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4.09 개도 만원 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하던 시절? by 파비 정부권 (2)
  2. 2009.04.04 낙동강 발원지 태백 너덜샘으로 by 파비 정부권 (2)
  3. 2009.03.27 낙동강 천삼백리 도보기행을 시작하며 by 파비 정부권 (8)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차길, 추전역
추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해발 855m라는 높이는 내가 살고 있는 마산의 진산 무학산 정상보다도 100m가 높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기차가 올라왔을까, 기술의 진보가 오늘과 같지 않았을 까마득한 옛날에 말이다.

아마도 태백산 일대에 석탄이며 아연이며 중석이 발견되지 않았던들 이곳은 아직도 태고의 원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추전역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는 오래된 석탄도시의 흔적이 봄기운에 녹아 내리는 눈과 함께 질척거린다. 검은 도시의 영광을 아쉬워 하듯….

 

추전역에 올라서니 바로 코 앞에 거대한 풍차를 머리에 매단 매봉산이 바라다보인다. 대관령을 넘으면서도 저런 풍경을 보았었다. 거대한 풍차의 날개가 돌아가는 모습과 동해바다가 이국적이었다. 석탄도시의 상징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풍차의 날개짓…. 추전역은 한산했다. 한쪽 귀퉁이에선 과거에는 석탄을 가득 싣고 분주하게 뛰어다녔을 검은 화물열차가 오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대신 코에 기다랗게 고드름을 매단 삐에로 복장을 한 인형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추전역에서 바라보는 매봉산 풍력발전용 풍차들

한 세월 전국의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며 땀을 흘렸던 이 역사는 이제 검은 무연탄 대신 카메라를 들고 알록달록한 등산복으로 치장한 관광객들을 맞는다. 석탄을 가득 싣고 길 떠날 준비에 바삐 움직이던 기관차와 화물열차 대신 선로에는 관광객들의 셔터소리만이 가득하다.

 

한때 태백시는 인구가 20만에 육박하는 고원도시였다. 원래는 삼척군 상장면(또는 1920년대 이전엔 상장성면이라고도 불리었음)으로 화전지대였던 이 곳은 1920년대에 탄층이 발견되면서 탄전지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61년 삼척군 장성읍으로 승격했고 1973년에는 장성읍 황지리가 삼척군 황지읍으로 분리되었다가 1981년 다시 장성과 황지를 합하여 태백시가 되었다.

 

태백시는 우리나라 최대의 탄광도시였다. 사람들은 그때의 영광을 말할 때 지나다니던 개도 입에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말로 대신한다. 물론 이 말은 그저 우스갯소리다. 사람에게도 귀한 만 원짜리를 어찌 개가 물고 다닐 수야 있겠는가그러나 이런 우스갯소리는 당시의 풍요로움을 그리워하는 듯한 말이어서 한편 못내 서러운 마음을 배척할 수가 없다

내 어린시절 고향도 탄전지대였다. 태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태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경이란 또 하나의 탄전지대가 있었다
그런데 내 어릴 적 추억이 묻은 이곳을 소개할 때도 마찬가지로 예의 개도 만 원짜리를 입에 물고 희희낙락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랬던가. 그러나 사정은 달랐다. 광산주에게는 맞는 말일지언정 막장에서 탄을 캐는 광부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다.

 

광부들은 땅속에서 일을 했다. 그들은 밀폐된 어두운 곳에서 희미한 카바이드 불빛에 의지한 채 죽음을 친구로 삼아 검은 흙에 삽질을 한다. 발파 후에 채탄작업, 그리고 다시 동발을 세우고 한발 한발 막장이 깊어질수록 채탄장에 쌓이는 석탄의 높이만큼 사끼야마(선산부)들의 폐는 검은 먼지에 색이 변한다. 그렇게 변색되는 폐가 그들의 생활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을까.

 

얼마나 많은 광부들이 진폐로 생과 이별했던가. 그들은 폐에 묻은 검은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돼지비계와 소주가 필요했다. 갱도 주변에는 수많은 술집과 작부들이 그들의 진폐를 달래기 위해 들어섰고 광산도시는 밤이나 낮이나 흥청거렸다. 글쎄, 어쩌면 그 시절 술 취한 어느 광부의 만 원짜리를 개란 놈이 훔쳐 물고 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머리를 박박 밀고 시커먼 교복과 교모를 눌러쓴 모습이 스스로도 너무나 대견스러워 우쭐거리던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어느 날 하교 길에 국민학교 동창을 만났다. 녀석은 검은 탄가루를 날리며 달리는 재무시(GMC트럭) 조수석에 매달려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잽싸게 얼굴을 돌렸다. 나 역시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냥 얼른 눈길을 피했었다.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에 기재된 아동근로 금지의 원칙 같은 것은 그야말로 법전 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더 슬픈 기억은… 국민학교 때였다. 양정모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고 흑백 텔레비전에서 카 퍼레이드를 하던 바로 그날이었다. 옆집 형이 복날 개 맞듯이 맞았던 것은….

추전역. 무연탄 적재용 화물열차가 보이고 그 옆에 싣다 만 석탄이 쌓여있다.

옆집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였다. 그는 광산에서 후끼야마(후산부)로 일했는데 그날 낮에 친구들과 막걸리를 많이 마셨던가 보았다. 그는 미성년자였으므로 그의 아버지는 팬티만 입힌 채 엎드려뻗쳐 시켜놓고 장작으로 빠따를 때렸는데 그 형의 엉덩이와 허벅지에선 피가 줄줄 흘렀다. 그리고 그 몸으로 병반(3교대 중 밤에 일하는 조)을 들어갔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굴이 무너진 것이다.

 

모두 옛날 이야기다. 새끼줄에 연탄을 매달고 퇴근길을 재촉하던 시절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탄광도시의 영광도 옛날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광부들의 애환도 작부의 구성진 노래도 모두 개가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니던 과거의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 해발 855m에 외롭게 서있는 추전역사는 관광객들을 맞아 헤픈 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 추전역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내 친구와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을 옆집 형을 생각했다. 그 모습을 매봉산 정상의 풍차들이 빙글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추전역을 떠나 두문동재를 향해 버스를 달렸다. 추전역 바로 위에 있는 두문동재는 해발 1268m의 고개다. 두문동이라.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멸망한 고려의 충신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고개 너머에는 낙동강 발원지 너덜샘이 기다리고 있다.         파비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2. 제1구간, 너덜샘에서 분천리까지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 태백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가 오래 전에 상영된 적이 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제목에 대한 어떤 힌트도 주지 않는다여기서 강원도는 도피처이거나 주인공들의 로맨스를 설명하기 위한 무대장치일 뿐이다. 이 영화를 감명 깊게 보긴 했지만, 제목과 줄거리가 이렇게 서로 어떤 영감도 주지 않는 영화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로부터 강원도의 힘을 느꼈다고 하면 역설일까영화를 보는 내내 강원도의 힘을 찾던 나는 그러나 정말 강원도의 힘을 느꼈다. 어쩌면 강원도는 묵묵한 배경, 드러내지 않는 후원자 같은 존재이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에는 강원도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다가도 삶이 피로해지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강원도를 찾는다.

이렇듯 사람들은 도시의 분주함에 시달리면서도 실은 고향을 그리듯 늘 강원도를 동경하는 것이다바로 여기에 강원도의 진정한 힘이 숨겨져있는 것은 아닐지, 생명의 원천 같은 것 말이다. 원래 강원도란 이름은 강릉과 원주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이름이다.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태조는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의 이름을 그 지방의 유력한 두 개 도시의 이름을 따 체제를 정비했다.

,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함경도는 함흥과 길주(나중에 역모사건으로 길주가 강등되고 경성으로 바뀜)의 머리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경기도란 이름만 유달리 왕성 주변에 수도운영에 필요한 물자와 노동력을 확보하고 수도방위를 위해 설치한 경기(京畿)에서 유래했다. 이때 도()란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강원도라 하면 ‘강릉과 원주방면으로 가는 길’로서 광역지방을 관할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원도란 이름에서 이런 역사적 의미를 따지기보다 그 어감으로부터 전해오는 다른 것을 먼저 떠올린다. 바로 ‘강의 원천이요, 그리하여 생명의 근원’인 산이다. 강원도는 그야말로 산의 천지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온 백두대간은 그 넓고 긴 등판을 강원도 땅에 기대고 누웠다. 여기에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 태백산이 백두대간의 허리를 지탱하는 요추처럼 자리를 틀고 앉았다그중에서도 태백산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백두대간의 허리 중에서 요추와 천추가 맞닿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백두산으로부터 3천여 리를 내달려온 백두대간은 이곳 태백산에서 긴 여정의 응어리를 마음껏 풀어놓았다. 태백산은 경북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태백시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1567m로 높이 솟은 태백산맥의 주봉으로 주변에 함백산(1573m) 1000m급 이상의 고봉을 100여 개나 거느리고 있다.

고려의 승 일연은 “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당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 민족의 기원이다”라고 삼국유사에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 태백산이 백두산인지 묘향산인지 현재의 태백산인지는 알 길이 없다. 지금도 태백산 정상에는 천제단이 있어 매년 개천절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이 제천행사는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의하면 부족국가시대부터 행해왔는데 신라와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까지 이어오고 있다.

태백산은 비록 그 산세가 높고 험하기는 하나 완만하여 등산하기에 그리 부담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맑은 날이면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봄에 피는 철쭉과 겨울에 피는 눈꽃이 절경이다. 정상부근에는 고사목과 주목 군락지가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태백산은 참으로 신령스러운 산이면서 웅대하고 아름다운 산이다. 민족의 영산으로 숭상하는 이곳 태백산에서 생명의 근원 물길이 시작한다. 남한의 양대 강인 한강과 낙동강이 바로 이곳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한강은 도계와 정선을 지나 북으로 흐르다 서로 뻗어 경기평야를 일구었고, 너덜샘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며 경상도를 한 바퀴 휘돌아 안동분지와 대구분지, 김해평야를 일구어 생명의 젖줄이 되었다. 그리하여 본다면 환웅이 삼신(풍백, 우사, 운사)을 이끌고 내려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했다는 전설의 신시가 바로 이곳이리라는 생각도 든다. 물길이야말로 생명이며 홍익인간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새벽 두 시가 넘어 잠들었건만 눈을 뜨니 아직 채 여섯 시가 되지 않았다. 역시 산중에서 맞는 아침은 상쾌하다. 간밤의 숙취도 온데간데 없다. 7시10. 출발이다. 이제 드디어 낙동강 도보기행의 대장정에 오르는 것이다. 태백고원휴양림의 통나무집 아래로 아직 채 녹지 않은 눈과 얼음 사이에 차디찬 소리를 내며 계곡물이 흐르고 그 너머에 우리를 싣고 갈 버스가 시동을 켜놓은 채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낙동강의 발원지 너덜샘이다.       파비

동국여지승람에 낙동강은 태백산 황지에서 발원한다. 황지가 마르면 국난이 일어난다고 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을 시작하며


이 정부가 낙동강을 살리겠다며 파헤치겠다 합니다. 멀쩡한 강을 파헤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그 의도가 심히 수상쩍습니다. 최근 10, 20년 동안 꾸준하게 진행돼온 환경운동단체들과 뜻있는 주민들의 노력 덕분에 죽어가던 한국의 강과 산과 바다는 생기를 많이 되찾았습니다.  

 

당장 우리동네만 해도 그렇습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던 봉암갯벌에서 다시 조개가 잡힌다고 합니다. 마산만이 아직은 그 오염도가 심각한 지경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0년 전에 비해 괄목상대할 만하다고는 말할 수 있다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을 줄로 압니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마산에서 승용차를 타고 창원공단으로 출근할라치면 수출정문 해안도로를 지날 때는 아무리 더운 여름철이라도 반드시 창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창문을 열고 해안도로를 달려도 예전처럼 머리가 빠개질 듯한 냄새가 달려드는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강과 산과 바다가 서서히 그 생기를 되찾고 있음에도 갑자기 강이 죽었다며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은 4대강 살리기지만 그건 허울이고 강을 파헤쳐 완전히 죽인 다음 자기들이 생각하는 새로운 강 즉, 운하를 만들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경우엔 ‘수술’이 아니라 ‘장례’라고 해야 올바른 어법이라고 보아집니다.  

 

아직도 우리의 강과 산과 바다는 더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지만 작금의 이 기괴한 현상들은 우리땅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환경운동가들로 하여금 우리나라 강은 너무나 깨끗하다!고 강변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 중의 역설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최고의 비경 상주 경천대. 이미지=상주경천대 홈페이지


낙동강은 한강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강입니다. 남북을 합치면 압록강이 가장 길지만, 남한만 따진다면 한강이 497.25km 낙동강이 513.5km로 남한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경상도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낙동강은 다른 지방의 강들과 다르게 주변의 모든 강들이 한줄기로 모여듭니다. 

 

특히 전라도의 강들이 서해와 남해로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지는 것과 달리 경상도의 강들은 모두 낙동강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줄기를 만들어 남해로 흘러갑니다. 이것을 빗대어 호사가들은 전라도의 풍토가 자유분방하며 창조적인 반면 경상도는 일사분란하고 충성심이 강하다는 말로 비교하기도 합니다.

 

낙동강은 신라 이래로 ‘황산진’ 또는 ‘견탄’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초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낙동강’ 또는 ‘낙수’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낙동강은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낙동강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최근에는 가야(가락국)의 동쪽을 흐르는 강에서 따왔다는 설을 많이 믿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야에 대한 관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산 약용도 낙동강의 지명에 대해 가야(가락국)의 동쪽을 흐른다 하여 예로부터 낙동강이라 불렀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이나 연려실기술, 택리지에서는 모두 다른 유래를 이야기합니다.

 

예로부터 상주를 낙양이라고 불렀으며 낙양의 동쪽을 낙동, 서쪽을 낙서, 북쪽을 낙원 또는 낙상, 남쪽은 낙평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상주에 가면 이런 지명들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또 낙동강은 상주 즉, 낙양으로부터 동쪽 30여 리 밖에 있다고 동국여지승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낙동강백 리 뱃길’이라고 할 때 그 기산점은 바로 상주의 낙동나루입니다. 이처럼 낙동강의 유래에 대하여 여러 기록들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볼 때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보다는 상주 즉, 낙양의 동쪽을 흐르는 강이란 설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낙동강은 천삼백 리를 굽이쳐 흐르는 곳곳에 조상들의 숨결을 묻어놓았습니다. 봉화와 안동을 지나는 곳에 무릉도인 주세붕과 청량산인 이황으로 하여금 사림의 토대를 닦도록 했으며 상주에 닿아 드넓은 곡창지대를 펼쳐놓았고 선산에 이르러서는 조선 최대의 인재를 배출했습니다. 택리지에서도 조선 인재의 반은 선산(오늘날 구미)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구를 지나 창원에 이르러 지리산을 휘돌아온 남강과 힘을 합치고 밀양을 거쳐 김해에 다다라 다시금 드넓은 들을 일구어낸 다음 유유히 바다에 몸을 섞습니다. 낙동강은 창녕을 거치면서부터 주변에 여러 개의 습지를 흩어놓아 생명의 보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소벌(우포늪)과 주남저수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체들과 철새들이 생명을 노래합니다. 낙동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역사의 숨결이고 생명의 보고인 것입니다.
 
이 정부가 어떻게든 낙동강을 파헤쳐 대운하를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을 멈추지 않는 속내를 공군전투기의 비행까지 방해해가면서 제2롯데월드를 허가한 정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세 명의 대통령이 15년 간이나 이어진 롯데측의 끈질긴 로비에도 불구하고 “NO!” 한 사안이 하루아침에 “YES!”로 바뀌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국가안보를 외치며 애국자연하던 수구보수인사들은 한마디 말도 없습니다. 

이 돌연한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불붙은 가스통을 짊어진 HID도 없고 자유총연맹도 없으며 구국의 기독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공산주의도 팔아먹는다는 자본의 위력이 실로 경천동지할 만합니다. 그 자본가의 대표적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앉았으니 누가 감히 대적을 하겠습니까? 이제 바야흐로 이윤추구에 어떤 장애도 이적행위가 되는 시대가 온 듯합니다. 

이러한 때에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낙동강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태백에서 부산까지 순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예 답사가 아니라 순례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방법을 여러모로 알아보던 중에 <사단법인 우리땅 걷기(대표 신정일)>라는 곳에서 태백 너덜샘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낙동강 걷기탐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당장 회원가입을 하고 탐사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1구간을 답사하기 위해 떠납니다. 

<우리땅 걷기> 카페의 낙동강 도보기행 안내문에는 다음과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강 정비다, 운하다 말이 많습니다.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느낄 수 있는 낙동강 걷기에 많은 참여 바랍니다.”        파비

※ 제1구간은 낙동강 발원지 태백 너덜샘(황지보다 10여 킬로 위에 있다 함)에서 봉화 청량산 언저리까지가 될 거 같습니다. 중간에 승부터널(봉화군 석포면 승부리, 이곳 사람들은 가막굴이라고 함)이 있는데 이곳을 직접 통과할런지도 모르겠군요. 신정일 선생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에 보면 ‘까마득히 보이는 희미한 작은 점 하나를 쫓아 터널을 통과하는 살 떨리는 기분’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승부터널(가막굴)을 넘어 낙동강을 따라갔으면 좋으련만… 혹덩이들을 안고 그리로 가려고 하진 않겠지요. 이제 글도 올렸으니 봇짐 메고 떠납니다요.

ps; 낙동강 총연장이 513.5km, 한강이 497.25km로 낙동강이 남한에서는 가장 긴 강입니다.(브리태니커 사전) 우리나라 전체(한반도)를 따지면 압록강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강이며 한강은 네 번째로 긴 강입니다. 그래서 위 경천대 사진 아래 첫 번째 문장 <한강에 이어  가장 긴 낙동강>을 <남한에서 가장 긴 강>으로 정정했습니다. 중대한 착오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확인해보지 않고 기술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도 조사,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한다는 경험으로 삼겠습니다.  

ps2; 정확한 유로연장(길이)에 대해 발표주체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옵니다. 확인이 필요할 듯하고요. 어떻든 남한에서는 낙동강이 가장 긴 강입니다. 유량은 한강이 가장 많다고 하는군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이유인 듯합니다.   

Posted by 파비 정부권