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6.01 살벌한 세상에 읽는 ‘고민하는 힘’ by 파비 정부권
  2. 2009.02.04 낙하산 저지에 인사보복으로 맞선 김태호 경남도지사 by 파비 정부권 (5)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고민하는 힘
- 10점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사계절출판사


내가 이 책 『고민하는 힘』을 다 읽은 것은 낙동강으로 도보기행을 떠나기 위해 탔던 차 안에서였다. 이미 절반 이상을 읽었던 책을 마무리하기 위해 배낭에 넣고 시외버스를 탔던 것이다. 경북 봉화와 안동의 경계지점 어느 곳이었을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시각이 새벽 5시 30분. 


절밥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상위에는 온통 풀로만 만든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국도 반찬도 모두 풀이었다. 쌀도 결국 풀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면, 강변 둑방에서 풀을 뜯는 소가 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허기가 반찬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니 주지스님께서 차 공양을 해주신다고 한다.


아직도 하늘에선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런, 걱정이 태산이다. 우산도 없고 우비라고 해야 천 원짜리 허접이다. 무엇보다 카메라가 걱정되었다. 캐논 450D. 낙동강을 위해 구입한 재산 1호다. 그러나 하늘은 내 걱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계속 비를 뿌려대었다. 그러다 시계바늘이 7시를 향해 다가가면서 서서히 빗방울도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은 우리 편이야!”라는 농담을 섞어가며 우리는 출발했다. 주지스님께서 친히 단천리 비경에서부터 윷판대를 거쳐 도산서원까지 동행하시겠다고 한다. 길잡이가 되어주시겠다는 뜻이리라. 낙동강을 따라 두 시간여를 걸어 우리는 이육사기념관에 도착했다.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 기념관 바로 위에 있는 윷판대를 올랐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 윷판대는 장관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뱀처럼 휘어들어오는 낙동강. 그 위에 펼쳐진 단천리의 아름다운 벼랑바위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서늘해지는 두려운 쾌감이 몸을 휘감아온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이후부터 우리의 낙동강 도보기행은 엉망이 되었다. 형식상으로야 별일 없다는 듯 그대로 진행되었지만, 이미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개중 몇몇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떠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 전례가 없는 사태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살벌한 세상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지금의 일본을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어떤 색이 될까요? 나는 희미한 납색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내 눈이 어둡기 때문이며, 그래서 비관적인 이미지를 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급속도로 진행되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 경제력의 쇠퇴, 막대한 재정적자, 정치적 폐쇄 상황 등 부정적인 요소가 많지만 가족의 연대가 강하고 사람들 사이의 정을 실감할 수 있다면 고립감이나 우울증에 시달리지 않겠지요. 즉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 커뮤니케이션이 상호 신뢰에 의해 지탱되고 그것이 각 개인의 정체성에 안도감을 줄 수 있다면 경제적 곤란이나 정치적 부정이 횡행한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희미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회에는 고립감과 시기심이 가득하고 꿈과 희망은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고민하는 힘』의 저자 강상중이 <글을 마치고>에 쓴 말이다. 그는 이 책을 매우 부드러운 어조와 친절한 화법으로 썼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원래 일본인들―그는 재일한국인이지만, 역시 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이다―은 이렇게 친절한 어법을 구사하길 즐긴다고 들었지만, 그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옮긴이의 온화한 성품 탓일까?”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유행했던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마음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읽었던 ‘에세이’ 부류로 치부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에 그런 느낌으로 읽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다시 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강상중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고민하기―혹은 고민하는 훈련을―위해 정신세계의 지평을 넓히라든가 하는 따위의 에세이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이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를 끌어들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100년 전은 오늘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다. 오늘날 우리는 뉴욕에서 워렌 버핏이 하는 말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해석까지 덧붙여 접할 수 있는 좁은 지구촌 시대를 살지만, 그때는 확실히 사정이 달랐을 것이다. 동양의 끝자락과 서양의 끝자락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장치는 당시엔 아무데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 둘은 생각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선 태도 또한 닮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강상중은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살았던 시대적 혼돈 상황이 오늘날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 오늘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시도를 하는 것이다.


19세기 말, “장기불황과 내란 상태로 어지러웠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다른 나라로 몰려갔으며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른바 제국주의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는 조정되었으나, 지금 세계를 바라보면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고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본주의는 타파되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게 되었으며 자유는 무한히 확대되었지만, 그 자유는 인민의 것으로 되지 못하고 시장의 힘에 속박되었으며 자본이 독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강상중은 100년 전의 세기말적 상황과 오늘의 세기말적 상황이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가 백 년 전에 쓴 것을 다시 읽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라는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 했”다.


그리고 강상중은 고민하는 인간이었던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섞어 ‘고민하는 힘’에 대해 예의 친절하고 부드러운 화법으로 풀어쓰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루는 아홉 가지 주제 즉, 자아, 돈, 지성, 청춘, 믿음, 직업, 사랑, 죽음, 늙음에 대하여 막스 베버와 나쓰메 소세키의 고민을 빌어 잔잔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고민에서 벗어날 것인지, 또는 고민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그러나 앞에 소개한 <글을 마치고>에서 저자가 표현한 것에서 보듯이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보여주듯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살벌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국가는 인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지만, 그 인민이 향유해야할 자유와 민주는 시장의 힘에 이끌려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 검찰은 물론이고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가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다. 국가는 바야흐로 자본을 위한 존재로 된 것이다. 반면 보다 값싸고 유연한―혹은 편리한―비정규직은 넘쳐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있다’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있다’라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몇 십 년 동안의 노력은 그러나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저자는 통렬히 비판한다. 일본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나라는 수상쩍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그 수상쩍은 그림자를 확실히 보지 않았는가.


과거 독재권력의 충직한 개 노릇을 했던 언론들, 구체적으로 조중동은 이제 자유와 민주란 바람을 타고 자본의 이름으로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검찰과 경찰, 법원 등 모든 국가기구도 자본의 하수인이 되고자 스스로 명단에 이름을 집어넣기에 바쁘다.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그 시각에 하필 대법원이 삼성의 이건희에게 무죄판결을 선물한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이 있다. 늘 그렇게 하겠지만, 먼저 서문을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읽어보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면서 저자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분명히 짚어 본문 책장을 넘긴다면 나침반도 없이 큰 바다에 나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어부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독자들은 서문을 대충 읽거나 아니면 생략함으로써 마치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에서 낚시꾼이 고기 한 마리도 낚지 못했을 때 느꼈을 불평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물론 이 책은 앞서 말했듯 빠른 물살이 지나가는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그런 기쁨은 없다. 세상을 향한 냉혹한 비판과 주장도 없고 대단한 지혜를 뽐내는 그런 구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에 돛단배 하나 띄워놓은 것 같은 그런 책이다. 그러나 서문을 꼼꼼히 읽어보는, 그리하여 저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독자라면 수평선 저 멀리 떠오르는 빛나는 별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 별들은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독자에게 노를 저어 수평선을 지나 피안에 닿을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리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굴복하지 않고 ‘고민하는 힘’을 발휘하며 이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했을, 또 늘 그렇게 하기 위해 분투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그리고 강자에게 절대 굴하지 않았으며, 약자에게는 늘 온화한 웃음과 위트로 그가 좋아했던 노래가사처럼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오길 염원했을 그를 추억하며…      파비

ps; 원래 이 서평은 알라딘 리뷰와 이 블로그에 진즉 올렸어야 하나 낙동강 도보탐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으로 경황이 없었습니다. 특히 노무현의 죽음은 거의 진공상태에 빠진 듯한 무력감을 가져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하기도 싫었습니다. 한동안 리듬이 완전 깨졌습니다. 알라딘과 티스토리에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시의라는 것이 있을 텐데 늦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한 권이 밀리는 곤란함이 생겼습니다. 별로 재미도 없고 인기도 없는 포스팅이긴 하지만, 이 시대가 자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점에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란 생각은 확실히 듭니다. 하필이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리기도 하면서 고민이 더 많았던 책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명박 정권이 권력을 잡은 이후 생겨난 특징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충성경쟁입니다. 전 정권 시절에 터를 잡는 듯 보이던 자율과 권한, 그리고 책임이 노골적이고 맹목적인 충성경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조짐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우선 검찰과 경찰이 그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KBS도 이병순 사장을 낙하산에 태워 보낸 이후 논조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직 전두환이나 박정희 정권 때처럼 위대한 영도자를 불러대는 수준은 아니지만, 우려스럽습니다. 여기에 한나라당의 의도대로 언론악법이 통과된다면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이런 따위의 충성경쟁이 경남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마산시 감사실이 김태호 경남도지사의 의중을 받들어 동료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해주십사고 경남도에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 공무원은 김태호 지사의 낙하산 인사에 반발해 반대기자회견을 여는 등 반대운동을 했기 때문에 미움을 사 파면 당했다가 법원으로부터 부당해직 판결을 받고 복직한지 한 달이 채 안 된 임종만 씨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파면이란 불명예를 안고 고통을 받다가 돌아온 동료에게 마산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진 곳에다 책상 하나 달랑 주고 격리시켜 놓았습니다.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라는 소리인지 원. 그러더니 덜컥 마산시 감사실에서 경남도 인사위원회에 중징계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통보해왔습니다.

그것도 3년 전, 중징계 사유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옮겨서 말입니다. 아주 귀찮은 업무 하나를 기계적으로 처리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김태호 지사도 참 따분한 사람입니다. 아니 몇 년이나 지난 일을 아직도 감정을 품고 보복을 하겠다는 심사는 소인배나 할 짓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나는 모르는 일이다!” 이러시겠지만, 그걸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법원이 임종만 씨 등 8명의 공무원에 대한 해직은 “재량의 범위를 일탈한 부당하고 불법적인 처분으로 무효”라고 판결을 했음에도 또다시 중징계 조치하겠다는 발상은 대한민국 법원을 부정하는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토록 법질서를 강조하던 사람들이 이따위 ‘떼법’(그건 우리 같은 서민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늘 조중동의 입을 빌려 떠들었지 않습니까?)을 쓰다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김 지사야 소인배라서 그렇다 치더라도, 마산시장과 감사실은 무엇 하는 사람들입니까? 도청으로부터 떨어지는 낙하산의 폐해로부터 기초자치단체를 보호하기 위한 충정으로 희생을 각오하고 고통을 감내한 동료에 대한 처우가 고작 등에 칼을 꽂는 행위란 말입니까?

아래는 임종만 씨가 피눈물로 쓴 호소문입니다. 좀 길긴 하지만, 사태의 진상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해서 옮깁니다. 글 곳곳에 느껴지는 분노가 절절합니다. 공무원노조에 대한 애틋한 사랑도 묻어납니다.

대한민국 마산시 공무원 임종만 계장에게 많은 힘을 보태주시길 갈망하며…….                          2009. 2. 3. 파비



임종만 계장은 법원의 복직판결에 따라 지난 12월 31일 복직했다. 사진=구자환 기자


오랜 해직의 고통을 넘어 복직의 기쁨을 맛본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지난 주 수요일(21일) 저는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평소 자주 봐 오던 직원이 멋쩍게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기에 반갑게 맞았습니다.

   사실 저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3층 외진 곳에 위치한지라 찾기가 어려운 곳이고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조용한 곳입니다.


   감사담당관의 거짓말


   사람도 귀한 곳에 이렇게 찾아오니 저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고 자리에 앉기를 권했습니다.

   그때 그 직원의 옆구리에 결재판이 끼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의아해 하면서 “나에게 결재나 협조를 구 할 것이 없을 텐데 왜 왔지?” 하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그래, 좀 앉으세요?”

   그 직원이 옆자리에 앉으면서 “계장님!” 하고는 결재판을 펴는데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춰버림을 느꼈습니다.


   그 결재판 안에는 “징계의결 요구사실 통보” 라는 공문이 들어 있었고 그때서야 이 직원이 감사부서 조사담당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 그게 아니고 전해주고 확인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하면서 우물쭈물 힘겹게 말을  뱉었습니다.


   저로서는 너무나 황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불편한 심경을 그 직원에게 쏟아내었습니다.

   듣고 있던 직원은 “계장님, 다 압니다. 그런데 전들 어쩌겠습니까? 심부름만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공문서를 보니 정말 조사담당 황송진, 감사담당관 최진국의 이름만 보였고 결재일은 1월 19일이었으며 말미에 “비공개‘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죽음에서 살아온 자에게 인사보복이 웬 말?  


   그리고 뒷장을 넘기니 “공무원 징계의결 요구서”가 붙어있었고 중징계 요구한다는 내용과 1월 13일 이란 날짜와 경상남도 인사위원회 귀하라는 문구가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또 그 뒤에는 “08.12.31 행정관리국 행정과에 발령받은 자로서...” 시작하여  당초 파면처분을 받았던 징계사유를 그대로 옮겨 놓고 있었습니다.


   저가 왜 구질하게 이런 글을 쓰는지 지금부터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리 동료들은 임종만이 짤렸던 사유를 어렴풋이나마 모두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김태호 도지사가 당선되자마자 행한 낙하산 인사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낙하산 인사는 도덕적 타락을 넘어 공직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이자 수많은 공무원들의 의욕을 말살하는 폭거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우리 조직의 발전과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해소를 위해 힘써왔습니다.

   그 일환으로 김태호 지사의 낙하산 인사문제에도 발벗고 나서게 되었으며 이것이 도지사 눈에 가시가 되어 그가 가진 인사권이란 불법 개조된 고성능 무기로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포격을 가하듯 보복성 공격을 받고 그만 공직사회에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장에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었다     


   그 죽음은 개죽음이었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동지이고 동료로서, 죽음을 무릅쓴 힘겨운 투쟁에 같이 하는 이도, 격려와 용기를 주는 이도 있어, 그것이 전투식량이 되어 즐겁게 적극적으로 여러분이 그토록 바라던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맨 앞자리에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전장에는 승자만 있고 패자는 없었습니다.


   외로운 죽음의 나날이었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생명 부지를 위해서 적군을 도우고 있는가 하면 정말 순수 양민들(동료)은 본의 아니게 적군의 포로가 되어 입을 다문 채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겨우 유지하는 공무원노조는 항복하는 조건으로 사무실을 되돌려 받아 허울은 갖추었지만 그 전의 노조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무너지고 깨어지기 위해서 노조를 하였던 것은 아닌데...

   공무원노동조합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혼돈이 올 지경입니다.


   저가 외롭고 마음 아팠던 것은 노조에서 또 우리 직원들이 저의 희생을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조가 무력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조는 조직을 정상화하여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패배의 원인을 찾아 동지의 죽음을 부른 도지사의 권력남용과 비행을 막는 것이 최우선사업으로 배치되는 것이 순리일 것입니다.


   그 연속선상에서 우리시를 비롯한 기초자치단체에 낙하산이 착지할 수 없도록 함과 노조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우리 직원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눅들지 않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토대이자 저의 희생에 대한 가치이고 보답이라 생각합니다.


   고질적인 병폐, 낙하산 인사


   지난 날 경상남도의 낙하산인사는 많은 폐해를 낳았습니다. 공무원노조는 이의 저지에 온 힘을 다하였으나 저를 포함 도내 8명이 공직에서 배제된 사건은, 낙하산이 신바람타고 거침없이 자유롭게 앉고 싶은 곳 어디든 착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준 듯합니다.


   우선 공직사회 내부적으로 매년 3~4차례씩 도는 인사잔치로 축제의 연속이지만 시군은 인사적체로 일할 의욕마저 상실하고 있습니다. 최근 도에는 법정 승진소요연수가 안되어 승진을 못한다는 소문까지 들립니다.


   지역사회는 도에서 시군에 수시로 왔다갔다 하는 낙하산 때문에 정신이 없고 이 낙하산은 시군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자리로 인식되어 업무파악이 제대로 될 즈음 떠나니, 시군에서는 가뜩이나 어려운 재정에 그 사람 비싼 월급에 헛돈만 낭비하는 꼴이 되곤 합니다.


   낙하산인사가 처음 수면 위로 부상된 것은  2004년 6월 5일 보궐선거로 도지사 자리를 획득한 김태호 지사가 경남도 첫 인사에서 당시 공무원노조 탄압의 장본인이자 5.15일 경남도 인사를 주도하며 자기 맘대로 시군에 낙하산을 보내어 갈등을 유발시켰던 오원석 당시 도 총무국장을 기획실장에 승진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오원석은 김태호 도지사가 취임 전 이미 도지사권한대형인 행정부지사와 서면합의로 좌천인사가 결정되어 있던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김태호 도지사는 잘못된 인사임을 시인하고 7. 3 “부단체장을 포함 교류 시에는 당사자, 기관장, 직원대표의 동의를 거친다”는 요지의 『도와 시.군 간 인사교류협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낙하산인사 저지에 김지사는 보복인사로 맞서


   그리고 그해 8월 경남도가 공무원노조와 ‘도와 시군 간 인사교류협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행자부에서 재정적 불이익이니 하면서 김태호지사를 압박 할 시점 ‘단체교섭촉구 기자회견’을 하였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전원을 사법당국고발 및 중징계 요구를 하였던 것입니다.


   도의 중징계요구를 받은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에서는 즉각 이 사실을 저에게 통보하였고 해안을 모색해 보자 하였습니다.


   저는 부당한 징계요구에 응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밖으로는 김태호지사를 압박하는 모션을 취했습니다. 그때 감사담당관은 현재의 전용석 행정관리국장님이셨고 조사계장은 채홍삼 양덕2동장님이었습니다.


   타 시군과 공조하며 도의 압력에 버티다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조사계장은 저에게 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중징계로 요구되었으나 경징계로 올려보겠다고, 그러니 조서작성된 것 읽어보고 불리하거나 수정사항 있으면 고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입장에 서서 ‘상전’인 도를 상대로 대변하고 저항해 준 것이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상호 합의하에 조서 확인 후 날인하여 올리도록 동의하였습니다.


   동료를 보호하고자 애쓰던 당시 감사관의 노력


   당시 저는 승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도로부터 승진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경징계를 약속 받았고 그래서 동의하여 징계요구서를 올렸는데 약속과는 다르게 감봉2월이 떨어졌던 겁니다.


   우리시 감사담당관실도 당황했고 저 또한 황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바로 당시 도 인사위원장이었던 김채용 행정부지사를 만나 항의를 했고 행정부지사는 잘못되었음을 시인하며 위로하면서 바로 소청을 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소청제도가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시의 인사는 조금씩 미루어졌고 소청서류를 작성하여 도에 제출한 후 소청일정을 빨리 잡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전용석 감사담당관님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며 소청위원들의 명단을 확보하여 직접 뛰어다니며 자존심도 버리고는 소청위원들께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도 도소청위원회에서 감봉 1월 처분을 받으므로 승진 결격사유가 되어 2005년 정기인사에서 6급 승진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의 고마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전용석 국장님! 채홍삼 동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가 해직된 후 현 감사실의 작태를 보고 뼈저리게 그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기억이 희미하겠지만 2001년 오너의 잘못된 첫인사로 당시 직협에서 3빅(인사라인 국장,과장,계장)의 문책인사를 요구했고, 전용석 국장님께서는 이에 홀로 책임을 지겠다며 총무과장직을 벗으시고 승진에서 밀리는 등 오랜 세월 동안 변방으로 다니셨지만 만나면 반갑게 대해주시니 정말 감사했고 늘 미안했습니다.


   김지사의 부당한 인사지시에 기계처럼 움직이는 새 감사실


   그런데 2년 전 창원 9.9대회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또다시 김지사는 ‘낙하산 인사에 따른 기자회견’을 수차 했다는 이유로 중징계 요구를 했고 당시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임종만을 범법자로 몰아 중징계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로 감사담당관이 된 정충실과 황송진 조사계장은 동료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전임자 분들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도의 불법지시에 기계처럼 움직였습니다.


   당시 2006년 9.9대회 이후 경남의 공무원노조는 노노 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던 시기였고 임종만은 이에 회의를 느껴 경남본부의 부본부장직도 벗어던진 상태에서 노조활동을 중단하고, 푸른도시 조성사업소에서 주무계장으로 열심히 일에 묻혀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조사계에서 도 조사관의 조사를 받으라는 공문을 비밀리에 저에게만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불쾌했지만 정해진 날짜에 조사실로 갔습니다.

   ‘왜, 불렀습니까? 바쁜 사람을...’

   도 조사관은 ‘중징계가 요구되어 조사차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뭔 일인지 모르지만 도에서 무슨 자격으로 저에 대하여 조사를 합니까? 마산시에도 조사계가 있는데... 이 분들은 뭐 하라고요? ’

   도 조사관은‘..........’ 어물어물 대답을 못하였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김태호가 벌줄 대상자를 찍어서 각본 다 만들어 놓고는 그기에 맞춰 달라고요? 조사관님! 오신다고 고생하였습니다만 저는 그기에 응할 수 없습니다. 일하다가 왔기 때문에 바빠서... 그럼...’ 인사를 하고는 조사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뻣뻣하게 나갔던 이유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의 작태가 너무나 괘씸해서였습니다.

   당사자도 모르게 소리 소문없이 도의 요구에 부응하여 기계적으로 중징계를 요구해 같은 동료이자 식구를 적진에 몰아넣어 쳐 죽이는 고약한 역적의 짓거리를 했던 것입니다.

   정충실과 황송진이 말입니다.


   우리시에 투하된 낙하산들, 그리고 저지투쟁


   기왕 말이 나왔으니 계속하겠습니다.

   저가 노조에 몸담고 있던 시절 우리시에서 낙하산인사로 크게 문제시되고 철회투쟁을 전개했던 눈에 띄는 사건은 2004년 1월10일 김석기 국장건, 2006년 1월 18일 박갑도 부시장건, 2006년 2월 13일 김동태 국장 건으로 압축됩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공무원노조의 투쟁으로 그 전에 비해 현실적으로 낙하산이 많이 줄었고 또 이와 관련, 4급 간부 중 우리시에서 도로 전입 간 분들도 몇 분 있습니다.


   이것은 마산시가 고질적으로 인사적체가 심한 탓도 있었지만 노조가 이를 이유로 낙하산인사를 집요하게 문제 삼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던 성과임에 틀림없습니다.


   결국 낙하산저지투쟁은 자치인사권을 확보하는 것으로써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직원들이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역주민들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합니다.


   당시 김태호 지사를 비롯한 경남도의 핫라인인 행정관리부서 관리자들에게 임종만은 눈에 가시처럼 싫었을 것입니다. 집요하게 낙하산 인사를 문제 삼고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그들에겐 기득권과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후 경남도는  마산시에 낙하산을 보내는 것에 신중을 기하거나 포기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마산에 낙하산을 투하하라!


   자, 이제 임종만에게 내려졌던 사형선고의 의미가 명백해지지 않습니까?


   도청입장에서는 그 방해물을 제거해 도청직원들의 바램인 낙하산을 많이 양산할 수 있는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나쁜 저의가 바닥에 깔려 있었을 겁니다. 그 방해물로 임종만을 지목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낙하산인사 저지가 주된 사유로 공직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임종만이 마산시에서 마저 죽일 놈으로 치부하는 것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직원들의 인사권을 지켜주기 위하여 전면에 나서 싸웠던 일들이 우리 직원의 손에 죽기 위함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산시 감사실이 2004년도는 마산시 소속이었고 2006년부터는 경남도청 소속이 되었습니까?

제가 이를 악물고 동료들의 인사권을 지켜주기 위하여 싸웠던 적! 김태호의 지시가 있다하여 한마디 상의도 없이 “죽일 놈이야” 하고 덥석 갔다 바치는 작자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같은 조직 내에서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지요.


   오랜 법정투쟁 속에 결국 돌아왔지만…


   문득 금번 용산 철거민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많은 애도의 물결 속에 눈에 띄는 문구 하나가 가슴에 절실히 와 닿습니다. ‘살릴 수도 있었다.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지금까지 억울함에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제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해직되고 난 후 뭔가 비리스럽고 멍청해 보이는 단어 ‘해직자’라는 멍에를 벗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저가 복직되기까지 정말 눈물 나는 법정 투쟁을 벌여왔습니다.


   이 법정 투쟁과정에서도 언제나 우리시 힘쎈 감사실은 김태호 지사 편에 서서 임종만을 나쁜 놈, 죽일 놈으로 간주하여 범죄(!)사실을 추가하는 등의 수법으로 피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고 아예 살아  돌아오지 못하도록 짓밟는 행위도 서슴없이 저질렀습니다.(일일이 거론하면 길어져 생략함)


   그러나 이들과 달리 알게 모르게 주변의 도움도 컸습니다. 그리고 힘겨운 법적공방 끝에 고등법원에서 ‘해임처분 취소’ 판결을 받아냈고 정말 사랑하는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진실이 승리한 것입니다.

 

   진실을 파고드는 재징계의 칼날


   아! 그러나 진실은 완전히 승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겐 아직 ‘재징계’란 칼이 있었습니다.


   복직판결의 기쁨도 잠시, 먼저 승소판결을 받은 함양과 진주에서 또다시 징계가 올려 져 정직 3월의 재징계가 떨어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들이 귓가에 맴돌 즈음 지부장과 함께 시장님실에 들러 복직인사를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지부장은 ‘혹여 우리시도 도에서 중징계 요구가 올 수도 있습니다.  임종만씨는 2년 동안 충분이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으니 시장님께서 중징계 요구없이 잘 처리되도록 해 주십시오’ 말했고, 시장님은 ‘그래, 올라오면 검토해보지.’하는 대화를 나누며 차를 나눈 후 나왔습니다.


   다음으로 감사담당관실에 들렀습니다.


   감사담당관과 조사계장이 함께 한 자리에서 시장님을 만났던 이야기와 공무원노조 투쟁과정에서 해직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에 대해 재징계를 하지 않은 사례가 많으니 도에서 중징계요구가 오면 알려주시고 의논해서 대응하자는 말씀드렸습니다.
 

   감사담당관도 ‘그래, 알겠어요. 그렇게 합시다.’라고 하시면서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고 우리 식구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죠.’라고 말했습니다.


   동료 뒤통수 때리기가 감사실의 본분인가?


   그런데 감사실은 제 뒤통수를 때렸습니다.

   감사실에서 소식이 없어 ‘도에서 왜 늦어지나?’ 하는 맘으로 있는데 징계를 이미 요구했다는 ‘징계의결 요구사실 통보’ 공문을 저에게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 어찌된 영문인지, 어디서부터 누구로부터 꼬였는지, 정말 말문이 막혀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최소한의 예의와 상식도, 인정사정없는 조직이었습니다.


   저가 열 받는 것은 징계가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조직에 신뢰성과 동료애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공무원 개인의 유불리에 따라 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임종만 개인은 힘없고 하잘 것 없는 하파리 공무원입니다.


   공무원노조가 있기에 노조의 힘으로 지난날 저의 역할은 가능했고 이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지난 시절 우리시 감사실은 공무원노조의 투쟁현장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한 부서였고 직원들은 모범적으로 먼저 나섰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감사실은 노조의 무력함을 인지하고 어지러운 공직사회의 지형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먹고 사는 방법인지를 모색했나 봅니다.


   동료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철칙을 말입니다.


   재징계 요구는 중징계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에 대한 도전


   ‘해임처분 취소’ 법원판결문에서 해임이 취소되어야 할 사유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행위가 지방공무원법에 위배된다 하더라도 개인의 사리사욕이 아닌 도지사의 낙하산인사 반대는 공직내부의 잘못된 관행과 비리를 척결하여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공무원의 권익보호, 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여 국민에게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공익적인 목적에서 나온 점,


   둘째, 당시 법외노조였던 전국공무원노조는 그 조직을 유지한 채 공무원노조법에 따른 설립신고를 하여 합법노조로 전환된 점,


   셋째, 이 사건의 원인이 된 공무원노조 경남본부가 주도하는 집회에 참가할 때마다 관내출장명령, 연가조치, 외출조치 등을 취하여 무단결근으로 인한 업무공백을 최소화 하려고 노력한 점,


   넷째, 기자회견 및 규탄대회에 몇 차례 참석하였을 뿐 특별히 과격한 행동이나 폭력적인 행위를 한 사실이 없는 점,


   다섯째, 행위에 비하여 비위의 도가 경하고 경과실만 있는 점, 등을 들었으며 “그 경위 내지 동기 등을 고려할 때 너무 과중한 징계처분으로 비례의 원칙에 위반되었고 인사권자의 재량권 범위를 일탈. 남용한 위법이 있다.” 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에서 보듯이 ‘행위에 비하여 비위의 도가 경하고 경과실만 있다’는 것은 분명 중징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되어 있는데도 도지사의 불법적인 재 징계 요구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지방공무원법에도 법원의 판결로 해임처분이 취소된 공무원에 대하여 재징계를 하지 아니하여도 된다는 규정이 있고,  2004년 이후 공무원총파업으로 파면ㆍ해임 되었다가 법원판결로 복직된 공무원 450명에 대하여 37%인 167명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지도 않았고,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공무원들 중에서 단 18명만이 정직처분은 받았을 뿐 63%인 263명이 불문경고 등 경징계 처분을 받았습니다.


   김지사의 사설 직속조직처럼 돼버린 감사실,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


   2006년 지부 사무실 폐쇄에 저항하다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순천시의 경우에도 7명의 파면ㆍ해임자가 저보다 하루 먼저 법원의 판결로 복직이 되었는데, 재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합니다.


   임종만이 다시 살아나서 밉고 노조가 힘이 없다 하여 위에 열거된 법원의 판결문, 전국의 재 징계 사례 등 검토의 요인이 충분히 있음에도, 한마디 논의조차 없이 첩보작전 하듯 비밀리에 덜렁 또 죽여 줍쇼 하고 김태호에게 갔다 바친 감사실은 김태호 직속조직입니까?


   우리가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공무원노조를 출범시킨 것은 공직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만들어 경직화 시키고 보신주의에 빠지게 하는 감사실 같은 이러한 몹쓸 작태를 없애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참으로 공직사회에서 도태되어야 할 존재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을 분열시키고 권위적이고 관행적인 업무형태로 마산시를 말아먹고 있는 정충실, 최진국, 황송진 같은 자들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러한 자들이 공직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데 역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직사회 개혁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이번 ‘재징계 요구 사태’에 대한 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당사자들은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주시고, 아울러 전 직원 앞에 공개적으로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해야만 같은 조직에서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루하고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정과 임종만 올림.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