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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29 어느 버스운전사의 자영업 퇴출기 by 파비 정부권

  아래 글은 오는 2월 26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간하는 <상남동사람들> 편집회의에서 잘라낸 부분입니다. 즉 책에는 없는 내용이죠. 그래서 미리 이렇게 소개합니다. 약 70여 페이지가 절삭됐는데 이외에도 몇 개의 에피소드가 더 있습니다. 그것도 <상남동사람들> 출판기념회 전에 맛뵈기로 하나씩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글 <파업>의 주인공은 현재 버스운전사입니다. 그는 10년 가까이 (배달)자영업을 하다 얻은 뼈가 썩어들어가는 상처를 수술한 이후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출판기념회 당일은 그가 오후반이어서 저자와의 대담에 나오기가 어려운 형편이지만 근무를 조정해서라도 꼭 나오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책 속에는 그가 버스 운전을 하고 있는 뒷모습 사진도 실려 있습니다만, 아직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출판기념회 웹자보를 올리오니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바라 마지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파비>  


` 2014년 2/26일(수) 18:00 창원사파중학교 체육관 (주차는 운동장) 


파업


김휘성은 꿈결 속에서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그는 벌떡 일어나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여섯시였다. 새벽까지 마신 술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 그렇군. 어젯밤에 최성규를 비롯한 공작과 친구들이 다녀갔었지.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열흘 만에 파업현장에 나타난 그들의 양 손에는 술과 안주가 한가득 담긴 봉지가 들려 있었다. 최성규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매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함께 싸우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밖에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늦었지만 우리도 동참하겠습니다.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 그렇게 힘을 합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최성규는 민추위(민주노조추진위원회) 회원이었고 조직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거기에 대해 그는 돌발적으로 일어난 파업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워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다며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파업이 세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름 전이었다. 민추위 회원이었던 하봉연이 이른바 위장취업자였던 사실이 발각되었다. 회사는 그를 즉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닷새 후에 해고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에 십여 명의 민추위 회원들이 식당에서 식판을 집어던지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우발적이었던 이 사건은 삽시간에 파업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지게차가 컨테이너박스를 실어오고 공장 정문은 거대한 바리케이드로 봉쇄됐다. 검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쇠파이프와 성난 함성에 쫓겨 관리직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어서 공장 울타리에는 붉은 깃발들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런 구호들이 적혀있었다어용노조 퇴진 민주노조 건설. 위원장 직선제 쟁취.’


아니오. 괜찮습니다. 이제라도 와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고맙소, 동지들. 우리 힘을 합쳐 민주노조 반드시 쟁취합시다.”


김휘성은 최성규의 손을 굳게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그는 동지들은 안에서, 우리는 밖에서란 말이 주는 뉘앙스에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보다는 10일 만에 나타난 동지들이 너무도 반가웠다. 민추위에서 홍보부장 역할을 맡았던 그는 최성규와는 막역한 친구이자 동지였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생각에 김휘성을 비롯한 파업노동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처음 파업을 시작할 때 300여 명이 넘던 노동자들의 대오는 날이 가면서 하나둘 고무풍선 바람 빠지듯 떨어져나갔다. 이제 겨우 7, 80명 남짓만이 남아 곧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최성규 등이 방문해준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에 크게 고무된 김휘성 등은 파업 첫날의 의기와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3월의 밤이슬은 아직 차가웠지만 본관건물 2층 사장실에는 훈훈한 온기가 감돌았다.


자자, 한잔들 합시다. 그동안 술 구경도 못했지요? , 이리들 둘러 앉읍시다.”


최성규가 말했다. 그들이 들고 온 봉지에는 소주며 나폴레옹, 캡틴 큐 같은 술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오징어, 새우깡 따위의 안주꺼리도 그득했다.최성규의 제안에 따라 공장 울타리 초소를 지키고 있는 정방대원들에게도 술과 안주가 전달되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살벌한 파업현장은 뜻밖의 방문으로 인하여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불콰해진 김휘성은 애리조나 카우보이도 한곡 멋들어지게 뽑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일 다시 오겠다는 최성규 등을 배웅하고는 곧 사장실 바닥에 누워 얼마만인지 모를 편안한 잠자리에 들었는데, 꿈결처럼 들려오는 하는 함성소리에 잠에서 깼던 것이다.


김휘성은 순간적으로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한 전율을 느꼈다.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아팠지만 그는 번개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재빨리 잠자리 옆에 놓아두었던 쇠파이프를 손에 들고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


그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를 맞이한 풍경은 노란 물결이었다. 세상이 온통 노란색으로 화해 있었다. 그 노란색 물결 위에 몇몇 자그마한 검은 점들이 흩어져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와장창…….”


은빛 쇠파이프가 허공을 가르며 공장 마당에 세워진 승용차들을 가격했다. 새벽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회사간부들이 버리고 간 자동차 유리 파편들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며 비명을 토했다.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다급하게 달려오는 검은 점들은 정문을 지키던 정방대원들이었다.


구사대다! 구사대가 쳐들어왔다!”


공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정방대원들 중 일부는 본관건물 2층으로 도망쳐 들어왔고, 나머지는 정문 반대편으로 죽어라고 내달렸다. 불과 1, 2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노란색 물결은 쓰나미처럼 공장을 집어삼켰다.


본관건물 2층 사장실만이 거대한 파도 위에 홀로 떠있는 섬처럼 흔들거렸다.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에는 여명에 번쩍거리는 40여개의 쇠파이프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구사대의 1차 공장 진입작전은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완전히 고립된 사장실은 한차례 태풍이 쓸고 지나간 뒤의 들판처럼 먹먹한 정적이 흘렀다.


그 사이에 수천 명―실제로 나중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800명이었다―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란 화이바를 쓴 구사대는 대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공장장이었다. 그는 사장실이 마주보이는 광장(나중에 이곳은 민주광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에 구사대를 2열로 전개시켰다


그들은 모두 학생용 가방 크기의 포대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주먹 크기의 돌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두 개의 소화전으로부터 소방호스도 길게 뽑아 연결했다. 별도로 편성한 일단의 노란 화이바 부대가 본관 건물 구석에 사다리를 걸치고 2층 지붕위로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본격적인 2차 전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수천수만 개의 돌과 소방호스로부터 뿜어지는 물대포가 마흔 평 남짓한 사장실을 향해 발사될 것이었다. 구사대의 다른 한쪽에서는, 이미 전세가 결정된 전투에서 후방군으로 편성돼 뒤로 빠진 많은 수의 노란 물결들이 대오를 지어 서서 마치 좋은 구경이라도 한다는 듯이 담배를 피워 물고 저희들끼리 키득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김휘성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런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치 형틀에 묶인 사형수가 자신의 목을 자를 칼을 벼리고 있는 망나니를 지켜보고 있는 심정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으리라.


휴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공장장이 앞으로 나섰다. 포마드를 발라 뒤로 빗어 넘긴 그의 머리가 아침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그는 마치 전쟁의 신 아레스라도 된 듯이 의기양양했다. 양손을 허리에 얹고 두 다리는 한껏 벌려 마음껏 위세를 부린 모습이었다. 그가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전투준비!”

“1열 앞으로!”

소방호스 사격준비!”

“1열 던져!”

소방호스 사격 개시!”

“2열 앞으로!”


노란 물결 속에서 시커먼 돌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우박처럼 쏟아져 날아왔다.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 떼들이 태양을 가리며 새까맣게 날아드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차앙…… 창…… 차창.”


심장을 찢을 듯 미친 듯이 울어대는 유리창 깨지는 소리에 이어 후두두… 퍼벅…… 퍽하고 소리를 내며 시커먼 돌들이 사장실 양탄자 위에 떨어졌다. 뒤이어 두 개의 소방호스로부터 콘크리트 벽이라도 부수어버릴 것 같은 물세례가 쏟아졌다. 사장실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아비규환.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을 헤치며 검은 옷들은 허우적거렸다. 여기저기서 으악하는 비명이 터졌다.


쾅……콰쾅.”


그러더니 천장 위로부터 무언가 둔중한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천장이 일부 깨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갑자기 위에서 노란 화이바 하나가 아래로 떨어졌다. 구사대 중 하나가 발을 헛디뎌 지붕 위에서 사장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도 무릎까지 차오른 물바다가 그에게 구명튜브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가 일어서려는 찰나, 성난 검은 옷들이 그를 덮쳤다. 쇠파이프가 그의 몸 위에서 춤을 추었다. 김휘성은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사람 하나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검은 옷들 사이에 끼어들며 외쳤다.


그만 두시오, 그만 둬! 이놈은 내버려두고 일단 사장실 문부터 방어하도록 하시오!”


그때 김휘성의 눈가에 번쩍 하고 하나의 섬광이 비쳤다. 뜨뜻한 기운이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피였다. 오른쪽 눈두덩이 위에 구사대가 던진 돌이 명중한 것이다.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는데 다시 한 번 소리가 나더니 섬광이 일었다. 뒤이어 흘러내리는 뜨뜻한 핏물. 김휘성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그는 생각했다.


이러다 우리 다 죽고 말 거다. 이왕 죽을 바에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그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살을 헤치며 사장실 한쪽 구석에 쌓아둔 방어용 시너 통 쪽으로 달려갔다. 거기엔 약 오십여 개의 시너 통이 가지런히 적재돼 있었다. 그 중에 한통을 들어 뚜껑을 땄다. 그러고는 머리 위에 들어 올리고 그대로 뒤집어썼다. “촤아아하고 신나 흐르는 소리에 이어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목이 매캐하다. 그리고는 다시 시너 한통을 들어 왼팔에 끼고 사장실 책상 위로 올라갔다. 오른손에는 라이터를 들고 불을 켜고서 높이 들었다.


돌 던지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계속하면 다 죽는다!”


일순 양편 모두에서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커다란 배의 닻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거대한 작살을 들고 2층 사장실 입구까지 올라와 출입문을 부수고 있던 일단의 구사대들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지 황급히 뒤로 물러나 멀찍이 달아났다.


맨 앞에서 작살을 들고 문을 부수던 화이바는 특이하게도 노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는데 마치 악어가죽처럼 울퉁불퉁한 철갑옷을 입고 있었다. 다른 구사대들도 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경찰일 거라고 수군거렸다.


아무튼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투석전을 위해 열을 지어 서있던 구사대들 중에서도 그 누구도 섣불리 앞으로 나서서 돌을 던지려는 자가 없었다. 소방호스도 멈췄다. 그러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공장장이 큰소리로 욕을 해댔다.


, 이 새끼들아. 뭐 하는 거야. 빨리 던져.”


공장장은 다시 김휘성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외쳤다.


어이, 소방호스. 저 새끼를 조준해서 뿌려. 빨리.”


20133. 아직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자욱한 안개가 검은 아스팔트 위를 유령처럼 배회하는 거리를 달리며 김휘성은 담배연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뿜었다. 승용차 앞으로 달려드는 안개가 마치 하얀 소복을 입고 나풀거리며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입술을 비집고 나온 뿌연 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카락 사이를 뚫고 공중으로 피어올랐다가 열려진 창문 틈으로 쏜살같이 달음박질쳤다.


벌써 25년 전 일이군.”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스물다섯 청년이었던 그의 나이가 어느덧 지천명에 이르렀다. 25년 전 민추위의 파업은 처절하게 깨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43명은 시너와 소화전에서 뿌려진 물이 뒤범벅이 된 물에 홀딱 젖은 채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러나 민추위는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2명의 위장취업자를 빼고 모두 훈방된 41명이 다시 노조원들을 규합해 재차 투쟁에 돌입했던 것이다.


노조사무실 앞에서 어용노조 위원장 퇴진을 외치며 노조원들이 다시 농성에 들어가자 화가 난 공장장은 농성노조원들이 보는 앞에서 위원장의 작업복 가슴에 달린 명찰을 뜯어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이렇게 악을 썼다.


야 이 새끼야. 네가 위원장이야? 위원장이 이런 것도 하나 해결 못해? 너는 새끼야, 위원장 자격이 없어.”


노조원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위원장은 한시간만에 사퇴서를 던져버렸다. 대의원들도 일괄 사퇴했다.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노조위원장은 사퇴하기 전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소집하고 노조규약을 개정해 간선제이던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는 친절까지 베풀었다. 실로 졸지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이날 오후 열두 명의 민추위 위원들이 그들이 물러간 노조사무실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위원장 선거에 누구를 내보낼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서로 네가 해라” “네가 해라하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그 중 한 위원이 비밀무기명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각자가 지명하는 후보 이름을 써넣고 가장 많이 나온 사람을 위원장후보로 추대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김휘성이 다섯 표, 이영수가 네 표, 최의선이 세 표가 나왔다. 김휘성은 민추위가 추대하는 노조위원장후보로 선거에 출마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표차로 위원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업 주동 등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되었으며 차가운 밤거리를 떠돌다 마침내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16개월을 살았다.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는 택시운전사가 되었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4년간 핸들을 잡고 도시의 거리를 누볐다. 택시운전사 시절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기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생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2년 만에 투자한 돈을 다 털어먹은 그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월급 30만 원에 15일 운행하면 사납금 내고 하루 10만 원 내외가 남아 월 180만 원 정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택시업계의 사정은 어려워졌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난 직후에 그는 택시운전사를 그만 두고 자영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그가 자영업자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더 벌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보다는 수입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직장상사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또 자기계획 아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8년 만에 자영업시장으로부터 스스로 퇴출되는 길을 택했다.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만큼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자영업은 큰돈도 벌 수 없었지만 안정적인 수입도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적더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게다가 철가방을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던 그의 엉덩이 아래쪽 뼈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옛날 파업 당시에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부위가 힘든 배달일 때문에 도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이상 돌솥을 철가방에 넣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일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핸들을 잡았다.


이번엔 버스운전사였다. 마침 택시운전을 할 때 틈틈이 시간을 내 대형면허를 따놓았던 것이다. 깜깜한 이 시간에 그는 버스를 몰기 위해 시내버스 종점 주차장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새벽 다섯 시. 세상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어둠이 점령한 거리엔 붉은 가로등만이 유령처럼 검은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는 뿌연 안개들의 행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휘성은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인 담배를 입술로 가져갔다. 가슴속 깊은 곳까지 연기를 빨아들인 다음 푸우 하고 내뱉는다푸른빛이 감도는 흰 담배연기가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칼을 타고 피어오르다 자동차 천장에 부딪힌 다음 아래로 떨어지며 마치 거리를 떠도는 유령에 이끌리듯 차창 밖으로 쏜살처럼 달음박질친다.


그는 크게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오전반 출근을 위해 새벽길을 달리다 도로 위에 떠도는 자욱한 안개를 만날 때면 가끔 이렇게 까마득한 옛일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푸른빛이 감도는 연기를 내뿜으며 나직하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벌써 25년이나 세월이 흘렀어.”



바람


그것은 바람이었다. 아니 필연적으로 불어오고야 말 계절풍이었다고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그것은 초여름에 몰아닥친 비바람이었다. 김휘성이 2년여의 수배와 그에 이은 1년 반가량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의 품에 안겼을 때,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달라져 있었다.  


······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