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사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3.16 북면온천에서 주남저수지까지 걸어보니 by 파비 정부권 (10)
  2. 2008.11.05 람사르 폐막실날 우포늪 가봤더니 by 파비 정부권 (9)
  3. 2008.11.04 환경연합, 투명회계만이 살길이다 by 파비 정부권 (4)
  4. 2008.10.31 가고파 국화축제에 대한 커다란 오해 by 파비 정부권 (26)
  5. 2008.09.22 마산 만날제,먹거리장터로 변한 시민문화한마당 by 파비 정부권 (5)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라는 곳에서 낙동강 걷기 답사 계획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계획은 10회에 걸쳐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산 황지에서부터 을숙도까지 걸어서 탐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낙동강 등을 따라 걷는 것에 관심이 있던 나는 얼른 회원가입을 했다. 특히나 정부의 대운하사업이 4대강 물 살리기란 미명을 덮어쓰고 그 야욕을 멈추지 않는 터에 낙동강을 걸어서 탐사해본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도보훈련에 나서다

나는 어려서부터 걷기를 즐겼다평소에는 작은 산을 서너 개씩 넘어 지름길로 다니다가도 갑자기 걷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부러 신작로를 따라 걸었다. 협곡을 따라 길게 뻗은 신작로는 학교에서 집까지 족히 40리가 넘었다. 지금도 걷기를 즐겨 해서 웬만한 바쁜 일이 아니면 시내까지 걸어서 간다. 걸을 때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걸을 때 나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북면온천에서 동쪽으로 길을 접어들면 마산삼거리다. 주남저수지까지 16km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지만 낙동강 천삼백 리를 걸어서 답사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미리 훈련을 하기로 했다. 배낭을 쌌다. 그런데 배낭에 무얼 넣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이렇게 일부러 계획을 하고 나서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빈 배낭을 매기도 그렇고 해서 걷기 전도사 신정일 선생의 「섬진강 따라걷기」를 ‘폼’으로 한 권 넣었다. 그리고 20번 버스를 타고 북면으로 갔다. 북면에서부터 주남저수지까지 걷는 것이 1차 훈련의 목표였다.

날씨는 매우 싱그러웠다들판에서 불어오는 봄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완연한 봄이었다. 하늘에 태양은 적당한 온도의 빛으로 도보여행훈련 첫날을 배려해주었다. 들판을 바라보며 길을 걷자니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군대시절, 가끔 똥차를 끌고 며칠씩 훈련소를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일에 나는 서슴없이 손을 들었었다. 감옥보다 답답하고 지긋지긋한 내무반을 벗어나는데 똥차가 대수일소냐!

한적한 시골길의 풍요로웠던 추억

그렇게 부대 내무반을 탈출해 천국으로 향했다. 똥차를 타고서…. 선탑자인 중사와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서로를 갈구는 괴로움의 대상이 아니다. 함께 훈련소를 돌아다니며 무거운 고무호스로 오물을 퍼 담아야 하는 동지일 뿐이었다사람들이 보인다, 진짜 사람들이아가씨도 보이고 할머니도 보인다. 봄날의 아지랑이를 밟으며 우리는 넓은 논산평야를 가로질러 달린다그랬다. 그때도 봄이었다마치 마을 잔칫집 가마솥에서 김이 피어 오르듯 들판에선 아지랑이들이 어지러이 피어 올랐다.
 
그 아지랑이들 속에서 한 명의 농부와 한 마리의 소가 밭을 갈고 있었다. 그게 밭이었는지 논이었는지는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닐 터. 나는 그때 소를 끌고 한가롭게 밭을 가는 그 농부의 주변에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에 흠뻑 취했다. , 아지랑이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지랑이가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다니. 나는 그 농부와 소가 하염없이 부러웠다. 옆에서 선탑 중사는 핸들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아싸~ 호랑나비♬ 한마리가~♪”
   

지금은 그때처럼 소를 끌고 밭을 매는 풍경을 구경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이맘때면 들판을 가득 적시고 남을 봄의 정취는 여전하다봄은 풍요를 기약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수풀들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 봄볕 가득한 들판 한가운데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는 풍성한 가을을 약속한다이제 사람들은 저 들녘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  

도보자 앞으로 돌진해오는 쉼 없는 차량행렬. 이들을 피하느라 걷기는 계속 중단된다.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은 그러나, 곧 난관에 봉착했다.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 아니었다. 오로지 자동차만이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고 만들어진 차도일 뿐이었다. 차라리 자동차 전용도로란 표지판이라도 달아놓았다면 이런 불평은 없었으리라. 자동차전용도로엔 말 그대로 자동차만 다닐 수 있다. 만약 자동차등록법상 자동차가 아닌 것이 다니게 되면 벌금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 곳이라면 당연히 자동차 외에 자전거나 사람이 다닐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이는 역설적으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특혜를 받는 자동차보다 일반도로에서는 사람이나 자전거가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에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이런 도로에 사람이 다니다가는 언제 ‘로드 킬’ 신세가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처음에 이 위험천만한 국도를 걸으며 나는 ‘어? 이게 아닌데! 하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불평은 곧 ‘불안’으로 다시 ‘두려움’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

앞에서 달려오는 차들은 두려움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배낭을 짊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쓴 별 볼일 없어보이는 사내쯤이야 별로 신경 쓸 일이 있을 일도 없을 터이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바빠 보였다. 편도 1차선의 국도 내리막길에서 그들은 속도를 줄일 겨를도 없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어떤 차는 내 어깨를 스칠 듯 아찔한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괘씸한…, 한비야의 여행기에서 마치 일부러 자신을 향해 돌진하듯 스쳐 지나갔다는 트럭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설마 그럴 리야 있을라고. 그저 다들 바쁜 탓일 게다
.’

대문과 도로가 딱 붙은 길가의 집. 대문 나서기가 무섭겠는데…


계속되는 도로공사, 그러나 ‘걷는사람’을 위한 공사는 없다

북면에서 동읍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올라서니 공사가 한창이다. 아마 4차선 산업도로 공사 중인 모양이다. 잘려나간 고개마루가 횡하다. 이렇게 잘려나간 고개마루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가히 대한민국은 토건공화국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내가 아는 교포들은 한국의 도로를 보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조선족이면서도 중국인의 자부심을 배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웬만해서 한국에 대해 칭찬하는 걸 본 일이 없다. 대국인의 자존심은 서울조차도 별스럽다. 그들에겐 상해가 있고 북경이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대한민국의 도로에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의 도로사정이라든가 그 도로를 닦는 기술수준은 세계 수준급이라는 걸 그들 대국의 자존심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느낀 대한민국의 도로에는 사람을 위한 흔적도 토건왕국의 자존심도 없었다.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도로공사 현장에도 사람을 위한 공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에 도보자의 자존심이 끼일 자리는 없었다.

 

시골길에는 사람만 없는 게 아니라 대중교통도 자주 다니지 않아

 

나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버스라도 오면 주남저수지까지 타고 갈 심산이었다. 아무리 훈련도 좋지만, 목숨까지 위태로운 도보훈련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도 오지 않았다. 내가 걷는 두 시간 동안 북면으로 가는 30번과 본포 방향으로 가는 40번 버스가 지나갔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다시 출발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멀리 저수지가 보인다. 지도를 보니 봉곡저수지다. 이제 저기를 지나면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가 나온다. 다리에 힘이 솟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사라지니 뒤돌아볼 필요도 없이 힘차게 걸었다. 이내 용산마을에 도착했다.

 

용산마을 입구는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를 좌우로 가르는 커다란 제방이었다. 왼쪽에서는 강태공들이 늘어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내려가 보았더니 망태기에 들어앉아있는 붕어란 놈들의 씨알이 꽤 굵다. 주남저수지에서는 허가 받은 어로행위 외에는 금지되지만 맞붙어있는 산남저수지는 낚시도 할 수가 있다.

주남저수지와 맞닿은 산남저수지의 강태공들. 씨알 굵은 붕어가 꽤 잡혔다.

 
금 긋기식 행정으로 주남저수지의 철새들이 보호될까?

편리한
금 긋기 식 행정은 여기에도 있었다. 소벌(우포늪)을 탐방할 때도 이런 경우를 보았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는 낚시를 할 수가 있고 아래는 금지되었다. 그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그럼, 다리 가운데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씨알 굵은 붕어들을 보자 나는 매운탕과 소주가 생각났다. 어쨌거나 주남저수지와 제방 하나로 경계를 가르는 이곳 산남저수지에는 철새가 한 마리도 없었다.

 

주남저수지에는 아직 게으른 철새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니면 먹을 것을 다 못 챙겨먹어서 아직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던 것일까? 저수지 한쪽 물위에 모여 앉아 연신 물속으로 고개를 쳐 박으며 먹이를 잡아먹거나 자맥질을 하고 있는 오리들이 무척 한가롭게 보였다. 저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저들도 태양의 고도가 높아질수록 떠날 준비를 서두르게 될 것이다.

 

주남저수지를 돌아 생태학습관과 람사르문화관을 지나자 동판저수지가 다가왔다. 오래된 버드나무(?)들이 물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었다. 물속에 둥지를 틀고서도 저렇게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저녁노을에 물들어가는 물위를 한가로이 유영하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이는 백로가 한없이 부럽다.

 

주남저수지 입구에 잘 만들어진 인도, 이 정도 성의라도

 

마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호삼거리로 향했다. 주남저수지에서 가호삼거리까지 나가는 길에 빨간색으로 치장된 예쁘장한 인도가 인상적이었다. , 이곳은 이렇게도 도보자를 위해 길을 준비해두었구나! 다른 길도 모두 이 정도의 성의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나는 왠지 그 계산된 성의에 되레 불쾌한 마음이 되었다.

주남저수지 입구 도로의 보도. 좀 좁긴 해도 이 정도면 대단히 준수하다.

 1번 혹은 2, 3번 번호판을 단 마이크로 버스가 차례로 세대나 지나갔다. 나는 처음에 저 차들이 무슨 차일까? 학생들이 많이 탄 걸 보니 학생들 전용버스인가보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똑 같은 1번 번호판을 붙인 커다란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차, 저게 바로 소위 마을버스라는 것이었군 하고 깨달았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이 동네는 버스가 자주 다녔다.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한대씩 다니는 것 같았다.(창원역이 종점) 다섯 번째로 내게 다가온 버스는 1번 마이크로 버스였다. 처음 타보는 마이크로 시내버스가 신기하다. 달리는 승차감도 색다르다. 괜히 기분이 좋아 기사 아저씨에게 버스가 참 좋다고, 자주 타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걷기운동, 살빼기와 미용에도 특효약 아닐까… 

 

하여간 운동은 잘했다. 다음날 이 버스를 타고 주남저수지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이렇게 이틀 운동을 하고 오늘 목욕탕에 갔더니 글쎄, 몸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이틀에 2킬로그램씩 곱하기 5하면 열흘이면 10킬로그램을 뺄 수 있다는 무식한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 산수는 그저 산수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


걷기운동을 열심히 하면 변비에도 아주 특효라고 한다. 변비는 미용에 매우 안 좋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미용에는 걷기운동이 최고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 바꾸어 말하면 ‘많이 걸으면 예뻐진다!’ 이런 말이렷다. 그래서 앞으로 걷기운동 임상결과를 여기에다 밝혀볼까 한다. 그러나 어떨지는 모르겠다. 시작이 반이란 속담도 있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악담도 있으니까….          파비

주남저수지 전경. 아직 떠나지 못한(않은?) 오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주남저수지와 산남저수지를 가르는 둑방에 핀 화사한 꽃들

열심히 작업 중인 꿀벌과 꽃의 사랑 또는 공생? 사랑하면 같이 사는 거죠! 

Posted by 파비 정부권
어제 람사르 총회가 창원선언문 채택을 마지막으로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연안매립을 강행하면서 람사르 총회장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연방 외치는 정치 쇼에 불쾌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엉뚱하게 청계천을 습지보전의 성공적 사례로 홍보하는 대통령이나 따오기 외교를 펼치는 김태호 경남지사가 광대처럼 보이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람사르 총회가 습지보전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모두 한결 같을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을 습지 보전 모범국가로 만들기로 약속했고 이만의 환경부 장관도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고 개발사업을 할 때 습지 보전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는 정부라 이분들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분들이 별로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소벌 전경. 그러나 백과사전에는 우포늪의 전경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사진=위키미디어백과


포스트 람사르, 언론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번 람사르 총회에서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를 한국에 유치하기로 사실상 확정하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포스트 람사르의 사실상 교두보가 마련된 셈입니다. 이제 이러한 작은 성과들이 정치 광대들의 쇼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환경단체들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이번 람사르 총회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준 경남도민일보와 같은 언론사의 감시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수년 전부터 습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국의 습지를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현재 경남도민일보 언론노조 지부장으로 있는 김훤주 기자입니다. 그는 수년 동안 습지를 훑고 취재하고 공부한 결과를 한권의 책으로 냈습니다. 바로 『습지와 인간』입니다. 그가 땀으로 쓴 이 책에는 습지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 온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람사르 총회가 폐막식을 하던 날, ‘건강한 습지와 건강한 인간’의 교섭에 관심이 많은 부산과 경남의 몇몇 블로거들이『습지와 인간』의 저자와 함께 대한민국 최대의 내륙 습지 소벌(우포늪)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커서님의 차를 타고 아침공기를 가르며 소벌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은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처럼 맑고 뿌듯했습니다. 저자는 제일 먼저 우포늪 보호구역이 시작되는 창산다리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국민협조사항을 자세히 읽어보니 우포늪, 목포늪, 사지포늪은 모두 한자이름을 하사 받았는데 유일하게
            
쪽지벌만 이름을 받지 못했다. 희한한 일이다. 창산다리의 위쪽은 우포늪 생태보호구역이 아니다.
                              
창산다리 밑 습지를 관찰하고 있는 김훤주 기자와 커서, 실비단안개님. 
                               한쪽에선 강태공이 여유롭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습지와 인간』의 저자와 함께 둘러본 동양 최고의 습지, 소벌


토평천을 가로지르는 창산다리의 아래쪽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다릿발 위쪽은 보호구역 밖이므로 아무런 제재도 없다고 했습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 다릿발 바로 위 습지에는 승합차를 세워놓고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모습이었지만, 행정편의주의의 극단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유쾌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릿발 아래로 펼쳐진 토평천이 만든 습지의 장관은 탄성과 함께 금새 우리의 마음을 돌려놓았습니다. 

가을에 물든 소벌은 두어 달 전에 와봤던 소벌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올해 본 소벌은 내년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매년 매 계절 소벌의 모습은 바뀌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물든 소벌의 가을은 마치 스펀지처럼 제 마음에 찌든 도시의 소음과 매연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자도 책에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이곳에 두 시간만 가만히 앉아있으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토평천 습지 갈대밭 사이를 걷는 실비단안개님


누렇게 물든 갈대와 노릇노릇하기도 하기도 하고 불굿불긋하기도 한 습지의 생물들이 만들어내는 장관에 우리는 흠뻑 빠졌습니다. 그때 여러 명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로 구성된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분들은 승합차를 타고 오셨는데 전망대를 찾아간다고 했습니다. 전망대는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친절한 성품의 저자가 세세하게 길을 이러주었지만, 그들은 질러서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사실에 짜증만 내고 있었습니다.

습지는 아는 만큼만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바로 앞에 펼쳐진 천상과도 같은 그림이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천상의 그림 속에서 왜가리며 쇠오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들은 어떡해서든지 공신력 있는 관청이 만들어놓은 전망대에 가서 우포늪의 장관을 보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짜증을 내며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웃음이 나왔지만 속으로만 흘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분들은 고맙다는 말도 잊은 채 먼지를 일으키며 떠났지만, 무사히 전망대를 찾아 ‘공식적인’ 장관을 감상하며 즐거워했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탐방관이나 전망대를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듯 자기들이 아는 우포늪을 열심히 홍보하는 정치관료들이 고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벌은 이렇게 평화로운 자태를 유지하며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매번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닌가하고 말입니다.

소벌 너머 보이는 화왕산 정상 오목하게 패인 넓은 평원에도 산지늪지가 있다. 촬영장소는 나무갯벌(목포)


소벌은 너무나 넓었습니다. 하루에 다 둘러보기에는 무리였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근처에 1박 하면서 차분히 둘러보아야 소벌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이곳에서 묵을 수 있다면 깜깜한 소벌의 물위에 떠오른 달과 별을 볼 수 있는 행운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새벽을 타고 들어오는 아침햇살이 채 반짝이기 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없는 행복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1970년대에 습지를 메워 농토를 개간한 기념비를 둘러보았습니다. 1986년에 세워진 이 향군건설기념비에는 거대한 습지를 둑을 쌓고 메워 땅으로 만든 역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재향군인회였던 모양입니다. 당시는 박정희 유신정권이 있었던 시대이므로 매우 힘 있는 조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일대는 원래 ‘사물포’라는 습지였는데 1963년에 시작해서 1971년에 공사가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사물포 아래 ‘세거리벌’이라는 습지를 추가로 메우는 공사가 1979년에 완성됨으로써 이 일대 거대한 습지는 마침내 육지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모퉁이를 한 번 돌아가자 바로 창녕 읍내가 나왔으니 오래 전에는 이 일대의 습지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으리라는 짐작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경남도는 논이 된 과거의 습지를 다시 되살려 천변저류지를 조성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습니다.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정일 처 성혜림 생가. 사진출처=까페 '들꽃풍경' http://cafe.daum.net/iyippo


소벌 입구에 우뚝 솟은 거대한 김정일 처의 생가 

고속도로를 찾아 나오는 길에 소벌을 들어서던 입구에서 언뜻 보았던 거대한 고가를 다시 만났습니다. 저자는 저곳이 창녕 성씨의 고택으로 성혜림의 조상들이 살던 집이라고 했습니다. 성혜림도 저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했습니다. 99칸짜리 대궐 같은 집이라고 했는데, 일견해 보기에도 대원군이 살던 운현궁보다 훨씬 거대해 보였습니다.

가만, 성혜림?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바로 김정일 조선로동당 총비서의 아내이며 가끔 TV에 나타나 기행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김정남의 어머니였습니다. 1억 5천만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창녕에 또 다른 현대사의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창녕, 정말 신비로운 곳입니다. 우리는 우스갯말로 그런 소리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일성이 일가도 부르주아였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지였던 경남도민일보 앞으로 돌아온 우리는 금새 헤어지지 못하고 인근의 감자탕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모두들 멀리 가야 한다는 핑계로 술을 기피하는 통에 저 혼자 내어온 술을 다 마셨습니다. 그리고 채 식지 않은 감동에 겨워 일행들에게 쑥스러움도 잊어버리고 말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가 채 두 달밖에 안 된 올챙이라 포스팅 주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 해결이 됐네요. 앞으로 습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써 볼 생각이에요. 김훤주 기자가 쓴 『습지와 인간』을 따라 답사하듯 하면 그리 힘든 일도 아닐 거여요. 환경운동이 뭐 별건가요?”

그런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고민입니다. 저 혼자 만족하자고 취재하고 포스팅하는 게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터인데, 그런 재주가 제겐 턱없이 부족합니다. 은밀하고 신비로운 자태를 내어준 습지에게도 체면이 아닙니다. 그래도 앞으로 시간 내어 해보렵니다. 누라 뭐라고 하든지 보람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아직은 식지 않은 감동이 제 마음 속에서 속삭이는 한 말입니다.  

2008. 11. 5.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파비 정부권
환경운동연합은 1993년 4월 결성된 국내 최대의 민간 환경운동 조직입니다. 그동안 환경운동연합이 이루어낸 녹색 성과들은 이루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더불어 환경운동연합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사회적 발언권도 세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 가운데 하나가 된 것입니다. 

환경운동연합과 세계 NGO들이 연안매립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경남도민일보


그러나 그런 환경운동연합에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 시련은 외부로부터 불어온 바람 탓이 아니라 내부에서 곪아터진 종기 탓이었습니다. 이 종기는 곪을 대로 곪아 이제 수술을 하더라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깊게 썩어 있었습니다. 그 종기는 다름 아닌 공금 횡령이란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항상 위기는 내부로부터 온다

금년 2월 3일, 진보정당을 자처하던 민주노동당이 깨졌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도 바로 ‘돈’ 문제였습니다. 민주노동당 역시 ‘가난과 역경’을 딛고 주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지만, 그와 함께 내부에 독버섯이 자랄 토양도 함께 자랐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초부터 경남을 비롯한 광주, 울산 등지에서 회계부정과 수억대의 공금 횡령에 대한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평당원들이 제기하는 이러한 의혹들은 지도부에 의해 묵살되었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을 분열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수구보수 세력에 협조하는 세력으로 매도했습니다. 검찰에 수사의뢰하자는 주장을 ‘적들’에게 동지를 팔아넘기는 행위로 몰아붙였습니다. 검찰과 경찰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온 오랜 역사가 있긴 하지만, 공당의 책임있는 분들이 아무 때나 ‘적’이란 표현을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하여 저는 아직도 의구심을 떨치지 못합니다. 

결국 서민의 희망이었던 민주노동당은 깨졌습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공작원과 내통하고 간첩죄 혐의로 구속된 당 사무부총장과 중앙위원의 처리에 대한 대립이었습니다만, 이와 함께 회계부정 문제도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민노당의 종북주의를 탓하지만, 사실은 종북주의가 가진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면이 더 문제였습니다. 동지라는 이유로 간첩행위도 옹호해야 하고 회계부정과 공금횡령 의혹에도 눈 감아야 하는 폐단이 더 문제였던 것입니다.

존폐의 기로에 선 환경연합

환경운동연합이 존폐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이시재 교수의 말씀처럼 “우리 사회는 환경연합이 무력화되길 바라는 개발연합이 있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바로 이들 개발세력이 사익 추구를 위해 저지르는 새만금 간척, 그린벨트 해제, 수도권규제 완화,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총결산인 한반도 대운하를 저지하기 위해 최일선에서 싸워왔습니다. 따라서 환경운동연합의 좌초는 최근 이들 개발연합과 더불어 확장되는 우파세력에겐 쾌재를 부를 일이겠지만, 대한민국엔 크나큰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에도 인생을 걸어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수많은 일선 활동가들에겐 청천벽력이었을 것입니다. 람사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창원에 내려와 있던 한 여성 활동가는 사건의 소식을 접하고 이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실로 “가슴에서 뜨거운 슬픔이 강물처럼 줄줄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이에 가톨릭대 이시재 교수는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호소합니다. 위기에 빠진 환경연합을 구하여 주십시오. 환경연합은 우리 사회의 정말 귀중한 공공재산입니다.”    ▷
http://kfem.or.kr/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

맞습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공익을 추구하며, 현세의 행복만 추구하지 않고 미래세대의 행복을 걱정하는” 헌신적인 활동가들로 조직된  공공의 자산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나서서 우리의 자산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환경운동연합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철저한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 앞에 내어놓는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재앙을 막는 길은 투명한 조직과 회계 뿐

조직이 비대해지고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민주적인 조직운영과 투명한 회계는 필수적입니다. 특히 회계가 투명하지 않고서는 어떤 신뢰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앞서 민주노동당의 예에서도 보았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공인회계법인을 통해 장부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보적인 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이 교회의 회계수준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실정입니다. 

저는 환경연합 회원은 아니지만 환경연합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내부에 발생한 악성종양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수술을 단행하십시오. 설령 수술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 걱정되더라도 단호한 태도를 보이십시오. 검찰과는 별도로 대대적인 내부조사에도 착수하십시오. 그리고 민주적인 조직운영과 투명한 회계에 대한 비전을 국민 앞에 제시하십시오. 

그리하면 환경연합의 눈물을 국민들이 거두어주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환경연합의 좌초로 대한민국이 재앙에 빠지는 걸 바라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8. 11. 4.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파비 정부권
마산 돝섬 해상유원지에서는 지금 가고파 국화축제가 한창이다. 별다른 문화제가 없는 마산 시민들에겐 특별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나는 25년 전 어릴 때 딱 한 번 가본 것을 제외하고 한 번도 돛섬에 가본 적이 없다. 그때는 주로 동물원을 구경했는데 지독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마산 국화축제를 보러 아이들 학원도 빼먹게 하다

그래서 그런지 돝섬에 대한 좋은 추억이 별로 없었던 나는 최근 매년 열리는 국화 행사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올해는 갓 초등학생이 된 딸아이도 있고, 아들 녀석도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니 이때가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 싶어 일부러 시간을 내기로 했다. 매년 들어왔던 국화축제란 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국화에 대한 좋은 교육의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가야하는 주산학원과 피아노학원을 빼먹고 돛섬에 놀러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뻐했다. 우리는 책가방을 부두 매표소에 맡겨놓고 거대한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친절한 매표원들은 축제장에선 거추장스러울 뿐인 짐을 선선히 맡아주었다. 정말 시원했다. 부두 아래에선 시커먼 바닷물이 마음을 답답하게 했지만,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서자 상쾌한 바람이 가슴을 적셔주었다. 

국화 축제장이 아니라 바다 한복판 먹거리 장터였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배는 돝섬에 닿았다. 평일인데도 섬은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섬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줄지어 늘어선 먹거리 장터였다. 소위 먹자판이다. 우리나라 축제는 어딜 가나 먹는 게 빠지면 안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옛말도 그래서 나왔을까?

배에서 내리자마자 늘어선 음식점들의 호객행위와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붐비는 사람들을 향해 스님 복색을 한 사람들이 길을 막고 달마도를 팔고 있었다. 진짜 스님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속절없이 길거리에서 팔려나가는 달마대사가 애처로운 생각이 들었다. 저러자고 대사께서 동쪽으로 오신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온통 장사치들이었다. 거기에 스님(?)들도 한자리 했다. 축제장에 왠 무조건 천원짜리 만물상회까지?

장터를 지나자 놀이기구가 보였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우선 놀이기구부터 타기로 했다. 무섭다고 고개를 젓는 바이킹을 제외한 나머지를 한 바퀴 돌고나서 곧장 국화 전시장으로 향했다. 산비탈 길을 타고 조금 오르니 국화로 만든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멋있다고는 생각되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다양한 국화를 심어놓고 거기에다 일일이 이름과 설명을 붙여놓았을 것이란 교육효과에 대한 기대는 완전 빗나갔다.

국화는 없고 국화벽돌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만 있었다

아이들은 아예 국화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가 멋있지 않느냐고 말하자 그저 무덤덤하게 그렇다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섬 꼭대기에 마련된 공중 자전거 놀이기구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국화는 없었다. 국화로 치장한 여러 가지 모양의 조형물들만이 육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빨간색은 국화가 아니라 사루비아인 듯싶다. 우리집 담벼락 밑 화단에 심은 사루비아와 모양이 같았다. 
                                              레일 자전거 뒤로 멀리 마창대교가 보인다.  

대충 구경을 끝내고 다시 내려와 해변을 따라 바닷가 길을 걸었다. 거대한 국화 조형물과 놀이기구와 장사치들과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없는 축제장보다 이게 나을 성 싶었다. 그러나 여기도 상식을 초월하긴 마찬가지였다. 초파일 연등행사에 쓰일 법한 등으로 만든 터널이 해변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거기엔 누구누구 이름과 ‘사업이 번창하길 빕니다.’ 따위의 소원문구들이 적혀있었다. 

화려한 등불로 치장된 썰렁한 돝섬 바닷가

한쪽에선 나이 지긋하신 노인네들이 소주병을 하나씩 들고 지화자를 부르고 계셨다. 차라리 그 모습이 정답게 보였다. 이 화려하게 촌스러운 색깔로 치장한 썰렁한 바닷가와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걷다보니 다리가 아팠다. 그러나 쉴만한 의자 하나 변변하게 없었다. 

             이곳 출렁다리에서 놀 때가 제일 즐거웠다. 밤이 되어 연등에 불이 들어오면 꽤 그럴 듯하게 멋있을 것 같다. 
             그래도 국화축제에 국화는 없다. 국화는 그저 악세사리일 뿐...

목이 마르다고 투정하는 아이들을 위해 음료수를 샀다. 이온음료 한 병에 2천원이다. 더 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바베큐가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밖에 나가서 더 싸고 맛있는 간장치킨 사주겠다는 말로 달래 배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다. 거대한 크루즈선 뒤편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가포 연안 매립현장이 보인다. 아이 엄마와 연애하던 시절, 저곳에서 함께 배를 타고 노를 저었었다.

돝섬에서 바라본 연안 매립의 현장

한때는 해수욕장이었던 가포만 매립현장을 한 번 더 돌아가면 거기엔 수정만 매립현장이 있다. 최근 STX 조선소 유치 문제로 마산시와 주민들 간에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마산은 매립의 도시다. 이곳 돝섬의 자그마한 동산에서 바라보니 매립지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바다를 품은 달을 노래하던 월영대는 매립지에 들어선 콘크리트 건축물 더미에 밀려 보이지도 않는다.

람사르에 참석한 국제환경기구의 지도자들도 이 모습을 보았을까? 마침 람사르 총회가 창원에서 열리고 있으니 그분들을 여기에 초대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미 바다를 매립해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신포매립지(위),  가포만 매립공사 현장(아래)    

돌아가는 배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서있는데 뒤에서 어떤 중년 남녀의 대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여자가 별로 재미가 없었던 모양인지 남자가 밤이 되면 불꽃놀이도 한다고 어르자,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그라모 여는 밤에 와야 되겄네.”

“음, 맞다. 여는 원래 저녁 늦가 와야 되는기라. 한 잔 걸치러 저녁에 오는 게 맞제.”

대한민국의 축제 문화에 대한 오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래, 이곳은 우리가 올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무슨 국화 타령을 하고 문화를 논하는 자체가 난센스였던 것이다. 국화는 그저 구실이었을 뿐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이 한적한 섬 하나를 내어 먹고 놀 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굳이 비싼 바가지 물가를 감내해가며 편히 쉴 의자 하나 없는 척박한 섬을 꼭 가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도 깨달음이 부족하다.

이렇든 저렇든 대형 크루즈선은 사람들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마산시가 장사 하나는 기차게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돌아오는 배를 따라 날아드는 갈매기들이 최고 수지를 보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맞다. 가장 행복한 것은 배가 불러터진 갈매기들이었다.

2008. 10. 30.  파비
습지와 인간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08년)
상세보기
Posted by 파비 정부권

이번 한가위에도 마산에서는 몇 해 전부터 계속 이어오고 있는 만날제 축제가 만날고개에서 열렸습니다. 그나마 추석 명절에 이런 행사라도 하나 있다는 건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는 마산 시민들에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첫날 행사에는 가보지 못했고 다음날 가보았습니다. 첫날은 시장님과 여러 고위층 분들이 인사를 하시고 불꽃놀이로 한껏 흥을 돋우었던 모양입니다. 글쎄 저도 오래전부터 특별히 존경해 마지 않는, 지금은 교단에서 은퇴하신 김용택 선생님 말씀처럼 꼭 그런 식으로 지방 수령방백들이 티를 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불만스럽기도 합니다.
(그 선생님께선 자신의 블로그<http://blog.empas.com/kyongt/30542534 만날제에서 만난 문화 불모지 마산>에서  이날 행사 사회자가 마치 황철곤 마산시장 비행기 태우기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하는 양 용비어천가를 불러댔다고 어처구니 없어 하셨습니다.)

행사를 지원하는 데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되 앞에 나서지 아니하고 조용히 바라보며 시민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역문화행사가 될 수 있도록 그림자처럼 도와주는 그런 시장, 국회의원, 지방의원들은 왜 그리 귀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밝은 해가 뜨면 그림자도 자연스럽게 비치게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이튿날에는 시장이나 국회의원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산시자원봉사센터나 바르게살기운동본부 같은 관변단체 회원들이 대거 나와 유니폼을 입고 목 좋은 곳에 식당을 차려놓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분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려니 했지만, 알고 보니 장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수익을 만들어 좋은 곳에 쓰자는 의도라고 충분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구경나온 시민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걸로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저렴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막상 불평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마산시 자원봉사 유니폼을 입고 음식을 나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을 향해 무어라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어려웠던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 자원봉사팀을 통솔하고 있는 분은 시청 공무원인 듯했습니다.
(ps; 나중에 확인해 보니 모 계장님이라 하더군요.)   

또 가장 자리 좋은 곳에 시민들이 각종 놀이나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을 마련해놓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보다 먼저 시가 앞장서서 목을 차지하고 식당을 차려 음식과 술을 팔겠다는 발상과 처사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에서, 더구나 전국 7대도시의 영광을 꿈꾸는 우리 마산에서, 못 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널찍하게 자리를 차지한 관영(?) 식당가 옆에 그럴듯한 화장실이 하나 들어선 것은 매우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소 이곳을 들를 적마다 냄새나는 이동식 통시가 불만이었는데 마침 이 기회에 깨끗하게 만들어놓았으니 이것만은 치하해 줄만 하고 또 치하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역시 화장실까지 잘 만들어 놓은 이 널찍한 요지에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지 아니하고 관영 주막을 열었다는 것은 여간 불만이 아닙니다. 


만날제 행사장은 입구부터 술장사, 각종 만물장사, 심지어 도박판까지 난장판이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벌써 아이스크림이며 핫도그며 그밖에 이름도 모르는 요상한 음식들로 배를 채웠습니다. 이런 데까지 와서 안 사주겠다고 버티기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난리 북새통의 먹자골목을 지나고, 예의 관영 주막을 거치면, 곧이어 비탈진 언덕길에 시민 체험마당이 나타납니다. 국화차 만들기, 전통가면 만들기, 바람개비 만들기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한 사람당 5천 원 이상의 돈을 지불하면 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한참을 서서 지켜보았지만 체험을 해보겠다고 나서는 시민은 한 분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리 가족 역시 아무 체험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만날제가 먹거리 장터쯤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준 것은 마산오광대와 널뛰기 패들, 그리고 국악공연팀의 눈물 나는 노력 덕택입니다. 그들의 공연을 볼 수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먹거리 장터에 가서 돈만 실컷 쓰고 와서는 괜히 힘들게 고개를 탔다는 푸념만 늘어놓았을 겁니다.

마산오광대는 1930년대 용마산 입구에서 마지
막 놀음을 한 이후 실전되었던 것을 <선유풍물연구소>를 중심으로 2년여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이날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 복원이 덜 되었고 완성도도 미흡하다고는 하지만 지역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은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아리랑 고개란 제목으로 안무와 춤을 선보인 김옥희란 분의 춤사위는 거의 환상적이었습니다. 춤사위에 들어가기 전에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로 풀어낸 연기도 정말 돋보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산의 문화예술혼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그 성과들이 드러나고 있는 곳도 많이 있고,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아름다운 장면들도 여러 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315아트센터 노천공연장에서 <마산청소년발레단>이 공연을 열어 많은 시민들의 박수를 받은 바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문화예술의 불모지 마산에 그나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산시가 하는 일은 힘들게 벌려놓은 축제의 공간을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시민 한마당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하고 기껏 먹거리 장터로 전락시키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 주막까지 만들고 말입니다. 

얼마 전에 합포도서관에 갔었습니다. 저는 합포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편인데, 특히 1층에 마련된 전시장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곳은 서예며, 분재며, 그림이며, 수석이며, 사진이며, 그리고 어린 학생들의 동시그림 전시회까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던 장소입니다. 그래
서 우리 아이들도 자주 이곳에 데리고 가 부족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전시장이 사라졌습니다. 한동안 새로운 전시회가 없나 하고 기웃거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더니 결국 문화전시장이 사라지고 이 자리는 마산시 보건소 직원 사무실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넘어 터지는 분통을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도서관 직원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보았지만 그들은 상부에서 하는 일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다간 아예 도서관마저 없어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신마산에 있던 구 창원군청사도 경남대학교에 팔어넘긴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엊그제 만날제 행사장에서 마산시가 벌이는 행태를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듭니다. 경상남도가 람사르 총회를 유치해 우포늪(진짜 이름은 '소벌')과 주남저수지를 보존한다고 선전하면서 반대로 그 옆으로 지나가는 낙동강을 파헤쳐 운하를 만들겠다는 것이나, 마산시가 로봇랜드를 만들어 관광도시를 만들겠다면서도 그 옆에다가는 조선소를 유치해 기름 냄새와 망치소리로 마산만을 뒤덮겠다고 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들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하는 일들이 너무나 이율배반적이고 모순투성이라 도대체 정신들이 어떻게 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이처럼 지금껏 보여준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돌이켜보면 시민문화행사를 기획해놓고 그 중심부를 장터주막쯤으로 만드는 것이 그리 이해 못할 일만도 아닙니다. 


2008. 9. 20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