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5.06.06 황당괴변, 박원순 때문에 박근혜 미국 못가나 by 파비 정부권 (1)
  2. 2011.11.17 박원순 폭행사건,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by 파비 정부권 (1)
  3. 2011.10.12 촌스런 박원순 vs 예쁜짓 나경원, KBS토론회 승자는? by 파비 정부권 (6)
  4. 2010.08.02 학교가 세상을 바꿀까, 세상이 학교를 바꿀까? by 파비 정부권
  5. 2009.08.10 80년광주로 돌아간 이시대에 "거꾸로 희망이다?" by 파비 정부권 (3)

박원순 시장이 무엇 때문에 유럽 순방을 취소하고 스스로 메르스 대책본부장을 자임했겠습니까? 박 시장이 대권주자라는 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박근혜 대통령하고 뭔가 비교가 되려고 그러는 거지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겁니다.”

 

모 방송사의 뉴스프로에 출연한 한 논객의 말이다. 한숨을 쉬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역시 개 눈깔에는 똥밖에 안 보이는 거로구나. 물론 이해가 안 되는 바 아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종편이든 케이블방송이든 나와서 자기도 모르는 무슨 소리든 떠들어야 살 수 있으니까.

 

나는 변희재도 이해했었다. 그가 그러는 것도 다 먹고살기 위함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먹고산다는 게 얼마나 처절하고 눈물겨운 일이던가. 그리고 인간은 여느 동물과 달리 자기도 모르고 하던 일을 계속하다 보면 그게 진짜인 것처럼 믿게 되는 능력이 있다.

 

사이비종교도 그래서 번창하는 거 아닌가.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비일비재하다. 나는 박원순 시장이 특정 의사를 지목해 발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와 과장된 제스처로 인한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박 시장의 발언처럼 과잉대응이 늑장대응보다 훨씬 낫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안전이다. 누구 말이 옳니 그르니 진실공방 할 때가 아니다. 대통령이 있는데 서울시장이 왜 나서나 따질 때도 아니다. 대통령이 일 잘하면 서울시장이 나설 일도 없었을 거다.

 

박원순 시장이 유럽 순방 취소했다고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가는 게 뭐 어떻다 이런 말씀은 하실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16일까지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박근혜 대통령 미국 순방 가시면 됩니다. 그걸 누가 뭐라 합니까? 박 시장하고 상관없이 가시면 되죠. 그러나 16일까지 진정이 안 되면 가시면 안 되는 거고요.”

 

이 분은 정신 똑바로 박힌 논객이다. 옳은 말이다. 박원순 때문에 미국 못 가게 됐다고 시위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시면 된다. 사태가 진정이 안 되더라도 꼭 가시고 싶다면 가시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서울시장 눈치 볼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일개 논객이 대통령 걱정해줄 일도 아니고.

 

케이블방송 뉴스 프로그램 보면서 아, 이런 거 자꾸 봐야 되나, 정신이상자들의 쇼 같은 이런 방송을 자꾸 봐야 하나, 내가 왜 이걸 보고 있지, 하는 자괴감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먹고사는 게 중요해도 그렇지, 꼭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야 되나.

 

초딩들에게 쪽팔리지도 않을까. ㅠㅠ

Posted by 파비 정부권
박원순 서울시장이 폭행을 당했다. 그것도 공무수행 중에 당했는데 그것이 또 하필 민방위훈련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박 시장을 폭행한 60대의 여성은 박 시장을 향해 “빨갱이” “김대중, 노무현 앞장이”라고 외치며 주먹으로 뒷목을 내려치는 등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과격한 여성이 나중에 경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박 시장을 일러 이른바 종북좌파라고 규정해 그랬다는 것인데 유사시-정확하게 말하면 북의 도발-에 대비해 훈련을 총괄하던 서울시장을 현장에서 구타했다는 사실은 실로 자기모순이다.

이 여성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대로 뉴라이트와 관계된 인물이었을 수도 있고 또 일각에서 의심하는 바와 같이 미친-의학용어로는 정신이상이라고 한다-여자일 수도 있다. 어떠하든 진실은 경찰이 밝힐 일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진실 수사를 믿지 않지만 현재로선 믿을 게 그곳밖에 없다.

그런데 박 시장이 폭행당한 그날 밤, 한 술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그 술집 주인이 하는 말. “아, 그 여자가 괜히 거기까지 가서 박원순이를 때렸겠어요? 뭔가 앙심이 있으니까 때렸겠지요. 그렇잖아요. 아무 이유도 없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때리고 그러겠어요? 불만이 많았나보죠.”

그러자 함께 술을 마시던 내 친구가 하는 말. “그 여성분이 과거 전쟁 시기에 북한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많이 입었다거나 그런 거 아닐까?” 내 말. “나이가 62세면 한국전쟁과 연관시킬 무엇이 있나? 전쟁 나던 해에 태어났을 텐데.”

아무튼 그 술집 주인과 친구는 계속해서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계속 주장한다. 거기에 내 말. “아니, 그렇다 치고. 그게 박원순 시장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아, 박 시장이 막말로 그 여자네 가족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냐고. 그 여자가 미친 거잖아요.”

여기서 참고로 술집 주인의 정치성향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주인은 여자였는데 친구의 중학교 동기라고 했다. 그녀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했다. 여자도 대통령 한번 해야 한다면서. 그녀의 부친 박정희야말로 친일파에다 진짜 빨갱이 출신이었다는 말도 결코 믿지 않는 그녀.

아마도 그들에겐 서울시장을 폭행한 미친-내 관점에선 미친 여자다. 아이엠피터 등 다른 블로거들의 관점은 뉴라이트 교육과 조종을 받은 여자다-그녀의 폭력은 이유 있는 항변 같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폭력은 나쁜 것이지만 이유가 있었을 것이므로 정당하다는 것.

이 순간, ‘아, 정말 사람이 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부러 비싼 돈 내고 술 마시면서 분위기 잡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세상에 보편적 정의란 없는 것일지도 몰라. 정의란 그저 편의에 따라 만들어낸 패거리들의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일지도 몰라.’

작년 5월이었던가. 4대강사업 반대의 취지로 지율스님이 공들여 찍은 낙동강 사진전을 하려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십여 명에게 둘러싸여 위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 가운데 그 중 한명으로부터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당했던 것이다.

그때 몰려왔던 십여 명의 사람들은 알고 보았더니 이른바 진보적 단체로 분류되는 주민단체였다. 지금도 황당한 것은 아직까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돌아다니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패거리들끼리의 이야기이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찜찜한 것은 그들이 버젓이 자신들의 활동을 미담사례로 발표하는 등 뻔뻔함이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하긴 삼촌뻘이나 되는 동료의 이마를 흉기로 때려 40바늘이나 꿰매는 상처를 입혀 법의 처벌을 받고도 당당하게 모 진보단체의 책임실무자로 일하며 토론회에 나와 겨레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고 보니 한국사회에서 폭력에 관한 한 보수, 진보가 따로 없다. 자기편이라고 폭력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것도 오십보백보란 생각이 든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간디에게 있어서 비폭력운동과 진리파지는 두 허파와 같았지만 이 시대 우리에겐 폭력만이 허파인 것일까.

폭력행사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동료들에겐 동질감을 획득하는 것이 어쩌면 나약한 개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살아가는 방편일 수도 있겠다. 아니라면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빠진 소인배의 불타는 사명감일 수도 있고 또 아니라면 그저 미친 것일 수도 있지만.

경찰이 일단 박 시장을 폭행한 여성을 구속하기 위해 영장을 신청했다니 다행한 일이다. 그녀는 이전에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석한 정동영 의원에게도 똑같은 폭력을 행사한 상습범이었다. 그때도 정동영 의원은 빨갱이에 종북좌파가 됐다.

그녀의 눈에는 한나라당을 제외하고는 아무나 빨갱이로 보이는 것일까. 진짜 종북좌파가 자신이 저지르는 행동을 보고 속으로 웃고 있을 거란 사실을 그녀는 알기는할까. 아무튼 그날 밤 나는 술이 많이 취했다. 내 심정은 어느 광고카피처럼 꼭 이런 것이었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10월 11일 오후 10시) 서울시장 후보토론회를 보며 느낀 점입니다.

박원순 vs 나경원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참 예쁩니다. 저야 뭐 나경원처럼 생긴 여자가 그렇게 특별히 예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다 예쁘다고 하니 예쁘다고 해야죠. 이지적이면서 똑똑하고, 예쁘고 그리고 말 잘하고 그렇다는 게 일반적인 중론인 것 같습니다만,

저는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김민전 교순가요? 그런 분이라면 벌써 대통령을 시켜줘도 몇번을 시켜줘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에 사진을 가만히 보니 예쁘긴 예쁜 거 같네요. 하지만 TV에 나온 모습 어떨 때 보면 광대뼈가 많이 나온 게 영 아니더라 말입니당~ 하긴 뭐 다 제눈에 안경이니까)

아무튼, 나경원 후보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뭔지 잘 알고 있고 그걸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워낙 정치판에서 오래 물을 먹었으니 소위 경상도 시쳇말로 빠삭한 것입니다. 그에 비해 박원순 후보는 참 촌스럽습니다. 보기가 민망하고 불안할 정도로 촌스럽더군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같은 경상도 사람이지만 그는 정말 놀라우리만치 토론에 익숙하고 노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노무현이었다면 나경원 정도는 게임도 안 되게 깨졌을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재야에서 시민운동만 하던 박원순에게 후보토론회는 버거운 일인 듯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이 나경원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불안하게 지켜보면서도 박원순이 결코 나경원에게 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전체적으로 나경원을 압도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진정성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원순은 좀 촌스럽지만 우직하게 자기 철학과 비전을 시민들 앞에 밝힘으로써 당당하게 검증받고 싶어합니다. 그에 비해 나경원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활용한 이른바 ‘예쁜 짓’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살짝 비튼 얼굴에서 비스듬히 흘러나오는 야릇한 눈웃음. 그게 나경원 본래의 모습일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제 눈엔 그렇게 비쳤습니다. 거기에 더해 상대를 향해 던지는 일종의 이미지 공격이라고나 할까, 너 뭘 모르는구나, 그래서 참 불쌍하다, 이러면서 자기 우위를 과시하려는 이미지 전술.

워낙 토론 프로에 자주 출연했고 강한 면모를 보였던 나경원이었으므로 이런 전략과 전술이 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박원순은? 진짜 불쌍해보이더군요. 나경원이 그런 식으로 은근히 몰아붙일 때 입술이 살짝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일순간이긴 했지만 그런 불안정한 모습이 불안해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일순간이었습니다. 박원순은 나경원처럼 닳고 닳아 입놀림에 노련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진정성으로 그 한계를 극복한 듯이 보입니다. 제가 심판이라면 이 경기의 승자는 박원순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축구경기에서 아무리 현란한 개인기로 발재간을 많이 부려도 결과는 골을 넣는 팀이 승리하는 겁니다. 저는 서울시민들이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라면 틀림없이 박원순의 진정성을 높이 살 뿐 나경원의 예쁜 짓에 결코 넘어가지는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대세에서 밀리는 나경원은 어떻게든 박원순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쳐 흠집을 내볼까 하는 불량한 태도가 오늘 토론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예쁜 짓에다 상대 깔보기, 흠집내기가 한나라당 선대본의 기본전략인 것이 그대로 보이는 장면이었습니다.

박원순 후보가 “왜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안 나온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끝까지 답변을 하지 않고 다른 말로 이리저리 돌리더니, 정작 “답변이 너무 강연 같다, 토론을 해달라”는 말로 본질을 흐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단답형으로 질문할 테니 단답형으로 답변하라는 주문까지 합니다. 그 장면에선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내가 단답형으로 말한다고 어째서 상대까지 단답형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인지. 요즘은 경찰서에서 조서 꾸밀 때도 이렇게는 안 합니다. 국회 청문회에서는 아직도 그런다지요? 질문에 예, 아니오로만 답하세요, 하고 말입니다.

또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가 아직도 복식부기를 쓰지 않고 단식부기를 쓰고 있다는 점에 대해 비판하자 나경원 후보는 끝까지 단식부기를 쓰는 게 옳다는 식으로 우기기도 합니다. 도대체 뭘 알고나 하는 것인지. 단식부기는 가계부를 쓸 때나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정부회계기준이라는 것이 있겠죠. 나경원 후보가 아무런 근거없이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있다고 해서 옳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게다가 정부회계기준은 기업회계기준처럼 강행법규적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만약 어떤 기업이 복식부기를 쓰지 않고 단식부기를 쓰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회가 난리가 나겠지요.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기업회계기준은 복식부기를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회계규모가 일반 기업에 비해 적어서 그런 것일까요? 서울시의 회계규모는 어떤 대기업보다도 큽니다. 그러면 당연히 가계부에나 쓸 단식부기를 써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런데 나경원 후보는 부기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 부채감축 방안에 대해 빨리 설명하라고 채근합니다.

이런 게 적반하장이라고 하는 건데요. 서울시의 엄청난 부채는(제 귀가 제대로 들은 게 틀리지 않다면 박원순은 복식부기로 하면 25조, 단식부기로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부채는 19조라고 해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누가 만든 것일까요? 자기들이 다 만들어놓고 엉뚱한 소리 하는 겁니다.

물론 박원순은 부채감축 계획이라든지 공공임대주택 8만호 건설계획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게 좀 설명이 길어지면(물론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길다말다 탓할 이유도 없지만) 강의식이니 어쩌니 하면서 불평을 하다가 예의 그 야릇한 눈웃음을 흘리는 것입니다. 가소롭다는, 일종의 이미지 공격이죠.  

아무튼 제 느낌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한나라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에 비해선 나경원을 덜 미워하지만 나경원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박원순 팬도 아닙니다. 민주당 팬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민주당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토론회를 보고 느낀 점은 나경원의 토론 태도는 매우 더티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노련한 토론 기술과 그동안의 매너에 대해선 인정하지만 오늘 토론회에서 보인 모습은 상당히 부정적입니다. 그에 비해 박원순은 노련하지도 못했고 표정관리도 잘 안됐지만(많이 노력하고 개선된 흔적은 보였습니다) 진정성 면에선 완승이었습니다.

서울시민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달콤한 언변을 택할 것인지, 촌스럽지만 우직한 진정성을 택할 것인지는 결국 서울시민들의 몫입니다. 저는 어차피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지만, 서울시장 선거라는 게 사실상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선거라는 점에서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이말 밖에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네요. “잘 돼야 할 텐데!”

이 글은 내일 아침 6시 30분에 공개될 수 있도록 예약해놓고 이만 잘랍니다. 여러분도 모두 안녕히 주무시고 좋은 꿈꾸시기 바랍니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 꿈 이야기가 하나 생각나는데요. 그건 내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일까지 안 까먹고 생각난다면. 흐흐~

Posted by 파비 정부권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운동 중에 하나가 대안학교 운동이다. 소셜디자이너란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박원순이 그 대안학교들을 둘러본 감상과 거기에서 발견했다는 희망을 들고 왔다.
 
「마을이 학교다」. 박원순이 발견한 희망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운 절망의 그늘과 좌절의 한숨 소리에 탄식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공동체는 회색의 암담한 미래로 채색되고 말았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가계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휘청거린다. 박원순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새순들이 곳곳에서 돋아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을이학교다함께돌보고배우는교육공동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박원순 (검둥소, 2010년)
상세보기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에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대안교육에서 찾고 있었는데, 이미 네트워크를 이루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한 것이다. 박원순이 둘러본 20개가 넘는 학교들은 실제로 기쁨과 희망이 충만해 있었다.

대안학교.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대안학교란 어떤 것일까? 제도권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학교? 아니면,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

어떤 정의든 기존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운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을이 학교다」에 등장하는 대안학교들은 하나같이 행복이 넘쳐났다. 우선 교사들이 가장 행복해보였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교사, 그들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풍족한 거름이 아닐까. 

대안교육으로 가장 덕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일 것이다. 우선 학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고도 보다 양질의 제대로 된 교육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 이상 주입식 교육의 저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초등학교 과정에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 넘쳐나는 교육,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물론 풀무학교와 이우학교처럼 중등학교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1호로 인정받는 학교다. 1950년대부터 그 명맥이 이어왔으니 역사도 오래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것이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배출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철학이다. 이우학교는 풀무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민족사관고가 생각났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튼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안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과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나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지만, 자라나는 새싹에게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리라.

그러나 그런 학부모들도 중등학생의 학부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그런 학부모들의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믹스한 그런 학교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우학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100대 수능 학교에 들고 외국어와 언어 영역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 아닌가.

만약 이우학교가 나름 제도권 교육 시장에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라도 이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을 지향하는 이우학교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결국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매우 높고 계속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있지만, 그 유용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꿈은 깨어진다. 그들은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비전이요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초두에 물었듯이, 과연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교육을 통해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천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몸에 향수를 뿌리고 깨끗한 옷으로 치장을 한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교육이 진실로 교육다운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선 먼저 세상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교육을 배워야 할 모델로 삼는다. 일전에 진보신당의 심상정씨가 핀란드에 다녀와 그쪽 교육 실태에 대해서 보고 겸 강연을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긴 바뀐 세상 아닌가? 우리완 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교육혁명도 가능했던 것 아닐까?”

아마도 우리 사회도 핀란드처럼, 아니 그 반만이라도 닮은 세상이 된다면 박원순이 기쁜 마음으로 답사한 대안학교들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마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만 말해도 좌파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다.

마을이 학교다 - 10점
박원순 지음/검둥소

핀란드에서 온 어떤 여성이 말했던가.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에선 우파도 못 돼요!”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핀란드의 우파는 한국의 좌파보다 훨씬 좌파적이다!” 이런 말이 되겠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박원순이 유람한 유토피아들은 매우 의미 있는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던져주고, 장밋빛으로 물든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정말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서 굳이 너나 할 거 없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 병폐가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면, 이들이 심어 놓은 값진 노력들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대안교육이 주류교육이 되는 그날! 사회가 소득 순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학교도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상황은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대안교육이 튼실하게 뿌리내리길 기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마을이 학교다」에 나오는 학교들의 노력들이 더욱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원래 쓰려고 했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사IN에서 만들어낸 책, 거꾸로 희망이다>, 이렇게 제목을 잡으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보내준 이 책을 읽는 동안에 30년 전에나 일어났을 사태가 2009년 오늘에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물론 그 목격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했습니다. 현장에 있지 않아도 현장의 비참함이, 참혹함이, 전쟁 같은 공포가 먹구름처럼 제 가슴을 뒤덮었습니다.
 
거꾸로, 희망이다 - 10점
김수행 외 지음/시사IN북


80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은 방송사 언론들이 완전히 죽지 않아서 경찰의 폭력 장면을 여과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폭력이었습니다. 국가에 의해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폭력, 이 폭력은 합법인지 불법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쌍용차 노조가 진압된 후(모두들 협상 타결로 대타협을 했다고 하지만 제 눈엔 진압입니다) 노조 간부들은 수십 명이 구속 됐습니다. 그러나 무기를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포착된 경찰 중 구속된 자가 있다는 기사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엊그제 어떤 진보 인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민주주의를 역진 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파쇼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그는 제가 속한 진보신당의 지역당 위원장입니다. 그에게 이런 말을 가끔 들은 바가 있긴 했었지만, (평소 그를 존경스럽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이날은 도저히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이 파쇼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때를 파쇼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80년 광주의 봄처럼 꼭 대검과 총으로 시민을 살육해야만 파쇼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러나 쌍용차 공장 지붕에서 벌어진 사태는 경찰들이 대검과 총만 안 찼다 뿐이지 80년 광주의 상황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무자비한 살육이 전개되고 있을 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우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학교에 잘 다녔고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그렇지 않았던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평택에서는 전쟁의 광풍이 휩쓸고 수많은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온하게 살아갑니다. 그리고 정권은 평택의 쌍용차 노조는 폭도일 뿐이며, 이 폭도들을 진압한 것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당연한 것이었고, 이제 대한민국은 평온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시나리오는 80년 광주항쟁 때나 2009년 평택 쌍용차사태나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진@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세서 세상보기


대한민국은 이명박 씨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절망적인 상태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스스로 자랑했던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747? 그런 것이 있었습니까? 그런 따위는 미국의 보잉사 공장에서나 찾을 일입니다. 이명박 씨가 한 일은 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경제를 시궁창에 쳐 박은 일입니다. 시사IN이 펴낸 책 《거꾸로 희망이다》에서 김수행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공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공황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자본주의에 공황은 흑사병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케인스가 등장하기 전에 이 공황은 10년을 주기로 발생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도 실은 이 공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직접적인 계기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 제국들은 자본주의를 수정해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수정자본주의(혹은 수정사회주의) 정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10 년을 주기로 일어나던 공황을 이연시키거나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 무시무시한 공황에 한국 경제가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만 공황에 빠진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도 공황에 빠진 것입니다. 《거꾸로 희망이다》는 공황에 빠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책입니다. 경제가 공황에 빠진 것은 국민이 합심해서 열심히 일하면 헤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황에 빠진 민주주의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국민이 합심하고 싶어도 합심하지 못하도록 정권이 방해하는 것이 예사입니다.

쌍용차사태에서 우리는 그걸 보았습니다.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길을 찾도록 이끌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대화와 타협에 폭력을 가합니다. 정부와 자본이 책임져야 할 경제공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면서 "너희들이 죽지 않으면 회사를 살릴 수 없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참으로 비통함을 느낍니다. 많은 국민들 중에 이런 이데올로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 죽어야 할 사람들에게 살아나는 경제가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이토록 절망적인 민주주의가 공황에 처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성인 여섯 사람을 또 다른 여섯 사람의 지성인들이 인터뷰하고, 강연하고, 질문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낸 책이 바로 《거꾸로 희망이다》입니다. 제일 먼저 이문재 시인이 녹색평론 대표 김종철 교수에게 '생태적 상상력'을 묻습니다. 그 다음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에게 '위기의 심리'에 대해 질문합니다. 

정치경제학 전문가인 김수행 교수와 정태인 교수가 '자본의 미래'를, 우석훈 교수가 조한혜정 교수에게 '문화적 상상력'에 대해 묻습니다. 시민운동가 하승창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함께 '대안경제'에 대한 해법을 상상해봅니다. 정해구 교수는 서중석 교수와 함께 '역사의 위기'에 대하여 토론을 벌이고 "역사는 후퇴하는 게 아니라 에돌아갈 뿐"이라는 결론을 끌어냅니다. 책은 대화체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했던 강연회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그런 만큼 딱딱하지 않습니다. 편안합니다. 연사로 등장하는 열두 사람의 주장도 간결하고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거꾸로 희망이다!"에 대한 희망이 진실로 느껴지는 듯합니다. 이 글의 초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책을 읽는 중에 쌍용차 무력 진압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에 거의 백기투항하다시피 한 노조와 협상을 벌여 대타협이란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분노와 절망으로 숨조차 쉬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인 내게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사치스러웠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거꾸로 희망'이란 말이야!" 정말이지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숨을 가다듬고 책을 끝까지 다 읽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역시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책의 연사들 덕분입니다. 게다가 이 책이 진실로 "거꾸로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살인진압규탄 농성중인 강기갑 의원에게 떠나기를 요구하는 사진속 여인들의 뒷모습에서 측은함보다는 비정함을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도 무엇이 희망이라는 것인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모르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그렇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희망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로 이 글 앞에 포스팅했던 <쌍용차아내모임, "제발 그들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세요">에서 보았듯이 산 자의 아내들이 쌍용차 정문에서 돗자리를 깔고 살인진압을 규탄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강기갑 의원을 찾아가 떠나기를 강요하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입니다. 

나는 그녀들, 산 자의 아내들의 비정한 모습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희망"이 있다는 열두 연사들의 열띤 웅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미심쩍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희망이 있는 것일까? 책 속에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중의 한 분이 김종철 교수에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혹시 최근 신문과 방송에서 가장 히트치고 있는 광고가 뭔지 아십니까?" "아니요 잘 모릅니다." "죽었을 때 매장해주는 거. 상호부조회사." "네, 주로 케이블TV에서…."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 공동체가 모두 모여 장례를 치르고 매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매장을 책임져주는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두 개인의 일입니다. 이제 사람은 돈이 없으면 자유롭게 죽을 자유마저도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정말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책의 연사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거꾸로 희망이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나는 그 말이 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작정입니다. 차분하게 숨을 가다듬고… "정말 거꾸로 희망일까!", 해답을 찾아보기 위하여.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파비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