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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2.11 명작스캔들, 노래 하나에 가사가 세개나 되는 이유 by 파비 정부권 (4)

<명작스캔들>. 정말 유익한 프로입니다. KBS가 휴일에 내놓는 프로들 중에는 좋은 프로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끝난 <풍경이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이어서 하는 <한국재발견>도 물론 좋은 프로입니다.

시와 서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이 아주 제 취향입니다. <TV 진풍명품>은 왕종근 씨가 진행할 때는 빼놓지 않고 봤었는데 지금은 잘 안봅니다. 왕종근 씨 할 때는 정말 이거 보는 재미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화기행 세계의 유산>,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등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편성된 프로들을 보면 정말이지 느긋하게 문화유산 답사코스를 거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좋은 프로들 중에서 유독 <명작스캔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명작스캔들 홈페이지

지난주가 마흔네 번째 스캔들이었으니 벌써 1년이 다 돼가는군요.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니. 제가 이토록 지나간 방송프로에 아쉬움을 느껴보긴 처음입니다. 제가 비록 TV 보기를 좋아하긴 해도 지나간 프로 못 본 걸 아쉬워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유익한 프로라고 하더라도 재미가 있어야겠죠? 제 아무리 교육적으로 교양적으로 좋은 프로라도 재미없으면 ‘꽝’이죠. <명작스캔들>은 그 점에 있어서 합격 아니 100점을 주어도 전혀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도 있습니다.

우선 출연자들의 입담들이 보통이 아닙니다. 가수였다가 요즘은 화가로 전업(?)했다는 조영남 씨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의 좌충우돌 콤비에다 최원정 아나운서의 지적 이미지가 잘 버무려진 <명작스캔들> 자체가 하나의 명작입니다.

칭찬은 뭐 이정도로 하고요. 남들이 과유불급이란 말을 자주 할 때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아이들에게 우유를 너무 많이 줘도 배탈이 날 수 있다, 뭐 그런 뜻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뭐든 과하면 탈난다는 말이겠지요. 그러므로 끝.  

마흔네 번째 스캔들은 밀레의 <만종>과 작곡가 채동선의 <고향>이었는데요.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고향>에 얽힌 이야깁니다. 밀레의 만종에 숨은 이야기도 흥미 있었지만 분단의 아픔이 진하게 배어나오는 <고향>이 더 흥미롭군요.

<고향>은 채동선이 정지용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두고 사람들마다 기억하는 가사가 다 다릅니다. 누구는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이라 부르고 또 누구는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뵈네…” 하고 부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리워 그리워…”로 시작하는 가사로 이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로 시작하는 정지용 시인의 가사는 생소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조영남 씨는 정지용을 일러 “세계 최고의 서정시인”이라고 극찬을 했는데, 왜 정지용의 가사는 사라지고 이은상과 박화목의 가사가 주인을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일어났을까요? 제목도 고향 대신에 망향, 그리워가 우리의 기억을 사로잡았을까요?

김갑수 시인은 여기에 대해 정지용 시인의 <고향>만이 이 멜로디의 유일한 주인이며 나머지 두 개의 가사는 폐기되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시가 노랫말에서 지워진 것에 대해 “정지용 시인이 억울하겠다”는 말이 나오자 그는 단호하게 억울한 것은 “정지용 시인이 아니라 작곡가 채동선 선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채동선은 정지용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을 했는데 뒤에(53년 채동선 사후에) 출판사들이 마음대로 가사를 같다 붙이면서 처음 만들 때의 애절한 정서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정지용이 쓴 본래 가사와 박화목이나 이은상이 쓴 가사에서 전해오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정지용의 시에서는 ‘고향은 그대로이나 돌아온 나는 타인이 되어 어디에도 머물 곳 없는’ 슬픔이 애절하게 느껴지지만 이은상 등의 시에선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이은상이나 박화목은 그저 고향, 향수 같은 것만을 얘기하고 있지만 채동선이 정지용의 시에 멜로디를 붙일 때 가졌던 감상은 그런 것만이 아니었으리란 점에서 작곡가가 가장 억울하다는 것이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채동선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렇게 한탄할지도 모르겠군요.

“누가 내 노래를 이렇게 왜곡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 정지용 시인도 해금이 되어서 노래방에서 <향수>도 마음껏 부를 수 있으니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채동선이 작곡한 <고향>이 <망향> 혹은 <그리워>로 변절된 스캔들이 일어난 이유는 정지용이 월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월북했으면 했지 왜 애꿎은 노래가사에다 손을 대느냐고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교과서에 실려 있던 노랫말을 전부 바꾸려면 꽤 많은 노력이 들어갔을 텐데요. 그보다는 좀 치사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행동치곤 치사하네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인생이란 게 원래 다 그렇게 치사한 것이거늘…. 아래에다 정지용 시인의 시와 이은상, 박화목 시인의 시를 실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비교해보시길. 저는 <그리워>로 이 노래를 배웠지만 <고향>을 보니 역시 원판이 훨씬 낫다는 생각입니다.

김갑수 시인의 표현처럼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정시인임에 틀림없습니다.

ps; 참고로 이은상은 마산 출신인데, 친일과 독재부역 논란으로 이은상 기념관을 지으려는 마산시(지금은 창원시로 통합됨)와 시민단체의 충돌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결국 이은상 기념관은 마산문학관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고향 / 정지용 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그리워 / 이은상 詩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임은 아니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망향 / 박화목 詩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는 듯

철 따라 핀 진달래 산을 덮고
먼 부엉이 울음 끊이잖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멘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 주렴아 그대여
내 맘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 일레라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