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3.26 '추노' 잔혹한 반전 뒤에 떠오르는 희망? by 파비 정부권 (2)
  2. 2010.03.20 추노, 노비당의 그분은 진짜 '그분'이었다 by 파비 정부권 (61)
  3. 2010.01.30 양반귀족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 by 파비 정부권 (47)
  4. 2010.01.09 기획의도로 살펴보는 '추노'의 등장배경 by 파비 정부권 (9)
지랄 같은 세상을 향한 업복이의 마지막 분노

큰일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하던 대로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었습니다. 저는 앞에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어서는 안 되며 절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역시 희망 섞인 말을 하면서도 불안했었던 때문이겠지요. 많은 분들의 지적처럼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 무수히 있었고 실은 저도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희망에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한 반전

"그러나 만에 하나 제 생각이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큰일 나는 거지요.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겠어요?"

그리고 결국 그 '큰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분은 노비도 아니었으며 노비당을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더더구나 혁명 같은 건 꿈에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시 출세를 위해 이경식이 시키는 대로 일을 꾸민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도 역시 양반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경식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노비들에게 형님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참겠지만 냄새는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노비들 가까이 가면 냄새가 어찌나 역한지 대업이고 뭐고 당장에 목을 쳐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끝봉이의 주검을 안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광화문 앞에 선 업복이


아, <추노>는 마치 저의 아둔함을 조롱이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잔인한 반전을 만들고 말았네요. 사람 위에 사람 없는 거라던 그분의 진면목이 바로 저런 것이었다니. 그런데 왜 저는 그분이 진짜 그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천 냥짜리 어음 사건을 통해, 물소뿔 상인들과 청인무사들의 피살 사건을 통해 이경식과의 관련성이 복선으로 깔렸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요? 세상을 바꾸자는 그분의 말에 현혹되었던 것일까요? 저 역시도 천한 상것들과 다를 바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알현을 받은 이경식이 이렇게 말했지요. "천것들이란 작은 희망만 보여줘도 죽을지도 모르고 따라오게 돼 있으니." 그랬나 봅니다. 그 작은 희망에 잔혹하게 숨어있는 반전을 보지 못 했던가 봅니다.  

노비당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은 원래 없었다

결국 노비당은, 아니 꾐에 빠진 노비들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초복이와 긴 이별을 해야 했던 업복이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업복이는 끝봉이로부터 그분의 존재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복수를 결심한 업복이는 대궐로 향하고 마침 대궐에서 나오던 이경식과 마주치게 되지요.

이경식과 그분, 그리고 변절자 조선비가 모두 업복이게 죽는다.


그리고 이경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그분, 업복이의 총에 이경식과 그분은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정말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치부를 위해 같은 양반들을 죽이기도 하고, 노비들을 부추겨 세상을 바꾸자는 따위의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이렇게 간단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었다니.

아무튼 애초부터 노비당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마지막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희망이었을까요? 저는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희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길과 태하, 언년이에게서도 희망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대길이의 최후, 역시 멋지다.

대길은 언년이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는 떠나는 언년이를 보며 이렇게 속으로 뇌까렸지요. "네가 살아야 돼.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거다."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베르토 조단이 사랑하는 마리아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추노>의 장혁이 훨씬 멋있었습니다.

휘날리는 머리칼 아래 슬프게 빛나는 눈빛, 루지탕에서 보았던 알랑 들롱의 눈빛 이후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장혁의 눈빛에서도 저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어쩌면 송태하가 청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혜원에게 한 이 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이땅을 떠날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금방 회복될 것입니다. 다 나으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혜원이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그러나 그 말을 통해서도 저는 작은 희망 하나라도 건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송태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송태하는 그저 몰락한 양반에 불과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골에 묻혀 책이나 읽으며 가까운 상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상은 없습니다. 너무 무시하는 것일까요?

업복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노비들


그래도 굳이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저는 오히려 업복이와 한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반짝이 애비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과 이경식을 죽이고 체포되는 업복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이 보이긴 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2, 제3의 업복이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너무나 참혹한, 잔혹하기까지 한 반전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선 그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비당을 만들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할 때 희망은 아침 태양처럼 떠오르는 것이겠지요. 초복이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은실이에게 한 말처럼. 

"은실아,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저건 우리 거야. 왜냐하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녀는 마치 총자루가 업복이의 영혼이라도 된다는 듯이 힘차게 잡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그 총자루는 업복이가 마지막 비장한 결심을 하며 던졌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설령 그 총이 그 자리에 없었던들 들었을 거예요. 총은 업복이의 화신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은 초복이에게도 전해졌을 테지요.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렇게만 되믄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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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노비당 당수 <그분>에게선
홍길동의 얼굴과 허균의 마음이 보인다


<추노>는 초기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노비당 당수를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소위 <그분>이라 불리는 그분의 실체가 무엇일까 모두들 궁금했었지요. 물론 업복이도 그분이 누굴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노비당 패거리 중 어른인 개놈이의 말에 의하면 그분은 "우리 같은 상것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그분이 나타났습니다. 업복이 등이 양반 암살임무를 수행하다 위기에 처하자 바람처럼 나타나 그들을 구한 것입니다. 그분의 무예는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모두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분의 얼굴을 보았는데 이제 갓 약관의 청년입니다. 이렇게 젊은 분이었다니. 

무성한 그분에 대한 소문들

놀란 것은 업복이 등만이 아니었습니다. 열혈 시청자들도 그분의 너무나 젊은 모습에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분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며 지금 그분이라고 불리는 이분은 그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직 어디엔가 몸을 숨긴 채 은밀한 지시를 내리고 있으리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그분이라 불리는 에이전트를 통해 혁명을 준비하고 있는 그분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들을 합니다. 처음엔 기생 찬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일개 기생이면서도 좌의정 이경식의 의중을 들여다보는 노련한 눈을 가졌습니다. 거기다 당차기까지 합니다.

이경식이 사들이는 물소뿔과 관련된 양반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갈 때 그 은밀한 거래들이 모두 찬의 기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찬이 바로 그분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죽은 자들을 빼고는 그 은밀한 거래의 내용을 아는 사람은 이경식과 찬이 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극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동안에도 찬에게는 이렇다 할 그분으로서의 징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새로 들어온 젊은 기생에게 자리를 위협 당하고 있는 처집니다. 가끔 젊은 기생을 흘겨보는 눈에 드러나 보이는 질투는 그녀가 결코 그분이 되기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진짜 그분, 기생 찬에서 이번엔 이경식으로

그러자 이번엔 이경식이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분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것은 좌상 이경식이란 것입니다. 이경식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물소뿔을 사 모으고 있습니다. 왜 물소뿔을 사 모으고 있을까요? 돈을 벌기 위해섭니다. 간단한 이치지요. 그는 자기의 욕망을 위해 청과의 긴장관계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원손 석견은 바로 그 욕망의 세계로 넘어갈 돌다립니다. 그는 이제 목표를 이루었으므로 굳이 석견을 죽일 필요가 없습니다.(그런데 철없는 사위 황철웅은 말을 안 듣고 석견을 죽이겠다고 날뛰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역모사건을 만들어 반대파들을 모두 제거했을 뿐 아니라 곧 창고에 가득찬 물소뿔을 비싼 가격으로 조정에 내다 팔아 큰돈도 벌게 될 겁니다. 여한이 없는 이경식입니다.

그런 이경식의 계획 중에 마지막 남은 하나가 있는데 바로 노비들의 호적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서 북방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청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고 물소뿔은 비싼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분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분이라 불리는 이는 이경식의 하수인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런 설정은 만들어지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노비당은 혁명당입니다. 그저 정권을 바꾸는 정도의 역모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당입니다. 아무리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모인 패거리라도 혁명당은 혁명당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상당한 무력을 확보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차별을 하늘이 내린 법도라고 생각하는 양반들

이경식이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노비당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혁명을 부추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력은 이경식의 머리에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양반 중에 양반입니다. 그런 사람이 노비들이 단결해서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의 머리로선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들 양반들은 노비를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 냥 혹은 쌀 한 섬 반에 거래되는 물목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노비들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앞장선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양반들 중에도 이런 사상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마 <추노>의 배경이 되는 시대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허균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양반 중에서도 양반이었습니다. 그의 부친은 동인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의 형제들 또한 자질이 뛰어나서 자기 당파에서 두각을 내며 주도적 인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늘 서자들, 상것들 하고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는 홍길동전을 지어 상것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는 혁명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혁명을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그는 체포 됐고 모진 고문을 받은 다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참혹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혁명가 허균, 그의 이름을 부르고 듣는 것조차 역심 

죽은 다음에도 그의 시신은 분해되어 이곳저곳에 전시되었다고 하니 그 참상을 어찌 말로서 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조선조가 다할 때까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역심을 품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조선조에 역모사건이 한두 건이 아닌데, 유독 허균에게만은 왜 그랬을까요?   

허균이 실행에 옮기고자 했던 역모는 보통 역모가 아니라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혁명은 반상의 차별, 적서의 차별을 없애고 노비를 착취하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양반들이 이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에겐 아마도 땅을 뒤집고 하늘을 무너뜨리겠다는 소리로 들렸겠지요.  

자, 다시 이경식 이야기를 해보지요. 이경식이 물소뿔을 사 모으며 청과의 전쟁을 획책하던 시대는 허균이 능지처참을 당한지 불과 이십여 년 밖에 되지 않았을 땝니다. 그러니 위에 전제한 것과 달리 이경식이 노비당이 체제전복을 기도할 수도 있다는 상상을 전혀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 왜냐? 노비당의 혁명을 상상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역심을 가진 것이며 도무지 그들 세계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간이 큰 이경식이라도 그것만은 절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이경식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에 불과할 뿐인 것이지요.

그분의 진정한 정체는?


그럼 그분은 누굴까요? 우리가 그분을 처음 봤을 때 너무 젊은 나이에 놀랐고, 그저 칼 한 자루 들고 종횡무진 하는 모습이 못 미더워 의심을 하기 시작한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분이 말만 앞선 사람이 아니란 것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각 처의 노비당 당원들이 모이고, 선혜청을 공격함으로써 그 실천적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정말 그분의 말처럼 궁궐을 들이칠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원기윤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그분의 모습은 실로 지도자의 판단과 강단을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실은 원기윤의 처리를 보면서, 그분이 비록 의기는 충천했으되 사리판단에 너무 어두운 것 아닌가 걱정을 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의심을 깨끗이 씻어주었습니다.

선혜청을 습격하다 다리를 다쳐 관군에 잡힌 칼잡이 노비부대의 강아지―이름도 참 특이합니다. 게다가 그는 다리를 다쳐 절뚝거리는 개 신세가 되어 체포됐지요. ㅋ^^―를 업복이에게 죽이도록 지시한 그분의 행동이 잔혹한 이경식을 그대로 빼닮은 거 아니냐는 의견을 내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업복이에게 말했습니다. "형님, 관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 동지들의 이름을 불고 죽느니보다 차라리 우리 손에 깨끗하게 죽는 것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분은 노비당의 당원이 체포됐을 때 가해질 고문의 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설픈 인정은 오히려 동지들의 안위를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분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진짜 '그분'

그러므로 이경식처럼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잔혹한 행위와 그분의 대의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글쎄요, 노비당의 당수 그분의 얼굴에서 홍길동의 얼굴을 보았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노비당의 모습에서 활빈당을 상상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그분의 마음속에 허균이 앉아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치다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제가 보기에 그분은 진정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의 혁명이 비록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연출자가 말한 것처럼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면 어쩌면 그분의 혁명도 실패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남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어쩌면 월악산의 화적패당들과 한패가 될 수도 있겠지요.

다시 '어쩌면'이지만 월악산은 율도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율도국은 마치 토마스 모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 같은 곳이겠지요. 유토피아는 곧 인본주의의 상징 아니겠습니까. 그분은 자기에게 굽실거리는 노비들을 향해 형님들이라고 부릅니다. 형님 소리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노비들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하지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겁니다."
 
그리고 어느 날 노비당원들이 "혁명이 성공하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하고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형님들이 드나드는 대궐의 문지기가 하고 싶습니다." "아니 왜요?" "그래야 매일 잘 사시는 형님들 얼굴을 뵐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래 저분이 진짜 바로 그분이구나!" 하고 느꼈답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제 생각이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큰일 나는 거지요.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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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추노꾼 이대길의 정체에 대한 물음, "대길이가 추노꾼이 된 까닭?" 
"사랑을 쫒는 연인? 원수를 쫒는 복수의 화신? 아니면, 새세상을 쫒는 혁명가?" 
 

이대길(장혁)은 양반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착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대길은 노비도, 천민도, 평민도 아닌  여전히 현재에도 양반이란 사실입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모두들 잊고 있는 듯합니다. 그것은 대길이 저자에서 거의 천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천민들에게조차 손가락질을 받을 만큼 천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추노꾼 이대길은 양반귀족이다

그럼 대길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입니다. 대길의 집안이 몰락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추노>는 언년이(이다해)의 오라비인 큰놈이(조재완)가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가솔들을 모조리 도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약간의 의문이 있습니다.

과연 큰놈이가 혼자서 대길의 집안을, 그러니까 대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 많은 수의 노비들을 모두 죽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듭니다. 아무리 집에 큰불을 놓았다고 하더라도 몇 명은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도 남지 않고 모조리 죽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대길의 집에 불을 지르고 언년이를 데리고 도망친 큰놈이가 이후에 큰돈을 벌어 양반까지 사서 신분상승을 할 정도의 큰 재목이었다면 이미 노비 시절에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대의 방화사건에는 공범들이 있었고, 그래서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멸문을 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큰놈이도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토록 치밀한 성격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저지르고도 남을 만한 위인이란 생각도 듭니다. 그럼 첫 번째 의문은 별로 문제가 안 되는군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 이건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추노>가 끝날 때까지 두고두고 살펴보아야 할 핵심 주제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집이 불에 타고 가솔들이 모두 죽었다고는 하나 대길은 양반이다. 게다가 대길의 집안 경제를 지탱해주었을 전답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땅으로 꺼지는 것도 아니다. 집은 그저 주거용일 뿐이고 경제적 기반은 역시 전답, 즉 부동산이다. 부동산은 말 그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이 불탔다고 하더라도 대길은 그대로 양반이며 지주다."

양반귀족 이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이것이 오늘 하고 싶은 이야깁니다. 대길은 왜 양반신분을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으로 살고 있을까? 아니 신분이란 얻고 싶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양반 신분이란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비 신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대길의 집안이 멸문했다고는 하지만 친척도 있을 것이고, 관청에서도 대길의 신분을 보증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당시 인구구성으로 보아 양반은 5%를 넘지 않는 소수였으니까요. 그러니까 대길은 양반신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저자에서 추노꾼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고 있을까?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대길이 언년이를 잊지 못해 찾기 위해서란 겁니다.
 
이는 대길이가 언년이의 초상화(요즘 같으면 몽타쥬 또는 수배사진)를 그려달라고 방 화백(안석환)에게 부탁하는 장면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대길은10년 동안 전혀 변하지 않은 언년이의 초상화를 고집합니다. 대길이에게 10년은 정지된 시간이죠. 대길에게 추노는 애타는 사랑을 찾기 위한 대장정입니다. 그럼 추노꾼이 된 다른 이유 하나는 무엇일까?

복수하기 위해섭니다. 사랑이 컸던 만큼 복수심의 크기도 상상 이상일 겁니다. 다음 주 예고편을 보면 대길은 백호(데니안)를 통해 언년이의 실체를 어느 정도 눈치 채게 됩니다. 설화(김하은)를 이용해 큰놈이가 김성환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집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섬뜩한 표정으로. "주인 배신하고 도망친 노비 연놈들 싹 다 잡아서 돌려 놔야지, 원래대로." 

예고편만 보아서는 대길의 심정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큰놈이가 휘두른 낫에 입은 칼자국 가운데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는 사무친 원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 차가운 눈동자 저 뒤편으로 잊을 수 없는 언년이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장혁만이 만들어낼 만한 이 복잡한 표정들은 실로 압권입니다.

냉혹한 추노꾼 이대길,
그러나 심장 속엔 따뜻한 피가 흐른다


그런데 대길에겐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바로 돈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블로거 초록누리님도 이미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길은 매우 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지만, 실은 누구보다 정이 많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결국 대길의 운명을 이토록 질기게 만든 까닭도 누구보다 따뜻한 정이었습니다. 그는 노비를 사랑할 만큼 진실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온정은 그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원의 손길이 되기도 합니다. 짝귀가 그렇고 대길이 풀어준 노비 모녀가 그렇습니다. 설화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모두 나중에 대길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 대길이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으로부터 5천 냥을 이미 선금으로 받고서도 받았다는 내색은커녕 5백 냥짜리 추노라고 속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대길이 왜 그랬을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알던 대길과는 완전 딴판이었으니까요. 대길은 천지호(성동일)와는 다르지 않습니까? 천지호조차도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이 저자의 법도라고 철썩 같이 믿습니다. 

그런데 왜? 무려 4천5백 냥이나 속이는 것은 최장군(한정수)이나 왕손이(김지석)에겐 배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추노>를 볼 때마다 늘 염두에 두고 봤지만, 그 답을 알아낼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이 대길이 추노꾼이 된 연유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란 짐작은 하지만, 확신할 만한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초록누리님은 자신의 블로그에 <추노>8부 첫 장면에서 그 단서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짐작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았지요. 8부 첫 장면은 대길이가 여종 언년이를 업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요?"
"과거에 급제해야지."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아주아주 높은 벼슬을 할 거야."
"그러면요?"
"나라를 바꿔야지."
"어떻게?"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들 거야. 그래서 너랑 같이 살 거다, 평생."
"치, 거짓말."
"참말."

이대길의 꿈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세상을 만든다고요? 그건 바로 혁명입니다. 혁명을 통해 체제를 바꾼다는 의미지요.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법도인 나라를 없애겠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대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의 신>에서 강석호 변호사(김수로)가 말한 대사와 참으로 흡사하구나.' 강석호가 그랬죠. '세상을 바꾸려면 공부를 해서 천하대에 가서 법을 바꿔라' 

그런데 초록누리님에 의하면, 이대길은 공부를 해서 세상을 바꾸는 쪽보다 천민들과 작당―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말이지만, 굳이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당을 만든다는 뜻이죠―을 해서 세상을 바꾸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지요.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짐작이 영 터무니없는 것은 아닙니다. 5천 냥의 용처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해보았던 부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좌의정 이경식을 만났던 정자에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대길을 바라보던 기생 찬(송지은)이 생각납니다. '만약 그녀가 노비당에 양반 살해를 명하는 '그분'이라면 이대길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아직은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언년이에 대한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갈등 때문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갈등의 감정이 이끄는 행로는 추노꾼 대길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소용돌이는 혁명을 꿈꾸는 노비당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좌의정 이경식에게 부하들을 하나씩 잃게 되는 천지호도 결국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겠지요. 그는 귀족세계가 무슨 짓을 하든 저자의 법도에 관여만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도 결국 냉엄한 벼슬아치의 세계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요.

무서운 붓 든 자들,
그들에게 사람은 명분을 이루기 위한 도구인가

그리고 하나 더 확실한 슬픈 사실이 있습니다.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노비당, 노비들, 이대길, 천지호, 이 모든 사람들은 결국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이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8부에서 전 좌의정 임영호를 대신해 당파를 모아놓고 송태하를 중심으로 이룰 대업에 관해 역설하던 조선비(최덕문)가 한 말이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결국 송태하를 배신하게 될 인물입니다.

조선비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명하여 노비가 되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송태하(오지호)의 과거 부하들에게 격문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모두 한때 조선에서 나노라하는 무장들이었습니다. 조선비는 노비들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 당파의 일원들에게 "우리의 목표는 거병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리고 그 거병에 이들 노비들이 앞장 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거병이네. 그들이 장수가 되고 뜻을 따르는 백성들이 군졸이 되고 우리는 그들 모두를 이끄는 머리가 돼야 함을 잊지 말게." 이 대목에서 불현듯 최장군이 대길에게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의미심장한 대구는 <추노>에서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업복이(공형진)와 끝봉이(조희봉)의 대화를 한 번 보시죠.

"너는 저 그 양반 본 적이 있나?"
"아이, 그 양반이 뭐여, 그분한테. 그리고 그분은 양반이 아녀, 우리 같은 상놈이지."  
"아이그, 무식하긴, 상놈이 뭐나, 상놈이. 천민이란 좋은 말 놔두고선."
"자네가 언제 글을 깨우쳤나. 그런 문자속을 주워 담고."
"그야 뭐 참~"

이때 살인지령을 하달하는 편지가 달린 화살이 날아와 박힙니다. 그러나 문자속을 자랑하던 업복이는 한 자도 읽을 수 없습니다. 끝봉이가 "염병하고, 이것이 흰 것은 종이이고 검은 것은 글자인디? 어디~" 하면서 편지를 업복이에게 건넵니다. 그러나 업복이도 까막눈이긴 마찬가집니다. "뭐여, 문자속은 다 주워 담더니 언문도 못 깨쳤어?"

거대한 음모를 암시하는 말,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이 사진처럼 이들은 한패가 될 수 있을까?

"언문 깨쳐야 뭐 호랭이 사냥을 잘하나? 포수가 불만 장 댕기면 되는 거지, 무슨 참." 이건 단순하게 극에 재미를 주기 위한 코미디가 아닙니다. 이 대화 속에는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깨우쳐주기 위한 장치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장치를 업복이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업복이와 노비당의 뒤에 도사린 무서운 음모에 대한 암시인 것이죠. 아무튼 <추노>도 벌써 3분지 1이 지났습니다. 이제 서서히 그 음모의 윤곽이 드러날 때가 되었습니다. 기생 찬이 어떤 형태로든 노비당과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대길이 이 당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곧 그도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이대길, 송태하, 천지호, 노비당의 관계들이 새롭게 정리될 것입니다. 쫓고 쫓기던 관계가 동지가 되고, 동지였던 자들이 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소용돌이가 몰아치더라도 최장군이 늘 염려하던 한 가지만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네."
 
그 '무서운 자들'이란 민중의 이익보다는 알량한 신념이나 명분에 목숨 걸기도 하고, 때로는 당파의 이해타산을 위해선 배신도 밥 먹듯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최장군의 말이 아니어도 이대길은 양반들의 생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부할 힘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제목에 담긴 뜻과 똑같습니다.  

"대길이 추노꾼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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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




지금껏 우리가 보아온 사극은 대부분 지배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를 열광시켰던 <선덕여왕>도 결국은 지배자들의 이야기였지요. 그러나 <추노>는 다릅니다. <추노>는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노비들에 대한 이야깁니다. 양반의 나라 조선에서 노비는 인간이 아닌 품목으로 분류되는 물건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노비의 숫자가 급증하게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드라마 <추노>에서는 그 시기를 임진왜란 이후 인조시대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조금 다를 수가 있습니다. 노비의 수가 급격하게 불어나는 시기가 임진왜란 전후보다도 조선시대의 부흥기인 숙종~영조시대에 더했다는 주장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시기가 조선에서의 르네상스라는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 신분질서의 붕괴를 촉진하고 부익부 빈익빈이 사회의 새로운 현상으로 대두하는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일면 수긍이 가는 점이 있습니다. 대규모의 거상들이 출현하고 부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그 반대편에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빈농들이 소작에서 노비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 연구결과가 별로 없으니 실태를 안다는 것이 어려울 뿐입니다.  대개 그렇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 연구는 주로 왕조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료가 왕조에 몰려있기 때문이란 한계점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도 '태정태세문단세'를 외는 식이었지요. 

<추노>는 조선 인조시대 당시 노비의 수가 인구의 절반을 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머지 절반의 인구가 왕족과 양반, 평민들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오늘날의 인구구성으로 보자면 왕족과 양반은 상류계급이요, 평민은 중산층과 비교할 수 있다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노비들은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추노> 홈페이지 기획의도를 살펴보면 여기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물론, 세상에 정답이란 없습니다. 답이란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노> 제작진은 기획의도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왜 지금 우리는 '도망노비'를 말하려는가?" 

우리는 천성일 작가의 말을 통해 그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극은 '어떤 시대를 쓰는지' 보다 '어떤 시대에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희망은 작고 부질없지만, 그것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작가는 추노를 통해 바로 오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약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각자의 얼굴을 저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우리가 저잣거리를 살아가는 그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화폐가치가 인생의 값어치로 손쉽게 매겨지고
'88만원 세대'라던가,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구들로부터 눈길을 떼지 못하는 현재의 모순
그 시대와 등가로 놓을 순 없다하더라도
맨몸으로 부딪혀 싸우지 않고서는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답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큼은 여전하기 때문인지도.

드라마 기획의도는 계속 말합니다.

이런 세상의 모순이 극에 달했던 때가
드라마 <추노>(推奴)가 그리려는 시대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던 '절반 이상'의 사람들 중에는
한 때 노비였지만 도망쳐 인간답게 살려는 이가 있고
지옥 같은 저잣거리에서 스스로의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
노비들을 잡아들이며 맨몸으로 분투하는 이가 있고
노비로 전락해서도 세상을 향한 인간으로서의 소명을 버리지 않으려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나름의 절박한 입장이 서로의 목을 겨누는 날카로운 칼날이 되곤 했었을 터이다.
그 사연 위에 드라마 <추노>의 이야기는 씌어진다.


그래서 <추노>에서 블로거 자이미님의 말처럼 누구보다 <추노속 양반사냥꾼 업복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업복이(공형진 역)는 '마누라 속곳 벗기는 것보다 쉽게'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관동 포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대의 빚으로 인해 노비로 팔렸지만, 머슴질 수삼 년에 견디지 못하고 탈출했다가 추노꾼 대길에게 잡혀 왼쪽 뺨에 노비 문신이 새겨집니다. 

그리고 원한에 사무친 그는 마침내 '양반을 모두 죽여 상놈의 세상을 만든다'는 당에 입당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혁명당원이 된 셈입니다. 업복이는 <추노>에서 그저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닙니다. 이대길, 송태하, 황철웅, 김혜원(언년이)과 더불어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지요.   

예정된 대로(!), 업복이는 결국 좌절하고 말 것입니다. 그는 진즉에 "칼 든 자들보다 붓 든 자들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블로거 자이님'의 우려처럼 <추노>는 "단순히 사회적 분위기를 이용한 기획의 산물"이거나, "진정한 사회적 변혁을 꿈꾸는 급진적 드라마"이든지 아니면 역으로 "이룰 수 없는 꿈의 잔혹함을 보여줌으로써 결코 변할 수 없는 사회의 공고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튼 <추노>는 이전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송태하와 업복이가 벌이는 서로 다른 의미의 투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많을 것입니다. 노비를 쫓는 현금사냥꾼 추노 대길이 이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도 주목되는 관전 포인틉니다.



<추노>의 기획의도는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불과 몇 백 년 전, 화폐가치로 계산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양반과 평민을 다 합한 숫자보다도 많았던 이들은 바로 노비들입니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었던 이들에게는 희망이나 꿈, 전망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고 당연한 세상의 이치였습니다. 이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도망'뿐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픽션이
지금 이 시대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든다면,
다른 시대를 다룬 픽션은 필연적으로,
지금 이 시대 그 자체를 바라보게 만든다고 한다.



<추노> 기획의도의 마지막에 나오는 말입니다. <추노>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 시대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곽정환 감독이 <한성별곡>에서 보여주었다는 치열한 문제의식이 다시 한 번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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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