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15 군항제 끝난 진해 벚꽃장의 마지막 장관 by 파비 정부권 (3)
  2. 2010.04.09 꽃대궐로 변한 창원천, 부활절날과 4일후 비교 by 파비 정부권 (5)
  3. 2009.04.06 진해 난리 벚꽃장에는 꽃보다 사람 by 파비 정부권 (9)
작년에는 진해 벚꽃장을 다녀왔습니다만, 올해는 가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말이 절정이었지만, 그때는 다른 일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이 마침 아이 학교 개교기념일이라 쉬는 날이라고 해서 함께 진해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출발하기 전에 우리 집 앞 창원천 변의 벚꽃을 다시 찍어보았습니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앞에 이곳 사진을 몇 장 포스팅했었지요. 활짝 피기 전 과 핀 사진을 찍어서 올렸습니다만, 오늘은 꽃이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목련은 완전히 떨어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했군요.  


진해여고 앞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이곳도 벌써 꽃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날은 바람도 무척 심하게 불어 꽃잎들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는데 추풍낙엽이 아니라 춘풍낙화였습니다. 낙엽은 생을 마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모습이지만, 낙화는 생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라 낙화란 표현보다는 다른 말을 써야 할 듯싶군요.

그럼 뭐가 있을까요? 춤출 무를 써서 무화? 에이, 그것도 아니군요. 그냥 낙화로 가죠.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으니 그에 맞추면 낙화가 더 어울릴 듯싶네요.


진해여고 앞 벚꽃길이 시작하는 곳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었는데요. 읽어보니 진해에 벚꽃을 심은 유래는 일제 해군이었는데, 이유는 그들의 생명경시사상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경시사상? 아, 가미가제를 말하는 것이구나, 웬 생명경시사상을 좋아해 벚꽃을 심었나 했네요. 

생명경시사상이란 다름 아닌 자기 목숨을 버려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친다, 뭐 그런 의미였겠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일본군에 자원하면서 지원서에 그렇게 썼다죠? "사쿠라처럼 살다가 사쿠라처럼 죽겠습니다." 그는 정말 사쿠라처럼 살다 사쿠라처럼 죽었을까요?

해방 이후 벚나무가 일본의 나라꽃이라 하여 주민들이 부러뜨리기도 하고 베어 불쏘시개로도 쓰고 해서 일제가 심은 10만 5천여 그루의 벚나무들이 모두 사라졌으나 1960년대에 다시 도시정비를 하면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하여 심은 것이 오늘날의 진해 벚꽃장을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당시 가로수로 벚나무를 정한 것은 왕벚나무의 원래 원산이 제주도임을 한국의 식물학자들이 밝혀내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빨리 자라고 별다른 병충해가 없는 점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재 35만여 그루가 진해에 자라고 있다고 하네요.


벚꽃 아래 잘 정비된 개울에 핀 노란 유채꽃이 장관입니다. 연분홍빛 벚꽃과 잘 어울리네요. 개화시기도 같고, 이런 걸 뭐라고 하지요? 저는 무식해서 금상첨화란 말밖에 안 떠오르네요. 그러나 금상첨화는 적당한 비유가 아닌 것 같고요.

서로 잘 어울리는 조화에 빗댄 적절한 비유가 없을까요?


진해여고에서 시작해 죽 뻗은 길이 한참이었습니다. 저는 잠깐 올라가면 끝인 줄 알았더니 벚꽃과 유채로 닦여진 터널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유채꽃 뒤로 반짝이며 개울 위를 흘러가는 벚꽃잎이 보입니다.  


위로 올라가니 아직 벚꽃이 완전히 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네인데도 100m 아래와 그 위 북쪽의 차이가 이와 같습니다.  


진해여고 벚꽃길 끄트머리에 있는 환경생태공원입니다. 우연히 진해의 대표 블로거 실비단안개님을 만났는데 이곳을 꼭 가보라고 강권해서 들어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사실은 꽃만 보다가 옆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습니다.

진해 사람들이 왜 마창진 통합 논의가 있을 때―어이구 이거 또 마창진이라고 했다가 민언련의 어떤 분으로부터 창마진이라고 안 했다고 비판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민언련이 무엇 하는 곳인가 했더니 정부에서 창마진으로 부르기로 결정하면 그렇게 부르도록 계몽하는 곳이었나 봅니다. 하긴 뭐 저는 경남도민일보도 아니고 그냥 개인 블로거에 불과하니까―마산은 거지 같다고 통합대상에서 빼자고 했는지 알 거 같습니다.

아무튼 진해가 마산보다는 살기가 좀 낫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수지(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래의 번호표를 하나씩 돌리는 겁니다. 한 바퀴 돌면 1, 두 바퀴 돌면 2, 이런 식으로요. 꽤 좋은 아이디어네요.


호수변에 누군가가 그림, 아니 사진인가? 어쨌든 전시를 해놓았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비닐을 씌워 놓았습니다. 그래도 감상은 잘 했습니다. 풍경도 좋고, 그림도 좋고, 모든 것이 좋습니다.


여름에도 시원하겠습니다. 마산시내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늙어죽을 때까지 떠나고 싶지 않을 텐데. 사실 한때 그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 앉으면 이런 말들이 인사인 때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부분 아는 친구들은 거의 창원에 다 사니까.  

"너 아직도 마산 사나?"


물이 좋아 물가로 휘어진 나무인가 봅니다. 그 나무 앞에 포즈를 취한 친구는 제 아들입니다. 이 녀석이 어릴 때는 꽤나 시적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함안 군북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적벽은 아니라도 그 비슷한 절벽 아래 차를 세워두고 그 높이에 감탄하며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절벽은 바위 틈새 이곳저곳에서 물이 새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는데요. 이제 갓 네 살을 넘긴 아들 녀석이 말문을 뗐습니다. "바위가 엄마 보고 싶어서 울고 있나." 저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녀석이 정말 시인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답니다.  


또 우리 집에 걸린 그림 중에 북한 인민화가 정창모가 그린 것으로 믿고 있는 금강산 그림 한 점이 있는데요. 이 그림에는 운무 위를 날고 있는 세 마리의 새가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날, 아이에게 "저 그림에 새가 몇 마리냐?" 하고 물어보았지요. 나름 셈을 가르친답시고 그런 것이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99마리."


저는 깜짝 놀라서 "아니 99마리가 어디 있단 말이냐? 여기 세 마리밖에 없잖아."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머지는 구름 속에 들어가서 안 보이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왜 구름 속에 숨은 나머지 새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러나 여러분, 이제 아들의 눈에는 새가 세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물론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흘리는 바위도 없습니다. 시인 같이 생각되던 어린 아이는 이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승호딕플 사내라고 조르고, 말은 뒤지게 안 듣습니다. 시는 고사하고 책 한 줄 읽기를 최영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보듯 하니, 이거 원.


꽃터널, 사진사들은 꽃들이 만드는 장관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사진사는 허리가 아픈지 가끔 허리를 돌려가며 다시 뷰파인더에 눈을 같다 대고 구도를 잡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한 차례 바람이 일기라도 하면 꽃잎들은 사방에 휘날릴 것이고 그때가 사진사에겐 셔터를 누를 최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린 저렇게 한곳에 진을 치고 셔터를 누를 기회를 기다릴 만큼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합니다. 어떨 땐 그런 사진사들을 보며 태공망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160년을 살았는데 후 80년을 위해 전 80년은 그저 낚싯줄만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고 합니다.

그게 진짠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 흉내 내다간 속 터져 죽을 거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아무튼 꽃구경은 참 잘했습니다. 진해여고 앞만 한 바퀴 도는데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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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해시 여좌동 | 진해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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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소리없이 다가온 꽃들의 잔치

제가 오늘 어디를 좀 갑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까지 제 블로그에 못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이렇게 꽃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려 합니다. ㅋㅋ~ 그래봤자 내일 모레면 돌아옵니다만. 하긴 요즘은 멀쩡하게 하는 일도 없이 블로그를 자주 쉬었습니다. 그러니 이삼일 떠나감을 핑계로 블로그 쉬는 거, 그거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죠.  

아래 사진은 지난 일요일에 찍은 겁니다. 신마산 창원천입니다. 아직은 꽃이 완전하게 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사이에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가지만 앙상하던 나무가 바야흐로 꽃망을 터뜨리고 활짝 개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위는 낮에 찍은 사진이고, 아래는 밤에 찍은 사진입니다. 일부러 똑같은 장소에서 셔터를 눌러봤습니다. 아래쪽 드리워진 가지엔 백련이 활찍 피었습니다. 벚꽃이 만개하면 백련은 떠나야겠지요. 지금은 백련이 주인이지만 곧 벚꽃들이 이 창원천을 점령하고 말 겁니다.

삼각대 없이 밤에 찍은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흔들린 사진도 흔들린 대로 나름 운치가 있습니다. 어떤 사진 고수는 일부러 카메라를 살짝 흔들어 나부끼는 듯한 꽃사진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이 사진은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 없습니다. 오로지 삼각대가 없었던 탓입니다.  


딸아이가 이날 성당에서 받아온 부활절 계란입니다. 부활절에는 이렇게 삶은 계란을 나누어 먹습니다. 유래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간 사람이 있었지요. 그분 성함이 뭐였더라?

아무튼 그분이 양계장을 하는 사람이었답니다. 흐흐~. 고향에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그가 기르던 닭들이 낳은 형형색색의 달걀이었다나요? 그래서 그걸 기념하기 위해 달걀에 색칠을 하고 부활절날 서로 나누어 먹는답니다. 제 생각엔 그런 게 아니고 없이 살던 시절에 영양보충을 위해 교회에서 만들어낸 행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이 달걀엔 색칠이 안 되어 있네요. 게을러서 그랬을까? 그냥 비닐봉다리에 담아서 나누어 주었군요. 내년엔 가족들이 둘러 앉아 직접 삶은 달걀에 형형색색으로 색칠을 하는 것도 재미 있겠는데요. 그럼 물감과 붓부터 사야겠네요.   

자 그리고 며칠이 지났나요? 어제가 목요일, 그러니까 4일이 지났네요. 5일인가? 아, 제가 수학에 좀 약합니다. 어쨌든 어제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벚꽃이 어떻게 변했을까 역시 똑같은 장소에 가보았습니다.

아래 사진에 보시는 바와 같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번주 일요일이 절정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황을 연출한답시고 버스가 올라오는 것까지 똑같이 맞추어 찍었답니다. 성의가 상당히 괘씸하지 않습니까? 목련은 예상대로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벚꽃을 좀 더 당겨 찍었습니다. 검은 나무가지를 뒤덮은 벚꽃들이 장관입니다. 정말 대단하죠?

제 생각엔 저렇게 검은색으로 낡아빠진 나무가지가 벚꽃의 화려함을 더 부채질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나무가 검게 퇴색한 색이 아니라 버드나무나 미류나무처럼 은회색에 가깝거나 또는 녹색이라면 별로 안 어울릴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인근 경남대 교정에 가보았습니다.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전부들 휴강인가봐요. 공부는 안 하고 온통 사진 찍으러 다 나왔군요.





경남대 내 월영지를 바라보며 한 컷, 다리 위 학생들이 한가로운 모습에 봄이 더욱 정겹습니다.



경남대 한마관 바로 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경남대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합니다. 과거에는 여기서 바라보면 벚나무 사이로 마산만이 훤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젠 건물들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 아래 건물들이 들어선 자리도 원래는 바다였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최치원 선생이 만들고 쉬셨다는 월영대가 있습니다. 그 월영대의 이름을 따서 우리 동네 이름이 월영동이랍니다. 최치원 선생이 시원한 바닷바람을 벗 삼아 물속에 잠긴 달을 노래했을 월영대는, 그러나 이젠 바다와 달 대신 거대한 도시의 소음 가운데에서 그 존재마저도 잃어버렸습니다.



위 사진을 찍었던 자리에서 몸을 틀어 산을 향해 한 컷. 산에도 벚꽃이 만발합니다. 아마 이원수 시인의 시 고향의 봄에 나오는 꽃대궐이 창원 소답동 뒤쪽 천주산이란 얘기가 있는데, 이 일대의 산들은 봄이 되면 실로 꽃대궐입니다.




역시 맨 위와 같은 장소에서 어젯밤에 찍은 사진입니다. 버스가 지나가는 장면을 똑같이 연출하려고 했으나 웬일인지 버스가 멈추어선 채 올라오지 않습니다. 나무둥치 옆을 자세히 보시면 버스 앞부분 머리가 얼핏 보이실 겁니다.

역시 삼각대가 없어 흔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예쁜 꽃은 우리 딸입니다.



제가 잠깐 나가서 밤 벚꽃을 찍고 돌아오니(바로 우리 집 앞입니다) 자기 사진은 왜 블로그에 안 실어주느냐며 뾰로통하고 삐쳐있는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올려주겠다고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얼굴이 활짝 피었습니다. 뭐 애들이란 게 원래 그렇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그런 거지요. 그런데 울다가 웃으면 어디어디에 털 난다고 놀리고 그랬던 기억 안 나십니까?

제가 어릴 때 친구들 사이에서 돌던 유력한 학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그때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었답니다. 참 우습지요. 자, 그러면 꽃구경 잘들 하셨는지요. 그럼 이만 저는 떠나겠습니다. 안녕히…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난리 벚꽃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본래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이란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 있고 이를 난리법석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이에 빗대어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난리 벚꽃장’이라 함은 지나치게 어수선하고 떠들썩한 게 질서가 없이 혼란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제가 어제 그 난리 벚꽃장에 다녀왔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진해가 출생지이고 주민등록표 상에도 원적지가 창원군 웅천면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조상 대대로 이곳이 고향(전통적 의미에서의 고향은 조상들의 뼈가 묻힌 곳이라 함)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진해의 지리는 커녕 '동' 이름도 잘 모릅니다. 진해를 가려면 터널을 통과해야 된다는 지리적 단절감 때문인지 마산창원 지역에 터를 잡고 산지도 어언 27년이나 지났건만 아직 진해 벚꽃장에 한 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마음을 야무지게 먹고 진해 벚꽃장에 다녀왔습니다. ‘야무지게’ 마음을 먹은 이유는? 그야 물론 진해 벚꽃장이 다름 아닌 ‘난리 벚꽃장’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들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고 오는 데 쏟아부어야 할 노력이라든지, 벚꽃장을 구경하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또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써야 할 신경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우리 딸입니다. 팔불출이래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어제는 오늘 안 가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는 절박감(큰 애가 이미 국민학교 6학년이거든요)으로 큰 맘 먹고 그 난리법석이 났을 진해로 건너 간 것입니다. 봉암다리를 건서 창원 땅에 들어서니 벌써 화사한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마진터널의 어둠을 뚫고 빛의 세계로 빠져나온 순간, 사방이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여 마치 그림 속에 빠져든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꽃안개로 뒤덮인 도시는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갑자기 막막해졌습니다. 식구들 네 명 중에 진해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시 ‘사전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짐짓 태연한 척 마누라에게 물었습니다.

“가만, 벚꽃장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진해역 앞으로 가보자. 거기 가면 장터 같은 게 많이 열려 있을 끼다. 거기가 벚꽃장 아이겠나.”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벚꽃나무 아래 장터를 열어놓은 게 벚꽃장이라니?

“아이, 무식아. 벚꽃나무 아래 장터 열어놓은 걸 벚꽃장이라고 하는 기 아이다. 그 장 하고 그 장이 어찌 같단 말이고.”
“에이, 바보야. 벚꽃 마이 핐을 때 장터 만들어 놓고 사람 마이 모인 그기 벚꽃장이지. 그것도 모르나.”
“……”

꽃마차도 등장했네요.


그러나 저는 결국 예의 집요함과 대를 이어온 고집으로 “벚꽃장은 벚꽃아래 펼쳐진 장터가 아니다!” 라는 점에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물론 그 동의는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잠정적 양보 조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소풍장소에서 이런 사소한 의견차이가 분쟁으로 비화되는 사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의 결말은 늘 승자나 패자에게 예외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줄을 서서 따라가다 해군사관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군함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돗자리 깔고 밥도 먹었습니다. 당연히 막걸리도 한 병 비웠습니다, 저 혼자서. 금강산도 식후경. 이제부터 꽃구경을 할 차례입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물결치는 사람들 뿐. 터널을 지나 진해로 들어오며 보았던 꽃안개는 사라지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아! 이런 걸 두고 ‘난리 벚꽃장’이라고 하는 것이로구나. 정말 난리 벚꽃장이었습니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도 있지만, 여기는 ‘꽃 반, 사람 반’이었습니다. 중원로타리로 나오니 천막으로 빙 둘러친 군항제 행사장이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해 4열종대로 기다랗게 줄을 만든 사람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우리 마누라가 말한 벚꽃장이 진짜 벚꽃장이 맞는가 봅니다. 벚꽃장에 사람이 없으면 벚꽃장이 아니리라는 깨달음은 현장을 체험하고 나서야 얻은 소중한 진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물결처럼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꽃처럼. 안치환이 노래했던가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아직 도(道)와 통하지 못한 저로서는 사람보다 꽃이 아름답습니다만, 꽃안개 속을 물결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가 그리 싫진 않습니다. 정말 ‘꽃 반, 사람 반’입니다…. 휘영청 은하수에 보름달을 매달고 벚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술잔에 받아 마시는 운치는 이태백이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낭만일 겝니다. 이번주 금요일이 보름이네요. 

그때까지 꽃잎들이 견뎌줄라나 모르겠군요.       파비

벚꽃 사이에 핀 동백꽃이 일품. 붉은 동백꽃 뒤로 화사한 벚꽃 실루엣이 너므 흐린 건 제 사진 실력 탓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