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쇠고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7 결혼 앞둔 김보슬 체포, 무슨 영화 찍냐? by 파비 정부권 (50)
  2. 2008.10.07 잃어버린 10년? 그들에게 이미 국민은 전투의 대상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29)

MB정권, 막장을 지나 이제 영화까지 찍는다


김보슬 피디가 잡혀갔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김보슬 피디는 MBC <피디수첩>에서 미국산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연출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피디라고 합니다. 저도 그 프로를 한편 감동 있게, 또 한편 걱정스럽게 그리고 또 한편 분노하면서 보았었습니다 


만약 그 프로가 없었다면 광우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 미국산쇠고기가 얼마나 광우병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지, 미국산쇠고기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입하려는 이 나라 정부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피디수첩이 진중권 교수의 말처럼 한국정부에는 경종을 울리고 미국정부로 하여금 다우너 소에 대한 도축을 금지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동에 일정한 제한을 가해 한미 양국 소비자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호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면, 이는 국제인권상이라도 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김보슬 피디가 한국피디대상(올해의 피디상)을 받은 것은 매우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가 저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 있습니다
. 이 프로가 방영되고 난 이후 우리 아이들이 햄버거를 안 먹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미국산쇠고기와 상관없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햄버거를 좀 안 먹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물론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우리 아이 엄마는 유독 햄버거 사주길 꺼려했고 아이들 등살에 못 이긴 저는 매번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아이들 엄마 눈치 보며 햄버거를 사주곤 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햄버거를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젠 먹으라고 꼬셔도 절대 안 먹겠다고 버티는 희한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심지어 어린 딸아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는 내가 일찍 죽었으면 좋겠나.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이지요, 내참….

 

하여간 햄버거는 미국산쇠고기와 상관없이 아이들 건강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이므로 아주 잘 된 일이었지요. 초등학교 5학년이던 우리 아들녀석은 그 이후로 소비자고발 프로를 아주 열심히 보는 것 같았습니다. 글쎄요, 저도 안 보는 걸 말이지요.

 

<개콘>은 안 봐도 <소비자고발>은 보는 녀석이 이제 갓 초등학교 6학년짜리라니 다른 분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너무 신기합니다. 제가 그만할 땐 절대 그런 프로 안 봤거든요. 주로 <소머즈><육백만 불의 사나이>, 아니면 <서부소년 차돌이>, 그런 게 제가 보는 티브이 프로의 전부였지요.

 

어쨌든 저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피디수첩>이나 <소비자고발>을 매우 좋아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말하자면, 은혜를 입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세상에 그 피디수첩의 김보슬 피디가 결혼식을 앞두고 경찰에 잡혀갔다고 하네요. 그것도 결혼준비를 위해 시댁을 방문한 자리에서 말입니다.

사진=레디앙/미디어오늘, 아래 영화이미지들은 Daum영화

이 소식을 접하는 순간 저는 왠지 영화 <킬 빌>이 떠올랐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다들 보셨겠지만요. 너무나 잔혹한 장면을 미학적으로 치장한 부분들이 걸리긴 해도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거기 일본 야쿠자 두목으로 나오던 여자, 나중에 주인공 여자에게 머리 윗부분이 잘려 죽고 말았지만…, 대단했었지요.

그런데 이 영화가 전개되는 시초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다들 아시겠지만, 이라는 폭력조직 두목이 주인공 여자의 결혼식장에 부하들을 이끌고 난입해서 다 죽이고 여자도 거의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원기를 회복한 주인공이 무술을 익혀 을 처단하기 위해 야쿠자 조직과 대결을 벌인다는 스토리였지 않습니까? 

 

물론 결말은 의 부하들과 야쿠자가 주인공에게 전멸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 영화는 별 의미 두지 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기엔 딱 좋은 그런 영화입니다. 하얗게 눈이 내리는 일본식 후원에서 규칙적으로 달그락거리며 떨어지는 물바가지 소리에 맞춰 벌이는 두 여자의 진검승부…, 배경을 타고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 이란 놈, 진짜 초자븐 놈일세. ‘초잡다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서 저도 무슨 뜻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대충 아주 형편 없는 놈이라거나 아주 쫀쫀하다는 뜻임 아무리 조폭 두목이지만, 하필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깽판 놓을 게 또 뭐란 말이냐.  

   

영화 보는 내내 그 대목이 좀 찜찜하더군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결혼식장에 쳐들어가서 깽판치는 그 ‘초자븐’ 장면을 한국영화에서도 보게 되었답니다. 준호, 김정은, 유동근이 나왔던 <가문의 영광>이란 영화였는데요. 재미있게 보다가 마지막에 가서 기분 완전히 잡친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무엇이었느냐? 바로 결혼식장에 깡패들이 개떼같이 몰려가서 깽판치는 바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보던 중이었는데, , 이거 정말 뭐야. 이건 아니지, 이건.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리네, 창피해서…” 그랬던 영화였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쪽 팔립니다. 왜 마지막 설정을 그렇게 했는지 저는 지금도 그 영화 만든 감독이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그런데 그
깽판치는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쪽 팔리는 장면이 아니라 현실 속에 등장했습니다. 그것도 무식한 조폭 똘마니들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에 의해서 말입니다. , 이건 뭐 쪽 팔리는 정도도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
 

결혼식장에 나타난 빌의 부하들

제가 볼 땐 이런 쪽 팔리는 시츄에이션은 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영화 <킬 빌>에서 왜? 은 하필 결혼식장에 총과 칼을 든 마피아 똘마니들을 투입시켜 난장판으로 만들었을까요?

거기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
은 본래 자기 애인이었던 그녀(주인공)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에 가장 처절한 고통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게 결혼식이었고요. 폭력조차 미학으로 풀어나가는 수준이 거의 네로 황제 수준이지요.

 

그럼 우리의 MB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결혼식을 나흘 앞둔 김보슬 피디를 공격했을까요? 1년도 더 지난 사안을 지금껏 질질 끌다가 왜 하필 결혼준비를 위해 시댁을 방문하는 날 전격적으로 끌고 갔을까요? 여기에도 무슨 폭력미학 같은 고도의 시나리오가 숨어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영화를 너무 많이 보셨나? 도대체 왜 그런당가요? 쪽 팔리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나는 노무현을 찍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당선됐을 때 감격해서 동이 트도록 오징어를 뜯으며 맥주를 마셨고, TV에서 흘러나오는 당선방송을 보고 또 보았다. 노무현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노무현이 검사들과 대화를 한답시고 TV 앞에 앉았을 때, 나는 또다시 오징어를 뜯고 맥주를 마시며 분개했다. “어떻게 쥐어준 권력인데 그따위 허접한 검사들을 모아놓고 손수 칼을 쥐어준단 말이냐.”

봉하마을 주민이 된 노무현=경남도민일보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인터넷검열'을 보며 드는 단상(斷想)

그리고 대통령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조중동으로부터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마침내 별다른 이유도 없이 국회에서 탄핵되었을 때, “거봐라, 칼 쥐어주었더니 그 칼 내다버리고 잘하는 짓이다.”하면서 조롱했다. 어쩌면 허탈감과 배신감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노무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김대중 정부에 이어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이 서민경제 파탄의 주범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한미FTA는 그가 추진한 정책 중 최악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수많은 농가가 타격을 입고 국민건강이 위협받는 것도 그 출발은 노무현 정부에 있었다.

한편, 반대로 노무현이 민주주의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대통령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였고, 대중적 참여의 적나라한 모델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정치의 발달에도 한 몫 기여했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실험은 바로 노무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역시 나는 여전히 노무현의 팬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나의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들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진보니 좌파니 하는 오해를 받든 말든 그건 상관없다. 그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려고 하는 시장자유주의가 내가 생각하는 분배의 정의를 통한 선의 추구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 이들이 방송국을 장악하고 인터넷까지 검열하겠다며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나라당에게 잃어버린 10년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토록 민주주의가 불편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고 참여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거짓 선동으로 여론을 호도하며 권력을 장악한 한나라당

지난 대선 내내 한나라당이 외쳤던 구호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들이 잃어버렸다는 것은 정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권을 잃어버린 것이 마치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투쟁이라도 하는 양 국민을 선동했다. 그것은 한나라당 외의 정치세력은 모두 악이라고 호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BBK주가조작, 위장전입, 탈세의혹을 뚫고 이명박은 대통령이 됐다. 사진=오마이뉴스


이 어처구니없는 선동질은 주로 경상도 땅에서 주효했다. 이 선동질의 선두에서 나팔수 역할을 한 것은 물론 다름 아닌 조중동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마치 집단최면상태에 빠진 것처럼 분기탱천했고, 선거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연신 외치며 결전에 임했다. 그들은 바야흐로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들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다. 지난 10년 동안, 특히 연이어 대선에 패배한 이후 지난 5년 동안, 그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복수심을 불태웠는지는 정권을 탈환(?)한 이후의 행보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정권을 잡자마자 이전 정권에서 진행해왔던 모든 정책들을 뒤집어버렸다.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유지하며 진보세력과 대립했던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을 좌파정권으로 몰아 붙였다. 그나마 민생안정용으로 만들어놓았던 개혁적 제도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판이고 일부는 이미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려질 운명에 처해있다.

전 세계가 산업화와 개발바람에 파괴된 자연을 회복하자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이때, 거꾸로 나라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을 파헤칠 대운하 구상을 하고 있다. 당장 저항에 주저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엄청난 개발이득을 노린 재벌과 집권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난관이 봉착해도 반드시 실현시키려고 할 것이란 점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모든 노력들도 ‘퍼주기’란 이름으로 폄하하고 양측의 정상이 약속하고 서명한 합의서까지 파기하는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는 재협상 가능한 쇠고기협정조차 거부하는 이중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앞으로 어떤 나라가 이런 정부를 신뢰하고 조약을 맺고 교류를 하려고 하겠는가?

한순간, 촛불이란 장벽에 부닥치긴 했으나 이제 그들은 거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방송도 장악했고, 곧 가장 껄끄럽던 사이버공간마저도 함락이 눈앞에 보인다. 마침 벌어진 유명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은 그들에게 호재다. 이런 기회를 놓칠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인터넷을 평정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정권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호시탐탐 인터넷을 장악할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기려고 했지만, 촛불이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촛불이 잦아들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호재까지 겹쳤다.

여론을 장악하고 영구집권을 꿈꾸는 한나라당

그리고 드디어 그들은 ‘최진실법’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인터넷검열제’란 칼을 들었다. 그들이 이 새로운 전투에서 한 번 더 승리한다면 국민들의 입마저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괴벨스가 했던 것처럼 라디오를 하나씩 나누어주고 자기들 말만을 들으라고 할 것이다.

여론장악과 선동정치로 독재자로 군림한 히틀러


안타깝게도 이와 같이 지난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느끼는 격세지감은 단순한 감상의 수준을 넘어 시나브로 현실을 압박하고 고통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칼을 함부로 내다버린 노무현을 조롱하던 그 순간도 어느덧 낡은 앨범 속의 추억으로나 기억하게 될 것이 분명할 듯보인다.

진보진영의 어느 인사는 이 격세지감의 시기를 히틀러의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것은 옳지 못하며 그리 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이유를 “히틀러가 살던 시대와 달리 한국 사회의 지배자인 대자본은 지금 방식으로도 충분히 지배 지속 가능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당독재’의 가능성이야 높지만, 그것은 파시즘이 아니라 한국판 자민당 시대의 개막이지 않을까?”(진보신당 이재영-레디앙) 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글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히틀러도 처음부터 파시스트가 되려고 작정하고 그리 되었을까?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화가를 꿈꾸었던 그가 희대의 독재자가 되리라고 처음부터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히틀러가 죽고 난 후에 연합국 진영의 많은 정치가들도 그의 타고난 선동술과 대중장악력에 대해 연구했다는 걸 보면 시사 하는바가 크다. 전두환이나 이명박이 언론을 장악하는 기술도 알고 보면 원조는 바로 히틀러가 아니겠는가.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검열제를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며 전운戰雲을 감지한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그들에게 국민은 이미 전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2008. 10. 7.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