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동사람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4.04.09 상남동사람들을 정글만리에 견주어 주셨어요 by 파비 정부권
  2. 2014.02.03 하늘에서 온 아들의 편지(상남동사람들) by 파비 정부권
  3. 2014.01.29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 by 파비 정부권

리영희 선생이 쓰신 책 <우상과 이성>에 나오는 한 편의 제목이 ‘농사꾼 임군에게 보내는 편지’인데요, 이 글의 주인공 임수태 위원장께서 낮에 여영국 도의원 사무실을 들르셨다가 저와 식사를 함께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부권아, 니 <정글만리> 읽어봤나?”

“아니요. 아직 못 읽어 봤습니다.”


저는 혹시나 ‘이놈아, 아직도 그 책도 안 읽어봤단 말이가?’ 하고 핀잔을 하실 것 같아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그가 쓴 <상남동사람들> 다 읽어봤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정글만리>와 흡사하게 닮아 있더노. 마치 꼭 <정글만리>를 먼저 보고 쓴 것처럼 그렇게 구성이나 형식, 내용이 비슷하더라. 정말 잘 썼더라. 내 보기에는 조정래가 쓴 책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아주 좋았다.”


조정래와 우리를 견주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나중에 대문호 되거든 술 사라”(이 말씀을 여기다 옮기려니 뒷목이 좀 근질거리기는 하네요. ㅎㅎ)는 말씀까지 곁들이셨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니다. 내가 빈말로 칭찬하고 그런 사람 아니다. 나는 늘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인 거 모르나. 진짜로 하는 말이다.”


아무튼 <정글만리>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임 위원장님께서는 “니가 따로 책을 살 필요는 없고 내 책 줄 테니 그거 읽어보면 될 거다” 하셨습니다. 참고로 <워킹푸어>도 임 위원장님께서 주신 책이었습니다. 아무튼 <정글만리>가 현재스코어 백만부 팔렸다는데 우리 책도 10만부는 팔려야 할 텐데. ㅠㅠ 좀 많이 팔아 주이소. ㅎㅎ


음~ 이거 광고성 글 맞습니다요. 그래서 아래에다 경남도민일보에 실었던 광고사진파일 붙임 합니당~  


ps; 페이스북에도 실었던 글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에 이어 역시 편집회의에서 삭제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합니다. 제5장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의 한 부분인데요. 자살한 편의점주가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너무 뜬금 없다는 평가가 있어서 편집회에서 삭제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도입부분을 함께 소개합니다. 역시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어느 청년자영업자의 죽음

  목차; 바닷가의 자살사건-조선소, 그리고 가로등-불안한 하루-불행의 전조-

           유혹(-하늘에서 온 편지)-사건의 전말-유배지의 밤


 바닷가의 자살사건

 

시내를 벗어난 자동차는 한참을 달리고 있었다시원하게 뻗은 산업도로 왼편 언덕 아래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바다는 푸른 사막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모든 빛을 집어삼킨 심연을 알 수 없는 막막함이 물과 뭍을 두 세계로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는 영원한 숙명적 장벽’ 건너 그곳에 있었다쪽빛 바다 위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빛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그 너머로 저 멀리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배 한척이 자그마한 점이 되어 떠있는 것이 보였다눈부신 태양 아래에서 영원히 잠든 것처럼 정지된 배는 무겁고 나른한 파도가 출렁이며 몸을 흔들어주지 않는다면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을 것만 같았다피에르 로티가 묘사한 것처럼 거대한 도살자 같은 바다는 붉은 노을에 젖은 잿빛 입김을 내쉬면서 가만히 누워 졸고’ 있었다실로 비할 데 없이 고요하고 온화한 평화가 한가롭게 노니는 심연 저 깊은 곳에서 낡고 오래된 성당 풍금처럼 은은하게 저음으로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멍하게 울리는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처럼 깊고 넓어서 자동차 엔진 소리조차 파묻혀 들리지 않았으며 꿈결처럼 모든 존재가 희미하게 증발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바다는 마법과도 같이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신비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다바다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거대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고 끊임없는 수태와 탄생의 신비를 자아내는 생명의 보고였다그리하여 모든 생명들은 최초에 바다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결국에는 모두 물속에 녹아들어 자신을 키워낸 원초적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었다거대한 바다는 온갖 것을 다 품고 있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으로 파도를 일으켜 웅장한 포효소리와 함께 바위에 부딪혔다하얀 포말이 연기처럼 흩어진다아물지 않은 상처투성이의 해변과 장중한 침묵으로 누워있는 해역을 바라보며 조유묵이 말했다.

아직 멀었나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

도로는 깨끗하게 잘 뚫려 있었다짜디 짠 소금기를 담은 해풍이 아스팔트 위를 달려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바람에 실려 온 소금기에는 묘한 여운이 스며있었다정신없이 달려온 일상을 벗어난 한적한 곳에서 겪게 될 상흔의 기억들이 거기에 알 듯 모를 듯 녹아있었다곧 이어 시가지의 육중한 건물들이 시야를 가리며 나타났다잠자듯 고요한 섬마을에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생겨난 도시였다자동차는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잿빛도시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스쳐가는 자동차를 배웅하고 있었다백미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도시를 쳐다보며 조유묵은 생각했다.

도대체 편의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다니그럼 여기 말고 이 섬에 다시 다른 도시가 또 있어 나타난다는 것인가?”

…………… 


(편의점주의 자살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은 한적한 바닷가에 있었습니다. 도입부와  이 글 사이에 편의점주의  어머니와 고인이 편의점을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 편의점 운영과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 등이 이어집니다.)





하늘에서 온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잘 있습니다. 여긴 너무나 평온하답니다. 어머니가 계신 그곳에서 이곳을 바라본다면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보일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실제로는 너무나 빨리 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몰라요. 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이미 백년도 더 전에 미국의 어떤 유명한 과학자가 그걸 밝혔다지요? 아마도 이곳에서의 하루는 어머니가 계신 그곳의 시간으로 보자면 1년은 족히 되겠지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곳에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곳에선 너무나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그걸 직접 보여드릴 수 없다니 정말이지 한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답니다.


어머니께서는 저를 위해 아직도 울고 계실 테지만, 저는 어머니가 더 걱정이에요. 어머니, 이제 울지 마세요. 저는 너무나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요. 이곳은 특별한 슬픔도 없고 특별한 기쁨도 없는 곳이에요. 누구에게 상처 줄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없죠. 그래서 혹자에게 지루할는지는 몰라도 그러므로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에요. 그러나 제게 오직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어머니뿐이랍니다.


옛날 토마스 모어란 사람이 유토피아란 책을 써서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말했었지요. 사전이 해석하는 대로 말하자면, 유토피아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의 이상국이에요. 토마스 모어란 분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로서 대법관이었는데 영국 왕이 이혼하고 새로 다른 여자와 재혼하는 것에 반대하여 끝까지 이를 승인하지 않다가 결국 목이 잘렸다고 하더군요.


당시는 가톨릭교회법이 그랬다고 합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혼과 재혼은 금지되었던 거지요. 정말 고집이 센 분이었어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단두대에 서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니 놀랍고도 존경할만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헨리 왕은 그를 죽이고도 모자라 반역의 문에 한 달 동안이나 그의 목을 걸어 놓았었다니 정말 포악한 임금이었지요.


그러나 아무튼 그로 인해 우리는 토마스 모어란 분이 얼마나 신실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어요. 그의 말이라면 온전하게 사실이라고 믿어도 좋을 만큼. 그러므로 제가 있는 이곳은 사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가 아니라 어디에든 존재하는 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의 의도처럼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제가 너무나 평온하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충분히 믿으셔도 좋아요. 저는 너무나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니가 걱정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어머니를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것이랍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가 얼마나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군요. 아무래도 저는 어머니와 달리 사는 세계가 달라서 오히려 어머니를 괴롭게 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러나 어머니. 저는 그곳에서 보았을 때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고자 해요. 그것이 제가 이곳에서 얼마나 평안하게 잘 지내는지를 보여드리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우리가 처음에 편의점 사업을 하고자 마음먹고 가게를 구하러 다닐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루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지요. 어머니가 저에게 얘야, 너는 편의점이든 휴대폰 가게든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보았지 않니? 직접 그런 가게라도 한번 해보지 않으련?” 하고 말씀해주셨을 때 정말이지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았답니다


지나치게 비싼 임대료 때문에 잠시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조선소가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아늑한 곳에 있는 아담한 가게를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작업복을 입고 조선소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은 또 얼마나 늠름하게 보이던지…….

어머니와 제가 함께 만났던 본사직원도 그렇게 말했었지요.


여긴 정말 최상의 자립니다. 어떻게 이런 자리를 구하셨는지 정말 용하십니다. 선생님께서 안 하시겠다면 제가 하고 싶군요.”


어머니께서 평소에 그러셨지요. 사람이 망하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라고요.


세상을 돌아보렴, 건실하게 제 분수에 맞게 살아간다면 큰일이 일어날 이유가 어디에 있겠니? 다들 지나친 욕심 때문에 집안도 망치고 몸도 망치는 거란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었지요. 그런데 그날만큼은 우리도 탐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군요. “월수입 600만 원 보장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저도 그만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충고를 잊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자책하지 마세요. 그건 어머니 탓이 아니랍니다. 모든 것이 이 못난 아들 탓이지요. 제가 제대로 직장만 잘 구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어머니가 어떻게 그런 무모한 결정을 하셨겠습니까? 모든 것이 제 탓이에요.


그러니 어머니, 절대 슬퍼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오로지 크신 자식사랑을 가졌던 죄밖에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요. 제가 잠시 부산에 일 보러 간 사이에 어머님이 제 대신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모든 준비를 해놓으셨을 때, 저는 실로 어머님의 크신 은혜를 가슴 깊이 느꼈답니다.


,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을 갖게 되었구나. 그것도 내가 주인인 직장이야. 열심히 일해서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하나뿐인 여동생 잘 보살피며 멋지게 살아볼 테야.”


그렇게 다짐하며 희망 가득한 미래의 설계도를 마음속에 그려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는 정말 행복했었지요. 어머니도 사랑하는 여동생 분이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몇 개월이 제게는 정말 꿈결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3개월뿐이었지요. 사실은 그 3개월도 불행의 전조를 보여준 것 말고는 그 어떤 밝은 전망도 우리에게 준 것이 없었지만, 아무래도 콩깍지가 씌었던 가봅니다. 사랑에 눈이 멀 듯이 우리는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탐욕이라고 말하기엔 우리의 욕심이 너무 소박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어머니와 분이를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꿈, 그게 제 탐욕의 전부였거든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바람소리 말고는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을씨년스런 그 편의점을 혼자 밤새워 지키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본사직원은 왜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그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우리에게 다른 장소를 알아보라고 하지 않았을까? 왜 매달 600만 원 이상의 순수익이 보장된다고 큰소리를 쳤을까?”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저는 정말 그가 미웠습니다. 어떨 땐 정말이지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답니다. 그도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었어요. 그도 이 사막과도 같은 인생의 벌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지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가련한 생명체일 뿐이었죠. 산다는 것은 고통이니까요. 그리고 그에게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 그는 스스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건수를 올려야 했을 거예요.


이른바 실적이라 부르는 것이죠. 그들 점포개발 영업사원들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이곳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모든 것이 훤하게 다 보이더군요.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 사기 쳐서 등쳐먹고 사는 그들은 제가 있는 이곳에 올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들이 훨씬 더 가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그들이랍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제가 그곳에서 550여일 가량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울 때 유일하게 저를 찾아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제 스스로의 힘으로는 손톱만큼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는 것을 저는 그 550여 일의 밤마다 뼈저리게 느꼈고 깨달았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조선소 정문으로 뛰어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편의점 매장에 줄을 세우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그것은 그저 망상일 뿐이었지요.


대낮보다 더 환한 조명 아래 앉아서 깜깜한 바깥을 쳐다보면 어떨 땐 제가 말로만 듣던 지하 취조실에 갇혀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유리창 너머 저곳에서 누군가 제가 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이럴 때, 이런 나날이 하루하루 쌓여갈 때 저의 두려움도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느 날 제게 그러셨지요.


얘야, 밤에는 손님도 없는데 힘들면 야간에는 문을 닫지 그러니?”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는 어머니가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러나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아니 한 것이 아니랍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 불을 켜놓고 밤새 가로등처럼 지키고 서있는 것이 저로서도 죽기보다 힘든 일이었거든요. 수익이 나오기는커녕 도리어 밤새 켜놓는 램프의 전기세도 나오지 않는 적자의 노동이 제게는 고문처럼 아팠습니다.


하루에 도 몇 번식 최소한 야간영업만이라도 그만둬야지 둬야지 하면서도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만약 하루라도 편의점 간판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 벌로 강제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던 때문이지요.


이곳에서 듣자하니 제가 죽고 난 이후에 현대판 지주-소작 관계다 뭐다 해서 난리들이던데, 왜 꼭 그들은 누군가가 죽어나간 뒤에야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요? 왜 좀 더 일찍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머니. 저는 강제노동을 당한 것이에요. 억지로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흔히들 말하는 강제노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답니다. 강제노동에 대해서 사전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지요.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억압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행해지는 노동을 말한다.”


그러나 제가 했던 강제노동은 정신상, 신체상의 억압뿐 아니라 경제적인 억압과 착취까지 병행하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강제노동을 계속 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만 했어요. 말이 안 되지요? 어머니. 사실이에요. 제가 진즉에 어머니에게 말씀 못 드린 것은 어머니가 너무 마음 아파하실까봐 걱정이 되어서였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랍니다.


야간영업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였어요. 저는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사채를 빌려 써야만 했답니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 수입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는 밤에 가게 문을 열어놓는다면 마이너스가 나는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수학이지요. 손님은 없어도 불은 켜놓아야 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아야 하니까요. 편의점은 그래야 하니까요.


그리고 또 아무리 어려워도 알바 직원들 월급은 떼먹기 싫었어요. 정말이지 그건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실은 알바 출신이니 알바의 마음은 알바가 알아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독사과인 줄 알면서도 사채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 저도 보았답니다. 이곳에서도 그곳 사람들이 보는 신문을 가끔 볼 기회가 있어요. 어느 신문사의 기자가 마지막에다 이렇게 써놓았더군요.


유족들이 우는 와중에도 그의 휴대폰으로 대부업체의 독촉문자들이 연이어 날아왔다. ‘입금하지 않을 시 독촉장이 발송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얼마나 원통하셨을까요? 아들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장에서 아들 휴대폰으로 비정하게 날아드는 채무독촉 문자메시지를 보는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어머니. 저는 이곳에서 다 보고 있었답니다. 어머니의 그 찢어지는 가슴을 저는 다 이해하고 있었답니다.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기를 써보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동생 분이가 마음에 걸립니다. , 어째서 어린 동생으로 하여금 연대보증인이 되게 했을까요? 분이에게는 어떻게든 피해가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어요. 그리하여 슬프지만 저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이제 더 이상 울지 마세요. 어머니가 자책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어머니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단지 끝을 알 수 없는 자식에 대한 사랑뿐이랍니다. 모든 것은 제가 못난 탓이지요. 제가 제대로 된 직장만 얻을 수 있었다면 어머니에게 이토록 큰 상처와 고통을 안겨드리진 않았을 터인데, 한스럽군요. 그리고 그 본사직원 탓도 아니에요. 그이도 원망하지 마세요. 그 사람도 실은 우리처럼 위로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랍니다.


저는 편의점을 시작하고 두 번째 맞는 추운 겨울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날도 오로지 우리 가게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을 뿐 사방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습니다. 그날은 하늘에 별들도 모두 숨어버려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요.


오래된 습관으로 저 멀리 어렴풋이 윤곽만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오랫동안 해왔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그걸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지요.


이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이제 지쳤어. 나는 이제 쉬어야 해. 거추장스런 낡은 껍데기만 벗어버린다면 나는 해방될 수 있을 거야. 그건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이야.”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저는 그때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적이 그 누구도 아니고 바로 거대한 자본, 대기업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에요.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죠. 그들은 제 피를 다 빨아먹고 마침내 제 뼈를 발라서 갈아 마실 위인들이죠. 제 몸이 갈기갈기 찢겨 공중에 흩어지고 나면 그 다음엔 어머니와 분이에게 달려들 것이 분명했어요.


그래서 결심했어요. 제가 떠나기로요. 제가 모든 것을 안고 죽는다면, 설마 그때도 그들이 모질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무엇보다 무서웠어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군요. 죄송해요, 어머니.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정말 이기적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편의점 냉장고 뒤편 자그마한 공간에 숨어 술을 마실 땐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지더군요.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왔어요. 번개탄을 피웠어요. 양주에 수면제를 조금 탔는데 술맛은 그런대로 괜찮더군요. 약을 탔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어머니와 제 희망이 꽃필 줄로만 알았던 그곳, 편의점 한구석에서 저는 생을 마쳤습니다.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 여동생 분이와 헤어지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저는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고 떠나온 제가 있는 이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기선 그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요. 실업자도 없고 비정규직도 없답니다. 저처럼 회사에서 잘리고 다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전전하는 사람들 꼬드겨서 피 빨아먹는 가맹점이 없는 것도 물론이고요. 저는 이곳에서 완전한 자유인이랍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저는 자유인으로 간주되었었죠. 하지만 진정한 자유인은 아니었어요. 이곳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에서의 저는 노예였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머니. 13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24시간을 편의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생을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러면 혹자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건 어디까지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었냐고요. 옛날 프랑스에 루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스스로 노예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


루소가 살던 시대는 아직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지도 않았고 지금처럼 가맹점이 있던 시대도 아니었으므로 그가 말한 노예란 신분적으로 예속된 전통적 의미의 노예를 말하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노예는 겉보기에는 매우 자유로운 인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루소의 노예보다 그 참상이 훨씬 참혹하답니다. 전통적 의미의 노예는 육신만을 주인에게 구속당하면 되었지만 오늘날의 노예는 육신뿐 아니라 사채까지 빌려 주인을 위해 봉사하다가 마침내는 완전한 파멸까지도 감수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의 존재를 인정했다지요? 시민으로 불리는 자유인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노예의 존재가 필수적이었거든요. 노예가 대신 힘든 일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유인들은 광장에 모여서 토론도 하고 사색도 하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완전한 자유란 시간을 자유롭게 허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그 허비할 수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정치적 자유를 위해 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것은 노예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만들고 유지되는 그들만의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노예가 상당히 비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노예가 병이 들면 주인은 힘든 일을 시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큰돈을 들여 노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성심을 다했다는 거지요. 어디까지나 그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테지만요.


그러나 어머니. 오늘날의 현대판 노예는 어떤가요? 자유로운 노예라고도 할 수 있는 우리는 한번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 같은 존재일 뿐이어서 병이 나든 말든 상관조차 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도리어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계약에 정해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위약금을 요구하지요.


루소가 말한바 노예계약은 도덕적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다라는 정신에 따라 스파르타쿠스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답니다.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였다면 그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야라고 하면서 크게 화를 내었겠지요.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란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에요. 어떤 사람에겐 노예의 존재는 민주주의의 적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노예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공상일 뿐이었어요. 제겐 그럴 힘도 의지도 없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혁명은 오로지 제 자유의지에 따라 제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아무튼 저는 이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곳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쇠사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곳에선 어떤 차별이나 경제적 착취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이곳은 실업이 없어요. 비정규직도 없고요. 그런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누구나 원한다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죠. 그러나 대신 누구든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은 일할 수 없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일할 기회를 잃게 되니까요. 그리고 주말은 반드시 쉬어야 하죠. 이것들은 의무사항이에요.


말하자면 자유인에게 부과되는 부자유한 속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부자유를 통해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필요할 때 원하는 사람에겐 안식기간도 주어지는데요. 저는 주로 그 시간들을 아무런 계획 없이 허비하는데 쓰고 있어요. 저는 그거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는데, 여기에 와서야 그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 거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보세요.


분이와 함께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정말이지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바로 어머니와 분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그리움보다 더 큰 고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나 어머니. 그것만 빼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가 걱정이지요. 제가 전하는 이 편지를 어머니가 받아볼 수 있어서 어머니의 걱정이 덜어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유일한 제 걱정이 없어지는 것이므로 이곳에서 저는 진정으로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겠지요.


그러므로 어머니. 아무런 걱정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만나게 될 그날을 기약하며 서로 각자가 사는 곳에서 열심히 살기로 해요. 저도 그러겠습니다. 분이에게도 제 사랑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부디 건강하세요. 이제 저는 너무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오로지 어머니의 건강만을 생각하세요. 그러면 저는 더없이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래 글은 오는 2월 26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간하는 <상남동사람들> 편집회의에서 잘라낸 부분입니다. 즉 책에는 없는 내용이죠. 그래서 미리 이렇게 소개합니다. 약 70여 페이지가 절삭됐는데 이외에도 몇 개의 에피소드가 더 있습니다. 그것도 <상남동사람들> 출판기념회 전에 맛뵈기로 하나씩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 <파업>의 주인공은 현재 버스운전사입니다. 그는 10년 가까이 (배달)자영업을 하다 얻은 뼈가 썩어들어가는 상처를 수술한 이후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출판기념회 당일은 그가 오후반이어서 저자와의 대담에 나오기가 어려운 형편이지만 근무를 조정해서라도 꼭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책 속에는 그가 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뒷모습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만, 아직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출판기념회 웹자보를 올리오니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라 마지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 2014년 2/26일(수) 18:00 창원사파중학교 체육관 (주차는 운동장) 


파업


김휘성은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여섯시였다. 새벽까지 마신 술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 그렇군. 어젯밤에 최성규를 비롯한 공작과 친구들이 다녀갔었지.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열흘 만에 파업현장에 나타난 그들의 양 손에는 술과 안주가 한가득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최성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매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싸우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밖에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늦었지만 우리도 동참하겠습니다.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 그렇게 힘을 합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성규는 민추위(민주노조추진위원회) 회원이었고 조직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그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파업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며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파업이 세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름 전이었다. 민추위 회원이었던 하봉연이 이른바 위장취업자였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회사는 그를 즉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닷새 후에 해고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에 십여 명의 민추위 회원들이 식당에서 식판을 집어던지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우발적이었던 이 사건은 삽시간에 파업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지게차가 컨테이너박스를 실어오고 공장 정문은 거대한 바리케이드로 봉쇄됐다. 검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쇠파이프와 성난 함성에 쫓겨 관리직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어서 공장 울타리에는 붉은 깃발들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호들이 적혀있었다어용노조 퇴진 민주노조 건설. 위원장 직선제 쟁취.’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와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고맙소, 동지들. 우리 힘을 합쳐 민주노조 반드시 쟁취합시다.”


김휘성은 최성규의 손을 굳게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는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란 말이 주는 뉘앙스에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보다는 10일 만에 나타난 동지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민추위에서 홍보부장 역할을 맡았던 그는 최성규와는 막역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생각에 김휘성을 비롯한 파업노동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 300여 명이 넘던 노동자들의 대오는 날이 가면서 하나둘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떨어져나갔다. 이제 겨우 7, 80명 남짓만이 남아 곧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최성규 등이 방문해준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에 크게 고무된 김휘성 등은 파업 첫날의 의기와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3월의 밤이슬은 아직 차가웠지만 본관건물 2층 사장실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자자, 한잔들 합시다. 그동안 술 구경도 못했지요? , 이리들 둘러 앉읍시다.”


최성규가 말했다. 그들이 들고 온 봉지에는 소주며 나폴레옹, 캡틴 큐 같은 술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오징어, 새우깡 따위의 안주꺼리도 그득했다.최성규의 제안에 따라 공장 울타리 초소를 지키고 있는 정방대원들에게도 술과 안주가 전달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살벌한 파업현장은 뜻밖의 방문으로 인하여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불콰해진 김휘성은 애리조나 카우보이도 한곡 멋들어지게 뽑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일 다시 오겠다는 최성규 등을 배웅하고는 곧 사장실 바닥에 누워 얼마만인지 모를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결처럼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잠에서 깼던 것이다.


김휘성은 순간적으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지만 그는 번개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재빨리 잠자리 옆에 놓아두었던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를 맞이한 풍경은 노란 물결이었다.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화해 있었다. 그 노란색 물결 위에 몇몇 자그마한 검은 점들이 흩어져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와장창…….”


은빛 쇠파이프가 허공을 가르며 공장 마당에 세워진 승용차들을 가격했다. 새벽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회사간부들이 버리고 간 자동차 유리 파편들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며 비명을 토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검은 점들은 정문을 지키던 정방대원들이었다.


구사대다! 구사대가 쳐들어왔다!”


공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방대원들 중 일부는 본관건물 2층으로 도망쳐 들어왔고, 나머지는 정문 반대편으로 죽어라고 내달렸다. 불과 1,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노란색 물결은 쓰나미처럼 공장을 집어삼켰다.


본관건물 2층 사장실만이 거대한 파도 위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흔들거렸다.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에는 여명에 번쩍거리는 40여개의 쇠파이프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구사대의 1차 공장 진입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완전히 고립된 사장실은 한차례 태풍이 쓸고 지나간 뒤의 들판처럼 먹먹한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에 수천 명―실제로 나중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800명이었다―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란 화이바를 쓴 구사대는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공장장이었다. 그는 사장실이 마주보이는 광장(나중에 이곳은 민주광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에 구사대를 2열로 전개시켰다


그들은 모두 학생용 가방 크기의 포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주먹 크기의 돌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두 개의 소화전으로부터 소방호스도 길게 뽑아 연결했다. 별도로 편성한 일단의 노란 화이바 부대가 본관 건물 구석에 사다리를 걸치고 2층 지붕위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본격적인 2차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수천수만 개의 돌과 소방호스로부터 뿜어지는 물대포가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을 향해 발사될 것이었다. 구사대의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전세가 결정된 전투에서 후방군으로 편성돼 뒤로 빠진 많은 수의 노란 물결들이 대오를 지어 서서 마치 좋은 구경이라도 한다는 듯이 담배를 피워 물고 저희들끼리 키득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김휘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치 형틀에 묶인 사형수가 자신의 목을 자를 칼을 벼리고 있는 망나니를 지켜보고 있는 심정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으리라.


휴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장장이 앞으로 나섰다. 포마드를 발라 뒤로 빗어 넘긴 그의 머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그는 마치 전쟁의 신 아레스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했다. 양손을 허리에 얹고 두 다리는 한껏 벌려 마음껏 위세를 부린 모습이었다. 그가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전투준비!”

“1열 앞으로!”

소방호스 사격준비!”

“1열 던져!”

소방호스 사격 개시!”

“2열 앞으로!”


노란 물결 속에서 시커먼 돌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우박처럼 쏟아져 날아왔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떼들이 태양을 가리며 새까맣게 날아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차앙…… 창…… 차창.”


심장을 찢을 듯 미친 듯이 울어대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이어 후두두… 퍼벅…… 퍽하고 소리를 내며 시커먼 돌들이 사장실 양탄자 위에 떨어졌다. 뒤이어 두 개의 소방호스로부터 콘크리트 벽이라도 부수어버릴 것 같은 물세례가 쏟아졌다. 사장실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아비규환.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을 헤치며 검은 옷들은 허우적거렸다. 여기저기서 으악하는 비명이 터졌다.


쾅……콰쾅.”


그러더니 천장 위로부터 무언가 둔중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천장이 일부 깨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노란 화이바 하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구사대 중 하나가 발을 헛디뎌 지붕 위에서 사장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도 무릎까지 차오른 물바다가 그에게 구명튜브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일어서려는 찰나, 성난 검은 옷들이 그를 덮쳤다. 쇠파이프가 그의 몸 위에서 춤을 추었다. 김휘성은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사람 하나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검은 옷들 사이에 끼어들며 외쳤다.


그만 두시오, 그만 둬! 이놈은 내버려두고 일단 사장실 문부터 방어하도록 하시오!”


그때 김휘성의 눈가에 번쩍 하고 하나의 섬광이 비쳤다. 뜨뜻한 기운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피였다. 오른쪽 눈두덩이 위에 구사대가 던진 돌이 명중한 것이다.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는데 다시 한 번 소리가 나더니 섬광이 일었다. 뒤이어 흘러내리는 뜨뜻한 핏물. 김휘성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생각했다.


이러다 우리 다 죽고 말 거다. 이왕 죽을 바에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그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살을 헤치며 사장실 한쪽 구석에 쌓아둔 방어용 시너 통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약 오십여 개의 시너 통이 가지런히 적재돼 있었다. 그 중에 한통을 들어 뚜껑을 땄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 들어 올리고 그대로 뒤집어썼다. “촤아아하고 신나 흐르는 소리에 이어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이 매캐하다. 그리고는 다시 시너 한통을 들어 왼팔에 끼고 사장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불을 켜고서 높이 들었다.


돌 던지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계속하면 다 죽는다!”


일순 양편 모두에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커다란 배의 닻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작살을 들고 2층 사장실 입구까지 올라와 출입문을 부수고 있던 일단의 구사대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지 황급히 뒤로 물러나 멀찍이 달아났다.


맨 앞에서 작살을 들고 문을 부수던 화이바는 특이하게도 노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는데 마치 악어가죽처럼 울퉁불퉁한 철갑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구사대들도 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경찰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무튼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투석전을 위해 열을 지어 서있던 구사대들 중에서도 그 누구도 섣불리 앞으로 나서서 돌을 던지려는 자가 없었다. 소방호스도 멈췄다. 그러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공장장이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 이 새끼들아. 뭐 하는 거야. 빨리 던져.”


공장장은 다시 김휘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외쳤다.


어이, 소방호스. 저 새끼를 조준해서 뿌려. 빨리.”


20133. 아직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자욱한 안개가 검은 아스팔트 위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거리를 달리며 김휘성은 담배연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뿜었다. 승용차 앞으로 달려드는 안개가 마치 하얀 소복을 입고 나풀거리며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뿌연 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공중으로 피어올랐다가 열려진 창문 틈으로 쏜살같이 달음박질쳤다.


벌써 25년 전 일이군.”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스물다섯 청년이었던 그의 나이가 어느덧 지천명에 이르렀다. 25년 전 민추위의 파업은 처절하게 깨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43명은 시너와 소화전에서 뿌려진 물이 뒤범벅이 된 물에 홀딱 젖은 채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러나 민추위는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2명의 위장취업자를 빼고 모두 훈방된 41명이 다시 노조원들을 규합해 재차 투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노조사무실 앞에서 어용노조 위원장 퇴진을 외치며 노조원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가자 화가 난 공장장은 농성노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위원장의 작업복 가슴에 달린 명찰을 뜯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이렇게 악을 썼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위원장이야? 위원장이 이런 것도 하나 해결 못해? 너는 새끼야, 위원장 자격이 없어.”


노조원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위원장은 한시간만에 사퇴서를 던져버렸다. 대의원들도 일괄 사퇴했다.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노조위원장은 사퇴하기 전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노조규약을 개정해 간선제이던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실로 졸지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날 오후 열두 명의 민추위 위원들이 그들이 물러간 노조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위원장 선거에 누구를 내보낼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네가 해라” “네가 해라하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그 중 한 위원이 비밀무기명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각자가 지명하는 후보 이름을 써넣고 가장 많이 나온 사람을 위원장후보로 추대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김휘성이 다섯 표, 이영수가 네 표, 최의선이 세 표가 나왔다. 김휘성은 민추위가 추대하는 노조위원장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차로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업 주동 등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으며 차가운 밤거리를 떠돌다 마침내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16개월을 살았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는 택시운전사가 되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간 핸들을 잡고 도시의 거리를 누볐다. 택시운전사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생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2년 만에 투자한 돈을 다 털어먹은 그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월급 30만 원에 15일 운행하면 사납금 내고 하루 10만 원 내외가 남아 월 180만 원 정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택시업계의 사정은 어려워졌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에 그는 택시운전사를 그만 두고 자영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가 자영업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보다는 수입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또 자기계획 아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8년 만에 자영업시장으로부터 스스로 퇴출되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만큼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자영업은 큰돈도 벌 수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게다가 철가방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의 엉덩이 아래쪽 뼈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옛날 파업 당시에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부위가 힘든 배달일 때문에 도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이상 돌솥을 철가방에 넣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일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이번엔 버스운전사였다. 마침 택시운전을 할 때 틈틈이 시간을 내 대형면허를 따놓았던 것이다. 깜깜한 이 시간에 그는 버스를 몰기 위해 시내버스 종점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새벽 다섯 시.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어둠이 점령한 거리엔 붉은 가로등만이 유령처럼 검은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는 뿌연 안개들의 행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휘성은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인 담배를 입술로 가져갔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인 다음 푸우 하고 내뱉는다푸른빛이 감도는 흰 담배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칼을 타고 피어오르다 자동차 천장에 부딪힌 다음 아래로 떨어지며 마치 거리를 떠도는 유령에 이끌리듯 차창 밖으로 쏜살처럼 달음박질친다.


그는 크게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반 출근을 위해 새벽길을 달리다 도로 위에 떠도는 자욱한 안개를 만날 때면 가끔 이렇게 까마득한 옛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푸른빛이 감도는 연기를 내뿜으며 나직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벌써 25년이나 세월이 흘렀어.”



바람


그것은 바람이었다. 아니 필연적으로 불어오고야 말 계절풍이었다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그것은 초여름에 몰아닥친 비바람이었다. 김휘성이 2년여의 수배와 그에 이은 1년 반가량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의 품에 안겼을 때,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달라져 있었다.  


······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