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12.29 목욕탕서 오줌 누는 남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by 파비 정부권 (5)
  2. 2011.12.07 문신 조폭을 위한 전용목욕탕은 어때요? by 파비 정부권 (9)
  3. 2009.09.01 블로그 개설 1주년을 맞아 그날을 추억함 by 파비 정부권 (15)
  4. 2009.01.06 목욕탕 함께 가기 싫다는 아들, 갑자기 인생무상 by 파비 정부권 (8)

참 황당한 일을 만났습니다. 며칠 전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영재학교에 응시한다고 해서 시험장소인 마산중학교에 데려다 주고는-우리 애는 절대 영재가 아닙니다만, 그래도 재미삼아 쳐보겠다니 데려다 준 것입니다-딱히 기다릴만한 곳이 없어 근처 목욕탕에 들어갔습니다.

옷을 벗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죠? 당근 샤워부터 해야겠지요. 가끔 보면 씻지도 않고 머리도 푸석푸석한 채로 탕 안에 몸을 담그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한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럼 정말 짜증나지요. 에이, 드러운 쉐이들~

암튼^^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에 이런 것이 있죠. 군자란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응용하자면, 내가 꼴 보기 싫은 짓을 나도 안 하는 게 바로 군자란 말씀. 그러므로 제일 먼저 할 일은 몸을 깨끗이 씻고 머리도 감고 이도 닦는 것이죠.

그래서 출입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샤워기 중 하나를 선택해 물을 틀고 머리를 감고 대충 몸을 씻은 다음-특히 중요 부위는 깨끗이 씻어주는 센스가 필요하답니다-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어라? 그런데 제 바로 옆에 서 계신 분, 자세가 좀 이상합니다.

양 발의 간격은 약 30센티미터. 허리를 곧추세운 자세로 똑바로 서서는 양 손은 허리를 잡은 모습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습니다. 머리 위로는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데 벽을 보고 선 것이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을 바라보고 선 이 당당한 자세.

그런데 뭐가 이상하냐고요? 남자분들은 다 아실 테지만 이 자세는 바로 ‘소규모 신진대사’를 할 때의 그 자세였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몸 한가운데 축 늘어진 그곳에서는 한줄기 폭포수가 타원을 그리며 바닥을 향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물줄기의 굵기가 예사가 아닌데다 색깔이 진한 황색을 띠는 것이 샤워기의 가느다란 물줄기와는 확연히 구별되었습니다. 게다가 물줄기의 궤적이 약 60도 정도로 서로 어긋나니 누가 보더라도 오줌을 싸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이상하지요.

족히 50대 중반의 나이는 되었을 그 남자는 그렇게 당당하게 사람들이 앉아있는 탕 쪽을 바라보고 서서 오줌을 싸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쓰바, 오줌발도 졸나게 기네. 어젯밤에 양껏 빨았나 보군.’ 오줌발에서 역한 술 냄새가 사방으로 비산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내 입에서는 “에이, 씨발” 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러고는 저쪽 끝으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는데 그래도 그 남자는 못들은 척 태연히 서서 계속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면서 예의 역사를 멈출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으~ 개쉐이...

당시 목욕탕 안에는 일고여덟 명의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지만 저마다 다들 자기가 하는 일에 바빴던지 이 남자가 벌인 짓거리는 그와 나만의 비밀로써 하수도 저 밑바닥으로 쓸려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 쓰바,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본다!’

그러고 나서 이 남자 어떻게 했냐고요? 그렇게 대충 몸에 물칠을 하더니만 탕 안으로 기어들어가더군요. 마치 목욕탕에 자주 들락거린 선수처럼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느긋하게 반신욕 자세로 양팔을 괴고 앉아서는 이번엔 두 다리를 물 안에서 올렸다 운동 시작.

와우, 입으로는 하나, 둘, 셋… 일백, 이백 하고 숫자를 세는데 거의 30분을 그렇게 하더군요. 그러고는 잠깐 나와서 냉탕에 들어갔다가 다시 온탕에 들어가서 하나, 둘, 셋 일백, 이백…. 물결이 출렁출렁. ‘아 쓰바, 이 아저씨 제 몸 하나는 대개 생각하네.’

건강 생각해서 목욕탕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그 모습, 참 갸륵합니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목욕탕에서 버젓이 배를 쑥 내밀고 오줌을 싸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어디 한쪽 구석에서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벽 쪽으로 돌아서기라도 하시든지.

아, 이제부터는 몸을 씻는 것은 고사하고 머리도 안 감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는 무식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목욕탕 정중앙을 향해 배를 쑥 내밀고 오줌을 싸는 사람도 있는 판이니 그깟 것쯤이야 새발에 피죠, 뭐.

그나저나 아저씨, 그렇게 사니까 행복하세요?

ps; 혹시나 정신이 뭐 어떻게 된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아주 멀쩡한 정신상태에다 건강관리에도 열심인 평균 이상의 중년남성이었습니다. 생긴 것도 아주 멀쩡했습니다. 곱게 잘 늙었다 싶게 보기 좋을 정도였답니다. 흐흐~
ps2; 참고로 5층 건물 전체가 사우나와 찜질방으로 구성된 이 목욕탕은 최신 건물로서 고급사우나임.  

Posted by 파비 정부권
TAG 목욕탕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센세이셔널한 제목이 눈에 띈다. “조폭은 목욕탕도 못갑니까?” 부산지역의 조폭들이 경찰의 단속에 집단반발 했단다. 아니, 무슨 일이기에 조폭들이 경찰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었다는 것일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원래 조폭들이란 자기보다 힘이 약한 일반시민들 앞에서는 어깨를 뒤로 젖히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팔을 휘젓고 다니지만 경찰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양순해지는 존재 아니던가. 세상 많이 좋아졌다. 거기도 민주화 바람이 불었나?

아무튼,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오, 이게 무슨 일이람. 온몸에 문신을 새긴 채 목욕탕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준 폭력배 13명에게 5만 원짜리 경범죄 스티커를 발부했다는 소식이다.

▲ 사진은 방송화면 캡처이미지

세계일보 이름으로 나온 이 기사는 “조폭은 목욕탕도 못갑니까”란 제목을 달고 조폭들이 집단반발을 한 것처럼 기사를 썼지만 내가 보기엔 집단반발까지는 아니었던 같고 단지 한두 명이 “공갈친 적이 없는 내가 이 목욕탕을 수년 동안 이용하고 있는데 무슨 잘못이냐"며 거세게 항의한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사에 달린 천 건이 훨씬 넘는 댓글들이 말해주듯이 “문신을 하고 목욕탕에 들어간 자체가 이미 공갈”인 것이다. 조폭들의 처지를 긍휼히 여기는 댓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너희 존재 자체가 이미 불법이며 재앙”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 기사는 “경찰은 앞으로도 매주 수요일을 '문신 폭력배' 단속의 날로 정해 문신 등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조폭들을 지속적으로 단속해 나갈 계획이다”라는 말로 기사를 마무리했다. 단속에 반발한 조폭이 부산지역인 걸로 봐서 ‘경찰’도 부산경찰청을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좀 애매하다.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니, 나도 한달쯤 전에 목욕탕에 집단으로 문신을 한 채 들어온 조폭들을 단속해달라고 112에 신고한 적이 있는데, 돌아온 경찰의 답변은 “단지 문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단속을 할 수 없지 않나요?”라는 것이었다.

당시 목욕탕에는 십여 명의 이용객이 있었는데 갑자기 4~5명의 조폭들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쳤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이들의 출현이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느낌을 주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목덜미 아래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허벅지까지 진하게 그려진 용이나 호랑이 그림은 이들이 조폭에 해당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혐오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신 자체만으로도 ‘선량한 시민’들에겐 조폭이었다.

이들 조폭이 들어오는 순간, 평온하던 목욕탕엔 순식간에 칼바람이 불었다. 욕조에서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과 더불어 하늘거리던 느긋한 평화는 순식간에 깨어지고 적막한 공포가 욕탕을 휘감았으며 용이며 호랑이 문신에 휘감긴 거대한 살덩이들만이 그 공포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마침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 112에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좀 조치가 안 될까요?”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이것이었다. “특별히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 이상 강제로 퇴거시키거나 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전화를 받았던 경찰관도(여성이었다) 현장을 보았다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온몸에 문신을 휘감고 목욕탕에 들어온 것만으로 충분히 위협적인 폭력행사로서 처벌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마 이들이 미안한 마음에 목욕탕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때를 밀다가 조용히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자기 몸에 웅크리고 있는 흉악스러운 짐승들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내밀며 모든 공간이 내 것인 양 활보한다. 그리고 하염없이 작아지는 나머지 이용객들.

하지만 ‘조폭이라고 해서 목욕도 못하게 할 순 없지 않느냐’는 취지의 말에 별달리 반론을 낼 수도 없어 물러서고 말았는데, 오늘 경찰이 지속적으로 몸에 문신을 한 조폭들이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을 단속하겠다는 기사를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암, 그래야지.

그런데 그 ‘경찰’이란 것이 대한민국 전역의 모든 경찰을 말하는 것인지, 부산지역만의 경찰을 말하는 것인지 기사만 보아서는 불분명하다. 창원에서도 단속을 하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한번 알아봐야겠다. “우리 동네에서도 목욕탕에 들어오는 문신, 단속하나요?”

ps; 이 글을 써놓고 검색해보니 울산지방경찰청에서는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관할 목욕탕마다 문신을 한 조폭의 출입을 자제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단속에 걸리면 5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이 안내문에는 “불안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면 신고해 달라”는 내용도 들어있다고 한다. 나도 신고했는데? 그럼 경남지방경찰청만 특별히 ‘조폭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얘긴지,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이참에 이런 건 어떨까. 조폭들을 위한 전용목욕탕. 물론 경찰이 약속대로 지속적인 단속을 해준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아이템이다. 아무 곳이나 입맛대로 갈 수 있다면 굳이 이런 조폭전용목욕탕이 있을 까닭이 없다.

다시 생각해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일반시민들은 조폭들로부터 불안감과 혐오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조폭들도 자기네들끼리 모여 돈독한 조직력을 과시하면서 업계 정보도 교환 활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걸 일러 ‘상생’이라 하는 거 아닐까?

아이쿠, 이거 끝마디가 좀 이상하넹~ ㅋ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은 제가 블로그를 시작한 지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 블로그를 개설한 날짜는 2008년 4월 19일입니다. 공교롭게도 4·19혁명 기념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9월 1일이 되어서야 혁명을 했습니다. 원래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와 정성인 기자의 권유와 도움으로 블로그를 개설했던 것인데 그때만 해도 저는 넷맹이었습니다. 

2008년 8월 30일 경남 블로거 컨퍼런스.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그래 블로그를 개설해놓고도 이전에 다른 홈페이지나 신문에 기고했던 글 몇 편을 올렸을 뿐 손도 안 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작년 8월 30일 경남도민일보에서 주최하는 <경남 블로거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후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언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짜릿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9월 1일 첫 포스팅을 했고 , 그 예감은 사실이었습니다. 

지금은 하루라도 블로그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칠 정도로 블로그에 푹 빠졌습니다. 블로그는 미디어입니다. 물론 미디어가 아니라 개인 일기장 정도에 만족하고 있는 블로거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용으로 개발된 것이라는 데 별 이견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미디어 이전에 자기 계발 내지 자기 만족 정도로도 충분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를 하다 보면 이유없이 악플을 만나, 하긴 세상에 이유없는 일은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괜한 시비에 휘말려도 그게 다 그 길을 갔기 때문에 당하는 수난인 것이겠지요. 하여튼 마음 고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도 기쁨이 훨씬 큽니다. 도민일보(블로거스경남)에서 매월 주최하는 블로그 강좌는 배움 이전에 만남의 기쁨을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기념일을 맞이하여 무언가 특별한 이야기를 기념식처럼 하고 싶었으나, 마침 아는 선배와 저녁 술자리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작년 9월 1일 처음으로 올렸던 글을 다시 리바이벌 하는 것으로 기념식에 대신합니다. 물론 이 기념식은 저 혼자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함께 축하해주고 싶은 신 분은 마음속으로 박수라도 한 번 쳐주세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다른 생물계와 구분되는 확실한 이유 중에 직립도 있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술을 만들어 마실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 분명한 특성은 바로 음주에 있다, 이런 말씀이죠. 애주가인 제가 늘 하는 궤변입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을 축복하실 때도 술을 사용하셨죠. 

그럼 이만 저는 주님과는 또 다른 주님을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모두들 행복한 밤 되십시오.
 아, 작년 오늘보다 저의 머리는 더욱 가벼워지고 슬픈 모습이 되었답니다. 아직 남들은 봐줄 만 하다고 하지만…. 그리고 오늘 날씨는 1년 전 그날과 똑같이 신선합니다. 그때의 기분이 어제 일처럼 느껴집니다. 블로그란 이래서 좋은 것이로군요.         파비   

제목: 목욕탕에서 만난 남자          2008. 9. 1

오랜만에 목욕탕에 갔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우리 아이 말마따나 여름하고 전쟁을 치르고 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밤 사이 패주하는 적군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산들거리는 바람을 선봉장으로 가을이 해방군처럼 진주해 들어왔다. 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상큼한 기분인가.

살갗을 녹여버릴 듯 짜증스럽게 달려들던 열풍은 간 데 없고 선선한 미풍이 달착지근한 연인의 밀어처럼 감겨든다.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다정한 연인의 팔에 이끌리듯 여름 내 시달린 몸통을 달래러 목욕탕으로 갔다.
휘뿌옇게 김이 서린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을 바라보았다. 앗! 이게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웬 낯선 남자가 거울 속에 앉아 있었다.

물을 뒤집어쓴 남자의 머리에선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수리 아래쪽은 텅
비었다. 앞머리 부분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비바람에 스러진 갈대 꼴이다. 바닷물이 불어나 대륙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일본열도마냥 그렇게 간신히 붙어있었다. 몇 달 만에 목욕탕에서 만난 내 얼굴이 이처럼 낯설 줄이야.

나는 평소에 거울을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다. 얼굴에 화장품도 바르지 않는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찮아서 하기 싫은 것이다. 아내가 사다주는 남성용 스킨과 로션은 10년이 다돼가도록 먼지를 이불삼아 화장실에서 잠을 잔다. 그것도 몇 해 전에 혹시나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다 버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에 빗질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손으로 몇 번 쓰다듬기만 해도 손질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속으로 그저 빗으로 머리를
빗지 않아도 되니 참 편리하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거울은 더욱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물을 한바가지 뒤집어쓰고 보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이 거울 속에 드러난 것이다.

갑자기 오래된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유달리 목욕을 즐겼었다. 목욕을 하고 난 다음 머리를 말리면서 거울을 들여다볼 때의 그 흡족한 만족감을 좋아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 날아올랐다가 스르르 떨어지는 머리카락들의 질감은 마치 고요한 겨울들판에 함박눈이 내려앉듯 포근했다. 아, 이다지도 고운 머리카락이라니! 나는 나르시스가 된 기분으로 바라보며 만족감에 취하곤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에 빗질하는 것도 귀찮은 남자가 되었다. 그저 손가락을 빗살처럼 만들어 머리를 몇 번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외출준비를 끝낼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행복해하며 그 편리함에 고마워했다.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게 된 것도 그즈음부터였으리라. 팍팍한 일상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새 ‘거울도 보지 않는 남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거울 속에서 나는 전혀 낯선 새로운 남자를 만난 것이다.

2008년 9월 1일 밤  파비


  ps;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니 다시 잘 정돈 된 내가 거기 있었다.
        아직 허무하게 비어버린 공간을 감추어줄 만큼의 모발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테지.
        머잖아 앞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린 섬들도 필경 침몰해야만 할 운명을
        받아들여만 할 게 분명할 터이다.
        우연히 목욕탕에서 만난 낯선 남자는 내게 새로운 나를, 아니 본래의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도 주었다.
        창 밖에선 지금, 가을바람에 실려 온 빗방울이 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엊그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애 엄마한테 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애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알 수가 없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괜히 아이 엄마한테 신경질을 부린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 엄마도  자세히는 모르고  그저 전화를 받았는데 지금 병원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습니다.

  아이는 병원로비 의자에 멀쩡하게 앉아있었습니다. 사고가 난 승용차의 아저씨도 함께 있더군요. 아마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차에 태워 병원으로 달려왔나 봅니다.
    

  아이는 생각 밖으로 다친 데는 고사하고 긁힌 자국 하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사고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경위는 이랬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오던 우리 아이를 학교 앞을 지나가던 승용차가 미처 발견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문 옆에 큰 트럭이 한 대 주차해있었던 터라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서로 놀라서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을 테고 자전거는 당연히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용차도 자전거도 속도를 별로 내지 않았던 터라 큰 사고는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사람 같지 않게 무척 착한 심성의 사고 상대방 차주

  그러나 그 아저씨는 부랴부랴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X-레이까지 찍고 부산을 떨었나 봅니다. 그 아저씨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시더군요.

  멀쩡한 아들 녀석을 보니 도리어 제가 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래도 놀랐을 텐데 그러면 안 되지 싶어 “정말 괜찮아?” 하고 물어보는 걸로 대신했습니다.

  녀석도 미안했던지, “괜찮다. 봐라. 하나도 안 다쳤다. 긁힌 데도 없다.” 하면서 일어서서 앞뒤로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전거는 괜찮나?” 하고 물었더니 자전거도 멀쩡하다면서 단지 핸들이 조금 돌아갔는데 그건 금방 돌릴 수 있다고 강변하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승용차 아저씨에게도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 아저씨는 계속 미안해하며 아이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사야 되는 게 아니냐며 따라왔지만, 제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해 돌려보냈습니다.

  참 착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아이에게 괜찮나 물어보고 다음부턴 조심해라 하고 훈계한 다음 사라지는 것이 보통의 인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학교 앞에 가보니 자전거는 문방구 아주머니가 한쪽 옆에 잘 세워놓았더군요. 역시 아이 말대로 핸들이 조금 돌아가 있었고 쉽게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도 자전거도 멀쩡하니 천만 다행입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어디 혹시 혹이 났을지도 모르고 멍이 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아빠하고 목욕탕이나 갈까? 그러면 금방 풀릴 텐데…” 

  갑자기 인생이 무상해지다

  그러나 아이는 완강하게(!)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놀다가 학원 갈 거니까 먼저 가라는 것입니다. 아니, 녀석도 싫으면 싫은 것이지 왜 이렇게 거세게 거부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가만 그러고 보니 녀석이 저하고 목욕탕 안간지가 벌써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전에는 목욕탕을 마치 수영장 가듯 생각하며 사흘이 멀다고 목욕탕 가자 조르던 녀석인데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같이 가자고 해도 싫다며 자기는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하던 게 기억납니다.

  아, 이거 괜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녀석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니면 혹시? 그러나 어느 쪽이든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그저 버림받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질풍노도’의 시대는 결국 오고야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을요….

  2009. 1. 6.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