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02 학교가 세상을 바꿀까, 세상이 학교를 바꿀까? by 파비 정부권
  2. 2008.10.12 하재근, "이명박 교육정책은 대한민국 패망의 길" by 파비 정부권 (37)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운동 중에 하나가 대안학교 운동이다. 소셜디자이너란 이름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온 박원순이 그 대안학교들을 둘러본 감상과 거기에서 발견했다는 희망을 들고 왔다.
 
「마을이 학교다」. 박원순이 발견한 희망은 이 책에 담겨있다. 그는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운 절망의 그늘과 좌절의 한숨 소리에 탄식했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하고, 공동체는 회색의 암담한 미래로 채색되고 말았다.”

교육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공교육의 자리를 대신했으며, 가계는 사교육비 부담으로 휘청거린다. 박원순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새순들이 곳곳에서 돋아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을이학교다함께돌보고배우는교육공동체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 한국에세이
지은이 박원순 (검둥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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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에서 찾을 수 없는 희망을 대안교육에서 찾고 있었는데, 이미 네트워크를 이루고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발견한 것이다. 박원순이 둘러본 20개가 넘는 학교들은 실제로 기쁨과 희망이 충만해 있었다.

대안학교.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대안학교란 어떤 것일까? 제도권 교육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학교? 아니면,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면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려는 시도?

어떤 정의든 기존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교육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운동인 것만은 분명하다. 「마을이 학교다」에 등장하는 대안학교들은 하나같이 행복이 넘쳐났다. 우선 교사들이 가장 행복해보였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넘쳐나는 교사, 그들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풍족한 거름이 아닐까. 

대안교육으로 가장 덕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학생과 학부모들일 것이다. 우선 학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고도 보다 양질의 제대로 된 교육을 아이들이 받을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더 이상 주입식 교육의 저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대안학교들이 초등학교 과정에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행복이 넘쳐나는 교육,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식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물론 풀무학교와 이우학교처럼 중등학교 과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무학교는 우리나라 대안학교의 1호로 인정받는 학교다. 1950년대부터 그 명맥이 이어왔으니 역사도 오래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이것이 이 학교의 정식 명칭이다. ‘더불어 사는 평민’을 배출하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철학이다. 이우학교는 풀무학교와는 많이 달랐다. 민족사관고가 생각났던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튼 아직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안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과정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실로 대단하다. 나도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지만, 자라나는 새싹에게 스스로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으리라.

그러나 그런 학부모들도 중등학생의 학부모가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우학교는 그런 학부모들의 이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믹스한 그런 학교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우학교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100대 수능 학교에 들고 외국어와 언어 영역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 아닌가.

만약 이우학교가 나름 제도권 교육 시장에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성적을 내지 못했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라도 이 학교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였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성을 지향하는 이우학교의 대안교육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것은 틀림없어보였다.

결국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매우 높고 계속 확산되어가는 추세에 있지만, 그 유용함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의 일이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꿈은 깨어진다. 그들은 어차피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비전이요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 글의 초두에 물었듯이, 과연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교육을 통해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실천하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세상은 썩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몸에 향수를 뿌리고 깨끗한 옷으로 치장을 한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교육이 진실로 교육다운 교육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선 먼저 세상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핀란드의 교육을 배워야 할 모델로 삼는다. 일전에 진보신당의 심상정씨가 핀란드에 다녀와 그쪽 교육 실태에 대해서 보고 겸 강연을 하는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긴 바뀐 세상 아닌가? 우리완 질적으로 다른 사회가 아닌가? 그래서 그런 교육혁명도 가능했던 것 아닐까?”

아마도 우리 사회도 핀란드처럼, 아니 그 반만이라도 닮은 세상이 된다면 박원순이 기쁜 마음으로 답사한 대안학교들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마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는 그런 학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무상급식만 말해도 좌파에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다.

마을이 학교다 - 10점
박원순 지음/검둥소

핀란드에서 온 어떤 여성이 말했던가. “한국의 좌파는 핀란드에선 우파도 못 돼요!” 이 말을 거꾸로 하면 “핀란드의 우파는 한국의 좌파보다 훨씬 좌파적이다!” 이런 말이 되겠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어떻든 박원순이 유람한 유토피아들은 매우 의미 있는 것들임에는 분명하다.

이런 작은 노력들이 절망으로 가득 찬 세상에 빛을 던져주고, 장밋빛으로 물든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정말 언젠가 세상이 바뀌어서 굳이 너나 할 거 없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 병폐가 사라지는 그런 날이 오면, 이들이 심어 놓은 값진 노력들이 세상을 더욱 풍요롭고 평화롭게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은 언제나 올 것인가. 대안교육이 주류교육이 되는 그날! 사회가 소득 순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현실이 계속되는 한, 학교도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길 수밖에 없는 고질적인 상황은 타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기 전에는 대안교육이 튼실하게 뿌리내리길 기대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마을이 학교다」에 나오는 학교들의 노력들이 더욱 가치 있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10월 10일, 경남도민일보 독자모임이 연속으로 기획한 마지막 순서는 하재근 선생이 강연을 맡았다. 하재근은 작가이며 칼럼니스트이며 시사평론가다. 그리고 '서프라이즈' 편집장이다. 다양한 그의 명함이 있지만, 지금 그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불꽃같은 정열을 담아 건내는 명함은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 하재근이다.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 강연중인 하재근 처장. 사진=도민일보 김주완 부장



그의 인상은 불혹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나이답지 않게 매우 젊어보였는데, 어쩌면 촛불 신세대에 가까워보인다고 생각되었다. (그가 구사하는 부드러운 윗지방 사투리가 그렇게 느껴지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런 그의 젊은 인상은 교육문제를 다루는 무거운 강연에 더한 신뢰를 주었다. 어차피 미래는 젊은이들의 것이며, 기득권에 절은 기성세대는 과거의 명예와 현실의 안락함이나 파먹으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회개혁의 출발은 '학벌 없는 사회'로부터 

그는 '학벌 없는 사회' 없는 '사회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했다. 여기에 한 청중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나름대로 교육문제를 걱정하며 교육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대안학교 같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안학교운동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글쎄요. 대안학교 등도 나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사회가 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은 일은 좋은일로서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저는 좋은 일 하는 것보다는 사회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안학교는 제 관심분야도 아니고 별로 잘 알지도 못합니다."

요약하자면, '사람이 살만한' 사회는 학벌 없는 사회, 즉 교육평준화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것이고, '학벌 없는 사회'는 핸재의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또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개선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답답하지만 현실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안티를 외치는 반대투쟁 일색인데,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정치로부터 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선별하지 않는다

그가 강연 맨 마지막에 소개한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교육제도는 참 꿈같은 이야기로만 들렸다. 독일만 해도 교육평준화가 100% 이루어진 나라라고 한다. 그런 나라들에선 입시경쟁이나 사교육비 문제 같은 것은 아예 존지해지도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이만해도 우리에겐 꿈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16세가 되기 전까지는 선별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로 핀란드의 교육원칙이라고 한다. 이 나라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 구별 없이 함께 학교에 다닌다. 그래서 어떤 학교에서는 청각장애인 한 명을 위해 특수교사를 따로 배치하고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수화를 배운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이들 나라들의 국가경쟁력은 어떨까? 온통 고액과외와 특목고로 도배한 것도 모자라 특수신분의 자녀들만 다니는 학교까지 별도로 만들겠다는 우리나라와 경쟁력을 비교해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일제고사로 학생들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줄을 세워 선별해보겠다는 우리나라의 경쟁력과 비교해보면 도대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인민의 집이어야 한다

그러나 애시당초 이들 선진 북구 나라들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려는 자체부터가 틀려먹었다. 이들 나라들은 보통 국민소득이 6만 불을 넘어가는 선진국에다 국가경쟁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들 나라들과 비교를 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실례인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국가 기본정책은 "국가는 인민의 집이어야 한다."는 슬로건에 잘 녹아있다. 이들 나라들은 1930년대 이후 사민당과 노동당 등 좌파정당이 정당지지율 1위 자리를 내어준 적이 단 한번도 없는 나라들이다. 스웨덴의 5대 정당을 들어보면 사민당, 보수당, 농민당, 공산당, 녹색당 순이다. 보수당을 제외하면 모두 좌파정당이다. 

스웨덴은 1932년 이래 사회민주노동당(Swedish Socisl Democratic Party, 사민당)이 70년 동안 집권했다. 세계에서 좌파정당이 가장 오래 집권한 나라다. 그리고 오랜 좌파정권의 결과 세계 최고의 평등도를 자랑하면서도 에릭슨, 볼보, SABB와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실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할 대목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에게도 국가는 인민의 집일까?

그 답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만 들여다봐도 금방 답이 나올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보면 선택권, 자율성 등 온갖 미사려구를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교육의 선택권, 자율성이란 다름 아니라 교육을 말살시키고 국가를 패망으로 몰아가는 길이라고 하재근은 자신 있게 말한다. 

대한민국 교육정책은 국가 패망의 길

그가 말하는 패망이란 우리나라가 남미의 제국들처럼 다수의 빈민과 소수의 부자들로 구성된 그런 나라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이 성공을 거둔다면 우리나라는 남미의 여러 나라들처럼 2~30%의 국민만이 겨우 정상적인 소득을 얻어 생활하고 나머지는 기초적인 수입조차 어려운 그런 나라가 되고 말 거란 것이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의 교육제도는 사교육의 몰수에 있다. 만인은 평등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를 가능하게해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교육이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가 벌이는 교육정책이란 것들은 민주공화국의 거의 유일한 버팀목마저 잘라버리겠다고 도끼날을 갈고 있는 꼴과 하나 다르지 않다. 

하재근은 우리나라는 재벌과 자산가집단, 그리고 이들과 외국자본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김앤장' 같은)로펌들로 구성된 '그랜드써클'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다. 그리고 이명박이 추진하는 교육정책은 '그랜드써클'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고 항구화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이다.
 
하재근은 잘라 말한다. "이것은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국민과의 전쟁을 통해 만들려는 '이명박의 나라'

그러나 하재근은 그가 말하는 '이명박의 나라'(필자주; 이명박의 교육정책이 실현된 나라)는 이미 1993년 김영삼정권 이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꾸준히 진행돼왔다고 말한다. 1995년 발표된 정책(5·31교육정책)의 핵심인 '소비자주권'과 '자유화'의 이념은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소비자주권'과 '자유화'란 이 그럴싸한 개념은 우리가 재래시장을 죽이고 대형마트를 선택해야하고, 값비싼 사교육비를 물어가며 일류고등학교를 선택해야하고,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를 선택해야하는 모순에 가득차고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소위 자유와 주권이 거꾸로 자유를 속박하고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빼앗아가는 역설을 만든 것이다. 

이명박의 모든 정책의 종점은 미국에 있다. 우리나라를 미국처럼 만들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 정책의 종착점이다. 산업경제모델을 포기하고 금융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식 경제를 따라가겠다는 것이 또한 이 정부의 기본 노선이다. 그리고 교육정책도 바로 이런 미국식 추종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번에 들끓는 논란 속에 치러지는 '일제고사'도 기실 미국에서 먼저 실시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순으로 진행되었던 것처럼 일제고사도 영국-미국 순으로 실시되었고, 이제 절대다수 여론의 반대 속에 이명박 정부가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우리가 본받을만한 나라인가? 대답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이미 오래전에 유명한 '쌍둥이 적자'만 남기고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파산선고를 받았다. 빈부의 격차, 인종간 갈등, 고질적인 실업으로 병폐화된 나라가 또한 미국이다. '그랜드써클'의 원조는 사실 미국에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아이비리그'란 곳이 바로 '그랜드써클'의 자녀들이 차별적인 교육을 받고 다시 대를 이어 '그랜드써클'이 되는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다. 물론 부시도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이명박 교육정책, '아이비리그'식 백년지대계

지금 대한민국 교육은 완전 비상사태다. 박정희가 군사독재의 와중에서도 그나마 만들고 유지해왔던 교육평준화 정책을 이명박이 나서서 쓰레기통에 쳐박으려고 하고 있다. 유럽의 복지사회모델은 거들떠보지도 아니하고 미국의 신자유주의 모델만 고집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더불어 갖은 혼맥과 인맥으로 짜여진 거미줄, '그랜드써클'이 영원히 잘먹고 잘사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백년지대계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동시에 민주공화국을 해체하고 전근대적 봉건사회로 나라를 되돌리려는 국민과의 전쟁이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97% 평민과 천민의 자제들은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해 3%에 불과한 소수 양반계층, 그 중에서도 사대부 명문세가의 자제들은 독선생을 두고 우아하게 공부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평준화의 해체는 다름 아닌 신분제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재근은 말한다. 곧 과학고나 외국어고 같은 특목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랜드써클'만 다니는 특수학교가 생겨날 것이다. 그곳에서 이명박과 같은 '그랜드써클'의 자제들은 일반서민의 자제들처럼 '박 터지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우아하게'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대 등 상위대학들은 이들 우아하게 공부한 학생들로만 채워지는 '그랜드써클' 양성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교육에서 '소비자주권'과 '자유화'가 바로 이런 사회로 가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바야흐로 '우아한 가족', 그랜드써클들만 사는 나라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2008. 10. 12.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