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4.27 막장드라마를 보며 드는 막장에 대한 추억 by 파비 정부권 (3)
  2. 2009.04.09 개도 만원 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하던 시절? by 파비 정부권 (2)
막장드라마, 막장에 대한 지독한 신성모독

보아하니 이제 막장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 장르의 한 영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한 것 같습니다. 막장이란 말은 별로 안 좋은 뜻으로 쓰이지만, 이 말을 쓸 때마다 저는 매우 미안한 마음을 갖기도 했습니다. 저는 탄전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므로 제 주변에는 막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중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진학을 포기하고 막장에 들어가기 위해 탄광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막장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꽤 경력을 쌓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요. 막장에 들어가 탄을 캐는 노동자들을 사끼야마라고 불렀습니다. 선산부라고도 합니다. 

막장까지는 안 들어가고 개탄장 등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일러 후끼야마라고 불렀습니다. 후산부라고도 합니다. 사끼야마, 후끼야마 하는 말들은 모두 일본말일 테지요. 어린 시절 그저 들었던 이름들이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직까지 사끼야마, 후끼야마 이런 말들은 제 기억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 어린 친구들 중에도 사끼야마가 된 이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더욱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빡빡 깍은 머리에 '중'자가 박힌 교모를 올린 채 가방을 걸머지고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데 뒤에서 빵빵 거리는 경적소리가 울렸습니다. 제무시라고 부르는 검은 탄차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왜 제무시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고 모두들 제무시라고 불렀는데,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미제트럭 GMC를 지에무시 또는 제무시라고 발음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이 트럭은 등판능력이 상당했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이 제무시는 군용트럭으로도 주가를 올렸습니다. 저도 이 트럭을 모는 아는 형님 덕택에 제무시를 타본 적이 있습니다. 조수석에 매달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계곡을 바라보는 재미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게 삼삼합니다. 등 뒤에서 경적을 울리며 달려오는 트럭에도 온통 까만 얼굴에 눈만 하얗게 번뜩이는 사람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내가 살던 문경의 탄차들은 보통 문짝은 떼고 다녔으며, 조수들을 한쪽 다리를 밖으로 늘어뜨리거나 양손으로 문틀을 잡고 매달려 다녔다.


그리고 무심결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 충격을 느끼며 잽싸게 얼굴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저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것입니다. 그 친구의 고개가 반대편으로 순식간에 돌아간 것은 거의 동시였습니다. 그때 저는 중학교 1학년, 기껏 열네 살 정도의 소년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사태가 일어났으니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이 친구가 사끼야마가 되었는지, 제무시 운전수가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이 친구는 그 이후에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옆집에도 막장에 다니던 서너 살 위의 형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곧장 탄광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양정모가 대한민국에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던 그해 여름에 죽었습니다. 그가 죽던 날은 몹시도 더웠습니다. 

그 형이 죽던 그 날, 막장에서는 회식이 있었든가 봅니다. 이때 회식이라고 하면 대개 개를 한마리 끌고 냇가로 가서 버드나무에 매달아 패 죽인 다음 그 밑에 불을 놓아 거슬리고 솥을 달아 삶아 먹는 것입니다. 물론 당연히 회식에 술이 빠지면 안 되는 법인데, 그 시절 술이란 커다란 대병 소주이거나 통자 막걸리였습니다. 그 형도 막장에서 일하는 만큼 동등하게 술을 마셨을 테지요.

그러나 얼굴이 불콰해져서 집에 돌아온 그 형은 회식을 위해 버드나무에 매달아 패던 개처럼 얻어맞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막장은 갑반, 을반, 병반 이렇게 삼교대로 근무조를 편성하여 일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그 형은 병반이었습니다. 병반은 밤늦게 들어가서 아침에 나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냇가에 내려가 개를 잡아 회식을 했던 것입니다. 막 시작되려는 여름의 냇가에서 벌어진 회식은 막장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었을 테지요. 

그런데 옆집 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독한 폭력이었습니다. 그 형의 아버지는 얼굴에 붉은 칠을 하고 들어온 그 형을 보자 분노했습니다. 당장 헛간에서 장작을 들고 와 그 형에게 엎드려뻗쳐 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팬티만 남기고 옷이 모두 벗겨진 그 형은 오들오들 떨며 마당에 엎드렸습니다. 그런 그의 허벅지 위로는 한 치의 자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장작개비가 춤을 추며 떨어졌습니다.
 
순식간에 그 형의 허벅지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붉은 피가 마당을 적셨습니다. 퍽, 퍽 하는 요란한 소리가 뜨거운 햇살 아래 잠든 마을의 정적을 흔들었습니다. 마침 일찍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있던 저는 도대체 그 형이 몇 대나 맞았는지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수십 대? 수백 대? 아무튼, 그날 그 형은 그렇게 맞은 몸으로도 어김없이 병반에 들어갔습니다.

탄을 다 캐면 발파를 한 다음 이렇게 동발을 엮으며 계속 굴진작업을 해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밤 막장이 무너졌습니다. 이후에 그 형의 얼굴은 영원히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옆집 마당을 볼 때마다 늘 그 형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지금도 어렴풋하나마 그 형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웃는 듯 우는 듯 그런 표정입니다. 얼마 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온 나라를 축제 분위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막장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그 형의 일 따위는 깡그리 까먹었다는 듯이 김포공항에서 중앙청까지 벌어지는 카퍼레이드를 보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나 어쩌다 양정모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저는 그 형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해 뜨거웠던 여름, 한 사람은 몬트리올에서 금메달을 캐고 국민 영웅이 되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막장에 검은 탄을 캐러갔다가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

막장, 막장은 이처럼 저에겐 슬픈 추억들을 떠올리는 단어입니다. 더불어 막장이란 말은 60년대와 70년대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석탄산업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만약 막장이 없었다면 그 시절 도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었을까요. 90년대까지도 도시의 영세한 아파트들이나 산동네에선 연탄보일러의 물끊는 소리가 뽀글거렸습니다.

이제 연탄은 그저 가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연탄구이 삼겹살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일 때만 필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만, 한때 이 연탄의 연료인 석탄을 캐는 탄광은 사회를 움직이는 기관차와도 같은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첨단에 막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석탄산업은 어느덧 사양산업으로 전락했고 도시인들도 이제 더 이상 연탄에 의지해 겨울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렇게 막장은 없어졌습니다.   

(좌) 막장에서의 식사 (우) 채탄작업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막장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막장드라마, 바로 막장드라마란 존재를 통해서. 그러나 새롭게 등장한 막장은 사회를 지탱하는 반석이 아니라 사회의 암적 요소를 대번하는 존재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쓰레기 같은 존재로 말입니다. 아니 쓰레기보다도 못한 존재를 일러 막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주도한 것은 어이없게도 시대의 총아 텔레비전이었습니다.

전혀 개연성 없는 줄거리, 말도 안 되는 상황설정, 반사회적인 요소들,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장면들이 아무런 이유나 설명도 없이 좌충우돌 등장하는 것이 막장드라마의 특색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내 운명>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특별한 사정이나 까닭도 없이 50대의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또 어느 날 갑자기 드라마 전개상 이 여인이 아이를 낳는 것이 불필요했던지 아파트 옥상에 올려 보내 보름달을 바라보며 체조를 하다가 낙태를 하는 것으로 결론 내는 식이죠. 

이런 드라마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그 반사회성과 수준 낮은 엉터리 같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시청률이 높지 않다면 이런 따위의 허접한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최근 막장드라마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수상한 삼형제>와 <살맛납니다>인데, <수상한 삼형제>는 공전절후란 말이 실감 날 정도입니다.      

저는 아예 <수상한 삼형제>는 중간에 끊어버렸는데 이 드라마를 가족들이 모이는 시간대에 틀어놓았다가는 모두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살맛납니다>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무엇이 살맛 난다는 것인지, 이렇게 살면 살맛이 안 난다는 것인지, 차라리 결혼 같은 것은 하지 말고 혼자 살기를 홍보하는 드라마인지 헛갈리는데,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아무튼, 저도 이 막장드라마란 표현을 언제부터인가 즐겨 쓰기 시작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막장이란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끼야마들이 막장에서 국민들의 따스한 겨울과 산업자원을 위해 목숨을 뿌렸던가? 아니 그런데 하필 왜 이따위 지저분한 드라마들에 막장이란 말을 붙이는 걸까? 이건 신성모독이 아닐까?"

저는 사실 막장까지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 몇 번 갱 속에 들어가 보긴 했지만, 막장까지 내려갈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동발이라고 부르는 목재로 만들어진 굴 속 끝은 까마득하게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끝 어딘가에서 다시 수직으로 또 몇 킬로를 내려가고, 다시 그 끝 어딘가에서 또 몇 킬로를 내달려야 막장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막장은 참으로 멀고 먼 정말 저 땅끝 어딘가에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석탄이 오늘날 선진 대한민국―물론 사회복지적으로는 한참 질 낮은 후진국이지만, 경제적으로는 10위권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하니―의 영광을 이룬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을 돌려도 시원찮을 막장을 사회의 암적 존재, 쓰레기보다 못한 드라마를 대변하는 말로 전락시켰다니 실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려웠던 시절 막장에서 땀 흘리며 나라의 부를 캤던 분들이 이 기괴한 현상을 보고 무어라 할까요? 통탄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미 막장드라마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 자리잡았으며 어떤 명분으로도 이 말을 없앨 힘은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막장드라마는 앞으로도 막장드라마라고 계속 불리겠지요. "에잇, 이놈의 막장드라 없는 세상에 좀 살 수 없을까?" 그러면서 또 사람들은 열심히 막장드라마를 보겠지요.

그리하여 막장이 사라진 다음 세상에서도 막장이란 말만은 영원히 존재하겠지요. 그 의미가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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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차길, 추전역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해발 855m라는 높이는 내가 살고 있는 마산의 진산 무학산 정상보다도 100m가 높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기차가 올라왔을까, 기술의 진보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까마득한 옛날에 말이다.

아마도 태백산 일대에 석탄이며 아연이며 중석이 발견되지 않았던들 이곳은 아직도 태고의 원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전역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는 오래된 석탄도시의 흔적이 봄기운에 녹아 내리는 눈과 함께 질척거린다. 검은 도시의 영광을 아쉬워 하듯….

 

추전역에 올라서니 바로 코 앞에 거대한 풍차를 머리에 매단 매봉산이 바라다보인다. 대관령을 넘으면서도 저런 풍경을 보았었다. 거대한 풍차의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과 동해바다가 이국적이었다. 석탄도시의 상징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풍차의 날개짓…. 추전역은 한산했다. 한쪽 귀퉁이에선 과거에는 석탄을 가득 싣고 분주하게 뛰어다녔을 검은 화물열차가 오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 코에 기다랗게 고드름을 매단 삐에로 복장을 한 인형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풍력발전용 풍차들

한 세월 전국의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며 땀을 흘렸던 이 역사는 이제 검은 무연탄 대신 카메라를 들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치장한 관광객들을 맞는다. 석탄을 가득 싣고 길 떠날 준비에 바삐 움직이던 기관차와 화물열차 대신 선로에는 관광객들의 셔터소리만이 가득하다.

 

한때 태백시는 인구가 20만에 육박하는 고원도시였다. 원래는 삼척군 상장면(또는 1920년대 이전엔 상장성면이라고도 불리었음)으로 화전지대였던 이 곳은 1920년대에 탄층이 발견되면서 탄전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61년 삼척군 장성읍으로 승격했고 1973년에는 장성읍 황지리가 삼척군 황지읍으로 분리되었다가 1981년 다시 장성과 황지를 합하여 태백시가 되었다.

 

태백시는 우리나라 최대의 탄광도시였다. 사람들은 그때의 영광을 말할 때 지나다니던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로 대신한다. 물론 이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다. 사람에게도 귀한 만 원짜리를 어찌 개가 물고 다닐 수야 있겠는가그러나 이런 우스갯소리는 당시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는 듯한 말이어서 한편 못내 서러운 마음을 배척할 수가 없다

내 어린시절 고향도 탄전지대였다. 태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태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경이란 또 하나의 탄전지대가 있었다
그런데 내 어릴 적 추억이 묻은 이곳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로 예의 개도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랬던가. 그러나 사정은 달랐다. 광산주에게는 맞는 말일지언정 막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광부들은 땅속에서 일을 했다. 그들은 밀폐된 어두운 곳에서 희미한 카바이드 불빛에 의지한 채 죽음을 친구로 삼아 검은 흙에 삽질을 한다. 발파 후에 채탄작업, 그리고 다시 동발을 세우고 한발 한발 막장이 깊어질수록 채탄장에 쌓이는 석탄의 높이만큼 사끼야마(선산부)들의 폐는 검은 먼지에 색이 변한다. 그렇게 변색되는 폐가 그들의 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을까.

 

얼마나 많은 광부들이 진폐로 생과 이별했던가. 그들은 폐에 묻은 검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돼지비계와 소주가 필요했다. 갱도 주변에는 수많은 술집과 작부들이 그들의 진폐를 달래기 위해 들어섰고 광산도시는 밤이나 낮이나 흥청거렸다. 글쎄, 어쩌면 그 시절 술 취한 어느 광부의 만 원짜리를 개란 놈이 훔쳐 물고 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를 박박 밀고 시커먼 교복과 교모를 눌러쓴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나 대견스러워 우쭐거리던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느 날 하교 길에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 녀석은 검은 탄가루를 날리며 달리는 재무시(GMC트럭) 조수석에 매달려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잽싸게 얼굴을 돌렸다. 나 역시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냥 얼른 눈길을 피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기재된 아동근로 금지의 원칙 같은 것은 그야말로 법전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더 슬픈 기억은… 국민학교 때였다. 양정모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고 흑백 텔레비전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바로 그날이었다. 옆집 형이 복날 개 맞듯이 맞았던 것은….

추전역. 무연탄 적재용 화물열차가 보이고 그 옆에 싣다 만 석탄이 쌓여있다.

옆집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였다. 그는 광산에서 후끼야마(후산부)로 일했는데 그날 낮에 친구들과 막걸리를 많이 마셨던가 보았다. 그는 미성년자였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팬티만 입힌 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장작으로 빠따를 때렸는데 그 형의 엉덩이와 허벅지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그리고 그 몸으로 병반(3교대 중 밤에 일하는 조)을 들어갔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굴이 무너진 것이다.

 

모두 옛날 이야기다. 새끼줄에 연탄을 매달고 퇴근길을 재촉하던 시절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탄광도시의 영광도 옛날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광부들의 애환도 작부의 구성진 노래도 모두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과거의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해발 855m에 외롭게 서있는 추전역사는 관광객들을 맞아 헤픈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 추전역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 친구와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을 옆집 형을 생각했다. 그 모습을 매봉산 정상의 풍차들이 빙글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추전역을 떠나 두문동재를 향해 버스를 달렸다. 추전역 바로 위에 있는 두문동재는 해발 1268m의 고개다. 두문동이라.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멸망한 고려의 충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고개 너머에는 낙동강 발원지 너덜샘이 기다리고 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