역할은 감초의 수준을 넘어 《선덕여왕》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가 있어서 주인공들이 더 빛나는 거지요.

그리고 미실도 가끔 코미디 같은 대사나 행동을 하더군요. 지난주에는 유신을 불러다놓고 하늘의 뜻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하지요. 뇌쇄적인 윙크까지 섞어서 말입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필요하답니다." 아마 오늘, 아니 어제였군요. 미실과 측근들이 모여 벌인 해프닝도 결국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활력소를 위한 코믹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확실히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실은 다행히 정략결혼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측근들을 안심시켰지만, 이것은 난센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신라는 모계사회도 아니고 다부다처사회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때도 분명히 부계전승사회였고, 일부일처제가 지켜지는 사회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실은 단 한 번 혼인했으며 남편은 세종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마치 설원이 미실의 남편인 것처럼 비쳐지지만, 그는 남편이 아니라 정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세종이 받는 대접과 설원이 받는 대접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세종은 진골이며 설원은 두품도 없는 천한 신분이지만서도…

그럼 미실이 3대에 걸쳐 왕들에게 바쳤다는 색공은 무엇일까? 그건 그냥 색공입니다. 미실이 진흥왕에게 색공을 바쳤다고 해서 그녀가 진흥왕비가 아닌 것이며, 진지왕비도 아닌 것이고, 진평왕비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왕실의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색공을 바치기로 된 진골 가문의 한 여인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보여준 '미실의 혼사'는 실은 난센스였던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물론 세종이 죽은 후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당시는 여자의 재혼을 금하는 어떠한 법이나 관습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미실이 굳이 김서현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면 혼사가 아니라도 설원과 그랬던 것처럼 은밀하게 정을 통하면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은 공식적인 정략결혼을 통해 양 가문의 동맹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므로 미실이 아니라 자손들 중에서 누군가 하나를 골라 유신과 혼인시킬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여튼, 비록 난센스라고 제가 비토를 하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는 자칫 심각하고 무겁고 어두운 사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쯤으로 이해를 하면 그만입니다.

실은 이렇게 비토를 하는 것도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은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보니 드디어 덕만의 정체가 탄로 났군요. 아니 탄로가 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신분을 되찾은 것이지요. 축하를 해야 할 일이겠지만, 대략 예고편을 보니 앞날이 더 험해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하여간 여러분, 미실은 오직 한번밖에 결혼하지 않았답니다. 남편도 세종 한사람뿐이랍니다. 비록 정부가 여럿 있었으며 세 명의 왕과 한 명의 태자에게 색공을 바치긴 했을지언정 일부종사(?) 했다는 사실,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남자들도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의 혼인에 얽힌 고사를 보십시오. 

왜 김유신은 춘추와 사통한 문희를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는 연기를 했을까요? 김춘추가 이미 결혼했으므로 문희를 아내로 맞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기는 선덕여왕에게로 날아갔고 결국 여왕의 묵인으로 김춘추는 문희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는 전례없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사회에서는 남자들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기록인 것입니다. 물론 정식 부인은 한명밖에 둘 수 없었지만, 미실과 마찬가지로 정부(첩)는 여럿 둘 수 있었겠지요. 어디까지나 재력과 권력을 가진 귀족들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것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오늘 새삼스럽게 난센스 이야기 하다 보니 제가 난센스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흐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요즘 선덕여왕이 화제다. 더불어 화랑세기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를 베껴 썼다고 주장되는(!) 필사본 화랑세기는 그러나 위작논란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끄러운(?) 조상의 역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라거나 “현재의 시선으로 당시를 재단하는 오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미실이란 여인은 거의 모든 풍월주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아비가 2세 풍월주였던 그녀는 5세 풍월주 사다함과도 연인사이였을 뿐 아니라 6세 풍월주 세종의 부인이며 동시에 7세 풍월주인 설원랑과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난 하종이 11세 풍월주이고 설원랑과의 사이에서 난 보종은 16세 풍월주가 되었다. 또한 32세 풍월주는 그녀의 원손이다.  


그 외에도 미실은 진흥왕, 동륜태자, 진지왕, 진평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신라의 왕들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미실이 매우 문란한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그때의 성풍속이 그러했고 나아가 이를 권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실은 색공(色供)을 하는(또는 해야 하는) 신분의 여자였으니 아주 합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미실의 실제 남편인 세종은 이사부 장군과 왕비의 사이에서 난 자식으로 진흥왕과 어머니가 같다. 미실 또한 진흥왕비의 조카라고 하니 그 관계도를 그려보면 매우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에서 미실을 가운데 두고 미실의 남편이거나 자식들인 진골귀족들이 모여 미실의 혼사문제를 논하는 장면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런 근친상간은 신라시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선덕여왕보다 조금 빨리 시작한 천추태후를 보자. 거기도 선덕여왕 못지않은 복잡한 성풍속이 우리를 어지럽게 한다. 천추태후는 태조왕건의 손녀로서 자기와 배다른 오라비인 경종에게 시집을 간다. 그것도 친동생과 함께 경종의 비가 되는 것이다.


경종이 죽자 천추태후의 여동생이며 경종의 왕비였던 헌정왕후는 태조왕건의 아들인 왕욱(경주원군)과 사랑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가 곧 대량원군으로 나중에 고려 제8대왕 현종이 된다. 태조왕건 이후 목종에 이르기까지 안정을 찾지 못하던 왕위세습은 현종 조에 안정을 찾아 이후 모든 고려왕들은 현종의 자손들로 채워진다.


그런데 이 현종이 우리시대의 시선으로 말하자면, 불륜의 씨앗인 것이다. 그럼에도 왕족의 혈통이라 하여 원군(태자)의 칭호를 내리고 나중에 왕위에 오르기까지 했던 것이다. 이사부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왕비의 자식이라 하여 전군(태자-왕자-전군으로 이어지는 왕족의 호칭)에 봉해진 세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물론 태종이라 불리는 장군 이사부도 내물왕의 4대손이니 김씨로서 왕족이다.


자, 그런데 내가 오늘 주목하는 대목은 이렇게 신라와 고려를 거쳐 유행했던 복잡한 성풍속도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좀 어지럽긴 하지만, 이해할만 하다. 저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도 자기가 꿈꾸었던 이데아를 지탱해줄 주요한 장치는 바로 부인공유제라고 하지 않았던가. 통치계급인 철인들의 이기심을 막을 장치로서…


물론 신라 성골-진골 귀족들의 성풍속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석기시대―사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구석기시대이며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극히 미미한 일부분에 불과하다―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이은 것이든 아니면 골품제를 유지하는 수단이었든 말이다.


여기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색공(色供)이란 제도에 대해서다. 나는 처음에 드라마가 시작될 때 미실이 색공술을 펼친다고 해서 무협지에 등장하는 여마두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색공이란 왕이나 왕족의 세대세습을 위해 색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색이란 애매모호한 표현은 다름 아닌 섹스를 말함이다.


미실이 바로 색공을 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진흥왕부터 그의 아들인 동륜태자와 진지왕, 그리고 진흥왕의 손자인 진평왕 대에까지 색공을 했다. 그뿐 아니라 진흥왕의 씨 다른 형제인 세종의 정실부인이었으며 자기의 외가 쪽 5촌 아저씨뻘 되는 설원과도 교제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럼 색공은 여자만 하는 것이었을까? 선덕여왕은 어땠을까?


선덕여왕의 남자관계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신라 말의 진성여왕은 매우 문란하여 황음을 하다 결국 나라를 망쳤다는 기록들이 많지만, 현명한 군주로서 추앙받는 선덕여왕에게 스캔들(?)과 관련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음지식-문화원형>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용수와 용춘은 진지왕의 자식들인데―선덕여왕에게는 숙부뻘이다―선덕여왕을 받들도록 했다. 처음에 용춘이 진평왕의 명으로 선덕을 받들었으나 자식이 없어 물러나고 용수가 받들었다. 역시 자식이 없어 물러났다. 선덕이 왕위에 오르자 용춘이 다시 선덕여왕의 지아비가 되었으나 역시 자식이 없어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글쎄… 확실하지는 않지만, 선덕여왕도 색공을 받았던 것이 아닐까? 물론 여왕에게 색공을 했던 남자들은 모두 성골이거나 진골 귀족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야 왕실의 혈통이 보존되니까… 여기까지다. 더 이상은 알 수 없다. 더 알고 싶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미루어 짐작건대, 그때처럼 개방적인 시대라면 남자왕족이 색공을 받았다면 여자왕족도 틀림없이 색공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색공이란 제도가 있기는 있었다는 전제하에…
  그런데 과연 드라마에서 그런 내용을 다룰까?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 시대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므로.

아 참,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용수와 용춘은 모두 선덕여왕의 언니인 천명공주의 남편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천명과 용수(공식적으로는 용춘)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다. 그러고 보면 진평왕의 공주들은 실로 대단한 스캔들의 소유자들이었다. 선덕여왕의 동생인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과 결혼하여 의자왕을 낳지 않았던가.   

생각할수록 흥미진진하다. 과연 이 복잡한 관계를 MBC 드라마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흐흐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