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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5 황매산 모산재 서정홍 시인댁에서 시인도 되고 본전도 찾은 얘기 by 파비 정부권 (6)
나무실 마을에서 노가다도 하고, 술도 먹고, 상금도 받고

지난주에 김훤주 기자의 안내로 서정홍 시인 댁에 다녀왔습니다. 서정홍 시인이 사는 곳은 합천군 가회면  목곡리입니다. 목곡리는 우리말로 나무실 마을이라고 합니다. 꽃이 흐드러진 산골마을을 기대했지만, 아직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습니다. 기온 탓입니다. 이제 마산, 창원에 꽃이 피고 지기 시작했으니 지금쯤은 온통 꽃대궐이겠군요. 

황매산 모산재


5월 초에 황매산에서 철쭉축제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때면 산이 온통 붉은색 천지겠지요. 아, 그러고 보니 서정홍 선생님 댁 뒷산이 황매산입니다. 그 황매산 입구에는 모산재가 떡하니 병풍을 펼쳐놓고 있는데요. 가히 금강산이 따로 없습니다. 요즘 금강산 관광도 안 되는데 굳이 금강산이 보고 싶으신 분은 이리로 오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전 10시에 도착한 우리는 김훤주의 기자의 인솔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저만 갈아입었네요) 감나무 밭으로 작업을 나갔습니다. 저는 그냥 꽃놀이 가는 줄 알았는데 가는 차 안에서 일을 안 하면 밥도 안 주고 술도 안 준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나무 밭에 도착하니 감나무들이 팔을 벌리고 "어서 이리 온" 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듯했습니다.

감나무 벗기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서정홍 시인, 그 옆이 범털씨, 김훤주 기자.


우리가 할 일은 감나무 껍질을 벗기는 일이었습니다. 감나무 껍질을 왜 벗기느냐고요? 아, 그렇군요. 실은 껍질을 벗기는 게 아니라 껍질에 기생하는 벌레를 긁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벌레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긁어낼 수 없으니 그냥 밑동에서부터 가지까지 다 긁어 벗기는 것이지요. 농약을 안치니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아이고 서 선생, 그저 약 한 말만 치면 될 걸 갖고 고생하시네" 하며 걱정들을 하신다지만 서정홍 선생님은 이게 좋답니다. 감나무를 긁고 있노라면 나무들이 "아유 시원하네, 그래 그래 거기,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마치 등이라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처럼 고마워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저도 긁어보니 나무들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12시가 조금 넘으니 선생님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립니다. 우리는 눈치로 이제 점심시간이구나, 하고 알아챕니다. 배가 고프면 눈치도 느나 봅니다. 사모님께서 밥 먹으로 올라오랍니다. 서정홍 선생님의 부인은 마치 교무실에서 종을 치는 초등학교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오후 4시가 되자 다시 어김없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일마치고 올라오라고요. 

사모님과 서정홍 선생님. 단지들은 송화차. 판매도 하는데 일단 무쟈게 좋은 건 확실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동 후에 먹는 밥맛은 정말 꿀맛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난 논두렁에서 마시는 막걸리 맛도 꿀맛이지요. 이날 저녁 술맛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준비해간 안주가 조금 질기긴 했지만, 술맛이 워낙 좋다보니 참을 만 했습니다. 술은 물론 소주와 맥주였습니다. 둘을 적당한 비율로 배합해서 마셨는데 밤이 새도록 술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더욱 좋았던 것은 함께 간 일행 권범철 기자―김 기자는 범털이라고 불렀고, 나도 그 이름이 더 마음에 든다. 그는 현재 기자를 그만두고 장편기록만화 창작에 몰두하고 있단다. 그러니 권 작가라고 부르는 게 맞겠다―의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으면서 그러는 유머였습니다. 그는 즉석에서 스무고개를 만들어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었습니다. 막판에 이길 뻔도 하다 지는 바람에 기분이 좀 안 좋기는 했지만.

나무에 붙은 벌레와 알집, 기생충처럼 생긴 것들도 기어 다녔다.


뭐든 지는 것은 기분이 안 좋습니다. 더구나 친선게임도 아니고 만 원짜리 돈을 걸고 했으니. 그런데 알고 보니 "막판에 이길 뻔 하다가"는 착각이었습니다. 문제를 낸 사람의 농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문제는 "이 여행의 찬조금을 모금한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는데, 결국 나중에 문제의 답은 영 엉뚱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똑같은 화분을 사서 한 달간 키워 크게 키운 사람이 돈을 적게 내는" 것이었다나요?

아무튼 저는 돈 만 원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시 본전은 찾았습니다. 이 게임은 무려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됐는데, 중간에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삼행시 게임을 했습니다. 거기서 1등을 하면 상금이 만원. 삼행시의 시제는 찬조금. 그때 저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짜내느라 고생을 해서 그런지 배가 몹시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잠깐 화장실에 다녀와서 삼행시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삼행시라. 완전 옛날 통시 모양으로 특수 제작된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이순신 장군 생각이 났습니다. 마침 멀리서 뻐꾸기 우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립니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지. 제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즉시 삼행시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했습니다. 제가 두 번째. 맨 먼저 삼행시를 시작한 권 작가. 어설픕니다. 준비가 안 됐나보다. 다음은 제 차례.

사람들이 "찬!" 하고 외쳤습니다. 

찬조금 생각에 머리는 지끈거리는데

어라? 이거 시작이 보통이 아닌데? 이거 게임 끝났구먼, 하고 사람들이 말하자 저는 진짜로 으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휴, 다행이다, 다들 별 준비가 없나보다, 이런 걸 가지고 보통이 아니라니. 게임은 어쨌든 이겨야 기분이 좋습니다. 다시 사람들이 "조!" 하고 외쳤습니다.

조롱하듯 울어대는 저 뻐꾹새 소리

사람들이 "와, 진짜 끝났다" 하고 외쳤습니다. 흐흐, 이럴 수가. 역시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태양이요 역사의 면류관이 확실해. "야야 볼 거 없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들어보자."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외쳤습니다. "금!"

금일 안에 못 맞추면 너희들은 쪽박 차리              ** 원래는 '못 맞추면'은 '단서를 못 찾으면"이었음.

왼쪽은 밥 먹으러 올라가는 사진, 오른쪽은 서정홍 선생님 집 들어가는 입구.


박수와 함께 1등은 제가 차지했습니다. 뒤에 두 사람은 그냥 포기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스무고개 때문에 하도 인상 쓰고 있으니까 불쌍해서 그런 건지는. 아무튼 저는 본전치기를 하자 몹시 기분이 좋았습니다만, 혼자서 거의 스무고개를 다 넘은 권 작가에겐 슬며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거나 저는 이순신 장군 덕분에 쪽박은 면했습니다. 거기다 등단까지. 일단 어떤 대회든 입상하면 등단으로 쳐주는 거 아닌감~ ㅋ ^.^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예능 프로를 열심히 봐야지. 그래서 다음엔 꼭 스무고개를 다 넘기 전에 무슨 답이든 다 찾아야지."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