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08 여자들이 화장하는 이유는 신의 뜻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2. 2008.11.02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 by 파비 정부권
신부님이 내린 여성들의 화장에 관한 심오한 해석

"여자들이 화장을 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세대별로 다 다른 거라.
10대는 화장이라 하지 않고 치장이라고 해요. 화장 하는 게 아니고 치장하는 거지. 
그럼 20대는? 20대는 진짜 화장이에요. 
30대에 하면 그건 위장이라. 
그럼 40대는? 분장이라고 그래. 하하. 
그럼 50대에 화장 하면 그걸 뭐라고 그러겠어요? 그때는 변장이라, 하하하하. 
60대에도 화장을 하지요? 여기도 보니 많이들 하셨네. 60대엔 뭐라 그럴까? 
그땐 환장 하는 거야. 
70이 넘어도 여자는 역시 화장을 하더라고, 그때는 포장을 하는 거야, 포장. 
그럼 80 넘으면 안 할까? 아니야 그때도 해요. 그때는 아주 끝장을 보는 거지." 

첫영성체를 받는 어린이들이 따로 공연도 준비했습니다.


오랜만에 성당에 가서 들은 화장에 관한 이야깁니다. 딸아이가 첫영성체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평소에는 성당에 잘 가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써놓고 보니 좀 미안하군요. 아무튼 오랜만에 성당에 앉았더니 감회가 새롭군요. 신부님도 바뀌셨습니다.

그런데 새로 오신(최소한 제게만은) 신부님은 무척 재미있는 분이셨습니다. 미사 내내 신자들은 웃느라 배꼽이나 성했을지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이날은 첫영성체 의식이 있는 날이었던 만큼 신부님의 강론은 역시 영성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성체란 무엇인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몸을 받아먹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몸을 받아먹는다고? 뭔 이런 끔찍한 일이! 하고 놀라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리 놀랄 일은 아닙니다. 진짜 몸을 받아 먹는 게 아니고 밀로 만든 빵떡을 받아먹는 거니까요.

본래 예수께서 하신대로 하자면 몸도 받아먹고 피도 받아먹어야 하지만, 포도주는 비싸서 그런지 평소에 피를 받아먹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가끔 아주 특별한 때에 피(포도주)에 살짝 찍은 몸(빵)을 받아먹을 수도 있지만, 그야말로 아주 가끔입니다. 

영성체 때 받아먹는 것은 밀떡입니다.


그럼 이렇게 하느님의 몸을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가? 아닙니다. "내 몸을 받아먹었으니 너도 가서 네 몸을 나누어 주어라!" 이것이 하느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첫영성체를 하기 전에―이 의식에 참여하는 이들은 모두 열 살짜리 어린이들입니다―신부님이 물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느님이 몸을 나누어주신 것처럼 그렇게 하실 수 있겠지요?" 

선뜻 대답이 안 나오자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몸을 내어줄 수 없는 사람은 영성체 하면 안 돼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만 손들어 보세요" 하고 신부님이 말했겠지요. 그러자 모두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을 번쩍 들더군요. 물론 우리 딸도요. 

그렇군요. 가톨릭 미사의 핵심은 바로 성찬의 전례라는 것인데요. 그건 다름 아닌 하느님의 몸을 나누어 먹는 의식이랍니다. 말하자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몸을 사람들이 서로 갈라 먹는 거지요. 역시 끔찍하다구요? 그런데 하느님의 몸을 처음 먹어본 우리 딸이 뭐라고 소감을 말했을까요?

"아빠, 먹어보니까 맛이 하나도 없더라. 나는 엄청 맛있는 줄 알고 기대가 컸었는데."

음, 실망이 컸던 모양이로군요. 아직 아이는 빵떡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감미로운 맛이 더 기다려졌던 모양입니다. 그런 아이를 위해서였던지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름 사람을 위해 자기를 내어주기는 참 쉽지 않지요. 어떤 사람들은 또 '나는 내어줄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요?'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늘 평화로운 얼굴을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그 얼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한다면 그게 곧 내 몸을 내어주는 것과 같지요."

우리 아이는 첫영성체 교리시간에 개근했다고 선물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신부님은 예의 화장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물론 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이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듣는 이든 이미 알고 있는 이든 모두들 즐거워했습니다. 영성체와 화장을 비교하는 신부님의 재치가 엄숙한 미사를 활기차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죠. 화장을 하는 것도 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니 좋은 일이죠. 그러나 너무 떡칠 하지는 마세요. 하더라도 적당히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이 말에 모두 한 번 더 배꼽을 잡았지만, 저는 그 말에도 진리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중용의 미덕 같은 거라고나 할까…! 흠, 오버가 심했나요? 아무튼 오랜만에 즐거운 미사였습니다. 게다가 여성들이 화장을 하는 것이 신의 뜻을 전하는 성스러운 행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더욱 뜻깊은 미사였다고나 할까요? 하하하~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참 오랜만에 성당에 갔습니다. 미사에 마지막 참례한 것이 무려 5년도 훨씬 전의 일이니 오랜만이라도 한참 오랜만이지요. 무리하게 일을 벌려놓고 객지로 몇 년 동안 돌아다니다보니 주님도 교회도 까먹고 살았나 봅니다. 우리 아들놈은 그래도 성당에 참 열심히 다녔습니다.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미사 때 하얀 복사 옷을 입고 신부님을 보좌하기도 한답니다.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녀석도 이제 다 컸구나 하며 대견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 한 켠은 문득 스치는 늦가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이제 녀석도 어느덧 품안의 자식이 아닌 게지요.

오르간에 맞춰 부르는 성가대의 음악소리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슴을 안아주는 천상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꿈결 같은 사제의 기도소리, 성체와 성혈을 모실 때 치는 낭랑한 종소리는 정말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미사는 여전했습니다. 여전한 경건함과 포근함이 성당 안의 모든 사람들 위에 살포시 내려앉으며 평화를 축원해주는 듯했습니다. 특별한 설교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은혜의 역사가 없어도 무수한 전통과 교감하는 미사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은총과 사랑과 평화를 나누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은 예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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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오늘의 복음은 마태오복음 18장 15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이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단둘이 만나 타일러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두 셋이 다시 가서 타일러보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 해결하도록 하라.”는 말씀이 요지입니다. “만약 공동체인 교회의 설득에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른 민족이나 세리처럼 여기더라도” 이미 너희 탓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신부님께선 강론에서 이 복음을 이렇게 해석하셨습니다.

“사람에겐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 보통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무관심'이란 것이다. 그게 교회의 가르침이다. 아무리 미운 형제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함께하고자 노력해야한다. 포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가장 무서운 적은 무관심이다.” 아마 이런 정도의 말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성당에 돌아온 저를 알아보고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건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교회의 관심과 연대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던 끊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제게 보여주려고 하신 말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를 보신 적이 없는 신부님은 저를 알아보시지 못하실 터이므로 그저 제 감상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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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성당 입구 게시판에 붙어있던 그림을 찍었습니다.  그림 속 신부님 모습이
                        꼭 주임신부님을 닮았네요.  큰수녀님과 작은 수녀님도 금방 알아볼 수 있겠습
                        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화가시군요.

그러나 교회의 교우들만이 아니라 교회 밖의 어렵고 힘든 사람들,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도 내시고 싸우기도 하는 신부님의 모습을 간간이 보아왔던 저로서는 그 말씀이 정말 저를 위해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오늘 참으로 오랜만에 하느님의 품에 돌아와서 정말 고귀한 진리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정의 말입니다. 무관심은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 사실 말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나와 가족과 이웃과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진리를 오늘 새삼 깨달았습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푸근한 가을 하늘입니다.

2008. 9. 7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