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만'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9.12.24 선덕여왕을 잃어버린 『선덕여왕』 by 파비 정부권 (25)
  2. 2009.12.23 ‘선덕여왕’, 왕위후계자 춘추가 사라진 이유 by 파비 정부권 (54)
  3. 2009.11.22 선덕여왕, 비담에게 남긴 미실의 유산 by 파비 정부권 (3)
  4. 2009.10.28 '선덕여왕' 미실에게서 '킬빌'의 오렌을 보다 by 파비 정부권 (18)
  5. 2009.08.28 선덕여왕은 박근혜가 아니라 심상정이다 by 파비 정부권 (13)
  6. 2009.08.26 '선덕여왕' 옥에 티, 황제가 짐이 아니고 과인? by 파비 정부권 (8)
  7. 2009.08.05 선덕여왕, 비담의 반란 벌써 시작됐다? by 파비 정부권 (29)
  8. 2009.07.29 선덕여왕, 쌍생의 저주는 언제 어떻게 풀릴까? by 파비 정부권 (4)
  9. 2009.07.23 선덕여왕, 미실은 몇 번 결혼 했을까? by 파비 정부권 (9)
  10. 2009.07.21 선덕여왕의 ‘도원결의’,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선덕여왕이지!”라고 말해야 옳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럼 대체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이야?” 하고 다시 물어본다면, 아마도 비록 내키진 않을지라도 “미실!”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미실과 비담 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실이 그렇다. 사실 나는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의 팬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패션70s』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는 참 매력적이었다. 시골소녀의 풋풋함과 당찬 도시여성으로 성장해가는 전사 같은 모습이 어우러진 이요원을 『화려한 휴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매력은 여전했다. 물론 선덕여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상경한 시골처녀의 당돌함이 있었고, 그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어린 덕만 남지현에 이어 등장한 이요원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70s』에서의 이요원도 서울에서 멀리 남도 끝자락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 유배도 덕만처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사막 타클라마칸에서 자란 덕만처럼 『패션70s』의 이요원도 활기찬 사내아이 같았다.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힘, 나는 그것이 덕만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덕만이 처음 서라벌에 들어와 미실과 마주했을 때 거둔 덕만의 승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힘. 아마도 오래 전 기억이지만-벌써 7개월이란 세월이 흘렀으니-‘하룻강아지’ 덕만과 여우같은 천명의 합작이 미실에게 거둔 첫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포스팅한바가 있다.


나는 그래서 덕만이 머나먼 이국 사막에 버려진 것이-나중에 그것은 덕만의 유모 소화가 문노를 피해 덕만을 데리고 도망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어쩌면 예언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라벌에 있었다면 천명처럼 덕만도 미실을 무서워하며 오금을 펴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런 설정은 여러 고전에서도 발견되는데, 반대의 경우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그렇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예언자의 불길한 예언에 따라 아들을 숲에 버린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파리스는 목동이 되고 유명한 ‘황금사과의 재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언의 이끌림에 따라 트로이로 돌아와 왕자의 지위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10만 대군과 맹장 아킬레우스를 끌고 돌아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정은 자주 보는 것이지만, 늘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덕만도 국조의 예언에 따라 버려졌다. 어출쌍생 성골남진. 결국 이 예언은 이루어진 셈이다. 덕만과 승만을 끝으로 성골은 멸절했으니까.―대체 성골과 진골이 뭐냐는 따짐은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성골남진이 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이유라는 사기의 기록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예언은 이보다 먼저 진흥왕이 문노에게 남긴 예언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물리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보조적인 예언에 불과했다. 덕만을 멀리 사막으로 보내 미실을 물리칠 힘을 키워오도록 해야 하는데 별다른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불길한 예언’이다. 역사기록을 예언으로 바꾸는 기지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드라마의 제작 의도는 틀림없이 덕만이 미실이 대표하는 세력 즉, 구세력을 타파하고 신진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강해진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대업을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실을 악으로, 덕만을 선으로 규정해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초기의 시도는 매우 옳았고 성공했다. 그러나 갈수록 미실의 악역이 빛나는 게 문제였다.

매력적인 악의 화신 미실.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실에 대한 찬사에 제작진들도 넋을 잃은 것일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실은 원래 인정사정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부하도 가차 없이 목을 벤다. 실제로 덕만을 안고 도망치는 소화를 놓친 근위병사를 직접 칼을 들어 베지 않았던가. 게다가 동생 미생도 죽이려 했고, 심복 상천관은 끝내 죽였다.

정치적으로는 대귀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중소귀족들과 평민들의 세금을 낮추어주려는 덕만의 정책에 맞서 대토지소유귀족들의 권익을 옹호한다. 뿐 아니라 매점매석으로 자영농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고, 소작농에겐 고리대를 놓아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나누어가진다. 전형적인 독재자다. 독재자들이란 늘 그렇듯이 서민들을 핍박하고 대신 기득권 세력을 만들어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미실이 극 후반부로 갈수록 묘하게 뒤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그렇게 기획됐던 것인지, 고현정의 열연으로 미실의 인기가 높아진 탓에 변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볼 때 이것은 부조리였다. 미실을 이기고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기초를 닦을 덕만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매혹적인 독재자미실이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 미실은 반란까지 일으켰으나 많은 네티즌들은 미실의 반란이 실패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미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겠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미실이 죽고 난 뒤에는 비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이었던 고로 마치 비담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미실의 유지인 것처럼 비쳐졌다.

진흥왕이 자신을 척살하라고 설원공에게 내린 칙서가 비담의 손에 들어갔을 때, 미실은 “제 주인을 찾아갔구나!”라고 말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비담이 사량부령이 되어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나타나자 그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비담은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지막 12회 분량에서 보여준 제작진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선덕여왕』의 마지막은 비담과 선덕여왕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사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력-염종을 비롯한 전통 귀족세력-의 음모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 마지막 비담의 회상에서 미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푸른 꿈을 꾸는구나!”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한편 자신이 못다 이룬 대업을 아들이 이루길 바라면서 또 한편 그것이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모순이... 그러나 어찌 되었든 『선덕여왕』 후반부의 주인공도 선덕여왕이 아니라 비담이었다. 비담은 미실과 마찬가지로 악한 성정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미실이 그렇듯 비담도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못 먹게 만들었다고 칼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덕만을 위기에서 구한 첫 번째 공이었지만.

그런 비담도 미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순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악의 화신이 졸지에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애초에 비담이 덕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문노가 자신에게 넘겨주려 한 신라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모두들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어떻든 비담은 최후마저도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죽었다.

“덕만 앞 70보” “덕만 앞 30보” “덕만 앞 10보” 할 때는 마치 이연걸이 주연한 중국영화 『영웅』의 ‘십보필살검법’을 패러디한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덕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비담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웠다. 마지막회는 그야말로 어느 블로거의 표현처럼 비담의, 비담에 의한, 비담을 위한 드라마였다. 그럼 선덕여왕은 그동안 무얼 했을까?

글쎄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질질 짜다가 갑자기 냉철한 모습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가 하면 갑자기 사랑의 열병도 앓는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그 사랑이 진심인지도 의심하게 한다. 원래는 유신과의 애절한 사랑의 레퍼토리가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갑자기 유신에 대한 연모는 오간데 없고 비담이 덕만의 가슴에 들어앉았다.

미실을 물리치고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꿈을 이룰 덕만도 없었다. 원래 『선덕여왕』은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선덕여왕은 처음에는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블로거 송원섭의 스핑크스 글 제목처럼 ‘진짜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아마도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진짜 선덕여왕은 미실과 비담을 위한 내레이터 정도로 전락한 선덕여왕을 보면서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비담의 내레이터였다. 역시 다시 한 번 하는 말이지만,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미실과 비담도 원래의 모습에 충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사족을 다는 것이지만-『선덕여왕』은 매우 훌륭한 드라마였다. 이전에 이토록 훌륭한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광개토대왕을 다룬 『태왕사신기』가 있었지만 이만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토록 많은 블로거들이 많은 후기를 쏟아낸 드라마가, 또는 무엇이었든, 있었던가.


아무튼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이요원이 『선덕여왕』에서 내레이터처럼 만들어진 것은 매우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인 줄은 안다. 엿장수 마음이란 말도 있으니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이 8개월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화려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탄생한 덕만에 대한 기대를끝내 채워주지 못한 채, 선덕여왕은 연모와 왕좌 사이에서 갈등하다 운명을 마쳤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저는 앞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여전히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왕위에 등극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한 <선덕여왕>은 결국 용두사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초 의도했던 선덕여왕에 대한 재조명에도 실패했습니다. 지증왕이 추구하고 진흥왕이 마련했던 삼한통일의 대업을 이룰 개양자의 예언도 오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김유신도 마찬가집니다. 선덕여왕과 함께 삼한통일의 주역으로 그 역할에 기대를 모았던 유신은 문노가 죽기 전에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지목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내용도 활약도 없었습니다.


염종에 의해 또 다른 삼한지세의 주인으로 지목되었던 춘추도 그렇습니다. 염종은 문노와 달리 왕재로 덕만이 아닌 춘추를 지목하고 삼한지세도 그가 가져야한다고 믿었지만, 결과는 영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물론 이는 염종이 비담의 난의 주요인물이란 역사적 기록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떻든 왜 춘추가 아니고 비담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있어야 했습니다.


춘추는 미실에 의해 폐위된, 형식적으로는 진평왕에 의해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입니다. 물론, 천명공주의 아들이므로 진평왕의 외손자이기도 합니다만, 신라는 어디까지나 부계전승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춘추의 지위가 그리 탄탄한 것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진평왕과 선덕여왕에게 춘추는 정적의 자손일 뿐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춘추는 선덕여왕을 이을 후계잡니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할 때도 “우리에겐 두 개의 카드가 있다. 그게 미실보다 유리한 지점이다”라는 말로 춘추의 입지를 세워줍니다. ‘만약 내가 죽으면 네가 왕이 되면 된다’라는 논리죠. 비담의 난 때도 마찬가집니다. 선덕여왕은 서라벌을 떠나지 않고 반란에 맞설 것을 고집하며 춘추를 울산으로 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합니다. 사실상 춘추를 후계자로 지명한 셈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왕좌에 올랐지만 아무것도 한 일 없이, 굳이 한 일이 있다면 비담을 사량부령(정보부장감찰부장)에 앉혀 신료들을 사찰하고 통제하고 억압한 일 뿐인데, 느닷없이 선위를 결심하는 장면은 참으로 뜬금없었습니다. 아무튼 비담과 조용한 암자를 골라 여생을 마치기로 하고 선위하겠다고 측근들에게 밝혔을 때, 선위의 대상은 누구였을까요? 당연히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스토리로 보자면 춘추가 그 대상입니다. 


실제로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자 몽진을 권하는 신료들을 뿌리치고 대신 춘추를 울산으로 피신시켜 차기 대권에 대한 대비를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선덕여왕은 후계자로 틀림없이 춘추를 택한 것이며 모든 신료들도 그걸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도 급히 왕세자를 책봉해 왕과 세자가 따로 피난을 갔던 전례가 있습니다. 이 역시 왕위가 비게 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왕좌가 빈다는 것은 곧 나라의 멸망을 의미하니까요. 자,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춘추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춘추가, 왜 마지막회에서는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월천대사와 신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그 중에 대남보의 행방에 대해선 춘추가 밝혀주었지만, 이도 네티즌들이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반사 아니었을까—과 다르지 않은 이유 때문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닐 겁니다. 춘추는 사라진 다른 사람들과는 분명 격이 다른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마지막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윤서아빠세상보기님이 제기한 것처럼 단순히 제작진의 실수였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몇 차례 계속된 연장방영 결정은 작가나 제작진에게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일정에 쫓기다보니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많고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사람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를 인지한 제작진이 김춘추의 입을 통해 “대남보가 왜 갑자기 실종됐을까? 그거 내가 비밀리에 복수한 거야. 죽인 거라고” 미생에게 실토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지요. 그저 제 생각일 뿐, “원래 그렇게 기획된 거야” 하고 말한다면 할 말 없지만. 아무튼 그러나 김춘추는 역시 격이 다르다는 말로 제작진의 실수였다는 변호를 반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확실히 실수라고 말하기엔 뭔가 허전합니다.


실수라기보다는 애초부터 제작진의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 오류는 어쩌면 이미 예정된 김춘추의 성공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정된 분량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야했던 제작진으로서는 김춘추를 선덕여왕의 후계자로 만드는 실수 아닌 오류를 저질렀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춘추와 선덕여왕 사이에 승만공주(진덕여왕)를 넣어야했지만, 그러기엔 드라마 분량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춘추의 포지션이 애매해지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연장방송으로 인한 대본 수정, 제작기술상의 변화는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원래 <선덕여왕> 홈페이지 등장인물에 보면 승만공주도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드라마의 줄거리를 잡기 위해선 춘추와 더불어 승만도 나왔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여건상 승만공주가 나올 수 없었다면, 역시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에서 끝났어야 옳았습니다.


그랬다면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애초의 드라마 제작 목적도 충실하게 수행했을 겁니다. 어떻든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예언을 통해 탄생한 선덕여왕이 마지막까지 그 신비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마지막에 선덕여왕은 없고 미실과 비담만 남았다는 불평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춘추가 마지막에 사라진 이유에 대해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요?


막상 선덕여왕의 죽음에 이르고 보니 선덕여왕의 후계자인 진덕여왕이 걸렸다, 춘추로 하여금 덕만의 유지를 받들며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 그래도 무언가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안 보이게 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말입니다. 윤서아빠세상보기님의 글에 보니, 선덕여왕이 춘추에게 “왕위는 승만에게 잇도록 하고 너는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 대업을 준비하라”는 신을 찍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편집하지 않았냐는 의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더 우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실컷 춘추를 후계자라고 치켜세워놓고선 이제 와서 “너는 성골이 아니니 굳이 정치적 부담 질 것 없이 승만에게 왕위를 양보하거라. 곧 성골, 진골 구분은 없어질 것이니 그때 대업을 도모하라” 하고 말한다는 게 얼마나 난센습니까? 그러면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 왜 춘추를 울산으로 보냈을까요. 승만공주를 보냈어야지요.


아무튼 춘추가 마지막회에 나오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제작진의 오류로 인한 실수라고 보여 집니다. 물론, 이것은 망고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청자들이 인정하듯 저 역시 <선덕여왕>이 대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니, <선덕여왕>은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선덕여왕>이 불세출(!)의 드라마였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선덕여왕>은 정치가 썩은 시대에 정치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본보기도 보여주었으니 이런 정도의 칭찬을 하더라도 아무런 무리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Posted by 파비 정부권

비담이 변했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것이긴 하죠. 그러나 그 변화의 정도가 너무나 급격해서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비담은 <선덕여왕>이 한창 인기를 끌던 중반 등장하던 순간부터 관심을 한 몸에 모았습니다. 비담이란 이름이 선덕여왕 치세에 상대등을 지냈을 뿐 아니라 막판에는 반란을 일으켜 선덕여왕의 죽음에도 일정하게 관여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궁지에 몰린 김유신이 연을 날리는 전술로 비담군을 격파했다는 월성전투는 너무나 유명하죠.


비담은 실제와 허구를 합성한 캐릭터

<선덕여왕>의 비담이 실존인물 비담과는 다르다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덕여왕>은 1부를 시작하며 자막으로 ‘시간과 공간이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될 것’이라고 양해를 구해 상당부분 실제와 허구가 버무려졌음을 밝혔습니다. 특히 비담은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난 비형이란 설화 속 인물을 합성한 캐릭터입니다. 그러므로 비담이야말로 <선덕여왕>에서 가장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인물인 셈이죠. 그러나 어떻든 <선덕여왕>에서 비담은 미실의 아들.

그런데 비담의 변화도 매우 놀라운 것이지만, 덕만의 변화는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여왕이 된 덕만은 비담에게 정보사찰의 임무를 맡깁니다. 이것은 미실도 하지 않던 일입니다. 비담이 맡은 역할은 아마도 오늘날의 중앙정보부장이나 안기부장쯤 되겠지요. 선덕여왕이 왜 비담에게 이런 중요한 직책을 맡겼는지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왜 선덕여왕이 미실도 만들지 않았던 비밀정보기관을 만들었냐 하는 것입니다. 그 심오한 의도는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는 의문입니다.

아무튼 비담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비담은 염종이 갖고 있던 ‘문노의 비밀정보망’을 모두 손에 넣고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문노가 유신에게 전하고자 했던 ‘삼한지세’도 비담의 손에 있겠지요. 물론 이 삼한지세는 춘추의 머릿속에도 새겨져있긴 합니다만. 이제 비담은 명실상부하게 신국의 2인자가 되었습니다. 유신이 비록 상장군이 되어 전장을 누빈 공로로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왕을 제외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사량부령의 권력에는 미칠 바가 아닙니다.

선덕여왕이 비담을 비밀정보부장에 앉힌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막강한 권력에 더해 문노의 비밀조직에다 구세력의 핵심인 설원까지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비담이 마음만 먹는다면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더욱이 비담의 싸늘한 표정에선 무언가 위험한 미래가 감지됩니다. 마치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험>에 나오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처럼. 아나킨은 장래가 촉망되던 제다이였지만, 마음속에 숨어있는 두려움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그 두려움이 언젠가 분노로 변할 것임을 제다이들의 스승 요다는 알고 있었지요.

분노가 가져올 욕망과 파괴를 알고 있었던 요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나킨을 오비완의 제자로 만든 콰이곤은 아나킨의 능력만을 보았습니다. 선덕여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비담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분노와 욕망을 보지 못하고 겉에 드러난 능력만을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에게 겨눌 칼을 스스로 벼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아무런 느낌도 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비담의 분노, 비담의 욕망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비담에게 분노와 욕망의 마음을 불어넣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미실입니다.

미실이 비담을 버렸을 때, 비담은 욕망덩어리였습니다. 비담은 탄생 자체부터가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미실을 황후로 만들기 위해 태어난 비담은 그 꿈이 좌절되자 버려졌습니다. 비담의 두려움과 분노는 여기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미실에게 버려진 비담을 데려다 키운 것은 문노였습니다. 그러나 문노 역시 비담을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사랑과 배려를 나누어주기보다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어린 비담을 다그치기만 했습니다.

욕망의 근원은 두려움으로부터 솟아나는 분노

비담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싹트는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삼한지세를 되찾기 위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수십 명을 모조리 독살한 것도 어미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비담의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결국 분노로 화했습니다. 영특한 미실은 비담의 마음속에 든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곧 분노로, 다시 매우 파괴적인 욕망으로 변질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비담의 뛰어난 재능이 분노가 가야할 길을 잘 안내할 것이란 점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실패를 대비하여 마지막 안배를 준비했던 것입니다. 미실이 난을 일으키기 전, 설원에게 붉은색으로 포장된 서첩을 가져오라 했을 때 모두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공개된 후에도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첩의 내용은 진흥왕이 설원에게 미실을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첩이 우여곡절을 거쳐 비담의 손으로 들어가고 미실이 “결국 제 주인을 찾아가갔구나!” 하고 말했을 때, 도대체 그 숨은 뜻이 무엇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대충이나마 그 뜻을 짐작합니다. 붉은 서첩은 미실이 비담에게 전하고자 했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미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주는 사랑의 증표라고나 할까요. 미실은 끝까지 모자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대신 이 서첩을 남겼습니다. 그러므로 동시에 이 서첩은 미실이 비담에게 남긴 유산이자 유언인 셈입니다. 그럼 미실은 무엇 때문에 붉은 서첩을 비담에게 남기려고 했을까요?

미실이 비담에게 남긴 유산, 분노와 욕망

미실은 비담의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두려움과 분노와 욕망을 일깨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담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담에게 남긴 미실의 붉은 서첩은 유산이 곧 유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담의 변한 모습에서 살아남은 미실 잔당들은 살아있는 미실을 보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설원을 비롯한 이들은 새로운 기대로 꿈에 부풉니다.


‘연정이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란 가르침을 주고 떠난 미실의 유지를 받은 비담과 ‘아낌없이 모든 것을 덕만에게 바치겠다!’는 유신의 한판 대결은 불가피한 숙명입니다. 이 두 사람의 가운데에서 선덕여왕이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하는 것도 주목되는 관전 포인틉니다. 그러나 어떻든 선덕여왕이 된 덕만이 보여주는 모습은 현재로선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독재자 미실에 대항하던 덕만이 갑자기 더한 독재자가 된 것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하긴 그것도 다 스토리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장치라고 이해하면 그만이겠지요. 유신과 비담의 마지막 대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미실에 맞서 싸우던 덕만을 응원하던 저로서는 매우 불만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덕만이 미실도 하지 않았던 비밀정보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조작사건 같은 걸 만들어내는 비담을 용인할 수 있을까?

아무튼 ‘고참이 반합에 똥을 누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입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미실이 난을 일으켰다. 덕만과 춘추의 꿈이 너무도 탐이 나 그냥 있을 수 없었던 미실이 택한 것은 결국 정변이었다. 군사적 힘을 가진 자는 늘 쿠데타의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데 하필이면 미실이 난을 일으킨 날이 쿠데타의 교범이라 할 만한 5·16군사정변의 주인공 박정희가 비명에 간 날이라니, 아이러니치고는 참으로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죽은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이토오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또한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드라마 제작진이 일부러 이날을 골랐던 것일까. 아무튼 미실도 마찬가지로 비명에 죽게 될 테니 운명치고는 참으로 얄궂다.  

불평하는 대신을 칼로 벤 다음 대신들을 협박하며 용상에 앉은 미실. 놀란 대신들은 아무 말도 못하는데...


그런데 오늘 나는 미실의 분기탱천한 모습을 보며 비참한 최후를 맞은 또 한사람의 운명을 보았다. 다름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킬 빌』의 여걸 오렌 이시이다. 오렌은 악녀 중의 악녀다. 그녀는 야쿠자의 두목이다.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을 마치 무 썰듯 하는 오렌이다. 『킬 빌』의 주인공이 비록 우마 서먼이고 그녀의 무술 액션이 영화 전반을 주름 잡고 있지만, 오렌의 매력 또한 강렬했다.

오렌 이시이 역을 한 배우는 루시 리우라는 중국계 미국인이었는데, 그녀는 이미 『미녀삼총사』를 통해 세계적인 배우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 한편의 영화로 확실하게 위치를 굳혔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킬 빌』은 주인공 우마 서먼이 아니라 루시 리우를 위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강렬했다.

오렌 이시이가 『킬 빌』에서 내게 보여준 가장 선명한 장면은 바로 직접 야쿠쟈 두목의 목을 베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하는 장면이었다. 일본 야쿠자를 평정한 오렌 이시이가 보스들을 모아놓은 회의석상에서 자신의 출신을 깔보는 한 보스를 향해 달려가 칼을 뽑아 그대로 목을 잘라버린다.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여러 명의 보스들을 향해 오렌 이시이는 일장연설을 시작한다.

차분한 어조로 공손하게 일본어로 말하던 오렌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무 격분해서 감정 조절이 어려운 관계로 보다 더 정확하게 내 감정을 여러분에게 알리기 위해 지금부터 영어로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렌은 영어로 야쿠자 보스들을 향해 밀려드는 쓰나미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몰아친다. "너희들이 지금껏 무얼 했느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어냐?"  

그리고 오렌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 나에게 불만이 있는 자는 지금 당장 일어나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내 앞에서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기란 말이다." 영화를 본지가 오래 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개 이런 투의 말이었다. 그러나 대사의 내용보다 오렌 이시이로부터 뿜어 나오는 놀라운 폭발적인 힘과 기세, 카리스마에 압도당했던 기억이 더욱 생생하다. 

그런데 오늘 그 오렌 이시이의 카리스마를 미실을 통해 다시 한 번 볼 수 있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미실은 자신에게 승복하지 않는 귀족의 목을 직접 베지 않고 보종랑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을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일본어로 말하지 않고 영어로 말하겠다"고 한 부분을 "내가 감정이 너무 격한 관계로 예를 생략하고 말하겠다"고 한 부분이 약간 다를 뿐이다. 

예를 생략하고 말하겠다고 한 미실은 오렌 이시이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신료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너희들이 지금껏 한 일이 무엇이냐?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이 미실이 신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오는 동안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물론 오렌이 했듯이 "시키는 대로 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협박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미실의 이런 행동은 작가가 『킬 빌』로부터 차용해온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미실의 이 돌연한 행동으로부터 오렌 이시이를 연상했다. 그리고 오렌 이시이가 블랙 맘마(우마 서먼)에게 머리꼭지가 잘려 하얀 눈밭에 쓰러지는 마지막 모습처럼 미실도 그렇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10·26을 맞아 박정희도 생각했고, 이토오 히로부미도 생각했다.  

하필이면 10월 26일에 미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도 아이러니지만, 미실이 일본 야쿠자 두목 오렌 이시이가『킬 빌』에서 보여준 행동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러나 오렌의 밑에서 기는 야쿠자 보스들과 신라의 대신들은 분명 다른 데가 있을 것이다. 일국의 대신들이 야쿠자와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들은 미실의 행동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실은 실수한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감정이 너무 격해져 통제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일까? 대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직접 대신 하나를 베도록 한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깡패들이나 할 짓을 황제가 되겠다는 미실이 저지르다니. 깡패들은 무력 앞에 맹목적으로 굴복하겠지만, 그들은 다르지 않겠는가. 특히나 화랑들은 의를 중시하는 조직이다. 이미 화랑들은 사태의 진실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으며 동요하고 있다.

오렌 이시이와 블랙 맘마의 결투 장면


『킬 빌』에서 오렌 이시이는 하얗게 눈이 내리는 일본 정원에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멋지게 죽었다. 우리의 미실도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 오렌처럼 멋진 결투 끝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만큼 멋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긴 오렌 이시이도 비열한 방법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야쿠자였다. 그러니 미실도 오렌처럼 멋지게 죽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러고 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도 궁정동 안가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불러다 놓고 즐겨 듣던 엔가를 들으며 총에 맞아 죽었다. 이토오 히로부미도 하얼빈 역에 마중 나온 환영객들의 박수소리와 군악대의 연주를 들으며 죽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 안중근 의사가 날린 총성은 음악 소리에 묻혀 다분히 환상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실도 아름답게 죽었으면 좋겠다. 어떻든 몇 달 동안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던 인물이었으니. 오늘은 10월 27일, 30년 전 오늘 아침, 책상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던 내 친구 기종이가 생각난다. 각하의 죽음에 자기 부모가 돌아가신 듯이 슬피 울던 까까머리 어린 내 친구는 지금 어디 살고 있을까? 그 애는 아직도 그때와 똑 같은 마음일까? 

하긴 그 시절 우리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왕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이미 박정희는 대통령이었으며, 성장하는 내내 대통령이었다. 그러니 박정희의 죽음은 곧 왕의 죽음, 어린 내 친구에게도 청천벽력이었을 테다. 오늘 나는 미실의 난을 통해 박정희도 보고, 이토오 히로부미도 보고, 오렌 이시이까지 보았으니 영락없는 1타3피다. 하하, 이건 그냥 헛소리다. 그저 하는 헛소리.

아무튼, 미실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Posted by 파비 정부권
심상정이 창원에 왔다. 그녀가 누구인가? 박근혜가 선덕여왕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도 있지만, 진정 그렇게 선덕여왕다운 사람을 찾고 싶다면 그건 심상정이 아닐까? 누가 그녀처럼 민중들과 고락을 나누며 평생을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 있단 말인가? 박근혜가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면 예쁘장한 나경원이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지 않는가.

그녀는 서울대를 나온 재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편안하고 행복한 길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85년, 유명한 구로동맹파업은 그녀의 작품이었다. 물론 이 말은 완벽한 것은 아니다. 구로공단의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일으킨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동맹파업이었다고 말해야 옳다. 그러나 그녀의 역할이 개중 가장 중요하고 컸으므로 그녀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라 할 수 없고, 당시 동맹파업에 동참했던 많은 노동자들도 기쁘게 생각할 것이라 믿는다.

 

창원노동회관 4층 강당에서 열린 심상정 초청 강연회 '핀란드 교육을 통해 본 우리 교육 제자리 찾기'


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던 심상정 

그녀는 원래 꿈이 학교 선생이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꿈은 수시로 변한다.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은 스무개도 넘었는데 그 중 마지막으로 가진 꿈이 학교 선생이었다. 그래서 사범대학을 갔다. 그러나 대학생활은 그녀에게 그녀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당시는 엄혹한 유신정권을 거쳐 전두환이 쿠데타에 성공하고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 세상은 흉흉했다. 이런 세상에서 편안하게 자신만의 꿈을 꾸며 안락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그녀의 양심으론 허용되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마침내 여공의 길을 택했고, 노동운동가가 되었고, 수배와 구속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최근까지도 그녀의 둥지는 금속노조였다. 그런 그녀가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원래 선생이 되고자 했던 그녀는 정치가가 되는 꿈을  꾸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 정치에 입문했다. 세상은 그녀가 정치를 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만들었다. 국회 의정활동을 통해 그녀는 노동운동가에서 경제전문가로 변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참모로 청와대 비서관이었던 정태인 교수는 심상정의 탁월한 경제적 식견에 반해 그녀의 팬이 되었고 끝내는 노무현 대신 심상정을 택하는 결단을 하기도 했다. <100분토론>이나 <심야토론>이 경제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면 가장 먼저 심상정을 섭외했다. 그녀는 17대 국회에서 최고의 경제전문가로 통했던 것이다. 사실 노동운동가가 경제전문가가 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노동운동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제공부를 했을까?
 

블로그 '거다란닷컴' 커서님도 오셨다. 그는 심상정을 인터뷰하기 위해 공항에서 만나 함께 왔다고 했다.


학교 선생의 꿈에서 노동운동가로, 국회의원으로, 경제전문가로 그 이름을 날리던 심상정. 그녀가 이번엔 교육을 들고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진보신당 경남도당(위원장 이승필) 주최로 열린 심상정 초청 강연회의 제목은 <핀란드 교육을 통해 본 우리 교육 제자리 찾기>였다. 여기서 그녀는 우리 사회는 희망이 거세된 사회라고 말했다. 그녀가 교육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만나본 많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참으로 절망적이었다. 

희망이 거세된 사회, 꿈이 없는 아이들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그 다음 그녀는 대학생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꿈이에요."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경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이 사회는 결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사회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면 자기주도적인 삶을 사는 훈련을 어려서부터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아이들이 받는 교육은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모든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미 대학진학율 80%를 훌쩍 넘긴지도 오래다. 그러나 쏟아지는 고학력자를 받아낼 사회적 준비는 전무하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라. 얼마나 많은 대졸 실업자가 존재하는지.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실패를 경험한 이들 중에는 이를 딛고 일어설 어떤 준비도 용기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실로 '희망이 거세된 사회'란 과장이 아니다. 교육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설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뼈저리게 통감하던 심상정에게 핀란드 교육이 보였다. 

핀란드는 그녀에게 어떤 희망을 주었을까? 그녀는 핀란드로 날아갔다. 그곳의 교육현실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혹자는 이런 심상정에게 못마땅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도대체 핀란드 며칠 가서 무얼 배워오겠단 말이요?" 실제로 레디앙에 실린 심상정의 핀란드 방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나도 보았지만, 그들에게선 진정으로 걱정하는 비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일종의 직업적이고 감정적인 안티에 불과해보였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충분히 할 수도 있을 법하다. 

"아니 내가 겨우 한 달 북유럽 3국 순방하고 핀란드 교육을 다 공부했다고 하겠어요? 나는 이미 충분히 공부를 하고 갔어요. 이미 내가 발표한 내용들은 미리 학습하고 준비한 것들이에요. 다만, 마지막으로 직접 가서 확인한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거기 가서 핀란드 교육청 장관으로 20년을 봉직하며 교육혁명을 주도한 에리키 아호를 만났을 때,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나는 핀란드 교육에 관심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이 있죠. 그러나 커다란 영감을 얻었어요." 

커서님과 심상정을 위해 한 사진 찍었다. 옆은 부산지하철 노보편집위원이다.


노동운동가에서 정치가로, 다시 꿈을 찾는 교육혁명의 길에 자신을 던지다

그녀가 핀란드에 가서 배웠다는 영감, 무한한 상상력을 갖도록 만들어주었다는 그 영감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말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강연을 들으면서―또 이전부터 알고 있던 그녀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도―그녀야말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갖출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는 학교 선생이 되려는 꿈을 꾸었고, 대학에 가서는 노동운동가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되어 경제전문가로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꿈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아이들이 꿈을 찾을 수 있는 교육혁명의 꿈을 다시 꾼다. 그랬다. 그녀의 말처럼 교육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희망이 거세된' 이 나라의 미래는 없을 듯하다. 요즘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인기다. 이 바람을 타고 일부에서 선덕여왕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 박근혜야말로 선덕여왕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그들은 첫째, 모두 지지기반이 대구경북이란 점, 둘째, 모두 최고지도자의 딸로서 공주출신이란 점을 들었다. 나는 이 기사들을 읽어 보고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 블로그에 포스팅했었다. "박근혜가 선덕여왕? 그럼 김정일은 광개토대왕이냐? 
http://go.idomin.com/261" 나는 박근혜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녀가 어떤 꿈을 갖고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녀라고 해서 아무런 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되고 싶은 꿈을 그녀의 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오늘날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꿈이다. 오늘날 대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즐겁게 보고 있는 선덕여왕의 덕만이 꾸고 있는 꿈이 겨우 그런 꿈일까? 그렇지 않다. 덕만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자신을 간신히 매달고 있는 줄마저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다. 

박근혜, 나경원? 천만에, 심상정이야말로 선덕여왕의 재목 

박근혜에게 그런 용기가 있을까? 민중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랑이 있을까? '희망이 거세된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 고난의 길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까? 행동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럴 마음이라도 먹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박근혜라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아니 그럴 마음이 애초부터 없다는 것쯤은 진보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보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마산시 이옥선 의원과 심상정. 이옥선은 마산시 22 명의 의원들 중 단 세 명 뿐인 여성의원 중 한 명이다.


만약 박근혜도 민중을 위해 자기 목숨쯤 초개처럼 바칠 용기가 있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건 코메디다. 차라리 미실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그러나 심상정은 어떤가? 그녀는 젊음을 송두리째 민중을 위해 저당잡혔다. 그녀는 당시만 해도 출세가 보장되던 서울대 출신의 길을 버리고 노동자의 길을 택했다.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치하에서 목숨을 버릴 각오 없인 어려운 일이다. 지금도 그녀는 서민들과 함께 꾸는 꿈의 길을 고집한다. 나는 선덕여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가. 덕만처럼 백성들 속에서 백성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줄 가냘프면서도 강인한 카리스마를 간직한 지도자를 우리는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덕만처럼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고 낭떠러지로 떨어질 용기를 가진 지도자를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미래에는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심상정이야말로 오늘날 선덕여왕의 재목으로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에 견주어 선덕여왕에 비교하는 것이 오히려 심상정 그녀에게 실례가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평생을 민중의 삶과 함께 해온 심상정을 박정희의 딸로 청와대에서 공주 행세를 하며 살아온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덕으로 살고 있는 박근혜 같은 사람에게 견준다는 자체가 어쩌면 심상정에게는 지독한 모욕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도 심상정이라면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그녀는 충분히 통이 큰 인물이니까.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선덕여왕,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제가 보건대 연말 대상은 따놓은 당상인 듯합니다. 틀림 없습니다. 작년에 김명민의 베토벤 바이러스가 있었다면 올해는 단연 선덕여왕입니다. 작년 MBC 대상은 송승헌과 김명민의 공동수상으로 김 빠진 맥주 꼴이 되었지만, 올해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꼭 그렇지는 않군요. 김남주의 내조의 여왕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율 등 충성도에서는 선덕여왕이 많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요원 씨, 방심하지 말고 분발해야겠군요. 김남주가 워낙 거물이니… 


선덕여왕을 만든 작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대장금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중입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씨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니 그는 우석훈 씨의 선배이며 운동권 출신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랬었군요. 그래서 제가 늘 선덕여왕 후기를 올릴 때마다 적었지만, 미실의 모습에서 이명박 정권의 잔혹한 모습이 연상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어쨌든 선덕여왕은 재미도 있지만, 철학도 있는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늘 선덕여왕 칭찬만 침이 마르도록 해왔던 제가 오늘은 안티를 좀 걸어야겠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너무 무시한다든지 이런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비록 시공을 너무 초월해서 픽션을 만들어낸다는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이란 이해를 합니다. 대가야의 후예들과 금관가야의 후예들이 같은 가야 출신으로서 동맹을 한다는 허구도 이해합니다. 사실 대가야와 금관가야는 완전히 다른 세력이니 동질감을 가진다는 건 김훤주 기자의 지적처럼 난센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은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아니 그런 것들은 아예 눈 딱 감고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저 드라마에 몰입하기만 하면 우리는 한 시간 동안 충분한 행복을 제공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김훤주 기자가 그의 블로그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지퍼 달린 군화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면 됩니다. 그런 사소한 선덕여왕 스탭들의 실수를 옥에 티로 블로깅하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은 도저히 참기 힘든 옥에 티가 발견되었습니다. 진평왕 말입니다. 사실은 선덕여왕에선 진평왕을 진평왕이라 하지 않고 진평제 혹은 진평대제라 불러야 할 겁니다. 물론 시호는 왕이 죽은 후에 신료들이 의논하여 올리는 것입니다만, 어쨌거나 드라마에서 신라의 왕은 황제입니다. 실제로 신라가 황제의 칭호를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칭호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왕이 황제보다 격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황제란 이름은 중국의 시황제가 이전의 왕들과 자신을 구별짓고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주나라 시대까지 제후들에겐 공이란 호칭을 사용했지요. 제나라 환공이니 노나라 양공이니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원래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왕이었습니다. 진시황 이후부터 중국에서는 황제란 새로운 이름을 사용한 것일 뿐이지요. 중국에서 왕 대신 황제란 이름을 사용했다고 다른 나라 왕들이 갑자기 황제보다 격이 낮아진다는 건 엉터리입니다. 

황제나 왕이나 동격입니다. 중국에서만 황제가 왕보다 한 단계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신라의 왕들이 자신을 왕이라 부르건, 마립간이라 부르건 또는 황제라 부르건 이는 위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진평왕이든 진평제든 황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평왕은 자신을 호칭할 때 과인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진흥대제를 이어 황제가 된 진평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지요. 

고려시대에는 아예 중국처럼 황제들에게 붙이는 묘호인 조와 종을 썼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도 태종이란 묘호를 쓰긴 했습니다만, 신라시대에는 아직 중국의 제도나 문물이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조와 종을 선대의 왕들에게 올리는 관습이 정착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원래 하던 전통대로 그냥 무슨무슨 왕이란 시호를 올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진평왕이 자신을 과인이라고 부른 것은 난센스였습니다. 

실수였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짐이라고 불렀는데 어제 프로에서만 짐이란 황제의 자기 존칭을 까먹고 과인이라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제 기억에도 앞에서는 진흥왕도 자기를 짐이라고 했고 진평왕도 그리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위에 적시한 다른 것들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건 좀 그렇네요. 조금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이건 지퍼 달린 군화하고는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이러다 폐하를 전하로 부르는 사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가 대본을 만들 때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연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기자도 그렇습니다. 조민기는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는 집에 가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을 때도 늘 자신이 황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덕여왕이 끝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래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물론 이건 그저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아무튼 황제가 스스로 짐을 과인으로 깎아내린 사건은 매우 유감입니다.

하긴 조민기 같은 베테랑 연기자도 실수를 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지퍼 달린 군화를 신고 나오든 짐을 과인이라 부르든 우리는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거겠지요. 그래도 이런 사소한 실수가 한 번씩 두 번씩 나올 때마다 김 빠진 맥주 마시는 기분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몰입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에이, 저러면 안 되는데… 이런 마음이 자꾸 드니까요. 아무튼 선덕여왕, 제 1막이 끝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소화에게 안겨 사막으로 쫓겨갔던 덕만이 드디어 자기가 태어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실과 어떻게 싸움을 벌여갈지 궁금 또 궁금입니다. 그나저나 문노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겁니까? 오늘 나오려나 내일 나오려나 하고 있는데 계속 안 나오네요, 속 터지게.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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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비담의 난이 일어났다고?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그저 괴담이다. 아직 덕만이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괴담을 충분히 지어낼 만한 사정이 벌어졌다. 어제 막판에 등장한 비담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온통 비담 얘기로 들끓었다. 다음뷰 베스트란은 4일 오전 한때 1위부터 10위까지 7~8개가 선덕여왕 리뷰에 덮였다. 하재근블로그의 말처럼 가히 비담의 난이다.
 

선덕왕 오른쪽에 미실 모자가, 왼쪽에 천명 모자가 섰다. 덕만을 등지고 고개를 돌린 유신의 포즈가 의미심장하다.

 
사실 유신랑이 지금껏 보여준 태도는 매우 미심쩍었다. 시청자들이 바라는 유신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강인한 결단력과 추진력, 탁월한 리더십을 보고 싶었던 시청자들에게 유신은 너무 미적거렸다. 우유부단했다. 천명과 덕만이 처한 상황이 그저 결단과 투지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건 모두들 안다.

그래서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은 오기보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유신의 태도가 조금 불만이긴 해도 그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유신에게서 기대하던 모습을 느닷없이 출현한 비담이 보여주고 말았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열광했다. 비담은 등장하자마자 영웅이 되었다.

자, 그런데 비담이 어떤 인물인가? 비담에 대하여 구체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사기나 유사에서 비담이 선덕왕 말년에 난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다. 비담이 난을 일으킬 때 그의 신분은 상대등이었다. 상대등은 진골귀족이 아니면 오를 수 없는 자리다. 상대등 뿐만 아니라 17관등 중 5등 이상에 진골이 아니면 오를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신라는 진골귀족, 즉 왕족들의 연합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였다. 화백회의의 존재는 왕이 중앙집권을 통해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등은 이런 신라사회에서 국사를 총괄하는 한편 화백회의라는 귀족회의의 의장 역할을 하는 막중한 자리였다. 소위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넘어 왕을 견제하기도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상대등은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권이 강화되어 국왕이 귀족회의를 주재하지 않게 되면서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일면 왕권강화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완전한 중앙집권에 이르지 못했음의 반증이기도 하다.)

상대등이 왕에 의해 임명되는 형식적 절차를 거치긴 하지만 '귀족 내부의 세력관계나 골품에 따른 서열에 따라 임명자가 정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비담이 난을 일으킬 당시 상대등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은 다른 한편 그가 가진 권력기반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사실 신라라는 특수한 나라에서 귀족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중고시대의 신라는 '왕'이 아니라 '왕과 (진골)귀족계급'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서 왕위계승권을 안정적으로 확정하기 위해 성골이란 제도가 창안된 것인지도 모른다. 

MBC 선덕여왕은 바로 이 성골남진의 위기상황에 착안한 드라마다. 물론 이처럼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소재를 제공한 것은 삼국유사와 필사본 화랑세기였다. 그러나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 파란을 일으키는 비담은 MBC 드라마팀의 작품이다. 비담은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비담의 가계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담은 김유신의 연날리기 전술로도 유명한 월성전투에서 패한 후 구족이 멸하는 참화를 입었다. 비담의 이름을 입에 담을 만큼 간이 큰 자가 누가 있었을까. 비담은 김씨 족보에서도 사라진 것이다. 비담의 난을 제압한 김유신과 김춘추는 명실상부하게 신라의 패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덕여왕마저 후사가 없이 죽은 후 김유신이 화백회의에서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을 때 반대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화백회의는 만장일치제이므로 반대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미 화백회의가 열리기 전에 사태는 결정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 상대등 알천이 귀족들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았으나 스스로 나이 들고 덕이 없음을 들어 사양하고 대신 김춘추를 천거했다고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의 근저에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성장한 신흥 진골귀족 김유신이 있었다.)   

그런데 MBC가 비담의 가계를 살려냈다. 비담은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라는 설정이다. 참으로 기발하다. 실상 미실이 선덕여왕 집권 말년까지 살아서 대결구도를 펼쳐간다는 것은 아무리 픽션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미실이 덕만과의 대결에서 패하고 사라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미실의 세력을 대표해 덕만과 대결을 벌일 인물로 드라마는 비담을 선택한 것이다. 

비담이란 캐릭터는 실존인물 비담과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비형을 합성한 모델로 보인다. 실제로 삼국유사는 비형이란 인물에 대해 지금 드라마에서 비담이란 캐릭터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신비하면서도 괴팍한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비형이 진지왕이 폐위되고 유폐된 상태에서 출생한 비운의 인물이었다는 점도 역시 닮은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튼, 비담의 출현은 드라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신도 이제 더 이상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일 수 없게 되었다.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자신과 겨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으니 그도 이제 뭔가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변화의 암시를 비담과 더불어 등장한 문노가 우리에게 슬쩍 던져주었다. 

오늘 드라마에서 유신이 홧김에 도끼를 집어던지자 장작 패는 받침나무가 쩍하고 갈라진다. 그걸 본 문노가 놀라운 눈으로 유신의 손을 살피며 말한다. "자네는 스승도 없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들어 냈다니… 대단하군. 자네 혹시 누군가와 검술 대결을 해본 적이 있는가? (유신이 고개를 흔들자)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군." 

비담은 문노라는 걸출한 스승을 만나 놀라운 무공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유신은 스승도 없이 오직 혼자의 힘으로 비담에 견줄 무공을 얻었던 것이다. 곧 덕만의 정체를 문노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유신에게 절정의 무공을 전수해 줄 스승을 만난다는 것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우리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유신의 새로운 포스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선덕여왕의 비밀병기 문노와 비담이 공개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춘추다. 김춘추는 유신과 더불어 선덕여왕의 한 팔이다. 유신이 무력을 대표한다면 춘추는 정치를 대표한다. 김춘추는 잘 생긴 외모와 타고난 달변으로 사람의 혼을 빼앗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가 고구려와 왜를 거쳐 당나라에까지 외교행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타고난 재주 덕이었다.  

비담의 출현을 반란에 비유한 괴담은―그것이 그저 배우들에 대한 비평의 의도였다 하더라도―매우 재미있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비담의 출현으로 반란은 시작된 것이다. 비담이 진지왕과 미실의 아들이란 설정부터가 반란이며, 덕만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운명이란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기다 비담은 미실의 잔혹한 성격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특히 미실이나 비담처럼 사람의 목숨을 자기 기분에 따라 어찌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들에겐 이루어야할 정의보다는 물보다 진한 피가 더 중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백성들의 피울음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백성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억압과 고통 속에)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라고 말하는 미실과 고작 자기가 먹을 닭고기를 못 쓰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검을 휘둘러 살생극을 벌이는 비담, 이들 모자는 결국은 상봉하고야 말 운명이 아니겠는가. 바야흐로 양 진영의 전열이 정비되고 있다. 다음 주가 기대된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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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줄거리를 만들어가는 핵심 소재는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다. 성골남진은 삼국유사 왕력편에 등장하는 기사다. 성골남진, 말 그대로 성골남자의 씨가 말랐다는 의미다. 성골이란 무엇인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을 일컬어 성골이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듯하다. 


그럼 왕위계승권을 가진 왕족의 집단이란 어떤 사람들일까? 고대신라는 장자계승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의 사회였다. 석탈해나 내물왕처럼 왕의 사위가 되어 왕위를 계승한 인물도 있고, 왕의 동생으로 왕권을 이어받은 경우도 허다하다. 또는 왕에게 왕위계승권자가 없을 경우에 왕의 형제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왕위계승에는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질서는 법흥왕이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체계화된 법으로 정비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골이다. 물론 이것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보다 유력한 가설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성골은 왕위계승권자인 왕족의 집단으로 그 구성은 새로 왕이 등극할 때마다 바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진지왕의 아들들인 용수와 용춘은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는 성골이었지만, 진평왕이 등극한 이후에는 진골로 족강되었던 것이다.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의 저자 이종욱 교수의 말을 빌자면, 성골이란 왕과 왕의 형제의 가족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이 왕이었을 때도 성골이었지만, 진평의 사촌들인 용수와 용춘은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성골남진이 어떤 상황인지 대충 어림잡을 수는 있을 듯하다. 그래서 진평왕은 이의 타개책으로 용수를 천명공주와 혼인시켜 사위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신라에서는 고래로부터 써오던 방법이었다. 석탈해가 그랬고 내물왕이 그랬다. 게다가 용수는 선대왕의 아들이며 성골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대목에서 성골이란 어떤 고정불변의 신분이 아니란 사실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체계에 불과한 것이며,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용수에게 왕위가 가지 않고 선덕이 후계지가 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에 주목한 것 같다. 왜 용수에게 왕권이 넘어가지 않고 선덕이 왕이 되었을까? 드라마에서는 용수를 젊은 나이에 죽게 만들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용수와 용춘으로 하여금 선덕여왕을 받들게 하고도 아들이 생기지 않자 을제와 흠반으로 하여금 보좌하도록 하였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면 말이다. 

그럼 왜 드라마에서 용수는 젊은 나이에 김춘추를 임신한 어린 부인 천명공주를 두고 죽어야 했을까? 그것은 이 드라마가 성골남진의 원인으로 어출쌍생이란 픽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성골남진이란 왕위계승권자가 없어진 상황은 중대한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성골남진이란 상태가 단지 정통 권력계승자가 사라진 것일 뿐 위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분명 그렇다. 사위에게 왕권을 넘기기도 하고 세 명의 여왕을 배출하기도 한 유연한 신라사회에서 성골남진이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의 중심부로 화각을 좁혀보면 분명코 위기다. 정통 계승자가 없으니 당연히 암투가 벌어질 것이다. 선덕여왕이 등극하기 직전 칠숙과 석품이 일으킨 난이 이를 반증한다. 

성골남진에 어출쌍생을 접목시켜 하나의 예언을 만들어낸 것은 기발한 발상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장치가 어디 있겠는가. 권력을 흔들고 쟁투의 장을 만드는데 예언보다 유용한 수단이 어디 있겠는가. 왕건이 왕이 되기 전에도 예언이 있었으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위해서도 예언이 필요했다. 심지어 사초위왕의 예언에 빠져 죽은 조광조도 있다.

그러나 지금껏 드라마는 진평왕이 덕만을 죽이지 않고 소화를 통해 살려 보냄으로써 성골남진을 막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갈등을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덕만이 비록 먼 이국땅 타클라마칸의 사막에 버려졌지만 그녀가 살아있는 한 쌍생의 저주는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그런데 왕자들의 죽음으로 성골남진의 예언이 이루어질 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제 바야흐로 덕만의 정체가 드러났다. 어출쌍생의 저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쉬쉬하며 숨겨왔지만 이제야말로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모든 것이 내던져졌다. 어출쌍생이면 성골남진이라. 대등 을제는 진평왕에게 왜 덕만을 땅에 묻어 어출쌍생의 저주를 자르지 않았느냐고 다그치고 미실도 덕만의 실체를 눈치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덕만과 천명은 이 난국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문제의 쌍생의 저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둘 중 하나, 즉 천명공주와 덕만공주 중 하나가 지금이라도 죽으면 될 일이다. 덕만은 선덕여왕이 될 인물이니 당연히 죽어야 한다면 그것은 천명의 몫이다.

 

그러나 그건 지금까지 보여준 선덕여왕의 주제의식에 맞지 않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 미실은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지만, 덕만은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고 결국 미실을 이긴다는 게 주제다. 그렇게 본다면 쌍생의 저주에 굴복해 천명이 죽는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주제 설정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은 해답은 하나다. 덕만이 새로운 예언을 만드는 것이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의 예언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미실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의 뜻은 없다고. 있다면 오로지 미실의 뜻만이 있을 뿐이라고. 천문을 아는 미실이 하늘을 이용해 예언을 퍼뜨리고 계시를 만들었던 것이다.  

덕만이 서역의 상인들 틈에서 천문을 익혀왔다는 사실, 그녀에게 정광록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실에게 대적할 사람은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온다고 한 예언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덕만이 사람을 얻어 천하를 다스릴 조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쌍생의 저주를 풀지 않고서는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천명이 죽든, 새로운 예언을 만들든… 그러나 나는 김유신의 말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과거의 너는 잊어버려. 그런 게 무슨 소용이야. 앞으로 만들어갈 덕만이 네가 더 중요한 거야. 너는 앞으로의 너를 만들어가야 해." 그렇다. 이 말이야말로 해답이다. 과거에 붙들리고서 저주를 풀 방법은 없다. 미래는 과거의 예언이 아니라 만드는 자의 것이니까.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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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제가 음주회동이 있어서 《선덕여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니지, 자정이 넘었으니 그 오늘도 이제 어제가 되었군요. 아무튼 역시 또 음주 회동이 있었지만, 과음을 자제하고 맑은 정신으로 들어와 거금 1000원을 결재하고 보았습니다. 물론 500원짜리도 있습니다만, 선덕여왕만큼은 1000원을 내고 보는 편입니다. 화질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그런데 《선덕여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싶은 그런 사소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선덕여왕》을 보면서 신라의 색공 풍습에 관한 문제라든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대단히 문란해 보이는 당시의 혼인제도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몇 차례 포스팅을 하면서 여러 서적들을 살펴보았던 제가 좀 예민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했던 생각은 《선덕여왕》 제작진이 좀 오버한다는 것입니다. 자, 제가 오버한다고 생각한 장면은 이겁니다. 미실이 위천제를 올리고 하늘의 계시를 핑계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데 성공합니다. 봇짐을 메고 줄줄이 쫓겨나는 가야인들이 마치 재개발에 밀려 터전을 잃고 쫓겨나는 철거민들과 흡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지요.

그러고 나서 미실이 어떻게 합니까? 자기 측근들을 모아놓고 다음 계책을 이야기합니다. 채찍으로 상처를 주었으니 이제 약을 발라줄 차례라는 거지요. 그 약이란 다름 아닌 김서현의 가문과 자기네 가문이 혼사를 통해 동맹을 맺자는 것이었지요. 그러자 듣고 있던 하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외칩니다. "어머니, 또요? … 아이, 정말…" 

하종의 짜증스러운 말의 의미를 눈치 챈 세종 또한 얼굴색이 변합니다.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원망이 얼굴 가득하더군요. 그렇다고 큰 소리 칠 수도 없고…. 제일 불쌍한 사람은 역시 설원공이더군요. 그의 얼굴에도 원망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세종 부자처럼 내놓고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그 다음 미실의 반응입니다.

미실은 측근들의 불만에, 사실 측근들이라고 해봐야 남편들과 아들들과 친동생이었지만, 내심 스스로도 무안했던지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 말고…" 그러나 저는 미실이 얼굴을 살짝 비틀어 숙인 자세로 찡그리며 "나 말고… 자식들 중에서… 아니면, 하종의 여식은 어떨까?" 할 때, 정말 큰 소리로 웃을 뻔 했습니다.

《선덕여왕》이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소재가 신선하고, 박진감 넘치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연기자들의 연기가 훌륭합니다. 《선덕여왕》만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드라마도 흔하지 않습니다. 《대장금》의 인기를 넘어서는 드라마가 아직 없었다고 하지만, 그 《대장금》도 이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햇습니다.

또, 《선덕여왕》에 재미를 더해주는 것은 코미디적인 요소입니다. 사극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심각하고 어두운 면을 이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잘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이지요. 죽방거사의 역할은 감초의 수준을 넘어 《선덕여왕》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그가 있어서 주인공들이 더 빛나는 거지요.

그리고 미실도 가끔 코미디 같은 대사나 행동을 하더군요. 지난주에는 유신을 불러다놓고 하늘의 뜻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하지요. 뇌쇄적인 윙크까지 섞어서 말입니다.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필요하답니다." 아마 오늘, 아니 어제였군요. 미실과 측근들이 모여 벌인 해프닝도 결국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활력소를 위한 코믹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확실히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실은 다행히 정략결혼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측근들을 안심시켰지만, 이것은 난센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신라는 모계사회도 아니고 다부다처사회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때도 분명히 부계전승사회였고, 일부일처제가 지켜지는 사회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다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실은 단 한 번 혼인했으며 남편은 세종 한사람뿐이었습니다. 지금 드라마에서는 마치 설원이 미실의 남편인 것처럼 비쳐지지만, 그는 남편이 아니라 정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세종이 받는 대접과 설원이 받는 대접은 다른 것입니다. 물론 세종은 진골이며 설원은 두품도 없는 천한 신분이지만서도…

그럼 미실이 3대에 걸쳐 왕들에게 바쳤다는 색공은 무엇일까? 그건 그냥 색공입니다. 미실이 진흥왕에게 색공을 바쳤다고 해서 그녀가 진흥왕비가 아닌 것이며, 진지왕비도 아닌 것이고, 진평왕비도 아닌 것입니다. 다만, 왕실의 자손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색공을 바치기로 된 진골 가문의 한 여인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보여준 '미실의 혼사'는 실은 난센스였던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물론 세종이 죽은 후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당시는 여자의 재혼을 금하는 어떠한 법이나 관습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미실이 굳이 김서현과 관계를 맺고 싶었다면 혼사가 아니라도 설원과 그랬던 것처럼 은밀하게 정을 통하면 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실은 공식적인 정략결혼을 통해 양 가문의 동맹관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므로 미실이 아니라 자손들 중에서 누군가 하나를 골라 유신과 혼인시킬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하여튼, 비록 난센스라고 제가 비토를 하긴 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이는 자칫 심각하고 무겁고 어두운 사극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장치쯤으로 이해를 하면 그만입니다.

실은 이렇게 비토를 하는 것도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중의 하나입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은 매우 재미있는 드라마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 보니 드디어 덕만의 정체가 탄로 났군요. 아니 탄로가 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신분을 되찾은 것이지요. 축하를 해야 할 일이겠지만, 대략 예고편을 보니 앞날이 더 험해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하여간 여러분, 미실은 오직 한번밖에 결혼하지 않았답니다. 남편도 세종 한사람뿐이랍니다. 비록 정부가 여럿 있었으며 세 명의 왕과 한 명의 태자에게 색공을 바치긴 했을지언정 일부종사(?) 했다는 사실,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남자들도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의 혼인에 얽힌 고사를 보십시오. 

왜 김유신은 춘추와 사통한 문희를 묶어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는 연기를 했을까요? 김춘추가 이미 결혼했으므로 문희를 아내로 맞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기는 선덕여왕에게로 날아갔고 결국 여왕의 묵인으로 김춘추는 문희를 정식 아내로 맞이하는 전례없는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신라사회에서는 남자들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결혼은 한번밖에 할 수 없었다는 역사적 기록인 것입니다. 물론 정식 부인은 한명밖에 둘 수 없었지만, 미실과 마찬가지로 정부(첩)는 여럿 둘 수 있었겠지요. 어디까지나 재력과 권력을 가진 귀족들에 한해서만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것도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오늘 새삼스럽게 난센스 이야기 하다 보니 제가 난센스에 빠지는 기분입니다. 흐흐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그것은 분노였다. 분노하지 않는 자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실을 가르쳐준 것은 미실이다. 지난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다. “무서우냐?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라… 분노하거라…” 그렇다. 도망칠 수 없다면,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분노하는 것 그것이 답이다. 그러나 덕만과 천명은 너무나 두렵다. 분노하는 것조차 무서울 만큼 두렵다.  
 

두려움을 떨쳐낼 가장 강한 무기, 분노

이때 이들에게 그 두려움을 깨고 일어서도록 힘을 준 것은 유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유신에게 분노를 일깨워준 것은 미실이다. 미실은 하늘의 계시를 구실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것은 미실의 계략이었다. 일단 사지로 몰아넣은 다음 손을 내밀어 복종하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이런 방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권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과거 군대에서 고참병들이 졸병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줄빠따’를 친 다음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달래는 것과 같다.

미실이 유신의 집을 찾아와 서현공과 만명부인에게 혼사를 맺어 사돈이 되자고 제안한다. 미실은 서현에게 상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 상생은 항복과 복종의 맹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현은 당장 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유신은 격분하여 그런 부모에게 항의한다. “왜 미실에게 안 된다, 나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서현은 유신을 타이른다. “분노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안 된다, 나가라 답하면 미실은 제2, 제3의 사다함의 매화를 풀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가문은, 너는 어찌 되겠느냐? 미실의 다음 수가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어찌 무턱대고 분노부터 하는 것이냐?” 그러나 유신은 서현에게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렇지 않기에 우린 미실에게 놀아난 것입니다. 미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하여 우린 분노도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면, 허면  너는 떨치고 일어나 죽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예,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미실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만 있다면요. 백성들에게 미실이 천신 황녀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몇 천 백성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란 걸 알릴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공포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고,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얻는 첫걸음이다

물론 서현은 유신의 뜻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가야의 마지막 임금이며 서현의 조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이래 오늘날의 기득권을 이루기 위해 유신의 조상들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어렵게 이룬 터전을 분노 때문에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적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김유신 장군이 여기서 꺾일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선덕여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고 김춘추를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신하의 신분으로 대왕의 칭호를 얻었던가. 유신은 천명공주를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있던 덕만과 천명에게 분노할 것을 종용한다. 만약 두려움에 빠져 분노하길 포기한다면 이제 그만 공주도 덕만도 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결의에 찬 김유신에게 감복한 덕만과 천명은 마침내 미실이 보낸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덕만과 미실은 쌍성의 개양성이었지만, 계시를 이루기 위해선 유신이 필요했다.

김유신릉.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묘가 아닌 왕릉이 맞겠다. 그는 살아서도 대각간에 '태'자를 얹어 태대각간이었다.


그렇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가 무엇이었던가? 사람이었다.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흥왕이 미실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으며,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실이 자신을 대적할 덕만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람은 유신이었으며 유신은 거꾸로 덕만과 천명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분노를 심어주었다. 오늘 드라마의 압권은 그렇게 분노에 불타는 세 사람의 도원결의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형제를 맺을 땐 비록 세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세 사람으로부터 천하삼분의 계책이 나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천하에 웅비하는 복룡의 지략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만약, 덕만과 천명이 분노하지 못하고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미실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분노를 배운 세 사람이 결의하여 당을 만들었으므로 미실과 싸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유신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외침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전율했다. 유신이 결연한 어조로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전율했다. 유신이 외치는 함성은 비단 덕만과 천명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분노하라, 분노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사소한 개인의 이해를 따지기 전에, 정치를 따지기 전에, 수 천 수 만 백성들의 피눈물에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내일부터 언론총파업이 다시 벌어진다고 한다. 용산참사에 이어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부인이 죽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을 맞았다. 실로 이 정권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 흘리고 고통의 눈물을 쏟고 있다. 어린 유신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대사에 감동했던 나는 오늘 또다시 유신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利)를 따지기 전에 진심으로 분노하면, 그러면 반드시 세상이 변할 것이다.” 목검을 들고 수천 번을 헤아리며 내리치다 목검이 부러지자 다시 새 칼을 들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직하다 못해 무지하게까지 보이는 유신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 유신랑이 그럴 땐 웃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웃을 수가 없었다. 제작진의 메시지를 얼마쯤은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유신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분노의 바탕에 깔린 진심을 보았다. 

사람들이 진심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성실한 모습이다. 우직함과 성실함으로부터 표출되는 분노야말로 세상을 흔들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미실의 계략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야유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은 오늘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유신의 시대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진심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파비  

ps; 흥무왕릉 사진을 따로 구할 수 없어 부득이 김해 김씨 가락종친회 까페에서 인용했습니다. 크게 누가 될 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상단 이미지의 출처는 MBC입니다. 모두 본문의 이해를 돕는 목적으로만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미지의 모든 권리도 또한 두 단체에 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고맙습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