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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2 세상엔 절대적 선도 악도 없다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3.31 별뜻없이 낙동강 명예를 훼손했네요 by 파비 정부권 (2)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세상엔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없다
오후 7, 구미종합터미널에도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초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3분 안에 도착할 테니 터미널 옆 주유소 앞에 서있으란다.


잠시 후 낙동강 변 도로에 비상등을 깜박거리며 달려오는 카렌스 승용차가 보인다
. 이제 출발이다.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으로 가는 것이다.


초석님은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회원이다. 내일은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지만 치과의원 문도 닫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대화를 통해 그가 신정일 선생의 열렬한 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정일 선생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마르는 줄 몰랐다.

 

주말엔 쉬어야지요. 우리나라도 대부분 주 5일 근무가 정착되어 가는데, 그래도 토요일 하루 쉬니까 간호사들은 좋아하겠네요?

, 좋아하지요. 그치만 돈이 안되잖아요. 주말만 되면 이러이 돌아댕기니 우리 마누란 별로 안 좋아해요.

 

자동차는 시원한 고속도로를 달려 금새 안동에 닿았다. 구미에서 안동까지 이렇게 가까운 거리였던가. 이미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에 점령당해 있었다. 차는 도산서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자면 안동시내를 지나가야만 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다리를 건넜다.

 

강은 저 아래 어둠 속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제아무리 어둠이 빛을 가린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의 기질마저 감출 수는 없는 일이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줄기가 대지를 어루만지며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변을 밝히는 불빛들이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 그런데 신호등들이 모두 황색점등 일색이다. 깜박거리는 노란색 신호등 아래로 차들은 잘도 지나다닌다. 초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익숙한 솜씨다. ~ 조수석에 뻗은 두 다리에 쥐가 날 것 같다.

 

다시 어둠에 점령당한 시골길을 달린다. 지금 우리가 가는 목적지는 농암종택(조선 중기 문신 농암 이현보의 종가)이다. 그곳에 <낙동강역사문화탐사>의 저자 신정일 선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일행들의 낙동강답사(안동지역)에 강연을 한다고 했다.

농암종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 안동댐에 수몰되면서 옮겨온 이곳이 아직도 안정이 덜 된 듯했다.

이미 시간은 9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초석님은 걱정이 되는 듯 신정일 선생에게 연신 전화를 걸어 조금 늦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 이거 선생님 추운데 많이 기다리시겠네. 에이, 농암종택 거 군불도 뜨끈뜨끈하게 때 놓았을 텐데 방안에 가만 계시면 되지 뭐. 혼자서 중얼거리며 달리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그러더니 깜깜한 시골길에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이 길을 제집 드나들 듯 했을 초석님도 시간에 마음을 빼앗겼던지 길을 잃고 말았다. 깜깜한 비포장 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경운기 한대도 겨우 지나갈 것처럼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우리는 어렵사리 차를 돌렸다. 다시 되돌아 나와 국도변에서 보니 농암각자(聾巖刻字)라고 쓰여진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그걸 보고 잘못 길을 들은 것이었다.

 

, 저걸 보고 헷갈렸네. 길도 진짜 비슷하게 생겼습디더. 그래도 좋은 거 하나 알았네요. 저 안에 어디 농암각자가 있는 모양인데 다음에 꼭 한 번 와봐야겠심더. 초석님의 사투리는 속된 말로 완전 오리지널이다. 의사보다는 농군 냄새가 더 물씬한 것이 정겹다.

 

다시 1Km쯤 더 내려오니 이번엔 진짜 농암종택이라고 쓴 이정표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꺾어 드니 정말 아까 잘못 들었던 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한참을 달리니 낙동강이 보인다. 낙동강 변을 달리는데 낭떠러지 아래 물살이 제법 세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검은 물결이 무섭기까지 하다.

 

드디어 농암종택 도착. 대문 앞 공터에는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승용차가 번쩍거리고 있었다. 최신형 제네시스도 보이고 대체로 고급차들이다. , 그러고 보니 오면서 들은 대로 이곳에는 7명의 환노위 국회의원들과 봉화군수와 안동시장이 있을 터였다. 그리고 수행원들도.

 

이분들은 오늘 안동과 봉화 일원의 낙동강을 직접 발로 걷고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강문화 전도사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훌륭한 강연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분들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결심했을까? 글쎄 그게 가장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강연도 모두 끝나고 왁자지껄한 담소 소리가 담장을 넘어왔다. 고색창연한 고가의 적막을 기대했지만 부질없는 바람이었다. 이미 국회의원들과 이 고을 수령들과 수행원들이 모여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기대는 애초부터 말았어야 했다.

 

바깥채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앞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하늘의 별이 유난히 맑게 빛났다.

대신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 있었다. 검은 어둠 위에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맑은 대낮에 보는 하늘보다 더 푸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하늘은 머리 위에 쏟아질 듯 지척에다 별들을 매달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별들이 더없이 하얗게 빛난다.

 

사랑채와 긍구당(肯構堂)등을 둘러본 다음 이 저택의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로 가보았다. 안채는 대청에 매달린 불빛만이 사람이 산다는 것을 증거할 뿐 조용하다.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위해 그저 묵묵히 안방만 지키기로 한 것일까.


다시 사랑채 마당으로 나오니 신정일 선생이
MBC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찬스다! 싶어 얼른 카메라를 들이댔다. 항상 자동모드만 고집하는 내 카메라는 번쩍 플래시를 터트렸다. 카메라 기자가 움찔하며 손을 들어 제지하며 당황한다.

 

이런, 이럴 때 플래시를 꺼야 하는데 할 수 없지. 이미 지나 간 일. 나 때문에 텔레비전에서 인터뷰 하던 얼굴에 갑자기 하얀 불빛이 지나가면 민망하고 미안해서 어쩌지? 초석님이 옆에서 훈수를 둔다.

 

이런 데는 플래시 터트리면 안됩니더. 오토에다 놓지 말고요. 항상 플래시발광금지 모드에다 놔 두이소. 사람들이 잘 모르고 무조건 오토에다 놔 두거든예~. 그런데 플래시발광금지가 오토하고 똑같심니더. 플래시만 안 터진다 뿐이지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차 안에서 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는 것이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서 낙동강 살리기다 운하다 말들이 많은데, 물론 나는 대운하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쨌거나 요즘처럼 낙동강에 많은 관심을 보인 시절이 어디 있었나? 그러니까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없다는 말이 맞는 말이제. 

 

그러고 보니 낙동강이 오늘날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랬다. 매년 6월 깨나 ‘낙동강전선’이란 피어린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 뿐 낙동강을 낙동강으로 살펴준 적이 제대로 있었던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악이란 것도 절대적인 선이란 것도 없다는 그 말.  나는 철학적 심오함이 숨겨진 듯한 그 말의 깊은 뜻을 아직은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낙동강과 함께 길을 걸으며 서서히 그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멀리 철암역의 불빛이 보인다.

 

쓸쓸한 적막 속에 아스라히 빛나는 역사의 불빛. 언젠가 읽었던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느낄 수 있는 불빛이 아마 저런 것이었으리라.       파비

 

사평역에서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낮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를 걷는다" 도보기행을 떠나 강원도 태백과 경북 봉화의 산골오지를 걷다 보니 인터넷이나 신문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제1구간 기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떠나기 전 제 블로그에 써두었던 글이 경남도민일보에 실렸군요. 그런데 그만 중대한 실수 하나를 하고 말았습니다. 유로연장 기준으로 남한에서는 낙동강이 가장 긴 강인데 한강이 가장 길고 낙동강이 두 번째라고 해놓았던 것입니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역사적 발원지이고, 실제 최장발원지는 10여 킬로 위에 있는 너덜샘)에서 안내도반이신 신정일 선생으로부터 낙동강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 아차 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따지면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지만, 남한에서만 따지면 가장 긴 강이었거든요. 우리나라의 4대강은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이며 길이도 써놓은 순서대로입니다. 본의 아니게 한국 제1의 강 낙동강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는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 해도 신중하게 조사하고 검토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울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게 된 점에 대하여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래 글은 "낙동강 천삼백 리를 걷는다" 제1구간에 참여하고 난 이후 <사단법인 우리땅걷기> 까페에 올린 글입니다.           파비

존경하는 신정일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들, 영광이었습니다. 다정다감이 넘쳐나는 <우리땅걷기> 회원님들과 함께 걸었던 낙동강 제1구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눈보라가 뺨을 적시던 아름다운 석포리 물길, 꿈결 같은 승부역,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걸었던 가막굴, 승부역에서 양원역까지 환상적인 철길여행, 즐거웠습니다.

 

아직 그 감동이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에서 영원한 추억으로 남겠지요. 사진을 무려 7백 장이나 찍었답니다. 그러나 쓸만한 사진은 거의 하나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낙동강을 위해 똑딱이캐논450으로 업그레이드 했건만, 역시 제게는 똑딱이가 어울리나 봅니다. , 그리고 DSLR은 배보다 배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구미에서 치과를 운영하시는 초석님. 정말 고맙습니다. 초석님이 아니었던들 멀고 험한 태백산을 어찌 올랐겠습니까. 초석님이 아니었던들 오늘 이 영광과 행복과 즐거움은 그저 몽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터이지요. 초석님은 훌륭한 치과의사 선생님임에 틀림없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환자들 이 뽑을 때도 절대 안 아프게 해주시겠지요? 하하.

집으로 돌아오니 제가 올라가기 전 써놓았던 글이 우리 동네 지역신문에 실렸군요. 그저 답사를 떠나기 전 감상문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는데, 저와 친분이 있는 신문사 기자님이 보시고 실어주셨네요. 제겐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혹시나 우리땅걷기와 신정일 선생님께 폐가 되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황지에서 신정일 선생님으로부터 설명을 듣던 중 낙동강이 가장 길다는 말씀을 듣고 아차! 했답니다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에 참여하며」 에는 한강에 이어 낙동강이 두 번째로 길다고 써놓았거든요. 이런 실수를 하다니….

 

환상적인 낙동강 길을 걸으면서도 내내 찜찜한 마음을 털어낼 수 없었습니다. 첩첩 산골에 PC방이 있을 턱도 없으니 수정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더니 결국 일이 터졌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김기자로부터 글 좀 쓸게요! 하는 간단한 문자가 온 것입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 시간이면 벌써 인쇄가 들어갔을 테니까요.

 

본의 아니게 낙동강의 명예를 훼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리저리 살펴보니 낙동강과 한강의 길이(유로연장), 넓이(유역면적), 유량 등에 대하여 발표하는 주체들마다 차이가 있군요. 어느 걸 기준으로 삼아 야할지 매우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참 멍청한(!) 회원이지요?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곳 경남지역은 요즘 4대강 살리기와 연계한 지리산 댐 공사 문제로 시끄럽답니다. 정부와 4대강 살리기를 추진하는 측에서는 낙동강은 이미 죽었으므로 강 살리기 공사를 해야 하고 더불어 부산, 대구지역 주민들에게 깨끗한 식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낙동강 취수원을 지리산 댐을 만들어 옮겨야 한다고 하더군요.

 

글쎄요. 무슨 말인지 제 머리로는 아직 이해가 잘 안될뿐더러 불쑥 이런 궁금증마저 듭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죽은 낙동강 물을 우리에게 먹였단 말인가? 그리고 낙동강은 도대체 누가 죽였을까? 언제 어떻게 죽었을까? 그리고 돈을 위해 개발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낙동강을 맡겨두면 낙동강을 친환경적으로 살린다는 게 정말일까?

 

한쪽에선 낙동강은 이미 죽었다!고 하고 반대편에서는 아니다. 낙동강은 아직 살아있다!고 주장합니다. 죽었다는 쪽은 정부와 개발업자이고 살아있다는 쪽은 강을 보호하고 살려야 한다던 환경단체들입니다. 제 눈엔 이 어처구니없는 공방이 미련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세상에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러한 때에 낙동강을 직접 걸어보는 것이야말로 답을 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길을 허락하신 우리땅걷기와 신정일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 구간까지 단 한차례도 빠지지 않고 완주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에서 수여하는 인증서를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노력의 첫 번째가 댓글을 빨리 다는 것이더군요. ㅎㅎ
(주; 신청경쟁이 치열해 참가댓글을 빨리 달아야 함)

 

걷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