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1.01.24 애 하나에 엄마가 셋, 신기생뎐 작가의 키워드는 논란? by 파비 정부권 (17)
  2. 2010.04.27 막장드라마를 보며 드는 막장에 대한 추억 by 파비 정부권 (3)
  3. 2010.03.18 '수삼', 시청률 40% 넘겼으니 국민드라마? by 파비 정부권 (46)
  4. 2010.01.19 '공신' '파스타' 막장 주장에 동의 못하는 까닭 by 파비 정부권 (51)
  5. 2009.12.29 막장 '수삼'과 '보석비빔밥', 공통점과 차이 by 파비 정부권 (8)
  6. 2009.12.21 수상한 삼형제, 막장 삼형제 되기로 했나 by 파비 정부권 (17)
  7. 2009.10.23 아이리스, 불편한 막장 언급에 대한 사과 by 파비 정부권 (17)
  8. 2009.05.20 내조의 여왕, 생활속의 사랑법 by 파비 정부권 (1)
  9. 2009.04.18 겨우 이런 게, 19세 미만은 볼 수 없다네요 by 파비 정부권 (1)
  10. 2009.01.09 '너는 내 운명', 미네르바와 막장정부 by 파비 정부권 (9)
주원앓이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시크릿 가든 후속으로 신기생뎐이 문을 열었습니다. 작가 이름이 뜨는데 임성한이네요. 임성한. 늘 논란을 몰고 다니는 작가죠. 저도 임성한 작가의 연속극은 거의 다 본 것 같은데요. 가장 최근에 한 드라마가 보석비빔밥이었죠.

거꾸로 올라가보면 보석비빔밥, 아현동 마님, 하늘이시여, 왕꽃선녀님, 인어아가씨, 온달왕자들, 보고 또 보고, 이렇게 되는데요. 모두들 히트를 쳤고 이다해, 장서희 같은 신인들을(장서희는 신인은 아니었지만 인어아가씨로 자신을 세상에 알렸지요) 스타로 만들었지요.

임성한 극본의 특색 중에 하나는 극중 인물들의 이름이에요. 보석비빔밥에서도 궁비취, 궁루비, 궁호박, 궁산호, 궁상식, 서로마, 이태리, 피혜자, 결명자 등 이름들이 모두 특이했죠. 신기생뎐에서도 그렇군요. 아수라, 그 아들은 아다모, 엄마는 차라리, 금시조의 아들 금어산과 금강산.


지화자도 나오고 마단세도 나오고 서생강도 나옵니다. 이름만 봐도 아하, 임성한 드라마네 할 정도지요. 임성한, 이름만 보면 남자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여성입니다. 60년생, 만 50세가 되었군요. 97년에 작가로 등단했다고 하니 세상에 늦게 나온 편이지요.

초두에 늘 논란을 몰고 다니는 작가라고 했는데요. 그녀의 작품들은 단 하나도 논란없이 지나간 작품이 없습니다. 첫 일일연속극은 mbc에서 했는데, 보고 또 보고였지요. 거기선 소재로 겹사돈을 써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드라마는 최종 시청률이 57%로 지금껏 기록을 보유하고 있답니다.

조강지처를 버리고 간 아버지 때문에 충격으로 장님이 된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복수심으로 배다른 동생의 애인을 뺏는다는 줄거리로 충격을 주었던 인어아가씨는 장서희를 스타덤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 방영되었던 온달왕자들에선 이보다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4번 여자를 만나 4명의 배다른 형제를 두고 있는 아버지와 후처 그리고 아버지와 두 여자가 개입하는 소재와 상황전개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연출자가 이런 이상한 드라마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작가와 갈등을 일으켜 언론에 보도되는 등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방영되었던 하늘이시여는 정말 눈물 많이 짜며 봤던 드라마였지요. 당시 저는 객지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주말에 아내와 아이들이 오면 꼭 이 드라마를 함께 보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만 생각하니 그때가 그립군요. 아장아장 걷던 딸아이와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도 그땐 참 예뻤지요. 

물론 지금도 안 예쁘단 말은 아니지만, 그땐 바라는 거 없이 아이들이 예쁘기만 했는데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대론데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진 저는 많이 불행해졌습니다. 아무튼 하늘이시여도 논란이 많았었지요. 버린(혹은 잃어버린) 친딸을 그리워하다 마침내 찾아내 며느리로 삼는다는 내용이었죠. 

아들은 당연히 친아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재혼가정이었던 거죠. 제가 볼 땐 충분히 이해할만 했고 동정이 가는 처지였지만, 당시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방영한 보석비빔밥도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아내와 함께 봤던 드라만데요.

이 드라마도 논란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이 방탕한 부모를 집에서 쫓아낸다는 설정이 있었거든요. 완전히 쫓아내는 건 아니고 집에서 나가 정신 차릴 때까지 할머니 집에 가서 있어라 뭐 이런 내용이었던 거 같은데, 역시 이 드라마에서도 배다른 동생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보석비빔밥에서는 궁상식이 바람을 피워 데리고 온 궁태자를 궁비취, 루비, 산호, 호박 등이 끔찍하게 위해 주죠. 궁상식의 아내 피혜자도 처음엔 기가 차 하지만 "태자야 너도 참 운명이 기구하구나" 하면서 마치 자기가 낳은 아들처럼 보살핍니다. 그 부분은 저로선 감동적이었지만, 이해 못하시는 분들도 있었을 테지요.


그러고 보니 임성한 작가도 은근히 논란을 즐기는 거 같은데요. 막장드라마 작가란 소리까지 들어가면서도 계속 그런 소재들을 고집하는 걸 보면 말이지요. 막장이란 말 함부로 쓰는 것은 막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성장 기적을 일궈낸 수많은 광산노동자들에겐 정말 죄송한 일입니다.

막장이란 흔히 갈 데까지 갔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어쩔 수 없지요. 이미 보통명사처럼 돼버렸으니. 제 힘으로 그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겠지요. 막장 작가로는 임성한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는 문영남 작가가 있는데요. 제가 볼 땐 두 사람의 막장에는 차이가 있는 거 같습니다.

임성한이 소재의 사용에서 막장이라면, 문영남은 극의 전개에서 막장이거든요. 다시 말해 전혀 개연성 없는 사실의 전개, 우연의 남발, 납득하기 어려운 관계 설정 등이 주 메뉴란 거지요. 제 경우에 너는 내 운명의 문은아 작가를 최고의 막장이라고 쳤는데, 문영남의 수상한 삼형제가 나오면서 생각을 바꿨답니다.

암튼^^ 너는 내 운명과 수상한 삼형제는 제가 이제껏 보아온 드라마 중에 정말 엉망진창 스토리로 구성된 최악의 드라마였어요. 그럼 같은 막장드라마 작가 계보에 이름이 올라있는 임성한  작가는 어떨까요? 역시 제가 보기엔이란 단서를 달고서 말씀드리자면, 그녀는 다른 두 여류 작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문영남과 문은아 작가가 우연의 남발과 개연성 없는 전개에 기댄 막장드라마 작가들이라면 임성한은 파격적인 소재를 다룸으로 인해 막장드라마 작가란 칭호를 얻었을 뿐입니다. 글쎄요. 파격적인 소재의 채용을 굳이 막장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실히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소재로 하거나, 살인사건을 다루거나, 불륜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모두 막장드라마라고 해야만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요. 교육문제에 관심이 큰 어떤 블로거는(그는 실제로 교육개혁운동가이기도 하더군요) 공부의 신이 최고의 막장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겁니다. 사람마다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소재가 다 다른 겁니다. 물론 막장이라고 생각할 만한 소재들을 줄줄이 나열하면서 드라마를 전개하는 것은 분명 막장이 맞겠습니다만, 주요 소재 하나를 놓고 막장이다 아니다 논하는 것은 좀 거시기하다는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막장드라마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자는 것은 아니니까 이쯤 하고요. 신기생뎐에서도 논란이 벌어질 만한 소재가 하나 등장했군요. 딸아이 하나를 두고 엄마가 셋입니다. 금라라. 금병원 원장 금어산의 딸(외동딸 같은데요) 금라라의 엄마가 무려 셋이나 되는 거 같네요.

우선 금어산의 아내 장주희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금라라의 엄마이고, 라라도 그녀가 친엄마인 줄 알고 있습니다. 2회까지 진행된 신기생뎐에서 금라라의 친엄마는 금어산의 동생 금강산의 처 신효리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은 라라가 금강산과 신효리의 딸인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의문의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한순덕.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생집 부용각의 주방장인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간이면 어김없이 금어산의 집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금라라가 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 흘립니다. '키우지 못했으니 엄마 자격도 없는 거지' 하면서 말입니다. 

이 무슨 기묘한 운명일까요? 이 복잡한 관계가 또 어떤 논란에 휩싸이게 될지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임성한 작가는 혹시 매 작품마다 논란 하나씩을 만들어내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은 아닐까요? 모르지요. 그 논란이 또 한 번 임성한은 시청률 제조기다, 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게 될지. 

베테랑 연기자 몇 명을 빼고는 주조연들이 모두 신인들로 채워진 신기생뎐이 우려를 씻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는 작품이 될지 그것도 주목거리입니다. 연예신문들은 벌써 신인들의 연기력을 문제삼지만, 글쎄요, 드라마는 연기자의 연기력만이 성패의 조건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아이돌그룹 베이비복스의 윤은혜가 좋은 예가 될 겁니다.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윤은혜는 자기만의 독특한 것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발음과 어색한 표정을 연기력 문제의 이유로 들지만, 사실은 그게 매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단 말이죠. 그렇다고 초보 연기자들이 이래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기를 갈고 닦아야 하고, 또 극이 진행될수록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막장드라마, 막장에 대한 지독한 신성모독

보아하니 이제 막장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 장르의 한 영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한 것 같습니다. 막장이란 말은 별로 안 좋은 뜻으로 쓰이지만, 이 말을 쓸 때마다 저는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저는 탄전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제 주변에는 막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진학을 포기하고 막장에 들어가기 위해 탄광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막장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꽤 경력을 쌓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요. 막장에 들어가 탄을 캐는 노동자들을 사끼야마라고 불렀습니다. 선산부라고도 합니다. 

막장까지는 안 들어가고 개탄장 등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일러 후끼야마라고 불렀습니다. 후산부라고도 합니다. 사끼야마, 후끼야마 하는 말들은 모두 일본말일 테지요. 어린 시절 그저 들었던 이름들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직까지 사끼야마, 후끼야마 이런 말들은 제 기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 어린 친구들 중에도 사끼야마가 된 이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더욱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빡빡 깍은 머리에 '중'자가 박힌 교모를 올린 채 가방을 걸머지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데 뒤에서 빵빵 거리는 경적소리가 울렸습니다. 제무시라고 부르는 검은 탄차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왜 제무시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고 모두들 제무시라고 불렀는데,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미제트럭 GMC를 지에무시 또는 제무시라고 발음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이 트럭은 등판능력이 상당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이 제무시는 군용트럭으로도 주가를 올렸습니다. 저도 이 트럭을 모는 아는 형님 덕택에 제무시를 타본 적이 있습니다. 조수석에 매달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계곡을 바라보는 재미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삼삼합니다. 등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달려오는 트럭에도 온통 까만 얼굴에 눈만 하얗게 번뜩이는 사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문경의 탄차들은 보통 문짝은 떼고 다녔으며, 조수들을 한쪽 다리를 밖으로 늘어뜨리거나 양손으로 문틀을 잡고 매달려 다녔다.


그리고 무심결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 충격을 느끼며 잽싸게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저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순식간에 돌아간 것은 거의 동시였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교 1학년, 기껏 열네 살 정도의 소년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사태가 일어났으니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이 친구가 사끼야마가 되었는지, 제무시 운전수가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이 친구는 그 이후에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옆집에도 막장에 다니던 서너 살 위의 형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곧장 탄광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양정모가 대한민국에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던 그해 여름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던 날은 몹시도 더웠습니다. 

그 형이 죽던 그 날, 막장에서는 회식이 있었든가 봅니다. 이때 회식이라고 하면 대개 개를 한마리 끌고 냇가로 가서 버드나무에 매달아 패 죽인 다음 그 밑에 불을 놓아 거슬리고 솥을 달아 삶아 먹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회식에 술이 빠지면 안 되는 법인데, 그 시절 술이란 커다란 대병 소주이거나 통자 막걸리였습니다. 그 형도 막장에서 일하는 만큼 동등하게 술을 마셨을 테지요.

그러나 얼굴이 불콰해져서 집에 돌아온 그 형은 회식을 위해 버드나무에 매달아 패던 개처럼 얻어맞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막장은 갑반, 을반, 병반 이렇게 삼교대로 근무조를 편성하여 일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그 형은 병반이었습니다. 병반은 밤늦게 들어가서 아침에 나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냇가에 내려가 개를 잡아 회식을 했던 것입니다. 막 시작되려는 여름의 냇가에서 벌어진 회식은 막장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었을 테지요. 

그런데 옆집 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독한 폭력이었습니다. 그 형의 아버지는 얼굴에 붉은 칠을 하고 들어온 그 형을 보자 분노했습니다. 당장 헛간에서 장작을 들고 와 그 형에게 엎드려뻗쳐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팬티만 남기고 옷이 모두 벗겨진 그 형은 오들오들 떨며 마당에 엎드렸습니다. 그런 그의 허벅지 위로는 한 치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장작개비가 춤을 추며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그 형의 허벅지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붉은 피가 마당을 적셨습니다. 퍽, 퍽 하는 요란한 소리가 뜨거운 햇살 아래 잠든 마을의 정적을 흔들었습니다. 마침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던 저는 도대체 그 형이 몇 대나 맞았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수십 대? 수백 대? 아무튼, 그날 그 형은 그렇게 맞은 몸으로도 어김없이 병반에 들어갔습니다.

탄을 다 캐면 발파를 한 다음 이렇게 동발을 엮으며 계속 굴진작업을 해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밤 막장이 무너졌습니다. 이후에 그 형의 얼굴은 영원히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옆집 마당을 볼 때마다 늘 그 형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지금도 어렴풋하나마 그 형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웃는 듯 우는 듯 그런 표정입니다. 얼마 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온 나라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막장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그 형의 일 따위는 깡그리 까먹었다는 듯이 김포공항에서 중앙청까지 벌어지는 카퍼레이드를 보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양정모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저는 그 형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해 뜨거웠던 여름, 한 사람은 몬트리올에서 금메달을 캐고 국민 영웅이 되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막장에 검은 탄을 캐러갔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막장, 막장은 이처럼 저에겐 슬픈 추억들을 떠올리는 단어입니다. 더불어 막장이란 말은 60년대와 70년대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석탄산업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만약 막장이 없었다면 그 시절 도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었을까요. 90년대까지도 도시의 영세한 아파트들이나 산동네에선 연탄보일러의 물끊는 소리가 뽀글거렸습니다.

이제 연탄은 그저 가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연탄구이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일 때만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만, 한때 이 연탄의 연료인 석탄을 캐는 탄광은 사회를 움직이는 기관차와도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첨단에 막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석탄산업은 어느덧 사양산업으로 전락했고 도시인들도 이제 더 이상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막장은 없어졌습니다.   

(좌) 막장에서의 식사 (우) 채탄작업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막장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막장드라마, 바로 막장드라마란 존재를 통해서.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막장은 사회를 지탱하는 반석이 아니라 사회의 암적 요소를 대번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쓰레기 같은 존재로 말입니다. 아니 쓰레기보다도 못한 존재를 일러 막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주도한 것은 어이없게도 시대의 총아 텔레비전이었습니다.

전혀 개연성 없는 줄거리, 말도 안 되는 상황설정, 반사회적인 요소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아무런 이유나 설명도 없이 좌충우돌 등장하는 것이 막장드라마의 특색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내 운명>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사정이나 까닭도 없이 50대의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또 어느 날 갑자기 드라마 전개상 이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이 불필요했던지 아파트 옥상에 올려 보내 보름달을 바라보며 체조를 하다가 낙태를 하는 것으로 결론 내는 식이죠. 

이런 드라마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그 반사회성과 수준 낮은 엉터리 같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시청률이 높지 않다면 이런 따위의 허접한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최근 막장드라마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수상한 삼형제>와 <살맛납니다>인데, <수상한 삼형제>는 공전절후란 말이 실감 날 정도입니다.      

저는 아예 <수상한 삼형제>는 중간에 끊어버렸는데 이 드라마를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대에 틀어놓았다가는 모두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살맛납니다>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무엇이 살맛 난다는 것인지, 이렇게 살면 살맛이 안 난다는 것인지, 차라리 결혼 같은 것은 하지 말고 혼자 살기를 홍보하는 드라마인지 헛갈리는데,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아무튼, 저도 이 막장드라마란 표현을 언제부터인가 즐겨 쓰기 시작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막장이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끼야마들이 막장에서 국민들의 따스한 겨울과 산업자원을 위해 목숨을 뿌렸던가? 아니 그런데 하필 왜 이따위 지저분한 드라마들에 막장이란 말을 붙이는 걸까? 이건 신성모독이 아닐까?"

저는 사실 막장까지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 몇 번 갱 속에 들어가 보긴 했지만, 막장까지 내려갈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동발이라고 부르는 목재로 만들어진 굴 속 끝은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끝 어딘가에서 다시 수직으로 또 몇 킬로를 내려가고, 다시 그 끝 어딘가에서 또 몇 킬로를 내달려야 막장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막장은 참으로 멀고 먼 정말 저 땅끝 어딘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석탄이 오늘날 선진 대한민국―물론 사회복지적으로는 한참 질 낮은 후진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10위권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하니―의 영광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을 돌려도 시원찮을 막장을 사회의 암적 존재, 쓰레기보다 못한 드라마를 대변하는 말로 전락시켰다니 실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막장에서 땀 흘리며 나라의 부를 캤던 분들이 이 기괴한 현상을 보고 무어라 할까요? 통탄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미 막장드라마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 자리잡았으며 어떤 명분으로도 이 말을 없앨 힘은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막장드라마는 앞으로도 막장드라마라고 계속 불리겠지요. "에잇, 이놈의 막장드라 없는 세상에 좀 살 수 없을까?" 그러면서 또 사람들은 열심히 막장드라마를 보겠지요.

그리하여 막장이 사라진 다음 세상에서도 막장이란 말만은 영원히 존재하겠지요. 그 의미가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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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수삼'이 국민드라마? 그럼 포르노도 시청률 40% 넘기면 국민드라마 될 수 있을까?

별 희한한 주장이 나왔다. <수상한 삼형제> 출연자 중의 한 사람인 안내상이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드라마가 아니라 국민드라마라고 했단다. 물론 그가 자기가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를 국민드라마라고 일부러 칭송할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만드는 드라마가 막장드라마라고 혹평 받는 것에 나름 변명을 한 것일 게다.


시청률 40% 넘겼으니 국민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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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국민드라마라니. 아전인수가 욕망에 찌들린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고 해도 이건 지나치다. 인터넷 뉴스에서 본 그의 주장의 요지는 이렇다. "시청률 40% 기록하면 국민드라마 아닌가." 참으로 기가 막힌다. 시청률이 막장과 국민드라마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볼 때 <수상한 삼형제>는 거의 포르노 수준이다. 온갖 자극적인 설정과 장치들로 떡칠을 해놓은 드라마가 바로 <수상한 삼형제>다. 재작년에 막장드라마 중의 막장으로 더 이상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너는 내 운명>을 능가하는 막장이 바로 <수상한 삼형제>다. 

가정이지만, 만약 진짜 포르노를 공중파로 세상에 내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그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얻었다고 치자. 그래도 국민드라마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시청률 40%? 시청률로만 놓고 보자면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추노>조차도 명함을 내밀기 어렵겠다. 그 시청률이 진정한 시청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 

안내상은 또 이렇게 얘기한다. "내용을 보면 실생활과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다." 나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 이렇게 물어보자. "그럼 포르노는 우리 실생활과 다른 게 무어 있는가?" 가장 적나라한 인간의 실체를 가장 밀도 높게 표현한 것이 포르노 아닌가? 

포르노도 양지에 풀어놓으면 시청률 꽤 나올 텐데

그리고 누구나 사실은 그런 것들을 한 뻔쯤은 꿈꾼다. 그러므로 포르노는 가장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포르노의 시청률이―물론 음지에서 은밀하게 집계될 수 있는 시청률일 테지만―결코 <수삼>에 뒤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다음에 실린 "아시아경제" 기사. 글자를 보시려면 ☞클릭해야 됨.

공개공간에 등장한 포르노를 향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용을 보면 실생활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다" 무슨 소리, 어떻게 포르노와 <수상한 삼형제>를 비교할 수 있냐고? 포르노는 결코 실생활이 될 수 없다고? 그럼 안내상의 말처럼 <수삼>은 실생활이 될 수 있을까?

내 말이 그 말이다. 포르노가 결코 우리의 실생활이 될 수 없고 실생활이 되어서도 안 되는 것처럼, <수상한 삼형제>도 결코 우리의 실생활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르노와 <수삼>이 동격이라고 나는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거다. 포르노의 시청률이 높다고 국민드라마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수상한 삼형제>를 결코 국민드라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포르노를 막장이라고 금기시하는 것처럼, <수상한 삼형제>도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행복한 가족구성원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막장드라마인 것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정상적인 드라마가 아니다

나는 이미 <수상한 삼형제> 초기에 이 드라마를 끊었다. 시간대가 주말 저녁 8시인지라 결코 혼자 볼 수 없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텔레비전을 혼자 독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또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나는 아이들에게 또는 나의 배우자에게 이 드라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별 문제의식 없이 그냥 조용하게 지나갔지만, 나는 초반 주인공 주어영의 태도는 거의 창녀 수준이었다고 생각했다. 창녀는 아니라도 그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불과 24시간, 혹은 그보다 더 짧은 시차를 두고 이 남자와 키스하고 또 저 남자와 키스하는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허걱~ 했던 것이다.

연애전선을 두고 펼쳐지는 몇 가지 에피소드로 그런 것들을 감쪽같이 덮고 지나갔지만 예민한 내 눈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꼭 여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녀와 불건전한 연애행각을 벌였던 왕재수 검사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하긴 어젯밤 왕재수와 벌인 애정행각을 잘 알면서 오늘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세례를 퍼붓는 김이상 경감도 있었으니.

어쨌든 나는 그때 이미 이 드라마를 포르노로 규정했었다. 그리고 최소한 우리 가족들만큼은 누구도 이 드라마를 보지 않기를 원했다. 그리고 가끔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상한 삼형제> 막장 논란'을 보는 정도로 이 드라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하고 알 수 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오늘 안내상의 인터뷰도 그렇게 본 것이다. 

국민 정신보건을 위해 '수삼'같은 드라마는 더 이상 없었으면

<수상한 삼형제>를 경찰청이 지원하는 드라마라고 했던가? 아마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아니 어떻게 경찰청이 지원하는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범죄자 비슷한 사람들이고 경찰마저도 위법행위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그럴 수 있을까?(여기에 대해선 드라마 초기에 포스팅을 한 바 있다.) 

아 아, 이제 그만 써야겠다. "이 드라마를 더 보다간 나도 정신이상자 되겠다!" 하고 걱정하던 내가 아니었던가. 신경 안 쓰려고 했더니 괜히 다음 메인에 올라온 기사 보고 열 냈다. 정신건강을 위해 정말 이제 더 이상 신경 끊자. 자기들이 스스로 국민드라마라고 하건 막장드라마라고 하건 그건 내 알바 아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
걱정 안 할 수가 없으니 그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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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공신' '파스타'도 막장? 그럼 진짜 막장은 뭐라 불러?

다음뉴스에 뜬 <수상한 삼형제> 기사를 보다가 갑자기 막장드라마의 정의는 무엇이며, 사람들은 보통 어떤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고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요즘 <수상한 삼형제> 때문에 부쩍 막장드라마 논란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 남들처럼 <수상한 삼형제>를 열심히 보았지만, 3주 전부터 끊었습니다. 이 수상한 드라마를 계속 보다가는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막장드라마의 중독성, 이유가 뭘까

사실 막장드라마에는 묘한 끌림 현상이 있습니다. 이건 절대 봐서는 안 되지 하면서도 궁금해서 눈이 가는 그런 현상 말입니다. 뭔가 특이한 행동을 하거나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욕을 하면서도 계속 쳐다보는 그런 현상과 같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매운 닭발을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도 계속 먹게 되는 그런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적절한 비유를 찾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막장드라마에 묘한 끌림 현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역대 막장드라마들이 대부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사실도 그 증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너는 내 운명>, <아내의 유혹>, <밥 줘> 등은 공통적으로 막장이란 비난을 들으면서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들입니다. 

이런 막장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들에 대해서도 막장계의 거두니 막장계의 쌍두마차니 하는 표현들까지 동원하며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요. 일단 문영남, 임성한, 김순옥, 이 세 사람이 대표주자인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 이들을 일러 막장드라마계의 트로이카라고 불러도 무난할 듯싶습니다. 

김순옥은 최근 SBS에서 방영한 <아내의 유혹>, <천사의 유혹> 시리즈로 막장계의 거물임을 증명했고, 문영남도 이에 뒤질세라 <수상한 삼형제>로 막장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한때 KBS 일일연속극 <너는 내 운명>을 보고 이 드라마를 능가할 막장은 앞으로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생각을 바꿔야 했습니다. 

<너는 내 운명>을 쓴 문은아란 작가는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내용에다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같은 스토리 전개로 그야말로 막장계의 트로이카를 제치고 막장드라마를 새로 평정할 인물로 보였던 것이지만, 연이어 서영명이란 작가가 <밥 줘>란 막장드라마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죠. <밥 줘> 또한 황당한 스토리와 구성이 <너는 내 운명>에 못지않았습니다. 

막장드라마 중의 막장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그러나 역시 막장계의 거물이란 그냥 얻은 별호가 아니었습니다. <수상한 삼형제>야말로 전무후무, 공전절후의 막장드라마였던 것입니다. 확실히 문영남 작가는 막장드라마계의 군계일학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는 <수상한 삼형제>를 통해 막장드라마란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듯이 막장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쟁자인 임성한 작가의 작품 <보석비빔밥>에도 분명 막장적인 요소가 바탕을 이루고 있지만, 아무도 <보석비빔밥>에 안티 걸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면 바야흐로 문영남 작가가 막장드라마계의 지존으로 군림할 것이 확실해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막장드라마의 범람이란 사회현상을 맞아 막장이란 말 역시 범람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마우스로 누르시면 크게 볼 수 있는 거 다 아시죠?


<수상한 삼형제>로 인해 다시 불거진 막장드라마 논란에 막장드라마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미디어다음 검색창에 막장드라마를 쳤더니 엉뚱하게도 "파스타, 최악의 남녀불평등 노동막장 드라마", "최악의 막장 사기 드라마 <공부의 신>" 따위가 올라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막장드라마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정의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럼 위 사진의 기사처럼 <파스타>와 <공부의 신>은 정말 막장드라마일까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세상에 막장드라마 아닌 드라마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TV 자체가 악이라고 생각해서 아예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집에서 TV수상기를 치워버린 분들이라면 몰라도 모든 드라마가 악일 수는 없겠지요.

그럼 <파스타>나 <공부의 신>을 막장으로 주장하시는 분들의 근거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지요. 우선 <파스타>는 왜 막장인가? 뉴스 제목이 말하듯 지독한 남녀불평등과 부당해고와 같은 노동탄압을 소재로 했다는 게 이윱니다. 저도 이 지점이 못마땅하여 비판적인 포스팅을 한 바가 있습니다. 제목이 "파스타, 셰프의 집단정리해고 유감"이었던가 그랬지요. 

막장드라마의 유행에 아무 드라마나 막장 낙인찍는 유행까지 생겨나나

그러나 비록 유감은 있을지언정 <파스타>를 막장드라마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하나의 드라마가 막장이 되기 위해선 나름대로 요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장드라마란 개념에 대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불륜, 폭력, 살인 등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내용들을 극의 전개와 상관없이 억지로 끼워 맞춰 자극적으로 만든 무개념 드라마를 말합니다.

윤경아 극본 '공부의 신'은 일본 원작만화 리메이크 작품 , '파스타'는 서숙향 극본이다.


그럼 <파스타>가 여기에 해당하는가? 최현욱 셰프(이선균)의 버럭질이나 이유 없는 부당해고, 성차별적 행위가 반사회적인 폭력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주인공의 캐릭터와 극의 전개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서 딱히 막장이라고 부르기엔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치판단에 따라 유감을 표명할 수는 있어도 막장드라마란 낙인은 곤란하다는 것이죠. 

게다가 저는 <파스타>가 매우 잘 만든 드라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연출도 뛰어나고 소재도 잘 골랐으며 더욱이 이선균과 공효진의 뛰어난 개인기나 타고난 매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니 "<파스타>도 막장이야 !" 소리를 듣는 순간 매우 당혹스러웠던 것입니다.

<공부의 신>도 마찬가지 이유로 막장드라마 낙인을 찍는 것에 대해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런 글을 쓰신 하재근씨는 교육운동을 하시는 분으로 평소 존경스럽게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함부로 막장 낙인을 찍는데 대해선 매우 유감이군요. 강석호 변호사(김수로)의 교육관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저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주입식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사상이야말로 절대적 정의'라고 주장하는 대목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우리는 통상 '주입식 교육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이 망했다'라는 사상을 절대적 정의로 믿고 살아왔던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저도 <공부의 신>이 주장하는 상당부분의 교육관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합니다.

막장 레테르 붙일 땐 신중해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부의 신>을 막장드라마라고 낙인찍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겠습니다. 비록 <파스타>나 <공부의 신>에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사회적이거나 반윤리적이라고 할 만큼의 폭력성이 참을 수 있을 정도를 넘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수상한 삼형제>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은 이 수상스런 <수상한 삼형제> 때문에 아무 드라마나 함부로 막장 낙인을 찍는 유행병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막장 낙인을 찍다보면 <수상한 삼형제> 같은 진짜 막장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니까요.
 

막장형제, 막장시어머니, 막장며느리, 막장사돈, 막장경찰까지 총출동한 '수상한 삼형제'


이놈저놈 전부 막장인데 그깟 막장이 무에 그리 대수롭겠느냐 이 말이지요. <수상한 삼형제>는 진정한 막장드라맙니다. 거의 정신병적인 출연자들의 캐릭터라든지, 반사회적 폭력성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참을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게다가 극의 전개와 아무 상관도 없는 억지 설정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아버지 김순경은 일선 치안대 경찰이고, 막내아들 김이상은 경찰대를 나온 경찰간부이며, 이상의 친한 여자친구는 검삽니다. 그런데도 이상이의 형 김현찰은 사채업자에게 폭력을 당하고 재산을 갈취 당합니다. 그리고 장남 김건강이 사채업자들에게 대들다가 집단구타를 당합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또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은연중에 이걸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찰 가족도 저렇게 당하는데 우리 같은 서민이야 하면서 불법부당한 폭력에도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들을 하게 되겠지요. 이 수상한 드라마가 경찰청이 지원해 만드는 드라마라고 하니 실로 이 또한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막장드라마 낙인 남발로 진짜 막장드라마에 면죄부 주는 일은 없어야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런 불량한 막장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 대부분 아니 100% 여자라는 점입니다. 위에 열거한 막장 작가들도 전부 여성들입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쓰는 드라마가 대부분 여성비하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지요. 이런 드라마들이 방영되는 시간대도 주로 가족들이 모여 TV 시청을 즐기는 시간이고요. 

아무튼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던 것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아무거나 대놓고 막장 딱지를 붙이다 보면 그 막장이란 레테르의 신뢰성도 떨어지게 되고 결국은 진짜 막장드라마에 면죄부를 주게 될 거다 뭐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이놈저놈 다 도둑놈이라고 하다 보면 진짜 도둑놈은 한쪽 구석에서 빙긋이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바로 위 사진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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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보석비빔밥』과 『수상한 삼형제』가 공통점이 있다고?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까? 지금 당장 인터넷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드라마 제목을 두드리면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말이다. 『보석비빔밥』은 ‘홍유진의 알츠하이머 연기 대단해요’라든지, ‘이태곤과 고나은의 이별장면이 너무 슬프다’라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수상한 삼형제』는 어떤가. 온통 막장 논란뿐이다. 거기에 더해 수상한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 아닌가.


『보석비빔밥』과 『수삼』, 공통점이 있다고?

그런데 뚱딴지처럼 공통점이라니. 그러나 분명 공통점이 있긴 있다. 우선 보석비빔밥과 수상한 삼형제란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둘 다 어느 집안의 형제(자매)들에게 붙여준 별칭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이 별나다는 점도 같다. 우선 『보석비빔밥』부터 보자. 보석이란 궁상식과 피혜자 부부 자녀들의 이름이다. 큰딸은 궁비취, 둘째딸 궁루비, 셋째인 큰아들은 궁산호, 고등학생인 막내아들은 궁호박이다. 아, 50이 넘어 낳은 막내아들이 하나 더 있다. 아직 두 살배기인 이 아이는 보석이 아니고 궁태자다.

궁비취의 남자친구는 서영국이다. 영국의 아버지는 로마, 그러니까 부자가 영국과 로마를 나누어 가진 셈이다. 서로마의 아내 이태리와 끝순이도 있지만, 이쯤 하기로 하자. 그럼 이번엔 『수상한 삼형제』를 볼까. 주인공 김이상의 아버지는 김순경이다. 김순경은 진짜 경찰이다. 계급은 순경이 아니고 경위쯤 되겠지만 아무튼 이름이 순경이다. 김이상이란 이름은 아마도 내 짐작에 김순경의 아들 삼형제 중에서 김순경의 이상을 채워줄 놈이라고 해서 지은 이름이 아닌가 싶다. 

결국 김이상은 경찰대를 졸업하고 사시에 패스한 다음 아버지의 바람처럼 경찰이 되었다. 김이상의 두 형의 이름은 김건강과 김현찰이다. 김건강의 캐치프레이즈는 ‘머니 머니해도 건강이 최고다’다. 큰아들이지만 어릴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아 빌빌거린 탓에 엄마 치마폭에 싸인 마마보이가 되었다. 둘째 아들은 그런 큰아들에 가려 늘 찬밥신세다. 그래서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는 방법은 오로지 돈을 버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지 머릿속에는 돈밖에 든 게 없다.

그래서 이름도 현찰이다. 그러니 이 둘째아들의 캐치프레이즈는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다’가 되겠다. 그 외에도 김순경의 아내이자 수상한 삼형제를 낳은 어머니의 이름은 전과자, 김이상의 애인 주어영의 아버지는 주범인이다. 주범인은 실제로 과거에 사기꾼 전력이 있다. 그러다가 사기로 모은 돈으로 산 땅이 개발되는 바람에 졸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김순경과 주범인은 과거의 숙적인 셈이다. 주어영은 이름처럼 어영부영이다. 아, 그러고 보니 어영의 동생은 부영이다. 

(위) 수상한 삼형제 (아래) 보석비빔밥


주어영은 매우 똑 부러진 여성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상은 줏대도 없는데다가 매우 헤픈 여자다. 어제는 왕재수 검사와 진한 키스를 나누다가 그에게 채인 오늘은 다시 김이상 경감의 품에 안겨 진한 키스를 허락한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도대체 저 여자가 제 정신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난주부터는 이 드라마를 집에서는 안 본다. 연속극을 주로 딸과 함께 보는데―딸이 나를 닮아 연속극 광이다―이것만큼은 도저히 함께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드라마의 가장 큰 공통점, ‘불량한 캐릭터’

자, 그럼 이외엔 공통점이 더 없는가? 더 있다. 사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공통점은 공통점이라고 할 수도 없고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공통점도 이게 아니고 사실은 다음이다. 이건 매우 중요하고 근본적인 공통점이다. 무언가. 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매우 불량하다는 것이다. 『보석비빔밥』의 주인공 가족들 즉, 궁상식과 피혜자 그리고 네 명의 보석들은 모두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부잣집 아들 혹은 딸과 결혼해서 부자가 되어 행복하게 사는 꿈이다.

말하자면 신데렐라를 꿈꾸는 가족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간호사인 궁루비는 병원에서 만난 어느 돈 많은 독신 할머니의 수양딸이 되고자 접근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의 성공했다. 이제는 거꾸로 70살이 된 독신사장이 루비를 수양딸로 삼지 못해 안달이다. 막내아들―얼마 전에 부모가 아들을 하나 더 낳았으니 이제 막내가 아니지만, 자기가 막내라고 착각하고 산다―호박은 학교공부보다는 부잣집 딸 끝순이를 꼬시는데 더 열심이다. 보석 중에 이 친구의 사상이 가장 의심스럽다.

『수상한 삼형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해선 더 이상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사실 생기지 않을 정도다. 김순경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정신 감정을 받아야할 만큼 상태가 비정상이다. 사실 김순경도 주범인과 엮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곧 유일하게 정신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는 그도 곧 정신을 놓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나는 직감한다. 김이상 경감을 보자. 그는 이 드라마에서 김순경과 더불어 유일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인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김이상이란 인물이 가장 문제다. 경찰간부란 사람이 개인적 연애사업에 경찰서를 이용하고, 수갑을 함부로 채우는가 하면,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음주단속 경찰인력과 경찰차량까지 동원했다. 이 무슨 해괴한 장난인가. 만약 국군 장교가 자기 애인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탱크나 장갑차를 동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건 군대라서 안 되고, 이건 그냥 사소한 순찰차량 정도니까 괜찮다고?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 싶긴 하지만, 여기 (드라마를 쓴 작가가)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름 시청자들로부터 유일하게 정신 차린 인물로 평가받는 김이상이 이 정도라면 다른 캐릭터들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한마디로 정신이상자들이 모두 집합한 드라마라고나 할까. 며느리를 노예 부리듯 하는 시어머니 전과자와 사기 결혼한 엄청난, 전과자와 엄청난에게 당하기만 하는 노예 같은 며느리 도우미와 평생 도우미의 등골을 빼먹고 사는 도우미의 생모 계솔이가 보여주는 세계는 그야말로 막장이 무언인지 그 전형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비슷한 재료로 만든 두 개의 음식맛이 왜 이다지도 다를까?  

자, 이렇게 『보석비빔밥』과 『수상한 삼형제』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불량하거나 반사회적 성향을 가졌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그런데 이 두 드라마는 확연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한 드라마는 잔잔한 호평을 받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하나의 드라마는 막장드라마의 첨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혹독한 악평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왜 그럴까? 비슷한 재료로 만든 두 개의 음식이 왜 이토록 맛이 다른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두 드라마가 하나는 호평 받는 좋은 상품이 되고, 하나는 악평으로 가득 찬 막장드라마가 된 데는 딱 하나의 이유가 있다. 『보석비빔밥』에 등장하는 불량한 캐릭터들에겐 사랑과 양심이 있는 반면에, 『수상한 삼형제』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겐 사랑도 양심도 없다. 오로지 목적을 위해선 물불 안 가리고 자기 직성대로 하고야 마는 인면수심의 인간군상들만이 존재한다. 보석들도 불량한 욕심을 부리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들은 수상한 삼형제와는 근본이 다르다. 


보석들의 불량함에는 공감대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는 이해심, 어렵게 살아온 서민들이라면 한 번쯤은 솔직히 가져보았을 그런 불량함에 대한 동정심이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에 양심이란 걸 가졌다. 그리고 그 양심은 줏대로 표현된다. 아무리 욕심이 앞서도 양심과 줏대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상한 삼형제들에겐 그것이 없다. 그들에겐 양심도 줏대도 없을 뿐 아니라,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모두 모아 옷으로 만들어 입고 있는 듯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수상한 삼형제』는 경찰청으로부터 전격 지원을 받고 있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래서 용산참사에 희생된 시위대를 악마처럼 만들고, 이를 진압한 경찰에겐 온정의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아직도 용산에서 희생된 다섯 명의 철거민들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는 데 말이다. 지난 주말엔 김이상 경감이 직접 분통까지 터뜨렸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는 못했다. 이미 이 드라마는 아이들 교육상 집에서는 안 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수상한 삼형제』가 30% 가까운 시청률로 주말드라마 1위라고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수 있다. 8시라는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 드라마와 10시가 넘은 시간에 방영하는 드라마를 단순 시청률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수상한 삼형제』는 막장드라마로 낙인 찍혀 그 악명을 떨치고 있는 반면에 『보석비빔밥』은 갈수록 잔잔하고 훈훈한 감동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품 도자기와 개 밥그릇의 차이, 혹시 경찰 개입 때문?

어떻게 같은 불량품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만드는 사람 문제인 것일까? 하긴 같은 흙으로 그릇을 빚어도 누구는 도자기를 만들고 누구는 개 밥그릇에도 쓰지 못하는 물건을 만든다고 한다. 『보석비빔밥』의 작가는 임성한, 『수상한 삼형제』의 작가는 문영남이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모두 ‘막(!)’ 쓰기로 한 이름 하는 분들이다. 그렇다면 꼭 사람 문제라고 할 수만은 없다는 얘긴데, 대체 무엇이 이 두 드라마의 차이를 낳게 한 것일까? 

혹시 경찰이 개입했기 때문 아닐까? 수상한 삼형제에게 접근한 수상한 경찰 때문에?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막징드라마를 향해 막 가자는 것인가?
수상한 삼형제의 수상한 이야기가
정말 수상하다!

<수상한 삼형제>가 정말 수상하다. 전혀 개연성 없는 스토리와 엉터리 같은 인물 캐릭터는 보기에 불편함을 넘어 짜증까지 날 지경이다. 내가 이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한 이유는 주인공 김이상과 주어영 때문이었다. 그들 두 남녀의 러브라인에 신선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김이상의 주어영을 향한 대쉬가 매력적이었다고 할까? 아무튼 이들 두 사람을 중심으로 벌어질 수상한 삼형제 가족의 드라마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또, 철도 그런 철 아닌가? 뭔가 따뜻한 것이 그리워지는.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

그런데 이거 갈 수록 가관이다. 우선 그토록 기대했던 주어영부터 엉망이다. 자기를 발로 찬 남자로 인해 실컷 울고불고 하던 주어영이 김이상 경감으로 인해 다시 평온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김이상의 사랑에 감동한 주어영은 바야흐로 김이상의 마음을 받아들일 태세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주어영을 발로 찬 왕재수 검사가 이들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주어영에게 새로 시작하자고 유혹하고 주어영은 김이상을 버리고 왕재수에게 다시 돌아간다. 

드라마를 계속해서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주어영은 결국 왕재수 검사에게 다시 채인다. 왕재수 검사는 김이상 경감과 주어영의 관계를 질투해 일을 벌인 것 뿐, 이미 부잣집 딸과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두었다. 그러고도 양다리 연애로 시청자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사실 이런 설정 자체가 어이없는 것이다. 아무리 왕재수 검사가 재수없는 인물이라지만, 이토록 도에 넘은 짓을 할 만큼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 썩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왕재수가 아니었다. 

바로 주어영. 김이상 경감의 사랑을 외면하고 왕재수 검사에게 다시 돌아가 온갖 아양을 다 떨며 사랑놀음에 빠지지만, 결국 부잣집 딸과 결혼날짜까지 잡아두고 자기를 장난감처럼 갖고 놀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녀는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이때 김이상 경감이 나타나고 그 두 사람은 다시 뜨거운 키스로 사랑을 확인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시대도 변했다. 그러나 바로 어제 왕재수와 키스를 나누던 그녀가 오늘 다시 김이상과 그럴 수 있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어제와 오늘은 실제 시간이다)   

어쨌든 좋다. 시대가 변했는데 까짓거 그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가자. 우리 어릴 때도 어른들은 똑같은 훈계를 했을 것이고, 우리는 잔소리라고 일축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어영의 하나뿐인 여동생 주부영, 그녀는 어떤가. 그녀는 이제 갓 대학 1학년이다. 재수를 하지 않고 대학을 들어갔다면 이제 겨우 스물이다. 만으로 치면 아직 스물이 안 됐다. 뭐 그렇다고 적은 나이는 아니다. 충분히 성인 행세를 할 수 있는 나이임에 틀림없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질 나이다. 

씨다른 자식을 네 명이나 낳고 큰딸 등을 쳐 먹고 사는 못된 엄마의 전형 계솔이―이 계솔이란 여인은 주우영 자매네 집 가정부인지 예비 계모가 될 인물인지 도통 짐작이 안 간다―로부터 남자 꼬시는 법을 제대로 배운 주부영이 김이상 경감의 부하 경찰관을 따라다니는 것까지도 이해한다. 혈기 왕성한 젊은 아가씨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김이상 경감의 젊은 후배 경찰, 주부영과 만날 때마다 "야 돈 좀 많이 가지고 다녀라"라고 말한다. 이거 경찰이 아니라 완전 공갈범이다. 

경찰이 아직 미성년자인 여학생의 지갑을 탐하고 집 청소까지 시키는 게 정상?

좋다, 거기까지도 이해하자. 사랑에 빠진 아가씨에게 그딴 것쯤 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건 뭔가? 김이상의 젊은 후배 경찰, 주부영에게 자기 자취방(오피스텔인가? 어쨌든 오피스텔이라도 자취방은 맞다) 키를 집어던지며 시간 날때마다 들러 집 청소하고 맛있는 거 해놓으란다. 주부영이 입이 찢어질 듯이 반기며 열쇠를 줏어들었음은 물론이다. 이거 경찰이 이래도 되나? 아직 스물도 안된 여학생을 이런 식으로 자기 자취방에 끌어들이는 게 경찰로서 해야될 일인가? 내가 너무 늙었나?

그럼 김이상 경감네 집은 정상적인가? 그렇지 않다. 이 집안으로 들어가 보면 정상적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우선 이름부터가 기괴막측하다. 가장인 김 순경(경윈가?)은 이름이 김순경이다. 그의 아내는 전과자, 큰아들 이름은 김건강, 둘째아들은 김현찰, 셋째아들은 아시다시피 김이상이다. 큰아들은 제 몸만 챙겨서 건강이요, 둘째아들은 돈만 챙겨서 현찰이다. 이름 가지고 탓하면 그건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이름이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이들 가족이 이름대로 논다는 것이다.

큰아들은 첫 결혼에 실패해 이혼했는데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여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이 여인도 엄청난 문제다. 엄청난이란 이름을 가진 이 큰며느리는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엄청난으로 인해 벌어질 파란이 재미있는일이 될지 어처구니 없는 일이 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파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파란이 일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극중에서 시어머니 전과자는 시집온지 10년 넘게 궂은 일을 도맡아해온 둘째며느리 도우미를 종부리듯 하면서 새로 들어온 큰며느리 편만 든다. 엄청난도 전과자의 백을 믿고 도우미를 막 대한다. 평범한 가정이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 경찰 집안에선 예사롭지 않게 벌어진다. 도우미의 남편 김현찰도 조강지처를 배신하고 찜질방 실장 태연희와 불륜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태연희는 도우미의 절친한 친구인데, 태연히 친구의 남편과 불륜관계를 만들게 될까? 

갓 시집온 나이어린 큰며느리가 10년이 넘은 동서에게 술상을 시키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정신을 빼놓지 않고 제대로 챙기고 있는 인물은 그나마 김순경과 김이상 경감이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도 그렇게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우선 김이상은 경찰 조직을 마치 제 사조직 부리듯 한다. 주어영을 꼬시기 위해 경찰 조직과 경찰서 건물까지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유없이 주어영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다니기까지 한다. 그러더니 어제는 마침내 큰 거 한 건 하셨다. 김이상이 집에 있던 주어영을 불러내 차에 태워 '음주단속 프로포즈 쇼'까지 벌였다.

경찰 음주단속 차량을 이용한 프로포즈?

'음주단속 프로포즈 쇼'가 뭔지 궁금하신 분은 드라마를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물론 본인들은 재미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경찰 가족들의 따끈한 전통으로 정착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 안 되지, 국민의 혈세로 만든 경찰차와 경찰 인력을 경찰 간부가 애인에게 프로포즈 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다니. 그래도 된다고? 글쎄 이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개그프로라면 이렇게 말하면 되겠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  

그럼 이제 마지막 남은 제 정신 가진 인물 김순경, 그는 어떨까? 이분은 참 인간적인 분이다. 자기가 잡아 넣은 범죄자를 위해 그의 아들과 아내를 찾아나섰는데, 그게 자기 큰며느리가 될―아, 어제 결혼식 했으니 이미 며느리 됐다―여자 엄청난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참으로 엄청나게 환장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어제 이런 김순경이 등장하는장면에서 경악하고 말았다. 사실은 이런 장면이 왜 갑자기 그 대목에서 나와야 했는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김순경과 늘 함께 다니는―원래 범죄자였지만 김순경의 도움으로 손을 씻고 이제 경찰이 된 그는 순찰이든 뭐든 늘 김순경과 함께 다닌다―후배 경찰관이 갑자기 침통한 얼굴로 물어보는 말에 대답도 잘 못한다. 그리고 드라마 중간에―위에 게기한 온갖 허접한 일들이 벌어지는 중간에―어떤 병원을 방문하고 누군가가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 있다. 이때 나는 갑자기,아니 느닷없이라고 말해야 옳겠지만, 등장한 장면에 이렇게 생각했다.

"가만, 저 아이가 누구지? 김순경 후배 경찰의 아들인데, 혹시 애비를 닮아 학교폭력에 휘말렸나? 그래서 저토록 표정이 안 좋았구만." 나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바로 '저 아이'라고 지목했던 것이다. 틀림없이 병원에 누워있는 아이는 고등학생이고 김순경 후배 경찰의 아들이며 문제학생일 거라고 말이다. 안 그러면 여기 저 애가 나올 이유가 없다. 처음엔 무슨 불치병 같은 걸 생각했지만, 붕대를 칭칭 동여맨 모습을 보니 그건 아니고 학교폭력에 휘말린 잘 나가는 학생이 틀림없었다.

김순경이 병문안을 하는 중에 김순경 후배 경찰이 갑자기 병실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복도 끝 계단으로 나가 난간을 부여잡고 쓰러져 흐느낀다. 김순경이 어깨를 잡고 위로하려 하자 그 후배 경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소리친다. 이럴 수가 있냐고, 무슨 죄가 있다고 전경에게 돌을 던지냐고, 그리하여 한 쪽 눈을 실명할 위기에 빠뜨리냐고. 헐~ 이게 뭔 소리? 누워있는 사람이 애가 아니라 시위진압하다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은 전투경찰이었어?  

시위대를 냉혈한으로 몰아붙이는 김순경, 그런데 어디서 폭력시위가 벌어졌나?

이때 후배 경찰이 위로하던 김순경에게 던진 말은 가히 핵폭탄급이다. 그는 시위대들을 냉혈한으로 몰아붙였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마치 1년 연중행사로 폭력시위가 빈발하는 것처럼 오해하기 딱 알맞다. 어떤 네티즌의 지적처럼 굳이 폭력시위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건 철거민 현장과 쌍용차 뿐이다. 이마저도 철거민과 쌍용차 노조원들이 처참하게 일방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으로 끝났다. 용산 철거민 현장에선 다섯 명의 철거민들이 과잉진압에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그러나 아직도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냉혈한인가? "……" 다음 말은 우리의 이런 질문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동기가 이번에 옷 벗게 될지도 모른답니다. 매스컴에서 과잉진압이라고 난리가 났어요. 동기가 현장에서 지휘 했거든요. 전 이럴 때마다 미치겠습니다." 내가 미치겠다. 김순경의 후배 경찰은 이어 "자기들은 자식도 안 키우나? 왜 어린 전경한테 돌을 던지느냐"고 말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까? "

"니들은 부모형제도 없냐? 어디 배운 거 없이 부모뻘이나 되는 어른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방패로 찍고 워카발로 차고 한단 말이냐?" 그래, 그게 다 명령 때문이니 탓하지 말라고? 김순경의 후배 경찰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게 어디 전경 탓이냐고. 명령대로 따랐을 뿐인데. 그럼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은 대체 누구냔 말이다. 지 애비 애미뻘에 아무리 못해도 형님 누나뻘 되는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라고 명령으르 내린 자는 누구냔 말이다. 사건이 나고 나면 명령을 내린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용산참사도 마찬가지였지 않나. 현장으로부터 무전보고는 받았지만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수상한 삼형제>의 주인공 이준혁이 서울경찰청으로부터 홍보대사 위촉을 받았다고 한다. 이준혁은 김이상 경감처럼 모범적인 홍보대사가 되겠다고 했다는데, 범죄자 체포에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할 수갑을 함부로 사용하고, 경찰조직과 차량을 자기 연애사업에 이용하고, 형이 조폭들에게 린치 당해 재산을 빼앗겨도 형의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거야!"란 말에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는 김이상 경감님이 그토록 모범적이란 말인가? 

이런 드라마를 쓴 작가가 도대체 누굴까 궁금했는데 문영남이란다. 문영남이 그렇게 유명한 작가였나?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유명한'이란 말이 문영남이란 이름 앞에 자연스럽게 붙는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한다. "도대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작가가 없기에 이런 사람 이름 앞에 '유명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일까?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 없다. 대표적인 막장드라마로 이름을 날린 <너는 내 운명>의 작가 문은아도 유명하긴 마찬가지다. 

막장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심리일까?


그러고 보니 막장드라마로 이름을 날린 대표작들이 대체로 시청율이 높았다. <수상한 삼형제>도 시청율 30%를 넘기고 있다고 하니 수상한 것은 삼형제만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튼 문영남이 막장드라마계에서 문은아가 쌓아올린 금자탑을 넘어서려면 조금 더 노력해야할 것 같다. '멀쩡한 50대 여자에게 임신을 시킨 다음 달밤에 아파트 옥상에서 체조하다 죽게 만드는' 문은아 작가의 상상력은 가히 일절이 아니던가.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까? 왜 막장드라마로 거론되는 작품의 작가들이 대체로 여성들인지. 

아내의 유혹- 김순옥, 밥 줘- 서영명, 너는 내 운명-문은아, 수상한 삼형제- 문영남, 모두 여성 작가들이다. 작가들이 여성이란 점 외에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막장 논란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내게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을 하나 더 말하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들이 대체로 여성비하적인 설정이 많다는 것이다. 수상한 삼형제는 아예 며느리가 노예다. 이름조차 '도우미'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런 드라마를 여성들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토록 말 많은(?) 여성계에서, 여성들이 쓰는, 여성을 비하하는, 이런 막장 드라마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이다. 여성계를 움직이는 엘리트들은 이런 허접하고 수준 낮은 드라마 따위는 보지 않기 때문일까? 하긴 내가 알기로 엘리트들은 대체로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고 한 번씩 발언을 해주어야하는 게 아닐까? 

이거 괜한 소리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폭탄 맞을 소리를…. ㅋㅋ  
Posted by 파비 정부권

우선 약속한대로 섣부른 판단으로 드라마의 일부 내용을 비판한 점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겠다. 나는 <아이리스> 1부를 본 소감을 포스팅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관련글; 아이리스, 감동 속에 숨겨진 불편한 막장

"매우 기대되는 드라마다. 최고의 배우들이 벌이는 스릴과 서스펜스,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게 하는 카메라 속도는 최고가 될 것을 예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옥에 티가 하나 있다. 북한 최고인민위원장을 암살을 지시하면서 유럽소풍에 비교한 것은 난센스다. 그리고 그것이 유럽소풍이 독일 통일에 단초가 되었듯 한반도 통일에 단초가 될 것이라 믿는 엘리트 요원 김현준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옥에 티일 뿐이며, 옥이 너무 찬란하므로 별로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다."


대충 이런 요지로 글을 썼는데 반론이 많이 제기됐다. 너무 섣부른 판단을 한 거 아니냐는 것이다. 어떤 분은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아야지 왠 정치적인 잣대로 드라마를 재느냐는 분도 있었다. 후자의 비판에 대해선 여전히 수용하기 어렵다. 이건 정치적인 판단이 아니다. 전쟁을 유발시킬지도 모르는 암살과 평화적 통일도 구분 못하는 최고의 요원이란 그 자체로만 보면 억지 시나리오다. 억지 시나리오로 만든 드라마를 막장드라마라고 부르며 많은 블로거들과 네티즌들이 비판의 칼을 대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너는 내 운명>, <아내의 유혹>, <밥 줘> 등이 대표적 케이스였는데 그 중 <너는 내 운명>은 억지 설정뿐 아니라 반사회적 내용으로 수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너는 내 운명> 등의 개연성 없는 스토리 전개와 반사회적 내용에 대해 막장드라마란 비판의 화살을 날리면 안 되는가.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로 보아야지, 라고 말하며 어떤 부조리에도 눈감아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그렇소!" 라고 말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거의 없다고 단정해도 별로 틀리지 않을 터다.  

사실 <아이리스>를 그런 드라마들과 비교하는 것은 커다란 실례일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리라. 그러나 1회 첫 장면을 본 순간적인 느낌이 그랬을 뿐이다. 사소한 일부분이긴 하지만 이런 대작을 만들면서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 설정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 4회를 보면서 그건 기우였음이 판명되었다. 나의 섣부른 판단이었다. 김현준이 다시 NSS 부국장 백산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오늘 나온 것이다. "이유가 뭡니까?"

하긴 이유를 묻는 것도 냉혈 킬러들에겐 난센스다. 그러나 김현준을 비롯한 NSS 요원들은 냉혈 킬러가 아니다. 그들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된다. 그들은 국가 안보를 책임진 공무원 신분이다.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조직의 명령에 맹동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이리스의 전문 킬러 빅으로 충분하다. NSS(국가안보국)와 아이리스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다. 아이리스가 아직 베일에 가려있지만, 악의 화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백산은 김현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질문과 답변은 1부에는 없었는데, 변명하자면 이는 내 어설픈 판단의 원인이었다. "ICBM. 북한은 그동안 미사일 발사체 관련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왔어. 이젠 미국 본토까지 직접 공격이 가능한 미사일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어. 그 마지막 과제가 핵탄두의 소형화야. 윤성철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이곳 헝가리에서 구 소련 관계자들과 비밀회동을 가질 예정이야. 북한이 핵미사일 보유국이 되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순 없지 않나?"
 
그러나 백산의 이 말은 진실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어떤 보고도 들은 바가 없으며 그 외 국가안보 관련 보좌관이나 정보기관 수뇌부들도 알지 못하는 엄청난 일이다. 북한 최고인민위원장 암살 음모의 배후에는 NSS가 아니라 아이리스라는 비밀 조직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백산은 NSS가 아니라 아이리스를 위해 일하는 인물이다. <아이리스> 홈피에서도 백산은 아이리스 한국지부장이라고 소개해놓았으니 이는 틀림없는 일이다.

스키복장을 하고 있는 걸로 봐서 눈밭에서 벌이는 멋진 추격전도 예상된다.


아무튼 1부 첫 장면 암살을 지시하는 대목이 억지 설정이며 이는 작지만 막장 요소였다고 비판한 것은 나의 섣부른 판단의 결과였고, 매우 잘못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추신으로 밝혔던 것처럼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사과하는 의미로 포스팅을 따로 하겠다고 했으므로 오늘 이렇게 <아이리스>에 공식적으로 사과한다. 물론 <아이리스>에 대한 나의 비판은 그저 옥에 티를 보고 투덜거리는 정도였을 뿐이며, 옥이 너무 빛나므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토를 달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다. 

오늘 4부는 손에 땀을 쥐고 보았다. 본 시리즈 3편을 거의 몇 차례씩이나 볼 정도로 나는 첩보영화를 좋아한다. <아이리스>는 4부를 통해 본 시리즈에 전혀 손색없는 스릴을 보여주었다. 이병헌이 <아이리스>의 주연으로 발탁된 이유도 충분히 보여주었던 4부였다. 시나리오도 훌륭하고 연출도 멋지다. 빠른 전개가 만들어내는 스릴과 서스펜스는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만들었다. 벌써부터 5부가 기다려진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아이리스>에 진심으로 사과하며 무한한 기대를 보내는 바이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오늘 「내조의 여왕」이 끝났네요. 섭섭합니다. 사실은 오늘 끝난 게 아니라 어제 끝났지요. 그런데 어제 제가 술을 한잔 하는 바람에 마지막회를 보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500원을 내고 컴으로 보았습니다. “아유~ 아까운 내 500원”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어쨌든 그래서 제게는 「내조의 여왕」이 오늘 새벽에 끝난 셈이 되었답니다. 

역시 모든 드라마가 그러하듯 결말은 그렇고 그렇습니다. 요란하게 진행되던 이야기들을 욕조에 물 빼고 청소하듯 그렇게 정리해야 하는 거니까요. 물 빠진 욕조는 황량하지요. 오늘도 그렇군요. 물 빠진 욕조를 보는 기분… 그러나 뿌듯합니다.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볼 수 있었다는 기쁨, 천지애 같은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보람, 뭐 그런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사실 작년 말에 종영했던 「너는 내 운명」을 보고 난 이후 드라마를 끊었었답니다. 막장드라마로 유명했던 드라마였지요. 막장드라마였다지만 시청률이 엄청났었지요.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을 리드하고, 다시 방송사들은 그 시청률을 따라 막장드라마를 만들고, 그래서 막장드라마가 대세가 되는 악순환이 사실은 문제로 많이 지적되었었지요.

「아내의 유혹」을 비롯해 많은 드라마들이 막장드라마라는 악평을 받았는데요. 그러나 저는, 글쎄요. 「너는 내 운명」을 따라올 만한 막장드라마는 아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유식하게 표현하자면, 전무후무하다고 하지요. 하여튼, 「너는 내 운명」이야말로 전무후무한 불후의 막장드라마였다는 게 제 평가예요.


「너는 내 운명」은 자극적인 소재, 비상식적인 설정뿐만이 아니라 출연자들의 연기수준도 거의 막장이었지요. 심지어는 정애리 같은 쟁쟁한 연기자들의 연기마저도 역겨울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거의 매회 등장하는 반사회적 반인간적 요소들은 보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저는 그 막장드라마의 신기원을 열었던 「너는 내 운명」이후 드라마를 딱 끊었답니다.

그런데 「내조의 여왕」이 꽤 괜찮은 드라마란 소문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다시 ‘이걸 한번 봐?’ 하는 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드라마 광이었거든요. 거의 모든 드라마를 다 보았지요. 아마 제가 안 본 드라마가 있다면 그건 뒤지도록 재미없는 것임에 틀림없을 거예요.


결국 다시 유혹을 못 이기고 TV 앞에 앉았는데, 아~ 정말 재미있더군요.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드라마였어요. “Good!” ‘내조’란 다소 봉건적인 소재를 사용하긴 했지만, 전혀 봉건적인 냄새가 나지 않았고요. 여성비하적인 그런 느낌도 별로 없었어요.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사랑, 저는 그게 진짜 사랑 같더라고요.

「사랑과 영혼」이나 「남과 여」, 「라스트 콘서트」에 나오는 로맨틱한 사랑만 사랑이 아니라 이런 사랑이 진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생활 속에 진하게 배어 잔잔하게 타들어가는 그런 사랑이라고나 할까요? 저만 감동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동적인 사랑을 느꼈었지요.

그러니까 어제 그저께군요. 딸과 함께 「내조의 여왕」을 보고 있었는데요. 우리 딸애가 또 저를 닮아 그런지 드라마 꽤나 좋아한답니다. 앞부분 조금 보면 거의 뒤가 어떻게 될 것인지 감 잡아버린다는 점에서도 절 쏙 닮았지요. 저로 말하자면, 우리 마누라가 “그냥 드라마 작가로 한번 나가보지” 하고 말할 정도랍니다. 그야 물론 비웃는 말인 줄 잘 알지만…

드라마를 한참 보다가 딸애가 갑자기 그러는 겁니다. “아빠, 우리 편지 쓰기 하자.” 그러더니 꽃무늬 편지지를 제게 한 장 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뭐 대충 “앞으로 말 잘 들어라, 까불지 마라, 오빠하고 싸우지 마라.” 이런 식으로 무성의 하게 적어서 주었는데요. 딸애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이혼하자!” … 헉~ (애가 테레비를 너무 많이 봤나…)

뭐 장난이니까. 그렇지만 좀 심하군요.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 우리 이혼하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남남이다.” 그러자 딸애도 막 웃으면서 그랬습니다. “그래, 이제 우린 남남이다.” 글쎄, 이혼이란 인생최대의 비극이라 할 상황이 우리 부녀에겐 장난거리가 된 것입니다.

마침 TV에서도 천지애와 온달수가 이혼하네 마네하며 심각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딸애의 정색을 한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며 진지하면서도 매우 조용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나하고는 이혼하더라도 엄마하고는 절대 이혼하지 마라.” “왜?” “그러면 내가 너무 쓸쓸해지잖아.”

우리 딸애는 아홉 살입니다. 아홉 살이지만 드라마의 앞을 조금만 보면 뒤를 읽어낼 정도로 영민한 아이랍니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치른 받아쓰기 시험에서 받은 10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와서 칭찬해달라고 조를 정도로 배포도 큰 아이죠. ‘애늙은이’같은 딸아이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한숨이 나오더군요. ‘얘가 이혼이 뭔지 알기는 아는가 보네.’

그러나 참 다행인 것은 그때 보고 있던 드라마가「내조의 여왕」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아마 다른, 그러니까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던 중이었다면 저는 참으로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했을 것입니다. 딸애는 TV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빠, 쟤들 절대 이혼 안 한다.” “니가 어떻게 아는데?” “에이~ 다 알지. 쟤들은 진짜로 사랑하거든. 그러니까 이혼 못해.”

어젯밤, 딸아이가 술이 취해 일찍 자고 있는 저를 막 흔들며 「내조의 여왕」마지막회 한다며 깨웠지만 저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잠든 새벽에 일어나 홀로 이렇게 그 마지막회를 감상했답니다. 우리 딸애의 예언처럼 걔들은―애들이 어른 보고 쟤들 이러면 안 되는 건데, 그걸 따라하는 저도 참 한심하군요―이혼하지 않았군요. 천지애와 온달수 말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오늘은 제 큰아들이―그래봤자 아들 하나 딸 하나, 둘입니다―수학여행 가는 날입니다. 서울로 간다는군요.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우리 때는 초등학교는 경주로, 중고등학교는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어제 저보고 5시 반에 깨워달라고 부탁했는데 깨울 시간이 다 돼가는군요.

오랜만에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보고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천지애의 본명이 김남주였던가요? 저는 원래 김남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좋아해줄 생각입니다. 훌륭한 드라마, 훌륭한 연기자는 많이 좋아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막장드라마를 퇴출시키고 좋은 드라마를 안방에 앉히는 첩경이 아닐까 해서요…  

음~ 이제 아들놈 깨워 수학여행 보내야겠군요. 자기네 학교 운동장에서 6시 30분에 버스가 출발한다니까요.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다음에 게시한 동영상에 나오는 노래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는 <벨라차오>라고 하는 곡이구요. 또 하나는 캄밧이라고 하는 노래입니다. 벨라 차오는 이태리의 파르티잔(빨치산)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인데 말하자면 투쟁가인 셈이지요. 나찌와 파시스트에 맞서 빨치산들은 원래는 민요(정확하게는 이탈리아 북부공업지대의 노동요)였던 이 노래를 부르며 전의를 다졌을 겁니다.

그러나 비장한 이 노래는 오늘날 투쟁현장에서 축제장에서 심지어 파티장에서도 즐거이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또 이브 몽땅과 밀바, 마리아 파란두리, 첨바왐바 팝밴드도 불렀지만 이들 말고도 전 세계의 뮤지션들이 저마다의 버전으로 불렀던 노래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의 평가처럼 “굵고 짧은 빨치산의 생애와는 달리 벨라챠오의 생명력은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았다”는 말은 유럽에선 정말 실감나는 일일 듯합니다.   

비장하면서도 흥겨운 이 노래를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비장한 노래가 있습니다. 캄밧이라는 노래인데요. 러시아의 류베가 불렀던 노래입니다. 정말 멋진 노래지요. 러시아 음악은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그만큼 이국적이고 특별한 감동과 정서를 제공합니다. 러시아라고 하면 이오시프 코프존이나 빅토르 최가 우선 생각나지요?


빅토르 최는 고려인으로서 러시아에서 영웅 대접을 받은 가수로 티브이에서 소개가 많이 되었었지요. 이오시프 코브존 하면 <모래시계>가 기억나지요. 추억의 드라마, 드라마 촬영지를 관광지로 만든 최초의 드라마, 불후의 명작이란 칭호를 붙여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명품드라마였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와 비교되지요. 그 드라마의 주제가가 바로 러시아 인민가수 이오시프 코브존의 노래였지요. 명품드라마에 명품음악…, 그립네요. 

그래서 오늘 그 명품음악들을 감상하고 싶어 유튜브를 방문했는데 글쎄 벨라차오가 안 나오는 겁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벨라차오는 종류가 수백 개가 넘는데요. 제가 특별히 이 노래를 들으며 감상하고 싶었던 동영상(Vella Ciao-WTO Protests)은 아무리 틀어도 안 나오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19세 이하는 관람불가였네요. 틀었더니 음악 대신 이런 게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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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작년 2월까지 아무런 제한없이 볼 수 있었던 음악이었는데 왜 갑자기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이 되었는지…, 대통령이 바뀌어서 그런 걸까요? 하여간 한참을 헤맸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저는   에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이 동영상을 볼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꽤 긴 시간을 허비하는 손실을 보긴 했지만…. 밑에다 제가 좋아하는 벨라차오와 캄밧을 소개합니다. 제가 볼 땐 굳이 금지를 할려면 캄밧 동영상이 더 해당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어떨까요?     파비 

★1. 동영상 위에 마우스를 놓고 더블클릭 하시면 유튜브로 바로 연결됩니다. 아마 그곳에서 나이 인증을 해줘야 볼 수 있을 겁니다.(<생년워일 확인>을 더블클릭하기만 하면 됨) 거기 가시면 여러 종류의 벨라차우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유명한 이태리 깐소네 가수 밀바의 노래도 감상할 수 있고요. 아래 캄밧은 바로 볼 수 있지만, 역시 더블클릭하시면 더 고질의 화질을 만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이보다는, 동영상 화면 아래부분을 클릭하면 여러 장르의 벨라차오 창이 슬라이드로 나오는데 중간 쯤에 이태리의 유명한 깐소네 가수 밀바(흑백 여성사진)가 부른 벨라차오도 있습니다. 이대로 하면 Vella Ciao-WTO를 제외한 대부분의 벨라 차오는 그냥 들을 수 있더군요.  

1. Bella Ciao - WTO Protests

 이 정보는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 및 청소년보호법의 규정에 의해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볼 수 없습니다.  
 
 

Bella Ciao

Una mattina mi sono alzato,             오늘 아침, 깨어나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Una mattina mi sono alzato,             오늘 아침, 깨어나
E ho trovato l'invasor.                   그리고 침입자를 발견했네.

O partigiano portami via,                오 파르티잔이 나를 데려가네,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O partigiano portami via,                오 파르티잔이 나를 데려가네,
Qui mi sento di moror.                     그래서 죽음이 가까워 오는 걸 느끼네.

E so io muoio da partigiano,           내가 죽거든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E so io muoio da partigiano,           내가 파르티잔으로 죽거든,

Tu mi devi seppellir.                      그러면 나를 묻어주오.

E seppellire sulla montagna            산 위에 묻어주오,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E seppellire sulla montagna            내가 죽거든 산 위 예쁜 꽃 그늘 아래
Sott l'ombra di un bel fior.              나를 묻어주오.

Casi le genti che passeranno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Casi le genti che passeranno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
Mi diranno ≪che bel fior≫.           오 아름다운 꽃이 아니냐고 말할테지.

E questo e il fiore del partigiano   그 꽃은 파르티잔의 꽃이라고 말해주오,
O bella ciao, bella ciao,               오 내 사랑 내 사랑
Bella ciao, ciao, ciao,                  나의 사랑아,
E questo e il fiore del partigiano   그 꽃은 자유를 위해 죽어간
Morto per la liberta.                       파르티잔의 꽃이라고.


2. Kambat-Lube(캄밧-류베)
 
Posted by 파비 정부권

전대미문의 막장드라마 ‘너는 내 운명’이 오늘 막을 내린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막장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어처구니없는 설정과 엉터리 같은 대사에 있었다. 특히 황당무계한 줄거리를 연결시키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독백은 그야말로 막장 중의 막장이었다.

막장의 끝, 호세의 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새벽이의 친모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그녀 자신도 백혈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처지였다. 새벽이의 골수가 시어머니와 자기에게 모두 일치한다는 사실을 안 그녀는 새벽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 희생할 결심을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모든 출연자들이 다 그래왔듯이, 그녀는 강인하고 단호한 표정으로 독백을 날린다.

“그래. 새벽이 네 행복은 내가 지켜줄게. 걱정하지 마. 네 시어머니는 내가 반드시 살려줄 거야.”

이 대목에서는 그래도 인간적인 냄새가 느껴졌다. 그래… 자기 목숨을 버려 딸의 행복을 지켜주려고 하는구나. 낼 모래면 끝난다는데 아무리 막장드라마라지만, 이젠 정신을 차려야지. 잘했어. 그리고 곧 새벽의 친모가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나 새벽의 친모는 우리의 상상을 여지없이 부셔버렸다. 그녀는 곧바로 새벽의 시어머니가 누워있는 무균병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다 쓰러져가는 환자 앞에서 “건강하세요. 꼭 사셔야지요. 골수이식 받기로 하셨다면서요. 잘 될 거여요.” 느닷없이 나타나 놀라자빠지려는 환자에게 이 말을 집어던지고는 횡 하니 돌아서 나간다.

이건 시청자에 대한 엄중한 모독이다. 아무리 허접한 설정과 대사로 칠갑을 한 드라마라지만 이건 지나친 정도가 도의 수준을 넘었다. 그런데 이따위 어처구니없는 설정과 독백으로 가득 찬 드라마가 ‘너는 내 운명’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전대미문의 막장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막장드라마’를 능가하는 ‘막장정부’

이명박은 ‘747’이란 장밋빛 공약으로 국민들을 한껏 비행기 태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미 이때부터 세계경제엔 금융공황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계속해서 미국 발 금융위기와 국내증시의 폭락,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경고하고 있을 때, 이명박은 주가 3000시대를 예고하며 주식투자에 나설 것을 부추겼다.

마치 막장드라마 ‘너는 내 운명’에 나오는 출연자들이 너 나 없이 읊어대는 곧 드러날 거짓말들과 파렴치한 행동들이 이명박 정권에 클로즈업되어 보였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어쩜 이리도 닮았을까?’

이명박은 대통령이 된지 1년도 되지 않아 자기가 다 망쳐먹은 나라경제를 걱정하며 새벽이 친모가 독백하듯 한다.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살려줄게.” (참고로 새벽이 친모는 젊을 때, 출세를 위해 병든 남편과 어린 새벽을 버렸다. 물론 이 막장드라마에선 그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나오지도 않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희한한 일이지만, 새벽이도 자기 친부가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막장드라마겠지만….)

그리고는 곧바로 한 일이 청와대 지하벙커에 ‘전쟁상황실’을 개조해 ‘경제상황실’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전과는 ‘미네르바 체포’였다. 조중동을 필두로 보수언론과 정부는 이 엄청난 전과에 한껏 고무되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난리법석이다.

똑똑한 검찰, 경제관료, 청와대까지, 모두 미네르바에게 무릎 꿇고 배우는 게 어떤가? 사진=오마이뉴스


전쟁상황실에서 벌인 경제살리기 첫번째 전과, 미네르바 체포 

아마도 이명박은 경제는 전쟁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 전쟁이다.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앞으로 내 말을 듣지 않거나 엉뚱한 소리하는 자가 있다면 군법에 따라 처단하겠다.”

그리고 시범케이스가 필요했다. 미네르바가 걸려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실수를 할 거라 벼르며 호시탐탐 노려온 보람이 있다. 마침내 2008년 12월 29일, 미네르바는 ‘허위사실 유포’로 의심될만한 행동을 했다. 정부가 ‘달러매수금지명령’ 공문을 발송했다는 글을 올린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해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미 정부의 외환통제가 강화되었다는 사실은 이 분야에 약간의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공문이 오고갔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한 장의 서류를 빌미로 기세등등해서 ‘유언비어유포죄’로 몰아가려는 검찰과 정부는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이 비극적인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는 정부 앞에서 참담한 심정 가눌 길이 없다. 새벽이 시어머니를 반드시 살려주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로 드러누워 있는 환자에게 찾아가 윽박지르듯 꼭 살아나라고 다그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지던 새벽이 친모와 어쩌면 이리도 이 정부는 닮았는가. 비극도 이런 비극이 또 없다. 그래도 새벽이 친모는 사람은 살렸다지만….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연말 대한민국 국회의 폭력사태로 세계에 웃음거리를 제공했다고 연일 떠들어대며 야당을 압박했다. 그런데 사실 이 폭력사태를 빚게 한 원흉은 한나라당에 있지 않은가. 먼저 전쟁하듯 국회의사당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야당의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누구였던가.

세계에 웃음거리가 된 대한민국

그런데 이명박 정권과 검찰이 이번엔 진짜로 세계에 웃음거리를 제공했다. 지금 세계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런 바보 같은 놈들? 백수보다 못한 만수를 기획재정부장관으로 데리고 일하는 덜떨어진 대한민국 대통령?’

그러나 문제는 그런 욕이 아니다. 세계가 지금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으며 민주주의가 말살되고 있다는 점을 외신들이 타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다. 이러다가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독재국가의 반열에 대한민국이 이름을 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어떤 외국 투자자가 현재와 미래가 투명하지 않은 독재국가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전쟁상황실을 흉내 낸 경제상황실을 지하벙커에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발사한 경제살리기 미사일에 거꾸로 나라가 절단 나게 생겼다.

마침내 오늘 막장드라마는 막을 내린다. 이제 다음은 막장정부가 막을 내릴 차례다. 제발 국민들을 위해 막장정부도 그만 막 좀 내려줬음 좋겠다. 그러나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걸 잘 안다. 대신 다음과 같은 ‘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함께 ‘유엔 인권결의안’ 대상국으로 전락하는 영광 말이다.

2009. 1. 9.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