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6.26 노회찬에게 분풀이, "MB는 뺄개이, 마산시장은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놈!" by 파비 정부권 (7)
  2. 2009.02.14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란 사실을 봄바람에 느끼다 by 파비 정부권 (5)
  3. 2008.09.17 비보호좌회전! 알아서 가라고? by 파비 정부권 (8)
  4. 2008.09.16 목포는 항구다, 마산도 항구냐? by 파비 정부권 (7)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어제 곤욕을 좀 치렀습니다. 마산 수정만 매립지 STX조선소 입주반대 주민농성장을 방문한 노 대표에게 주민들은 한시간이 넘도록 자리에 앉혀놓고 분을 풀어댔습니다.

"개새끼!"
"뺄개이 같은 새끼들!'
"김일성이보다 나쁜놈!"

천주교 마산교구청 마당에서 농성중인 수정만 STX 반대주민들. 바닥을 탕탕 치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뺄개이 앞잡이들
그러나 그 욕들은 노 대표를 향한 것이 아니라 황철곤 마산시장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60, 70이 넘은 노인들은 황 시장과 한나라당을 향해 개새끼, 뺄개이 같은 새끼, 김일성이보다 나쁜놈 등 원색적인 욕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마루바닥을 탕탕 치며 원통함을 토해내는 그분들 앞에서 노 대표는 할말이 없었을 겁니다.

그 노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바로 뺄개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한 노인네가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용산참사에 그놈들 하는 짓거리 봐라. 그기 사람들이 하는 짓이라고 보나. 이명박이 그기 뺄개이 아니면 누가 뺄개이란 말고? 그놈의 새끼들이 바로 뺄개이들이라."

오늘날의 마산은 바다를 매립하여 생긴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00년 전 창원부(창원군)의 자그마한 포구였던 마산은 3포개항 이후 급격하게 변했습니다. 일본인들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바다를 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신마산이라고 부르는 지역이 바로 일본인들에게 할양되었던 땅입니다. 필자도 그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뿌려놓고 간 바다를 메우는 버릇은 해방 이후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계속됐습니다. 원래는 바다였던 지금의 마산시청 자리는 1920년대까지만 해도 송림이 울창했던 유명한 월포해수욕장이었다고 합니다. 마산에서 가장 거대한 아파트 단지인 해운동은 두산건설이 매립했는데 고작 2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창원을 지나 마산만을 달리는 해안도로변의 건물들 중에는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진 건물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신기하기도 합니다만, 그 안에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불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스팔트 도로도 여름철 태양에 늘어진 엿가락처럼 휘어진 게 차를 달리다보면 마치 곡예를 하는 느낌입니다. 물론 최근에 새로 아스팔트를 깔았습니다만…

수녀님들이 농성장 벽에 붙여놓은 기도문인가보다. STX조선소가 들어오면 수정만은 사람이 살 수 없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 매립, 피해는 시민들만 
매립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입니다. 건설사들은 큰 돈을 벌어서 좋고 공무원들은 떡값이 생기니 좋은 일입니다. 물론 일선 공무원들은 해당 없는 이야기입니다. 어디까지나 시장과 고위공무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지요. 시민들도 물론 해당 없는 남의 이야기입니다. 매립을 그렇게 많이 했지만, 그곳에 공원이 하나 생겼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가끔 들러 배를 빌려 노를 젓던 가포도 매립이 거의 완공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수정만은 그보다 앞서 매립되었습니다. 원래 이 수정만을 매립할 때 이곳에는 주거지역이 들어서기로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느닷없이 STX조선소가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에서 용도변경을 해주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마산시장이 용도변경은 물론이고 앞장서서 STX를 홍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STX 대리인을 자임할 뿐만 아니라 STX를 위해 조선소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탄압하는데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STX 조선소 입주를 반대하는 주민쪽의 어느 집에 들러 제사밥을 얻어먹었다고 이 마을 보건소장을 멀리 쫓아보냈다고 합니다. 창녕의 어느 군수가 자기를 안 밀어주었다고 읍내에 있던 보건소장을 멀리 시골 보건소로 쫓아보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았지만, 제사밥 얻어먹었다고 20 수년을 이 마을에서 봉사한 보건소장을 쫓아내는 꼴은 처음 들어봅니다. 

심지어는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반대편 주민의 아들을 다른 곳으로 발령내 보내버린 것입니다. 그 아들이 울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발 마산시장하고 싸우는 거 그거 좀 하지 마이소. 고마 다른 데로 이사가서 살면 안 되겄습니꺼?" 아들의 하소연에 기가 찼던 그 노인은 어제 노 대표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부모자식도 갈라놓는 마산시장은 뺄개이 앞잡이
"그 새끼들이 바로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새끼들 아입니까. 그 놈들이 뺄개이 아이고 뭡니까. 부모 자식을 이래 갈라 놓고, 삼촌 조카를 이간질 시키고, 이놈들이 도대체 몇 사람이 죽어자빠져야 정신을 차린단 말입니꺼." 정말 그 노인은 울려고 했습니다. 노 대표도 마치 자기가 잘못한 일인 양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어제 그분들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한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자제? 그런 거 업애뿌야 됩니더. 수백억 들이갖고 시청 건물 지어 놓으모 뭐하노. 우리 같은 서민들 오지도 못하게 하고. 손자 같은 경찰애들 불러다 방패로 골탕이나 먹이고."

더 기가 찬 것은 반대측 주민이 운영하는 식당엔 손님도 못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별 이유도 없이 위생검사 나와서 벌금이나 때리고, 그러니 장사도 해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시골 바닷가의 허름한 식당들이란 것이 그렇습니다. 마음 먹고 위생검사 나가면 백발백중입니다. 70이 훨씬 넘어 보이는 허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기라. 마, 잘해 줄 필요도 없다. 고마 지금껏 살던 대로 살게 가만 내비리 도라 이말이다." 

이대로 두면 밤을 샐 것 같다고 판단한 농성장의 젊은 사람이 나섰습니다. "어르신들. 오늘 우리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충분히 우리 심정을 전달했다고 보고요. 내일 오전에 야당대표회담도 있다고 하시고 바쁘신 분을 너무 오래 붙들어두면 안 되니까 이 정도로 하는게 어떻습니꺼? 보니까 노 대표님이 마음이 약해서 계속하면 가시지도 못할 거 같습니더."

그제사 "맞다. 그래. 노 대표가 잘못한 기 하나도 없는데 우리가 괜히 노 대표 한테 분풀이를 한 거 같네. 아이구 미안하요. 그래도 이렇게 찾아와 주고 너무 고맙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노회찬 대표의 손을 잡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큰 박수로 환영의 뜻을 보냈습니다. 제가 듣기에 그 박수는 마치 묵은 체증을 내려보내는 기쁨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정권은 몇 명이나 더 죽어자빠져야 정신을 차리나
그러고 보니 마산시장은 물론이고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나 마산시 의원들은 한 번도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렇듯 힘없는 야당, 진보신당 대표의 방문에도 감격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다음주 월요일(6월 29일)에 이분들은 버스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간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걱정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황혼에 다다른 노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국회의원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노인들이 만나게 될 것은 손자 같은 경찰애들이 들고 있는 방패 뿐일 텐데 말입니다. 언론들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돈 안 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줄 언론인들이 몇이나 있을까요?

정말 몇이 죽어나자빠져야만 되는 것일까요? 참으로 그런 황망한 일이 벌어질까 두렵습니다. 어젯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까만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명박이가 뺄개이 같은 놈이라고? 마산시장이 뺄개이 앞잡이라고?" 그러나 이내 이런 의문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나도 저 어르신들이 울분을 토해내던 그 '뺄개이' 축에 드는 건 아닐까?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는 나도 혹시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놈' 축에 드는 건 아닐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아, 봄이다. 창문을 여니 봄내음이 확 코끝을 스친다. 어제는 비바람이 용천을 부리더니 오늘 이렇게 맑은 날씨를 선물하려고 그랬나보다.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산동네다. 해안가 산비탈에 도시가 형성된 마산은 모든 마을이 산동네라고 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마산을 차지하고 난 이후 그들의 방식대로 바다는 매립되었고 이제 평지도 꽤 넓어졌다.

일본인들이 물러가고 난 이후에도 매립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절에는 바다를 메우는 간척을 영토 확장 사업쯤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는 국민학교(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바다가 어떻게 메워지고 있으며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배웠고 시험도 치렀다. 어느 선생님은 간척사업을 (거의 찬양에 가깝게) 칭찬하면서 박통은 광개토대왕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마산만이 시원하다. 멀리 창원도 보이고, 두산중공업도 보인다. 아들놈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마산의 역사는 매립의 역사
수년 전에 경남도민일보가 기획으로 연재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아마 1976년이던가? 기억이 희미하다. 당시 마산시청을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니 그곳에서 조개껍데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그래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곳이 193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였다는 것이다. 바다라도 보통 바다가 아닌 아주 특별한 바다 말이다. 바로 마산시청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 있었던 자리였다는 것이다.

월포해수욕장은 일제시대 때만 하더라도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던 명소였단다. 인천의 송도와 더불어 조선팔도에 쌍벽을 이루는 해수욕장이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 해수욕장으로 인해 경성에서 마산까지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고 할 정도니 가히 그 명성을 알만하다. 하긴 산 위에서 가만이 내려다보니 둥근 항아리처럼 생긴 마산만 한쪽에 자리한 모양이 해수욕장의 입지로서 그만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해수욕장을 따라서 길게 송림이 있었다고 하니 그 운치가 오죽했으랴.

나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월영이란 사실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누가 월영이라고 이름을 지었단 말인가? 월영이란 달그림자. 이름 한 번 대단하다. 이 퀴퀴한 냄새나는 마산만에 도대체 달그림자가 가당키나 한가. 그런데 그 이름을 지었다는 분이 다름 아닌 고운 최치원 선생. 아, 이분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신선 같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의 드높은 학식은 이 좁은 땅을 넘어 당나라에까지 떨쳤다.

그러나 인걸이 시대를 잘못 만나면 할 수 있는 일은 방랑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최치원을 신선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중환도 권력에서 밀려나 20여년의 방랑 끝에 택리지를 썼다. 정약용은 맏형 정약종이 천주학쟁이(천주교)의 괴수로 지목돼 한강에서 목이 잘리었으며, 또 다른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 그곳에서 죽었다. 그 자신도 18년 유형의 세월을 보냈는데, 그가 권력의 품 안에서 달콤한 나날을 보냈다면 우리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만날고개에 얽힌 전설이 돌에 새겨져 있다. 읽어보면 눈물 난다. 참말로 옛날엔 저리 살았나.

따스한 봄볕 아래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는 부부가 부럽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월영대의 전설이 어린 마산, 그러나 이제 달그림자 대신 쓰레기만…
이렇든 저렇든 나는 그 고매하신 최치원 선생이 어째서 마산의 이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 월영대를 짓고 시가를 읊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답은 매립에서 나왔다. 최치원이 감동해서 3년을 머물렀다는 월영대. 그 월영대가 바라보던 바다는 매립되어 이제 건물이 하늘을 찌르고 차들이 매연을 뿜으며 달린다.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던 아름다운 밤바다는 이제 휘황한 네온사인과 젊은 남녀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어느 취객이 웩웩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들로 가득 찬다.

어제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샀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산은 퇴근시간이면 항상 붐비는 고속도로와 국도, 낡은 건물, 구불구불한 도로, 그리고 오염된 바다로 이제는 그 초라함을 감출 수가 없다. ……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마산 앞바다가 현재 마산의 실상이다. 쇠퇴해가는 도시에 대한 아쉬움과 마산 시내의 도로에 대한 불평을 달고 마산을 가로질러 달린다.”

이런 괘씸한 녀석이 있나. 이 책의 저자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이다. 대학졸업 기념으로 전국을 일주하고 있단다. ‘로시난테’라고 명명한 자전거를 타고서. 그렇다면 녀석은 틀림없는 돈키호테일 터. 그러나 녀석의 말은 하나 틀린 데가 없다. 책이름은 <『달리는 거야 로시난테』글/사진 양성관, 즐거운상상>, 문장이나 구성이 신선하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었다. 나는 원래 서점에서 너댓시간씩 죽치며 공짜로 책 읽기를 즐기는 데 이 책은 너무 좋아 직접 돈을 주고 샀다. 내가 다 읽고 아들에게 물려 주려고….

사실 마산은 도로도 엉망이고 가로수도 별로 없고 공원도 없다. 젊은 부부가 아이 키우기에 가장 부적합한 도시가 마산이다. 노인들에게는 편리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선에 가까운 교통망하며 인근에 어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으니 노인들이 살기에는 편하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라면 이런 곳에서 별로 살고 싶지 않을 터이다.

지금 마산은 매립이 한창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공장을 유치한단다. 그러면 마산의 인구가 늘고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고 자가용이 생필품이 된 시대에 STX가 수정만에 들어오면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마산에 정착하고 창동 상권이 살아날까? 몇 년 지나보면 자연히 알 일이다.

차이나 최가 뽑는 옛날 손짜장은 정말 맛있다. 한 번 가 보시길. 만날재에 올라 마산만도 감상하시고.

그래도 만날재 공원이 있어 마산만은 아직 푸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른다. 겨울이 바로 엊그제, 너무 무리하지 말자. 오늘은 그저 만날고개 꼭대기까지만 올라가 봄바람을 마음껏 쐬기로 했다. 만날고개 입구에 ‘만날재 옛날 손짜장’ 집이 있다. 최점구 씨가 하는 가게다. 그의 별명은 ‘차이나 최’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별호다.

보신 분은 수긍하겠지만, 그는 꼭 무술영화에 나오는 검객(또는 권객)처럼 생겼다. 주먹도 엄청 큰 게 진짜 강호에 태어났더라면 한 가닥 했을 것처럼 보인다. 거기서 일단 요기부터 했다. 아들은 짜장면, 나는 짬뽕. 계산을 하고 다시 산을 오른다.

마산 앞바다가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준다. 아들녀석이 돝섬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빠, 요즘은 돝섬에 사람이 아무도 안 가나봐.” 지난 가을 국화축제 때 녀석을 데리고 돝섬에 갔었다. “어떻게 아는데?” “봐라. 배가 안 다니잖아. 배가 안 가면 사람이 어떻게 가는데?” ‘음, 역시 젊은 놈이라 관찰력이 나보다 뛰어나군.’

그러나 어떻든 정말 시원하다. 마산에도 이렇게 시원한 공원이 있다. 나는 예의 그 돈키호테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탁 트인 호수 같은 바다를 조망하며 등산까지 즐길 수 있는 이런 공원이 세상에 그리 흔한 줄 아느냐? 보아라. 예서 보니 마산 바다가 얼마나 푸르고, 봄바람은 또 얼마나 상큼하단 말이냐.”

만날재 공원 주변에 심어놓은 자그마한 나무들이 불쌍해보였다. 저놈들이 탈 없이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저것들이 훌쩍 커서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 때쯤이면 나는 백발을 날리며 여기 기어오르는 것조차 힘들어 할 테지. 그리 생각하니 괜히 또 짜증이 난다. ‘대체 마산의 조상님들은 지금껏 무얼 하셨단 말인가.’

하긴 못난 놈이 조상 탓이다. 가수 이용 생각이 난다. 그가 부른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배나무를 심자고 했던가? 하여간 나무를 많이 심자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은 앙상한 뼈대가 너무나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이 애처로운 나무들도 머잖아 사람들의 훌륭한 휴식처로 사랑받게 되겠지.

만날공원 내에 주막집도 있다.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허름하던 옛집을 신축한 모양이다.

새로 지은 주막 옆에 오래된 옛 건물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공원 안에 만들어놓은 자리에서 한참을 쉬다가 일어났다. 앉았다 일어서려니 불룩한 배가 장히 부담스럽다. “아, 이거 나도 배가 꽤 나왔는데. 운동을 너무 안 했나?” 그러자 옆에서 아들 녀석이 응수한다. “아빠. 나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배에 왕(王)자가 새겨졌다.” 그러고 보니 녀석의 배에는 왕자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들들은 모두 배신자다
너무나 바싹 말라 불쌍해 보이는 녀석이 언젠가 자기 배를 내어 보이며 왕자를 살펴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보니 녀석의 배에 새겨진 것이 왕자 같기도 했고, 또는 너무 말라 뼈대가 드러나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살찌지 않는 체질은 실로 복 받은 일이라는 데 둘은 동의했었다.

그러나 방심하지 마라, 아들아. 이 아빠도 어릴 때 별명이 자그마치 ‘며르치’였단다. 그러나 이제 80Kg에서 1~3Kg이 들락거리는 ‘살찐 며르치’가 되었단다. 오늘에 자만하지 말고 항상 내일을 염려하며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으름이 없어야한단다. 그리해도 겨우 자기를 보존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게 인생이란 것이지.

그런데 녀석이 안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한참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아빠, 나 먼저 내려갈게.” 하며 내려갔었지. 나는 아래쪽 공연무대가 있는 곳에서 기다리겠다는 소리로 알아듣고 그러라고 했었다.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지금 어디냐?” “아빠, 나 지금 중앙캐스빌에 와 있는데. 먼저 내려간다고 했잖아. 친구랑 좀 놀다 갈게.”

중앙캐스빌은 월포초등학교에 함께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의 집이다. 아, 이럴 수가, 아들 녀석이 나를 배신했다. 터덜거리며 혼자 내려오는 길이 외롭다. 화도 난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것도 다 운명이다. 결국 아들들이란 모두 배신자다. 나도 배신자가 아니던가?

그래, 배신자여. 너는 네 갈 길로 떠나라. 나도 내 갈 길로 가련다. 아들은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딸내미를 데리고 풍물 연습하러간다고(또는 구경) 갔다. 모두들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재미있나보다. 에이~ 배신자들….

이 녀석이 바로 배신자다.


2009. 2. 14. 토요일
오후 6시 정각.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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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호좌회전? 도대체 무슨 뜻이지? 오래전부터 늘 궁금하게 여겨오던 터였다. 우리 집 쪽으로 올라가는 삼거리에도 비보호좌회전 표식이 있었다.(지금은 없어지고 정식 좌회전 신호체계로 변경됐지만) 어쩌다 비보호좌회전을 받고 기다리고 있노라면 뒤에서 직진 차들이 빵빵거리고 난리를 친다. 그럴 때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등에서 식은땀을 빼곤 했다.

사실 비보호좌회전은 편도 2차선과 같은 도로가 좁고 통행이 많은 곳에선 교통흐름 정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만약 편도 1차선인 도로에 비보호좌회전이 있다면, 아마 절대 없겠지만, 아예 도로를 점거하는 모양새가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차량통행이 적은 도로에선 편리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다음> 검색창에 알아보았다.

비보호좌회전 非保護左回轉. 교차로에서, 별도의 좌회전 신호를 주지 않고 직진 신호일 때 좌회전을 허용하는 신호 운영 방식. 일반적으로 직진과 회전 교통량이 적은 교차로에서 행하며, 신호 주기가 짧고 지체가 적어 효율성이 높다.

<네이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비보호좌회전이란 녹색 직진신호일 때 교통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운전자가 알아서 가라는 뜻인 것이다. 물론 사고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있다는 경고의 뜻이 포함되어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 말뜻을 잘못 독해하여 파란불이든 빨간불이든 무조건 알아서 조심해서 가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경우 예기치 않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때때로 이런 운전자 중에 성질 급한 분은 제대로 법을 이해하고 적색신호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운전자를 향해 신경질과 모욕을 던지기도 한다. 또 비보호좌회전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좌회전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주야장천 기다리는 운전자도 있다. 여성 운전자 중에 그런 분이 많은데 초기에는 나도 그 범주에 들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다시 마산중부경찰서 앞 교차로에 붙어있는 비보호좌회전 표시를 바라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보호라고? 국민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죽든 살든 알아서 하라고? 알아서 하라고 해놓고 사고가 나면 책임은 지라고 하겠지. 그게 늘 국가란 존재가 국민을 향해 해오던 짓이었으니까. 그러다 결국 그런 생각도 체념으로 바뀌었다. 온 국민을 다시금 약육강식의 정글로 내던지려는 정부도 있는 마당에 그깟 도로에 붙어있는 ‘비보호’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말이다.

2008. 9. 17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산도 항구도시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실 나는 마산이 항구도시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마산은 과거에 항구도시였으며, 전국 7대도시였으며, 그래서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목소리들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마산시 청사가 아닐까 하는 것이 그저 지레짐작이다. 최근 마산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미래 마산의 청사진이란 것은 <드림베이 마산>이라고 하는 슬로건에 온전히 들어있다. 꿈의 항구도시 마산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가포만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를 조성하는 대역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수정만 바다를 매립하여 STX 조선소를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신포 앞바다는 이미 매립하여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코딱지만 하기는 해도 시민의 눈을 의식해서 자그마한 공원이 하나 만들어졌다. 남들이 보면 무슨 공원이 이러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그래도 마산에서는 보기 드문 공원이다. 그나마 그마저도 친일논란이 있는 이은상과 조두남 기념관을 짓겠다고 하여 한동안 시민단체들과 씨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이 마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드림베이(dream bay), 즉 꿈의 항구도시 마산을 건설하기 위한 사업의 내용들이다.

나는 처음에 드림베이라고 하기에 태평양의 푸른 파도와 지중해의 낭만이 연상되었었다. 그런데 드림베이란 것이 알고 보니 대형 아파트촌을 건설하고 공장을 유치하여 인구를 유입하는 것이었다. 드림베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꿈이나 낭만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산, 녹색이 물결치는 살만한 마산과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파괴하고 개발해야만 다시 7대도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들 생각하는 듯하다. 그나저나 과연 소원대로 7대도시가 된다한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지도 나는 알지 못하지만, 도대체 드림베이란 것을 해서 살기 좋은 도시가 된다는 것도 말 그대로 드림, 꿈같은 소리로만 들린다.  

이번 추석에 목포에 다녀왔다. 그곳도 항구도시다. '목포는 항구다'란 노래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목포는 마산에 비하면 자그마한 도시다. 마산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자그마한 시골도시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목포를 둘러보고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목포는 마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푸근함 같은 것이 있었다. 바닷내음부터 달랐다. 목포는 정말 항구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었다. 역시 목포는 항구였다.

그러나 내가 목포에 반한 것은 그곳이 항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도 이곳과 마찬가지로 개발바람을 비껴가진 못한다. 역시 그곳에도 아파트촌이 건설되고 공장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엔 아름다운 산이 있었고 문학관이 있었고 박물관이 있었다. 바닷가 경치 좋은 곳 엄청나게 널따란 부지에 예닐곱 개의 박물관들이 모여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도 있고 해양 박물관도 있다. 정말 웅장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마산 같았으면 금싸라기 같은 땅이 아까워서 과연 이렇게 커다란 박물관들을 그것도 한개도 아니고 예닐곱 개나 지을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드림베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도시가 있다면, 그런 꿈을 꿀만한 자격이 있는 도시라면, 그곳은 마산이 아니라 목포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어쨌든 나와 아이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목포시민은 50% 할인이라고 해서 목포시민인 형과 형수, 병원에 장기 입원해 계시다 추석 때 이틀간 외박 나오신 아버지까지, 모두들  모시고 갔다. 해양박물관은 공짜였고, 자연사박물관과 도자기 박물관은 아래와 같은 저렴한 가격으로(자연사박물관에서 계산하면 도자기박물관은 덤이다) 거의 공짜로 구경하다시피 했다. 공짜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또 우리 가족인 고로 구석구석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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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배다. 우리나라에 마지막 한 대 남은 배라고 했다.
               더 이상 만들지 않는 하나 남은 유물이라고 하니 더 유심히 살폈다.
               이 배는 1989년에 만들어 조업하던 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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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텅구리배의 닻이다. 배에 비해 크기가 웅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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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의 맞은편에 자연사박물관이 보이고 그 뒤에 나지막한 암산이 보인다.  
               목포엔 이런 바위산들이 많이 보였다. 그 중 최고는 물론 유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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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포돛배를 재현해 박물관 마당에 전시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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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세기에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중국 무역선을 잔해를 모아 재현한 신안호.
               1천년 전에 만들어진 배라고 하기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포토존에서 촬영했는데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카메라 탓이라고 하고 싶지만, 내게 DSLR 카메라가 주어진다 해도 별로 다르진 않을 것이다.
               사진기(삼성디카)도 별로고 사진사도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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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 해저에서 발굴한 유물들. 후추와 일본장기도 보인다.
               그리고 해저에서 발굴된 금화보다 귀한 엽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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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물표다. 화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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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나무기둥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평화롭다.
               마치 풍어를 기원하는 솟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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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박물관에 이어 자연사박물관으로 갔다. 정말 대단했다. 지구에 생명의 신비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잘 보여주는 박물관이었다.
                암모나이트로부터 티라노사우루스, 신생대의 포유동물들, 나비, 장수풍뎅이 등 곤충들,
                사라져가는 식물들, 바다생물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래무지도 보았다.
                어린 시절 모래무지와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했다.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도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랐다.

                아!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촬영금지구역이었다.
                어차피 내 사진 실력으로는 이곳의 감동을 전하기에 역부족이므로 차라리 잘 됐다.
                궁금하신 분은
http://museum.mokpo.go.kr/ 에 가서 아쉬운대로 살펴보시면 되겠다.

                이곳 구경을 끝내고 도자기 전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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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한 듯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혜민이. 초딩 1년짜리 우리 딸이다. 직접 실습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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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 재료도 전시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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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엄마와 딸아이가 타일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들놈은 그 옆에서 그리고 있는데
               사진 찍지 말라고 한다. 집중이 안 된단다.  
               맨 왼쪽이 딸, 가운데가 아내, 맨 오른쪽이 아들놈 그림인데, 아들놈은 화투짝을 그렸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깅에 빠져있는 내 옆에서 두 놈이 화투짝을 돌리고 있다.
               이거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좋다는 걸 말리기도 그렇고, 내가 할 줄 모르는
               걸 잘 하는 녀석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요놈들이 컴퓨터에서 화투치는 법을 배워서는 내게도 가르쳐줘서 며칠 전에 셋이서 한 판 쳤다.
               평생에 처음 쳐본 고도리였다.  
               우리 가족이 만든 타일그림들은 박물관 벽에 붙여져 영원히 전해진다고 한다.
               물론 다른 가족이 그린 타일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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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오랜만에 보는 것이지만 정감이 가는 익숙한 물건이다. 이게 바로 요강이란 것이렷다.
               뒷간 가는 것이 두려운 옛날 어린아이에겐 정말 귀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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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자기 전시관의 마지막은 행남자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 이 지방 향토기업인가보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향토기업이 이런 전시관에 지원도 하고 자기들 자리도 하나 차지하는
               게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지역엔 이런 향토기업도 하나 없다.


그 다음 남농미술관이며, 문예역사관이며, 또 무슨 전시관이며 문화관은 다음 기회에 보기로 했다. 여기 소개한 사진들은 그야말로 신발에 묻은 흙 정도만 턴 것에 불과하지만, 여기까지 보는데도 종일 걸렸다.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겠는가?
저녁을 먹고 유달산에 달구경 갔다. 그러나 달은 보지 못했다. 구름 속에 숨어 끝끝내 그림자조차 보여주길 마다하는 보름달과 먹구름을 함께 원망하며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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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집에 돌아왔다. 마당에 핀 꽃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제 피었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꽃이다.
               
밤에 달이 떴다. 하루를 넘겼지만 보름달과 다름 없다. 역시 달은 마산 달이다. 목포가 아름다운 항구고 문화적으로 여유가 풍부하기로 마산이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달 만큼은 마산이 최고다.
그래서 우리 동네 이름도 고운 최치원 선생께서 ‘월영月影’이라고 지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도무지 파괴와 개발의 대명사가 된 드림베이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이 또한 월영이란 이름이고 보니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운선생이 다시 돌아와 보신다면 무어라 말씀 하실까?


2008. 9. 16 한가위 연휴 끝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