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6.21 맹자, 부인을 쫓아내고 성인이 되다 by 파비 정부권 (5)
  2. 2012.06.21 고전을 보지 않고 내일을 말하지 말라 by 파비 정부권 (3)

“맹자가 성인이 되고자 고심하다 마침내 부인을 내쫓았다!”

맹자

예사롭지 않은 이 고대의 스캔들을 들춰낸 사람은 다름 아닌 곽말약이다. 다분히 과장되었을 이 이야기는 그러나 순자로부터 차용한 것이었다. 순자는 ‘해폐편(解蔽篇)’에서 ‘맹자는 패덕을 싫어하여 부인을 내쫓았는데, 이는 가히 스스로 수신에 힘쓴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맹자는 금욕주의자’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곽말약의 해학이야말로 흥미롭다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순자의 악패를 부인의 패덕이 아니라 ‘맹자가 자신이 몸을 상할 것을 염려하여 부인을 내쫓았다’는 주장을 펴는 신비한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곽말약. 그는 중국 문화사에서 천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깊고 넓은 학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대문호 노신과 쌍벽을 이루는 뛰어난 문학가요 탁월한 역사학자이자 고문학자였으며, 혁명가였다. 

족발, 제목에 깃든 오묘한 철학
 그가 역사적 사실들로부터 제재를 취하여 집필한 글들을 묶은 책의 제목으로 <豕蹄>, 우리 말로 하면 <족발>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 책의 한국어판 역자(신진호)는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썼다.

“이 시제(豕蹄)라는 말이 우리나라 말로는 돼지족발을 의미하는데 곽말약은 족발이라는 제목이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성질을 잘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값싸고 천한 돼지족발도 불을 세게 때서 푹 삶고, 알맞게 간하고 향신료를 뿌리면 평민들이 즐겨 먹는 요리가 될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기라성 같은 성인‧영웅호걸들의 공식적 역사 속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작은 이야기들도 보는 관점과 다루는 방식에 따라서는 평범한 현대인들이 세상을 달리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꺼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목에 얽힌 이 이야기 속에는 곽말약의 번뜩이는 기지와 자유로운 상상력 그리고 투철한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처음에 곽말약은 ‘역사제재 꽁트’(史題空託)라는 이름을 쓰려했지만, 네 글자가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여겨 ‘사제(史題)’로 줄이려고 했다가 다시 ‘사체(史體 )’로 바꾸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살찐 자기 친구에게 이 책을 바치면서 발음이 같은 시제(豕蹄)로 결정했다고 한다.

오늘 나는 우연히 책장에서 걸어 내려와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족발>을 발견했다. 이 책을 산 것이 어언 십년하고도 4년이 더 흘렀다. 그동안 나는 이 책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니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게 된 셈인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나는 오래전, 이 책 속에서 맹자의 아내를 보았었다. 그녀는 매우 고결했으며 현명하고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곽말약의 비유에 따르면 그녀는 현숙했을 뿐 아니라 매우 요염하고 색기가 넘치는 젊은 여자였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했다. 곽말약의 뛰어난 문재는 맹자가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쩔쩔 매는 모양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적나라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었다.

아내의 미모에 홀린 맹자, 공부가 안 돼
<족발> 속에 등장하는 이 글의 제목은 <맹부자출처(孟夫子出妻)>다. 우리말로 번역한 제목은 <맹자, 부인을 내쫓다>이다. 맹자가 부인을 내쫓았다고? 참으로 독특하고 기이한 제목이 아닌가?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끓어오르는 흥미를 참을 수 없었다.  

공자의 아내는 그 추하게 생긴 몰골과 괴팍하고 못된 성격으로 그의 남편 못지않은 명성을 누렸다. 혹자는 공자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아내의 추하고 못된 성격이 한몫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자는 집을 떠나 천하를 주유했던 것일까?

맹자는 정반대의 경우였다. 맹자의 아내는 매우 아름다웠다. 조숙했으며 지혜롭기까지 했다. 그녀는 맹자가 설파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알았으며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맹자가 아침밥을 먹을 동안 옆에 다소곳이 앉아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예를 알아 행했다. 밥을 퍼서 건넬 때도 나무쟁반을 중간매체로 삼아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받쳐서 건넸다. 식사는 맹자가 좋아하는 담백한 생선죽과 생강 한 조각, 콩나물 무침으로 매우 정갈했다. 그러나 맹자는 밥을 먹는 내내 아내의 얼굴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곽말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어젯밤의 상황과 오늘 아침의 상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맹자는 어젯밤에 부인을, 한 방울의 즙까지도 아까워하면서 참외를 먹듯이 그렇게 애무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바로 어젯밤 그 애무 때문에 맹자는 이렇듯 점잔을 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이란 이처럼 모순된 것이었다.”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요, 곰 발발닥도 내가 원하는 바라
맹자는 공자를 따라 성현이 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그 요체로 ‘부동심’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부인만 보면, 특히 밤에는 마음이 흔들리고 다음날이 되면 여지없이 나른한 기운으로 온몸이 가득 차니 공자가 질책하는 듯해 괴롭기 이를 데 없었다.

곽말약은 계속해서 맹자의 심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직시하지 않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부인의 온몸, 그 적나라한 몸이 사실 그의 모든 감각기관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저고리 아래 튀어나온 봉긋한 유두, 그의 비밀을 모조리 꿰뚫어 보는 듯한 흑요석 같은 눈, 그 온화함, 그 유연함, 그 숨결, 그 유선(流線)……. 그는 천근의 무게에 짓눌린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악마야! 나는 공자의 제자이지, 너의 제자가 아니야!’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외쳐대던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주방으로 가 있으시오. 밥은 내가 직접 퍼서 먹겠소.” 부인을 내보낸 맹자는 벽에 걸린 공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탄식했다.

공자

그러자 부엌에 있던 부인이 놀라 다시 돌아와 맹자에게 말한다. 그녀는 이미 맹자의 속마음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저를 당신의 아내로도 여자로도 여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실 수 없나요? …… 당신 곁에 제가 없으면 전 당신이 불편할까봐 염려스럽습니다. …… 여보, 진정 저를 제자나 하인으로 여겨 주세요.”

여기에 대해 맹자는 “생선도 내가 원하는 바이고 곰 발바닥 요리 역시 내가 원하는 바이다. …….”란 애매한 경구로 답을 대신한다. 역시 맹자는 유식한 지식인이다. 생선은 아내요, 곰 발바닥 요리는 공자다. 극진한 모성애를 느낀 맹자의 아내는 즉시 물러나 짐을 싼다.

천하의 성인도 다른 이의 노동 없이 이루지 못한다
순간, 맹자의 자세는 허물어진다. 그는 심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 곽말약은 계속해서 적고 있다. “아내가 가 버린다면 기름이니, 소금이니, 땔감이니, 쌀 같은 것들은 누가 맡아 살림을 해준단 말인가? 그는 이때 한 가지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성현이 되려면, 아니 심호흡을 하는 것조차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작은 노동 덕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가엾은 맹자는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잘못을 빌며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부인은 그를 안아 일으키며 말한다.

“아니에요. 저는 당신에게 감사해요. 여보, 당신은 천하의 스승이에요. 저 한 사람이 독차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제가 여기 남아있는 것은 당신에게 도움이 못 되요. 제가 떠나는 것이 당신에게 이로운 거죠. 당신에게 이롭기만 하다면 불속에라도 뛰어들 거예요.”

맹자는 문득 아내가 공자보다도 위대하다고 생각되었다. 아내는 이미 만공선생에게 맹자를 보살펴줄 것을 부탁하고 온 참이었다. 그녀는 입으로만 인의를 떠들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했다. 맹자는 생각했다. 공자도 그의 아내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찌 천하를 주유하며 세상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스승은 멀리 공자가 아니라 가까운 아내였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결심을 곽말약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렇다. 말하지 않고 행하는 것, 실천, 실천! 나는 멀리 공자를 스승으로 모시느니 차라리 가까이서 아내를 본받아야겠다.”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맹자는 역시 훌륭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글쎄, 이게 왜 홀연히 세월을 뛰어넘어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을까? 나는 우리 집에 이 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지 오래였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새삼스러운 사실 하나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아내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물론 십여 년 전에도 느꼈던 바이기는 하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맹자가 깨달았던 평범한 진리는 더욱 절실하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작은 노동 없이는 단 한 시도 살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을 아내들은 말없이 실천으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의 경우 특히 그렇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이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2009. 2. 2.  파비

ps; 뛰어난 희극작가요 시인이었던 곽말약의 문학세계는 노신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 그러나 그가 중국공산당에 이용당하는(또는 스스로) 작품을 많이 썼으며, 권력에 아부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는 역시 변함없이 중국 현대문학사에 빛나는 별이다. 이글에 등장하는 묘사들 중에는 현대인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것은 이글이 세상에 나온 때가 1930년대란 점을 감안하면 그리 큰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아쉽게도 곽말약의 사진은 구하지 못했다. 대신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을 사진으로 만들어 올릴 생각이지만, 지금 카메라가 없으므로 서너시간 정도 걸릴 듯하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본 도서 리뷰는 TISTORY와 알라딘이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면 세상살이가 한결 가벼워진다
세월을 뛰어넘은 통찰로 인생을 경영하는 지혜를 배운다
… 인간사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원칙과 지침을 제시해 주는 고전의 세계

고전을 읽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고전을 통해 선현들의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고전을 읽지 않는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삶에 지쳐서 그러하기도 하다. 또는 고전처럼 딱딱하고 두꺼운 책을 쉽사리 들기가 부담스러운 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자 왈’ 한다거나 ‘맹자 왈’ 한다는 말로 그를 무시한다. 이로써 공자와 맹자는 성현의 지위에서 매우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맹자는 참으로 고리타분한 사람들이었던가?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고초를 다 겪었지만 자신을 갈고 닦아 결국 성현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맹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공자 왈’ ‘맹자 왈’ 한 사람들이 아니다. 천하를 주유하며 온갖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논쟁하며 세상을 경영하기에 분투한 사람들이다.


논어와 맹자를 읽는 현대인들이 녹슬지 않는 그 지혜에 탄복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수레바퀴를 마멸시키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는 논어, 맹자, 사서삼경, 순자, 노자, 채근담, 십팔사략 등 방대한 중국고전 중에서도 현대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내용을 엄선하여 수록한 책이다.

지혜의 숲에서 고전을 만나다 - 10점
모리야 히로시 지음, 지세현 옮김/시아출판사


나는 한글세대이다. 우리가 흔히 한글세대라고 하면 1970년 박정희 정권의 한글전용정책 이후에 교육받은 세대를 말한다. 한글전용정책 덕분에 대한민국의 문맹률은 거의 0%로 떨어졌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말할 때 배우기 쉽고 매우 과학적인 글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배우기 쉽다는 것은 한글전용정책 이전 6~70%에 달하던 문맹률이 거의 0%로 떨어졌다는 사실로 쉽게 증명할 수 있다. 그러면 과학적 측면에서의 우수성은 어떨까? 그것도 이미 증명되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한자를 계속 쓰고 있었다면 오늘날처럼 IT강국이 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한글전용정책은 기업들에게도, 특히 컴퓨터와 휴대폰 업체들에게, 비용과 부담을 덜어주는 혜택을 주었다. 이처럼 얻은 것이 많은 대신 우리는 한자를 잃었는데, 그것만 잃은 것이 아니라 한자가 만들어내는 한문 즉, 고전도 함께 잃어버린 것이다. 성장제일주의를 넘어 다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한문이 새로 관심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책의 저자는 일본인 모리야 히로시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중국문학자로 중국고전의 대부분을 번역했다. 그는 머리말에서 “나는 이 책을 30대 이상의 이 사회를 열심히 지탱해나가고 있는 사람들, 특히 40대 이상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중국고전은 단순히 지식과 교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지식과 교양만을 얻기 위해선 중국고전이 적합하지 않다고? 그럼 무어란 말인가.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이는(중국고전은) 어디까지나 실학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실천했을 때 의미가 있으며 비로소 그 값어치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층은 사회의 중심 세대이긴 하지만 고전의 내용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 이르다.”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이 유명한 고사성어인데도 걱정스러울 정도로 잘 이해를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컴퓨터를 비롯한 온라인 매체의 홍수에 빠진 요즘 세대들이 중국고전에까지 신경쓸 여가가 없다는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첨단매체, 첨단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고전은 그에 비길 수 없는 무한한 가치의 보고란 점을 강조한다.


나는 저자가 일본인인데도 나와 매우 비슷한 눈을 갖고 있다는데 놀랐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일본도 우리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말 중에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대학에 나오는 말로써 수신제가에 힘쓴 연후에 나라를 경영해야 천하를 평안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고사성어를 설명하면서 “요즘 정치가들을 보고 있으면 새삼 인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냥 무심코 이 말을 지나치다가,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으니까, 문득 그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생각했다. ‘아, 일본의 정치인들도 우리네 정치인과 별로 다르지 않은가 보구나.’


오래전 황광우는 이렇게 말했었다. “修身齊家에서 제가란 가정을 잘 돌보라는 말이 아니다. 공자와 맹자가 가정을 잘 돌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들은 제가를 이루었다. 제가란 곧 이다. 자신을 잘 갈고 다듬어 이렇듯 제가 즉, 정당을 만들어 나라를 경영하고 천하를 평안케 하는 것이 정치가(그는 노동운동가였으므로, 사실은 노동운동가)의 역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황광우가 말한 수신제가는 고사하고 전통적 의미의 수신제가도 제대로 하는 경우를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이 사회의 중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3~40대의 직장인들이 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정치인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스스로 자신을 수양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다면 나라의 장래를 위해 큰 덕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수신제가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정계에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 원칙일 터이지만, 그것은 이상이고 현실은 차가운 것이므로 그런 정도의 소망이라도 가져보는 것이다.


나는 또 이 책을 스스로 진보운동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꼭 읽어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진실로 이 사회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자 부단히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가끔 자기신념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된 것 같은 슬픔을 본다. 고전의 명구는 그들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줄 것이다. 


고전을 읽는 것은 마치 훌륭한 그림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가 위대한 화가가 그려놓은 그림을 어제 보고 오늘 또 보지만 거기서 항상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처럼, 고전을 읽는 것은 늘 새로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준다. 고전에 등장하는 고사성어들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을 내는 특별한 향신료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논어나 십팔사략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완파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친절하게도 수많은 중국고전들 중에서 겨우 109개의 경구만을 가려 뽑아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겨우라고 했지만, 현대인들의 처세에 매우 핵심적인 내용들로 이정도만으로도 지혜의 숲을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침 이 책에 독서방법에 대한 하나의 교훈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송나라 주자 등 학자들의 글을 뽑아 편집한 『近思錄근사록』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근사란 논어의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仁은 그 안에 있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루는 주자의 스승인 정이천에게 한 제자가 학문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모름지기 책을 읽어라!” 하고 전제한 후에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핵심을 파악하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많이 보고도 그 핵심을 모르는 자는 서사(책방주인)일 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며, 아무 책이나 읽어서도 안 된다는 말이겠다.


그러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 근사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반드시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많이 읽는 것보다는 책이 말하고 있는 핵심을 간파하도록 유의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모리야 히로시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얻으려면 이러한 독서가 가장 실천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핵심을 잘 간파할 수 있는 유용한 독서법을 얻으려면 풍부하면서도 날카로운 사고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고전읽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고전읽기만큼 생각을 풍부하게 해주는 독서가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 “오늘 새롭고, 나날이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롭다”는 대학의 경구처럼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방법으로, 우선 가볍게 전체를 한번 훑어본 다음 화장실에 두고 매일 한 구절씩 그 뜻을 음미하며 읽으면 어떨까 생각한다. 화장실이야말로 가장 편하면서 친숙한, 사색을 하기에는 아주 적당한 공간이 아닌가. 고전은 단번에 베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다. 조금씩 두고두고 천천히 되새김질하듯 음미해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만 20년 전에 내가 들었던 말을 오늘 다시 여기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낸다.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아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고전을 읽어라. 고전을 읽지 않고 어떻게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설계할 수 있겠는가. 고전 속에는 오늘을 말하고 내일을 보는 지혜가 들어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