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1.14 목포 횟집과 마산 횟집, 상다리 비교 by 파비 정부권 (54)
  2. 2008.09.16 목포는 항구다, 마산도 항구냐? by 파비 정부권 (7)

지난 연말에 이어 지난주에도 목포에 다녀왔습니다. 목포에 가면 어김없이 가는 집이 북항에 있는 돌수산횟집입니다. 우리 형님이 목포에 정착해 32년을 살면서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로 그 후배가 우리 형님을 좋아하고 아끼는 것일지도.

아무튼 내려가는 내내 노인네도 아니고 “어디쯤 왔냐?” “몇 시 도착이냐?” 하고 전화로 귀찮게 굴더니 돌수산횟집에다가 상을 떡하니 차려놨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우리 동네 아는 형님 두 분이랑, 그리고 지난주에는 아들, 딸 데리고 갔었는데 연타로 돌수산횟집….

▲ 회가 나오기 전의 찌개다시. 오른쪽 반은 못찍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별로다. 흐미하다. 이해해주시길...

상다리가 휘청하겠더군요. 이거 농담이 아니고 진담입니다. 정말이지 상다리 두께가 좀 있어서 그렇지 가느다란 다리였다면 여지없이 디비졌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흠~ 여튼, 제가 이쯤에서 20여 년 전 제 친한 친구 종길이랑 목포에 놀러갔을 때 일화를 하나 소개해드립죠.

위 내용으로다가 충분히 짐작하셨듯이 우리는 형님의 초대(혹은 무단방문일지도)를 받아 목포로 내려갔습니다. 형님의 안내로 신안 비금도에 가서 이틀을 잘 놀고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형님과 헤어진 우리는(네 명이었음) 배가 고파서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 그 유명한 다금바리. 자연산은 키로에 50만원, 양식은 25만원이다. 이건 양식이다.

여러 가지 메뉴가 있었습니다만, 당근 가장 저렴한 백반을 시켰습죠. 당시 한 2천 원 정도 했을라나요? 기억이 잘 아닙니다만, 아무튼 그렇게 시켜놓고 얌전히 기다렸죠. 계산이 딱 맞았거든요. 밥값 내고 마산까지 차 기름값 제하고 나면 휴게소에서 음료수 딱 한잔씩….

그런데 웬걸? 상이 차려지는데 이거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가 않을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오만가지 반찬이 다 나오는데 상다리 부러지겠습니다. 제가 젤로 좋아하는 꼬막도 나오고, 갖가지 젓갈들. 암튼 이름 모를 괴기들이 한상 그득하니, 사이사이에 풀들이 가끔 보이고….

“야, 종길아. 이거 우리가 잘못 시킨 거 아이가? 백반 시킨 거 확실하나?”

“아, 백반 시킨 거 맞는데, 아, 와 이러지? 혹시 여기 전라도라 우리 보리문디들 말을 잘못 알아들은 거 아일까?”

“그건 아인 거 같은데. 분명히 백반이라고 했고, 자기도 백반 같다주겠다 했거든.”

“야, 여서는 백반이 혹시 한정식 아이가? 우리는 오입을 거시기라 하지만 여서는 가출하는 걸 오입이라 한 대메.”

“야, 이거 큰일 났는데. 잘못하면 우리 집에 못가겠다.”

그렇지만 우리는 불안에 떨면서도 자존심이 있어서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냥 얌전히 앉아서 상이 다 차려지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쇠도 소화시킬 20대 후반의 젊은 총각들이었던 우리는 밥이 나오자 허겁지겁 숟가락질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우와, 맛있다!”

나올 때 이빨(사람은 ‘이’라고 해야 하지만 원초적으로 먹었다는 의미에서)을 쑤시면서 계산을 하는데 우리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2,000×4=8,000원(아니면 이보다 더 쌀 수도 있음. 당시 밥값이 생각 안 남) 한숨을 내쉬며, “살았다.”

돌아오는 내내 얼마나 뿌듯하던지. 저의 사랑스런 애마 ‘프라이드 벤츠’ 트렁크엔 싱싱한 육젓 네 통자가 편안하게 잠들어있고…. 목포란 곳은 이런 곳이었죠. 나중에 알게 됐지만, 막걸리를 한 병 시켜도 이렇게 반찬을 푸짐하게 주더군요.

▲ 세발낙지 한접시도 보이고, 강원도에서 내려온 듯한 명태 새끼 비슷한 것도 보이고...아삭아삭한 멍게, 해삼, 키조개살 등등등등^^ 이것만 해도 크~

그런데 이 돌수산횟집은 그런 목포에서도 정도가 좀 지나친 집이었습니다. 혹시 우리 형님 때문 아닌가 싶어 옆에 상을 살짝 훔쳐보았더니 역시 거기도 상다리가 휘청. ‘목포는 항구다!’ 역시 목포는 항구였습니다. 인심 만선의 항구!

▲ 농어살을 집어든 우리 딸내미. 잠깐 딸자랑 하자면 이번에 창원교육청 선발 영재교육원에 합격했다. 선발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나? ㅋㅋㅋ

지난주 목포갔다 올라오면서 형님을 차로 모시고 와서는 “자, 그럼 이번엔 우리 마산의 횟집으로 한번 가봅시다” 해서 마산 어시장 장어구이골목의 한 횟집으로 갔습니다. 대자 한 접시에 7만원. 목포에서도 농어 한 접시에 7만원 했으니 가격은 뭐 거기서 거기.

하지만, 찌개다시에서 차이가 완연한 만큼 가격 대비 만족도에선 목포가 완승! 아 물론 계산을 대봐도 목포가 훨씬 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같은 돈 주고 목포의 횟집은 오만가지 해물을 다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래 사진으로 비교들 해보시길….

보시다시피 목포도 항구고 마산도 항구지만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가고파는 마산이 아니고 목포란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있지예? ㅋㅋ~ 암튼, 언제든 저하고 목포 같이 가자 하시면 같이 갈 수 있습니다. 단, 기름값이 좀 마니(money) 나옵니당~ 유념하시길… 흐흐흐.


ps; 혹시 목포 북항 가시는 분은 돌수산횟집 찾아가서 우리 형님 이름 대면 좀 더 마니 줄지도... ㅎㅎ

▲ 여기가 마산 어시장의 모 횟집 사진. 정말 찍을 게 없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있다가 아차, 비교삼아 찍어보자 해서 찍었다. 회 맛은 있었다. 물론 목포 회가 더 맛있었다. 목포 농어맛은 쫄깃쫄깃한 게 일품이었다. 아, 목포는 항구다!

▲ 목포북항 돌수산횟집입니다. 다음 메인에 올라간 김에 대접 잘 받은 데 대한 보답 차원에서 광고 좀 하겠습니당~ 널리 이해해주시와요... 오른쪽은 형님 후배기도 한 횟집 사장님. 사진은 외람되게도 찍은 사진을 못찾아서 모 까페에서 급히 빌려왔음. 서로 좋은 사이니 뭐라 하지는 않을 걸로 봅니다만. 홈페이지(혹은 까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산도 항구도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실 나는 마산이 항구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마산은 과거에 항구도시였으며, 전국 7대도시였으며, 그래서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목소리들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마산시 청사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저 지레짐작이다. 최근 마산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미래 마산의 청사진이란 것은 <드림베이 마산>이라고 하는 슬로건에 온전히 들어있다. 꿈의 항구도시 마산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가포만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수정만 바다를 매립하여 STX 조선소를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신포 앞바다는 이미 매립하여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코딱지만 하기는 해도 시민의 눈을 의식해서 자그마한 공원이 하나 만들어졌다. 남들이 보면 무슨 공원이 이러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그래도 마산에서는 보기 드문 공원이다. 그나마 그마저도 친일논란이 있는 이은상과 조두남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여 한동안 시민단체들과 씨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이 마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드림베이(dream bay), 즉 꿈의 항구도시 마산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의 내용들이다.

나는 처음에 드림베이라고 하기에 태평양의 푸른 파도와 지중해의 낭만이 연상되었었다. 그런데 드림베이란 것이 알고 보니 대형 아파트촌을 건설하고 공장을 유치하여 인구를 유입하는 것이었다. 드림베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나 낭만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산, 녹색이 물결치는 살만한 마산과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파괴하고 개발해야만 다시 7대도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과연 소원대로 7대도시가 된다한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하지만, 도대체 드림베이란 것을 해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는 것도 말 그대로 드림, 꿈같은 소리로만 들린다.  

이번 추석에 목포에 다녀왔다. 그곳도 항구도시다. '목포는 항구다'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목포는 마산에 비하면 자그마한 도시다. 마산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자그마한 시골도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목포를 둘러보고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목포는 마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푸근함 같은 것이 있었다. 바닷내음부터 달랐다. 목포는 정말 항구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역시 목포는 항구였다.

그러나 내가 목포에 반한 것은 그곳이 항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개발바람을 비껴가진 못한다. 역시 그곳에도 아파트촌이 건설되고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아름다운 산이 있었고 문학관이 있었고 박물관이 있었다. 바닷가 경치 좋은 곳 엄청나게 널따란 부지에 예닐곱 개의 박물관들이 모여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도 있고 해양 박물관도 있다. 정말 웅장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마산 같았으면 금싸라기 같은 땅이 아까워서 과연 이렇게 커다란 박물관들을 그것도 한개도 아니고 예닐곱 개나 지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드림베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도시가 있다면, 그런 꿈을 꿀만한 자격이 있는 도시라면, 그곳은 마산이 아니라 목포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나와 아이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목포시민은 50% 할인이라고 해서 목포시민인 형과 형수, 병원에 장기 입원해 계시다 추석 때 이틀간 외박 나오신 아버지까지, 모두들  모시고 갔다. 해양박물관은 공짜였고, 자연사박물관과 도자기 박물관은 아래와 같은 저렴한 가격으로(자연사박물관에서 계산하면 도자기박물관은 덤이다) 거의 공짜로 구경하다시피 했다. 공짜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또 우리 가족인 고로 구석구석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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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배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한 대 남은 배라고 했다.
               더 이상 만들지 않는 하나 남은 유물이라고 하니 더 유심히 살폈다.
               이 배는 1989년에 만들어 조업하던 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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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배의 닻이다. 배에 비해 크기가 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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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의 맞은편에 자연사박물관이 보이고 그 뒤에 나지막한 암산이 보인다.  
               목포엔 이런 바위산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 최고는 물론 유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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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포돛배를 재현해 박물관 마당에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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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세기에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중국 무역선을 잔해를 모아 재현한 신안호.
               1천년 전에 만들어진 배라고 하기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포토존에서 촬영했는데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카메라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내게 DSLR 카메라가 주어진다 해도 별로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사진기(삼성디카)도 별로고 사진사도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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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 해저에서 발굴한 유물들. 후추와 일본장기도 보인다.
               그리고 해저에서 발굴된 금화보다 귀한 엽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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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물표다. 화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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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나무기둥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평화롭다.
               마치 풍어를 기원하는 솟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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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에 이어 자연사박물관으로 갔다. 정말 대단했다. 지구에 생명의 신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잘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
                암모나이트로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신생대의 포유동물들, 나비, 장수풍뎅이 등 곤충들,
                사라져가는 식물들, 바다생물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래무지도 보았다.
                어린 시절 모래무지와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촬영금지구역이었다.
                어차피 내 사진 실력으로는 이곳의 감동을 전하기에 역부족이므로 차라리 잘 됐다.
                궁금하신 분은
http://museum.mokpo.go.kr/ 에 가서 아쉬운대로 살펴보시면 되겠다.

                이곳 구경을 끝내고 도자기 전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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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한 듯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혜민이. 초딩 1년짜리 우리 딸이다. 직접 실습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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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재료도 전시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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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엄마와 딸아이가 타일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들놈은 그 옆에서 그리고 있는데
               사진 찍지 말라고 한다. 집중이 안 된단다.  
               맨 왼쪽이 딸, 가운데가 아내, 맨 오른쪽이 아들놈 그림인데, 아들놈은 화투짝을 그렸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깅에 빠져있는 내 옆에서 두 놈이 화투짝을 돌리고 있다.
               이거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좋다는 걸 말리기도 그렇고, 내가 할 줄 모르는
               걸 잘 하는 녀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요놈들이 컴퓨터에서 화투치는 법을 배워서는 내게도 가르쳐줘서 며칠 전에 셋이서 한 판 쳤다.
               평생에 처음 쳐본 고도리였다.  
               우리 가족이 만든 타일그림들은 박물관 벽에 붙여져 영원히 전해진다고 한다.
               물론 다른 가족이 그린 타일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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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오랜만에 보는 것이지만 정감이 가는 익숙한 물건이다. 이게 바로 요강이란 것이렷다.
               뒷간 가는 것이 두려운 옛날 어린아이에겐 정말 귀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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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자기 전시관의 마지막은 행남자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 이 지방 향토기업인가보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향토기업이 이런 전시관에 지원도 하고 자기들 자리도 하나 차지하는
               게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지역엔 이런 향토기업도 하나 없다.


그 다음 남농미술관이며, 문예역사관이며, 또 무슨 전시관이며 문화관은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여기 소개한 사진들은 그야말로 신발에 묻은 흙 정도만 턴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까지 보는데도 종일 걸렸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저녁을 먹고 유달산에 달구경 갔다. 그러나 달은 보지 못했다. 구름 속에 숨어 끝끝내 그림자조차 보여주길 마다하는 보름달과 먹구름을 함께 원망하며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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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집에 돌아왔다. 마당에 핀 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제 피었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꽃이다.
               
밤에 달이 떴다. 하루를 넘겼지만 보름달과 다름 없다. 역시 달은 마산 달이다. 목포가 아름다운 항구고 문화적으로 여유가 풍부하기로 마산이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달 만큼은 마산이 최고다.
그래서 우리 동네 이름도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월영月影’이라고 지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도무지 파괴와 개발의 대명사가 된 드림베이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월영이란 이름이고 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운선생이 다시 돌아와 보신다면 무어라 말씀 하실까?


2008. 9. 16 한가위 연휴 끝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