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11 폭설에 묻힌 춘삼월 만날재의 하얀 사진들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4.16 한국에서 제일 높은 고개 두문동재를 넘어 by 파비 정부권 (3)

엊그제 밤, 겨울에도 볼 수 없었던 비바람 소리가 윙~ 윙~ 창문을 흔들었습니다. 찬바람이 방안으로 스며들며 떠난 줄 알았던 추위를 다시 몰고 왔습니다. 발이 시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요. 그리고 두어 시간 후에 다시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더니 비바람이 눈바람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정원수 너머 어둠에 묻힌 지붕위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는 게 보이실 겁니다. 강풍에 실려 온 눈보라가 마치 우리 동네를 북국에 실어놓은 게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답니다.


플래시를 켜고 찍으니 눈송이가 내려오는 게 보이시죠?


다음날 아침, 세상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아직 눈보라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겨울보다 훨씬 더 춥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춘삼월에 눈보라를 동반한 강추위를 맛보게 되다니... 그래도 눈을 처음 본 딸아이는 마냥 즐겁습니다.


우리 집 옥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출근시간인데도 차들이 한 대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후에 살펴보니 딱 한 대가 나갔더군요. 누군지 몰라도 대단히 용감한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 옆은 우리 집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딸아입니다.

학교에 오지 말라는 문자를 받고 신이 난 딸아이와 함께 만날재에 올랐습니다.  마산만이 보이는군요.
이날만큼은 마산만도 매우 아름답습니다.


만날재 공원에서 우선 사진부터 한 컷. 
그런데 색깔이 이상하군요. 
3인치 모니터 창에 비친 그림도 너무 하얀색이라 눈 때문에 그런가 했는데, 집에서 뽑아보니 영 색감이 아니군요.   


계속 하얗습니다. 저 멀리 마산만의 푸른 물결과 창원, 진해를 가르는 하얀 머리의 산줄기가 보여야 하지만 그저 하얀 도화지 위에 딸아이와 소나무만 덩그러니 그려진 느낌이네요.


음, 여기선 은근하게 배경이 보이는군요. 역시 하얀 눈의 빛깔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일까요?  


빨간 나뭇잎이 너무 곱습니다. 눈속에서 보니 붉은 색이 더 붉어 보이더군요. 나무 이름은 제가 모릅니다. 
저는 고구마 줄기와 담쟁이 넝쿨을 잘 구분 못한답니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지요. 서울 종로에 갔을 때 도로변에 단지(화분인데 보통단지보다 훨씬 크더군요) 비슷한 것에 심어놓은 식물을 가리키며 한 일행이 물었습니다. 
"니 저기 뭔지 아나?" 물론 그는 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짓궂은 장난이 하고 싶었던 게지요. 
한참을 망설이던 제가 자신 없이 대답했습니다. 
"담쟁이 넝쿨 아닙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앙천대소를 하며 말했습니다. 
"하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 이기 어떻게 담쟁이 넝쿨이냐, 고구마 줄기지." 

사실 저는 담쟁이 넝쿨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단지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담쟁이 넝쿨이 그때 생각났을 뿐이죠.   


이날은 평일인데도 유난히 등산객이 많았습니다.


만날재 공원에 심어진 조경숩니다. 역시 나무 이름은 모릅니다.


그 이름 모를 나무 앞에 딸아이가 포즈를 취했습니다.
눈밭을 굴러다니던 딸아이가 잠깐 저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었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색깔이 너무 이상합니다.
그래서 카메라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글쎄 이럴 수가….
노출레벨을 가장 오른쪽에 맞추어 놓았군요. 누가 그랬을까요?
저는 원래 이런 거 손 안대는 편인데, 틀림없이 아들 녀석입니다.
이 녀석은 뭐든 손에 쥐면 가만 놔두는 법이 없거든요.

아무튼 레벨을 다시 가운데로 맞추고 다시 찍었습니다.
이제 제대로 나오는군요.
아뿔싸~, 어쩐지 눈사람 윤곽이 희미하더라니.


에혀~ 눈사람을 눈 속에 파묻은 꼴이 되었네요. 그러나 어쨌든 눈 구경은 실컷 하셨지요? 만날재에 올라가니 도심에서 만난 눈과는 질이 달랐답니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도록 쌓인 눈밭 그리고 아무도 밟지 않은 그 눈밭에서 뒹구는 재미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그런 경지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 딸아이는 10년 만에, 정확히는 8년하고 4개월 만에 처음 보는 눈이었습니다. 혹시 어디서 눈을 봤을지는 모르겠는데, 마산에서는 처음 보는 눈이었답니다. 제게도 물어보더군요.

"아빠도 눈사람 오늘 처음 만들어보나?"
"그래."
"아, 그렇구나. 아빠도 그럼 눈 처음 본 거야?" 
"아니지, 아빠 어릴 땐 눈이 엄청 많이 왔었지." 
"그런데 왜 처음 만들어 봤다고 했어?" 
"아, 마산 와서는 처음이란 말이었어." 
"아, 그랬구나. 아빠 어릴 땐 정말 눈이 많이 왔어?" 
"그랬지. 정말 많이 왔었단다. 네 키만큼 눈이 쌓이고 그랬지. 정말 솜사탕만한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그랬지." 

그렇게 말해놓고 생각해보니 제가 어릴 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군요. 하늘에서 마술할멈이 솜으로 만든 눈송이를 뿌린다고 말입니다. 평소에 열심히 솜으로 눈송이를 만들어 모아두었다가 기분이 좋을 때 땅위로 뿌리는 거지요. 그러면 하늘하늘 눈송이가 푸른빛을 내며 내려온답니다.

그럼 엊그제 밤처럼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마술할멈의 기분이 매우 안 좋을 땐가 보지요? 아무튼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언제 다시 이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자주 왔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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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마산시 내서읍 | 만날재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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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한국에서 제일 높은 고개 
   두문동재 너머 너덜샘에서 고사를 지내고

낙동강 발원지는 어디인가? 옛 문헌들에 의하면 낙동강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산 황지다. 1486년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삼척도호부」편에
황지는 도호부의 서쪽 1 10리에 있으며 물길이 남쪽으로 30리를 흘러 작은 산을 뚫고 나가니 천천(穿川)이라 하는데 곧 경상도 낙동강의 원류라고 했다

또 조선의 모든 지리서들도 낙동강 발원지는 황지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1978년 김우관 교수는 25만분의 1 지형도상에서 태백산 일원에 있는 1634곳의 시원지를 일일이 자로 재어 조사한 결과 천의봉 너덜샘이 최장 발원지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 내었다. 이후 여러 차례 실측에 참여한 학계는 물론이고 국토지리원에서도 낙동강 최장발원지가 천의봉 너덜샘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만 태백시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여전히 황지를 발원지로 고집한다.

 

너덜샘이 황지보다 10여 킬로 상류에 있으므로 최장발원지에 대한 논쟁의 여지가 없을 듯 보이지만, 실상 태백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닐 듯싶기도 하다. 우선 황지는 태백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는데다 커다란 연못을 이루고 있는 황지와 자그마한 옹달샘에 불과한 너덜샘을 비교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못내 아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역. 지금은 관광객만이…

막장에서 석탄을 실어오던 '까시랑차'로 기억나는 탄차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어디인가?
추전역을 떠난 우리는 두문동재를 넘어 너덜샘으로 향했다
. 너덜샘은 추전역에서 두문동재 너머 조금 아래쪽에 있다. 두문동재. 해발 1268m. 해발 855m의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역이요, 두문동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다. 두문동?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대체 고려의 충신들이 숨어 살았던 두문동과는 무슨 관계일까?

 

사마천의 『사기열전』「백이숙제」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영주의 후예로서 상나라 서쪽 서백의 아들 희발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 무왕이 되자 고죽국 영주로서 받는 녹을 받을 수 없다 하여 수양산에 숨어들어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 뒤에 왕미자라는 사람이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캐먹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고 책망하자 이들은 마침내 고사리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고려가 조선에 멸망하자 고려의 선비들도 백이숙제의 전철을 따라 충절을 지키고자 했다. 송의 주자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고려의 선비들에게 수양산의 고사는 지침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현재의 경기도 개풍군에 위치한 두문동에 72명의 고려 유신들이 조복을 벗어 던지고 들어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이에 조선왕조는 군사를 풀어 두문동을 포위하고 이들을 모두 불살라 죽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세인들은 이들 72인의 충신을 일러 두문동 72현이라 부르며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로 이들의 충절을 기렸다. 함께 어느 일행의 설명에 의하면 두문동 충신들 중에 7명이 살아남아 이곳 두문동재 아래 정선 땅에 피난 살았다는데 자연부락의 이름이 두문동이라 한다. 듣고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고 고개를 숙이지 않을 없다.


수양산이
두문불출의 고사가 요즘의 시선으로 보자면 한없이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두문동은 이름만으로도 커다란 표석이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3월의 마지막 주말이었지만 두문동재는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눈은 사람들을 동심으로 끌고 가는 마력이 있는 것일까?
 


 

          
장난끼가
발동한 사람들은 눈을 뭉쳐 서로 던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위에 벌렁 누워 봄볕이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럴 보면 어른 아이가 따로 없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너덜샘으로 향했다너덜샘은 황량했다. 김우관 교수와 이후에 분이 세워두었다는 낙동강 최장발원지 푯말도 보이지 않았다. 누가 치워버린 것일까?

 

다만 너덜샘이란 돌로 만든 비석과 샘터만이 이곳이 너덜샘임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고사를 지냈다. 전주에서 가져온 막걸리를 부어놓고 신정일 선생은 축원문을 읊었다. 낙동강 천삼백 도보기행을 무사히 마칠 있게 해달라는 축원이었다. 고사를 지낸 우리는 음복으로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전주막걸리가 맛있다. 전주비빔밥, 한정식, 전주는 맛의 고장이다. 그러고 보니 막걸리 맛도 기가 막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계곡을 따라 10 킬로 아래에 있는 황지를 향해 출발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 출발점은 황지가 것이다. 신정일 선생은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낙동강 발원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낙동강 최장발원지는 너덜샘입니다. 국립국토지리원이나 수자원공사에서 나온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어요. 그러나 어쨌든 황지가 발원지라고 하는 주장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최장발원지는 너덜샘이고 역사적 발원지는 황지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 싶네요.” 

말하자면, 학계와 지역주민 의견의 절충인 셈이다. 봄볕에 새하얀 눈을 본 즐거움에 장난스러워진 내가 일부러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했다. “저, 공지사항 있습니다. 저는 마산에서 왔는데요. 무려 10여 년만에 흰 눈을 처음 구경했네요. 그것도 봄에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눈값 내놓으라고 난리다. 눈값이라니…. 눈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자유재 아니었던가? 

하긴 이렇게 경비를 들여 태백산 꼭대기에 오지 않고서는 쉬 보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의 눈이고 보면 돈을 내야만 누릴 수 있는 경제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선 돈을 지불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수도물을 믿지 못해 사람들이 마트에서 돈을 주고 생수를 사먹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쨌든 이날 이후로 눈값을 언제 내겠느냐는 시비(?)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황지연을 향해 달려가는 버스의 발걸음은 왁자한 웃음소리와 더불어 경쾌하다. 봄의 전령사들이 밝게 빛나는 태양아래 삐쭉거리며 고개를 내미는 것이 차창밖으로 언뜻언뜻 보인다. 차창으로 달려드는 따스한 햇볕에 사람들의 얼굴색도 밝아지고, 푸근해진 마음은 초면의 어색함도 녹여내는 듯하다. 정말 화창한 날씨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