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5.19 장대 형, 바다, 이런 소재로 소설 한번 써볼까 하는데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7.21 해양도시 마산에 왜 바다가 없어? by 파비 정부권

장대와 바다


  1


  목포에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나는 직감적으로 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았다. 형은 선장이었다. 30여 년을 어선에서 잔뼈가 굵어 검푸르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언제나 나야말로 진정한 바다사나이야!” 하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 바다는 삶 자체였다. 그는 바다에 있을 때가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먹는 것조차도 바다에서 난 것이 아니면 좋아하지 않았다. 육지에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진짜 맛있는 것은 바다에서 나오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른바 바다에서 난 것 중에서도 장대라는 물고기였다. 암갈색 몸빛을 지닌 장대는 하얗고 펀펀한 배로 근해의 얕은 모래진흙 바닥을 기어 다닌다고 했다. 몹시 못생긴 대가리 아래 가슴 밑에는 부챗살 모양의 지느러미가 달려있는데 이 지느러미로 바닥을 더듬으면서 짐승처럼 걸어 다닌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장대라는 놈은 아가리 옆에 푸른 수염이 두 개 돋아있는데 큰소리로 울 때는 마치 개구리가 우는 것과 같다. 해질녘에 울어대는 것도 흡사하다고 하였는데 어쩌면 울퉁불퉁하게 생긴 형상이 개구리와 비슷해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그 연유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여튼 워낙 이 물고기를 좋아하는 그를 사람들은 장대라고 불렀다. 그에게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 그가 그저 장대를 좋아했기 때문만은 아니고 그의 생긴 얼굴 모양이 장대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실제로 그의 얼굴은 장대의 그것처럼 일그러져 있었으며 양 눈 사이가 멀찍이 떨어져 균형이 맞지 않는 점도 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근해의 고기잡이배에 정착한 그는 근해의 밑바닥에 정착한 장대와 확실히 닮은 점이 있었다. 그래서였던지 어릴 때 그의 부모나 일가친척들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울룩불룩하게 생긴 그를 모개라고 불렀지만 바다사나이가 된 이후로는 장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시간이라면 선장인 그는 목포 선적의 배를 이끌고 충청도 태안의 앞바다에 떠있거나 어느 항구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잠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여보시오. 혹시 장대 씨 동생 아녀요?”

  “네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요?”

  “아 여기 목폰디요. 장대 씨 동생뻘 되는구먼이라. 그란디 아무래도 장대 형한테 무신 일이 생깄는갑소.”

  “, 기억납니다. 청산도 누님이시군요. 그런데 그게 무슨 말씀이지요?”

  “형이 타는 배 선주한테서 연락이 왔는디요. 장대 형이 전화가 안 된다 안 하요. 전화를 안 받을 사람이 아인디 전화가 안 된다 그러면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이 아니겄어요? 배에도 없다 하고. 쓰던 물건이며 잠자리도 그대로 놔뒀다 안 허요. 뭔 일이 난 게 틀림없어라. 선주 전화번호 가르쳐 줄랑게 전화 한번 해보시오.”

  “……

  늦은 밤 천리 길이나 되는 먼 곳에서 달려온 벨 소리가 울어대며 공중으로 흩어진 자리에 훌쩍 느티나무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병원 정문 옆 휴게소를 지키고 있는 이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가지를 흔들며 지나갔다. 뒤따라서 가을의 냉기가 실려 왔다. 시계는 여덟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0월에 들어선 해는 이미 일찌감치 떨어지고 사위는 스산한 어둠에 덮여 있었다. 보안등만이 하얀빛을 뿜어내며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아래 탁자 위에서 맥주 캔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하나를 집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함께 술을 마시던 고도 형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빨리 전화해봐라.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가?”

  젠장, 하고 나는 소리쳤다. 바로 엊그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던 것이다. 의사는 뇌졸중이라고 했다. 흔히들 중풍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왼쪽 팔과 왼쪽 다리가 마비된 아버지는 병실에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온종일 난리를 치고 기진맥진 이 자리에 앉아 전화를 걸었던 것이 이틀 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제 새벽이라고 해야겠다. 한밤중. 12시 반쯤 되었을까. 형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몇 차례 더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형의 휴대폰은 묵묵부답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설사 그것이 곤히 잠든 한밤중이라 해도 반드시 전화를 받는 사람이었다. 왠지 모를 불안이 뇌리를 스쳐갔지만 이내 불평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목포에서 형과 함께 지내던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게 3년 전 여름이었던가. 그때 형은 말했었다.

  “근아, 미안하다. 허지만 어쩌겄냐. 나는 바다에 나가야 하고 육지에는 아버지를 보살필 사람이 없으니. 고생 되더라도 니가 좀 맡아서 해야겠다.”

  어머니가 돌아간 이후로 아버지는 형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폐암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골 한구석 낡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누운 자세로 어머니가 호흡곤란을 호소해왔을 때 우리는 불행이 목전에 다다랐음을 느꼈다. 대개 그러하듯 우리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반대로 희망을 생각하는 법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불행 따위는 일어날 리가 없으며 그것은 남의 일이거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불행이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며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정황이 명백해지더라도 머리를 흔들며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것이어서 얄궂게도 그런 바람을 단숨에 비웃어버린다. 적의 기습에 허둥지둥 진영을 수습해 달아나는 패잔병처럼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그마한 마당과 밭뙈기가 딸린 낡은 슬레이트집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몇 가지 꼭 필요한 짐만 챙겨서 형이 인도하는 대로 목포로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병원에서 폐암선고를 받았을 때 불행은 거짓말처럼 운명이 되었다.

  “근아, 잘 들어라. 병원에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폐암 같다 안 하냐. 말기라는디 오래 못 사신다 그래야. 힘들더라도 마음에 준비를 해야쓰겄다휴, 어쩌겄냐. 명이 그리 밖에 안 되는 것을.”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어조에는 체념이 묻어있었다. 빽빽한 도시의 숲을 지나 저쪽 산마루 너머에서 누런 섬광이 부챗살처럼 퍼져 올랐다. 금세 눈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잔뜩 찌푸린 잿빛하늘에 물감이 번지듯, 이내 공중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같이 누런 빛깔들로 채워졌다. 땅이 흔들렸다. 좌우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대지가 누렇게 물들어가는 허공으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순간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머니의 불행 앞에 기껏 튀어나온 소리가 겨우 이런 것이었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두려움에 떨며 겪어보지 못한 미래를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계속)




며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빈둥대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걸 끄적거려 보았습니다. 대충 5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각 장마다 20쪽 정도로 해서 100여 페이지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대개 글이 늘어지는 제 성향을 고려하면 그 이상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2장부터는 7,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광산노동자 시절 이야기, 양정모가 금메달 따던 해의 마을 풍경, 기동타격대 방위 시절 요정 뽀이 시절 이야기, 장대처럼 얼굴이 일그러지게 되는 사고 이야기 등이 이어지고, 아, 10·26 이야기도 있을 것 같고요. 그 마을이 박정희하고 좀 관련이 있거든요. 3장에서는 배 사고 소식을 듣고 태안으로 가던 중 도로에서 일어난 에피소드, 자본주의 실상에 대한 대화들, 아버지의 군 시절과 훈장, 이를 불태우게 된 사연들, 억수처럼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태안에서 선주와의 조우, 그의 태도 등이, 4장에서는 형의 실종, 수색, 죽음과 해경, 형이 비금도에서 선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추억, 뱃사람들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청산도 누님, 그리고 목포 바닷가에 남모르게 형의 유해를 안장할 때 이야기, 그때 친구들의 태도, 형의 죽음으로 알게 된 복잡한 가족관계,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 선주와의 다툼, 음, 이건 좀 비정한, 혹은 비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5장은 아직 생각 중인데, 비금도에 직접 가서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바다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잘 될지 말지. 그러나 하여튼 역사적 맥락 속에 살아있는 가족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혹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조언 좀 주세요. 물론 제가 잘 아는 분이실 테고, 제 연락처도 아시죠?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 정도 수준을 바라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





















대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게, 많이 덥재? 여기도 보통이 아이다. 사람 딱 죽긋네.”
“네, 많이 덥습니다. 본격적으로 더울 모양이네요.”
“이사람아, 그래도 자네 사는 마산은 좀 시원하잖아? 거는 그래도 좀 걸어 나가면 바다도 있고 말일세.”
“…….”
“시원한 바닷바람 좀 쐬고 그러면 훨씬 안 낫겠나?”
“그야 그렇겠지만, 형님, 마산은 바다가 없습니다.”
“아이, 그게 뭔 소리로? 마산에 바다가 없다니? 마산이 해안도시 아니었나?”
“글쎄요. 해안도시가 맞는 거 같기는 한데, 그런데 바다는 없습니다.”

대구에 사는 아는 형님으로부터 마산은 바다가 있어서 시원할 거라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던 제가 마산엔 바다가 없다고 말하자, 이번엔 그 형님이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그는 도무지 제 말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믿기도 어려운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합니다. 전국 어디에 사는 사람이라도 백이면백 마산은 바닷가에 있는 해양도시라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15년 전 우리집이라면 둥그런 달처럼 마산만이 훤히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가더라도 바다에 접근할 순 없다.


사실 마산에도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8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마산엔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해수욕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건 저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담할 순 없지만, 경남도민일보가 몇 년 전에 기획 연재한 기사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산시청 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었고 그 뒤로 울창한 송림이 있었는데(아마도 세무서 자리겠지요), 서울에서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는 겁니다. 

인천의 송도해수욕장과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이었다고 합니다. 무학산에 올라가서 마산만을 내려다보시면 과거에 존재했을 월포해수욕장이야말로 천혜의 해수욕장 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항아리 같은 만에 자리 잡은 해수욕장, 상상이라도 해보셨습니까? 멀리 갈 것 없이 20년 전만 하더라도 마산에 해수욕장이 있었지요. 가포해수욕장. 오염된 바닷물에 좀 썰렁하긴 했어도…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가 됐습니다. 

제가 마산에 와서 처음 어시장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홍콩빠라고 불렀습니다. 바닷가에 길게 늘어선 횟집 아무 곳이나 골라 들어가면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오염이 심했지만, 그래도 답답한 도회의 한 귀퉁이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 홍콩빠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홍콩빠가 있던 자리 역시 매립으로 육지가 됐습니다. 바다였던 자리엔 차가 달리고 콘크리트 벽이 만들어졌습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아쉬운 대로 집에서 마산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아파트와 빌딩들로 이루어진 숲에 가려 바다를 볼 수가 없습니다. 굳이 바다를 보고 싶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무학산에 오르면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철썩이는 파도를 느낄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마산만은 바다라기보다는 빌딩숲에 가리워진 자그마한 호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땀 흘려 산에 오르지 않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겐 해당이 없는 이야깁니다. 아마도 짐작하건대 바다를 가끔이라도 보면서 살아가는 마산 시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1년 동안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저도 바다를 본지가 오래 됐습니다. 일부러 교외로 빠져나가 바다를 보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바다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기는 여수, 왼쪽에 카메라 든 이가 필자. 이 수변공원의 뒤는 아파트 단지촌이다. 사진=김주완


“해양도시 마산에 바다가 없다니 참 거 희한한 말이로세.”
“형님, 그러니까 바다가 있긴 있는데요, 우리는 그 바다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
“글쎄요. 어쨌든 저는 마산에서 바다에 가 본 일이 없으니까.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
“바다와 연결되는 부분은 모두 철조망으로 막아놓았거나,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공장이거나 그렇거든요.”

하긴 그러고 보니 그 형님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마산에 바다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산에는 바다가 있어서 시원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보니 과연 마산에도 바다가 있었던가, 내가 사는 곳이 해양도시였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거의 생각지도 않고 살아왔던 마산의 정체성이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가진 마산에 살고 있는 저를 부러워하는 대구의 형님에게 괜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 그냥 바닷바람이 참 시원하다고 말하고 말걸….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