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3.14 무학산 둘레길 산불요원, 혹시 천사 아닐까? by 파비 정부권 (6)
  2. 2009.12.29 무학산둘레길 내려오다 만난 황당한 횡단보도 by 파비 정부권 (17)
  3. 2008.10.04 개천절에 무학산을 정복하다 by 파비 정부권 (2)
지난 토요일, 무학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습니다.
날씨가 무척 좋았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완연한 봄날이었습니다.

안개 탓에 파란 바다를 훤히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깝긴 했습니다.
전날도 혼자서 이 길을 걸었는데,
그땐 파란 바다가 정말 좋았습니다.
 요샛말로... 안구정화...

성호골로 올라서서 만날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는데,
일전에 김훤주 기자가 권한 코스였지요.

▲ 바로 앞에 가는 아가씨가 우리 딸.


만날재로부터 성호골 방향을 택하니보다
이 길을 택하면,
파란 바다와 푸른 숲과 멀리 마창대교를 함께
감상하면서 노닥노닥 걸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길도 훨씬 수월합니다.

그런데 한참을 오다가 <입산통제 관리아저씨>라고 해야 되나요,
아님 <산불조심 아저씨>라고 해야 되나요?

▲ 건빵이 담긴 병을 놓아두기 위해 특별제작한 받침대도 보인다. 성의가 정말 천사다.


아무튼, 아이디어가 무척 좋군요.
입산자 관리명부 옆에다 건빵이 가득 담긴 병을 놓아두었네요. 
사실, 아무리 산불관리 목적이라지만, 
제 이름 적으라고 하면 기분좋게 적을 사람 하나 없지요.

그런 마음을 헤아렸던 걸까요? 
짐작하건대 창원시에서 건빵 사라고 예산지원 한 것도 아닐 텐데... 
사비 털어 이런 준비까지 하신 아저씨, 
정말 고마운 분이로군요.  

▲ 건빵이 먹음직스럽다. 배고픈 백성에겐 구세주.


전날 저 혼자 둘레길 걷기에 나섰을 때도
이 빨간 산불조심 옷을 입은 이 아저씨 만났었는데요.
완월동성당에서 193~40년대에 조성했다는 천주교 묘역에서였지요. 

공동묘지가 조성된 에피소드며 묘지명에 대한 이야기며,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시더군요.
저는 속으로 그랬지요.

"와, 이 아저씨, 산불관리요원이 아니라 문화해설사 아닐까?"

▲ 산불관리요원 아저씨의 집무실?


그리고 다음날, 건빵이 담뿍 담긴 정성스런 플라스틱 병을 바라보며,

"와, 이 아저씨, 산불관리요원이 아니라 혹시 천사가 아닐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랜만에 무학산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무학산 등산을 위해 오른 것이 아니고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오르는 것은 무척 힘들어 하지만, 걷는데는 나름 자신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도 피곤한 줄 모릅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지요. 둘레길은 무척 잘 만들어 놓았군요. 황철곤 시장이 아무리 미워도 좋은 건 좋다고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코스는 우리집 뒤 만날재에서부터 서원곡을 거쳐 석전사거리까집니다.  



마산시내도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마산 앞바다 너머 보이는 건 창원입니다. 바다 건너편 창원시 귀산동에 두산중공업, STX중공업도 잘 보입니다. STX중공업에는 제 친구도 몇 명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는 STX 직원이 없는 회사라고 하더군요. 전부 하청직원들만 있다는 얘기죠. 저렇게 큰 공장에 정직원이 하나도 없다니, 거 참.  


가다보니 이렇게 옻닭백숙 파는 집도 보입니다. 파전, 국수도 팔고요. 당연히 동동주, 소주, 맥주도 팝니다. 날만 따뜻하다면 한 잔 걸치고 가면 좋겠습니다.  


학봉이군요.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입니다. 무학산 둘레길이 좋은 게 바로 이거로군요. 무학산을 등산할 때는 무학산이 이렇게 깊고 큰 산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오르기만 할 뿐 산을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둘레길을 걸으니 무학산의 가지가지 모습들을 모두 볼 수 있어 참 좋군요.

둘레길은 인자등산이 아니라 인자요산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길이었습니다.  


학봉을 돌아드는 길에 이렇게 절과 기독교 기도원이 나란히 사이좋게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의외로군요. 절과 교회 건물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늘 이렇게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으련만…


조금 더 가니 삼거리가 나왔습니다. 왼쪽으로 가면 무학산 정상(학봉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가는 듯), 오른쪽으로 가면 통일동산입니다. 통일동산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서 가보고 싶었지만, 500M 정도를 내려가야 합니다. 다시 올라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죠? 그냥 갑니다.


조금 더 가니 거대한 무학산 품이 나타납니다. 이런 규모의 품이라면 틀림없이 성옥골에 도착한 겁니다. 서원곡이라고도 하던데, 저는 이 동네에 온지 30년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헷갈립니다. 서원곡과 성옥골을 말입니다.


성옥골 계곡엔 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돌을 축대처럼 쌓아 공사를 해놓은 모습이 계곡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니 아스팔트 도로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 더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함께 간 아내와 상의해서 여기서 하산하기로 결정합니다. 날도 춥고 손도 시리고 집에 가서 쉬어야겠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터덜터덜 내려오니 산복도로가 나옵니다.


어? 그런데 먼저 내려가던 아내가 도로 가운데 떡 서있습니다. 아니, 저 아줌마 왜 저러는 거야?


조금 있자니 웬 아가씨도 옆에 섰습니다. 우리 아줌마만 문제가 아니었군요. 그러고 보니 저기서 신호등을 기다리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나봅니다. 이런, 갑자기 좌회전이나 우회전 하는 차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지요?


불안합니다. 괜찮다고요? 사고 안 난다고요? 음~ 그래도 불안하긴 하네요.


횡단보도를 건너와서 반대편으로 건너가시는 분들의 뒷모습을 담았습니다. 저 위에 빨간 옷 입으신 분 보이시죠? 이분도 산에 갔다 내려오시는 모양인데요. 다음 사진 보세요.  


정말 위험해 보이죠? 만약, 저렇게 서있는데 뒤에서는 우회전 하는 차가 지나가고, 앞에서는 왼쪽에서 오던 차는 좌회전 하고 오른쪽에서 오던 차는 동시에 우회전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저분은 어떻게 될까요? 네? 그냥 가만히 손들고 서있으면 아무 일 없다고요? 그렇겠군요. 손을 번쩍 들고 움직이지 말고 가운데 딱 서있으면 별일이야 없겠지요. 그래도 굉장히 '쪼리'겠어요.   


잠시 있으니 실제로 우회전 하는오토바이 한 대 지나갔고요. 위에서는 계속 차들 내려오고요.


앞에서도 이렇게 차들은 씽씽 잘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 아저씨, 늠름한 모습이네요. 경험이 아주 풍부하다는 듯이 주머니에 손을 딱 찔러넣고 짝다리까지 짚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군요.


재미있는 장면이긴 했지만, 아찔한 생각도 드네요. 횡단보도를 오른쪽으로 한 15M만 옮겨도 좋을 거 같은데요. 시 예산이 부족해서 그럴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한 장에 25만 8천원짜리 보도블록도 까신다면서요. 보도블록 몇 장 값만 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인 거 같은데, 아무튼, 산행이 매우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여러분도 둘레길 한 번 가보세요. 

가시는 길에 이렇게 신기한 횡단보도도 구경하시고요. 그럼 따뜻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아, 오랜만에 영어나 한 번 써볼까요?
Happy New Year!
맞나 모르겠네요. 어릴 때 이런 거 적힌 카드 서로 보내고 받고 많이 했는데, 우린 시골이라 파는 데가 없어서 직접 만들어 보내고 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게 없어졌어요.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마산시 교방동 | 무학산기도원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개천절에 무학산 등산을 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아니 사실은 평소에 거의 하지 않던 등산을 했습니다.

물론 개천절 기념 등반 이런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제 아내의 대학 과선배(1년 선배고 저는 처형이라고 부릅니다)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것입니다. 그 처형은 진해 웅진씽크빅 지국의 장님이십니다. 원래 부산에서 지사장으로 있었는데, 집에 어르신이 몸이 안 좋으셔서 일부러 지국장으로 좌천해서 낙향(?)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진짜로 좌천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효심이 갸륵해서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개천절이라 함은 하늘이 열렸다 이런 뜻이겠지요. 단군께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신시를 여신 날이라지요. 그 높고 큰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우리 같은 백성들이야 하루 쉴 수 있어 좋고 특히 이번엔 3일 달아서 쉴 수 있으니 더욱 좋지요. 그래서 바빠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처형이 일부러 시간 내서 산에 가자고 할 수도 있었던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저 멀리 마창대교가 보입니다. 안개만 아니었다면 거제도도 환히 보일 것만 같습니다.



우선 우리 집 뒤 만날고개로 해서 대곡산 정상으로 올랐습니다. 가파른 산길이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숨은 턱에 차고 다리는 후들거리는데 뉘집 아이들인지 떼로 몰려 히히낙락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도 막 뛰어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도 뛰어가고 아이들도 저리 잘도 올라가는데 어른인 내가 비실거린대서야 될 일이겠습니까? 물을 반병이나 비우고 힘을 냈습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가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대곡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 멀리 바다 너머로 거제도인 듯 보이는 육지가 기다랗게 널려 있었는데, 안개가 자욱한 날씨 탓에 그리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정상표지석에는 516m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대곡산 정상. 여기까지가 힘들고 이후부터는 능선행입니다.



어릴 때 산골에 살 때는 산에서 뛰어노는 게 일이었지요. 이즈음엔 한 시간만 뛰어다니면 머루가 쌀푸대에 한가득 담기고 했습니다. 그러면 겨울에 우리 아버지는 머루주에 붉어진 얼굴로 두만강 푸른물에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버지도 운동 삼아 산에 오르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얘길 했더니 처형이 그러시는군요.

은성무공훈장

"전쟁을 겪으신 분들이야 어디 산에 재미삼아 오를 생각이 나겠어? 산에서 생과 사를 넘나들며 생존투쟁을 하셨을 텐데, 지긋지긋하실 테지. 우리 아버지도 산에 올라가는 사람들 보고 미친놈들이라고 그러셔." 

그러고 보니 그 말씀이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산봉우리 하나를 지키기 위해 한 달을 넘게 오줌을 받아 마셔가며 버티던 쓰라린 전쟁의 기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덕에 을지무공훈장 등을 세 개나 받으셨지요. 그러나 나라에선 전쟁터에 나가 목숨 바쳐 충성했다고 그리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릴 때 홧김에 모두 불살라 버렸답니다. 작년에 필요해서 다시 찾아오시긴 했지만…. 그런 분들에겐 처형 말씀처럼 산이란 존재가 지긋지긋할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우리는 대곡산 정상에서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누어 마시고 다시 힘을 내어 무학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무학산 정상까지는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입니다. 역시 산은 능선을 타는 맛이 일품입니다. 익어가는 억새풀과 함께 산 아래를 굽어보며 걷는 기분은 정말 천상을 걷는 기분입니다. 억새를 보더니 갑자기 처형이 물어보는군요. 

“부권씨는 으악새가 무슨 뜻인지 알어?”

구름과 맞닿은 억새



저야 물론 으악새란 가을이 오는 것을 구성진 울음소리로 알려주는 어떤 구슬픈 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억새풀이라고 가르쳐 주는군요. 역시 사전에 찾아보니 억새의 경기방언입니다. 새가 맞다, 아니다 억새의 방언이다 아직 논란이 많은데, 막상 ‘짝사랑’의 노랫말을 지은 박영호 선생이 월북 후 북조선연극인동맹 위원장을 하다 돌아가셨으므로 알 길은 없습니다.

일제 말 친일작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가 이북 출신(강원도 통천)이란 점을 들어 왜가리의 이북 방언이란 설도 있지만 억새의 방언이란 설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눈을 감으니 가을바람에 부대끼는 억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포즈 잡는다고 웃고 있지만 사실은 울고 싶은 모양입니다. 태극기 날리는 정상이 바로 뒤에 보입니다.



목이 메거나 말거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우리는 정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제 고지가 바로 저기입니다. 정상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노라니 아닌 게 아니라 목이 메는군요. 이제 고생 끝입니다.

761.4m. 정상에 올라서니 젊은 학생들이 반겨주는군요. 수고했다고 막걸리도 한 잔 권합니다. 제 아내와 처형은 맛있게 한 잔씩 얻어 걸쳤습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아무도 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남자들이란 세상 밖에 나와서도 이렇게 괄시만 받고 살아야 하다니 참 처량도 합니다.    


무학산 정상에서 만난 친절한 학생들과 무학산을 정복한 투여사



정상에서 바라보니 마산은 물론이고 창원 시가지도 바로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습니다. 제가 살던 가음정과 상남동도 보이는군요. 정말 시원합니다. 이 동네에서 산지도 (좀 부풀려서!) 어언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무학산 정상에는 처음 올라서 봅니다. 제가 스물 몇 살 때 마창노련 전진대회 한다고 딱 한 번 올라와 본 적이 있지만, 그때도 서마지기 고개에서 막걸리만 마시다 내려갔습니다. 

역시 사람들에겐 누구나 정복자의 야심 같은 게 숨어있는 것일까요? ‘인자仁者’는 ‘요산樂山’ 해야 한다는 개똥철학을 모시고 사는 저도 산 정상을 정복하고 보니 그 희열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앞으로 자주 산을 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에 올라 저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2009. 10. 4.  파비


서마지기 고개에서 지하여장군의 머리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산하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올라가기보다 힘들었습니다. 다음엔 다른 하산 코스를 골라야겠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