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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16 한국에서 제일 높은 고개 두문동재를 넘어 by 파비 정부권 (3)
  2. 2009.04.09 개도 만원 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하던 시절? by 파비 정부권 (2)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한국에서 제일 높은 고개 
   두문동재 너머 너덜샘에서 고사를 지내고

낙동강 발원지는 어디인가? 옛 문헌들에 의하면 낙동강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산 황지다. 1486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삼척도호부」편에
황지는 도호부의 서쪽 1 10리에 있으며 물길이 남쪽으로 30리를 흘러 작은 산을 뚫고 나가니 천천(穿川)이라 하는데 곧 경상도 낙동강의 원류라고 했다

또 조선의 모든 지리서들도 낙동강 발원지는 황지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1978년 김우관 교수는 25만분의 1 지형도상에서 태백산 일원에 있는 1634곳의 시원지를 일일이 자로 재어 조사한 결과 천의봉 너덜샘이 최장 발원지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 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실측에 참여한 학계는 물론이고 국토지리원에서도 낙동강 최장발원지가 천의봉 너덜샘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태백시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여전히 황지를 발원지로 고집한다.

 

너덜샘이 황지보다 10여 킬로 상류에 있으므로 최장발원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을 듯 보이지만, 실상 태백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듯싶기도 하다. 우선 황지는 태백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데다 커다란 연못을 이루고 있는 황지와 자그마한 옹달샘에 불과한 너덜샘을 비교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못내 아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 지금은 관광객만이…

막장에서 석탄을 실어오던 '까시랑차'로 기억나는 탄차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어디인가?
추전역을 떠난 우리는 두문동재를 넘어 너덜샘으로 향했다
. 너덜샘은 추전역에서 두문동재 너머 조금 아래쪽에 있다. 두문동재. 해발 1268m. 해발 855m의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역이요, 두문동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다. 두문동?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대체 고려의 충신들이 숨어 살았던 두문동과는 무슨 관계일까?

 

사마천의 『사기열전』「백이숙제」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영주의 후예로서 상나라 서쪽 서백의 아들 희발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 무왕이 되자 고죽국 영주로서 받는 녹을 받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숨어들어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 뒤에 왕미자라는 사람이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캐먹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고 책망하자 이들은 마침내 고사리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고려가 조선에 멸망하자 고려의 선비들도 백이숙제의 전철을 따라 충절을 지키고자 했다. 송의 주자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고려의 선비들에게 수양산의 고사는 지침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현재의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두문동에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조복을 벗어 던지고 들어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왕조는 군사를 풀어 두문동을 포위하고 이들을 모두 불살라 죽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세인들은 이들 72인의 충신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 부르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로 이들의 충절을 기렸다. 함께 어느 일행의 설명에 의하면 두문동 충신들 중에 7명이 살아남아 이곳 두문동재 아래 정선 땅에 피난 살았다는데 자연부락의 이름이 두문동이라 한다. 듣고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없다.


수양산이
두문불출의 고사가 요즘의 시선으로 보자면 한없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두문동은 이름만으로도 커다란 표석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3월의 마지막 주말이었지만 두문동재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은 사람들을 동심으로 끌고 가는 마력이 있는 것일까?
 


 

          
장난끼가
발동한 사람들은 눈을 뭉쳐 서로 던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위에 벌렁 누워 봄볕이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럴 보면 어른 아이가 따로 없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너덜샘으로 향했다너덜샘은 황량했다. 김우관 교수와 이후에 분이 세워두었다는 낙동강 최장발원지 푯말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치워버린 것일까?

 

다만 너덜샘이란 돌로 만든 비석과 샘터만이 이곳이 너덜샘임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사를 지냈다. 전주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부어놓고 신정일 선생은 축원문을 읊었다. 낙동강 천삼백 도보기행을 무사히 마칠 있게 해달라는 축원이었다. 고사를 지낸 우리는 음복으로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전주막걸리가 맛있다. 전주비빔밥, 한정식, 전주는 맛의 고장이다. 그러고 보니 막걸리 맛도 기가 막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계곡을 따라 10 킬로 아래에 있는 황지를 향해 출발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 출발점은 황지가 것이다. 신정일 선생은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낙동강 발원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낙동강 최장발원지는 너덜샘입니다. 국립국토지리원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나온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어요. 그러나 어쨌든 황지가 발원지라고 하는 주장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최장발원지는 너덜샘이고 역사적 발원지는 황지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말하자면, 학계와 지역주민 의견의 절충인 셈이다. 봄볕에 새하얀 눈을 본 즐거움에 장난스러워진 내가 일부러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했다. “저, 공지사항 있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왔는데요. 무려 10여 년만에 흰 눈을 처음 구경했네요. 그것도 봄에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눈값 내놓으라고 난리다. 눈값이라니…. 눈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자유재 아니었던가? 

하긴 이렇게 경비를 들여 태백산 꼭대기에 오지 않고서는 쉬 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눈이고 보면 돈을 내야만 누릴 수 있는 경제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수도물을 믿지 못해 사람들이 마트에서 돈을 주고 생수를 사먹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쨌든 이날 이후로 눈값을 언제 내겠느냐는 시비(?)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황지연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발걸음은 왁자한 웃음소리와 더불어 경쾌하다. 봄의 전령사들이 밝게 빛나는 태양아래 삐쭉거리며 고개를 내미는 것이 차창밖으로 언뜻언뜻 보인다. 차창으로 달려드는 따스한 햇볕에 사람들의 얼굴색도 밝아지고, 푸근해진 마음은 초면의 어색함도 녹여내는 듯하다. 정말 화창한 날씨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차길, 추전역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해발 855m라는 높이는 내가 살고 있는 마산의 진산 무학산 정상보다도 100m가 높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기차가 올라왔을까, 기술의 진보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까마득한 옛날에 말이다.

아마도 태백산 일대에 석탄이며 아연이며 중석이 발견되지 않았던들 이곳은 아직도 태고의 원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전역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는 오래된 석탄도시의 흔적이 봄기운에 녹아 내리는 눈과 함께 질척거린다. 검은 도시의 영광을 아쉬워 하듯….

 

추전역에 올라서니 바로 코 앞에 거대한 풍차를 머리에 매단 매봉산이 바라다보인다. 대관령을 넘으면서도 저런 풍경을 보았었다. 거대한 풍차의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과 동해바다가 이국적이었다. 석탄도시의 상징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풍차의 날개짓…. 추전역은 한산했다. 한쪽 귀퉁이에선 과거에는 석탄을 가득 싣고 분주하게 뛰어다녔을 검은 화물열차가 오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 코에 기다랗게 고드름을 매단 삐에로 복장을 한 인형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풍력발전용 풍차들

한 세월 전국의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며 땀을 흘렸던 이 역사는 이제 검은 무연탄 대신 카메라를 들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치장한 관광객들을 맞는다. 석탄을 가득 싣고 길 떠날 준비에 바삐 움직이던 기관차와 화물열차 대신 선로에는 관광객들의 셔터소리만이 가득하다.

 

한때 태백시는 인구가 20만에 육박하는 고원도시였다. 원래는 삼척군 상장면(또는 1920년대 이전엔 상장성면이라고도 불리었음)으로 화전지대였던 이 곳은 1920년대에 탄층이 발견되면서 탄전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61년 삼척군 장성읍으로 승격했고 1973년에는 장성읍 황지리가 삼척군 황지읍으로 분리되었다가 1981년 다시 장성과 황지를 합하여 태백시가 되었다.

 

태백시는 우리나라 최대의 탄광도시였다. 사람들은 그때의 영광을 말할 때 지나다니던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로 대신한다. 물론 이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다. 사람에게도 귀한 만 원짜리를 어찌 개가 물고 다닐 수야 있겠는가그러나 이런 우스갯소리는 당시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는 듯한 말이어서 한편 못내 서러운 마음을 배척할 수가 없다

내 어린시절 고향도 탄전지대였다. 태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태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경이란 또 하나의 탄전지대가 있었다
그런데 내 어릴 적 추억이 묻은 이곳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로 예의 개도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랬던가. 그러나 사정은 달랐다. 광산주에게는 맞는 말일지언정 막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광부들은 땅속에서 일을 했다. 그들은 밀폐된 어두운 곳에서 희미한 카바이드 불빛에 의지한 채 죽음을 친구로 삼아 검은 흙에 삽질을 한다. 발파 후에 채탄작업, 그리고 다시 동발을 세우고 한발 한발 막장이 깊어질수록 채탄장에 쌓이는 석탄의 높이만큼 사끼야마(선산부)들의 폐는 검은 먼지에 색이 변한다. 그렇게 변색되는 폐가 그들의 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을까.

 

얼마나 많은 광부들이 진폐로 생과 이별했던가. 그들은 폐에 묻은 검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돼지비계와 소주가 필요했다. 갱도 주변에는 수많은 술집과 작부들이 그들의 진폐를 달래기 위해 들어섰고 광산도시는 밤이나 낮이나 흥청거렸다. 글쎄, 어쩌면 그 시절 술 취한 어느 광부의 만 원짜리를 개란 놈이 훔쳐 물고 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를 박박 밀고 시커먼 교복과 교모를 눌러쓴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나 대견스러워 우쭐거리던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느 날 하교 길에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 녀석은 검은 탄가루를 날리며 달리는 재무시(GMC트럭) 조수석에 매달려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잽싸게 얼굴을 돌렸다. 나 역시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냥 얼른 눈길을 피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기재된 아동근로 금지의 원칙 같은 것은 그야말로 법전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더 슬픈 기억은… 국민학교 때였다. 양정모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고 흑백 텔레비전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바로 그날이었다. 옆집 형이 복날 개 맞듯이 맞았던 것은….

추전역. 무연탄 적재용 화물열차가 보이고 그 옆에 싣다 만 석탄이 쌓여있다.

옆집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였다. 그는 광산에서 후끼야마(후산부)로 일했는데 그날 낮에 친구들과 막걸리를 많이 마셨던가 보았다. 그는 미성년자였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팬티만 입힌 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장작으로 빠따를 때렸는데 그 형의 엉덩이와 허벅지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그리고 그 몸으로 병반(3교대 중 밤에 일하는 조)을 들어갔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굴이 무너진 것이다.

 

모두 옛날 이야기다. 새끼줄에 연탄을 매달고 퇴근길을 재촉하던 시절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탄광도시의 영광도 옛날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광부들의 애환도 작부의 구성진 노래도 모두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과거의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해발 855m에 외롭게 서있는 추전역사는 관광객들을 맞아 헤픈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 추전역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 친구와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을 옆집 형을 생각했다. 그 모습을 매봉산 정상의 풍차들이 빙글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추전역을 떠나 두문동재를 향해 버스를 달렸다. 추전역 바로 위에 있는 두문동재는 해발 1268m의 고개다. 두문동이라.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멸망한 고려의 충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고개 너머에는 낙동강 발원지 너덜샘이 기다리고 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