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8.01 낙동강에서 만난 보물 석탑에 앉은 목 잘린 불상 by 파비 정부권 (7)
  2. 2009.07.30 낙동강 도보길에 만난 탱크와 자주포 by 파비 정부권 (11)
  3. 2009.07.18 낙동강은 산도 뚫고 흐른다 by 파비 정부권 (5)
  4. 2009.03.27 낙동강 천삼백리 도보기행을 시작하며 by 파비 정부권 (8)
여기는 낙동강 4차 도보기행이 거의 끝나가던 지점입니다. 낙동강과 병성천이 합강하는 곳인데요. 산진 왼쪽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병성천입니다. 우리는 상주 경천대와 도남서원을 지나 이곳에 다다랐습니다.

상주 일대의 낙동강. 왼쪽에서 흘러나오는 병성천과 합강 지점에서 찍은 사진


이곳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며 더위를 식혔습니다. 때는 6월 28일,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입니다. 6월이 이렇게 더웠던 적은 아마도 유사 이래 처음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6월이었죠. 이때 우리는 5차 기행 때는 낮에는 그늘 밑에서 쉬고 새벽과 밤에 걷자고 계획을 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뜨거운 태양아래 달아오른 대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 7월은 유사 이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를 뿌렸습니다. 결국 7월 24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행한 5차 도보기행은 하루 30km가 넘는 강행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날이 너무 선선했거든요. 시원할 때 많이 걸어두자면서…  

날씨가 너무 무더워 물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모두들 얼마나 더웠던지 갈 생각들을 하지 않고 낙동강에 퍼질러 앉아 놀고 있습니다.

병성천 저 멀리 낙동강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 병성천에서 조금 더 걸어 병성마을에서 낙동강 4차 도보기행은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사벌국 왕릉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해산했는데요. 아래 사진은 전사벌국왕릉입니다. 사벌국왕릉 앞에 전자를 붙인 것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벌국 왕릉이다, 그런 뜻입니다.

안내판에 그렇게 적혀 있었는데요. 매우 양심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전'자를 붙여야 함에도 빼먹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그런데 이 전사벌국왕릉 옆에는 석탑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물이었습니다.  

전사벌국왕릉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입니다. 보물 제117호입니다. 소재지는 경북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422번지입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6.24m, 건립연대는 9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제가 이렇게 사진을 찍어 여기에 올리는 이유는 이 석탑이 보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석탑 기단에 불상이 하나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목이 없습니다. 살펴 보니 예리한 무엇으로 잘린 듯합니다. 목 없는 불상… 도대체 저 불상의 목은 누가 잘라 갔을까요? 팔이나 다리도 아니고 하필 목을 잘라 갔을까요? 목을 잘라다 도대체 어디다 쓰려고 그런 것일까요? 국보 제130호 선산 죽장동 5층석탑의 상륜부를 떼어간 것처럼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저지른 소행일까요?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짓일까요? 

생각할수록 괘씸하군요. 낙동강을 도보로 기행하며 우리 국토에 흩어져있는 무수한 문화유산들을 보며 감탄했던 저로서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불상의 목을 잘라갈 생각을 했는지, 인간의 잔혹한 마성에 그저 치를 떨 따름입니다.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곳은 우리가 낙동강 5차 도보기행을 위해 베이스캠프로 준비한 구미청소년수련원입니다. 마침 휴가철이라 낙동강 일대의 숙박시설이 꽉 차는 바람에 이곳을 잡았는데 시설이 엉망이었습니다. 하루에 30km를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샤워시설이었지만,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첫날밤은 대구 모 교회의 캠프 때문에 밤새도록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내가 도착해 아래 사진을 찍은 시간이 9시 무렵인데, 이미 한창이었던 집회는 밤 12시가 넘도록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울기도 하고 하는 바람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거의 새벽 2시가 되어 기도가 끝났지만, 이번에 아이들이 새벽5시 가까이까지 복도를 뛰어다니며 노는 통에 완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답니다.

기도도 좋지만 이왕 아이들 여름방학을 이용해 캠프를 왔으면 기도는 짧게 하고 재미있게 노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신나게 놀게 해주고 일찍 재우는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 사는 방법도 믿는 방법도 가지가지라지만 이건 너무 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왜 조용히 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마음 속으로 조용히 신을 찬미하면 신도 좋아 하실텐데 말입니다.

신이 귀가 먹은 것도 아니고 너무 시끄럽게 굴면 싫어할 것 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하긴 이건 제가 간섭할 사항이 아니로군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되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시끄러운 기도소리에 잠 못드는 밤을 괴로워하며 마당에 나와 있자니 희한한 광고썬팅을 한 차가 한 대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그 교회 팀의 일원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광고 문구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VIP경호, 행사경호, 주주총회, 노사대립, 개인경호…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건 개인경호와 VIP경호뿐이었습니다. 주주총회를 하고 행사를 하는데 무슨 경호가 필요하다는 건지, 파업현장에 경호회사 요원들을 투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막상 이렇게 광고썬팅을 보니 섬뜩하군요. 무섭습니다.


어렵게 새벽 3시가 거의 다 되어 잠을 청하고 다음날 새벽 5시 반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고 낙동강 도보기행 길을 떠났습니다. 이번 도보기행의 시작점은 상주 강창나루입니다. 강창나루에서 시작해 토진나루를 지나고 낙동나루를 거쳐 구미시 해평면(청소년수련원이 있는 곳)까지 걷게 됩니다.

옛날 이곳 강창나루에는 소금배가 드나들었던 모양입니다. 강창나루 나들목에 소금배란 간판을 단 식당이 있습니다.


나루배로 건너던 강에는 이제 배는 사라지고 대신 다리가 길게 낙동강을 가로지릅니다.


다리위에서 찍은 낙동강의 모습입니다. 강 중간에 모래톱이 섬을 만들었습니다.


낙동강둑길로 올라서니 고추잠자리들(고추잠자린지 배추잠자린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축하비행을 해줍니다.


강둑으로 나가려면 이렇게 논둑을 가로질러 가야 합니다. 미안했지만, 농부 아저씨들은 우리를 보고 밝게 웃으며 고생이 많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느낀 바이지만, 태백, 봉화, 안동, 예천, 상주를 거쳐 오는 동안 정말 인심들이 좋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풋풋한 경북 북부지방 사투리는 결코 사람을 밀어내는 법이 없었답니다.  


이슬을 머금은 달맞이꽃… 밤새 활짝 가슴을 벌려 달을 애무했을 꽃들은 이제 아침을 맞아 몸을 오무리고 잠을 청하려나 봅니다.


토진나루에 닿았습니다. 이곳에서 모두들 휴식을 취했습니다.


토진나루 위쪽에서 강물은 줄기차게 흘러내려 오고…


나루터를 지난 강물은 우리가 쉬든말든 지치지 않고 흐릅니다. 정말 유장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우리는 강창나루를 지나 토진나루로 오는 길에 이렇게 담배 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미류나무 옆에 뭔가 심상찮은 물건이 보입니다. 뭘까요?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155미리 자주포와 탱크가 서 있었습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혹시 저거 6·25 때 쓰다가 저렇게 버려진 거 아닐까요?" 그는 여자 회원이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가던 남자 회원이 말했습니다. "에이~ 그때는 저런 대포나 탱크도 없었네. 저건 최근에 쓰던 걸 여기다 갖다 놓은 거야. 그런데 저걸 왜 여기다 전시해 놓았을까?"

글쎄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습니다. 저 흉칙한 무기들의 오른편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그 옆과 앞과 뒤는 온통 논과 밭 뿐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거 고철로 팔아먹으면 돈 꽤 되겠는데!" 그러자 다시 옆에서 누군가 말을 받았습니다. "고철로 팔어먹고 싶어도 저거 끌고 갈 차가 들어올 길이 없어요, 여기는."


155미리 자주포와 탱크와 한대의 기관총(아마 캬라바 50인 듯)은 우리가 걸어온 북쪽 하늘을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왠지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기를 보고 외롭게 보인다는 저도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외로워 보이지 않나요?


무기를 지나 조금 내려오니 사람들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농사일에 바쁜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풀립니다. 대포와 탱크와 기관총 옆에서도 농촌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평화롭기만 합니다. 트랙터가 바쁘게 땅을 갈고 있습니다. 방금 전에 보았던 탱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평화로움입니다.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너무 반갑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막 손을 흔듭니다. 하하~ 역시 경북북부지방 사투리를 쓰면서… "오데 가니껴~" "예, 낙동강 따라 걷습니다. 태백에서 부산까지 갑니다." "아이고~ 차말로 고생이 많게니더." 우리 일행과 헤어진 이분들도 잠시 후면 들에 세워져 하늘을 노려보고 서있는 자주포와 탱크와 기관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도 이렇게 똑같이 반갑다고 인사할까요? "거기 뭐 한다꼬 서 있는교? 하루 젱일 땡비테 서 있을라카므 차말로 고생이 많겠니더~ 누가 그러라꼬 시키던고? 차말로 얄궂데이~"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3년후에도 우리는 낙동강을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볼 수 있을까?
물은 부드럽습니다. 물보다 더 부드러운 건 세상에 없습니다. 음~ 공기가 있군요. 그러나 아무튼 물보다 더 부드러운 건 세상에 별로 없습니다. 물은 부드러운 만큼 참 유연합니다. 산이 앞을 가로막으면 돌아갑니다. 소를 만나면 서두르지 않고 쉬었다가 동료들이 많이 모이면 다시 넘쳐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도 즐겨 말하기를 "물처럼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 물은 유연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태백은 물속에 뜬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고 시를 썼습니다.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 "달아 달아 둥근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이태백이 놀던 그 달도 실은 물에서 놀았습니다. 그래서 이태백이 달을 잡으러 물로 뛰어들었다지요?

낙동강이 내려가다가 산을 만났다. 돌아갈 길도 없다. 바로 구무소다.


태백산은 낙동강과 한강이 발원하는 곳입니다. 한줄기는 북으로 흘러 강원도와 충청도를 적시고 경기평야를 일군 다음 황해에 몸을 담급니다. 나머지 한줄기는 남으로 흘러 경상도 땅을 휘돌아 김해에 드넓은 삼각주를 만들고 마침내 남해와 몸을 섞어 어느덧 태백산에서 헤어진 두 개의 물줄기는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낙동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채 30 리도 못가서 커다란 난관에 봉착합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발견한 것입니다. 물은 유연합니다. 가로막으면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곳에선 돌아갈 길도 없습니다. 아, 이럴 때 물은 어찌 해야 할까요? 그러나 물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물이 단단한 바위벽을 뚫기 시작합니다.  

강은 결국 산을 뚫고 지나가기로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물줄기는 산을 뚫고 아래로 흐릅니다. 이렇게 하여 생긴 동굴은 낙동강이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남해에 다다르기 위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이름 하여 구무소입니다. 요즘은 한자음을 따서 구문소라고도 하더군요. 아래 사진은 산을 뚫고 나온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동굴 벽면을 자세히 보시면 각자가 보이실 겁니다.

'오복동 자개문'이라고 한답니다. 자개문은 확실히 알겠는데 그 앞의 글자는 한문 실력이 형편없는 저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혹시 각자의 정확한 음과 뜻을 아는 분이 계시면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비결을 전하는 정감록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낙동강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없어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에 열리고 축시에 닫히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이 없으며 병화가 없고 삼재가 들지 않는 오복동이란 이상향이 나온다." 이처럼 자시에 문이 열린다고 해서 자개문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굴 안쪽 햇빛과 그늘이 갈라지는 지점에 "오복동 자개문" 각자가 보인다.


중국의 도연명이 설명한 무릉도원도 그 입구가 구무소처럼 생겼다고 합니다. 무릇 사는 곳은 달라도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는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그런데 구문소 보다는 구무소가 훨씬 부드럽고 듣기 좋은데 왜 굳이 한자음을 따르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구무소라 하면 구멍과 소가 합쳐진 말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지만, 구문소라 하면 별로 다가오는 느낌이 없습니다. 제가 사는 인근 동네의 소벌이 한자음을 빌려 우포늪으로 불리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되어 한편 씁쓸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인공동굴 위에 새겼다는 흐릿한 각자



"옛날 구무소가 생기기 전에 황지천과 철암천에는 각각 커다란 소가 있었는데, 황지천에는 백룡이 철암천에는 청룡이 살았다. 이 둘은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하루는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을 뚫고 청룡을 기습하여 제압함으로써 오랜 싸움을 끝내고 승천하였다. 이때부터 구무소가 생겼다."

이외에도 구무소에는 무수한 전설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엄종한이란 어부가 구무소에 빠져 용궁에 갔다가 살아 돌아온 이야기며 선덕여왕의 아들 효도왕자와 월선낭자의 사랑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혹은 문집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무소의 옆에는 동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동굴이 아니라 사람이 뚫은 굴입니다. 일제시대에 한 일본인이 뚫었다고 하는데 그는 굴을 뚫고 그 윗부분에 자개문의 각자를 흉내 내어 글을 새겼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글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미천한 한문 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자가 너무 흐릿했던 탓이기도 합니다. 자개문에 비해 각자의 정성이 부족했던 게지요.

그래서 그 이후로 물만 이 석벽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차도 지나다니게 되었습니다.

황지천이 구무소를 지나면 바로 철암천과 합류한다.


백룡이 구무소를 뚫어 청룡을 물리친 석벽 위에는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자개루입니다. 별로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워낙 경사가 가파른지라 올라가는데 땀 깨나 뺐습니다. 그러나 위에 올라가니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백룡이 구무소를 지나 청룡을 습격하는 장면이 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석벽을 뚫어낸 물은 물론 황지천입니다. 아마 백룡과 청룡의 전설이 만들어진 것도 결국 산을 뚫고 흐르는 황지천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낙동강의 발원천도 황지천입니다. 결국 낙동강을 지배하는 것은 황지천, 즉 백룡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전설이 아무런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구무소 위 석벽 위에 지어진 자개루.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다 한 컷.


4대강 살리기 하고 나면 낙동강 천리길에 지천으로 깔린 모래사장들은 다 어디로 갈까?  
이제 물은 계속해서 남으로 흐릅니다. 이렇게 물길은 계속 흘러 육송정을 지나고 석포리를 건너 봉화를 지나고 하회마을을 휘돌아 남으로 남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태백산에서 출발한 우리는 지금 상주 경천대를 지났습니다. 태백산을 뚫고 내려온 낙동강은 경천대에서 대지를 굽이치는 강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그려놓았습니다.

뱀처럼 휘어지는 강줄기 옆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백사장이 눈부시도록 아름답습니다. 경천대의 절경에 취해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가슴 한구석에서는 그러나 답답한 슬픔이 아프게 배어있었습니다. 저렇듯 뱀처럼 굽이치는 강물과 빛나는 백사장을 더 이상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대표 신정일)>의 낙동강 도보기행에 따라나서기로 결심한 것도 사실은 그것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 것 같다는 불안 말입니다. 이 정권은 온 국민이 대운하에 반대하는데도 굳이 '4대강 살리기'란 묘한 이름을 만들어 강 죽이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제게는 이명박 정권의 목적이 오로지 강을 파헤쳐 건설수요를 창출하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돈 때문이란 것이 제 생각입니다. 국민들의 혈세를 걷어다 자기 동족인 건설족의 배를 불려주는 것이지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저 아름다운 자연, 금빛으로 빛나는 모래사장은 어떻게 될까요? 3년 6개월 후에도 우리는 저 모습을 그대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6m 깊이까지 파헤쳐져 모래들은 모두 속세로 실려나가고 결국은 수로로 변한 참담한 모습만을 보게 될까요?


상주 경천대 (사진=경천대 홈피)


제가 낙동강 1차 도보기행에서 위의 사진들을 찍은 날은 3월 28일이었습니다. 당시는 가뭄으로 태백시내에 물이 공급되지 않아 데모가 벌어지던 상황이었지만, 보시다시피 낙동강 발원천은 유장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발원지(문헌상) 황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물이 마르면 나라에 변고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4차 기행까지 마쳤으며 상주 경천대를 지났습니다. 아직 절반도 못 내려왔습니다. 다음주에 2박 3일 일정의 5차 기행을 떠납니다. 그러면 아마 상주 낙동을 거쳐 구미를 지나게 될 것 같습니다. 이제 낙동강 칠백리 뱃길을 걷게 되는 것이지요. 이명박은 혹시나 조선시대에 뗏목이나 작은 배가 다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거대한 선박을 띄울 생각을 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pabi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을 시작하며


이 정부가 낙동강을 살리겠다며 파헤치겠다 합니다. 멀쩡한 강을 파헤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그 의도가 심히 수상쩍습니다. 최근 10, 2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돼온 환경운동단체들과 뜻있는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죽어가던 한국의 강과 산과 바다는 생기를 많이 되찾았습니다.  

 

당장 우리동네만 해도 그렇습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봉암갯벌에서 다시 조개가 잡힌다고 합니다. 마산만이 아직은 그 오염도가 심각한 지경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0년 전에 비해 괄목상대할 만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을 줄로 압니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마산에서 승용차를 타고 창원공단으로 출근할라치면 수출정문 해안도로를 지날 때는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반드시 창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창문을 열고 해안도로를 달려도 예전처럼 머리가 빠개질 듯한 냄새가 달려드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강과 산과 바다가 서서히 그 생기를 되찾고 있음에도 갑자기 강이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은 4대강 살리기지만 그건 허울이고 강을 파헤쳐 완전히 죽인 다음 자기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강 즉, 운하를 만들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경우엔 ‘수술’이 아니라 ‘장례’라고 해야 올바른 어법이라고 보아집니다.  

 

아직도 우리의 강과 산과 바다는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작금의 이 기괴한 현상들은 우리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환경운동가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강은 너무나 깨끗하다!고 강변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 중의 역설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최고의 비경 상주 경천대. 이미지=상주경천대 홈페이지


낙동강은 한강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강입니다. 남북을 합치면 압록강이 가장 길지만, 남한만 따진다면 한강이 497.25km 낙동강이 513.5km로 남한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경상도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낙동강은 다른 지방의 강들과 다르게 주변의 모든 강들이 한줄기로 모여듭니다. 

 

특히 전라도의 강들이 서해와 남해로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지는 것과 달리 경상도의 강들은 모두 낙동강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줄기를 만들어 남해로 흘러갑니다. 이것을 빗대어 호사가들은 전라도의 풍토가 자유분방하며 창조적인 반면 경상도는 일사분란하고 충성심이 강하다는 말로 비교하기도 합니다.

 

낙동강은 신라 이래로 ‘황산진’ 또는 ‘견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초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낙동강’ 또는 ‘낙수’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낙동강은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낙동강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최근에는 가야(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에서 따왔다는 설을 많이 믿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야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산 약용도 낙동강의 지명에 대해 가야(가락국)의 동쪽을 흐른다 하여 예로부터 낙동강이라 불렀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이나 연려실기술, 택리지에서는 모두 다른 유래를 이야기합니다.

 

예로부터 상주를 낙양이라고 불렀으며 낙양의 동쪽을 낙동, 서쪽을 낙서, 북쪽을 낙원 또는 낙상, 남쪽은 낙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상주에 가면 이런 지명들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또 낙동강은 상주 즉, 낙양으로부터 동쪽 30여 리 밖에 있다고 동국여지승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낙동강백 리 뱃길’이라고 할 때 그 기산점은 바로 상주의 낙동나루입니다. 이처럼 낙동강의 유래에 대하여 여러 기록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볼 때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보다는 상주 즉, 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란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낙동강은 천삼백 리를 굽이쳐 흐르는 곳곳에 조상들의 숨결을 묻어놓았습니다. 봉화와 안동을 지나는 곳에 무릉도인 주세붕과 청량산인 이황으로 하여금 사림의 토대를 닦도록 했으며 상주에 닿아 드넓은 곡창지대를 펼쳐놓았고 선산에 이르러서는 조선 최대의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택리지에서도 조선 인재의 반은 선산(오늘날 구미)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구를 지나 창원에 이르러 지리산을 휘돌아온 남강과 힘을 합치고 밀양을 거쳐 김해에 다다라 다시금 드넓은 들을 일구어낸 다음 유유히 바다에 몸을 섞습니다. 낙동강은 창녕을 거치면서부터 주변에 여러 개의 습지를 흩어놓아 생명의 보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소벌(우포늪)과 주남저수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과 철새들이 생명을 노래합니다. 낙동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이고 생명의 보고인 것입니다.
 
이 정부가 어떻게든 낙동강을 파헤쳐 대운하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멈추지 않는 속내를 공군전투기의 비행까지 방해해가면서 제2롯데월드를 허가한 정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세 명의 대통령이 15년 간이나 이어진 롯데측의 끈질긴 로비에도 불구하고 “NO!” 한 사안이 하루아침에 “YES!”로 바뀌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국가안보를 외치며 애국자연하던 수구보수인사들은 한마디 말도 없습니다. 

이 돌연한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불붙은 가스통을 짊어진 HID도 없고 자유총연맹도 없으며 구국의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공산주의도 팔아먹는다는 자본의 위력이 실로 경천동지할 만합니다. 그 자본가의 대표적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앉았으니 누가 감히 대적을 하겠습니까? 이제 바야흐로 이윤추구에 어떤 장애도 이적행위가 되는 시대가 온 듯합니다. 

이러한 때에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낙동강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태백에서 부산까지 순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예 답사가 아니라 순례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방법을 여러모로 알아보던 중에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대표 신정일)>라는 곳에서 태백 너덜샘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걷기탐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당장 회원가입을 하고 탐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1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떠납니다. 

<우리땅 걷기> 카페의 낙동강 도보기행 안내문에는 다음과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강 정비다, 운하다 말이 많습니다.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느낄 수 있는 낙동강 걷기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파비

※ 제1구간은 낙동강 발원지 태백 너덜샘(황지보다 10여 킬로 위에 있다 함)에서 봉화 청량산 언저리까지가 될 거 같습니다. 중간에 승부터널(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이곳 사람들은 가막굴이라고 함)이 있는데 이곳을 직접 통과할런지도 모르겠군요. 신정일 선생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에 보면 ‘까마득히 보이는 희미한 작은 점 하나를 쫓아 터널을 통과하는 살 떨리는 기분’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승부터널(가막굴)을 넘어 낙동강을 따라갔으면 좋으련만… 혹덩이들을 안고 그리로 가려고 하진 않겠지요. 이제 글도 올렸으니 봇짐 메고 떠납니다요.

ps; 낙동강 총연장이 513.5km, 한강이 497.25km로 낙동강이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입니다.(브리태니커 사전) 우리나라 전체(한반도)를 따지면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며 한강은 네 번째로 긴 강입니다. 그래서 위 경천대 사진 아래 첫 번째 문장 <한강에 이어  가장 긴 낙동강>을 <남한에서 가장 긴 강>으로 정정했습니다. 중대한 착오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확인해보지 않고 기술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도 조사,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는 경험으로 삼겠습니다.  

ps2; 정확한 유로연장(길이)에 대해 발표주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확인이 필요할 듯하고요. 어떻든 남한에서는 낙동강이 가장 긴 강입니다. 유량은 한강이 가장 많다고 하는군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이유인 듯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