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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6 넝쿨당, 질투는 나의 것, 귀남엄마의 본심은? by 파비 정부권 (4)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이 <명상록>에서 했다는 유명한 말입니다. 일요일 한낮에 어제 못 본 넝쿨당을 보다 문득 파스칼의 이 경구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질투하는 존재다!”

어릴 때 아들을 잃어버렸다가 30여년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다시 찾게 된 노부부가 미국에서 아들부부를 만나기 위해 입국하는 양부모를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갑니다. 너무나 좋고, 고맙고, 밤새 엎디어 절이라고 하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일생에 최고의 손님인 거죠.

마침내 공항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아들의 양부모, 은인에게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할지… 쩔쩔 매는 방귀남의 할머니와 아버지와 어머니는 잃었던 아들을 잘 키워주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준 은혜에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아마 이들의 심정은 모르긴 몰라도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팔이라도 하나 떼어달라면 “오냐, 그러마!” 하고 얼른 떼어줄 마음이었을 테지요. 눈물로 지샌 지난 30년을 생각하면 그깟 팔 한 짝이 무에 대수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실로 간사한 것인가 봅니다. 아무리 친자식이라도 30년 세월이 치고 있는 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서 귀남이가 자신들에게 너무 예의바르고 싹싹하게 친절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어머니는 양부모를 만나서 격의 없이 반가워하고 장난도 치는 모습에 마음이 조금 언짢습니다.

하늘같은 은인들을 만나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파스칼의 경구처럼 금방 갈대가 되어 질투하는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우리한텐 그렇게도 무뚝뚝하고 예의만 차리는 아들이 제 양부모들 앞에서 어쩜 저리도 아이처럼 변할 수 있을까?’

며느리도 그렇습니다. 시양부모(뭐라 불러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를 만난 게 3년 전 결혼할 때 고작 몇 번뿐이었다면서 어쩜 저리도 다정한 푯대를 내는 것인지 미워 죽을 지경입니다. 아들에겐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에 함부로 내색도 할 수 없지만 며느리는 다릅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따로 며느리를 불러 따질 참입니다. “얘, 너는 나한테는 그렇게도 매정하게 따지고 들면서 미국어머니한테는 어쩜 그리도 살갑게 구는 거니? 그리고 나는 니가 그렇게 애교가 넘치는 앤 줄 이번에 첨 알았다. 나, 아주 기분 나쁘다.” 며느리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물론 “어머니, 그건 아니죠” 하고 반격하는 며느리의 모습이었죠. 음, 아무튼, 저는 뭐 이런 모습이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고 정겨운 모습이고 아름다운 가족사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닙니다. 바로 질투심에 관한 것이죠.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은인을 만나 어떤 요구라도 순순히 복종할 마음을 가졌던 귀남의 어머니가 막상 아들부부와 너무도 다정스레 어울리는 양부모의 모습에 질투심이 발동했던 것입니다. 이 질투는 질투의 일반적 의미가 보여주는 것처럼 과연 나쁜 것일까요?

하지만 저는 이 질투심이야말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아무런 사랑의 감정이 없었다면 아들내외와 미국에서 온 양부모가 나누는 다정한 모습에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기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3자의 입장으로 말입니다.

며느리 김남주가 “어머니, 사실은 저한테 섭섭한 게 아니고 그이한테 섭섭하신 거 아니에요?”라고 되받았지만 윤여정이 “그래 맞아. 하지만 너한테도 그래”라고 말했던 것은 며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섭섭함이 있었다는 거죠.

물론 질투란 많은 경우에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돈이 논 사면 배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질투는 사회관계에서 매우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조직사회에서도 이 질투 때문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 친구는 아는 것은 많은데 별로 쓸 데가 없어”라든가 “현실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훌륭한 사람이긴 하지만 조삼모사하다”는 식으로 꼭 한두 가지 흠을 들추어내 평가절하 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인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질투심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귀남이 어머니의 질투는 성질이 다릅니다. 남을 깔아뭉개기 위해서 발동하는 질투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질투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도 너무 지나치면 사람관계를 악화시켜 부정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정도의 질투심이 “내가 미국에서 온 저 두 분 양부모님들보다 우리 귀남이 내외에게 더 잘해줘야지. 그래서 내 사랑이 저분들보다 절대 모자라지 않음을 확인시켜줘야지” 하는 경쟁심리를 유발하는 정도라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질투는 인생을 충만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중용의 도만 잘 지킬 수 있다면 마치 소금처럼 인생의 간을 맞추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들이 많았던 어젯밤 드라마 <넝쿨당>을 보다 문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이글을 마칠까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고로 질투하는 존재다!” 어쩌다보니 파스칼과 데카르트가 막 뒤섞인 것 같은 느낌이네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질투한다.”

ps; 참고로 저는 귀남이 양부모가 입국한다고 할 때 이미 귀남어머니의 질투심이 생길 걸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왜냐? 그게 인간의 본성이거든요. 만약 질투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저는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